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은 사랑의 빛으로 잉태되고
타인을 위한 존중의 향기는 자애
두합의 존재는 바로 사랑이다.
흙과 물이 터전을 만들면
빛과 바람은 생명을 키우고
순환은 늘 새롭게 펼쳐진다.
빛은 빛의 길이 있고
바람은 바람대로 길이 있지만
누구의 길이든 사랑의 성숙으로
향하는 길이 분명하다.
사람들은 일출을 보려고 해변으로 달려갈 때, 우린 산을 찾아 올랐습니다. 특히 선호하는 일출장소는 주능이 서에서 동으로 흐르면서 주능의 끝자락이 활대처럼 휘어진 곳을 명당이라 불렀습니다 시선을 펼칠 수 있는 수평으로 아어지는 전경에 숲처럼 산, 산, 산들이 펼쳐진 곳을 좋아했습니다. 올망졸망 사발을 엎어 놓은 것 같은 산과 산 사이로 운해가 피어 오른 후 다시 산과 산 사이 틈을 돌고 돌아나가다 다시 파도처럼 굽이쳐 오르는 모습은 아름다움의 극치였습니다.. 그러다 하늘 끝자락부터 터져 딛고 일어서서 빛을 뿌려내는 장엄한 일출의 순간은 생명의 고귀함이 가득 담긴 환희 심이었습니다. 시시각각 변해가는 빛을 마주하고 서 있다 보면 순간적으로 어두움을 뚫고 여명과 함께 차오르며 화려하게 피는 일출은 온유한 감동 그 자체였습니다. 붉은빛이 찬란하게 나를 휘감아오면 나의 맥박은 다시 심장으로 파고들어 즉시 경동맥을 타고 뇌리 곳곳을 적셔 영혼을 윤택하게 하며 신비의 생명체로 거듭나게 하는 것이 바로 일출이 아닌가 합니다.
일출을 보기 위하여 서울을 떠나 밤새 차를 몰고 달려 사하촌으로 오랜 역사를 지닌 산아래 마을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새벽 1시부터 걸음을 옮겨야 했습니다. T자를 업어 놓은 것 모양의 배낭인 키슬링(Kissling)에 등반과 관련된 산중생활에 필요한 짐을 채워 놓고 그 위에 하루이상의 휴식을 취하며 머무를 수 있는 윔퍼 텐트(Whimper Tents)까지 넣은 키슬링의 무게는 상당한 중량감을 느끼기에 족합니다. 적게는 25kg 중간은 30kg 최대는 40kg까지 담을 수 있는 키슬링의 정확한 명칭은 키슬링(kissling ruck sack)입니다. 이 룩섹은 스위스 산악인 요하네스 키슬링이 고안한 등반장비 운반구입니다. 장기등반용으로 면으로 제작되어 방수에 문제는 있었으나 본체 양옆으로 사이드포켓이 달려 있어 수납은 상당히 편한 배낭이었습니다.. 단점으로는 짐의 무게가 분산되지 않고 집중적으로 허리를 압박하여 요통을 일으킨다는 것입니다. 일본에서는 룩쿠사크라 불렀으며 영어로는 룩섹(ruck sack)이라 불렀습니다. 윔퍼텐트(whimper tents)는 고산인 알프스나 에베레스트 등과 극지탐험용으로 사용된 텐트로서 영국의 등반가 에드워드 윔퍼(Edward Whimper. 1840-1911)가 알프스를 오르면서 개발하여 사용한 후 산악운동 선진국인 일본에 소개되면서 일본 호일산장에서 생산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어렵게 구해 사용하기 시작하여 홍도, 흑산도, 제주도 한라산 등반과 설악산, 소백산, 오대산, 속리산, 덕유산, 민주지산, 덕적도에서도 사용한 텐트였습니다. 이 텐트를 개발한 영국산악인 윔퍼는 내가 가장 좋아하는 알프스 마터호른 등정한 사람입니다. 마터호른(Matterhorn)의 마터(Matter)는 독일어에서 “계곡”을 의미하며, 호른(Horn)은 "뿔"을 의미합니다.
마터호른은 알프스산맥에 위치한 해발 4,478m의 산으로, 스위스 체르마트 남쪽과 이탈리아 국경에 걸쳐 있습니다. 특유의 뾰족한 삼각뿔 형태로 유명하고, 알프스의 수많은 산들과 봉우리 중에서도 알프스를 상징하는 봉우리입니다. 유럽의 지붕으로 불리는 몽블랑 산(4,809m) 보다 낮지만 깎아지른 지형으로 인해 첫 등정이 늦어졌습니다. 1865년 영국의 등산가 에드워드 윔퍼(Edward Whimper, 1840-1911)가 이끄는 팀이 처음으로 마터호른 정상에 올랐습니다. 이 초등정은 후대에 “알프스 등산의 역사에서 가장 눈부신 성과라는 칭송을 받았지만 하산 중 4명이 사망하는 사고가 발생하면서. 사고 후 살아남기 위하여 동료의 자일을 칼로 절단했다는 소문으로 윔퍼는 많은 고통을 감내해야 했습니다. 윔퍼가 초등 한 지 3일 뒤 이탈리아가이드 조반니 안토니오 카렐의 인솔하에 이탈리아의 발도르난케 마을에서 온 등반대가 제 나라의 체르비니아(Cervinia) 쪽에서 안전하게 몬테 체르비노(Monte Cervino=마터호른)에 올라 이탈리아 산악계를 흥분의 도가니로 만들었습니다 미국 영화제작사인 파라마운트 사 로고가 뜨면서 동시에 떠오르는 산 모습이 꼭 마터호른과 같아 사람들은 그렇게 알고 있지만 그 산은 페루에 있는 아르테손라 후(Artesonraju)가 배경입니다.
https://youtu.be/wWrHbPHBBls?si=oPJ-1bt-ukBLLyOU
고작 2m도 넘지 않는 육체로 4,000m - 8,000m를 오를 수 있는 것은 생각과 마음이 산보다 더 높고 고난을 극복하는 의지와 용기가 넘치기 때문이다.
~~ 지금 내 안에 흐르는 소리는 다른 소리와 전혀 다른 소리다 ~~
어느 날 공유 카톡공간에 허기진 딸꾹질 같은 소리가 들려왔습니다. 지체 없이 클릭~~ 3월 말일 끝으로 50년 동안 이어온 사회생활을 접었다는 이야기를 65년 우정을 이어 온 악우가 올린 글이 펼쳐졌습니다. 정월에 만나 저녁을 함께하며 들은 적이 있어 드디어 은퇴했구나 하면서 65년 동안 우정에 깃든 추억들이 영상물처럼 펼쳐졌습니다. 사계절 함께 붙어 다니며 산과 계곡에서 야영을 하거나 어느 때는 해변으로 가 머물다 돌아왔던 일들이 주마등처럼 스쳤습니다. 이런저런 일들을 추억하다 50년 동안 노고에 대한 수고를 격려해 주고 싶어 전화를 걸었습니다.- 신호음이 끊기면서 나에 이름을 부르며 나타났습니다.- "수고 많았다." -고맙다- "더해도 되는데 왜 끝낸 거야" -관절 때문에- "좋아진다고 하더니?" - 3월에 좀 무리했더니 완전히 고장 났는지, 걸을 수가 없어- 대화 중에 악우의 건강에 대하여 소상하게 들을 수 있었습니다. 대학을 다닐 때부터 관절염으로 고생했던 친구였지만 극복과 재발을 반복하며 잘 이겨내며 살아오며 사회생활에 충실했던 악우였지만 70 후반으로 기울어 가면서 이 또한 여의치 않았습니다. 얼마 전 다른 악우도 이젠 투석을 해야 한다는 자조 섞인 탄식을 들어야 했는데 또 다른 악우의 건강문제를 듣고 나니 만감이 교차됩니다. 늘 북 쩍 거리던 주변이 갈수록 산사처럼 고요해지는 것을 느끼며 그토록 좋아했던 적정(寂靜)에 갈수록 마음에 반감(反感)이 피어오르는 것 같습니다. 그렇다고 분노를 가질 만큼은 아닙니다. 나이 먹어 분노를 자기 것으로 만드는 것처럼 어리 석운 짓은 없습니다. 분노는 분쟁과 갈등을 일으키는 주범입니다. 쇠퇴는 물리적 현상이니 만큼 정신적으로 전이시켜 혼란을 자초할 이유는 없는 것입니다. 점점 윤곽이 살아나는 노화라는 물리적 현상, 악우들은 고산의 정상을 오르듯 그렇게 그렇게 오를 것입니다. 나름 각자에게 처한 입장대로 최선의 길을 찾아 적응해 가며 황혼의 길을 천천히 산책하듯 걸어 나가기를 소원해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