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슥2:1-13절) 새 예루살렘의 영광 2-241. 사람들은 가능한 한 안전(安全)한 곳에서 살고 싶어 합니다. 예전에는 가로등도 없고, 큰길에서 한참 떨어져 있는 동네에 살던 사람들은 늦게 들어오는 딸들을 위해 버스 정류장까지 마중을 나가곤 했습니다. 또 미국 백인들은 어떻게 해서든지 흑인들이 없는 곳에서 살려고 합니다. 흑인들이 집단적으로 모여 사는 지역을 우범지대(虞犯地帶)으로 생각하기 때문입니다.‘부르주아’는 원래‘성 안에 사는 사람’이라는 뜻입니다. 성(城)안에 사는 것과 성(城)밖에 사는 것은 안전(安全)이라는 측면에서 큰 차이가 있었습니다. 성(城)밖에 사는 사람들은 도둑떼가 쳐들어오거나, 난리(亂離)가 일어날 때, 전혀 자신을 지킬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재산(財産)이 있는 사람들은 전부 성(城)안에서 살려고 했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성(城)이 필요 없습니다. 곳곳에 경찰서나, 파출소나, 군부대가 있어서 굳이 성(城)안에 살 필요가 없기 때문입니다. 요즘 우리나라 사람들은 이 나라가 안전하지 못하다고 생각하는 것 같습니다. 북한과 대치하고 있는데다가 핵이라는 중대한 문제에 직면해 있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전쟁 가능성이 커진다 싶으면, 이민(移民) 인구가 급증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우리나라는 전쟁이 터지면, 도망칠 곳이 없어서‘독안에 든 쥐’신세가 되는 탓입니다. 반면에, 나라가 안정되고, 경제가 발전하면, 역이민 인구가 늘어납니다. 이를테면, 기러기처럼 상황에 따라 사람들이 이동하는 것입니다. 사실 우리나라는 정치적으로 불안한 편에 속합니다.
미국이 이라크를 공격하기 전까지만 해도 북한의 공격을 계획했을 정도로 북한 핵 문제는 국제적으로 예민한 사안(事案)입니다. 그런데 오늘 하나님은 우리에게 아주 놀라운 축복(祝福)의 말씀을 주고 계십니다. 그것은 우리에게 성령의 역사가 일어나고, 부흥의 불길이 타오르기만 하면, 세계에서 가장 안전한 나라가 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부흥이 일어나는 곳이야말로 하나님의‘눈동자’라고 말씀하십니다. 사람도 누가 자기 눈을 건드리거나 찌르면, 가만히 있지 않습니다. 그처럼 하나님도 예민하게 우리를 보호해 주신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안전하다고 생각되는 곳을 찾아 피할 것이 아니라, 바로 이곳에서 부흥의 역사가 일어나도록 몸부림치며 기도해야 합니다. 특히 이렇게 정국(政局)이 불안한 때는 더더욱 간절히 기도해야 합니다. 우리의 힘으로는 평화를 지킬 수 없습니다. 우리가 살 길은 말씀을 붙들고, 뜨겁게 기도하면서 부흥의 역사를 기다리는 것뿐입니다. 하나님은 바벨론에서 안전하게 살고 있는 사람들에게 도망치라고 말씀하십니다. 반면에, 예루살렘은 하나님이 친히 불 성곽(城廓)이 되어 아무도 침략하지 못하도록 지켜 줄 것을 약속(約束)하십니다. 예를 들어서 서울을 생각해 보면, 서울 하늘에는 아무것도 없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수많은 레이더와 대포와 미사일들이 지키고 있습니다. 아마 수상한 비행기가 공격하려 든다면, 순식간에 벌집을 만들어 놓을 것입니다. 그와 마찬가지로 성령이 역사하시는 교회는 하나님이 강한 능력으로 지켜 주시기 때문에 사탄이 일절 틈타지 못합니다. 즉 하나님은 부흥이 일어나고 있는 나라를 전쟁(戰爭)이나, 재앙(災殃)에서 지켜 주십니다.
Ⅰ.예루살렘을 척량하는 사람 스가랴가 세 번째로 본 환상은 측량줄을 가진 한 사람의 환상입니다. 2:1-2절)내가 또 눈을 들어 본즉 한 사람이 측량줄을 그의 손에 잡았기로 네가 어디로 가느냐 물은즉 그가 내게 대답하되 예루살렘을 측량하여 그 너비와 길이를 보고자 하노라 말할 때에” 하나님이 묵시(默示)로 보여 주시는 환상 중에 천사가 성전을 측량하는 장면은 드문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거의 모든 중요한 환상에 등장한다 해도 될 정도로 자주 나오고 있습니다. 왜냐면 하나님 백성의 현실과 성전은 직접적인 관계를 맺고 있기 때문입니다. 묵시(默示)에서 성전을 측량하는 일에는 크게 두 가지 의미가 있습니다. 하나는 하나님이 성전의 잘못된 부분을 고치기 위해 측량하시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서 건물 준공 검사를 하는 사람은 건물을 원래 설계도면과 일일이 비교해서 측정해 봅니다. 즉 설계도면에 없었던 방이 새로 생겼다든지, 있어야 할 부분이 생략되고 없을 시에는 그 잘못된 부분을 수정해야만 준공 검사를 통과할 수 있습니다. 신앙도 마찬가지입니다. 불필요한 것이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거나, 중요한 것이 사라지고 없을 때, 하나님은 그 부분을 지적해서 바로잡게 하십니다. 바로 그 일을 위해 측량하시는 것입니다.
또 하나는 이미 허물어진 성전을 재건하기 위해 측량하시는 것입니다. 에스겔서에 나오는 환상의 의미가 곧 이것입니다. 예루살렘 성전이 무너진지 이미 70년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유다 백성을 이 예루살렘으로 돌아가 성전을 재건하게 될 것을 약속(約束)하시면서. 성전 문지방으로부터 생수가 흘러나오는 환상을 보여 주십니다. 물론 에스겔이 환상에서 본 성전은 눈에 보이는 성전이 아니라, 신약시대에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들로 이루어질 공동체를 가리키는 것으로서, 하나님은 그들로부터 흘러나오는 생수가 온 세상을 살리게 될 것을 미리 보여 주셨습니다. 그에 비해, 스가랴서에 나오는 측량 장면은 새로이 세워질 예루살렘의 규모가 얼마나 커질 것이며 그 영향력은 얼마나 확대될 것인지 보여 주고 있습니다. 스가랴 선지자가 보니까 한 사람이 측량줄을 잡고 있었습니다. 측량줄이란 건축에 사용되는 줄로서, 우리는 이 줄을 잡고 있는 사람이 누구인지, 분명히 알아볼 필요가 있습니다. 공사 현장에서는 책임자가 줄을 잡게 마련입니다. 경우에 따라서는 보조요원이 줄을 잡고, 책임자를 따라 갈 수도 있지만, 원래는 공사의 실질적인 결정권을 가진 책임자가 줄을 잡게 되어 있습니다. 그가 어떻게 줄을 잡고 선을 긋느냐에 따라 도시의 모양이나, 길의 너비가 달라집니다. 예를 들어서 대통령은 나라의 측량줄을 잡고 있는 사람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대통령의 의지에 따라서 새로운 도시가 생기기도 하고, 고속철도가 생기기도 합니다. 즉, 대통령이 가장 관심을 기울이는 분야가 곧 그가 가장 중요하게 일하는 영역(領域)이 되는 것입니다. 우리나라가 해방되었을 때는 미국 대표와 소련 대표가 만나서 북위 38도에 선(線)을 그었습니다. 그 선(線)하나, 때문에 민족이 둘로 갈라지고, 수많은 이산가족들이 생겨나는 엄청난 결과가 초래하게 되었습니다. 여기에서 측량줄을 잡고, 있는 사람은 이처럼 세상을 움직일 수 있는 실질적인 권한을 가진 사람입니다.
그것도 단순히 한 나라가 아니라, 전 세계를 수중에 쥐고 있는 사람, 마음대로 선(線)을 그어 나라들을 없애기도 하며, 새롭게 만들기도 하는 사람입니다. 그가 지도에 동그라미를 친 곳은 세계의 중심지가 되고, 가위표를 친 곳은 폐허가 됩니다. 예전에는 대통령이 차를 타고 가다가 멈춰 세우고, 망원경으로 한참 들여다보면, 바로 그 다음날부터 온갖 중장비들이 동원되고, 공사가 시작되곤 했습니다.
예를 들어서 구미는 전형적인 농촌지역이었는데, 대통령이 축량줄로 한번 재고 나니까, 공업도시가 되어 버렸습니다. 선지자는 세계를 마음대로 주무를 권한을 가진 사람을 보았습니다. 그래서 그 사람에게 대체 어디로 가느냐? 고 물었습니다. 그가 세상에서 가장 관심을 가지고 있는 곳이 어디냐? 즉 가장 먼저 통치를 시작할 곳이 어디냐? 고 물은 것입니다. 그러자 그는‘예루살렘’이라고 대답했습니다.
그가 자신의 통치에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고 있는 일은 예루살렘의 재건(再建)입니다. 그는 거대한 쓰레기 더미가 되어 버린 예루살렘에서부터 일을 시작할 것입니다. 그렇다면, 예루살렘이 완전히 변모(變貌)하는 것은 시간문제입니다. 2절)...예루살렘을 측량하여 그 너비와 길이를 보고자 하노라”는 것은 현재의 예루살렘을 측량하겠다는 말이 아닙니다. 그가 측량하려는 것은 예루살렘을 장차 어디까지 확장할 수 있는가? 그 최대치는 얼마인가? 하는 이것입니다.
도움을 받으려면 실세(實勢)를 만나야 합니다. 결정권이 없는 사람들을 아무리 오래 붙들고 이야기해 봐야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측량줄을 잡고 있는 사람을 만나야 합니다. 그의 지시 한마디에 모든 일이 결정됩니다. 스가랴가 보니까, 역사의 흐름을 주장하는 분이 가장 관심을 가진 곳은 예루살렘이었습니다. 지금 예루살렘에는 5만 명 정도 되는 사람들이 겨우 돌아와서 초라한 성전을 짓고 있습니다. 그런데 세계의 주권자가 바로 그곳에서부터 모든 일을 시작하시겠다는 것입니다.
3-4절)내게 말하는 천사가 나가고 다른 천사가 나와서 그를 맞으며 이르되 너는 달려가서 그 소년에게 말하여 이르기를 예루살렘은 그 가운데 사람과 가축이 많으므로 성곽 없는 성읍이 될 것이라 하라”사회자 역할을 하며, 안내해 주던 천사가 어디론가 나가려 할 때, 또 다른 천사가 등장하더니, 그 소년에게 빨리 가서‘성곽의 개념이 필요 없을 정도로 예루살렘이 확장될 테니까 성의 크기를 최대한 크게 잡으라.’고 전하라고 합니다. 여기에서 어려운 문제는 천사가 말하는 소년이 누구냐? 는 것입니다. 스가랴를 안내하던 천사가 나간 이유는 그 소년을 따라잡기 위해서였던 것 같습니다. 아마 그 소년의 일이 중요했기 때문일 것입니다. 어떤 사람은 그 소년이 스가랴이며, 그 당시 스가랴는 나이가 어렸을 것이라고 추측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저는 스가랴가 아니라, 측량줄을 잡은 사람일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다시 말해서, 지금 예루살렘을 재건하려고 하는 주인은 다 큰 어른이 아니라, 어린 소년이라는 것입니다. 이것이 새 성전의 모순입니다. 어련 소년이 아주 큰 빌딩을 지으려 든다고 생각해 보십시오. 그의 말을 믿는 사람도 없을 뿐더러 전부 미쳤다고 조롱할 것이고, 인부들조차 그를 업신여길 것입니다. 그리스도는 돈이 많은 분도 아니었고, 많은 군대를 거느린 분도 아니었습니다.
세상 적으로 볼 때, 그는 맨손으로 큰 빌딩을 짓겠다고 덤비는 어린아이처럼 연약했습니다. 그러나 그가 가졌던 큰 능력이 무엇입니까? 사랑의 능력, 사람을 변화시키는 성령의 능력이었습디다. 결국 사람에게 가장 큰 힘을 발휘하는 것은 사랑입니다. 일시적인 자극을 주는 데는 다른 수단들이 더 유용할지 몰라도, 그 효과는 그리 오래가지 못합니다. 무엇보다 효과를 빨리 사라지는 수단은 돈입니다. 돈은 사람을 변화시키지 못합니다. 그러나 사랑은 사람의 가치를 되찾게 해 줍니다. 그렇게 가치를 되찾고, 변화된 사람은 지속적으로 선(善)한 일을 해 나갈 수 있습니다. 소년이 성(城)을 측량하러 나갔다는 것은 이 성(城)이 돈의 힘이나, 사람의 힘으로 세워지는 것이 아님을 보여 줍니다. 새 예루살렘은 사랑으로, 성령의 능력으로 세워질 것입니다. 지금 예루살렘 성전을 재건하는 일은 마치 큰 집을 건축하려 드는 것만큼이나, 무모한 일입니다. 또 그 규모나 겉모습도 너무나 초라해서 이 성전이 중요한 역할을 할 것이라는 하나님의 말씀이 도저히 믿어지지 않을 정도입니다. 그러나 천사는 소년을 따라가는 다른 천사에게 아주 크게 측량하라는 말을 전하라고 합니다. 4절)...예루살렘은 그 가운데 사람과 가축이 많으므로 성곽 없는 성읍이 될 것이라 하라”사람과 가축이 얼마나 많이 몰려드는지 성곽 안에 다 수용할 수 없을 정도가 될 테니까 크게 측량하라는 것입니다.
현실적으로 생각해 봅시다. 오늘 본문이 궁극적으로 가리키는 것은 유다 백성들이 짓고 있는 성전이 아니라, 신약 교회입니다. 교회는 성곽으로 에워쌀 수 없는 규모로 확대될 것입니다. 그렇다면 지금 유다 백성들이 짓고 있는 성전과 앞으로 이루어질 교회 사이에는 어떤 관계가 있을까? 이 성전은 신약교회의 모체(母體)입니다.
이 성전에 성령이 임하시는 것을 시발점으로 전 세계의 흩어진 자들에게 성령의 불길이 번져 나갈 것입니다. 종이가 타는 모습을 생각해 보십시오. 종이 한쪽 끝에 불이 붙으면, 곧 종이 전체로 번지게 되어 있습니다. 달리 비유하면, 봉화대(烽火臺)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첫 봉화대(烽火臺)에 불이 붙어야 다른 봉화대(烽火臺)에도 불이 붙습니다.
지금 유다 백성들은 성령의 역사가 임하실 첫 번째 봉화대(烽火臺)를 짓고 있는 것과 같습니다. 성령의 역사가 구체적으로 처음 나타나는 곳이 어디엔가는 있어야 합니다. 그래야 다른 곳으로 반져 나갈 수 있습니다. 그런데 유다 백성들은 규모나 겉모습만 가지고 자꾸 옛날 성전과 비교하며, 조금만 어려움이 생겨도 공사를 중단해 버렸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이 성전의 초라한 모습이 전부가 아니라고 하십니다. 이 성전은 봉화대(烽火臺)입니다. 여기에 성령의 불이 붙어야 전 세계에 흩어져 하나님의 은혜를 사모하는 자들, 율법을 배우면서 하나님의 구원을 기다리는 자들에게도 성령의 역사가 임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마치 그들이 모든 일을 완성해야 할 것처럼 생각하고 낙심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도 우리 힘으로 북치고 장구 치고 온갖 일을 다 하려 들 때가 많습니다. 즉 우리 힘으로 구제도 하고, 병든 사람도 치료하고, 다리도 만들고, 모든 일을 하려고 하니까 걱정도 많고, 머리도 복잡한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너희에게 중요한 일은 은혜 받는 것이며 성령으로 충만해지는 것이다. 그러면 불길은 저절로 번져나가게 되어 있다’고 말씀하십니다.
일단 우리에게 성령의 불이 붙으면, 저절로 그 불길이 번져 나가서 노래할 사람은 노래하고, 작곡할 사람은 작곡하고, 춤출 사람은 춤추고, 다리 만들 사람은 다리를 만들고, 병 고칠 사람은 병고치고, 귀신 쫓아낼 사람은 귀신을 쫓아낸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혼자서 모든 것을 다하려 드니까 하나님이 하시는 일이 더뎌 보이고, 시시해 보일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의 역할은 모든 일을 다 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모든 것을 다 할 수도 없고, 다 책임질 수도 없습니다. 우리의 역할은 뇌관(雷管)에 불을 붙이는 이것입니다. 그러면 나머지 일들은 하나님이 진행시켜 나가십니다. 은혜의 역사와 축복의 역사를 측량할 수 없을 정도로 확대해 나가십니다. 5절)여호와의 말씀에 내가 불로 둘러싼 성곽이 되며 그 가운데서 영광이 되리라”아마 그 당시 사람들은 성곽 없는 성(城)을 생각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워낙 도적도 많고, 난리도 자주 일어났기 때문에 성곽 없는 성은 언제 부도가 날지 모르는 기업처럼, 불안정한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이렇게 말씀하십니다.‘내가 불성곽이 되어 주겠다 아무도 너희를 공격하거나 너희의 삶을 파괴하지 못하도록 막아 주겠다.’누군가 우리의 삶의 토대(土臺)를 파괴하려고 할 때, 곧바로 이 약속(約束)을 주님께 상기시켜 드리면서 기도하십시오. 하나님이 주신 가정이 무너지려고 합니까? 또 하나님이 주신 사업이 무너지려고 합니까? 그리고 하나님의 뜻이라고 믿고 오늘까지 붙들어 온 일의 기강이 흔들리고 있습니까? 불성곽이 되시는 하나님께 기도하십시오.
원수 마귀는 하나님의 백성을 세상에서 뿌리 뽑고자 하며, 무슨 수를 써서라도 그들이 발붙이지 못하도록 막으려고 합니다. 즉 세상에서 장사도 하지 못하게 하고, 공부도 하지 못하게 하고, 선한 일도 하지 못하게 하려는 것이 마귀의 목적입니다. 현실적으로 보면, 우리가 세상에서 살아남을 길이 막연한 것도 사실입니다.
세상 사람들은 눈에 불을 켜고 뛰어다니는데, 아무런 힘도 없는 우리가 무슨 재주로 살아남겠습니까? 그러나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하나님이 보이지 않는 불 말과 불 병거로 지키고 계십니다. 우리는 눈에 보이는 성채(城寨)를 지을 필요가 없습니다. 조바심을 내면서 돌 벽을 세우고, 뾰족한 탑을 만들고, 대포 구멍을 만들 필요가 없습니다. 하나님이 친히 불성곽이 되어 주시기 때문입니다.
오늘날 우리가 깨달아야 할 사실이 무엇입니까? 우리의 먹고사는 문제나, 안전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세상 다른 곳에 성령의 불이 옮겨 붙을 수 있도록 준비하고 기다리는 헌신된 공동체를 세우는 일이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지금 성경은 예루살렘이 대도시가 될 일에 대해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포로생활에서 갓 돌아온 이 작은 공동체로부터 시작되는 성령의 역사가 전 세계에 흩어져 있는 무리들에게 번져 갈 일에 대해 말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지금 이 성전이 아무리 작고, 초라하더라도, 이 성전 때문에 아무리 많은 어려움을 겪는다고 하더라도 믿음으로 기다려야 합니다. 하나님은 곧 이 초라한 성전에서부터 큰일을 시작하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Ⅱ.돌아오지 않는 자들에 대한 권면 유다 백성들 중에는 고레스의 칙령이 내렸음에도 불구하고, 예루살렘으로 돌아오지 않은 자들이 많았습니다. 그들은 대개 현실적인 이유 때문에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이방 땅에 적응해서 장사도 잘하고, 돈도 많이 벌고 있는데, 새삼스레 안정된 기반을 버리고, 고향으로 돌아올 필요가 없었던 것입니다.
반면, 예루살렘으로 돌아온 백성들은 고전을 면하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아무것도 없는 폐허 위에 성전도 짓고, 예루살렘 성(城)도 재건해야 했습니다. 돌아오지 않은 사람들이 생각한 것이 무엇입니까?‘남들이 성전을 다 지어 놓으면 그때 순례 행진을 해서 감사헌금 한번 크게 내면 되지, 뭐 때문에 이 번창하는 생업을 포기하고 돌아가서 고생을 하겠어? 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그런 자들에 대해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6절)오호라 너희는 북방 땅에서 도피할지어다. 여호와의 말이니라 이는 내가 너희를 하늘 사방에 바람 같이 흩어지게 하였음이니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하나님은 아직도 바벨론 땅에 남아 있는 유다 백성들에게 도망치라고 말씀하십니다. 여기에서‘북방 땅’은 바벨론을 가리킵니다. 그 당시에 바벨론은 세계의 중심지였습니다.
모든 문명과 학문이 바벨론에 집중되어 있었습니다. 따라서 바벨론에서 성공하면 곧 전 세계에서 성공하는 것이었으며, 바벨론에서 돈을 벌면, 곧 전 세계의 경제권을 장악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그 중심지에서 도망치라고 하십니다. 바벨론은 결코 안전한 곳이 아니라고 하십니다.
우리말 성경에는 6절)내가 너희를 하늘 사방에 바람 같이 흩어지게 하였거니와”라는 구절이 앞에 나오지만, 히브리어 성경에는 나중에 나오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우리말 성경을 보면, 하나님이 유다 백성들을 흩으셨다는 말처럼 읽히지만, 히브리어 성경을 보면, 바벨론을 회리바람으로 흩을 테니까 빨리 도망치라는 말로 읽히는 것입니다. 어느 쪽이든 죄가 주는 안정된 삶에서 빨리 떠나라는 뜻인 것만큼은 분명합니다. 하나님은 한번 씩 세상에 회리바람을 보내서 모든 상황을 뒤바꾸어 놓으십니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회리바람의 위력을 잘 모르지만, 회리바람이 한 번 불면, 집만 부서지는 것이 아니라, 지역 전체가 폐허가 되어 버립니다. 하나님은 그의 택한 백성 중에서 바벨론에 눌러앉아 있는 자들에게 7절)...이제 너는 피할지니라.” 라고 말씀하십니다. 즉 사탕발림과 같은 바벨론의 물질적인 영화와 편한 생활에 빠져 있지 말고, 과감하게 박차고 나와서 위대한 복음의 시대, 교회의 시대를 준비하기 위해 모험을 하라는 것입니다.
그러려면 예루살렘으로 돌아와서 눈에 보이는 성전을 짓는 일도 중요하지만, 무엇보다 신실한 공동체를 세우기 위해 힘써야 합니다. 구약의 성전과 신약의 성전은 이 점에서 구별됩니다. 구약 성전의 핵심이 장소에 있었다면, 신약 성전의 핵심은 공동체에 있습니다. 포로생활에서 돌아온 중간기에는 이 두 개념이 공존하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성전도 지어야 했고, 율법의 공동체도 만들어야 했습니다. 바벨론을 떠나라는 것은 현실을 무시하고, 사회생활을 포기한 채, 전부 목사나, 선교사가 되라는 뜻이 아니라, 세상과의 관계를 다시 설정하라는 뜻입니다. 우리도 당연히 세상에서 공부도 해야 하고, 돈을 벌어야 하며, 직장생활을 해야 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세상에 사는 궁극적인 이유, 세상에 관심을 가지는 궁극적인 이유는 점검해 보아야 합니다. 만약 자신에게 필요한 것들이 전부 세상에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세상에 투자하면 투자할수록 존경을 받고, 돈도 벌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관심을 갖는 것이라면, 그 사람은 바벨론에 눌러앉아 있는 자로서 장차 바벨론과 함께 망할 것입니다.
우리는 침몰할 배에 탄 선원의 심정으로 세상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우리는 세상이 곧 침몰할 것을 압니다. 그런데도 왜 타고 있습니까? 이미 배에 올라탄 다른 고집스러운 사람들을 한 명이라도 더 설득하여 내기 위해서입니다. 그 목적을 위해 그 배에서 요리사로도 일하고, 항해사로도 일하고, 갑판원으로도 일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세상에서 돈 벌고, 일도 하는 것은 세상이 너무 좋아서도 아니고, 세상에서 성공하기 위해서도 아닙니다. 최후의 순간까지 다른 영혼들을 돕기 위해 예수님이 호루라기를 불면서‘떠나라!’고 하실 때, 신속히 그들을 건져서 떠나기 위해 요소요소에 박혀서 일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백성들 중에도 바벨론의 영광에 눈이 뒤집힌 사람들이 많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바벨론의 영광은 전부 훔쳐 온 영광이었습니다. 즉 다른 나라 사람들을 죽이고, 약탈해서 빼앗아 온 물건들로 이룬 영광이었습니다. 그런데도 그 죄악의 영광에 빠져서 위대한 새 시대를 열기 위한 부르심에 반응하지 않은 자들에게 하나님이 말씀하시는 바가 무엇입니까? 바벨론은 결코 안전하지 않다는 것입니다. 말씀의 역사와 기도의 역사가 일어나는 신실한 공동체만이 안전하다는 것입니다. 오늘날에도 바벨론에 얽매여 사는 시온 백성들이 많이 있습니다. 결혼하기 전에는 뜨겁게 믿던 사람들도 결혼해서 아이를 낳고 나면, 오직 돈 벌고, 아이 키우는 일에만 빠져 사는 경우가 적지 않습니다. 그러나 우리의 필요를 채워 주는 곳은 세상이 아닙니다. 얼핏 보기에는 힘 있고, 돈 있는 사람들이 내 필요를 채워주는 것 같지만, 실제로는 하나님이 그 사람들을 통해 채워 주시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세상 사람들에게 잘 보여야 모든 것을 얻을 수 있을 것처럼 세상에 얽매여서 빠져 나오지 못하는 사람은 어리석은 사람입니다. 야곱의 생애가 보여 주는 바가 곧 그것입니다. 그는 약은꾀를 써서 외삼촌 라반의 양(羊)을 도둑질했습니다. 즉 양(羊)들은 물을 먹으면서 교배(交配)를 하는데, 그때 시신경에 자극을 주면, 무늬나 점 있는 새끼가 태어난다는 것을 알고, 튼튼한 양(羊)들을 전부 자기 소유로 빼돌린 것입니다.
그것은 일종의 유전 지식(知識)을 이용한 도둑질이라고 할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나중에 그가 알게 된 사실이 무엇입니까? 하나님이 이미 자신을 부자(富者)로 만들기로 작정해 놓으셨다는 것입니다. 즉 자신이 그렇게 약은꾀를 쓰지 않았더라도 하나님이 부자(富者)가 되게 하셨으리라는 것입니다. 그 사실을 알게 된 야곱은 과감하게 하란을 떠날 수 있었습니다. 왜 시온 백성들이 바벨론을 떠나지 못했을까? 바벨론이 자신들을 먹여 살린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바벨론에서 식당이나, 여관을 경영하면서 안정된 삶을 누리고 있었기 때문에 예루살렘으로 돌아갈 수가 없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생각은 정반대였습니다. 그들은 바벨론이야말로 세상에서 가장 안전한 곳이며, 예루살렘은 위험한 곳이라고 생각했지만, 하나님은 예루살렘이 안전한 곳이며, 바벨론을 대상으로 밥벌이를 하고 있는 그들이야말로 위험한 상태에 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8절)만군의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되 영광을 위하여 나를 너희를 노략한 여러 나라로 보내셨나니 너희를 범하는 자는 그의 눈동자를 범하는 것이라" 눈동자는 사람의 몸에서 가장 소중한 부분입니다. 눈동자를 잃으면, 모든 것을 잃는 것이나 다름이 없습니다. 그래서 사랑하는 사람에 대해 표현할 때도‘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다’라고 말합니다. 하나님은 말씀에 순종하는 이 작은 신앙의 공동체야말로 하나님의 눈동자라고 말씀하십니다. 초라한 성전도 제대로 지을 힘이 없는 자들, 자신들의 생활조차 안전하게 지키지 못하는 이 백성들이야말로 하나님의 눈동자라고 말씀하십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선언(宣言)입니다. 오늘날 하나님이 눈동자처럼 귀하게 여기시는 사람은 누구입니까? 세상에서는 인정을 받지 못하지만, 하나님 앞에 나아와 교회를 세우기 위해 애쓰며, 말씀으로 변화되기를 간구하는 그런 자들입니다. 그들을 괴롭히는 것은 하나님의 눈을 찌르는 것이요, 그런 자들을 하나님은 절대로 용납하지 않겠다고 말씀하십니다.
우리는 세상과 우리의 위치를 완전히 다른 눈으로 볼 필요가 있습니다. 세상은 절대로 안전한 곳이 아닙니다. 우리가 모인 곳이 안전한 곳입니다. 하나님이 불 성곽(城廓)으로 우리를 지키고 계십니다. 8절)...나는 너희를 노략한 여러 나라로 보내셨나니 너희를 범하는 자는 그의 눈동자를 범하는 것이라”는 것은 하나님이 그들을 노략한 여러 나라를 심판하여 빼앗긴 영광을 되찾으신다는 뜻입니다.
바벨론은 지금 하나님께 빚을 잔뜩 지고 있는 기업과 같습니다. 엄청난 부채를 지고 있는 기업은 부실기업이요, 퇴출되어야 할 기업입니다. 바벨론이 진 빚이 무엇입니까? 성전(聖殿)을 파괴하고, 하나님 백성의 눈에서 피눈물을 뽑아낸 것입니다. 바벨론이 폭삭 망한다 해도 그 빚을 다 갚을 수는 없습니다.
그런데 미련한 양(羊)떼들은 밥벌이를 하기 위해 그 바벨론에 눌러앉아 있는 것입니다. 세상은 우리에게 갚을 빚이 많습니다. 즉 세상은 너무나도 많은 성도들의 눈에서 눈물을 뽑아냈으며, 수많은 하나님의 백성들을 절망시켰습니다. 마치 모든 것이 제 소유인 양 큰소리를 쳤고, 자신들의 말을 들어야 잘 살 수 있을 것처럼 거짓말했습니다. 어떤 사람이 정말 부자(富者)인지, 아닌지, 알아보려면, 겉모습이 아니라, 장부(帳簿)를 살펴보아야 합니다. 세상은 화려한 것들을 많이 가지고 있는 것 같지만, 실제로는 빚이 훨씬 더 많습니다. 하나님은 그 빚을 우리에게 넘겨주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세상에 대해 좀 더 당당해질 필요가 있습니다. 세상은 우리가 기도해 주어야 살 수 있으며, 교회에서 은혜를 흘려보내 주어야 살 수 있습니다.
교회가 돈 많은 부자(富者)들을 한 명이라도 더 끌어들이려고 아첨할 필요가 없습니다. 오히려 그들이 우리에게 고마워해야 합니다. 그런데 고마워하기는커녕 오히려 재 재발이란 핑계로 공동체를 해체시키고, 교회당을 파괴하며, 박해할 때, 하나님은‘원금과 이자를 모두 다 갚으라.’고 청구하실 것입니다. 그러면 한순간에 부도(不渡)가 나는 것입니다.
9절)내가 손을 그들 위에 움직인즉 그들이 자기를 섬기던 자들에게 노략거리가 되리라 하셨나니 너희가 만군의 여호와께서 나를 보내신 줄 알리라”그(하나님)가 손을 한번 움직이시면, 어떻게 됩니까? 세상이 완전히 뒤집혀 버립니다. 노략(擄掠)하던 자가 노략을 당하고, 지배(支配)하던 자가 지배를 당합니다. 이것은 세상이 절대로 안전하지 않음을 보여 줍니다. 하나님의 손이 한번 움직이면, 어제까지만 해도‘나는 새를 떨어뜨릴 정도로 큰 권세를 누리던 자들’이 한순간에 감옥(監獄)에 갇혀 버리고, 어제까지만 해도 돈으로 세도(勢道)를 부리던 자들이 한순간에 고개를 숙이고, 돈을 꾸러 다니는 신세가 됩니다. 세상은 결코 안전하지 않습니다. 안전한 곳은 새 예루살렘, 하나님의 영광이 있는 그곳뿐입니다. Ⅲ.시온의 영광이 회복되리라 하나님은 힘들게 성전을 건축하고 있는 유다 백성들에게 기뻐하라고 말씀하십니다.10절)여호와의 말씀에 시온의 딸아 노래하고 기뻐하라 이는 내가 와서 네 가운데에 머물 것임이라" 시온의 가장 큰 축복(祝福)이 무엇입니까? 하나님이 다시 그들 가운데 임재 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임재하시면, 그곳이 곧 세계의 중심이 됩니다. 소년의 입에서‘예루살렘’이라는 말이 나오는 순간, 모든 구원은 예루살렘에서부터 이루어지게 되어 있습니다. 가장 큰 축복(祝福)은 우리 가운데 하나님이 함께하시는 증거가 나타나는 이것입니다. 하나님이 함께 하시지 않는 성전은 아무리 웅장하다 해도 의미가 없습니다. 이 부분에서 우리가 구별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일반은총과 특별은총의 차이입니다. 일반은총은 하나님의 간접적인 은혜로서 세상 사람들도 누릴 수 있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서 누구든지 열심히 일하면, 출세하고 돈 벌 수 있는 것이 일반은총입니다. 그러나 일반은총으로는 죄(罪)를 치료할 수 없습니다. 그저 사람들이 한없이 악(惡)해지는 것을 막을 뿐입니다. 이를테면, 정신 질환자를 병원에 수용해 놓는 것과 같습니다. 사실 일반은총을 주신 것만도 얼마나 다행스러운 일인지 모릅니다. 정신이 온전치 못한 사람들이 거리를 활보하고 다니거나, 살인범들이 탈옥해서 아무나 해치고 다닌다면, 얼마나 불안하겠습니까? 좋은 사회는 여성이나, 아이들처럼 힘없는 사람들이 안심하고 다닐 수 있는 사회입니다. 그러나 이런 일반은총으로는 사람을 고치지 못합니다. 단지 증세만 누그러뜨릴 뿐입니다. 반면에, 특별은총은 사람을 치료합니다. 정신이 온전치 못한 사람을 고쳐서 바른 생각을 하게 하며, 죄인을 고쳐서 남을 섬기게 합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은혜요, 영광의 능력입니다. 예루살렘이 중요한 이유가 무엇입니까? 이곳에서 사람이 변하고 새로워지는 일이 일어나기 때문입니다.
교회가 세계의 중심인 이유는 권력을 가진 자가 많거나, 돈을 가진 자가 많기 때문이 아니라, 사람을 변화시키는 능력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 능력은 악(惡)한 기질을 약간 누그러뜨리는 데서 그치지 않습니다. 마치 다시 태어나는 것처럼 근본적으로 변화시켜 버립니다. 시온의 영광이 회복된다는 것은 이러한 교회의 기능이 회복된다는 뜻입니다. 그러므로 영혼을 치료받기 원하는 자들은 누구라도 이곳을 찾아오면 됩니다. 9절)...자기를 섬기던 자들에게 노략거리가 되리라’는 것은 나쁜 뜻이 아닙니다. 진정으로 바벨론이 살 수 있는 길은 자신들이 한 때, 지배했던 유다 백성들의 종이 되는 이것입니다.
전적으로 그들의 가르침에 복종하고, 그들의 말을 따르는 이것입니다. 이것은 유다 백성들이 교만해져도 된다거나, 세상을 지배하게 된다는 뜻이 아닙니다. 세상이 살아나기 위해서는 보잘 것 없는 하나님의 백성들이 가진 말씀의 지배를 받아야 한다는 뜻입니다. 가인도 아벨의 종이 되었다면, 망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또 이스마엘도 이삭을 주인으로 인정했다면, 아브라함의 집에서 쫓겨나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리고 에서도 야곱을 섬겼다면, 구원을 받았을 것입니다. 이처럼 자기들보다 못한 하나님의 백성들을 섬기고, 그들의 노략거리가 되어야 한다는 것은 세상 사람들에게 큰 시험거리입니다. 그러나 그렇게 하는 사람은 살아날 것입니다. 우리는 자존감을 되찾아야 합니다. 사실은 우리가 얼마나 굉장한 존재인지 모릅니다. 우리는 사랑으로 세상을 노략질하고, 정복하도록 보냄 받은 사람들입니다. 그 노략질을 잘할 때, 피차 살아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자존감을 잃어버리고, 세상에 구걸하기 시작하면, 피차 불행해지고, 비참해 질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 일을 위해 다시 유다와 예루살렘을 택하셨다고 말씀하십니다. 12-13절)여호와께서 장차 유다를 거룩한 땅에서 자기 소유를 삼으시고 다시 예루살렘을 택하시리니 모든 육체가 여호와 앞에서 잠잠할 것은 여호와께서 그의 거룩한 성소에서 일어나심이니라 하라 하더라." 이제 하나님은 다시 침묵하지 않으실 것입니다. 하나님이 그동안 침묵하신 것은 말씀이 없을 때의 답답함과 절망을 가르치시기 위해서였습니다. 13절에서‘모든 육체’란 모든 인간을 가리킵니다. 인간은 자기 자신을 고칠 수 없습니다. 만약 우리 몸에 치명적인 병(病)이 있다면, 치료 해 줄 의사(醫師)를 찾아서 세상 끝까지라도 찾아가지 않을까? 즉 심장병이 있는데, 그 병(病)때문에 도저히 살 수 없다면, 아무리 먼 나라라도 찾아가서 치료받으려고 하지 않을까? 하나님은 죄(罪)지은 인간들이 찾아갈 수 있는 곳으로 예루살렘을 다시 택하셨습니다. 죄(罪)는 감추면 안 됩니다. 죄(罪)가 치료되지 않으면, 결코 행복해질 수가 없습니다. 그런데 죄(罪)를 치료받으려면, 말씀의 샘이 솟는 시온으로 찾아가야 합니다. 그곳은 하나님이 불 성곽(城廓)이 되어 지켜 주시는 곳이기 때문에 다시는 쫓기거나, 위협당할 필요가 없습니다. 그러나 예전처럼 탐욕스럽게 살 수는 없습니다. 오늘날 하나님은 부르심을 받고서도 여전히 바벨론을 의지하고 있는 시온 백성들을 일깨우고 계십니다. 우리도 먹고사는 일에 얽매여 눌러앉아 있으면, 안 됩니다. 그보다 더 위대한 일을 준비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일은 혼자 하지 못합니다. 공동체가 함께 해야 합니다.
11절)그 날에 많은 나라가 여호와께 속하여 내 백성이 될 것이요 나는 네 가운데에 머물리라 네가 만군의 여호와께서 나를 네게 보내신 줄 알리라”얼마나 놀라운 말씀입니까? 하나님은 돈이나, 권력이 아닌 사랑으로 세상을 바꾸실 것입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그 사랑으로 변화되어 새 예루살렘의 백성이 될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讀者)여러분, 이 말씀은 곧 오늘날 우리에게 주시는 말씀입니다. 내 힘으로 모든 것을 다 하겠다고 생각지 마십시오. 그러면 오히려 아무 일도 할 수 없습니다. 우리는 오직 은혜를 사모하며 성령 충만해지는 일만 생각해야 합니다. 다른 것들은 전부 하나님께 맡기십시오. 그러면 하나님이 친히 그 역사를 들불처럼 번져 나가게 하실 것입니다. 내 마음이 아직도 세상과 결탁되어 있지는 않습니까? 아직도 세상이 나를 행복하게 해 준다고 착각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그렇다면 굉장히 위험한 상태에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가야 할 길은 따로 있습니다. 세상이 볼 때, 우리의 모습은 실패한 자의 모습이요, 소외된 자의 모습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너희는 내 눈동자’라고 말씀하십니다. 즉‘내가 너희를 가슴에 품고 너희 가운데 거하며 친히 불성곽이 되어 너희를 지켜 주겠다.’고 말씀하십니다. 그러므로 이제는 생각을 바꾸십시오. 세상에 헌신함으로써 세상에서 돈 벌고 성공할 생각을 아예 버리십시오. 여호와의 손에 붙들려서 우리를 노략하던 자들을 사랑으로 노략하며, 은혜로 정복하기를 힘쓰십시오.
그러면 교회도 살고, 세상도 사는 큰 축복(祝福)이 이 땅에 임할 것입니다. 새 예루살렘이 끝없이 확대되어 수많은 사람들과 가축(家畜)들이 하나님의 불 성곽(城廓)안으로 들어오는 축복(祝福)이 임할 것입니다.
히11:1-2절)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이지 않는 것들의 증거이니 선진들이 이로써 증거를 얻었으니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