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개요
가. 아론의 반차(레위 지파)는 대속(제물)의 제사이며 멜기세댁의 반차(유다지파)는 생명의 빛으로 난 아들이 실제다.
나. 율법의 행위로는 겉 사람의 속성을 바꿀 수 없다.
다. 휘장(몸과 마음)을 초월하는 것이 아들(속사람)로서 십일조와 헌물의 실제가 된다.
2. 본론
가. 아론의 반차(레위 지파)는 대속(제물)의 제사이며, 멜기세댁의 반차(유다지파)는 생명의 빛으로 난 아들이 실제다.
대속의 제물의 제사를 드리는 직분이 실제적인 아들로 바뀌고, 레위 제사장에서 생명의 빛인 멜기세댁(유다 지파) 계통으로 바뀌는 모습을 본다(히 7장).
아론의 반차 – 레위 지파 – 제사장들(율법적인 돈 십일조가 예수 십자가의 피로 말이암아 폐기되고 실제적인 십일조와 헌물인 생명의 빛인 아들의 노선으로 바뀌게 되었다)
이는 멜기세댁 반차 – 유다 지파 – 예수 그리스도(강도에게 빼앗겼던 근원을 다시 찾아오는 내면의 일이 되었다)
나. 율법의 행위로는 겉 사람의 속성을 바꿀 수 없다.
“율법은 장차 오는 좋은 일의 그림자요, 참 형상이 아니므로 해마다 늘 드리는바 같은 제사로 나아오는 자들을 언제든지 온전케 할 수 없느니라(히 10:1)”라고 하였다. 예배로는 온전케 할 수 없다고 한다.
종교 행위로는 겉 사람의 속성을 바꿀 수 없기 때문에 고난의 과정에서 벗어날 수 없다. 율법의 십일조는 그림자로서 참이 아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피(휘장)로 이 그림자는이미 이천년 전에 폐기되었다. 그런데도 여전히 강도에게 빼앗긴 적이 없는 물질 소득의 십 분의 일을 고집하는 것은 인간의 종교성에서 기인한 이해관계에서 기인한 발상이다. 이것이 적그리스도다.
종교인들이 좋아하는 물질을 요구하면서 선택받은 자신들에게 희생 봉사하라고 요구한다. 레위 제사장에게 드리다가 예수 그리스도로 인하여 폐기된 그림자인 구약의 전통을 이어가려고 하는 것이 바로 종교 행위다.
그렇다면 예수 그리스도를 하나님과 하나인 자로, 참 선지자로, 참 제사장으로 인정하지 않는 것이 종교 행위다. 예수 그리스도와는 아무런 관계도 없는 것이 종교 행위로서 적그리스도인 것이다.
다. 휘장(몸과 마음)을 초월하는 것이 아들(속사람)로서 십일조와 헌물의 실제가 되는 것이다.
십일조와 헌물의 실제가 되신 예수 그리스도가 참 제사장인 것을 안다면 그가 강조한 이유를 알게 될 것이며, 따라서 그대로 행하여야 한다. 정성을 다해 예수 그리스도를 부르고 애쓰고 종교 행위를 한다고 해서 될 일이 아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그토록 강조한 것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것’ 곧 강도에게 빼앗겼던 근본을 되찾아 오는 것만이 참 실제가 되는 것이다. 나의 근본(엔 아르케)이 무엇인지를 아는 것이다.
인생은 보이는 나, 듣는 나, 느끼는 나, 생각하는 나가 있다고 생각하지만, 인생은 이 나를 참 나로 오해데서 비롯된 것이다. 강도에게 참을 빼앗겼기 때문에 발생한 일이다. 안이비설신의(眼耳鼻舌身意, 몸과 마음)를 통해 강도에게 참된 것을 빼앗겨서 일어난 일이다. 이 강도로부터 나(예수 차원)를 다시 찾아와야 십일조와 헌물로서의 참 아들이 되어야 한다.
그러면 보는 나, 듣는 나, 느끼는 나, 생각하는 나에 속지 않게 된다. 자신 안에서 이러한 현상은 종교 행위를 통해서 발생할 수 있는 문제다.
성경에서는 몸과 마음을 휘장으로 말씀하고 있다. 휘장을 초월해야 이 십일조와 헌물의 실제로서 아들이 되는 것이다. 몸과 마음(의식 무의식 잠재의식) 너머에 여호와 하나님(근본)이 계신다. 여호와 하나님은 몸과 마음(휘장)에 의해 절대 오염되지 않는 청정하신 분이다. 하나님은 시작도 끝도 없이 원래부터 휘장(마음) 뒤를 환히 밝히시는 근본 하나님이시다.
생명의 빛과 그 안식!
첫댓글 아멘~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