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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小說 허준(許浚) 第89話>
- 이은성 지음 / 소설 동의보감
免賤 第三
도지의 눈매가 전일과 달라져 있었다.
가고 오고 4개월이 넘는 머나먼 대륙길에서 겪은 고생을 허준이 위로했을 때도 딴때없이 말수가 적었고 1년 늦게 내의원에 들어왔건만 자기보다 이름을 더 드러낸 경쟁자에 대한 지난날의 시샘 어린 눈빛도 섞여 있지 않았다.
"고맙다니 무슨 말씀이오니까?"
동년배이건만 도지에 대한 존대는 근자 스승 유의태에 대한 새삼스런 존경과 그가 스승의 일점 혈육 이라는데 대한 새삼스러운 예우였다.
"근자 있었던 얘기를 다 들었소. 어의가 허직장의 의술을 내 아버님의 성명과 싸잡아 매도할 제 한사코 반박했다는 그 말을."
"난 아버님의 기대만큼 자라지 못한 인간이었소. 사람으로도 의원으로도."
"무슨 말을 하오니까?"
"더구나 내가 상경할 제 어의 양예수 앞에 내가 누구의 자식이노라 밝히지 말아라.하셨을제도 귀담아 듣지 아니했소. 그건 넓은 세상에 나와 보지 못하고 산음 촌구석 의원인 아버님이 애써 자기의 존재를 어의와 빗대어 내세워보려는 허욕 섞인 말쯤으로 치부했소. 더구나 양예수 그 사람과 목숨을 걸고 맞섰다는 과거사일랑은 애당초 꾸며낸 얘기지 사실이라 여기지도 아니했고. 그러나 이번에 직장과 어의 사이에 오간 자초지종을 전해 듣고선 알게 되었소 ..."
"비록 지난날이라 하나 나는 아버님의 의술이 양예수 저 사람과 필적 할 만한 경지에 이른 사람이었음을 믿지 아니했던 사람이오. 바로 내가 자식이면서 말이오."
유도지의 말소리가 목안에서 잠겼다. 그러고 곧 감정을 추스른 도지가 조용히 말을 이었다.
"그 자랑스러운 아버님을 앞장서 비웃고 앞장서 의절하고 음신을 끊고 마친내 임종조차 외면해 산 나는 이제야 천하에 불효 .막급한 인간인걸 깨달았소."
허준이 유도지의 손을 잡았다. 그의 눈시울도 뜨거워지고 있었다. 또 한번 눈물을 삼킨 유도지가 천장을 향해 회한 어린 한숨을 길게 토했다. 허준이 위로의 말을 잊은 채 자기의 눈을 가렸고 그 손바닥도 눈물에 젖어 있었다.
그 유도지보다 1년 뒤 내의원 관원이 되면서 맨 처음 찾아보고 스승의 별세를 알렸을 때 그 무덤의 위치조차 물어오지 않던 유도지였었다.
그 스승의 무덤, 뭇 이름없는 민중의 병고를 더는 지름길이 될 오장육부를 담은 인체의 참모습과 그 생명체를 버팅긴 360가닥의 골격의 신비를 자기 몸으로 증명 해 보이고자 자수로 목숨을 끊었던 사람 ..
그 얼음골이 있는 골짜기를 넘어서 오르고 오른 천황봉 아래 서늘한 바람이 불고 첫새벽 첫 햇살이 종일 양지를 이루는 촛대봉 아래 묻힌 이여 ...
출사 후 혜민서에 떨어져 낮도 밤도 없이 영일없는 날을 보낼 제 다가오는 첫 한식을 꼽으며 스승의 성묘를 애태우는 그에게 문득 찾아온 김민세가 위로 했었다.
"산 이를 위해 바쁜 터에 죽은 이를 위해 애태울 것 없다. 근자 내가 재약산에 발길이 잦고 그곳과는 길이 멀지 않으매 그 사람 무덤에 솟는 잡풀은 내가 뜯어주리니 괘념치 마라."
한양 밀양이 하루 이틀길이 아님에서 김민세의 그 위로의 말을 믿고 아직 찾지 못한 무덤이나 지금 그 유의태의 넋이라도 살아 생전 돌아보지 않던 친자식 이 스스로 끊었던 부자지연을 다시 잇고자 피눈물을 뿌리는 것을 안다면 그 또한 작은 위안은 될 것인가... 그 침묵한 두 사람이 마주 않은 방안에 아내가 술상을 보아왔으나 스승을 화제삼으면서 차마 술잔을 기울일 수 없는 허준에게 유도지는 자청하여 서로가 말미를 내어 아버지의 무덤에의 동행을 부탁했고 허준 또한 감격해 약속을 주고받았다.
이날 허준은 유도지가 가져온 선물 앞에서 밤을 지새웠다. 금값 못지않게 귀물로 치는 중국비단 한 감은 허준에 대한 유도지의 깊은 감사와 우의를 드러낸 것이 었을 것이나 허준이 놀란 건 그 비단 옷감이 아니라 유도지가 북경에서 객관의 무료함을 달래기 위해 사보았다는 책 한 권이었다.
`중원의인전`이라 이름한 그 책 내용은 중국을 중심한 인간 세상에 의술이 비롯된 역사와 그 수천년 사이에 명멸한 빼어난 의인들의 약전이 적혀 있었다.
귀중한 인명을 다루는 지고한 업이건마는 베풀되 대가를 청구하는 업이다 하여 의를 천업으로 여기는 조선의 풍속에선 의업에 현저한 공이 있는 이도 기명해 기리고자 않는 터요, 아예 의원을 뽑는 자격에서부터 중인 이하의 신분으로 못박는다. 그러나 중국은 그렇지 않은 듯했다.
醫業에서 공적을 이룬 이를 일일이 기록하고 기린 그 책은 免賤이라는 身分上昇의 執念 으로 의원의 길에 들어선 허준에겐 하나의 새로운 經이요 歡喜고 自覺이었다.
책의 첫장은 의원의 시발을 신화에 두고 서술하고 있었다.
우선 당나라 사마정이 쓴 삼황본기에선 한나라 사마천의 사기의 오제본기와 더불어 복희씨, 신농씨를 같은 위에 두고 그 치적을 적기를 농, 상, 의의 개조요 인신우수의 모습을 한 신농은 인간 세상에서 처음으로 농구를 만들고 농사짓는 법을 가르쳤으며 날을 정하여 저자를 열어 서로 필요한 물자를 교환하여 편리하게 사는 법도 일러주었고 또 채찍을 들고 다니며 풀과 나뭇가지를 쳐 그 즙을 일일이 맛보아 마침내 인체에 유익한 약초를 발견했는데 약초 아닌 독초를 씹고 하루에 70회나 중독되어 사경을 헤맨 적도 무수했다고 적혀 있었다.
그러나 그 신화 같은 얘기보다 허준의 눈을 부릅뜨게 한 것은 후한 말기 사람으로 한 병에 한 가지 약만 고집하지 않고 여러 약초의 효력을 혼합하여 최대의 약효를 자아내게 하는 탕약의 지혜를 발견하고 발전시킨 장본인이자 한의술의 불후의 명저로 꼽히는 상한론과 금궤요략의 저자 장중경이 장사 태수라는 고급관리였다는 사실과 또 뒷날 이 장중경의 상한론을 정리하고 10권의 맥경을 저술한 왕숙화 또한 서진 때 태의령이라는 고급관리였다는 사실이었다.
그밖에 놀라운 인물은 또 있었다.
신체 각 부위별로 침과 뜸의 효력을 해설한 일명 갑을경이라고도 불리는 황제삼부침구경을 쓴 황보밀의 천재성은 그의 불우한 청소년 시절 싸움을 밥먹듯 하고 돌아다니며 인간을 치고 때릴 때 신체의 급소가 어디라는 것을 알게 된 데서 비롯하였다는 일화 등은 허준의 가슴을 밤새 두근거리게 했다.
이미 천수백 년 전 옛사람들의 일화집에 불과한 그 내용일지나 입지한 그 인물들이 모진 운명의 시련으로부터 마침내 의업에 정진해간 여러 모습에 비해 자기는 과연 무엇을 새로 찾으려 노력했는가 하는 자성이 그를 괴롭혔다.
자기가 지금 의에 대해 아는 것이 어디까지며 무엇을 더 알고자 애쓰고 있는가 돌이켜볼 때 아직 의원으로서 눈을 다 뜨지 않은 자신의 왜소함에서 탄식이 절로 나왔다.
찾아오는 병자와 맡겨지는 환자에게 최선을 다하고 정성은 기울이되 사람의 능력이 세상 모든 병자를 다 만날 수 없고 모든 환자를 찾아갈 수 없다 할진대 그 모든 이에게 병을 이겨내는 지혜를 가르치는 방법은 자기 또한 세상 모든 이들이 만병의 치료법을 찾아내는 책을 만드는 길 밖에 없다 여겨지는 것이다.
그러나 1천여 년이 지나도록 하나도 낡지 않는 방법으로 쓰임을 받는 책을 내기에는 자신의 의원으로서의 지식과 경험이 아직도 너무나 보잘 것 없다 여겨진다.
더 배워야 하리. 더 배우고 더 겪고 해야 하리.
벼름 같기도 하고 탄식 같기도 한 그 말을 무수히 뇌며 꼬박 날을 밝힌 허준은 그 새벽 뚜렷한 하나의 결심을 했다.
"일차 중국을 다녀오리라!"
잊고 있었던 기억도 되살아났다.
사행에서 돌아온 인물이 전해준 얘기.
이시진인가 하는 중국 의원이 저술하고 있다는 본초강목인가 하는 책의 내용은 어떤 것인가 하는 궁금증이 마치 눈앞의 불길이나 되는 듯이 허준을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앉게 했다.
"일차 다녀와야 하리!"
그 방법은 생각 않고 허준은 그 결심부터 재삼 자신에게 일렀다.
"꼭 다녀와야 하리!"
어느덧 날이 밝아 아침 새소리가 소란히 지저귀는 소리를 한귀로 들으며 허준은 이날 따라 입궐을 서둘렀다.
그날 밤 술시, 하루 업무의 마지막 임무인 각전과 각궁의 저녁 문안을 돌 때 일행을 선도하는 정작에게 허준은 중국행에 대한 자신의 강한 욕구를 토로했다.
동행하던 이공기가 놀란 얼굴로 그 허준을 돌아보았고 정작도 걸음을 세워 그 자세한 진의를 듣고자 했다.
허준이 일시적인 충동에서가 아니라 오래 전부터의 소망임을 얘기하자 정작은 그 허준의 손을 잡고 힘있게 흔들었다.
그 아귀힘 속에는 전폭적인 지지와 만강의 경의가 담겨 있었다.
"유념해주시오니까?"
정작이 즉답했다.
"이를 말이오. 사행에 배행하는 기회를 한 품계 승차하는 길로 여기는 문신들이나 한밑천 벌어들이려는 장사치들의 꿍심이 없고선 지원하는 인물이 없는 터인데 허직장이 솔선한다면 또한 내의원에서 모범이 될뿐더러 나 또한 작은 근심을 하나 더는 길이 되오."
허준은 그 말뜻이 뭔지 알았다.
한 차례에 2백 명을 오르내리는 사신 행차요 그 일행의 무사 귀환까지의 발병을 막고 병치레의 수발을 맡아 동행하는 배행 의원은 한 사람이 고작이다.
길은 또 얼마나 먼가. 편도 3천1백 리 왕복 6천2백여 리가 되는 그 고된 노정을 나귀 한 마리 배당되지 않은 의원의 신분으로 온갖 상비약통을 둘러메고 죽자살자 좇아가고 오는 그 보행길은 난생 처음 이국 풍정을 구경한다는 호기심 외 건져지는 것이 없다.
더구나 내의원 의원의 출세는 궐내의 왕족들의 발병과 치료에 있는 것이지 외국에 대한 견문을 넓히는 따윈 술상머리의 안주감이 고작이다. 뿐이랴. 한번 무사히 다녀오면 그 경험을 사 2차 3차 다사 선발되는 달갑잖은 선례가 있고 보면 내의원 의원들에게 있어 사행 배행은 자신의 출세를 방해하는 악운으로 두려워한다.
"순차도 무시하고 불쑥 청하는 것이 딴 사람의 질시를 자청하는 일 같사오나 ..."
허준의 말에 정작이 강하게 고개를 젓고 다짐했다.
"의원의 길이 어찌 의서 속에만 있다 하겠소. 마음을 세우기 따라선 타국의 수토를 밟아보고 맛본다 함은 결코 값싼 경험이 아닐 줄 아오. 내 꼭 허직장으로 하여금 절후가 순탄할 제 떠나는 사행 속에 끼어 가도록 애써보리다."
같은 사신 행차라도 혹서와 엄동을 피해 갈 수 있는 것은 그 시기를 선택할 수 없는 하급 관원으로서는 행운에 속한다.
허준은 그 세심한 정작의 배려가 고마웠다. 또 새벽녘의 결심이 불과 하루 사이에 성사가 된 데 더더욱 기뻤다.
세상살이를 한낱 구경꾼과 같은 호기심만으로 살 수 있으랴만 조선 사람에게 있어 중국은 내다볼 수 있는 유일한 외국이었다. 더구나 그 중국의 문명을 수없이 젖줄처럼 빨아들여온 조선으로서는 선비들은 선비들대로 공자가 태어난 나라, 주자학의 본산인 중국의 실체를 보기를 평생 소원으로 삼았다.
선비가 아닌 신분일지라도 온 세상의 중심에 위치한 나라라 자처하며 국호 또한 중국으로 부르는 대국의 모습을 꼭 보고 싶었다.
더구나 의술에 관한 많은 지식을 그 중국에서 받아오는 데 관심을 품은 이라면 더욱 그렇다.
그러나 육지로 이어진 나라요, 개인의 욕망이 아무리 치열할지라도 개인의 자격으로 국경을 넘는 일을 쌍방이 사죄로 다스리고 있는 한 조선 사람 중 무사히 국경을 넘는 자격은 극도로 한정돼 있다.
그 국경을 넘는 명분이 엄격히 말하여 대등한 나라 간의 대등한 자격으로의 교류가 아닌, 한쪽은 황제가 파견하는 칙사요 한쪽은 왕이 파송하는 사신인 것이고 더 사실대로 말하면 조공행차라 하여 과언이 아니다.
태조 이성계가 고려에 이은 우리의 국호를 조선으로 할지 화녕으로 할지 품신한 끝에 명태조 주원장이 찍어준 대로 조선이라는 국호를 사용하게 된 '조선'으로서는 사대모화는 곧 부동의 국시였음에서 개국 후 중국에 보내는 사신 행차는 조선 조정으로서는 결코 소홀히 할 수 없는 최중요한 국가행사이기도 했다.
물론 그건 조선에 대한 중국의 직접 지배를 의미하기보다 정치적 복종과 견제를 뜻하는 것이지만 사행 내왕의 명칭, 구성, 여정, 의식, 활동, 교역행위 등은 세밀한 규정으로 묶어 통제되고 있었다.
그 통제의 내용은 정기적인 것으로는 한 해가 저물기 전에 가 뵙는 동지사, 새해가 열리는 정초에 가 뵙는 정조사, 황제의 생탄일을 축하차 참례하는 성절사, 황실의 중요 제사에 맞추어 가는 천추사 ...
그밖에 감사할 일로 가는 사은사, 무언가 청할 일이 있어 가는 주청사, 축하할 일로 가는 진하사, 위로할 일로 가는 진위사 등등이 잇따르고
아울러 사신 행차의 삼사로 칭하는 정사, 부사, 서장관은 임명과 함께 한 품계가 특진하는 것이 관례이고 이들을 중심으로 항시 2백 명을 오르내리는 구성원들 속에는 이 모처럼의 허가받은 외국 나들이를 돈벌이나 귀한 물품을 사들여오는 절호의 기회로 삼는 사람들이 있기 마련이었다.
더구나 오가는 동안의 식량은 물론 마소의 먹이조차 자체 부담이요, 그 허드렛 짐들을 운반해 가는 아랫것들의 머릿수는 제한하되 인물의 선택은 삼사의 재량이었기에 그 수많은 사신 행차는 또 공공연히 대륙의 문물을 수입해오는 유일한 기회에 속했다.
그러나 비록 어떤 명목의 사신 행차라 할지라도 화약의 원료인 염초, 허가되지 않은 서적 그러고 지도의 밀반출은 극도로 엄한 범금사항이었다.
그 소국에 대한 대국의 독선과 편협함은 여말 문익점이 몇 톨의 목화 씨앗을 숨겨 들어오기 위해 붓대통을 이용해야 했던 시대로부터 결코 더 너그러워져 있지 않다.
"이시진이라 ..."
각전에 대한 밤문안이 끝나고 정작과 함께 정청으로 돌아가야 할 이공기가 허준의 직처인 내국으로 따라와 퇴궐하는 모습의 이명원을 앞에 두고 말했다.
허준이 말을 이었다.
"물론 의서 속에 본초란 말이 운운된 것이 일이백 년 전 얘기도 아니요, 양나라 때 도흥경이 저술한 본초집주, 당 때 퍼진 신수본초도 귀에 익었고, 또 ..."
"암 많지. 북송 말년 경사증류대관본초 또 당시 태의국의 검사역을 지냈다는 구종석이가 쓴 본초연의도 그 실용적인 가치는 오늘날에로 알아주는 바고 전의감에 가면 몇 권 결락되긴 했으나 필사한 10여 권은 내 눈으로 본 바도 있네."
이명원이 퇴궐을 미루고 두 사람 사이에 끼여 앉았다.
"헌데 왜 갑자기 본초 얘기가 무성한 겐가?"
"허직장이 북경에 가고자 자청했어."
"무슨 소린가. 자청을 해?"
두 친구의 시선 앞에서 허준이 말했다.
"지난번 사행을 배행하여 북경에 다녀온 유봉사로부터 중원의 인전이라는 책을 하나 얻어 보았는데 그 속에 보제방과 구황본초를 저술한 주숙의 얘기가 있었소."
"주숙이야 불과 100여 년 전 사람 아니오?"
"대개의 의서들이 몇백 년 혹은 천 년도 넘는 고서들로 오늘날에도 참고하는 것이 많은데 불과 170년 전의 책이라면 보다 쌔로운 것들을 다시 망라했다는 게 아닐까?"
"그렇게 보아도 되겠지."
이명원의 대답에 이공기가 물었다.
"헌데?"
"그 주숙의 보제방에 집록된 처방이 모두 몇 가진지 아시오니까?"
"그거야 알 수 없지 않소. 그건 왕실 서고 안에도 전질이 없다고 들었고 남아 있는 권수 속에서도 산일되고 결락된 책장이 한두 군데가 아닌터에."
"이번에 난 알았습니다. 그 보제방 전질에 집록된 각종 처방이 무려."
"무려?"
"...?"
"육만천칠백삼십구 종에 이른다는 것을."
말끝에 허준이 소매 속애서 중원의인전을 내놓자
이명원의 손이 책으로 뻗었다.
"내가 말을 잘 못하고 있는 게 아니오이다. 다시 말하오만 각 병에 대한 처방이 육만 천칠백삼십구 종이 적힌 책, 상상이 되시오니까?"
주숙의 난을 찾아 책장을 넘겨가던 이명원의 손이 정지했고 함께 들여다보던 이공기가 말했다.
"생전의 공적을 기리어 시호도 내렸군, 주정왕이라. 의원이라면 상놈의 사촌쯤으로 여기는 우리 신세에 비해 왕자 붙은 시호를 내리다니 의원의 씀씀이를 알아주기는 알아주는 땅이로군. 그래 이젠 중국에 가서 왕자 붙은 의원 노릇도 하고 싶소?"
이공기가 자조와 농담을 섞어 책을 다시 이명원에게 남겼다.
"농담이 아니오이다."
"나도 농담이 아니오. 왕자가 붙건 무슨 자가 붙건 그건 중국에서의 얘기고 조선 땅에 태어나고서야 고작 바라볼 수 있는 높이란 정해져 있는 터요. 암튼 혼자 육만 종이 넘는 처방을 써냈다는 것만도 보통 의원이 아님은 짐작이 가는군."
허준이 본론을 꺼냈다.
"놀라운 것은 주숙의 보제방이 나온 지 불과 100여 년인 지금 새로운 의서가 저술되고 있다는 사실이오."
"새로운 의서?"
"이시진의 책명도 나와 있소. 본초강목."
"책 속에는 이름이 보이지 않소만."
이명원이 책장을 되넘기며 묻자 허준이 말했다.
"책장 첫머리 저자의 서문에 언급이 돼 있소."
책장을 되넘기는 이공기와 이명원의 시선이 책장에 박혔다.
계속 ~~
著者, 放送作家 故 李恩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