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라피화산의 상처
보로부드르사원
따만사리
프람바난사원
인도네시아를 인도와 같은 나라로 알고 있을 정도로 우리나라 사람들에게 인도네시아는 낯설다. 또한 세계적인 휴양지인 발리가 인도네시아 영토라는 것, 최근 독립한 동티모르가 인도네시아 영토였다는 것, 1958년 수카르노나 나세르 등 3세계 지도자들의 반둥모임이 인도네시아의 도시였다는 것을 알고 있는 사람 역시 드물 것이다.
그런데 이제는 인도네시아에 대한 지식이 점점 더 중요해 지는 것 같다. 세계 4위의 인구와 천연자원을 풍부하게 보유한 인도네시아는 개발도상국의 선두주자로 주목받고 있으며, 개발도상국을 대표하여 G20에 참여하고 있어 경제적으로 우리에게 중요한 파트너가 됐기 때문이다.
인도네시아는 오래 전 아시아육상성수권대회가 자카르타에서 열렸을 때 임원으로 방문한 바 있고 금년 2월 말 출장을 다녀왔기에 세 번째 방문은 낯설지가 않다. 어느 정도 일을 마치고 마침 일요일이라 보로부두르 사원과 프람바난 사원 등을 관광하기위해 족자카르타로 향했다. 족 자카르타는 자바 문화의 중심지 역할을 하는 훌륭한 문화유산을 지니고 있다. 특히 세계 7대 불가사의 중 하나라는 보로부두르사원은 단일 건물로는 캄보디아의 앙코르와트를 능가할 정도로 규모가 크고 제작에 따른 미스터리로 인하여 많은 관광객이 찾고 있는 곳이다.
네덜란드는 자바인 회교군주를 통해 통치했던 네덜란드는 계속되는 반란에 결국은 통치권을 내주게 된다. 그러나 마타람왕국이 약해지자 수라카르타와 족 자카르타로 분리가 되고, 네덜란드는 망쿠부미 왕자를 족 자카르타의 군주로 추대하였는데 그가 바로 하멘쿠 부워노 1세다.(지금은 하멘쿠 부워노 9세가 통치하고 있음) 현재 도시 안에 술탄의 궁(크라톤왕궁)과 폐허가 된 궁(따만사리)이 있는데 이 역시 빼놓을 수 없는 관광지다.
6월 26일 일요일 수카르노하타공항에서 국내선(라이온항공)에 탑승하여 1시간여의 비행 끝에 족 자카르타공항에 도착했다. 공항은 한산했지만 제법 외국인들이 보였다. 기다리던 지프를 타고 먼저 머라피 화산을 찾았다. 백두산의 화산 폭발 가능성이 커지고 있어 작년 화산 폭발로 큰 피해를 입은 머라피의 지금 상황이 어떤지를 보고 싶었다.
인도네시아의 상징이 가루다인데 머리피 화산의 정상은 푼칵 가루다다. 머라피 화산은 세계에서 가장 위험한 활화산 중의 하나인데, 'Meru'는 ‘산’을 의미하고, ‘Api'는 불을 의미하는 자바어의 합성어라고 한다. 산 이름만 들어도 바로 화산임을 알 수 있을 것 같다. 작년 10월 말 화산이 폭발하여 40여명이 죽고 주변 마을들이 폐허가 되었다고 한다. 1998년 7월, 1994년, 1930년의 폭발 때도 많은 사상자와 이재민이 발생했던 곳인데 현지를 방문해 보니 그야말로 엄청난 면적이 지금도 그 상처를 간직하고 있었다. 화산 폭발로 인하여 잃은 것도 많지만 그 후에는 다시 땅이 비옥해진다는 말처럼 수많은 사람들이 관광을 와서 새로운 시장을 형성하고 있는 것을 보면서 인간 세상의 삶이란 것이 새삼 어떤 것인지 종잡을 수 없어진다. 예전에는 정상까지 오를 수 있었다는데 지금은 등정을 허용하지 않아 미지언덕에서 돌아서야 했다.
머라피 화산을 떠난 지 한 시간여 만에 그토록 그리던 보로부드르 사원에 도착했다. 사원입구에 들어서서 천을 바지 위에 치마처럼 두르고서야 사원을 구경할 수 있었다. 인도양을 건너 전래된 불교가 이 사원으로 인해 인도네시아에서 꽃 피웠다고 평가받고 있다.
족 자카르타에서 42km 떨어진 게도우 분지에 자리한 보로부드르 사원은 1814년 당시 자바를 점령하고 있던 영국의 총독 라플즈에 의해 발견되어 10세기 만에 세상에 알려졌다. 그 후 네덜란드에 의해 관리되어 1907년부터 4년간 복구공사를 하였는데 오히려 불상의 목을 베어 태국에 선물하는 등 훼손이 심해 졌다고 한다. 1973년 아시아 유적으로는 처음으로 유네스코에 의해 대규모의 보존, 보수작업이 행해져 지금은 유네스코 문화유산으로 등록되어 보호받고 있다.
보로부드르는 옛 인도 언어로 ‘보로=승방’ ‘부드르=높게 쌓아 올린 곳’이란 뜻으로 ‘언덕에 세워진 승방’으로 해석하는 설이 있는데 명확하지는 않다. 건립된 시기 역시 8세기 중반 중부 자바에 번영했던 샤일렌드 왕조라고 짐작할 뿐 정확한 연대나 공사시기에 대해서는 기록이 없어 아쉽다. 또한 건축에 사용된 석재가 인근 30km 내에서는 찾을 수 없는 돌이어서 어떻게 이 많은 돌을 운반했는지가 의문이며, 발견 당시 사원 전체가 토대에 쓰인 흙과 같은 토질의 흙으로 덮여있었기에 완성과 동시에 흙을 덮었을 가능성도, 왕조의 멸망이나 화산 폭발과 함께 원인의 하나로 보고 있다.
사원을 위에서 내려다보면 한 변이 124m인 정방형이다. 안산암을 잘라낸 100만개 이상의 돌을 사용하여 전체 9층, 높이 42m까지 내부의 공간 없이 접착제를 사용하지 않고 쌓아 올린 것이다. 흔히들 캄보디아의 앙코르와트를 세계 제일의 불교유적지로 꼽는데 앙코르와트는 여러 개의 건축물이 이어져 있는 형태이고 이곳은 단일 건축물로 만들어진 석탑이라고 할 수 있다. 공간 없이 쌓아 올린 석조물의 무게만 해도 무려 350만 톤에 달해 지반침하로 원래 42m 인 사원의 높이가 지금은 35.3m까지 내려왔다고 한다.
사원을 이루는 회랑 벽에는 불교에 대한 이야기가 길게 새겨져 있는데 전체가 2,500면, 부조에 등장하는 인물은 모두 1만 여명에 달하는 ‘거대한 조각의 숲’이다. 기단에는 종모양의 스투파가 73개가 있는데, 스투파 속에 있는 불상의 약지에 손을 대면 소원이 이루어진다는 전설이 있어 사람들이 그 안에 손을 집어넣는 진풍경을 볼 수 있다.
미국 태생의 인류학자 존 미크식은 그의 책 ‘보로부드르의 미스터리’에서 보로부드르에 오르는 행위는 ‘세속에서 법열로 이어지는 정신적인 수련이다’고 표현하고 있는데, 부조를 따라 오르다보면 그 길이가 무려 5km에 달한다고 하니 이는 길고 긴 배움의 과정을 뜻하는 것이고, 스투파가 서있는 곳에서 한 계단을 오르면 갑자기 시야가 확 트이면서 눈앞에 산과 대지가 펼쳐지는데 이 희열감은 긴 배움의 과정을 거쳤기에 느낄 수 있다고 하여 이 사원은 예배를 드리는 공간이 아니라 스스로 깨달음을 얻는 공간이라는 주장이다.
1천 년 전 밀림을 헤치며 거대하고도 장엄한 불교사원을 건축했던 샤일렌 왕조의 사람들은 역사와 함께 사라졌지만 그들은 우리에게 세계적인 위대한 유산을 남겨 주었다. 보로부드르 사원은 일출과 함께 봐야 제 맛이라는 사람도 있는데 제약된 시간 때문에 그럴 여유가 없어 아쉬움을 남긴 채 만남의 기쁨만 안고 떠나왔다.
어둑해질 무렵 족자로 돌아와 호텔에 여장을 풀고 족자의 중심거리인 말리오보로 거리를 돌아보기 위해 호텔을 나섰다. 남북으로 2km 길이에 길게 자리한 말리오보로는 투구기념탑에서 술탄왕궁까지 연결되어 있다. 은행, 호텔, 쇼핑몰과 수많은 가게들이 줄을 이어 자리하고 있는데 그 거리를 가득 메운 사람들과 안동이라는 전통마차, 베칵이라는 페달을 이용한 바퀴 3개 달린 인력거 같은 것, 거기에 승용차까지 북새통을 이루고 있어 정신이 하나도 없다.
27일 아침 9시에 호텔을 나섰는데 도로는 아직도 포화상태다. 어제 입구에서 돌아섰던 말리오보로 거리 끝에 자리한 크라톤 왕궁을 관람했다. 1755년에 축조된 자바의 전통 건축양식이다. 안뜰과 누각들 가운데 있는 구조물은 1757년 완성되었다고 한다. 이 문 입구에는 꼬리가 뒤엉킨 두 마리의 뱀이 각기 반대 방향을 향하고 있어 이채롭다. 왕궁에서 가장 중요한 건축물은 중앙 안뜰에 있는 프로보엑소 누각 양식의 금을 입힌 건물이다. 이 누각은 우리의 누정과 같은 것이지만 특별히 우아한 나무 조각으로 장식되어 있다. 왕은 이곳에서 왕실의 손님이 오면 연회를 베풀고 무희들의 춤을 선보였다고 한다. 또한 회교도들의 가장 중요한 3대 축제가 개최된다.
크라톤 왕궁에 이어 ‘즐거운 정원’이라는 이름의 따만사리(수성)를 관람했다. 1758년 왕족의 쉼터와 공원기능으로 건립되었으며, 1867년 지진피해로 서쪽의 일부만 남아 있다. 따만사리라는 뜻은 ‘아름다운 정원’이라는 의미로 수성을 둘러싸고 있는 호수에서 이름을 따왔다고 한다. 지금은 더 이상의 피해를 막기 위해 일부 통행을 제한하고 있다.
수성은 첫째, 인공호수와 수로, 수영장, 다양한 나무로 이루어진 거대한 정원으로 쉼터로서의 기능을 지니고 있으며, 둘째, 모트와 수영, 사슴 사냥, 전통무용인 베도요와 스림피, 가메란 음악 등 스포츠와 여흥에 적합한 장소이며, 셋째, 명상의 장소이다. 마지막으로는 왕궁으로의 기능이다. 술탄의 안전한 거처로 요새의 역할을 했다. 크라톤과 이곳은 수로와 지하통로로 연결돼 있었다고 한다.
구경을 마치고 족자의 민속예술로 유명한 바틱 제조과정을 둘러보고 젊은 작가들의 작품을 감상하였다. 인도네시아 현지식당에서 점심을 하고 마지막 코스로 시내에서 동쪽으로 17km떨어진 힌두교사원인 프람바난으로 향했다. ‘라라 종그랑 사원’ 또는 ‘날씬한 처녀의 사원’으로 알려진 이 사원은 9세기 중반 바리퉁 마하 삼부 왕에 의해 건설되었다. 프람바난 사원에는 8개의 사원이 있는데 그중 3개는 시바, 비스누와 브라마를 모신다. 주사원인 시바의 사원은 높이가 47m이며, 사바의 요정인 두르가의 동상이 따로 지어져 있다. 그것은 자바에서 가장 아름다운 신상 중 하나이다. 또한 경내에는 100여 종의 난초공원과 새들이 자유롭게 날아다니는 새 공원이 있다.
프람바난 사원의 입장권은 두 종류가 있는데 프람바난사원만 관람하는 입장권과 산 정상의 라뚜 보코사원을 함께 구경하는 입장권이다. 두 곳을 볼 수 있는 입장권을 구입하여 경내로 들어가니 셔틀이 있는데 밖으로 나가 20여분을 이동하여 나지막한 산으로 올라가니 옛 사원 터가 나왔다. 라뚜 보코 사원이라고 한다. 산 정상 넓은 터에 자리하고 있는데 지금은 입구의 기둥과 문, 그리고 주춧돌만 남아있었다.
다시 프람바난사원으로 돌아와 아름다움을 뽐내는 사원을 둘러보았다. 하나하나 정성이 깃든 예술품을 보는 것 같다. 그래서 외국에서는 건축학과가 예술대학에 있다는 말이 실감이 난다. 프람바난사원에는 슬픈 전설이 있는데, 옛날 마력을 지닌 반둥이라는 왕자가 있었는데 적국의 라라 종그랑 공주에게 반하여 그녀와의 결혼을 원했다. 그러나 공주는 그가 자신의 아버지를 죽인 원수로 알고 있었기에 결혼할 수 없었다. 하지만 그의 마력 때문에 결혼을 못하겠다는 말을 차마 할 수가 없어 ‘하루 밤 만에 천 개의 신전을 쌓은 다면 결혼하겠노라’고 어려운 제의를 한다.
그러나 반둥은 그의 마력을 이용하여 순식간에 신전을 쌓았는데 새벽녘에 신전이 완성된 것을 본 공주는 마을 사람을 시켜 신전 하나를 무너뜨렸다. 그래서 천 개에서 하나가 부족하게 된 것이다. 그런데 공주의 농간에 의해 신전 하나가 무너지게 된 사실을 알게 된 왕자는 마력으로 공주를 돌로 만들어 버렸다고 하며, 바로 사원의 중앙에 있는 시바 신전 북쪽 석실의 두르가 상이 바로 라라 종그랑 공주의 석상이라는 것이다.
이제 자카르타로 돌아갈 시간이 되었다. 주마간산이지만 아쉬움은 달랜 것 같다. 보는 만큼 보인다는 말처럼 시간이 문제가 아니라 마음이 문제인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