청주 상당산
2024년 03월 17일(일요일)
산행코스 : 김수녕양궁장(09:30) - 낙가산(10:10) - 것대산(10:30) - 404봉(10:50) - 것대산(11:05) - 봉수대(11:10) - 상봉재(11:22) - 출렁다리(11:32) - 산당산성 남문(11:50) - 상당산(12:20) - 망산(12:55) - 우암생태터널(13:20) - 우암산(13:50) - 삼일공원(14:20)
산행거리 : 15.2km
용정산림공원
낙가산 2.3km
낙가산 정상 2.1km, 양궁장 0.2km, 보살사 0.7km
김수녕 양궁장
낙가산 정상 1.7km, 양궁장 0.6km, 보살사 0.7km
낙가산 정상 0.4km, 양궁장 1.9km, 원봉공원 5.1km
등산로가 잘 정비되어 있습니다.
통신탑이 서 있는 낙가산 정상입니다.
낙가산 정상
상당산성 갈림길
김수녕양궁장 2.3km, 상당산성 3.9km, 것대산 1.4km
것대산활공장 1.1km, 낙가산정상 0.3km
활공장이 있는 것대산 정상
낙가산 정상 1.4km, 선도산(한남금북정맥) 4.8km, 상당산성 자연마당 2.9km
것대산 정상
것대산 활공장
미세먼지가 심해서 청주시내 방향은 보이지 않고 우암산도 희미하게 보입니다.
것대산 정상에서 선도산(한남금북정맥) 방향으로 진행합니다.
선도산 3.5km, 것대산(봉수대) 1.2km
목련공원과 한남금북정맥 선도산
목련공원에서 올라오는 길을 확인하고 다시 것대산을 돌아갑니다.
저멀리 상당산이 보입니다.
404.7 삼각점
다시돌아온 것대산
봉수대, 상당산성 갈림길
봉수대, 상봉재, 상당산성방향, 산성동 방향, 낙가산, 선도산 방향
것대산 봉수대가 보입니다.
것대산 봉수대(충청북도 문화재자료)
청주 것대산 봉수는 1895년 봉수제가 페지되면서 사라졌습니다, 이후 문화재의 원형을 찾으려는 시민들의 노력 끝에 2009년 현재의 모습으로 복원하였습니다.
뒤돌아본 봉수대
저멀리 상당산이 보입니다.
상봉재
옹달샘 0.1km, 것대마을 1.5km, 낙가산 2.4km, 상당산성 1.1km
상당구 산성동 것대에서 것대산을 끼고 명암동으로 넘어가는 고개입니다.
상당산성 갈림길
우암어린이회관 2.7km, 낙가산 정상 2.5km, 상봉재 70m, 상당산성 1.1km
산성고개 출렁다리
길이 43m, 폭 1.5m, 높이 15m
것대산 2.7km, 산성서문 1.2km, 산성남문 0.6km
상당산성 1호 치성(서남 치성)
상당산선은 남쪽 성벽이 직선으로 이어지기 때문에 남쪽 성벽의 방어를 위해 3곳에 치성을 쌓았습니다. 1호 치성은 남문(공남문)에서 서쪽으로 340m 정도 떨어진 곳에 있으며, 형태는 위에서 보면 직사각형, 정면에서 보면 사다리꼴입니다. 이곳은 상당산성의 서남 암문과 인접한 곳에 위치하여, 서남 암문 주변을 경계하기에 유리합니다.
상당산성 서남 암문
서남 암문(안쪽)
서남 암문은 "남암문" 또는 "남화문"으로도 불렸으며, 남족으로 1.7km 정도 떨어진 것대산 봉수대와 이어집니다. 이곳은 남문 밖에 모여든 적의 뒤쪽으로 돌아가 포위하거나, 산성 남쪽으로 통하는 교통로 주변을 관찰하기 좋은 중요한 위치입니다.
암문은 원래 문짝이 있었으나 현재는 없어졌고, 문 안쪽에 빗장을 걸었던 네모만 구멍만 남아 있습니다. 암문 안쪽에는 침투하는 적을 수월하게 방어하기 위하여 좌우측에 벽을 쌓았습니다.
상당산성
충북 청주시 상당구 산성동에 구축된 조선시대 산성으로 1970년 사적 제212호로 지정되었습니다.
총 넓이 약 12.6만 제곱미터, 성벽 높이는 4.7m에 달하며, 둘레는 4.4km의 대단한 규모입니다.
상당산성은 청주시 동쪽에 솟은 상당산을 감싸는 포곡식 산성(성벽이 계곡을 감싸며 산지의 능선을 따라 축조한 성)으로 돌로 쌓은 성으로, 둘레가 4.2km에 달하며 현재 상당산성은 동문, 서문, 남문의 3개의 문과 2개의 암문(눈에 띄지 않는 곳에 만든 문), 치성 3개소, 수구 4개소가 남아 있습니다.
2호치성(남치성)
상당산성 남문(공남문) 안쪽
상당산성 남문(공남문)
공남문은 상당산성 3개의 출입문에서 남쪽에 위치하며 정문으로 사용되는 문입니다.
비교적 원형이 잘 보존되어 있고, 성문은 무사석으로 조영된 내외홍예문으로, 너비는 420cm, 높이 350cm의 규모입니다.
*무사석 : 네모반듯하게 다음어 성벽이나 담벼락에 높이 쌓아 올린돌
현재의 모습을 갖추게 된것은 조선시대로, 선조 29년( 1596) 임진왜란 중 원균이 산성을 급히 고쳐 쌓았으며, 숙종 42년(1716) 부터 영조 23년(1747)까지 대대적인 수리와 복원이 진행되었습니다. 청주읍성에는 충청도의 군사책임자인 병마절도사가 머물고, 상당산성에는 종3풍의 무관 병마우후 (兵馬虞候) 가 3,500여 명의 병사와 함께 머물려 청주읍성의 배후를 방어하였습니다.
상당산선은 영호남과 서울로 통하는 통로를 방어하는 군사적 요충지로 중요한 의미가 있으며, 통일신라이후 석축산성 문화의 기술적 총체를 보여주는 문화재입니다.
상당산성 남문 공남문(控南門) 현판
청주 구룡사 사적비(충청북도 유형문화재)
이 사적비는 상당산성 성내에 있었던 구룡사의 내력을 기록한 비석으로, 영조 40년(1764) 은재거사가 비문을 짓고 글을 썼습니다. 본래 상당산성 서남 암문 안쪽에 있었는데, 1970년대 현재 위치로 옮겨졌습니다.
조선 시대 상당산성에는 성을 관리하는 승병들이 머무는 사찰이 구룡사을 포함하여 3곳 이상 있었다고 합니다.
그러나 현재는 모두 사라지고 사적비만 전해지고 있습니다. 비석에슨 구룡사의 창건 배경과 상당산성의 개축 사실 등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비문에 따르면 숙종 42년(1716)에 상당산성을 개축하고 삼남지역(충청도, 전라도, 경상도)의 요충지로 삼았으며, 구룡사는 숙종 46년(1720)에 도천이 창건하였다고 합니다.
청주 구룡사 사적비는 임진왜란 이후 상당산성의 개축과 산성유지 보수를 위해 성안에 사찰이 운영되었음을 알려주는 귀중한 문화재입니다.
상당산성 남문(공남문)에서 바라본 풍경
3호치성(동남치성)
성내방축
해체공사중인 동장대(보화정)
상당산성 내부에는 동장대와 서장대의 터가 남아 있으며, 1992년에는 동장대가 복원되어 옛 모습을 재현하고 있습니다.
동문(진동문)이 보입니다.
동문(진동문) 안쪽
동문과 서문은 무사석으로 조영된 평문 구조로, 너비는 280cm, 높이 270cm의 규모입니다.
동문(진동문)
청주 상당산성의 성문은 3개소로 북쪽을 제외한 남문(공남문), 동문(진동문), 서문(미호문)이 있습니다.
이와 별도로 아군이 비밀통로로 사용하였던 암문이 동북쪽과 서남쪽에 있습니다.
성의 동쪽 출입구인 전동문은 동남쪽 해발 350m내외의 상대적으로 낮은 곳에 위치하고 있습니다.
1977년부터 1978년까지 보수공사가 이루어졌으며, 이때 문루도 함께 복원하였습니다.
진동문은 통로 양쪽에 벽을 쌓고 그 위에 길고 평평한 돌을 올려 마치 통로가 "ㅁ"자로 보이는 형태(평거형 성문)로 축조 되었습니다. 이런 형태의 성문은 평상시 통행이 많이 없는 성문에 주로 사용됩니다.
동문 진동문(鎭東門) 현판
동문(진동문)에서 바라본 풍경
좌측 선두산, 선도산이 보입니다.
상당산성 동북 암문(안쪽)
동북 암눈은 동북 방향의 산줄기를 따라 이동할 수 있는 통로일 뿐만 아니라, 동문 밖 골짜기로 모여드는 적군의 뒤쪽으로 가서 포위할 수 있는 중요한 곳에 있습니다. 암문에는 원래 문짝이 있었으나 지금은 없어졌고, 문 안쪽에 빗장을 걸었던 네모난 구멍이 남아 있습니다.
한편 동북 암문의 안쪽 옆면에 "강희" 경자 오월(康熙 庚子 五月)이 새겨져 있는 것을 보면 암문이 숙종 46년(1720)에 축조되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또한 암문을 만든 책임자인 서세량(徐世良), 양덕부(梁德溥)의 이름이 새겨져 있는데, 그중 양덕부는 영종 4년(1728)에 발생한 이인좌의 난 때 성문을 열어 반란군에 가담했던 인물로 알려져 있습니다. 동북 암문에 새겨진 명문은 상당산성의 역사를 보여주는 중요한 자료입니다.
암문을 만든 책임자인 서세량(徐世良), 양덕부(梁德溥)의 이름이 새겨져 있습니다.
상당산성 동북 암문
2포루터 50m
이정목 뒤로 상당산 정상이 보입니다.
상당산 정상
상당산성 "상당(上黨)"은 백제식 지명으로 "금강상류"뜻입니다.
상(上)은 한자훈인 위쪾을 뜻하고
당(黨)은 한자훈이 아닌 음차로 물(水)을 의미하고
당(黨)의 훈인 무리에서 "물"의 음으로 쓰는 것입니다.
청주는 금강의 상류이며, 광주가 "빛고을"이듯, 청주는 "물고을"이라하며 한자로 물맑을 청(淸)을 씁니다.
포루 터2는 포루 터 1에서 160m 정도 떨어진 산성의 정상부 평탄지에 있습니다. 포루 터 1보다 면적이 조금 더 넓으며, 주변을 관찰하기에 적합합니다. "상당산성도"에는 이곳을 공북정이라고 표기하였는데, 2014년 발굴 조사 결과 정면 4칸, 측면 2칸으로 추정되는 건물 터가 확인 되었습니다.
상당산성 3호 수구
3호 수구는 성벽의 중간 지점을 통과하는 형태로 만들어졌습니다. 성벽 안쪽에는 너비 250cm, 길이 210cm 크기의 타원형의 시설이 있는데, 이곳에 모인 물이 수구를 통해 밖으로 나가는 구조입니다.
뒤돌아본 상당산
청주국제공항이 있는 청주 천원구 방향입니다.
상당산성 포루 터 1
영조 20년(1744) 영휴 스님이 쓴 "상당산성고금사적기"에 영조 1년(1725)에 포루 15곳을 지었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영조40년(1764)에 그린 것으로 추정되는 "상당산성도"를 통해 포루 15개의 대략적인 위치를 확인할 수 있스빈다. 또한 포루의 형태가 2~3칸 규모의 작은 기와지붕 건물이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포루 터 1은 공간이 협소하지만 높고 평탄하여 주변을 관찰하기에 적합한 곳입니다. 2002년 발굴 조사 결과 정면 2칸, 측면 1칸 규모의 건물 터가 확인되었고, 조선 후기의 기와 조각이 출토되었습니다.
미호강과 함께 들녘이 바라보이고, 내수읍 국동리에는 터널공사가 진행되고 있는 청주제3순환로도 보입니다.
서문
서문(미호문) 안쪽
서문(미호문)
상당산성의 성문은 총 5개로 남문, 동문, 서문과 동북 암문, 서남 암문이 있습니다. 이중 서문의 통핼로 천장은 동문과 마찬가지로 직사각형의 돌을 수평으로 걸쳐 만들었습니다. 문밖 양쪽으로는 성벽을 돌출시켜 방어에 유리하도록 하였습니다. 이러한 구조는 암문에서 볼 수 있는데, 이를 서문에 적용하여 건축 비용을 줄이고 전술적 효과를 높인 것으로 보입니다.
서문이 있는 곳의 지형은 호랑이가 뛰기 전 움츠린 모양과 닮았습니다. 전해지는 이야기에 따르면 호랑이가 떠나면 땅기눈이 다하므로 호랑이의 목에 해당하는 곳에 성문을 새웠다고 합니다.
이 때문에 서문을 "미호문"이라고도 부립니다.
문루는 1978년에 복원하였으나 지반 침하로 변형되어 2015년에 해체한 후 원형을 고증하여 복원하였습니다. 이때 문루에 사용된 수막새의 문양과 벽돌은 1995년 서장대 발굴 조사에서 출토된 유물을 참고하여 제작한 것입니다.
현재의 서문에서 북쪽으로 약40m 떨어진 곳에서는 지금의 서문보다 앞서 만들었던 서문터가 확인되었습니다. 이 서문터는 조선 숙종 대와 영조 대에 대대적으로 수축되기 이전의 상당산성 서문 모습을 보여주는 중요한 자료로서, 당시 발굴 조사 자료를 토대로 2003년에 정비하였습니다.
서문 미호문(弭虎門)현판
태극삼거리
서문(미호문) 350m, 서장대(제승당) 200m, 남문(공남문) 900m
데크계단길을 내려가 생태육교 방향 진행합니다.
약수터
명암약수 1.0km, 나무호텔 0.8km, 상당산성 0.5km, 생태육교2.5km
어린이회관, 상리, 상당산성 갈림길
망산
아무런 표시도 없습니다.
생태육교 1.8km, 명암동 0.4km, 상당산성 1.6km
상당산성 2.8km, 우암생태터널 0.6km
나무사이로 우암산이 보입니다.
우암산 터널
우암생태공원
청주랜드 0.5km, 상당산성 3.4km, 삼일공원 3.6km
된비알 급경사 등로를 올라갑니다.
계속되는 급경사 등로
드디어 우암산 정상이 보입니다.
상당산성 4km, 청주랜드 1.6km, 삼일공원, 청주향교
우암산생태터널, 송전탑, 광덕사
우암산 정상
우암산 정상
삼일공원 1.6km, 우암산 정상 0.6km, 안덕벌 1.2km
와우정(臥牛亭)
와우정에서 바라본 오송읍 방향 파노라마
전망대
삼일공원 1.1km, 우암산 정상 0.6km, 보현사 0.5km
송전탑
체육시설을 지나갑니다.
우암산정상 1.2km, 성공회성당 0.8km, 삼일공원 0.5km
우측으로 삼일공원 주차장이 보입니다.
삼일공원 주차장
삼일공원
33인의 독립운동가 중 충청북도 출신의 독립운동가 다섯분의 동상
손병희, 권동진, 권병덕, 신홍식, 신석구 선생이 다섯 동상의 주인공이 되겠습니다.
일제 제국주의의 침약에 저항한 항일운동 기념탑도 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