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이틀은 통영과 거제를 여행했다. 집에서 출발해 대전까지는 길이 복잡했지만 그 후로는 한가했고 많은 산과 터널을 지나면서 새삼 우리가 얼마나 많은 산지를 가졌는지 느꼈다. 금강을 지나며 지리산을 추억했고 남강을 지나면서는 논개를 떠올렸다.
저녁식사를 마치고 중앙시장 근처에 있는 바닷가에서 벌어지는 공연을 구경했다. 특이한 것은 관중들의 대부분이 오십대 이상이었고 가수가 부르는 노래가 다 흘러간 노래였다. 역시 베이비붐의 막강한 세력을 다시 느꼈다.
통영에 바닷가 호텔에서 일박을 하고 간단히 아침식사를 하고나서 케이블카를 타러 갔다. 9:30분 개장시간에 맞추어 갔지만 이미 사람들이 기다리고 있어서 약 이십분을 기다렸다. 고소공포증이 있는 사람은 타지말라는 경고장이 마음에 걸렸다. 우리와 함께 탄 아주머니 한 분은 약 십여분동안 눈을 뜨지못하며 무서움을 호소했다.
전망대에 올라서 본 다도해는 미인의 눈썹같다는 어느 작가의 표현이 생각나게 고요하고 신비로우며 아름다왔다. 흡사 인간의 낙원이 신의 바다에 잠기운듯 곳곳에 섬들이 서로를 바라보며 속삭이듯 떠 있었다.
통영은 문화와 예술의 도시이다. 청마 유치환, 박경리, 윤이상, 김춘수등이 이곳 출신이란다. 산과 바다가 만나고 어우러져 섬으로 나가는 신비한 고장이다.
골프장을 경영하는 동창을 만나러 거제로 향했다. 이 친구는 어렸을적 소심하고 얌전해서 O라는 동창녀석에게 괴롭힘을 당했다. 사십여년만에 만난 녀석은 덩치도 커지고 인상이 씩씩해져서 놀랬다.
골프장 앞바다는 원균이 일본의 해군에게 대패를 당한 장소란다. 원균은 아들과 함께 도망치다가 적의 칼에 목숨을 잃었다고 전해진다. 바닷속에는 당시에 침몰한 거북선이 아직 있다고 한다. 바다를 끼고 아름답게 펼쳐진 풍경이 흡사 Pebble beach course를 닮았다.
원래의 계획은 부산에 친척을 방문하는 것이었는데 피곤해하시는 어머니등의 사정으로 집으로 향했다. 대전까지는 수많은 산지를 지나는데 그 이후로는 비교적 넓은 평지를 지난다.
지금 중부지방은 가뭄으로 목이 몹시 마르다. 하천들은 심한 녹조현상으로 물고기들이 떠오르고 농지는 모내기를 제대로 못한 곳이 많다. 만물의 영장이라는 인간의 배설물로 아름다운 지구가 병들어 가고 급기야 스스로의 생존을 위협받는 형국이다. 어쩌면 앞으로의 분쟁은 마실 물을 확보하기위한 그것이 될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다.
이제 유월이 지나간다. 한국의 습한 날씨가 조금씩 신경을 건드린다. 그래도 메르스가 진정국면으로 가는듯 하고 요동치기 시작하는 미국에 주식시장이 재미있어진다.
아들녀석이 오늘 유난히 시무룩해보였다. 그러더니 하는 말이 여자친구와 헤어졌다고 한다. 원래 그 여자아이의 인상이 마음에 들지않았어서 속으로는 잘됐다 싶었다. 그래도 자기인생의 첫사랑이어서였는지 약간 울컥하는 듯 보였다. 그래 많은 여자들하고 사귀어라. 첫사랑과 대학 일학년에 덜컥 결혼하는 아버지의 완착을 두지 말거라.
오늘은 수원화성을 구경했다. 정조의 탄탄했던 왕권과 정약용의 지혜가 묻어나는 곳이다. 많은 부분이 복원을 했겠지만 우리나라에 현존하는 가장 완벽한 성곽이요 가장 오래된 계획도시(?)인 셈이다.
지금 열어논 문으로 바람이 들어와 드러난 무릎을 시원하게 어루만진다. 지난 반년동안 무슨일이 있었나. 아틀란타, 샌프란시스코, 제주 그리고 통영을 여행했다. 모국에 와서는 꿈속에 만나던 친구들과 친척들을 만났다. 서울의 구석구석을 걸어다녔다. 어쩌면 나는 장소를 찾아다니는 것이 아니라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다닌다. 그동안 살기위해 돈을 모으는데 집중을 했다면 이제는 그 집착에서 벗어나 삶 그 자체에 집중을 한다.
어제는 동창을 만났는데 오십대이상을 위한 사단법인을 만들어 활동을 하고 senior care를 하는 사업을 여러가지 하고있다. 미국에 AARP같은 단체를 모델로 하고 현재 약 천여명의 회원이 있고 정기적으로 강의와 산행을 한단다. 아울러 연장자를 위한 물품을 파는 상점을 을지로에 오픈했다. 녀석의 focus는 원래 칠팔십대였는데 이번에 보니 그 촛점이 베이비부머로 옮겨진듯 하다.
내 고향에 익어가는 칠월의 청포도는 무엇일까? 그저 행복하기만 하면 되는가? 나를 찾아올 님은 누구인가? 잡다한 상념에 밤을 세울지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