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ttps://youtu.be/NEDtT8QQUbc
성도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에스라의 나무 강단 신학 강의를 시작합니다. 성경의 어휘 연구, 여러 중요한 어휘들을 연구하면서 오늘은 일흔여섯 번째 시간으로 '표상이란 무엇인가'라는 제목으로 짧은 시간 공부하겠습니다.
'표상'은 대단히 중요한 용어입니다. 하지만 막상 이 표상이라는 단어는 성경에 단 한 번밖에 사용되지 않아요. 단 한 번밖에 사용되지 않았지만, 그것이 가진 중요성 때문에 오늘 좀 더 깊이 연구하고자 합니다.
먼저 국어사전에 나타나 있는 표상이라는 단어의 의미는 대표적인 상징입니다. 상징이에요. 상자가 '코끼리 상(象)' 자죠. 철학에서의 이데아(Idea)도 철학에서는 표상이라고 표현하는 모양입니다. 그다음에 심리학에서는 감각을 요소로 하는 심적 복합체를 이르는 말로, 의식 중 과거의 인상이 재현되는 것을 심리학에서 표상이라고 부른다고 해요. 그러나 우리가 지금 연구하는 것은 심리학이나 철학이 아니고, 성경에 나타나 있는 표상의 이야기입니다.
개역한글판 성경에는 표상이라는 단어가 단 1회 사용되었습니다. 하지만 이 표상이라는 단어의 헬라어 원어는 '티포스(Typos)'인데, 이 티포스는 신약 성경에 총 16회 사용되었습니다. 16회 중에 단 한 번만 표상으로 번역되고 나머지는 여러 다른 단어로 번역되었습니다. 어떻게 번역되었는지 한국말과 영어를 좀 보겠습니다.
원어 티포스는 본래 '본(여덟 번)', '거울(두 번)', '자국(두 번)', '형상(한 번)', '식(한 번)' 등 아래와 같이 여러 다른 단어로 번역되었고, '표상'으로는 딱 한번 로마서 5장 14절에 번역되었습니다. "아담은 오실 자의 표상이라" 할 때 그 표상이 바로 티포스입니다.
개역한글판에서는 표상으로 번역했지만, 현대의 다른 성경들인 표준새번역, 개역개정판, 현대인의 성경, 한글킹제임스 등등은 이를 '모형'으로 번역했습니다. 모형, 원형과 모형할 때의 모형이죠. 그리고 공동번역에서는 '원형'이라고 옮겼는데, 사실 원형과 모형은 정반대 말이라 모형이라고 하는 것이 더 좋을 뻔했습니다. 가톨릭 성경에서는 '예형(豫型)'이라고 번역했습니다. 영어 성경을 보면 뉴킹제임스(NKJV)와 뉴아메리칸스탠다드(NASB)는 'type'으로, 뉴인터내셔널버전(NIV)은 'pattern' 혹은 'prototype'으로, 뉴리빙트랜스레이션(NLT)은 'foreshadow'로 대조해 번역했습니다. 킹제임스버전(KJV)에서는 'figure'로 번역했고, 마틴 루터(Martin Luther)는 '형상(그림)'으로, 현대 독일어 성경은 '게겐빌트(Gegenbild, 대응하는 형상)'로 번역을 했어요. 각기 다른 이해를 가지고 다양한 용어로 번역해 놓았습니다.
자, 이것을 좀 더 가까이 연구해 보겠습니다. 성경이 말하는 표상이란 무엇일까요? 중국어 성경에서는 이를 '예상(預象)' 혹은 '유예상'이라고 부르는데 상자가 똑같습니다. 표상이란 인간의 구원자이신 예수 그리스도와 그분의 구원 사역(실체)을 상징적인 방법으로 미리 보여주는 모형을 말합니다. 원형은 실체이신 예수 그리스도이고, 구약의 것들은 모형입니다. 모형이 있으면 그 원형이 있지 않겠습니까? 원형을 보고 모형을 뜨잖아요, 그렇죠? 이 모형들을 영어로는 'type' 또는 'figure'라 하고 한자어로는 예표, 표징, 모형, 예형이라 하기도 하는데, 우리는 이를 통틀어 표상이라 부릅니다.
성경에는 예수를 미리 보여주는 표상이 정말 많습니다. 구약에 사용된 표상은 크게 4대 분야로 나뉩니다. 제 나름의 연구 결과인데 앞으로 오셔서 구원을 이루실 예수님의 모습, 그분이 하시는 활동, 구속적인 위대한 업적 등 이 모든 것을 미리 보여주는 많은 그림자가 있습니다. 우리가 그림자라고 하면 보통 실물이 먼저 있고 그림자가 나중에 생기지만, 성경의 표상은 실물이 나타날 것을 예상하고 미리 보여주는 그림자입니다.
그 구약의 4대 표상 분야 중 첫째는 '인물'입니다. 많은 인물이 예수님을 가르쳐 보입니다. 로마서 5장 14절에서 본 것처럼 아담은 오실 자의 표상입니다. 아담의 갈빗대를 취해 하와를 만들었듯이, 아담의 실제 원형이신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옆구리를 상하심으로 교회를 탄생시키셨습니다. 이게 하나의 표상적인 그림입니다. 노아는 당대의 구원자로서 심판 속에서 구원하시는 예수님을 가르칩니다. 아브라함은 믿음의 조상이며, 이삭은 독생자 재물로서 십자가에서 돌아가실 예수님을 미리 보여줍니다. 나무를 지고 모리아 산으로 올라간 이삭의 모습은 십자가를 지고 골고다로 가신 예수님의 표상입니다. 요셉은 구렁(구덩이)에 빠졌다가 애굽의 총리 보좌에 오르는 생애를 통해, 낮아지셨다가 영광의 보좌에 오르실 그리스도의 사역을 가장 세부적으로 보여주는 인물입니다. 이 외에도 입법자인 모세, 대제사장 아론, 왕 중의 왕이신 다윗, 솔로몬, 사흘 만에 부활한 요나, 그리고 많은 점에서 인자(Human) 예수님을 가르치는 에스겔 등 수많은 인물이 예수님의 모습을 나타내 보여주고 있습니다.
둘째는 '사건'입니다. 홍수 사건은 앞으로 있을 마지막 대심판의 모형이자 표상입니다. 이 땅에서 일어난 여러 전쟁도 선악 간의 대쟁투의 한 모형으로 보여줍니다. 기근은 영적인 말씀의 기근을, 이 땅의 재난들은 마지막 시대에 있을 대재난을 예고합니다. 특히 출애굽 사건은 위대한 역사적 사건이면서 동시에 우리가 어떻게 죄에서 구원받는지를 보여주는 구원의 청사진이자 위대한 모델입니다.
셋째는 '제도'입니다. 안식일 제도는 하나님과 그 백성 사이의 영원한 표징이며 구속적인 의미가 대단히 큽니다. 결혼 제도와 부부 관계는 그리스도와 교회의 관계를 잘 말씀해 주고 있습니다. 형이 자식 없이 죽으면 아우가 형수와 결혼해 대를 이어주는 수혼(형사취수) 제도 역시 구원의 제도를 잘 설명해 줍니다. 부장 제도와 율법, 그리고 성소 제도와 제사 제도는 온통 구원과 관련된 표상적 제도들입니다. 성막의 구조, 성소의 뜰(칭의), 첫째 칸(성화), 둘째 칸(영화), 포장, 앙장, 휘장(그리스도의 육체), 제사 직분과 예복, 분향단의 향(기도), 레위기의 다섯 제사와 절기(유월절, 무교절 등)가 모두 구속의 신비를 쭉 설명하는 표상적 제도입니다.
넷째는 '사물'입니다. 방주는 역사적인 사물이면서 동시에 유일한 구원의 문이신 예수님과 교회를 뜻하는 표상적 의미를 지닙니다. 반석에서 물이 나온 사건에 대해 고린도전서 10장 4절은 "이 반석은 곧 그리스도라"고 명시합니다. 광야에서 불뱀에 물린 자들이 노뱀을 쳐다보고 살았듯이, 요한복음 3장 14절~15절의 말씀처럼 노뱀은 장대(십자가)에 들리실 예수님의 표상입니다. 구약의 모든 제물은 참된 제물 되신 예수님의 표상적 사물입니다. 야곱이 꿈에 본 사닥다리 역시 요한복음 1장에서 예수님이 인자 위로 천사들이 오르락내리락하는 것을 보리라 하셨듯이, 하늘로 가는 길 되신 예수님의 상징입니다. 이와 같이 인물, 사건, 제도, 사물이라는 크게 4대 분야가 구약에 사용된 표상의 종류들입니다.
우리가 이 표상을 연구함에 있어서, 그와 관련된 몇 가지 어휘를 짚고 넘어가는 것이 좋겠습니다.
첫째, '표상(Type)'은 예표, 표징, 모형, 그림자라고 표현할 수 있으며 표상학 연구의 기초가 됩니다.
둘째, '상징(Symbol)'은 좀 더 포괄적인 용어입니다. 상징이라는 넓은 개념 속에 표상이 일종으로 포함됩니다.
셋째, 성경 해석의 한 방법인 '풍유(Allegory)'가 있습니다. 풍유적 해석은 성경 구절에 나타난 모든 단어를 실제 실체와 낱낱이 결부시키는 상징법입니다. 예를 들어 아가서에 나오는 신부의 신체 묘사(코가 망대 같고 등) 하나하나에 과도하게 의미를 두어 예수님과 억지로 관계 지으려는 시도입니다. 초기 교부 오리게네스(Origen) 같은 이들이 이를 사용했는데, 이는 성경이 지지하는 올바른 해석법이 아닙니다. 중요한 영적 포인트에 맞추어야지, 아담이 오실 자의 표상이라고 해서 아담이 범죄한 사실까지 예수님께 억지로 꿰맞추면 안 되는 것입니다. 과도한 상징의 남용을 우리는 풍유라고 부르며, 우리는 성경 해석에 있어서 풍유 기법을 옳다고 인정하지 않습니다.
넷째, '실체(Antitype)'가 있습니다. 실체는 표상의 반대 개념으로, 표상이 가르키는 종국적인 원형(예수 그리스도와 그분의 사역)입니다.
다섯째, '표상학(Typology)'은 이러한 표상과 실체에 관한 신학적 연구를 하는 학문입니다.
이 표상학은 크게 두 종류가 있습니다. 하나는 수평적 표상학(Horizontal Typology)입니다. 수평적으로, 즉 시간 축을 따라 먼저 나타난 구약의 표상들(아담, 아벨, 노아, 아브라함, 이삭, 야곱, 요셉, 모세, 다윗, 솔로몬 등)과 나중에 나타난 신약의 실체(예수 그리스도)를 비교 연결하는 학문입니다. 구약의 시간적 표상은 '타이프(Type)'라 하고 나중에 오는 실체는 '안티타이프(Antitype)'라고 합니다.
다른 하나는 수직적 표상학(Vertical Typology)입니다. 공간적으로 지상에 존재하는 모형과 하늘에 존재하는 원형을 비교하는 학문입니다. 예컨대 공간적으로 하늘에 있는 진짜 성소를 땅의 모형 성소에서 찾는 것입니다. 이때 땅에 있는 지상 모형은 '엑타이프(Ectype)'라 하고 하늘에 있는 천상 원형은 '아키타이프(Archetype)'라고 부릅니다. 수평적 표상학과 수직적 표상학의 구조를 이해하시면 성경의 구속사를 입체적으로 보실 수 있습니다.
우리는 앞선 강의에서 새것의 두 가지 의미인 '네오스(시간적 새것)'와 '카이노스(질적 새것)'에 대해 공부한 바 있습니다. 제가 오래전 1989년에 첫 책을 냈고, 4년 후인 1993년에 표지만 바꾸어 다시 낸 책은 시간적으로만 새로운 '네오스'였습니다. 그러다 세월이 많이 흐른 뒤 2011년에 내용을 대폭 전면 개정 증보하여 출간한 책이 바로 질적으로 완전히 새로워진 '카이노스'의 책, <오실 자의 표상>이었습니다. 이 책의 제목인 '오실 자의 표상'이라는 단어가 바로 로마서 5장 14절에서 온 것입니다.
이 책은 저의 졸저입니다만, 수백 년 동안 수많은 학자가 연구해 온 표상학에 대한 방대한 이론, 논문, 저술들을 제가 수집할 수 있는 대로 다 모으고 오류를 걸러내어 결정적으로 집대성해 본 표상학 전문 서적입니다. 2011년에 발행된 이 책은 총 8장, 490쪽 분량으로 비교적 방대합니다. 책의 맨 끝에는 구약과 신약을 아우르는 250개의 성구 색인과 170여 권의 참고 문헌이 담겨 있습니다. 이 책에 대해 앤드류스 대학교의 신약학 교수인 최희천 박사와 삼육대학교의 유동기 박사가 과분한 추천 찬사를 써 주셨습니다. 최 박사는 "성경 표상의 백과사전 같은 책"이라고 평해 주셨고, 유 박사는 "수십 년 동안 잘 숙성시킨 표상학에 대한 폭넓은 연구와 사색의 결정체"라고 격려해 주셨습니다.
이 책의 목차 총 80장을 일별해 보면 구약 성경 전체를 관통하는 표상의 지도가 보입니다.
구약 성경은 온통 이처럼 메시아의 표상들로 가득 차 있습니다. 그렇기에 위대한 하나님의 성경입니다. 만약 구약 성경이 예수 그리스도를 예언하고 상징하며 표상하지 않는다면, 그저 이스라엘의 역사책이나 우리나라의 삼국유사, 삼국사기 같은 고대 연대기 서적과 무슨 차이가 있겠습니까? 구약이 구원의 경륜을 담은 성경일 수 있는 이유는 온통 예수님을 가르치고 있기 때문이며, 그러한 관점에서 우리는 표상을 살펴보는 것입니다.
오늘 강의를 요약하겠습니다. 첫째, 표상이란 원형이신 예수 그리스도와 그분의 구원 사역을 상징적으로 예표하는 구약의 인물, 사건, 제도, 사물 등을 뜻합니다. 둘째, 표상학에는 시간적 흐름에 따른 '수평적 표상학'과 하늘 성소와 땅의 성소처럼 공간적 구조를 다루는 '수직적 표상학'이 존재합니다. 셋째, 표상학은 구약과 신약을 유기적으로 연결하고 주석해 주는 성경 해석의 가장 핵심적이고 중요한 방법론입니다. 성경 해석에서 표상을 빼버리면 해석이 대단히 허해지고 구속사의 가장 귀중한 뼈대가 통째로 빠지게 됩니다. 성경에 비록 '표상'이라는 단어 자체는 단 한 번 언급되었지만, 그것이 함축하고 있는 신학적 지평은 구약 성경 전체를 웅장하게 아우르고 있습니다.
이상과 같이 오늘 일흔여섯 번째 시간으로 표상이란 무엇인가 함께 살펴보았습니다. 성도 여러분께서 앞으로 성경을 읽으실 때, "아, 구약의 이 인물과 사건과 제도가 바로 예수 그리스도를 가르치는 아름다운 표상이구나!"라고 깨닫고 이해하며 지나가신다면, 성경을 읽는 고비 고비가 엄청나게 흥미롭고 은혜롭게 다가올 것입니다. 여러분 모두에게 그러한 영적 개안의 기쁨이 있기를 간절히 소망하면서 강의를 마치겠습니다. 다음 시간까지 안녕히 계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