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처의 눈에는 부처만 보인다
73. 원효의 똥은 내 고기다
혜공과 원효가 운수행각을 하던 어느 날이었다. 아침부터 종일 굶어 혜초가 냇가의 고기를 잡아 같이 구워 먹었다.
혜초: 많이 쳐먹어대더니 똥만 엄청나게 싸놨구나, 이놈 (---)
원효의 똥은 내 고기다! 원효의 똥은 내 고기다! 큰소리로 외쳤다
원효: ( 이 외침에 퍼뜩 깨쳤다)
* 교학 불교에 매달려 있던 원효. 거지들과 어울리며 자유로운 생활을 하고 있던 혜공에게서 새로운 선적 결지를 배우려고 노력하고 있었다. 살아 있는 고기를 먹고 똥만 싸는 놈아! 껍데기만 보고 구원해야 할 민중을 천대하는 어리석은 놈이란 뜻이다. 너희들이 그토록 천시하고 하잘것없이 여기는 똥 같은 인생들이 바로 내 허기를 채워주는 부처이자 인도자다.
74. 해와 달에게 무슨 길이 필요한가
제안 : 그대는 어디서 왔소?'
신라 스님(범일): 동방에서 왔습니다.
제안:. 걸어서 왔습니까, 배를 타고 왔습니까?
신라 스님 : 둘 다 아니오. *깨달음으로 가는 길은 많다
제안:그럼 날아서 왔단 말이오?'
신라 스님 : 해와 달에게 어떤 길이 필요하다고 생각하십니까? *자연스럽게 움직이면 된다.
* 도를 깨치는 데는 왕도가 정해져 있는 것이 아니다. 해와 달이 뜨고 지는 데 무슨 특별한 길이 필요한가. 마찬가지로 깨달음을 얻는 것에도 특별한 길이 정해져 있는 것이 아니다. 깨달음을 얻기 위해서는 어떤 길에도, 또 어떤 관습에도 얽매이지 않고 해와 달이 움직이듯 자연스럽게 움직이면 된다는 것이다. 일군의 무리가 산을 오르고 있었다. 그들은 한결같이 정상에 오르는 것이 목적이었다. 그들은 올라가다가 중간에서 뿔이 흩어지고 말았다. 이 사람들이 다시 만날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이겠는가? (정상으로 가는 것)
75. 주인은 어디 있느냐
지눌이 제자와 함께 길을 가고 있었다. 길바닥에 짚신이 한짝 떨어져 있는 것을 보고 지눌이 제자에게 물었다 지눌 : 주인은 어디 있지?
제자(혜심) : 그때 만나지 않습니까?
지눌 : (고개를 끄덕이며 웃었다. 그리고 그에게 법을 전했다. 혜심은 지눌에 이어 송광사의 2대 조사가 된다)
* 짚신으로 제자에게 한눈을 팔게 만든 다음 자기 자신의 진정한 주인이 누구냐고 묻고 있다. 지눌이 짚신으로 눈을 돌리게 한 뒤에 질문을 던진 것은 수행하는 언제나 본질을 꿰뚫고 있으라는 가르침이다. 그때 만나지 않았습니까? 그때란 지눌과 제자가 만났던 그때이다.
76. 한 선비의 출가
친한 벗을 잃은 선비 하나가 출가를 결심하고 묘적암을 찾았다.
요연: 내 앞에 있는 이 물건이 무엇인고?' (너는 무엇이냐?'라는 질문)
선비(나옹): 말하고 듣고 걸을 수 있는 물건입니다. 그러나 보지 못하는 것을 보길 원하고 찾지 못하는 것을 찾고 싶습니다. 어떻게 하면 좋겠습니까?"
요연:(이 말에 요연이 고개를 끄덕이며 그를 받아들였다)
77. 칼한자루 *깨달음은 칼
나옹이 중국으로 유학을 떠났다. 그는 한동안 인도 승려 지공에게서 수업을 받다가 다시 길을 떠났다. 그리고 평산을 만났다.
평산: 어디서 오십니까?
나옹: 지공에게서 옵니다.
평산: 지공은 매일 뭘 합니까?
나옹:그는 날마다 천 개의 칼을 갈고 있습니다. (천 명의 제자를 가르치고 있다는 뜻이렸다?)
평산: (눈에서 광채가 흘렀다. 그물을 던질 때가 된 것) 지공은 천 개의 칼을 갈고 있는데 당신은 내게 보여줄 한 개의 칼이라도 있소이까? 있으면 보여주시오.
나옹:(방석으로 평산을 내리쳤다)
평산:( 아악! 평산이 비명을 지르며 소리쳤다) 이 동쪽 오랑캐 놈이 사람 죽인다!
나옹: (껄껄 웃으면서) 칼 맛이 어떻습니까?
평산: (겁에 질린 표정을 지으며 발을 못하자)
나옹: 제 칼에 맞으면 죽기도 하고, 살기도 한답니다
* 깨달음의 칼! 그것은 때론 사람을 죽이기도 하고 살리기도 한다. 그것은 자기를 죽이고 또 하나의 자기를 얻게도 한다. 깨달음은 칼날이다. 스스로를 끊임없이 위협하는 날선 칼날이다. 기꺼이 목을 내쥐야 당신이 살 수 있다는 것을 아는가? 그 칼은 지금 당신 속에 있다
78. 너 죽었느냐 *굶는다고 깨달음이 얻어지니?
나옹과 무학이 원나라의 한 절에서 참선 정진을 하고 있던 어느 날이었다. 무학이 참선에 너무 열중한 나머지 끼니를 거르자 나옹이 무학에게 물었다
나옹: 너 죽었니?' *굶는다고 깨달음이 얻어지니?
무학:(빙그레 웃으며 대답했다) 예, 죽었어요. 그리고 살았어요 *밖에서 도를 구하던 자기를 죽이고 안에서 도를 찾는 자기를 얻었다는 뜻
나옹: (껄껄 웃으며 어깨를 두드려주었다)
*삶의 가장 기본이 되는 것은 먹는 일이다. 그런데 무학은 먹는 일조차 잊고 참선에 열중했다. 나옹은 그 점을 은근히 꼬집으며 물었던 것이다 깨달음이 굶는다고 얻어지느나? 참선만 한다고 부처가 되느냐? 이런 말이다. 회양이 마조에게 했던 말과 비슷하다. 앉아만 있다고 깨달음을 얻느냐?. 무학은 이렇게 대답한다. 예. 죽었습니다. 그리고 지금 살았습니다. 밖에서 도를 구하던 자기를 죽이고 안에서 도를 찾는 자기를 얻었다는 뜻이다
79. 가장 먼저 놓은 들은? * 깨달음은 붙잡은 거기가 처음
나옹이 무학과 함께 계단에 앉아 있다가 느닷없이 조주 스님 이야기를 하였다.
나옹: 조주 스님이 제자와 함께 돌다리를 바라보다가 '이 다리는 누가 만들었지?' 하고 묻자 제자는 이응이라는 사람이 만들었다고 했지. 그때 조주 스님이 다시 '어디서부터 손을 댔겠느냐?(어디부터 만들었겠느냐)" 하고 제자에게 물었지. 그러자 제자는 아무 대답도 하지 못했다네. (나옹은 그렇게 말하고 무학을 슬쩍 쳐다보았다. 그리고 이렇게 물었다) 자네는 그 물음에 어떻게 대답하겠나?
무학:(아무 말도 하지 않고 두 손으로 계단을 쌓은 돌을 잡았다) *깨달음은 붙잡은 거기가 처음.
나옹:( 빙긋이 웃었다)
*그렇다. 깨달음은 붙잡은 거기가 처음이다.
조주가 깨달음의 세계를 다리에 비유했지만 그 제자는 알아듣지 못했다. 그러나 600년 뒤에 동방의 젊은 승려인 무학이 그 해답을 내놓았다. 깨달음엔 과거도 미래도 현재도 없다. 그것은 시간에 예속되지 않는다.깨달음의 세계에선 언제나 깨달은 그 순간이 처음이다. 깨닫는 순간이 곧 태초다. 왜냐하면 깨달음은 곧 새 하늘이고 새 땅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