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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자유로운도시(정직함을 추구하면 국민의 삶이 평온해 집니다) 원문보기 글쓴이: 정상국가
한국전쟁을 알기나 하고서 백선엽 운운하는가?
2023.9.1
육사가 독립투사 흉상을 철거하고 백선엽 동상을 세운다는 소식을 전해 들었다.
이 무슨 해괴한 소리가 있는가 하는 생각을 했다.
이 정도 결정은 육사교장이나 국방부장관이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더구나 국방부장관은 그런 강단있는 결정을 할 수 있는 사람이 못된다.
결국 대통령실에서 결정한 것이라고 생각했다.
얼마전에 윤석열은 모르는 일이라고 했다.
그럼 누가 이런 결정을 했는지 모르겠다.
항간에서는 김태효의 짓이라는 소리가 파다하다.
원래 그는 친일파라는 것이다.
육사에 독립투사 흉상만 있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은 되지 못한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그런 일이 일어난 것은
문재인 정권당시 육사의 정통성
또는 군의 정통성에 대한 논쟁 때문이었던 것으로 알고 있다.
당시 군은 문재인 정권의 뜻을 받들어
군의 정신적 정통성을 신흥무관학교에 두고
독립전쟁의 투사를 기리려고 했다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는 나름대로 의미가 없지 않다고 생각한다.
지금은 군의 사상적 연원을 신흥무관학교에서 찾고 있지만
시간이 가면 한국전쟁과
그 이후로 이어가면 될 일이기 때문이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많은 사람들이
한국전쟁의 전쟁영웅 동상을 왜 육사에 세우지 않는가하는 질문을 많이 하는것 같다.
그러면서 다들 백선엽을 이야기한다.
백선엽 이야기가 나오면 찹찹하다.
백선엽은 가짜 영웅이면서,
진짜 영웅들을 모두 역사의 뒤안길로 매장해 버린 장본인이기 때문이다.
경향에 칼럼을 쓰다가 중단해버린 것도
문재인이 백선엽에 죽고 나서 조화를 보낸사실을 비난했기 때문이다.
문재인은 철저하게 위선적인 인물이었고
그의 그런 위선적인 태도 때문에 진보정치의 싹이 모두 잘라졌다.
백선엽은 친일부역자일 뿐만 아니라 정치군인이자 희대의 부정축재자였다.
그리고 무엇보다 한국전쟁의 역사를 왜곡한 역사왜곡자였다
. 백선엽을 왜 한국전쟁의 영웅이라고 생각하는지 이해할 수 없는 일이다.
백선엽은 한국전쟁 초기 제1사단의 붕괴에 직접적인 책임을 져야 하는 사단장이었다.
부대를 버려두고 농부옷으로 갈아입고 사라졌다
3일만에 나타난 사람이다.
한국전쟁 초기 단계에서 부대가 철수하고 무너지는 상황에서
자기 부대를 버리고 혼자 도망친사람은 백선엽밖에 없었다.
그런 백선엽이 살아 남을 수 있었던 것은
이승만의 친일파 비호 때문이 아닌가 하는 의심을 지니고 있다.
이승만은 한국전쟁 당시 정말로 전쟁을 잘하고
나라를 지켰던 진짜 장군들을 모두 숙청했다.
역사에 조금이라고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한국전쟁이후 왜 군출신이 대통령이 되지 않았을까를 생각해 볼 것이다.
전쟁이 끝나고 나면 예외없이 군출신이 정치지도자가 되는 경우가 많다.
남북전쟁이후의 그랜드,
제2차대전이후의 아이젠하워, 프랑스의 드골 등등이다.
이승만은 한국전쟁을 하면서도 대중의 인기를 끌 수 있는 사람들을 싸그리 숙청했다.
김홍일, 김석원, 김종오, 이성가 등의 장군은 모두 이름도 없이 사라졌다.
이승만은 전쟁중에도 진짜 전쟁을 잘했던 명장을 모두 퇴역시키고
일본군, 그중에서도 만주군 출신을 앉혔다.
특히 인천상륙작전 이후에는
만주군과 일본군 장교출신으로 군수뇌부를 메꾸었다.
김석원은 일본군 전쟁영웅 대좌출신이었으나
광복후의 창건은 자신과 같은 구일본군 출신이 담당해서는 안된다고 해서 물러나고
그 자리에 소대전투도 한번 해본적이없는 병참장교 출신 채병덕을 임명했다.
백선엽은 제1사단의 모든 중장비를 상실했고
김종오의 제6사단이 동막리 전투에서 거둔 전리품인
북한군 장비로 겨우 무장을 할 수 있었다.
역사란 이상한 것이다.
다부동 전투로 낙동강 방어선을 지킨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원래 다부동 전투는 실패한 전투다.
백선엽의 제1사단이 방어를 잘못해서
북한군이 낙동강 전선 종심깊게 들어와서 위기가 발생했다.
결국 그 해결은 미군이 했다.
그런데 실패한 전투가 한국을 위기에서 구한 전투로 탈바꿈을 했다.
백선엽은 한국전쟁이 끝나고 나서 한참이후에 전쟁영웅이 되었다.
한국전쟁 당시에 백선엽은 조소의 대상이었지 영웅이 아니었다.
그는 군단장과 군사령관을 하면서
미군고문관을 짚차의 상석에 앉히고
자신은 뒷자리에 앉았던 사람이다.
백선엽은 일본에 충성했고
미국인 고문관에게 충성했던 종자에 불과했다.
그는 전쟁사를 왜곡했다.
춘천전투에서
북한군 자주포를 맨손으로 파괴했다고 역사를 왜곡한 사람도 백선엽이다.
왜곡한 역사가 정사로 둔갑했다.
미군이 참전하고 나서 이승만은 진짜 전쟁을 잘하면서
전쟁이후에 자신의 정치적 입지를 위협할 수 있는 인물을 모두 숙청했다.
미군이 왔으니 그 힘을 바탕으로 잠재적인 정적을 모두 제거한 것이다.
그 자리를 만주군 출신들이 메꾸었다.
한국전쟁 중반이후 구만주군 출신의 한국군 지휘관이 저지른 희한한 짓거리는
이승만이 있어서 가능했던 것이다.
진정한 전쟁영웅은 자신의 공적을 자랑하지 않는다.
아니 자랑할 수 없는 법이다.
전쟁에서 이슬처럼 스러져간 자신의 부하를 떠올리면
공적을 자랑한다는 것이 얼마나 양심에 거리끼는 일인가를 알 수 있다.
정상적인 국가는 모두 전쟁영웅을 기린다.
그 중에서 가장 중요한 전쟁영웅은 ‘이름없는 전쟁영웅’이다.
그래서 모든 국가는 현충시설의 가장 중요한 곳에
‘무명용사’에 대한 기념비를 세운다.
한국은 스스로 지키기 않았기 때문에
전쟁에 죽은 자들은 모두 헛죽음을 한 것이나 마찬가지가 되었다.
전쟁초기 의정부 축선에서 북한군 전차여단이 남하할 때
이 전차를 육탄으로 파괴한 두명의 병사이야기가 나온다.
기록에 의하면 한사람은 키가 컸고 한사람은 작고 통통했다고 한다.
선두 전차를 두명이 수류탄으로 파괴했다.
전차를 파괴하고 내던져진 이들은
포로가 되어 북한 전차여단장 류경수 앞에 끌려나갔다.
포로로 끌려나간 두명의 병사들은 웃고 있었다.
이들을 본 류경수는 얼굴에 아무런 표정도 없이 ‘처형해’라고 하고 현장을 떠났다고 한다.
이들 두명의 이름을 아무도 모른다.
그들이 이름없는 전쟁영웅이다.
한국전쟁에는 그렇게 사라진 영웅들이 부지기수다.
전쟁중에 초개처럼 목숨을 던진 용사는 잊혀지고
가짜 영웅이 판치는 국가가 한국이다.
세계 어디에서도 한국처럼 전쟁의 공적을 다투는 경우를 보지 못한 것 같다.
그리고 진짜 전쟁영웅중에서 자신의 공을 자랑하는 경우를 본 적은 별로 없다.
국가의 정신을 바로 세우는 것은 중요한 일이다.
가짜 영웅을 진짜 영웅으로 둔갑시키는 것은 국가의 정기를 훼손시키는 일이다.
한국전쟁의 영웅 운운하는 사람들에게 물어보고 싶다.
당신들은 한국전쟁에 대해서 무엇을 얼마만큼 아느냐고?
심일문제로 인해 한국전쟁을 들여다 보게 되었다.
한국은 민간인은 물론이고
군인들도 한국전쟁에 대한 연구를 별로 하지 않는다.
아니 공부하고 연구를 하기가 어렵다.
무엇이 진실이고 무엇이 거짓인지를 파악하기도 어렵기 때문이다.
한국전쟁에 대해서 별로 알지도 못하는 사람들이 백선엽만 나오면 개거품을 문다.
그들이 정말 백선엽에 대해서 얼마나 알고 있으며
당시 낙동강 방어전에 대해서 얼마나 알고 있는지 모르겠다.
한국정쟁에 대해 백선엽이 분탕질 한 것을 지우고
나름대로 다시 개념을 정리하는데 퇴직이후 약 3년 정도의 시간이 걸렸다.
한국전쟁을 다시 정리하는 작업을 하려고 했지만
그 이후 각종 현안에 대한 정리작업에 시간과 마음을 빼앗겨 버렸다.
과거보다 현재와 미래를 따라가야하겠다고 우선순서를 정했기 때문에
기존에 하던 일을 접어 두었다.
어제 90대 중반의 노장군이 전화를 해왔다.
백선엽이 죽어서도 만행을 부린다고 말했다.
아무말 하지 못하고 네네 하기만 했다.
초급장교 당시 백선엽이 죽어야 한국전쟁을 다시 쓸 수 있다고 하는 말을 들었다.
이제 백선엽이 죽었는데 한국전쟁을 다시쓰기도 어려운 것 같다.
전쟁사는 미래 전쟁을 대비하기 위해서 매우 중요하다.
한국전쟁은 그런 역할을 하지 못한다.
왜곡되었기 때문이다.
지금 한국군이 발행한 한국전쟁사를 한번 읽어보라
그게 무슨 말인지 이해할 수 있는지?
현재 진행중인 우크라이나 전쟁과
미중경쟁이 어느 정도 정리되면
언젠가 다시 한국전쟁에 대한 공부를 다시 하려 한다.
그런 각오를 잊어버리지 않고자 여기에 글로 남긴다.
노장군의 왜곡된 역사에 대한 대답이기도 하다.
한 설
육군사관학교 졸업 (예) 육군준장
고려대학교 대학원 문학박사(역사학)
러시아지휘참모대학교 졸업
육군본부 軍史연구소 소장. 그후 전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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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군본부 인사참모부 차장
대통령이 된 전두환에 의해 나 박경석 준장에게 뜻밖에 '미끼' 가 주어지다.
육군본부 인사참모부 차장 (육군소장 직급)으로 1980년 1월 28일부 승급 발령.
당연직 육군 공적심사위원장 겸직.
예측대로 12.12 및 5.18 관련 정치군인에게 무공훈장 심사 지시.
심사 완료 후 진급 예정.
나는 12,12 반란군 및 5,18 관련 정치군인 무공훈장 수여 심사 거부.
직위는 전역 때까지 그대로 두기로 하고 업무에서 배제.
이희성 참모총장과 합의.
이희성 참모총장이 장교 교재 집필 당부, 집필에 착수.
업무 배제 9개월간 출근하지 않고
장교 교재 4권 탈고 총장에게 제출.
장교 교재명 -
野戰指揮官. 指揮官의 死生觀. 指揮官의 條件. 指揮官의 歷史觀. (兵學社 4권 출간)
육군본부는 野戰訓報를 제정, 위 4권의 내용을 1주일 단위로 전 장교에게 발송
육군 전 장교에게 야전훈보로 강의하는 봉사를 끝으로 예비역에 편입.
이 무보직 9개월 육군에의 봉사는 스스로 선택한 '백의종군'의 길이므로 불만이 없음.
1980.1.28~1981.7.31 인사참모부 차장 재임 인사 자력표 기재 확인.
1981년 7월 31일. 육군준장 전역 1년 단축 새 인사법 준장 7년 만기 전역.
전역과 동시 임명받은 국영기업체(현, 농어촌공사) 감사를 반납.
전업 작가의 길로 향하다.
박경석. 祖國의 '史官'이 되어 눈물의 '大長程'이 시작되다.
전역, 그후
나의 전역 소식이 알려지자
문단에서는 일제히 환영하며
주요 문학 단체 임원으로 추대했다.
-국제PEN한국위원회 이사.
한국문인협회 이사.
한국소설가협회 이사.
한국현대시인협회 이사.
전쟁문학회 회장-
하나회 축출 이후
1. 육사생도2기 생도 신분 전사자 86명 추서 임관 성취
2. 육사생도2기 육사 기수에 편입 성공
3. 육사생도2기 명예 졸업식 거행
4.육사생도2기 전원 '자랑스러운 육사인상' 수상
5.육사에 생도2기 참전상 건립
6.생도2기 참전상에 박경석 시 '생도송' 헌정
육사 생도2기 부활 및 참고 영상 자료
제12회 지상군 페스티벌 육군과 문화예술의 만남 특강
계룡대 지상군페스티벌 전쟁문학 특강 2014년 10월 3일 오전.
두 장군과 오른쪽 대령의 미소짓는 표정으로 보아
분명히 나를 미워하는 표정이 아니었다.
이들은 합창하듯 두 주먹을 불끈 쥐고 "힘내자!"고 소리쳤다.
나는 이때부터 더 자신감을 갖고 창작에 매진했다.
계룡대 육군본부 주최 지상군페스티벌 행사에 초청받아
[문학]특강 차 방문한 나와 아내를 마중나온 두 장군과 대령 일행의 기념촬영.
전역 후 33년 만의 모군 첫 방문이라 각별한 감회를 느꼈다.
뜻밖의 환영 무드에 놀랐다.
아내가 운전하는 승용차로 계룡대 입구에 들어서자
헌병 에스코트차가 대기하고 있다가 강연장으로 안내 되었다.
역시 모군은 사랑스럽다.
세월이 흘러 이때는 그토록 나를 괴롭혔던 정치군인은 말끔히 청소된 후였다.
새로운 육군으로 거듭난 여파였다.
대한민국의 사관(史官)이 되기를 결심한 나는
모든 사안 하나 하나에 증거 자료가 필수라고 생각해 증거 확보에 힘썼다.
일본에도 가고 중국에도 찾아가 연관된 당사자를 만나 협조를 구했다.
다행이 적극 협조를 아끼지 않았다.
놀라울 정도의 증거력을 갖는 자료들은
뒤이어 진실 규명과 원상 회복에 결정적 역할이 되었다.
이명박 대통령의 백선엽 명예원수 추대를 저지 가능케했던 자료는
너무나 정확해 당국자를 놀라게 했다.
특히 박경석 문학의 역할은 컸다.
많은 경비가 들었다.
그러나 아깝지 않았다.
나의 평생 信條인 '조국, 정의, 진리' 추구의 옳은 길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백선엽 진실 자료를 제공해 준 일본인 田中久弘 박사(좌)와 나
- 탁자 앞에 쌓여있는 책자 뭉치는 백선엽 관련 증거물이다.
내가 요구하면 즉각 구헤 나에게 제공됐다.
요즈음
육군본부 軍史硏究所長 한설 장군 일행 박경석 서재 방문
2016년 7월 14일. 주요 軍史 자료 확인차
연구원 김상규 박사 연구소장 한설 장군 박경석 한국전쟁연구과장 김수일 대령
軍史자료 확인 작업 [1]
軍史자료 확인 작업 [2]
진실 규명에는 증거 자료가 필수적이다.
나는 1959년 시인 소설가로 정식 등단 이후에 철저하게 軍史자료를 수집 보존했다.
내가 보존한 軍史자료는
육군과 관계되는 軍史 바로잡는데 기여했을 뿐만 아니라
정부 시책에도 효율성 있게 기여했다.
박경석 장편실록소설 '육사생도2기' 드라마 제작 계약 체결
2022년 3월 23일 '박경석 서재에서'
2000년 홍익출판사 발행 문제의 박경석 장편실록소설 '육사생도2기' 가
마침내 드라마 제작사 -the BIG CHEESE- 와
'지적재산권 독점적 이용 허락 계약서'에 날인 함으로써
정식 계약이 체결돼 드라마 제작이 확정됐다.
내 작품의 드라마 제작은 이번이 세번째가 된다.
첫번째는 KBS 1TV 3부작 '五星將軍 金弘一' 1985년 방영.
두번째는 신성일, 고은아 주연의 영화 '少領 姜在求' 1966년 상영되었다.
현재 드라마 제작이 검토중인 작품은
박경석 실록장편소설 '서울학도의용군' 이 있다.
전역 후 상훈
국제PEN본부 문학상을 비롯 총 13회
한글 문학 발전에 공로 표창 - 한글학회
자랑스러운 육사인상 - 육사총동창회
호국영웅기장 한국전쟁 참전 - 국가보훈처
박경석 전과 및 징계 내역 (1933년~ 2022년 현재)
전 생애를 통해 전과 없음. (경징계 포함)
생애를 통해 징계에 회부된 적도 없음.
박경석 군경력 상세설명 끝
박경석 예비역 장군 강연 - 백선엽이가 전쟁영웅?
박경석
작성자 23.05.08
극우 일각에서 이 동영상을 계속 삭제하고 있다.
백선엽 추종세력으로 추정된다.
그러나 이어서 다시 살아나고 있다.
정의로운 보수층에서 되살린 것으로 추정된다.
나는 철저한 보수지만
보수의 '극악' 요소는 털고 가야 한다는 생각으로 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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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이 1905년부터 써먹을려고 키운 졸개가 이승만?
그래서 하버드 장학금 받고 다니고,
총장 윌슨도(나중에 대통이 됨) 만났다고 봄 ㅡ 둘다 프리메이슨?
1918년 미국시절 징집 신청서에 국적을 일본으로 기재.
임시정부시절 대한민국을 미국에 위탁하여 통치하자고 주장하여,
신채호가
이완용은 있는 나라를 팔아먹은 매국노지만,
이승만은 없는 나라를 팔아먹는 역적이다 라고 일갈?
해방후 이승만이 왜놈들을 못가게 잡고
거의 공짜로 자금을 지원해주어 공장을 가동하고 장사도 하고,
교회도 짓고,
사립학교 이사장이 되어,
지금도 1%가 되어 자손대대로 떵떵거리며 살고있음?
해방후 한국인으로 개명한 왜놈이 130만명.
지금 몇명일까?
독립군과 자손들은 어떨게 살았을까?
대표적으로
골수 친일파 노덕술이 수사과장에 임명되어 근무하면서
독립군 대장 김원봉을 잡아 빰을 때려
술로 울분을 달래다가
김구 선생이 분단을 막기위해 남북공동선거위해 방북했을때 함께 가서 눌러앉음.
남아있는 가족들을 방첩대장 김창룡. 아님 노덕술 지시로 학살?
45년부터 북침으로 6.25 일으키기 전까지만 독립군과 민족주의자 수십만명 학살.
49년 좌파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을 이장이 꼬셔.
도장을 받아가서 보도연맹에 가입시킨후
6.25를 일으킨후 100만명 전후 학살?
몇년전 4.3사건 포함 학살당한 유가족 접수자만 114만명?
접수 안한 사람도 부지기수?
친일인명사전에 등재된 인물이 5000여명.
무성 부친도 등재?
친일파 인명사전에 등재된 사람과
골수 친일파들 60여명이 현충원에 묻혔다고 함?
이들 모두와
백선엽도 파내서 옮겨야 민족정기가 바로선다고 봄?
친일인명사전 4776명 ㅡ 참조
전국 뉴라이트 연합 회원 ㅡ 참조
한국전쟁 4대 영웅 - 박경석
하나회 실태-박경석 - 1993 KBS1TV
본 영상은 저작권이 KBS에 있으나
본 뉴스에 출연한 박경석 장군과 KBS측과의
양해가 있는 영상인 만큼
[다음]포털에서는 삭제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박경석
작성자 23.05.17 09:09
지금으로부터 30년 전인 1993년이라면
하나회 세력이 육군의 도처에 '또와리'를 틀고 있을 때였다.
이 KBS 1TV 뉴스가 나간 뒤 하나회 추종 세력의 협박이 이어졌다.
나는 회피하지 않고 당당히 정면에서 맞섰다.
코리아 전쟁 진실을 벗긴다 전문을 게재 ㅡ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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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머슴 기르는 교육기관이 육사.공사.해사. 육군3사관학교.
미국은 1871년 고종이 동부 13개주를 인정하여 탄생한
국가가 아닌 주식회사.
지금도 주식회사,
그룹회장은 대물림,,
미국땅 주인은 연준 주인.
50개주는 계열사.
대통은 미국땅 주인 그룹 회장이 임명하는 바지사장.
미국땅 주인이 부하한테 지시하여 한국 일본 대통도 임명?
그래서 북이 남조선 괴뢰정부라고 하는것.
괴뢰정부라서 전시작전권도 없음.
매년 재벌 지시로 언론과 여야가 국민을 반으로 나눠 싸움붙이며
뒤로는
정부.지자체.공기업 예산 각각 70%..550조를
미국과 재벌과 1% 한테 밀어주고 돈 챙기며 룰루랄라 해온 세월이 120년.
지금 미국 지시로
재벌과 언론 여야가 합작으로
내년 총선때 전자개표기로 나눠먹기한후
유사 내각제로 개헌후,
광역시장 도지사가 대통노릇하는 지방정부로 개헌후,
대통과 의원 대물림하며
2030년까지 외노자 1159만명 영구체류시켜,
잡종국가 만들고 중국속국 완성 진행중?
1900년대 초 까지,
한미족이 전세계를 다스린 천자국의 지위를 회복해야 희망이 있고
자녀들도 미래가 있다고 봄.
천자국 지위를 회복할 사람은 딱 한명?
첫댓글 백선엽의 만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