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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법대_사법고시_출신_대통령_(ft.학벌주의 시대의 비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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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정치는 엘리트주의가 강해 "국립행정학교(ENA)" 출신이 대통령이 될 가능성이 높다고 한다. 이 학교 1년 졸업생수가 90명 정도. 영국 역시도 귀족출신이거나 옥스브릿지 출신이 총리감으로 강력한 것이 현실이다. 미국도 민주당 정권은 하바드 로스쿨 등 학벌이 중요하고, 공화당은 석유나 부동산 등 재벌관계가 중요한 요인이었다.
한국의 5년 단임 대통령제는 일종의 대통령 출신 직업과 배경의 실험실이 되었다. 노태우(군인) 김영삼(9선 정치인) 김대중(7선 정치인) 노무현(인권변호사) 이명박(현대건설, 서울시장) 박근혜(2세 정치인) 문재인(인권변호사) 윤석열(검찰총장) 이 주요 실험주인공이었다. 지난 2022년 대선은 사상 최초로 검찰 출신, 서울법대 졸업장을 지닌 윤석열 전 총장이 대통령 당선이란 기록을 쓰게 됐다. 본격적인 "학벌" 및 "검사 정치" 시대를 열게 된 것이다.
1997년 대선에서 이회창 당시 한나라당 총재는 경기고-서울법대-대법관-감사원장 출신 후보로 당시 엘리트 출신들로부터 압도적인 지지를 받은바 있다. 그의 경쟁자가 고졸 출신의 김대중(목포상고) 노무현(부산상고) 이었기에 당시 경쟁은 호사가들의 다양한 얘깃거리를 만들어 냈다. 다만 1960년대까지의 한국인의 평균 학력을 감안하면 고졸은 번듯한 학력이었기에, 아마도 군인 출신이 불가한 것처럼 더 이상의 고졸 대통령은 나오지 않을 것이란 전망도 함께 제시됐다.
1. 벼락같은 스타
이명박 정권은 잠시 국내정치의 한켠으로 물러난 국정원을 다시금 그 중심으로 끌어들였다는 점에서 "퇴행적" 권력이었다. 심지어 선거 승리를 위해 고도의 심리전을 활용했는데, 이미 사망한 노무현을 코알라로 희화한다던지, 네이버 댓글란을 점거해 "전라도"를 "공산주의"로 덧칠하는 정치공작을 서슴치 않고 자행했다. 국정원 나랏돈으로 말이다. 그 국정원 댓글 사건 수사 결과가 2013년 경에 공개가 되었는데, 그 와중에 스타로 떠오른게 권은희 경정과 윤석열 검사였다.
특수부 이력으로 당시 여주지청장 윤석열 검사는 마치 드라마 주인공처럼 벼락 스타가 되었는데, 국회 청문회 과정에서 나온 "나는 사람(채동욱)에 충성하지 않는다"라는 발언 하나 때문이었다. 박근혜 검찰의 부패와 권력에 끌려다니는 모습을 상징하는 인물이 진경준-넥슨 게이트나, 최순실 사태 속 우병우 민정수석의 말도 안되는 전횡이었다.
덕분에 특수부 출신 검사임에도 번듯하게 출세하지 못한, 일견 평범해 보이던 윤석열의 이름값이 날로 치솟는 현상이 벌어진 것이다. 2013년부터 2016년까지, 검찰이 욕을 먹을 때면 계속 "윤석열" 이름이 거론되기 시작한 것이다. 그 이후 촛불시위로 정권이 바뀌자, 윤석열 검사는 그야말로 수직 상승을 하게 되는데, 그 승진의 폭과 속도가 전례가 없는 수준이라 상당한 논란이 되었다. 당연히 검찰에도 인물과 인재가 적지 않은데, 민주당 정권은 자신의 파트너로 "윤석열"을 콕 찝어 승진에 승진을 거듭시킨 것이다.
2. 검증 미흡
당시 윤석열의 긍정적 이미지는 2012년의 "안철수 현상"과 일견 맞닿아 있다. 구태 정치에 찌들지 않은 순박한 이미지. 일례로 여느 정치인과 달리 헤어스타일이 크게 힘을 주지 않은 더벅머리 공무원 스타일이었다. 지금의 꽃단장이 아닌 수수한 외모에 강단있는 관상은 상당히 묘한 매력을 풍겨냈고, 대중은 절묘하게 그 꾸밈없는 시골검사 이미지에 열광했다.
김어준과 주진우 등, 당시 친민주당 스피커도 이러한 외적인 이미지에 속아넘어갔다. 특히 주진우의 실책은 큰 오점이자 폐해로 남는다. 검찰을 꽤나 오래 취재한 그는 명성있는 시사주간지 기자였지만, 필연적으로 대검출입기자단 바깥에서 취재해야했는데, 그 과정에서 비주류 특수부 검사들과 사적으로 연결이 되었고, 이후 "나는꼼수다" 등으로 대중의 과잉 주목을 받게되자, 자신의 검찰 인맥을 과도하게 민주당 386에게 추천한 정황이 뚜렷하다.
이러한 대중의 열기가 얼마나 거셌는지, 2019년 윤석열 중앙지검장이 총장 후보 1순위가 되고, 이에 대해 "뉴스타파" 등 여타미디어가 윤의 과거 비위에 대해 검증보도를 하자, 필자의 기억에도 김어준 방송과 딴지일보 회원 등이 주도하여, "뉴스타파" 후원해지 움직임을 벌였을 정도였다. 당시 뉴스타파 후원액이 삽시간에 40%가 줄면서 조직이 크게 흔들렸다 (이로 인해 뉴스타파 내부도 당시 보도를 놓고 갈등이 생겼다).
3. 문 정부의 오판
2017년 문재인 정부의 취임 일성이 "검찰 개혁"이었을 만큼 검찰권력에 대한 불만이 팽배한 시대였다. 여기엔 2009년 노무현 전 대통령의 죽음이 결정적이었다. 검찰이 발벗고 지나간 권력에 대해 말도 안될 정도로 무리한 칼을 들이 밀었던 것이다 (이러한 관행은 2023년 윤석열 정부에서도 재현되었다). 여기서 핵심은 2002년 이후 한국 정치의 중심에 "검찰"이 주요 세력으로 급부상했다는 의미다.
과거 한국 정치의 중심에는 "청와대"가 1극의 위치에 있고, 그 아래 단계에 총리실, 여당, 언론, 국정원 등이 놓였는데, 1987 체제가 가속화되면서 기존 기관보다 검찰의 위세가 독보적으로 높아진 것이다. 검찰의 위세가 커질수록 "검찰 전관"의 위세는 더욱 높아졌고, 국회에서도 단연코 검찰 출신 정치인 비중이 커졌다. 국정원이 국내 정치 사찰을 멈춘 2002년 이후의 검찰은, 경쟁기관을 불허하는, 행정부 그 위에 존재하는 아주 특별한 기관이 된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검사동일체, 즉 검찰총장과 검사 딱 2개의 직급만 있는 검찰에 2년 임기 검찰총장의 존재감이나 역할은 무척이나 중요했다. 이제껏 총장들은 그 누구라도 검찰의 독립성과 독점적 권력를 줄이는 방향의 민주당 개혁안에 찬성할 수 없었다. 검사는 오히려 퇴임 이후가 중요하다 싶을 정도로, 퇴직자 커뮤니티가 강한 직군이다. 그 누구도 "조직의 배신자"로 낙인찍히고 싶지 않다. 결과적으로 청와대 386은, 중앙지검장으로 "테스트" 해본 윤석열을 검찰총장으로 임명한다. 무척이나 "기능적" 선택이었던 셈이다.
4. 배신과 실패
검사는 기수도 이력도 중요하다. 사업연수원 23기 출신인 윤석열은 그 어떤 측면으로나 검찰총장으로 가능성이 없는 인물이었다. 우선 23살 미만 사법고시 합격자 우글거리는 검찰 조직에서, 그는 나이 34에 검사에 임용된 늦깎이 검사였다. 심지어 중간에 조직 부적응으로 검찰을 관두고 잠시 변호사 생활까지 했을 정도다. 무엇보다 뚜렷하게 다른 검사보다 바르다거나 유능한 검사생활을 했다는 증거도 없었다.
어찌보면 윤석열이란 스타 탄생은 일종의 SNS 현상과 닮아 있고, 검찰 개혁에 조급증을 부렸던 핵심 정치인과 청와대 오판의 결과다. 심지어 검찰 내부의 감찰보고서도 무시하고, 오로지 검찰권 약화를 위한 기능적 인사에 올인한 결과다. 그렇게 2019년 검찰총장이 된 그는 자신의 모든 과거 발언을 부정하며 정면으로 문재인 청와대와 각을 세우는 일을 반복한다. 듣도보도 못한 청와대 검찰 갈등이 연이어 터져나온 것이다.
2019년 여름 윤석열 총장이 취임하고, 조국 장관이 취임 35일만인 10월 법무장관에서 물러난다. 같은해 12월 공수처 법안이 국회를 통과, 일선 검사들은 분기탱천했고, 이후 줄줄히 예고된 검찰개혁 법안에 조직적으로 공개적으로 반기를 들기 시작했다. 이 시점부터 윤총장은 보다 뚜렷하게 청와대와 각을 세웠다. 2020년 초에는 아예 대놓고 울산시장 선거 이슈로 청와대를 압수수색하는 일까지 벌어졌다. 아마도 이때쯤 민주당 내부에서는 "속았다" 라는 판단을 내렸을 듯 싶다. 뒤늦게 싸움에 합류한 추미애 장관이 12월 윤 총장에 "판사사찰과 채널 A 사건"으로 직무정지를 내리지만, 이미 승부의 추는 크게 기울어 있었다. 모든 언론이 윤 총장의 손을 들어준 것이다.
5. 상반된 판단
그러니까 문재인 청와대 세력은 이미 2019년 조국 사태에서, 검찰개혁의 동력을 잃은 것으로 보인다. 서초동에 모인 흥분한 대중의 의견을 따르기보다는, 집권세력인 만큼 검찰총장 2년 임기보장이 더 안전한 길이라 판단한 것이리라. 당시 윤석열 검찰은 사상초유의 "법무장관" 수사와 기소라는 무리수를 던졌는데, 집권세력이 이를 통제할 아무런 제도적 방편이 없었던 것이다. 의지도 없었고.
결과적으로, 법무장관을 무력으로 제압하는 데 성공하자 일반 중도유권자 시선은 "검찰총장 > 청와대" 라는 인식을 갖게 되었고, 당연히 이같은 강한 이미지는 이후 사상 최초로 여당 검찰총장이 야당 대통령후보로 "영입"되는 발판이 된다. 2022년 대선 경선 와중에 충격적인 윤석열 후보의 인생관, 혹은 지극히 편향된 정치관 등이 살짝살짝 공개되긴 했지만, 한번 긍정적으로 자리매김한 그의 이미지는 크게 타격을 입지 못했다.
오히려 그의 "사시 9수" "무자녀" "애주가" 는 그의 서민적이며 청렴한 이미지 형성에 기여했고, "서울법대"와 "특수부 검사" 이력은 그의 엘리트 이미지를 강화하는 데 적격이었다. 한국 사회에서 고학력 엘리트 대통령이 배출될 때가 2022년이었는데, 딱 그 시점에 윤석열 후보가 그 행운을 거머쥔 것이었다. 당연히 보수적인 미디어가 검사 출신의 서울법대 우파 인물을 거부할리는 없었고, 그렇게 굉장한 우연과 실수와 흐름에 떠밀려, 윤석열 정부 3년이 열리고 말았다.
ps.
0. 대중도 은근히 최고학부 출신 지도자에 궁금했던 상황
1. 그러니까, 2013년 당시 윤 검사의 "나는 사람에 충성하지 않는다"라는 발언을 대중은 "오, 저 검사는 헌법과 법률에 충성한다"라고 스스로 오해했던 것임.
2. 검찰이 가진 그 중요성과 특수성을 감안했을 때, 앞으로 그 어떤 선택의 순간이 다시 온다고 해도 집권세력은 "기능적 판단"을 멈추고, "덕성과 품격" "양심"을 갖춘 인물을 장관급에 기용하는 게 맞다는 역사적 교훈을 안겨준 사건이 아닐런지.
3. 국가 차원의 엘리트에게 중요한 것은, "능력"보다는 "공공성"과 "덕성"임. 혹 사상과 철학이 다르더라도. 검사가 검찰조직 보호하는 주장을 펼쳤던 게 어찌보면 당연했던 상황.
4. 만일 탄핵이 안된다면, 그것 역시 "서울법대-사법고시" 카르텔 때문임. 결과적으로 그 카르텔이 나라를 망가뜨리는 것이고. 이 글도 당연히 삭제될 것이고, 아마도 페북 계정 자체를 삭제해야할 듯.