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각예술의 정치적 실험
1. 한국의 ‘민중미술’은 80-90년대 시대의 격변에 반응하여 뜨겁게 역사의 주체들과 교류하면서 역사에 대한 반성과 시대에 대한 변혁을 꿈꿨던 특별한 실험이었다. 군부에 의한 지속된 독재는 한국 사회의 주체에 대한 의심과 발전이라는 패러다임 속에서 잔혹하게 희생되어야 했던 존재들의 표상을 다시 소환했다. 그러한 작업 속에서 역사를 이끌었던 주체로서 ‘민중’을 호명하였고, 그람시의 개념처럼 민중과 연대하는 ‘유기적 지식인’의 상을 형성하면서 ‘민중’으로 상징되는 수많은 예술과 문화 그리고 학문을 탄생시켰다. 하지만 ‘민중’으로 표현되던 수많은 개념은 형식적 민주주의가 수립되고 동구권 사회주의의 몰락과 함께 그 의미를 상실하게 되었고 형식적인 실체마저 소멸되었다.
2. 그렇다면 ‘민중미술’의 시대는 끝났는가? ‘민중미술’이 추구했던 급진적인 변혁의 방식은 사라졌을지 몰라도 정치에 대한 예술적 실험은 결코 끝이 날 수 없다고 『마지막 혁명은 없다』라는 책을 편집한 미술평론가 이솔은 말한다. 그는 2011년 미국에서 한국의 정치적 시각예술의 흐름에 대한 전시를 기획하고 준비한다. 그것은 80년대 민중미술에서 이어지는 정치적 예술의 변화와 근본적 가치를 다시 점검하고 새로운 방향을 수립하기 위한 기획이었다. <Being Political Popular>라는 이름으로 열린 미술 전시회는 1980년부터 2010년까지 한국의 정치적 시각예술의 변천을 6개의 섹션으로 구성하여 그 흐름을 제시하였다. 『마지막 혁명은 없다』은 전시의 기획 및 내용에 대한 안내이며 새로운 정치적 예술에 대한 비전을 담은 글들을 모은 책이다.
3. 전시는 6개의 섹션으로 구성되었지만 내용적으로 좀 더 큰 틀에 의해 분류한다면 3개의 부분으로 나눌 수 있다. 먼저 과거의 역사를 반성하고 70-80년대의 군부독재에 대한 저항을 담은 미술적 실험에 관한 내용이다. <저항적 공동체의 장>과 <역사의 재현>이라는 섹션에는 80년대의 저항의 상징으로 제작된 ‘이한열 걸개 그림’과 88올림픽을 이유로 쫓겨나야 했던 철거민들의 비참한 삶을 조명한 다큐 <상계동 올림픽>, 노동자들의 투쟁을 보고한 <노동자 뉴스>와 같은 것들과 비참한 노동환경을 고발한 김민기의 노래극 <공장의 불빛>, 광주의 비극을 목판화로 재현한 <오월> 등이 전시되었다. 두 번째 부분은 민중미술의 지나친 경도된 이데올로기를 비판하며 이루어진 일종의 ‘포스트-민중미술’적 작품들이다. 여기에는 민중예술의 지나치게 강조된 남성적, 이성애적, 민족적인 패러다임을 반성하며 여성들의 소외된 모습을 담은 <국극>, 이주노동자의 삶을 다룬 만화책 <이주노동자> 등이 포함되었고 서울과 평양을 대표하는 장소를 통해 분열된 국가의 현실에 대한 객관적 진실을 제시하였다.(섹션 <하나 그리고 여럿>, <서울투어/평양 익스프레스>)
4. 세 번째 부분은 정치적 예술의 변화를 보여주는 내용으로 유머와 위트가 담긴 정치적 예술실험을 소개한다. 먼저 <과거는 미래다>라는 섹션에서는 1985년 박불뚱이 작업한 신문의 기사를 콜라주해서 당시의 정치상황을 비판한 작품과 함께 신문의 형식을 통해 현실을 고발하는 2006년 남궁호석의 <미래일보>를 병치시킴으로서 새로운 비판적 사고와 정치적 저항을 위해서는 80년대의 엄격한 진지성을 넘어서는 웃음과 농담의 필요성을 제기한다. “가장 빈틈없는 정치논평에는 반드시 희극적 기운이 따라야만 한다. 하지만 프로이트가 교묘하게 언급한바 있듯, 웃음과 농담은 비판적 사고를 위한 자양분일 뿐 아니라 사람들이 모이는 데 필요한 재료이기도 하다.”
5. 웃음과 농담의 실험은 섹션 <혁명으로서의 놀이>를 통해 더 급진화된다. 동두천 미군부대 반환을 둘러싸고 벌여졌던 2007년의 <디스코 플랜>이라는 퍼포먼스는 비행물체를 오염된 미군부대로 날려 보내며 반환 토지를 제대로 처리하지 못하는 국가의 정책적 미숙을 조롱하였고, <우리 집회할까요?>에서는 놀이와 시위가 하나로 결합되기 시작한 ‘촛불집회’의 변화를 사진과 영상으로 정리하였다. 이러한 작업을 통해 정치에 대한 예술적 실험에서 새로운 저항문화가 만들어지기 시작했으며 그것은 변화된 인터넷 환경에서 소셜 네트워크를 통한 접촉과 연결의 형태로 발전하며 새로운 집단적 미학 언어를 창조한 것이다. 이러한 변화 속에서 주목할 것은 시위 주체가 사라지고 집단적 참여와 자발적 연대가 증대되기 시작하였다는 점이다.
6. 6개의 섹션을 통한 정치적 시각예술의 변천사를 통해 저자는 ‘포스트-민중’이라는 패러다임으로 민중예술의 죽음을 선언하는 사람들의 견해에 대해 민중미술의 형식적인 특징은 사라졌지만 공동체를 상상하고 소통을 통해 정치적 의견을 표명하는 새로운 시각적 실험은 지속되고 있다는 점을 강조했다. “1990년대 한국에서는 민중저항 문화가 상업적 대중문화으로 사회전반의 초점이 옮겨졌다. 하지만 이런 문화적 상상력의 전환은 그저 완벽한 단절이나 정치적 급진성이 상실로 여겨져서는 안된다. 민주화 운동의 부상과 몰락, 신자유주의의 시장질서에 대한 전면적인 통합은 역사적 서사로 기정사실화 되어 버렸다. 하지만 1990년대와 2000년대 등장한 새로운 시각 문화 안에 마치 유령처럼 희미하지만 동시에 분명히 존재하는 정치적 저항성과 창조적 혁신성은 오히려 상상력의 전환을 온당하게 다시 살펴보게 한다.”
7. ‘민중미술’의 대표적인 평론가였던 성완경은 글을 통해 1998년을 민중미술의 완전한 해체시기라고 평가했다. 80년대 미술운동의 가장 강력한 흐름이었던 민중미술이 급속도로 소멸한 것이다. 하지만 민중미술이 추구했던 예술의 정치적 실험은 결코 중단된 적은 없었다. 다만 저항의 방식이나 내용에서 변화가 있었을 뿐이다. 미국에서 열린 전시회는 바로 그러한 정치적 실험의 지속적이고 생동감있던 일련의 변화 과정을 보여준다. 엄숙하고 진지했던 80년대의 실험은 2000년대 들어서 ‘놀이’와 결합된 혁명으로 진화하였다. 이러한 시위 문화의 절정은 2016년 광화문을 가득 채웠던 박근혜 탄핵을 촉구했던 ‘촛불집회’였다. 그때 광화문에는 수많은 독립적 개체들이 모여 각자의 방식으로 시위에 참여했고 개성넘치는 디자인을 지닌 깃발을 흔들었다. 광화문의 임시 무대에는 80년대의 걸개그림과 같은 비장한 성격의 예술이 아닌 대중가요와 수많은 시민들의 합창이 넘쳐났던 것이다.
8. 하지만 촛불집회 이후 시위문화는 극단적으로 분열되었고 예술적 성격은 사라졌으며 혐오와 공격적 언어만이 넘치는 정치적 성토장이 장악하게 되었다. 시위의 격이 떨어지자, 정치에 대한 예술적 참여도 점차 사라져갔다. 정치적 분열은 ‘정치적 주장’의 내용과 관계없이 특정 집단의 이해관계에 의해 끝없이 확장되어 갔다. 정치적 문제에 대한 예술적 참여는 이제 많은 사람들에게 불편한 방식으로 이해되고 있다. 민중미술의 쇠퇴는 지나치게 경도된 현장참여 미술의 폐해에 대한 부담에서 시작되었고 그 이후 미술의 주류는 철저하게 전시관을 중심으로 전문가들의 영역으로 이전되었다. 하지만 ‘정치적 예술’은 더 나은 공동체의 대안을 위한 가능성을 추적하는 작업이었다. 그런 점에서 정치적 실험에 대한 미술계의 무관심은 현재의 ‘의학분쟁’이 보여주는 집단적 이기주의의 일상화라는 현대적 현상과 일치한다는 점에서 안타깝다. 현재의 상황을 통해 2012년 발간된 『마지막 혁명은 없다』을 읽는 것은 당시 미술계에 남아있던 예술의 정치적 실험의 가치와 의미에 대한 마지막 증언을 확인하는 것같아 조금은 회고적 느낌으로 읽게 된다. 정치적인 측면에서 볼 때, 과거의 예술이 과잉이었다면, 현재의 예술은 무관심이다. 소비적 가치가 지배하는 철저하게 자본주의적인 영역으로 이전되어가고 있는 것이다.
첫댓글 - 예술의 변화, 정치 권력과 자본의 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