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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병기교수가 보내온 작품에 대한 설명(출품작품 60여점)
작품2:傲遊
오만하게 놀자.
오만하게 논다는 것은 시쳇말로 말하자면 할 말은 하고 살자는 뜻이다. 남 앞에서 거만하자는것이 아니라 나 스스로 당당하게 살고자 함을 표현한 말이다.
당당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도덕적이고 실력이 있어야 한다.
나는 이런 차원에서 오유(傲遊)라는 말을 즐겨 쓴다. 오류를 쓸 때마다 실은 그만큼 나를 채찍질한다. 이 작품앞에서 중국 서예가들은 ‘傲遊’의 정신을 제대로 표현한 작품인 것 같다는 평을 하였다.
작품1:夕陽無限好,只是近黃昏
석양은 무한히 아름다운데, 단지 황혼이 가깝다는 것
이구절은 중국의 당나라 말기의 시인 이상은(李商隱)의 시구이다.이 구절을 이해하기 위해서는석양과 황혼의 차이에 대해서 알아야 한다. 늦은 오후지만 아직 하늘에 태양이 떠 있을 때를 말하고, 황혼은 이미 태양이 지평선 너머로 사라저서 하늘에 붉은 노을만 남아있는 상태를 말한다. 하루로 치자면 석양은 오후4시-6시 사이로서 이른바 업무효율이 가장 잘 나타날때이다.
하루중 가장 집중하여 열심히 일함르로써 하루의 성과가 나타나는 시간대인 것이다.
그러므로 석양은 어느때보다도 아름답다. 사람의일생으로 치자면, 60년대로부터 70대 사이가 석양에 해당할 것이다. 인생의 가장 원숙한 단계로서 최고의 성과를 올리는 시기이니 어찌 가장 아름다운 시기가 아니겠는가! 그러나 아쉬운점은 이 석양이 지나고 나면 바로 태양이 사라지는 황혼이 된다는 점이다. 하루중 석양을 제대로 활용하고 전인생의 과정에서 60-70대를 가장 열심히 산다면 성공한 인생이라고 할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생각을 담아서 이 작품을 힘이 넘치는 웅장한 필치로 써보았다.
가장 열심히 일해야 할 시기의 열정과 힘을 작품에 담아보고자 한 것이다.청나라때의 서예가인이병수(李秉綬)의 필치로부터 적지 않은 영향을 받은 추사 김정희 선생의 서체에다가 우리민족의 고유미감이 담긴 광개토태왕비의 필세를 융합하여 내 나름대로 작품을 구성하였다. 이 작품에 대한 중국 서예가들의 반응은 좋았다.
그들은 먼저 이병수의 서체를 닯은점을 내세웠으나 나는 내심 광개토태왕비와 추사 김정희 선생의 필치를 응용한 것이라고 자부하였다.
작품3:一士讀書,澤及四海,功垂萬世.易曰:見龍在田 天下文明
‘한 선비가 독서를 하면 그 은택(영향력)이 사해에 비치고 그 공적은 만세에 드리운다.
역경에서 말하기를 ’밭에 용이 나타나면 천하가 문명화한다‘라고 하였다.
이것은 연암 박지원 선생이 한 말이다. 한 선비가 제대로 독서하여 바른 안목과 가치관을 가지면 그 영향력으로 인하여 사해 즉 온 세상이 바로 잡히고, 그렇게 세상을 바로잡은 공적은 만세에 까지 미친다.역경에서는 이러한 성황을 ’용한 마리가 세상에 나타나면 세상이 다 밝아진다.‘는 말로 표현한 것이다. 나는 이 구절을 무척 좋아한다.세상을 바꾸는 주체가 곁보기에는 정치가인 것 같지만 실은 학자이다.
학자의 말한마디와 책 한 권이 세상을 바꾼다. 아담 스미스의(국부론)한 권이 자본중듸를 낳고, 마르크스의 (자본론) 한 권이 사회주의를 낳아서 인류에게 끼친 영향은 참으로 크다.
엘빈 토를러의 (제3의 물결), 사뮤엘 헌팅턴의 (문명의 충돌)또한 인류에게 막대한 영향을 끼친 책들이다.선비의 공부는 자신의 책 한권이 세상을 바꿀 수 있다는 점에 대한 책임감과 함께 세상을 바꾸고 싶다는 야망을 품고 진행되어야 한다.
나 또한 부족하나마 그러한 꿈을 꾼다. 사마천은 ’千人之諾諾不如一士之諤諤‘이라는 말을 하였다.즉 ’천 사람이 수긍하는 말이 한사람선비의 ‘바른말만 못하다‘는 뜻이다.
선비! 임중이도원(任重而道遠)’을 생각하며 독서를 해야 할 것이다.나는 그런 선비를 꿈꾸며 진중한 필치로 이작품을 창작하였다.
작품4:長安一片月, 萬戶搗衣聲,秋風吹不盡
‘서울 하늘에 뜬 한 조각 달, 집집마다 들려오는 다듬이 소리. 가을바람은 불어 불어서 그치지 않으니, 이런저런 모든 모습이 내 마음을 변방에 계신 우리님을 향해 달려가게하네. 내 님은 언제나 오랑캐들을 평정하고서, 오랜 원정을 마치고 내 곁으로 돌아오려나.’
이시는 이백이 쓴 <子夜歌>중 秋歌이다. 자야가는 흔히 ‘자야의 노래’라고 번역하는데 ‘자야’는 중국 위진남북조 시대에 살았다는 중국 여인의 이름이다.오늘날 우리의 개념으로 이해하자면 그냥‘순이’이고 ‘옥이’인 여인이다. 사랑하는 사람을 변방에 보내놓고 기다리는 여인의 표상이 된 이름이 ‘자야’이다.나는 이시를 읽을 때 사랑하는 사람을 기다리는 여인의 슬픈 마음이 연상되어 가슴이 아파오곤한다.그런데 우리나라 근세사에도아름다운이름의 자야라는 여인이 있다. 백석 시인을 평생그리워하며 홀로 지낸 여인 ‘자야’이다. 서울 성북동 길상사에 자야의 그런 그리움과 승화와 해탈이 고스란히 배어있다.
그래서 길상사는 언제라도 가보고 싶은 곳이다.이런 저런 생각을 하며 실타래처럼 얽혀사는 인간세상의 다양한 일과 사랑과 열정과 이별의 감정에다가 이백 시의 호방한 풍격을 섞어 나 또한 실타래처럼 얽히는 느낌을 주는 초서로 써보았다.슬퍼면서도 슬프지않고, 섬세하면서도 호방한분위기를 엮으려고 노력했다.
작품5:出言世謂狂 緘口世云癡
말을 하면 세상은 날더러 미쳤다고 하고, 입을 다물면 세상은 나를 바보라 하네. 그러나 어쩌라! 절레절레 고개를 저으며 떠나갈 수 밖에.
그러나 어찌 없으랴! 이런 내마음을 아는 이가.
이것은 白湖 林悌 선생의 시이다. 주지하다시피 임백호 선생은 황해감사로 부임하는 길에 황진이의 무덤에 들러 애도를 표했다는 이유로 곧바로 파직된 후 평생을 야인으로 살며 호방한 시를 짓다가 세상을 떠난 당대의 호걸이다.백호선생은 임종때에 자손들에게 ‘중국의 주변에 있는 네 오랑캐와 여덟 미개민족도 다 황제를 칭했는데 유독 조선만은 스스로 중국속으로 들어가 중국을 주인으로 섬기고 있으니 내가 살아본들 무엇을 할수있겠으며 내가 죽은들 또 무슨 일이 있겠느냐? 울지마라.
(四夷八蠻 皆呼稱帝, 唯獨朝鮮, 入住中國,我生何爲,我死何爲? 勿哭!)는 유언을 남겼다.
중국이 오랑캐라고 부르며 야만시 했던 주변의 이민족인 선비족,거란족,몽고족,여진족등은 다 황제를 칭한 적이 있다.
선비족이 세운 北魏제국이 그렇고 黨項族이 세운 西夏제국, 거란족의 요나라, 몽골족의 원나라, 여진족의 금나라와 청나라가 다 황제를 칭했다.이처럼 중국주변의 이민족들도 다 한 번쯤은 스스로 일어나서 황제를 칭하는 제국을 세웠는데 그런일을 한번도 해본적이 없이 중국을 주인으로 섬기기만 해온 우리역사의 사대성을 임백호 선생은 통렬하게 한탄한 것이다.
가슴을 먹먹하게하는 유언이다. 당시 사대주의에 절어있던 조선의 조정과 선비들을 향해 임백호 선생 말고 이런 통탄을 한 인물은 아무도 없다. 21세기의 오늘을 사는 우리도 뜨겁게 느껴야 할 통탄이다.아직도 외세에 시달리고있는 우리,그리고 외세에 아부하려 하는 또 다른’우리‘들이 공존하는 이 시대에도 임백호 선생의 이 시는 가슴을 때리고 있다.
임백호 선생의 호방한 풍격을 호방한 초서로 표현해 보고자 하였다.
작품6:山自無心碧
산은 마음 씀이 없이 저절로 푸르다.
이 구절은 서산대사가 남긴 다음과 같은 시에서 따온 한 구절이다.
山自無心碧 산은 마음 씀이 없이 절로 푸르고,
雲自無心白 구름또한 무심한 가운데 희네.
其中一上人 그 가운데 사는 한 스님,
亦是無心客 그 또한 무심한 나그네라네.
서산대사의 탈속한 경지를 볼수 있는 시이다.
이 시를 지은 서산대사는 만년에 다시 천진한아이 모습으로 돌아왔을 것 같다. 이 시를 볼 때마다 아이처럼 해맑게 웃는 서산대사의 모습을 상상하곤한다.그래서 이 작품은 어린아이의 해맑은 웃음 속에 담긴 천진함과 장난기를 표현해보고자 전서와 예서를 적절하게 융합하여 써보았다. 그러나 나 자신이 천진하지 못한 탓인지 머릿속으로 구상한 작품이 그대로 구현되지는 못했다.
작품7:以儉養德
’검박함으로써 덕을 기르자‘
이 구절은 나의 종외조부이자 스승인 강암 송성용 선생께서 즐겨 휘호하시던 구절이다.
선생께서는 ’내가 검소하고 소박하게 삶으로써 재물을 아끼고 모아서 그것을 남에게 줄수있을 때 덕이 배양되는 것이다. 내 입과 내 몸을 호사하기 위해다 써버리고 나면 남에게 줄 것이 없으니 어떻게 덕이 배양되겠는가.‘라고 말씀하시면서 이 구절을 자주 휘호하곤 하셨다. 나는 선생의 그런 인생관을 존경하며 나또한 그런 삶을 살려고 노력한다. 선생의 꼿꼿한 선비 정신을 표현해보고자 가능한 한 붓을 곧추세워 강인한 필획을 구사하고자 하였다.
작품8:日日是好日 작품9:용비어천가.
이 작품을 제작할 종이는 무늬가 있는 종이가 아니라, 바탕에 연한 녹색을 이용하여 내가 글씨를 쓴 다음 그위에 ’日日是好日-날마다 좋은날‘이라고 쓴 것이다.
녹색물감으로 바탕에 쓴 글은 ’春有百花秋有月,夏有凉風冬有雪,若無閑事掛心頭,便是人間好時節.‘이다. 즉 ’봄에는 온갖 꽃, 가을에는 밝은달, 여름에는 시원한 바람, 겨울에는 내리는 눈, 만약 쓸데없는 생각만 하지 않는다면 사계절 언제라도 곧 인>-생의 좋은 시절이지‘라는 뜻이다. 한글과 한문을 섞어서 나름대로 명랑하고 쾌활한 느김이 들도록 작품을 구성하였다.중국의 서예가들은 전시장에 걸린 이 작품 앞에 가장많이 몰려들었다. 이구동성으로 한자와 한글을 함께 써서 작품을 창작하니 의외의 흥취가 있다면서 찬사를 보냈다.
중국에서의 전시라는 이류로 한자만 쓸것이 아니라, 우리 한글을 과감하게 작품으로 표현하여 그들에게 보여줄 필요가 있다는 생각을 했다.
중국 서예가들에게는 이 작품에 대한 특별한 관심을 갖는 이유를 물었더니 ’비록 한글의 필획이나 자형은 잘 모르지만 작품에 표현된 한자의 필획이나 자형등과 한글의 필획이나 자형등이 잘 어울리기 때문‘이라고 답했다. 한글과 한자를 함께 쓴 또 다른 작품인 <용비어천가> 앞에서도 같은 평들이 나왔다.(작품9.용비어천가)
작품13:遠上寒山石傾斜, 白雲生處有人家
’가을 산 돌 비탈길을 오르다보니,
흰구름 피어나는 곳에 다시 인가가 있구나.
마차를 멈추고 늦가을의 단풍을 구경하자니,
서리 맞은 잎사귀가 2월의 꽃보다도 더 붉구나.‘
중국 당나라 말기의 유명한 시인인 杜牧의 시 <山行>이다.
두목은’서리 맞은 잎사귀가 2월의 꽃보다 붉다‘고 읊었는데 여기서의 2월은 필시 음력일 테니 오늘날 사용하는 양력으로 치자면 봄이 한창 무르익어 가는 3-4월에 해당한다.
새봄에 젊음으로 피어나는 꽃만 붉고 아름다운 것이 아니다.비록 서리를 맞아 잎이 질 날이 멀지 않았지만 단풍도 꽃 못지않게 붉고 아름답다.
’一事能狂便少年’이라는 말이있다. ‘한 가지 일에 능히 미칠수 있으면 그게 곧 젊은이다.’는 뜻이다. 봄꽃보다도 붉게 타는 단풍을 보면서 노인들게 끝까지 정열을 불태울 수 있는 기회를 드려야 한다는 생각을 했다.
나는 이 시를 볼때마다 정열은 평소의 생활로부터 솟구치는 것이지 느닷없이 나오는 것이 아니라는 생각을 하곤 한다.나무도 여름을 그처럼 뜨겁게 살았기 때문에 가을에도 그처럼 아름다운 정열의 단풍을 물들일 수 있다.
서예도 가장 평담한 작품 속에 뜨거운 열정을 감출수있을 때 더욱 빛난다고 생각한다.
이 작품은 가능한한 평담한 서체로 쓰고자 하면서도 그 안에는 강하고 빠른 열정을 표현하고자 한였다.
작품14:飛則沖天 一鳴驚人
‘날았다 하면 하늘을 뚫고 올라야 하고,
울었다 하면 세상을 깜짝놀라게 해야지!’
韓非子 <喩老>편에 나오는 구절이다.
이게 바로 최선을 다하는 삶이라고 생각한다.나는 이 작품을 시작하기전에 붓을 다듬고 먹물의 농도를 맞추기 위해 시험삼아 빈 종이에 몇글자 끄적거릴 때면 으레 이구절을 쓰곤한다. 이왕에 가진 뜻이라면 하늘을 찌를 듯이 높은 기상으로 그 뜻을 키우고, 이왕에 쓰는글씨라면 세상을 놀라게 할 만한글씨를 써야한다는 생각으로 이 구절을 워밍업(Wsrming up)삼아 써보곤 하는 것이다.
이 작품은 그런 워밍업 과정에서 우연히 얻은 것이다.
그래서 더욱 호방한 느낌을 주는 것 같다.
작품10:半畝方塘一鑑開 작품11:임허목선생 백운계기 작품12:半畝方塘一鑑開(전서체)
’반 이랑 남짓 네모진 못이 하나의 거울처럼 펼쳐저 있으니,
그 안에서 하늘빛과 구름 그림자가 함께 떠다니는구나.
묻노니 “도랑물이 어쩌면 그리도 맑을까요?”
“근원지에서 생수가 샘솟기 때문이지요.”‘
이 작품은 중국 송나라때의 학자인 朱熹의 <觀書有感-책을 대하고서> 시 제1수를 쓴 것이다.도랑물은 때로 흐러질 수 있다. 그런데 그렇게 흐려졌던 도랑물이 금세 다시 맑아지는 까닭은 상류의 수원지에서 맑은 생수가 솟아나오고 있기 때문이다. 사람의 마음도때때로 흐러질 수 있다.그러나, 그러한 흐린생각들이 잠시 왔다가도 다시 맑은생각으로 돌아갈수 있는 것은 책 때문이다.독서는 도랑물처럼 흐르는 내마음의 근원지에서 생수 역할을 하는 것이다. 나는 이 시를 읽을때마다 이 시대에도 이러한 독서를 중요시하는 교육이 이루어져야 한다는 생각을 하곤한다.
이 작품은 15년 전에 제작했던 것을 일부러 이번 전시 도록에 수록하였다. 15년전 나는 조선시대의 학자인 미수 허목(許穆)선생의 행서에 심취해 있었다.(작품11-임허목선생 백운계기)참조.
허목 선생의 행서를 임서하면서 느낀筆意를 내 나름대로 예서에 적용하여 이 작품을 썼다.
고졸한 풍격을 표현하려고 노력했다.
이 작품에 담긴 ’나의 이러한 서예관을 중국서예가들도 이해할수 있을까?‘하는 생각에 중국서예가들에게 도판으로나마 이 작품을 보여주고 싶었다.
중국서예가들도 ’고졸하다‘는 평가를 하면서도 내가 의도한 ’깊은 맛‘까지를 이해하는것처럼 보이지는 않았다.작품11<임허목선생 백운계기>에 대해서는 하소기의 ;필체를 많이 닮았다는 평가를 했다. 다소 황당했다.허목 선생이 하소기보다 훨씬 앞선새대의 인물이기 때문이다.
중국서예가들의 이러한 평을 들으면서 중국인의 미감과 한국인의 미감 사이에 어떤 차이가 있음을 느겼다. 중국인은 기름기 많은 중국음식을 좋아하고, 한국인은 동치미 같은 담백하고 서늘한 맛을 즐기는 이유를 이 작품에 대한 중국인들의 평가를 들으면서 내심 확인할수 있었다. 중국인들은 이 작품처럼 까칠한 작품보다 전통적인 전서 필법으로 매끄럽게 쓴 또 한 폭의 <觀書有感> 작품 즉, 전서 관서유감(작품12참조)에 더 관심을 갖는 것 같았다.
작품15:山中春已晩 處處見花稀 작품16:節錄御製小學序
’산중에 봄이 이미 다하여 곳곳에 꽃이 드물구나.
내일이면 그 꽃 다 저버릴테니 오늘밤은 돌아가지 않고 숲속에서 자야겠구나
태양은 서산으로 지고 황하의 물줄기는 바다를 향해흐르는데
나는 보다 더 먼 세상을 보기 위해 오늘도 또 한 층의 누대에 오른다.‘
당나라때의 시 2수를 썼는데 부드러운 필치로 쓰고자 노력한 작품이다.
나의 다른 초서에 비해 속도감이 비교적낮은 작품이다. 나이가 든 중국 서예가들은 속도감이 빠른초서보다는 이처럼 비교적 안온한 초서를 좋아했다. 과하지 않고 항상 종도를 지키고자 하는 중국인들의 미감을 엿볼수 있었다. 행서 또한 안온한 분위기의 행서를 좋아했다.
중국의 서예가들은 나의 小字행서인 <작품16: 절록어제소학서>를 특별히 선호했다.
작품17:水寒夜冷魚難覓 留得空船帶月歸
’물이 차고 밤공기가 싸늘하여 고기가 잡히지 않는다면
그저 빈 배인 채로 달빛만 데리고 돌아가면 되는 것을‘
이시는 중국 송나라 때의 명승인 冶父(야부) 도천선사(導川禪師)의 시로 알려져있다.
이 시 앞의 두구절은 ’攀手得枝未足寄, 懸崖殺手丈夫兒‘ 이 구절은 백범 김구 선생이 스승인 高能善 선생이 백범 선생께 교훈으로 삼으라며 준 구절로 유명하다.
백범 선생은 이 구절에 담긴의미를 잊지 않고 구차하게 사느니 차라리 목숨을 버릴 생각을 가지고 독립운동에 임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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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월간서예 1월호 표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