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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와 이슬람에 대한 연구
I. 서론
1. 연구 동기와 목적
“‘종교란 무엇인가’ 다시 말해서 ‘종교는 무엇 때문에 우리에게 있는가 ’ 그리고 ‘우리에게 왜 필요한가’ 누구나 한번쯤은 물어본다. 그러나 그 물음 자체가 이미 문제를 안고 있다. 말하자면 그렇게 묻는 사람은 종교를 필요로 하고 있지 않다. 그러한 사람에게는 아직 종교의 필요성이 나타나지 않으며, 자신은 종교가 절실히 요구되지 않는다는 심정을 그 물음을 통해 고백하고 잇는 것이다. 그러나 다른 한편 바로 그런 사람이야말로 종교가 필요하다는 의미가 종교에는 있다. 그러한 사람들이 있기 때문에 또한 종교의 필요성이 강하게 요구된다. 요컨데 ‘그 사람은 종교를 필요로 하지 않는다. 그렇기 때문에 그 사람은 종교를 필요로 한다’ 는 모순된 관계가 종교와 인간의 관계이다.”
이러한 종교와 인간의 관계에 있어서 종교적 사고를 볼 때 중심적인 주제는 신론, 우주론, 인간론이다. 신과 세계 그리고 신과 인간사이의 관계들은 매우 중요하다. 이러한 기본적 이해들은 신화, 교의, 교리, 성문서, 신앙고백, 신조들 속에 공식화된다. 특히 신론에 대한 부분은 그 종교의 핵심이자 중심이다. 세계 각국에는 이러한 신에 대한 신화가 종교, 민족, 문화에 따라 다양하다. 고대 로마 사람들의 미지의 신성인 ‘누멘’, 핀란드에서는 ‘유말라’, 그리스 신 ‘제우스’, 노르웨이 신화에 나오는 ‘오딘’ 등의 신화에 나오는 신들의 이름의 한 예들이다.
이러한 신화들 속에 등장하는 신들은 단일신이거나 다신으로써 존재한다. 단일신교이든지 다신교이든지 신들의 대한 개념과 정의에 대한 분석이 이루어지고 그것에 대한 연구는 지금 시대에도 더욱 활발히 전개되고 있다. 다원주의 시대를 맞이하고 있는 현 시점에 여러 종교와 사회의 다변화는 종교간의 접촉이 다양해지고 더욱 많아지게 되었다. 그 중에서도 세계 3대 종교에 속하는 기독교와 이슬람교는 이러한 접촉 현상이 이제 비단 한 지역의 일만으로 되지는 않고 범세계적인 상황으로 되었다. 약 10억으로 추정되는 기독교의 인구와 16억으로 추정되는 이슬람교의 인구는 가히 이런 상황을 짐작케 한다. 특히 두 종교가 유일신이라는 같은 특성과 근원지의 지리적 위치의 동일성과 성경과 꾸란의 유사성과 상이성에 대한 해석과 의미의 수용은 여러가지 충돌의 요인이 되고 있다. 그중에서도 기독교의 성부․성자․성령 하나님의 삼위일체 신관과 이슬람교의 유일신관 -Tauhid- 에서 큰 차이를 보이고 있다. 논란의 소지로 지금까지도 계속되는 신의 대한 용어를 보면 개역 성경에서는 ‘하나님’과 ‘여호와’로 칭하고 있으며, 아랍어 꾸란에서는 ‘알라’라 칭하고 있고 한국어판 꾸란에서는 ‘하나님’이라 표기하고 있다. 두 종교가 ‘하나님’용어를 같이 사용하는 것(영어판 역시 God 으로 같이 사용)으로 인해 ‘하나님’과 ‘알라’를 같은 신으로 볼 것인가 아니면 다르게 볼 것인가 하는 문제가 남아 있다. 또한 하나님의 개념에 대한 성경과 꾸란의 내용의 유사한 부분과 상이한 부분으로 인해 기독교와 이슬람교 상호 간의 논쟁의 여지가 끊임이 없다. 특히 지금까지 우리나라에서 기독교의 ‘하나님’에 대한 인식이 전반적인 현실과 타종교에 대한 기독교의 배타적인 성경관으로 기독교내의 이슬람교에 대한 지식이 부족한 것은 부정할 수 없다. 그러나 근래에 이르러 국내 기독교의 선교적 차원에서 타종교에 대한 관심의 점차적인 부상으로 선교적 차원에서 이슬람교에 대한 이해와 지식의 추구가 일어나고 있다. 그러므로 먼저 이제까지 일반적으로 회교(회회교) 또는 모하멧교라 불려진 잘못 전해진 이름부터 이슬람교라 정립된 후 연구 되어져야 한다. 국내의 이슬람교의 세(勢)는 아직은 미약한 단계지만 세계적인 추세에서 본다면 무시할 수 없는 수(數)를 포함하기에 더욱 기독교의 무슬림에 대한 선교적인 관심이 요구된다.
본 논문에서는 이러한 추세로 인해 기독교와 이슬람교의 신관에 대한 용어 사용과 개념을 다루고자 한다. 또한 이러한 연구와 분석을 토대로 유일신 신관에대한 이해와 요점을 다각적인 경로로 분석하여 양 종교의 신관에 대한 것을 고찰하고자 한다.
2, 연구 방법과 범위
“종교를 비교하고 연구에 대한 객관성을 유지하기 위해서 몇 가지의 엄격한 요구 조건이 있는데 그 조건이란 종교 단체에 대해 관대한 마음을 품는 것, 얻는 자료를 정직하게 분석하는것, 신중한 관찰, 그리고 관련된 언어나 몇 가지의 언어들을 아는 것 등이다.”
그동안 기독교와 이슬람교 사상 사이에 있어서 상호간의 논란과 논쟁들이 끊이지 않았던 것은 두 종교의 인구가 세계 인구의 거의 절반이 되어 미치는 영향도 있겠지만 특히 유일신관에 대한 유사성과 성경과 꾸란의 경전 해석의 문제가 크다. 특히 신관에 있어서 제기되는 기독교의 삼위일체와 이슬람교의 유일신관은 그 연구에 있어서 앞으로도 계속적인 논란의 요소가 된다.
본 논문에서는 먼저 신의 용어를 고찰하고 신의 개념을 설명하고 대조하는 방식으로 연구하고자 한다. 그렇지만 양 종교의 신관의 관점 차이가 있기에 기독교적인 관점을 가지고 비교 연구하였으며 자료의 사용에 있어서는 정확한 기술과 설명으로 객관성을 유지하고자 하였다.
II장에서는 먼저 신에 대한 일반적인 정의를 내린 후 기독교와 이슬람교의 신의 정의를 내리고자 한다.
III장에서는 일반적인 관점의 “하나님” 용어의 사용과 그 사용 배경 그리고 어원적 배경을 살피면서 기독교에서 바라보는 관점과 이슬람교에서 바라보는 관점
을 다루고자 한다.
IV장에서는 기독교에서 말하는 삼위일체의 하나님의 개념과 이슬람교에서 말하는 유일신(타우히드) 개념을 밝히고자 한다. 개념을 다루는 부분에서 신의 사역을 제외한 신의 속성과 본질만을 다루고자 한다.
V장에서는 기독교와 이슬람교의 신의 개념을 양시각에서 바라보는 차이, 특히 이슬람교에서 하나님으로 인정하고 있지 않는 예수와 성령에 대해 비교하고자 한다.
이상과 같은 내용을 통해 기독교와 이슬람교의 하나님에대한 비교 연구를 시작하였으나 자료의 국외문헌과 국내문헌에 있어서 신관에 대한 상호 종교간의 객관적인 비교 연구가 부족한 현실에서 기독교 자료들은 국내의 신학자료들을 토대로 하였고 이슬람교 자료들은 국내의 자료와 국외의 자료를 토대로 비교 연구 하였음을 밝혀둔다.
두 종교의 신관에 대한 부분은 명칭에 있어서도 앞으로 많은 논란과 연구가 되어질 부분이고 개념의 차이에 있어서도 상호간의 비교 연구는 더욱 연구 되어져야 할 부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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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I. 신의 정의
1. 일반적 관점
플라톤(Platon B.C 427-347)은 “하나님은 영원한 정신이며, 자연에 있어서 선의 원인이다.”라고 했다. 또한 아리스토텔레스(Aristoteles B.C 384-322)는 “하나님은 만물의 근원이다”라고 했으며 스피노자(Spinoza)는 “신은 절대적인 우주의 실체, 모든 존재의 진정한 원인, 모든 존재의 그 자체로써 모든 특수한 구체적 존재는 그 자체의 변형에 불과하다”라고 했다. 라이브니쯔(Leibnitz)는 말하기를 “사물의 최종적 원인이 하나님”이라 하였으며, 칸트(Kant)는 말하기를 “자기 이해력과 의지를 지닌 자연의 원인이 되는 존재자, 모든 권리는 가졌으나 의무는 없는 존재자, 세상의 창시자”라고 하였다. 피히테(Fichte)는 “하나님은 우주도덕적 질서로서 실제로 생활속에 움직이는 질서”라 하였고, 헤겔(Hegel)은 “하나님은 절대 정신이다.”라고 하였으며, 스트라우스(Strauss)는 하나님과 우주를 동일시 하였으며 꽁트(Comte)와 휴메니티(Humanity) 역시 동일한 개념을 갖었으며, 메튜 아놀드(Mattheq Arnold)는 “하나님은 의를 향한 경향성이라”하였다. 지질학자 마터(K. F. Mather)는 “하나님은 우주속에 내재한 신령한 능력으로서 우주 창조에 관여했다”고 하였으며, 코핀(H. S. Coffin)은 “나에게 있어서 하나님은 우주 배후 그리고 우주안에 있는 창조적 위력으로서 자기 자신을 힘, 생명, 질서, 미, 사상, 양심, 사랑이라”하였다. 시카고 교수인 에임스(Edward S. Ames)는 “실재에 대한 인격화이시고 이상화에 대한 전반의 개념이라”하였고, 위만(Henry 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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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ieman)은 “어떤 전통주의적인 전통도 접근할 수 없는 분이라”하였다. 신에 대한 각도를 다양하게 정의하는 것은 그만큼 인간에게 있어서 신이 차지하는 비중이 크다는 것을 의미한다.
2. 기독교적 관점
웨스트민스트 요리문답에는 다음과 같이 정의하고 있다.
“하나님은 신이신데 그의 존재하심과 지혜의 권능과 거룩하심과 공의와 인자하심과 진실하심이 무한 무궁하시며, 불변하시다.”라고 밝히고 있고, 성결교회의 고백을 보면 “하나님은 우주에 유일무이하시니 유형무형의 만물을 한결같이 창조하시고 통치하시며, 섭리하시며, 보호하신다. 진실하시고 영생하시어 권능과 지혜와 인자하심이 한이 없으시다. 이 하나님의 일체안에 동일한 본질과 권능과 영생으로 되신 삼위(The Three Persons)가 있으시니 곧 성부와 성자와 성신이시다.”라고 정의하고 있다. 감리교회의 견해는 “오직 유일하시고 살아계시고 참되신 하나님이 계시는데 그는 육체, 지체, 정감이 없으시며, 무한한 힘과 지혜와 양선을 가지신 분으로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의 창조자, 보존자이시다. 이 하나님의 유일성 중에 본질, 힘, 영원성에 있어 동일한 3위 위격이 계시는 데 이는 곧 성부와 성자와 성신이시다.”라고 하였다. 기독교에서는 바로 하나님만이 유일신이며 또한 삼위일체 하나님이라는 개념으로 분명하게 내리고 있고 인간과 온 우주의 창조자이자 지배자 임을 나타낸다.
3. 이슬람교 관점
함무다 압달라티의「이슬람의 실상」에서는 다음과 같이 정의하고 있다.
“세계를 창조하고 유지시키는 분, 인간을 창조하고 부양하시는 분, 자연속에서 작용하는 효율적인 힘, 이 모두가 하나로서 동일한 바, 알라 혹은 하나님으로 알려져 있는 분이 바로 이에 해당한다. 이분이야 말로 신비중의 신비이며, 만유중
에서 가장 지고한 분이다. 전세계의 최고주인이요, 만물의 창조자이신 분은 알라하나님이다. 그토록 위대하고 다른 존재들과 구별되는 분이시기에, 사람은 다만 성찰과 명상을 통해서만 그분을 알 수 있다. 그분은 무소부재하시며 그분의 큰힘은 세계 어디에서나 작용하고 있다. 세계의 만물이 그분의 존재를 증명하는 이상, 인간은 그분의 존재를 믿어야 한다. 하나님, 곧 그분의 위대한 힘을 믿어야만 인류는 생명의 그 많은 신비를 가장 만족스럽게 설명할 수 있게 된다. 이것이 올바른 지식과 종교적 통찰력을 얻는 가장 안전한 방법이며, 실행과 건전한 윤리에 이르는 정로(正路)요, 행복과 번영으로 이끄는 가장 확실한 지침이다.”라고 밝히고 있다.
이슬람에서는 바로 유일신은 하나님(알라)뿐이며 오직 그분외에는 어떤 신도 존재치 않는다는 유일성을 나타내며 그분만이 참 신이라는 것을 말하고 있다. 기독교와 이슬람교는 각각의 삼위일체 하나님과 유일신 알라를 신으로 정의하고 표현한 반면, 일반적인 정의에서는 다양한 개념으로서 나타내는 것을 보게된다.
III. ‘하나님’ 용어
1. 일반적 관점
(1) 하나님 용어의 사용과 그 배경
하나님 또는 하느님의 개념은 <하늘-임>의 준말로서 제천신의 주 라는 뜻을 나타내는 것으로 보편적으로 나타낸 어감의 표시이며, 고려 500년 불교사에 무속적 하늘임 신앙이 정착되어 자연스럽게 내려오고 있다고 한다. 이희승의 국어 대사전에 보면 <하나님>과 <하느님>을 다 표준말로 기재하고 있는데, <하느님>은 범신론적인 신으로, <하나님>은 기독교에서 신봉하는 유일신으로 설명하고 있다.
한편 다른 곳에서는 <하나님> 용어에 대한 소송건에 대한 문제를 제기한 경우가 있었는데 그 소송에 대한 판결의 요지는 <하나님> 용어는 우리 민족이 옛부터 일반적으로 사용해 온 말로써 특정 종교만이 사용하는 말이 아니라는 판결이 나왔다.
이상에서 보면 일반적 관점에서는 <하나님> 이란 용어가 <하느님>과 같이 쓰이며 특정 단체가 취하는 고유명사가 아니라 일반적인 신의 개념의 대용어로 쓰이며 그 배경에는 <하늘> 이라는 자연 만상의 이치를 나타낸다는 것이다.
(2) 어원적 배경
일반적 관점에서 하나님, 하느님 용어의 어원적인 배경을 고찰하고자 한다.
먼저 <하느님> 또는 <하나님> 이라고 하는 용어는 ‘天’ 에 대한 우리말인 ‘하’ 의 뒤에 존칭을 나타내는 ‘-님’ 자가 붙어 ‘하님’ 으로 호칭 되다가 세월의 변천에 따라 하느님 또는 하나님으로 변한 것이라고 재단법인 한글학회 이사장은 밝히고 있다. <하느님>은 <하늘>이란 말에 <님>이란 존칭어 조사를 붙인 것으로 <하늘>에 대하여 양주동박사는 그의 ‘古歌硏究’ 에서 그 어원을 밝혀 말하기를 하의 원어는 한(대광명,대국원)이며 이는 ㅂ> >ㅇ형 음전으로서 한>한>한>하 로되며 따라서 하느님은 <하늘>과 <님>의 합성어 인것을 암시한다고 한다.
반면 백세명 씨는 <한 님>(One + 님) 신앙이 고대부터 있었던 힌민족 고유의 유일신 신앙이라고 주장하면서 <하늘>, <하느님>, <하나님>도 다 <한>(One)에서 유래한다고 밝히고 있다.
이에 대한 반박으로 나채운 박사는 여기의 <한>은 <하나>(One)가 아니고 바르다(正)는 뜻(한글, 한가운데, 한 여름, 한 밤 등과 같이)과 크다(大)는 뜻이고 <한>과 관련된 우랄알타이어족의 말 <간>, <칸>, <찬>, <한> 등의 접미사도 <크다>는 뜻이다 라고 밝히고 또한 예컨대 신라 법흥왕 때의 관명 각간(角干), 이벌찬(伊伐湌), 서불한(舒弗邯) 이라든지 터어키, 헝가리어의 Khan, chan, hahn
등이나 징기스칸의 <칸>도 그러한 것이다라고 밝히고 있다. 더불어 밝히기를 백세명씨가 <한>의 원리를 단지 사상적으로만 이해하지 않고 종교적 신앙 대상으로 받들면서 <님>이란 존칭접미사를 붙인 것은 논리상(‘하나’의 비실재성, 추상성)으로나, 문법상(수사+‘님’의 불합리성)으로나 모순이라는 것이다. 이외에도 윤성범 박사는 <하나님>을 <하날, 天>과 <님>의 합성어로 보는 입장에서 인격적 실재가 아닌 <하날, Heaven>에 존칭접미사 <님>을 붙이는 것은 부당하다고 밝히고 있다.
이상에서 보면 하나님, 하느님은 어원적으로 일반론적 관점에서 볼때 ‘하늘’이란 말에서 나온 말로서 존칭어 조사 ‘님’이 붙어 나온 말로 알 수 있다. 하지만 비인격실체에 존칭접미사를 붙이는 것이 부당하다는 것을 참조한다면 하나님, 하느님은 어원적인 배경에서는 말이 맞지 않는다. 그러나 ‘하늘에 계신 곧 범신론적인 신’(하느님) 이라는 개념과 ‘유일한 신’(하나님)이라는 개념이 문법적으로 오류성은 있지만 개념에 있어서 이해와 설명이 타당하다 여긴다.
2. 기독교적 관점
(1) 하나님 용어의 사용과 그 배경
‘하나님’ 이 말은 우리말 개역성경에서 고유하게 사용되어지고 있는데 기독교에서 전용되는 신에 대한 지칭이다. 그러면 기독교에서는 어떻게 처음부터 성경에서 ‘하나님’ 이란 말을 쓸 필요가 있었던가?
먼저 ‘하나님’ 이란 말은 기독교계에서는 <하나> + <님>으로 이해되어졌다. ‘하나’의 개념을 개입시킨 이유는 성경에서 말하는 ‘이스라엘 여호와’ 에 대한 유
일신관에 기인하고 있다. 또한 ‘하나’란 말이 ‘하느님’의 ‘하느’와 음운적으로 유사하기에 같은 개념을 전혀 다른 언어로 나타내야 하는 어려움 없이 유사한 신의 관념을 쉽게 나타낼 수 있다. 또한 ‘하느님’이 ‘하늘’이란 말에서 기원하여 하늘과 연산 작용을 일으키는 것과 같이 성경에서의 ‘하나님’도 하늘에 계신다고 믿으므로 역시 하늘에대한 연산 작용을 일으키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나라에서 처음으로 성경을 번역할 무렵에는 토속신앙이나 기존종교에서 사용하는 용어를 쓰느냐 마느냐 하는 문제가 지금 보다 훨씬 심각했다. 우리나라 카톨릭에서는 중국 카톨릭의 전통을 따라 ‘하나님’의 칭호를 ‘천주’(天主)라 번역하였고 개신교 쪽에서는 ‘하느님/하님’(로스) , ‘신’(神)(이수정) , ‘상제’(上帝)(언더우드)를 함께 쓰다가 결국 ‘하나님’으로 통일하게 되었다. 개신교쪽에서 일치를 볼 수 없었던 것은 성경이 말하는 ‘하나님’ 을 가장 정확하게 나타내는 우리말 대응 낱말에 대한 일치된 견해가 없었기 때문이다. 게일처럼 ‘하님’을 쓰자는 쪽에서는 이미 한국인들이 오래전 부터 ‘하님’을 믿어왔고 써왔기 때문에 여기에 성경이 말하는 하나님의 속성을 결합시켜서 사용하면 된다는 것이었고, 반면 언더우드처럼 ‘하님’ 쓰기를 반대하는 이들은 ‘하님’이 성경에서 말하는 하나님과는 내용이 다른 한국 토착종교의 종교 혼합주의적인 전통신명이므로 기독교의 신의 칭호로 사용할 수 없다는 것이었다. 이수정씨 처럼 ‘신’(神)을 쓴 이들은 이미 미국 성서 공회가 중국어 성경과 일본어 성경에서 하나님을 ‘신’으로 쓰고 있었기 때문에 그것을 그대로 받아들여 썼다. 그러나 ‘신’을 쓰기를 반대하는 이들은 우리나라 언중에게 ‘신’이 ‘귀신’으로 알려져 있어서 이수정 번역의 「마가 복음셔 언」에 나오는 ‘神의子 耶蘇基督’ 이 ‘귀신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로 오해되는 문제점을 들기도 한다. 이러한 문제들을 피하기 위해 중국어 성경에서 쓰는 ‘상제’나 ‘천주’를 써보자는 의견도 있었으나 ‘천주’는 천주교 용어니까 개신교와 차별성을 두기위해 ‘상제’를 쓰자는 의견도 있었다. 그러나 ‘상제’가 유교적인 용어일 뿐만 아니라 한국인들이 오랫동안 써온 기존 용어인 ‘하님’ 에 비해 더 효과적일 것도 없다는 생각에서 반대한 이도 있었다.
아펜젤러, 언더우드 역 「마가의 젼 복음셔 언」(1887년) 에서 보면 신(God) 칭호는 ‘상뎨’(上帝)로 되어 있고, 1925년 역 신구약 전서에서는 ‘God’은 ‘하님’으로 표기되어 있다. 1990년 2, 3 월호 기독교 사상지에 발표된 곽노순씨의 조사한 바로는 1882년부터 1936년까지 한국교회가 쓴 신의 칭호는 ‘하나님’, ‘하느님’, ‘상뎨’, ‘하님’ 등인데 결국 ‘하님’으로 낙착되었다고 한다. 그 ‘하님’이 1933년의 철자법 개정으로 ‘․’ 표기가 폐지되자 ‘하님’이 서북 지방에서는 ‘하나님’으로, 중부 이남 지방에서는 ‘하느님’으로 표기 발음되었다 한다.
새로운 용어에 대한 시도로 언더우드는 ‘여호와’, ‘진신’(眞神), ‘상주’(上主)등을 대안으로 내놓고 시험삼아 써보았으나 별로 환영을 받지 못했다. 비록 ‘하님’이 한국의 토착 종교에서 사용되던 기존 신의 칭호이어서 이것을 성경의 하나님에 사용할 경우 다른 신들이 연관되는 것을 배제할 수 없다는 반론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다수 선교사들과 한국의 일반 언중 사이에서는 일단 ‘하님’을 쓰고 그것을 성경적 의미의 하나님으로 바꾸어 기독교의 신의 칭호로 삼자는 것이 지배적인 의견이 되었다. 그로부터 한 세기가 지난 오늘날, 우리나라 기독교에서는 이제 아무도 ‘하나님’ 이 우리의 구세주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 성경이 말하는 유일하신 하나님을 가리키기에 적합한 용어인지 아닌지를 문제 삼지 않
고 있고 이제 ‘하나님’은 기독교 용어로 자리를 확고하게 굳혔다.
그렇지만 하나님을 <하나> + <님>으로 이해하는 것은 문법적으로 보때 타당하지 않다고 한다. ‘하나’란 수사에 ‘님’이란 존칭접미사를 붙일 수 가 없기에 <하나+님>을 표기하려면 한(관형사) + 님(명사) = ‘한님’ 이 되어야 한다고 한다. 문법적으로는 ‘하느님’이 맞지만 개신교의 개념에 맞지 않고 ‘하나님’은 문법적으로 잘못됬지만 의미상에 있어서 유일신관을 잘 드러내는 가장 좋은 말이라고 밝히고 있다. 한국의 기독교에서는 성경에서부터 시작해서 ‘하느님’이란 재래의 어휘 대신에 ‘하나님’이란 새로운 독특한 어휘를 쓰고 있으며 또 이말을 쓰고 있는 기독교인들은 이 ‘하나님’이란 말이 적어도 이스라엘의 유일신 ‘여호와’를 가리키는 말로는 세계 어느 나라 말 보다도 적합하고 훌륭한 말이라고 자부하고 있다. 이희승 박사는 ‘하느님’과 ‘하나님’을 구별하여 ‘하나님’에 대해서 ‘기독교에서 신봉하는 유일신 ‥‥ 삼위일체의 제 1위임 ; 천주, 성부, 신, 여호와‥‥’라고 분명히 밝히고 있다.
이상에서 보면 ‘하나님’ 이란 용어가 한국 전래의 토착 신앙 종교의 신의 용어로 쓰이다가 기독교의 신의 용어 번역에 있어서 이 말을 수용하고 또한 이 말에 기독교의 유일신관을 담게한 후 기독교의 신에 대한 전용어로써 정착되어졌다. 그동안 성경 번역 과정에서 ‘하님’, ‘하느님’, ‘하나님’, ‘상뎨’ 등으로 표기되고 쓰여졌으나 <하나>+<님>이란 기독교적인 신앙관의 이해에 대한 사상을 기존 신앙종교의 토착언어인 ‘하나님’에다 삽입한 후 전반적인 수용과 사용으로 현재에는 기독교의 신의 호칭으로 자리를 굳히게 되었다.
(2) 어원적 배경
개역 성경은 번역 성경으로서 원어로 된 성경, 곧 구약은 히브리어 사본, 신약은 헬라어 사본 을 토대로 개역 성경에서 사용하는 ‘하나님’ 이란 용어의 그 어원을 살피고자 한다.
개역 성경에서 ‘하나님’이 나오는 첫번째는 창세기 1장 1절이다. ‘태초에 하나
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
개역성경에서 ‘하나님’이라 번역한 히브리 구약 사본에 보면 ‘엘로힘’으로 기록되어 있다. ‘엘로힘’은 히브리 구약 사본 성경에서 일반적인 ‘하나님’의 명칭으로 개역 성경에서 가장 자주 사용되고 있다. 이 말은 문법적으로 ‘엘’ 의 복수형으로 [내재적] 삼위일체의 하나님에 대한 암시적인 표현으로 ‘강하시고 능력이 있는 경외의 대상’을 뜻한다. 즉 ‘강도를 부여해주는 뜻의 복수’ 로 하나님은 능력과 영광이 많으신 분으로 그를 경외한 자들에게 이 능력들을 부여해 주시는 위엄이 있는 분이시다. ‘엘로힘’이란 명칭은 궁극적으로 하나님의 주권을 의미함
을 가르친 하나님의 독자적 명칭이다.
또 다른 이름으로 ‘여호와’(야훼) 라는 호칭이 있는데 그 뜻은 ‘나는 스스로 있는자이다’(출애굽기 3장 13절-15절) 이다. 이스라엘에게 계시한 하나님의 이름으로서 인격적 화해와 계약을 의미하는 것이다. 이 이름은 이스라엘에게 준 새로운 하나님에 대한 칭호이다. 다시 말하면 계약의 백성에게 주신 특별한 이름이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선택하사 자기의 백성으로 삼으시고 그들의 하나님이 되시겠다는 상호 계약적 요소가 있는 명칭이다.
이 명칭에 대해 보면 고대 경건한 유대인들은 하나님의 고유한 이름을 발음함으로써 그의 이름을 더럽히지 않으려고 대신 ‘아도나이’(나의 주)로 불렀다 한다. 우리나라에서도 대한 성서 공회가 1993년 1월에 ‘성경전서 표준 새번역’을 펴냈는데 여기에서 ‘여호와’(야훼)(YHWH)를 ‘주’로 번역하였다. 여기에는 기원전 3세기부터 번역되기 시작한 그리스어 70인역 에서도 ‘주’(퀴리오스)라고 했고, 제롬의 라틴어 불가타역 에서도 ‘주’(도미누스)라고 했으며 루터의 독일어역 도 ‘주’(헤르)라고 했고, 대다수의 영어성경에서도 ‘주’라고 번역해온 역사가 있다.
원래 이스라엘의 유일신을 가리키는 히브리어 ‘여호와’(야훼)나 ‘엘로힘’ 자체에는 ‘하나’(One)라는 개념은 없다. ‘여호와’(야훼)란 말은 궁극적으로 근원적으로 신의 존재 형식을 가리킨 말이고, ‘엘로힘’이란 말은 ‘신의 경외’ 를 나타내는 말이다.
헬라어 사본 신약에서는 ‘하나님’ 이라고 번역한 단어는 ‘데오스’이다. 구약성경의 ‘엘로힘’과 같은 의미로 쓰이며 구약에서 민족적 개념으로서 하나님을 사용했다면 반면 신약에서는 개인적 개념으로서의 하나님으로 사용되어진다. 그 예를 보면 ‘나의 하나님’, ‘너의 하나님’, ‘우리 하나님’, ‘너희들의 하나님’과 같은 소유격으로 사용된 것을 발견할 수 있다. 물론 ‘데오스’ 이 단어에도 ‘하나’(One)라는 개념은 없다. ‘신’의 의미로 사용되는 단어로서 우리말로 ‘하나님’이라고 번역을 하였을 뿐이다.
이상에서 나타난 바를 살펴보면 우리말로 ‘하나님’ 이라 번역한 구약 히브리어의 ‘엘로힘’과 신약의 ‘데오스’에는 신의 용어로 사용되었는데 그 안에는 ‘하나(One)라는 개념이 없다는 것이다. ‘여호와’(야훼)라는 말은 이스라엘 신의 고유명사로 사용되었음을 볼 수 있는데 역시 이곳에도 ‘하나’라는 개념은 없다.
3. 이슬람교 관점
(1) ‘알라’의 등장 배경
6세기경 아라비아 반도 메카에는 다신 숭배가 널리 퍼져 있었는데 아랍인들은 수많은 신들 중에서 각각 자기의 부족신을 두고 있었고 그 가운데 ‘알 라트’, ‘알 웃자’, ‘마나트’ 라는 이 세 여신을 섬기도 있었다. ‘알 라트’는 따이프의 어머니 신이었고, ‘알 웃자’는 가드판의 신인데 새벽별을 상징하였고, ‘마나트’는 운명의 신으로 가자의 신이었으며 이들은 최고의 신으로 숭배되고 있었던 ‘알라’의 딸들이다. 또한 메카에는 운석 하나가 ‘카으바’라는 신전 한 귀퉁이에 박혀 있는데 ‘카으바’안에는 많은 수의 우상이 있는데 우두머리 신으로 ‘후발’이라는 남신의 우상이 있다.
아라비아 반도내의 다신 우상숭배가 만연한 가운데에도 일부 사람들은 유일신이 있을 것이라는 것을 믿고 새로운 종교가 아라비아 반도 북부에서 발생하리라는 것을 확신하고 있었다. 남부 왕조의 몰락과 함께 격렬한 사건들이 연속되면서 북부에서 새로운 종교가 나타나 남부지방의 힘의 공백을 메꾸어 줄 것이라는 예견을 한 것이다.
이슬람 이전에는 아랍인들이 ‘알라’로 불리는 하나의 신을 숭배하였다. 메카인들은 ‘알라’를 창조주이자 최고의 주재자로 받아들인 반면, 일상적인 생활에서는
다른 하위의 신들을 섬겼다.
아라비아 윤리적 체계에 있어서는 ‘부족인본주의’라는 가치관이 삶의 길이었기에 본질적인 삶의 원천을 하나님께 향한다기 보다는 부족의 전통과 경험에다 근거를 두었다. 그렇지만 ‘알라’라고 하는 신은 메카 사람들이 단일신으로 섬긴신은 아니지만 어느 신보다도 가장 인상적인 신이었다. 창조자이며 만물을 지배하고, 인간의 운명을 좌우하는 그 신은 종교적인 느낌과 순수한 신앙, 믿을 만한 근거가 있는 신으로서 영향력이 컸다.
종종 일반적으로 ‘알라’이름이 쓰인 경우가 있는데 그것은 ‘알라’의 이름이 다른 신의 대용으로 사용되면서 시(poetry)에 있어서 이슬람 다음 세기까지 사용되었다. 확실한 것은 이슬람 이전 시기에는 알라가 ‘하나님(God)의 이름’으로 자주쓰였다는 것이다.
이러한 상황속에서 선지자 무함마드가 천사 가브리엘을 통해서 알라의 계시를 받기 시작하면서부터 또한 그가 철야기도를 하고 점점 빈도가 잦아짐에 따라 알라의 존재는 무함마드에게 명백해졌고 갈망을 주었다. 두려움과 놀라움, 생명으로서, 죽음으로서, 온 우주를 지음으로서, 실재하는 알라 하나님은 그 어느 신과도 비교할 수 없이 위대하다는 것을 그는 확신하게 되었다. 그럼으로써 가장 위대한 고백이 나오게 되었는데 ‘La illaha illa Allah’ 즉 ‘알라 외에는 어떤 신도 존재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무함마드의 이슬람선포 이후 ‘알라’는 이슬람 이전에는 신들의 최고의 신으로 여겨졌으나 이슬람 이후에는 유일하신 하나님 즉 절대신으로서 전지전능하시
고 또 절대 공정하신 신으로 경배되었다.
(2)어원적 배경
‘알라’(Allah)라는 어원에 대해서는 이것이 단지 알라하(Alaha) 차용어라는 설과 일반적인 신들을 의미하는 일라흐(Ilah)에 정관사 알(Al) 이 붙어 유일신 (The God)을 의미한다는 설이 있는데 현재로서는 후자의 설을 취하는 자가 많다.
리쳐드 벨이라는 학자는 ‘알라’는 차용된 것이 아니라고 주장하면서 기독교인의 신의 개념과 형태가 있는 시리아 말인 Alaha가 아마도 아랍어 개념에 영향을 미쳤으며 또한 아랍인들의 최고의 신의 용어 형태에 어떤 영향을 미쳤다고 밝히고 있다.
어떤 학자들은 신의 고유명사로서 인간이 만들 수 없고 다룰 수 없는 것이라고 하며 또 하나는 영어의 The 에 해당하는 아랍어 ’al 과 영어의 god에 해당하는 아랍어 ’lah가 합쳐서 이루어진 단어라고 하기도 한다. 두가지 견해중에서 우선 ‘알라’가 신의 고유명사라고 한다면 ‘알라’ 라는 낱말에는 아무런 뜻이 없다. 그러므로 신(god)이란 단어와는 아무런 상관이 없다. 두번째 일라흐가 알라(’al-lah)가 되었다는 것을 보면 일라흐에서 ’al 다음에 ’i가 탈락되어 알라(’al-lah)가 되었다고 말한다. 그러므로 The god 이 된다고 말하는 학자가 있다. 바다위라는 학자는 ‘알라’는 ’aliha(당혹하다. 혼란스럽다. 난처하다)에서 파생했는데, 이는 사람이 마음속에 조물주(무한한 자)라는 개념을 형성하려고 하면 혼란스럽게 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3) ‘알라’의 번역
전통적인 기독교인의 관점에서 꾸란과 무슬림들이 일반적으로 ‘알라’를 말할 때 ‘God’(하나님)을 말하는 것이라고 여긴다. Thomas Carlyle은 1840년에 무함마드에 관한 강의에서 가끔씩 ‘알라’를 사용하곤 했는데 그는 평소에 무함마드의 말과 사상을 주장하면서 ‘하나님’을 말할때는 ‘알라’가 ‘하나님’과 다른 것을 의미하지는 않다고 했다. 몽고메리 와트 역시 그의 저서에서 밝히기를 유대교와 기독교와 이슬람교간에 하나님의 개념의 차이는 있으나 그들이 섬기는 신은 같은 분이라는 점이라는 것이다. 그 예로 이집트와 레바논에는 수 백만의 아랍어를 사용하는 기독교인들이 있다는 것과 그들 역시 ‘알라’를 사용하고 있으며 ‘알라’를 God외에 다른 말로 대처할 말이 없다는 것이다. 이러한 예를 참조할 것은 어원적인 면으로 봤을 때 같은 단어로 각각의 신을 같이 나타난 경우가 성경에도 있다.
에드워드 영은 이와 같은 비슷한 예를 들면서 말하기를 창세기 14장 18절에 보면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히브리어로 ‘엘 엘룐’표기)의 제사장 멜기세덱을 볼 수 있다. 여기서 ‘엘’(신)이란 말이 우가릿 문헌에도 자주 나오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우가릿의 주재신이 바로 ‘엘’ 이었다. 그러면 구약 신학에서 멜기세덱이 섬겼던 하나님 ‘엘 엘룐’ 을 어떻게 해석해야 하는가? 이것에 대해 어떤이는 옛 가나안의 잔재가 있다고도 하고 멜기세덱의 ‘엘 엘룐’과 고대 가나안의 ‘엘’이 근본적으로 차이가 없다는 주장을 하기도 한다. 그러나 교회에서 승인된 전통적 해석은 멜기세덱은 구약의 약속의 계보와는 별도로 참 신앙을 보존했던 인물로 보고 있다. 멜기세덱이 ‘엘 엘룐’을 섬겼을 때 그는 최고의 하나님을 예배한 것이고 아브람도 그렇게 인정했다. 멜기세덱은 하늘과 땅의 창조주를 섬겼던 것이다. 그런데 멜기세덱은 가나안에 살고 있었기에 이 하나님을 지칭하여 ‘엘’ 이란 단어를 사용했던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가나안 사람들이 같은 용어를 사용했다는 것은 문제될 것이 없다는 것이다.
반면 스웨덴 학자 Tor Andrae는 무함마드 일생의 전기를 1932년 출판했을 때에도 아랍어로 표기할 때 하나님을 항상 ‘알라’라 사용해 왔으나 기독교인과 유대교인의 하나님 개념과는 다르다고 하였다.
한편으론 현재 무슬림들은 영어로 표현할 때 God을 쓰는 대신에 Allah를 사용한다. 이러한 사용은 이슬람교가 기독교와 유대교와는 다른 독특한 종교이고
하나님의 개념에 있어서도 구별된다는 점을 강조하기 위해서이며 확실하게는 그
들이 꾸란의 아랍어에 대한 자부심과 갈망이 나타나 있다는 것이다. 철학적으로 역사적으로 때때로 특별한 형태로 구별된 사용이 나타나는데, 이것은 고대 히브리하나님 개념으로 언급된 ‘Yehweh'와 같은 상황에 대한 부분으로 ‘Allah’ 가
나타나 있다. 이러한 현상은 유대교와 기독교의 하나님 개념이 타락한 특징을 지니고 있다는 추측하에 말하는 방법이고 또한 오직 이슬람에만 참 신의 개념이 발견된다는 것이다.
국내에서 ‘알라’를 번역한 경우를 보면 최영길 교수의「성 꾸란 의미의 한국어 번역」에는 ‘하나님’으로 번역이 되있다. 다른 경우를 보면 김용선 교수의「코란의 이해」에서는 ‘알라’ 그대로 표기 하였다.
IV. 신의 개념
1. 기독교의 하나님
(1) 삼위일체 하나님
기독교에서 말하는 하나님이란 성부, 성자, 성령이 삼위로 영원히 존재하는 데 삼위는 각자 완전한 하나님이시며 또한 한 분 이시다.
기독교 소요리 문답에는 다음과 같은 질문과 답이 있다.
문: 하나님의 신격(Godhead)에 몇 위가 계십니까?
답: 하나님의 신격에는 삼위가 계시는데, 성부와 성자와 성령을 말하며 이 삼위는 한 하나님으로서 본체는 하나이시며 권능과 영광은 동등하십니다.
성경에서 삼위일체 하나님을 표현한 구절이 다음과 같이 나타나있다.
‘예수께서 세례를 받으실 때 하늘이 열리고 하나님의 성령이 비둘기 같이 내려 자기위에 임하심을 보시더니 하늘로서 소리가 있어 말씀하시되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라 하시더라’(개역성경 마태복음 3장 16절-17절). 이 구절에서 성부는 하늘에서 말씀하시고 성자는 세례를 받으시고 하늘로부터 오는 성부의 음성을 들으시고 성령은 사역을 감당할 수 있도록 예수님에게 능력을 주시기 위해 오셨다.
한편 하나님의 유일성을 말하고 있는데 하나님의 유일성은 영존하시며, 그 성품에 있어서 비분리적이고 불가분적인 절대자를 의미하고 언제나 기독교적 유일
신론은 삼위일체론 으로 나타나며 ‘한분의 신’과 ‘삼위이신 하나님’은 항상 동시에 제기된다.
초대 교회사에서 하나님의 개념에 대해 정리를 한 아타나시우스 신경은 다음과 같다.
“우리의 신앙은 이것이다. 우리는 삼위일체 안에서 한분 하나님을 섬기며, 통일된 삼위일체를 섬긴다. 삼위일체의 각 위를 혼란시킴 없이, 그리고 본질을 나눔이 없이, 성부도 한 위격이시고 성자도 한 위격이시고 성령도 한 위격이시다. 성부와 성자와 성령은 모두 한 분이시다. 동일하게 영광스러우시고 함께 영원히 존귀하신다. 성부가 그러하신 것처럼 성자도 그러하시고 성령도 그러하시다. 우리가 삼위일체의 각 위가 하나님이요 주라고 인정하는 만큼 세 분의 하나님, 세 분의 주가 있다는 생각을 금한다.”
또한 초대 교부인 어거스틴(아우구스티누스)은 그의 저서 「삼위일체」에서 다음과 같이 밝히고 있다.
‘성부께서 신성(神性) 전체의 처음이시다. 삼위일체 내부의 상호 관계에서 낳는이를 처음이라고 한다면, 성부는 성자에 대해서 처음이시다. 성부가 성자를 낳으시기 때문이다. 성령은 성부와 성자에게서 나오신다.’ 또한 ‘처음’이란 말을 위격에 관해서만 쓰고, 본질에 관해서는 쓰지 않는다. 본질 자체를 말할 때는 처음이나 근원이 없다. 따라서 낳으심(발생, generation) 과 불어내심(파송, expiration)으로써 ‘처음’이 되셨다고 하는 것은 본질에 관한 것이 아니라 위격과 관계에 관한 것, 즉 삼위일체적인 종속이다. 성경에서 ‘우리가 우리의 형상에 따라 우리의 모양대로 우리가 사람을 만들자’(창세기 1장 26절) 라고 하신 것은 성부와 성자와 성령이라는 한 하나님이 하신 말씀이다. 이것은 단순히 존귀한 분들이 사용하는 일인칭 복수가 아니며, 복수를 단수로 변화시켜서 ‘내가 내 형상을 따라 내 모양대로 사람을 만들겠다’고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만일 성자 없이 성부가 홀로 사람을 만드신 것이라면, ‘우리의 형상을 따라 우리의 모양대로 우리가 사람을 만들자’고 기록되지 않았다고 밝히고 있다.
(2) 성부 하나님
성경의 기록자 중의 한 명인 요한은 성부 하나님의 본질을 두 가지로 보고 있다.
첫째 그는 전능하신 주 하나님이시다. ‘성안에 성전을 내가 보지 못하였으니 이는 주 하나님 곧 전능하신 이와 및 어린 양이 그 성전이심이라’(요한계시록 21장 22절). ‘전능하신’(Almighty)이라고 버역되고 있는 헬라어 ‘판토크라토스’는 ‘막강한, 무적의, 모든 것을 통치하는’ 등의 의미를 지니고 있다. 그리스어 70인역에서는 히브리어 ‘샤다이’ 라는 단어를 번역하는데 바로 이 단어가 사용되었다. 이 ‘샤다이’는 ‘나는 전능한 하나님이라’(창세기 17장 1절)는 의미이며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주신 말씀에서 가장 뚜렷하게 나타난다.
둘째 그는 아버지 하나님이시다. 요한은 아버지 하나님에 대하여 언급하기를 ‘우리의 사귐은 아버지와 그 아들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함이라’(요한 1서 1절 3절), ‘아이들아 내가 너희에게 쓴 것은 너희가 아버지를 알았음이요’(요한 1서 2장 13절), ‘너희 자녀 중에 우리가 아버지께 받은 계명대로 진리에 행하는 자를
내가 보니 심히 기쁘구나’(요한 2서 4장). 요한복음의 서문에 나타난 다음과 같은 표현들도 있다.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 … 본래 하나님을 본 사람이 없으되 아버지 품 속에 있는 독생하신 하나님이 나타내셨느니라’(효한복음 1장 14절-18절). 이들만 살펴보아도 요한의 기록들 가운데는 (하나님)아버지의 관념이 중요하게 자리잡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과연 다음과 같은 요한복음3장 35절의 말씀이 기록자의 말이거나 혹은 그리스도의 말씀인가의 여부를 막론하고 이들은 이 복음서의 주제가 되는 진리 가운데 하나를 분명하게 내세워 보여주고 있다. ‘아버지께서 아들을 사랑하사 만물을 다 그 손에 주셨으니.’ 이는 우리로 하여금 요한이 제시하고 있는 예수님과 아버지 하나님 사이의 관계의 초점을 의식할 수 있도록 만들어준다. 요한의 기록 가운데 나타나고 있는 바, 무려 150 군데나 되는 아버지(하나님)에 대해 언급되고 있다.
(3) 성자 하나님
요한복음에서는 ‘아들’ 혹은 ‘하나님의 아들’ 로 나타내고 있다. 이러한 용어가 채용된 구절들을 주경적으로 연구하면 크게 네가지 개념으로 요약된다.
첫째 아들의 선재성(Pre-existence)을 보여준다. 아들은 위로 부터 나신 분(3
장 13절과 8장 23절)이요, 아버지의 품속에 있던 자로서 나타나신 분(1장 18절)
이요, 아버지의 보내심을 받은 분이다(5장 24절)라고 나타낸다. ‘보낸다’라는 단어가 40회 이상 채용되었고 이와 동질개념으로 예수님은 ‘아버지에게서 왔다’(8장 42절, 16장 28절과 32절)고 주장하였다. 곧 ‘보냄을 받은 자’란 개념은 자신의 선재성을 주장하는 의미임을 보여준다.
둘째 아들의 독특성(Unique Sonship)을 보여준다. 예수님은 독특한 단 한명의 아들임을 요한은 남달리 강조하였다. 요한복음 1장 14절과 18절, 3장 16절, 18절에서 ‘독생자’(monogenes-모노게네스-헬라어 발음)을 언급한다. 이는 ‘독자’(only begotten son)로 번역하면 안된다. ‘모노게네스’를 Jerome의 라틴어 불가타 역본에서는 Unicus(only)를 강조하여 번역하였다. 이는 Jerome(347-420)이 예수님을 피조물이라는 아리안파(Arian)의 요구에 부응하여 ‘모노게네스’를 unigenitus로 즉 독생자(only begotten son)로 번역하였다. 이 라틴어 불가타(Vulgate) 역본의 영향이 영어 흠정역(King James Version)에 미쳤다. 한글 성경은 이에 따라 번역된 것이다. ‘모노게네스’는 ‘모누스’와 ‘게노스’의 합성어로서 ‘모누스’는 질적 독특성을 의미한다. 그리고 ‘게노스’는 ‘겐나오’동사에서 파생한 명사로 출생적 의미를 갖는 ‘낳다’라는 말과 관련된 용어가 아니라 ‘기노마이’즉 ‘…되다’란 용어와 관련된 것으로서 출생적 의미(begotten)가 없다. 그러므로 예수님은 ‘독자’라는 개념보다는 ‘독특한 아들’임을 요한은 강조하고 있다.
셋째 아들의 성부와의 동질성(Oneness)을 보여준다. 요한은 아버지와 아들이 위격(person)에는 구별이 되지만 본질에서 동질임을 자격(子格 - Sonship)으로 강조하였다. 뿐만 아니라 그 사역에 있어서도 아들의 천상 사역과 지상 사역을 연관하여 고려할 때에는 아버지의 뜻에 따른 것으로서 아들의 사역이 열등한 것
이 아니라 아버지와 동질성을 갖는다라고 강조하고 있다(3장 16절, 6장 51절-53절, 10잘 11절과 28절, 12장 27절, 15장 13절, 17잘 19절) . 그러므로 출생적 의미로 하나님의 아들을 이해하는 것은 적합치 않다.
넷째 아들의 메시아적 사역의 의존성을 보여준다. 보냄을 받는 자는 보낸 자의 일을 한다. 그렇다고 보낸 자의 사역보다 보냄을 받은 자의 사역이 열등하다고 생각해서는 안된다. 단지 여기에서 그 사역상의 의존성을 본다. 요한복음에서 예수님은 그리스도이시며 동시에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믿게 하려는 것이 목적이었다(20정 30절과 31절). 메시야 되심과 아들 되심은 불가분리이다. 아들의 메시야 직임이 아버지에 의존적인 것은 아버지에 뜻에 절대적으로 아들이 복종함에서 볼 수 있다. 예수님은 아버지에게 전적으로 의존하는 아들로서 메시야적 사역을 수행한다(5장 19. 20. 26. 30. 43절, 6장 57절, 8장 34. 35절, 10장 17절, 18장 25절).
(4) 성령 하나님
아타나시우스는 그의 주장에서 성령의 완전한 신성을 강조하였다.
첫째로 성령은 피조물과 공통점이 전혀 없으며, 성삼위 안에 있는 신성에 속하며 그 신성과 하나라고 하였다. 성령은 하나님께로 부터 오며 성화와 생명을 베풀며, 불변적이고 무소부재하시고 유일하시다 라고 하였다.
둘째로 성령은 성부와 성자와 더불어서 본질공존체로 계신다.
셋째로 성령은 성자와 밀접한 관계에 있으며 성자가 본질에 있어서 성부에 속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성령도 본질에 있어서 성자에 속한다고 함으로써 성부의 창조사역에 성자와 더불어서 참여하였다고 하였다. 그래서 아타나시우스는 “거룩하시고 축복받으신 성삼위는 그 자체상 분할할 수 없는 하나 이시다. 성부에 대해서 언급하게 되면 말씀도 포함하게 되고, 성자안에 계신 성령도 포함하게 된다. 만일 성자의 이름을 부른다면 성부는 성자안에 계시고 성령도 그 말씀 밖에 계시지 않는다. 왜냐하면 성부로부터 성자를 통하여 성령안에서 성취되는 단 하나의 은혜가 있기 때문이다.”
2. 이슬람교의 하나님
‘La ila illa Allah - 알라 외에는 어떤 신도 존재하지 않는다’. 이 말은 알라외에는 경배를 받을 만한 가치있는 존재가 아무것도 없다는 것이다. 알라(Allah) 하나님은 자신의 단일성 유일신에 관하여 설명하였다. 그는 그의 신격(Dhaat)에서도 하나(One)이며 그의 사역(Af’al)에서도 하나(One)라고 하였다. 그의 신격이 하나라는 것은 다신론을 배제하는 것은 물론 알라 하나님 자신은 삼위 또는 삼인격이 하나가 되어 유일신 하나님이 된 것이 아니라 알라 자신의 인격은 일위, 즉 일신격 뿐이라는 것이며, 속성에서 하나라는 것은 신성이나 신격의 속성을 가질 수 있는 존재는 자기 외에 존재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또 사역에서도 하나라는 것은 알라 자신이 이미 사역을 행하였거나 현재와 미래에 있을 사역은 알라 하나님 자기 외에는 어는 누구도 행할 수 없다며 오직 자기 혼자(Only One)만이 처음부터 일위(一位), 즉 하나(One)로 존재하였으며 그와 마찬가지로 마지막에도 자기 혼자 일위인 하나님으로 영원히 남게 된다고 꾸란 112장은 강조하고 있다.
“일러가로되, ‘하나님은 단 한분이시고 하나님은 영원하시며 성부와 성자도 두지 않으셨으며 그분과 대등한 것 세상에 없도다”
V. 신의 개념 차이 비교
기독교와 이슬람교의 신의 개념 중 가장 차이나는 부분이 바로 예수를 하나님으로 여기느냐 아니냐하는 가에 있다. 여기에서는 꾸란과 성경에서 말하는 전체적인 부분을 다 살피기 보다는 상이(相異)한 부분에 대해서만 살피고자 한다.
먼저 아담과 하와의 범죄에 대해 양 종교의 관점을 살피고자 한다. 기독교에서 보는 아담과 하와의 범죄 이것은 이슬람교의 관점과 상이하다. 이슬람교는 원선설(原善說)을 주장하기 때문에 구세주라는 개념이 필요없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에 관한 주장 차이를 살피기 전에 먼저 아담과 하와의 범죄에 관한 양 종교의 관점을 살피고 다음에 예수가 하나님의 아들인가에 대한 양 종교의 관점을 살피면서 더불어 삼위일체 하나님에 대한 이슬람의 반박과 이에 따른 논란을 살피고자 한다. 그리고 예수의 십자가의 죽음에 대한 입장과 여러 해석들을 살피고 마지막으로 기독교에서 삼위의 하나님으로 고백하는 성령에 대한 이슬람교의 관점을 살피고자 한다.
1. 아담과 하와의 범죄
먼저 아담과 하와의 범죄를 이슬람에서는 어떻게 보는가 살피고자 한다.
“오래전에 하나님이 아담에게 성약을 했으나 그는 그것을 잊었더라 그러나 그에게서 고의성을 발견하지 못했노라”(Qu 20:115)
꾸란의 보편적인 교리는 아담과 하와가 따 먹은 나무는 선악과가 아니고 악의
씨가 없는 나무이며 또한 그것을 먹은 것은 망각에 의한 실수이지 고의적 행위가 아니기에 죄로 볼 수 없고 이 땅에 내려온 것은 추방당해서 내려온 것이 아니라 신의 예정에 의해 내려온 것이다. 인간의 죄는 환경에 의한 후천적인 것과 인간의 자유의지에 의한 자범죄뿐이기에 인간 본성의 원선설을 주장한다. 그렇기 때문에 인간의 죄를 담당해야 할 구원자 개념이 필요가 없다.고 밝히고 있다.
또한 아담의 원죄는 그가 속죄한 후에 용서받았고, 죄인은 누구나 하나님의 용서를 받지 못할 경우에는 스스로 자기죄에 대해 책임을 지게 될 것이며 누구도 다른 사람을 대신하여 속죄할 수 없다. 이것은 또한 희생과 대속의 교리를 용납할 여지를 남기지 않는다.
이와는 반면 성경에서는 아담과 하와가 선악과를 따 먹은후 이렇게 기록하고 있다.
“그들이 날이 서늘할 때에 동산에 거니시는 여호와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아담과 그 아내가 여호와 하나님의 낯을 피하여 동산 나무 사이에 숨은지라”(창세기 3장 8절)
이후 하나님께서 아담과 하와를 부르셨을 때 그들은 자기들의 죄를 고백하기 보다는 자기들의 비참한 상태만을 고백하였고 원인을 상대에게 돌렸다. 하나님께서는 사탄에게 저주를 내리셨고 인간에게는 그들의 범죄로 그들에게 생의 고
난을 주었지만 그들에게 그들의 후손 곧 그리스도 예수를 통해서 인류를 구원하시겠다는 구원의 약속을 주시고 은혜를 베푸셨다. 그렇지만 하나님과의 본래적이고 완전한 관계는 사라지게 되었고 이후에 인간은 믿음으로 사는 법을 배워야 했다라고 밝히고 있다.
2. 예수는 하나님의 아들인가
둘째로 예수는 하나님의 아들인가에 대한 이슬람의 관점을 살피고자 한다.
꾸란에서는 이렇게 말하고 있다. “유대인이 이르길, ‘에즈라가 하나님의 아들이
라 말하고 기독교인들은 예수가 하나님의 아들이라 하니 이것이 그들의 입으로 주장하는 말이라. 이는 이전에 불신한 자들의 말과 유사하니 하나님이 그들을 욕되게 하사 그들은 진실에서 멀리 현혹되어 있더라.”(Qu 9:30)
“예수는 마리아의 아들로써 선지자일뿐 이는 이전에 지나간 선지자들과 같음이라 ……”(Qu 5:75)
이슬람에서는 예수가 인간의 위대한 스승이며 선지자로 여기고 있으며 그는 이스라엘의 예언자로서 임명받고 온 분이다라고 말한다. 예수를 하나님의 아들
로 여기거나 인간의 죄를 대신해서 죽는 구세주로는 단호하게 부정하고 있다.
예수에 관한 탄생에 있어서 남자를 통하지 않고 처녀 몸에서 탄생했다는 것을
이슬람에서는 인정하고 있으나 이것은 여자의 몸을 접촉하지 않고 태어난 총각의 딸 하와를 신성으로 보지 않는 것처럼 예수의 탄생도 신성이 아니라고 하기 때문에 예수가 신성을 가지고 있다는 것은 이슬람에서는 부인되며 하나님의 아들임을 인정하지 않는다.고 말하고 있다.
특히 이것과 관련해서 꾸란에서는 삼위일체를 강력히 부인하고 있다.
“성서의 백성들이여! 너희 종교의 한계를 넘지 말며 하나님에 대한 진실 외에는 말하지 말라 실로 예수 그리스도는 마리아의 아들이자 하나님의 선지자로써 마리아에게 말씀이 있었으니 이는 주님의 영혼이었노라 하나님과 선지자들을 믿되 삼위일체설을 말하지 말라 너희에게 복이 되리라 실로 하나님은 단 한분 이시니 그분에게는 아들이 있을 수 없노라 천지의 삼라만상이 그분의 것이니 보호자는 하나님만으로 충분하니라.”(Qu 4:171)
이슬람에서는 예수가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것을 단호하게 부인하기에 기독교에서 말하는 삼위의 하나님과는 상이하게 대치된다. 이슬람에서는 오직 유일신 알라를 최고의 신, 단일신으로 주장한다.
한편 마울라나 무함마드 알리의 「이슬람의 종교(The Religion of Islam」에는 삼위일체에 대한 꾸란의 개념이 예수와 마리아를 신으로 착각하고 있다고 한다. 역시 이것과 관련된 전재옥 교수의 논문「무슬림은 예수를 누구라 하는가」을 보면 다음과 같이 밝히고 있다.
“꾸란에서 예수를 삼위의 하나로 보는 경우, 첫째, 꾸란은 예수가 하나님의 아들이 된다는 것을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마리아와 함께 이루는 관계로 오해한 것이다. 정통파에서는 여기서 반박하는 점이 하나님, 예수 그리고 마리아와 함께 3을 이루는 개념 속에서 하나님의 아들이 부정된다는 것이다. 부친 없는 출산에서 신의 능력과 모친 있는 출산에서 인성을 생각했고 따라서 마라아가 삼위의 하나로 해석되는 것이다. 이것은 하나님이 아들을 가진다는 오해보다는 발전한 해석이라고 하겠다.” 또한 선지자 무함마드가 삼위일체에 대한 오해를 가지고 있었다는 주장이 있다. 무함마드가 만난 그리스도인들은 자신들의 종교에 대한 명확한 개념을 갖지 못한 채 이단적인 가르침에 영향을 받았음을 볼 때 무함마드가 삼위일체에 대한 잘못된 사상을 접했다고 한다. 노먼 다니엘은 그의 저서 「Islam and the West」에서 무함마드는 그리스도인들이 세 신(three gods)
을 섬기는 것으로 생각했기에 무함마드는 그리스도인들을 ‘이탈자들’이라고 불렀다고 밝히고 있다.
그러므로 성경에서는 예수가 하나님의 아들이시며 인간의 혈육관계의 출생의 아들 개념이 아닌 하나님에게서 나온 독특한 아들개념을 나타내고 있으며 하나님으로써 성부 하나님 아버지와 동질성을 나타내고 아들의 선재성으로 하나님이심을 나타내며 메시야적 사역성을 나타내고 있다고 말한다.
3. 예수의 십자가의 죽음
셋째로 예수의 십자가의 죽음에 대한 이슬람의 관점을 살피고자 한다.
먼저 참고한다면 예수의 십자가의 죽음은 기독교에서의 가장 핵심적인 구원의 중점이다. 인간의 원죄를 씻기위해 대속하는 하나님의 사랑의 증거이다. 왜냐하면 “피흘림이 없으면 사함이 없다”라고 성경은 밝히고 있다. 또한 인간의 힘으로써는 전혀 불가능한 것임을 나타내며 구원은 전적으로 하나님께 속한 것임을 보여준다.
꾸란에서는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마리아의 아들이며 하나님의 선지자의 예수 그리스도를 우리가 살해하였다 라고 그들이 주장하더라 그러나 그들은 그를 살해하지 아니하였고 십자가에 못박지 아니했으며 그와 같은 형상을 만들었을 뿐이라 이에 의견을 달리하는 자들은 의심이며 그들이 알지 못하고 그렇게 추측을 할 뿐 그를 살해하지 아니했노라”(Qu 4:157)
이슬람 관점에서는 예수는 하나님의 예언자로써 수 많은 기적들을 행했다. 병을 고치고 사람을 살리고 사람들의 마음을 끌어 당기는 능력들을 행했지만 그의 백성들이 그를 죽이려고 하는 위험에 빠졌을 때 하나님께서 그를 죽음 없이 들어올리셨다고 밝힌다. 최영길 교수는 그의 저서 「이슬람 문화의 이해」에서 다음과 같이 밝히고 있다. “예수의 십자가 문제는 꾸란 4:153-162 사이에서 언급
되고 있다. 이 단락에서 유대인들이 모세의 율법을 위반하고 안식일을 어겼으며 선지자들을 살해한 사건, 마리아를 모독하고 험담한 사건들을 비롯한 신에 대한 그들의 불순종이 언급되고 있다. 또 메시아 예수를 죽였다고 주장한 유대인들의 주장에 대하여 하나님은 꾸란(4:157-전 page 참조)을 통하여 예수의 십자가 죽음을 부정하면서 음모자 가롯 유다에게 예수의 형상을 입혀 예수 대신 십자가형을 지게 했다고 밝히고 있다. ‘마리아의 아들이며 하나님의 선지자인 예수 그리스도를 죽였다고 주장하나 그들이 그를 살해하지 못했으며 십자가에 못박지 못했느니라 단지 그와 같은 형상이 만들어졌을 뿐이라…’ 이와 같이 이슬람은 예수의 죽음에 대해 ‘대체된 수난설’을 제시하면서 예수의 십자가 죽음을 부인하고 있다”
반면 전재옥 교수는 이슬람교 전통은 외경 자료를 근거로 하여서 이슬람은 기독교 안에는 예수의 십자가 죽음에 관하여 통일된 고백이 없다는 것을 지적한다고 한다. 바나바의 복음서에서 예수는 십자가에서 죽지 않고 가룟 유다가 대신 처형당하였다고 한다. 정통파 학자들은 예수 체포, 수난 및 처형이 진행 되었을 때 하나님이 예수와 닮은 자를 대신 십자가에 죽게 하고 예수는 구출되었다고 한다. 이슬람 전통에서는 예수가 십자가 처형으로부터 구출되었다는 것이
논쟁의 여지가 없고 십자가에서 구출된 예수는 하늘로 들리워졌다고 밝히고 있
다. 외경을 근거로 한 이슬람교의 주장은 기독교의 복음서에서 빌린 것이 아
니고 그 밖의 기독교 관련 문서의 영향이라는 것이 지적될 수 있다고 밝히고 있다.
이에대해 성경에서는 예수가 십자가에서 죽었다는 것을 확실하게 밝히고 있다.
“해골이라 하는 곳에 이르러 거기서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박고 두 행악자도 그렇게 하니 하나는 우편에 하나는 좌편에 있더라”
4. 성령
넷째로 성령에 대한 이슬람의 관점을 살피고자 한다.
이슬람교에서는 대체로 성령을 가브리엘 천사로 해석하기도 한다. “믿음의
성령이 그것을 가지고 오시어”(Qu 26:193) 또 어떤 무슬림들은 신약에 있는 성령(Paraclete)에 대한 약속이 무함마드 출현에 대한 계시라고 믿기도 한다. 몽고메리 와트(M.Watt)는 이와같은 무슬림들의 생각이 그리스어의 유사한 두 낱말에서 비롯되었다고 주장한다. 즉 ‘칭송할 만한’이란 뜻의 Periklutos와 성령을 의미하는 Parakletos 즉 Paraclete 간의 유사성으로 인하여 예수가 언급한 성령
(paraclete)이 ‘칭송받는’(praised)의 뜻을 지닌 무함마드를 의미한다고 무슬림들이 주장하는 근거가 되었다는 것이다. 이런한 측면에서 꾸란 61장 6절을 살펴 볼 필요가 있다. 이 구절에 Ahmad는 ‘더 칭찬 할 만한’의 형용사적 의미로서 무함마드를 칭하는 것으로 간주된 것이다. A.D. 740년까지는 어떠한 사람도 Ahmad라는 이름을 쓰지 않았으나, 그 이후 무함마드의 또 다른 이름으로 보편적으로 쓰이게 되었다는 것은 주목할만 하다. 꾸란 구절들의 용어들을 보면 무함마드의 당시에 이미 Periklutos와 Parakletos 사이에 혼돈이 있었던 듯한데, 이 두 단어는 단지 자음 prklts로 동일하게 쓰였던 것으로 추정된다.
또한 이슬람에서는 다음과 같이 주장한다. 꾸란에서는 영혼(Ruh)존재를 부정하거나 모독하는 것은 신을 부정하고 모독하는 것과 같은 큰 죄라는 것을 설명하면서도 숭배나 경배 또는 구원의 대상으로서가 아니라 단지 믿음의 대상으로서만 계시를 하고 있다. 영혼의 존재를 믿는 것이 이슬람의 신앙이라고 설명하지만 영혼에 자력(自力)을 부여하여 그것에 구원하는 행위는 금지하고 있다.
그러나 전통적인 기독교에서는 성경에 따라 성령은 성부와 성자와 동일한 본질의 통일을 이루며 나눌 수 없는 동등성을 이룬다고 한다.아타나시우스는 성령은 성삼위안에 있는 신성에 속하며 그 신성과 하나이며 불변적이고 무소부재하시고 유일하신 하나님이다라고 하며 본질에 있어서 성부와 성자에 속함으로
써 성부의 창조사역에 성자와 더불어 참여하였다고 하였다.신약에서는 성령을 두 가지 형태의 말로 나타내고 있는데 하나는 ‘프뉴마’ 곧 ‘영’(靈)으로 나타
내고 있고 또 하나는 ‘파라클레토스’ 개역성경에서는 ‘보혜사’또는 ‘대언자’라 나타내고 있다.
VI. 결론
오늘날 우리는 종교의 다원주의 시대의 현실을 맞이하게 되었다. 이시대를 살아가는 기독교인들이 적응해야 하는 새로운 현실은 기독교인들의 신앙에 타종교인들의 신앙과 함께, 곧 다종교적인 환경 속에 살아야 하는 것이다. 이렇듯, 기독교인이 아닌 다른 종교인들과 부딪히게 되는 현실은 기독교인들에게 있어서 타종교에 대해 알아야 할것과 그들에게 복음을 전해야 함이 요구된다.
본 논문에서는 기독교와 이슬람교간의 신관에 대한 연구 비교를 통해 상호간의 종교에 대한 이해를 잘못된 오해를 해소하고 바른 이해를 갖고자 결론을 맺고자 한다.
첫째로 신의 용어에 대한 문제에서 ‘하나님’ 호칭은 어떤 특정한 종교가 그것을 처음에 만들어 낸 것이 아닌 우리 민족의 고유한 신의 대한 호칭으로 사용되었던 것을 기독교의 전래 유입 과정에서 기독교의 차용과 그 개념에 대한 인식의 파장으로 현재는 기독교의 신의 이름으로 전용된 사례이다. 이러한 호칭이 이슬람교의 우리나라의 포교와 꾸란의 번역과정에서 신의 호칭 ‘알라’의 번역을 영어로 ‘God’ 으로 번역하는 것을 우리말에서 하나님으로 번역한 것은 호칭의 도용에 대해서는 문제가 없으나 기독교와 이슬람교의 신의 개념 차이가 삼위일체의 유일신으로서 그리고 오직 유일한 일신교로서 선명한 차이점 때문에 같은 용어를 쓴 다는 것은 오해의 소지와 논란의 소지가 있다. 현재 아랍권과 영어권에서도 영어로 표기할 시 무슬림들의 추세가 ‘God’대신 ‘Allah’로 쓰는 경향이고또한 우리나라에서는 이미 ‘하나님’ 용어가 기독교의 신의 호칭으로 전용되고 있
는 점을 고려하여 이슬람교의 신의 호칭을 ‘알라 하나님’ 또는 ‘알라’라 칭하는 - 42 -
것으로 밝힌다. 물론 아랍어권의 기독교인들의 ‘하나님’ 용어가 아랍어로 표기할 때 ‘알라’라고 하는 것에 대해서 신중한 고려가 있어야 겠다.
둘째로 신의 개념에 있어서 기독교의 삼위일체의 개념은 위격에 있어서 성부 성자 성령의 삼위 하나님이고 동시에 유일하신 하나님이시라는 것과 성부 하나님은 아버지로서의 권능과 사랑을 나타내는 분이며 성자 예수는 인간의 아들과 같은 혈육관계의 아들의 개념이 아니고 독특성을 내포하는 아들 개념의 인식을 말한다. 성령은 단지 어떤 피조물적인 영적인 존재가 아니라 성삼위 안에 있는 신성에 속하며 또한 성부와 성자와 본질공존체로 계시는 하나님이시며 본질에 있어서도 성부와 성자에 속하시며 성부의 창조사역에 성자와 더불어 참여하신분이시다.
이슬람교의 알라 하나님은 유일신 사상으로 위격도 한 분이시고 사역도 한 분이시며 또한 오직 알라 하나님 외에는 어떤 신도 존재하지 않는 속성의 유일성을 나타낸다.
셋째로 기독교와 이슬람교간의 가장 상이(相異)한 부분은 크게 네가지로 구분된다.
먼저 첫째로는 인류의 조상인 아담과 하와의 범죄 성립 여부에 대한 관점에 따라 구세주의 개념이 성립되는데 이슬람에서는 인간의 전적인 타락을 부정한 반면 기독교에서는 인간의 범죄로 구원받을 수 없는 존재로 다루었다. 이에 대해 이슬람에서는 인간은 인간의 선한 행위의 의지와 유일신에 대한 믿음을 통해
스스로 자신을 구원할 수 있다고 규정했고, 반면 기독교에서는 인간의 전적인 부패와 타락으로써 오직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속죄와 예수를 믿는 길만이 유일한 길임을 증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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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째로는 그렇기 때문에 기독교에서는 하나님께서 인간의 몸을 입고 오신 예수는 또한 하나님을 아버지라 부르며 아버지의 명령을 따르는 아들로서의 순종과 의무를 행한다고 말하고 있으며 인간의 혈육관계 아들을 나타내는게 아니라 하나님께로부터 나온 독특한 아들 개념을 말한다. 그러나 이슬람에서는 예수가 하나님의 아들임을 철저히 부정하고 오직 알라 하나님 외에는 없음을 밝히고 예수는 인간의 스승이고 사도로서 알라 하나님께로부터 능력을 받아 수행한 예언자라고 못박는다. 그러므로 이슬람은 삼위일체의 개념을 철저히 부정하고 오직 알라 하나님 외에는 신이 없다고 말한다. 반면 기독교에서는 이슬람교가 기독교의 삼위일체 개념을 잘못 이해함으로서 세 신(three gods)으로 이해해 ‘하나님’, ‘예수’ , ‘마리아’ 라고 이해한 것은 이슬람이 외경의 영향을 받았기 때문이라고 주장한다.
셋째로는 특히 이슬람에서는 예수의 십자가의 죽음을 단호히 부정하고 하나님의 능력으로 부활했다고 믿는다. 그러나 성경에서는 예수의 십자가의 죽음은 인류를 향한 하나님의 엄청난 사랑의 표현의 극치로서 예수의 십자가의 죽음을 부정하는 것은 잘못된 복음이라고 말하고 있다.
마지막으로 넷째로는 성령에 대해 이슬람은 가브리엘 천사로 이해하기도 하고 무함마드의 출현에 대한 계시로 이해하기도 하나 성령을 믿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그것은 어디까지나 알라 하나님의 창조물에 대한 믿음이라 못박는다.
또한 그것이 이슬람 신앙이며 성령 자체가 결코 경배의 대상이 될 수는 없다고
못박고 있다. 그러나 성경에서는 성령은 피조물이 아닌 하나님이요 성부와 성자의 영으로써 성령의 사역을 특별하게 행하신다고 말한다.
결론적으로 말하면 두 종교간에는 내용은 비슷한 면은 있으나 신의 대한 본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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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인 개념 차이는 구별되어진다. 특히 이슬람교의 예수에 대한 신성의 부정은 기독교의 사상의 핵심을 부정하는 것과 같다. 이러한 차이는 양 종교간의 연구와 접촉에 있어서 많은 문제가 제기된다. 앞으로 특별히 이러한 신의 개념 차이에 대한 많은 연구가 나올 줄로 기대한다. 그것은 각 종교의 특성을 구별시켜 바로 이해하는 측면을 가져오리라 믿는 바이다.
시간적인 제약과 자료의 수집의 빈약한 관계로 본 논문을 준비하는데 있어서 부족한 점이 많지만 자료의 토대와 분석을 통해 두 종교의 사실적인 객관성을 나열하고자 했으며 필자의 기독교적인 관점을 토대로 나열한 것을 밝힌다.
국내의 기독교의 선교대상 지역으로 관심도의 증가와 이슬람의 세계적인 활동 추세로 볼때 국내의 이슬람에 대한 연구에 있어서 본 논문이 그러한 쓰임에 조금이라도 이바지 하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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目 次
I 서론 ………………………………………………………………………… 1
1. 연구 동기 및 목적………………………………………………………1
2. 연구 방법과 범위……………………………………………………… 4
II 신의 정의 ………………………………………………………………… 6
1. 일반적 관점………………………………………………………………6
2. 기독교적 관점……………………………………………………………7
3. 이슬람교 관점……………………………………………………………7
III 하나님 용어…………………………………………………………………9
1. 일반적 관점……………………………………………………………… 9
(1) 하나님 용어의 사용과 그 배경…………………………………… 9
(2) 어원적 배경………………………………………………………… 10
2. 기독교적 관점……………………………………………………………11
(1) 하나님 용어의 사용과 그 배경……………………………………11
(2) 어원적 배경………………………………………………………… 15
3. 이슬람교 관점……………………………………………………………18
(1) ‘알라’의 등장 배경………………………………………………… 18
(2) 어원적 배경………………………………………………………… 20
(3) ‘알라’의 번역…………………………………………………………21
IV 신의 개념……………………………………………………………………24
1. 기독교의 하나님………………………………………………………… 24
(1) 삼위일체 하나님………………………………………………………24
(2) 성부 하나님……………………………………………………………26
(3) 성자 하나님 ………………………………………………………… 27
(4) 성령 하나님……………………………………………………………29
2. 이슬람교의 하나님……………………………………………………… 30
V 신의 개념 차이 비교……………………………………………………… 32
1. 아담과 하와의 범죄………………………………………………………32
2. 예수는 하나님의 아들인가………………………………………………34
3. 예수의 십자가의 죽음……………………………………………………37
4. 성령…………………………………………………………………………39
VI 결론………………………………………………………………………… 42
참고문헌………………………………………………………………………… 46
A comparitive studies in God between Christianity and Islam
- Through a point of view of chritianity -
Son Young-Kwang
Dept. of Arabic Language
Graduate School
Myong Ji University
Today, we reached the circumstances of the age of pluralism of religion. Christians who live in new environment of this times must adap to themselves in pluralistic religious circumstances with other religion man. so, this environment that christians rather meet other religion man than same one, Christians are claimed to know their's and to proclaim the gospel them.
In this thesis I will conclude in order to have right perception after solve the misunderstanding between Christianity and Islam through comparitive study in God.
Firstly, in a point of view about god's name, ‘God’ is not made by some special religion but is called a proper name of god of our people from for the first time. since the name is borrowed by christianity when it is transmitted to korea, and the expansion of understanding of the conception of God of Christinity, and it became a case of the name of God of christianity be for private used at present.
The name ‘God’, in propagation of Islam to korea and process of translation of quran, the God's name that Allah translate into God by English is not very problem to be used God by korean. but to be used the same meaning is cause of the misunderstanding and the dispute, because it is a distinct different between Christianity and Islam, that the former is Trinity Only God and the latter is Only Monotheism.
To be considered, in Arabic and English regions at present, generally the trend of Muslims are intend to use Allah instead of God as they written by English, also to be for private use god's name of Christianity.
So I assert to translate Islamic god's name Allah into Allah by Korean. of course, it is considered that christians in Arabic regions write Allah when they god's name by Arabic.
Secondly, in concept of God, Trinity of Christianity is God of Three Persons of Holy Father and Holy Son and Holy Spirit in Person. Holy Father is one who reveal Almighty and Love of Father, Holy Son is not concept of son with relation of flesh and blood like a son of man but concept of Unique Sonship. Holy Spirit is not just some spiritual creature but a Godhead of Trinity and the essencial cooperative God with Holy Father and Holy Son, and belongs to Holy Father and Holy Son in the essence, and one who takes part in the work of creature of Holy Father with Holy Son.
Allah of Islam appears the Monotheism, therefore the Person is Only One and the work of Him is One, also the Attribute is oneness that there is no god except Only Allah.
Thirdly, be divided the most difference between Christianity and Islam into four.
First, formed the concept of saviour in a point of view of whether the deed of Adam and Eve who are Ancestor of mankind are Sin or not. Islam have denied to the complete corruption of man. on the other hand, Christianity have regarded man as one who can not save himself because of his Sin.
Concerning this assertion of Christianity, Islam prescribed that man can save himself by the will of good deed of man and belief in One God. but Christianity empgasized that Atonement of Jesus Christ Son of God and belief in Jesus is Only Way.
Second, Christisnity insist that Jesus whom God comes through the body of man calls God His Father, and He obeys to His Father and does the duty of Sonship whom He obeys to Father's Command. and Jesus is not son of man with relation of flesh and blood but Unique Sonshep from God.
Islam have thoroughly denied that Jesus is Son of God, and insist that there is no god except Allah. and assert that Jesus is a teacher of man ,and an apostle and a prophet who accomplishes God's work by the ability of God. therefore Islam completely denies to Trinity of Christianity, and proclaimed that there is no god except Allah.
but Christianity persist that Islam did misunderstand Trinity of Christianity and they did understand it three gods - God, Jesus, Maria - because they have been influenced by Apocrypha.
Third, especially Islam denies Jesus' Death on the Cross and believes that Jesus ascend to heaven by the Power of God. but Bible have said that Jesus' Death on the Cross is the maximum expression of God's great Love for man. so, to deny Jesus' Death on the Cross is mistaken Gospel.
Fourth, concerned Holy Spirit, Ismam regard Holy Spirit as Gabriel Angel and the revelation for appearance of Muhammad, and insist to believe Holy Spirit. but, in all respects, it is the belief that Holy Spirit is justly creature of Allah. this is the Islamic Faith, and assert that Holy Spirit himself not become one who is worthy to be worshiped. but Bible says that Holy Spirit is God and is the Spirit of Holy Father and Holy Son and accomplishes especially the His works.
Now to conclude, there are some same aspects between two religions. but it is classfied the essencial differential of the concept for God. especially the denial of the Godhead of jesus in Islam is like to deny the origin of the thought of Christianity. Because of this differential, it is projected much problem in mutual studies and contacts of two religions.
I expect that studies about the differential of the concept of God of two religions will be published as possible, and believe that these studies will distinguish the characteristic of two religions and will take the right aspects of understanding.
Because of limit of time and lacks of collection of data, there are much aspects of lacks in this thesis. however, I have tried to arrange the realistic objectivity of two religions by investigations and analyses of data as possible. In a point of view of record, I clarify to write in the basis of the point of view of christianity.
As we observe the increase of the degree of interesting of Christianity of Korea for Islam within the region of mission, and observe the tendency of Islamic worldwide actitity. so I expect that this thesis will even a little bit help to accomplish studies for Islam within Christianity in Korea.
이슬람학 碩士學位論文
西 紀 1997 學 年 度
기독교와 이슬람교의 신관 비교연구
- 기독교적 觀點을 통한 考察 -
指導敎授 崔 永 吉
明知大學校 大學院
阿拉語科
孫 榮 光
기독교와 이슬람교의 신관 비교연구
- 기독교적 觀點을 통한 考察-
이 論文을 碩士學位 論文으로 提出함.
1997年 11月 日
明知大學校 大學院
阿拉語科
孫 榮 光
孫榮光의 碩士學位 論文으로 認准함.
主審委員 印
副審委員 印
副審委員 印
1997年 11月 日
明知大學校 大學院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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