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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월이 가고 있다. 꽃들이 피어나고 있다. 토란을 하우스에서 싻을 내어 포장에 옮겨 심으려고 골을 내고 비닐을 씌웠다. 연 이틀을 세사람이 일하고도 다 심지 못 했다.
토란 밭 옆으로 이사온 분이 다육이 식물원을 만들었다기에 구경을 갔다. 아름답게 꾸며논 비닐 하우스 안에는 어린 육묘 부터 꽃이 핀 다육이 여러 품종이 어우러져 있다. 친절하게도 다육이와 재배 과정을 알려 주었다.
우리집에 있는 수선화와 석산 그리고 나무 몇그루를 선물로 드렸다. 따뜻한 날씨가 세찬 바람과 함께 기온이 하강하고 있다. 꽃샘 추위가 오려나 보다.
이 현필, 정 인세의 생애
1996.08.15. 김준호 선생
하나님 아버지 앞에 떳떳하고 순수한 신앙생활을 하는 사람은 어려움을 당하고 있는 고아들과 과부들을 돌보아주며 자기 자신을 지켜 세속에 물들지 않게 하는 사람입니다. 같이 따라 읽어주십시오. ‘하나님 아버지 앞에 떳떳하고 순수한 신앙생활을 하는 사람은 어려움을 당하고 있는 고아들과 과부들을 돌보아주며 자기 자신을 지켜 세속에 물들지 않게 하는 사람입니다. 야고보서 1장 27절 말씀’ 이 말씀은 이 말씀의 능력이 동광원이라는 공동체를 탄생 시켰답니다. 길거리에서 이 현필 선생님이 정 인세 원장님을 그때는 원장님 아니시지요. 수피아여고 교감 선생님인데 만나가지고 앞으로 세상은 많은 피를 흘릴 것입니다. 많은 고아와 과부들이 나올 것입니다. 선생님, 일 좀 하셔야겠어요. 그렇게 길가에서 말씀했기 때문에 저는 처자가 있습니다. 그렇게 거절 하셨어요. 그 다음에 다시 말씀 하시기를 이제는 정 선생님 일어설 때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길가에서 만난 곳이 방림동 철 뚝 가라는 그런 말씀을 들었습니다.
그런데 이 야고보서 1장 27절 말씀을 그건 말씀으로 했는지 알 수 없어요. 이 말씀을 정 원장님께 드리시면서 이대로 사세요. 그 말씀을 정 원장님은 참 천명으로 받으시고 그대로 선생님이 시키는 대로 나는 심부름만 했습니다. 그렇게 이야기 하셨어요. 나는 가감한 일이 없습니다. 무엇이든지 나는 이 선생님이 하라는 대로 나는 심부름만 했습니다. 그렇게 될 수 있으면 그 이 선생님 말씀에 나는 충성을 다 하려고 는 했습니다. 그렇게 이야기 하셨어요. 그러면 사람이 한 사람도 없었을 때 이 요절을 주셨으니까 그건 하나님의 명령인 것이 사실입니다. 갑자기 동란이 일어나고 고아와 과부가 많이 일어났기 때문에 그건 필연이지요. 그런데 38선 밑으로는 연합군이 보기에 길거리에서 어린아이들 한 살 두 살 세 살 그 총탄 밑에서 쓰러진 애기들 업고 미군 소위 말하면 연합군들이 이 아이들을 어디로 데려다줄까? 그래 CAC 어떤 청년이 광주에 이 분들을 알았어요. 그분한테 우리 데려다 주자. 이래가지고 정 원장님 YMCA 총무로 계시기 때문에 그 새로 다시 말하면 적산 이지요. 일본사람 재산을 인수한 것이 일본 사람들이 훈련하던 훈련소입니다. 큰 군인 훈련장인데 그걸 불하를 받았기 때문에 건물이 큰 교실 같은 건물이 많이 있었어요. 거기에 6백 명이라는 고아들을 데려다 놓았던 것입니다. 엄청난 수입니다.
그러니까 그때 속수무책(束手無策)이야요. 약이 있습니까? 의사가 있습니까? 간호원이 있습니까? 믿음 하나로 십대 이십대 젊은 보모들이 다 순 그 아이들 본다 하지만 지금 생각하면 참 눈물 나는 일이에요. 매일 죽어가는 거예요. 애기들이, 그때는 전염병이 있지 않습니까? 열병 설사병 병명도 모르는 아이들 그러나 그렇게 그 일 동참 했을 때는 참 그야말로 뭐라 할까요? 참 최선을 다 했겠지요? 그런데 그럼 왜 그렇게 연합군 외국 사람들이 아이를 이리 데려오느냐? 다른 곳에 많이 맡겨봤지만 그 물자만 없어지고 아이들이 보호가 안 되기 때문에 그것은 아직 정부가 흔들리고 있을 때니까 군인들이 데리고 온 애기들이 들어올 때는 산덩이 같은 재산이 오는 것입니다. 쌀 고기 통조림 모두 구호물자 그런데 일체 이 분들이 고기를 안 먹거든. 아무리 고기를 많이 갖다 줘도 큰 창고에 그득그득한데 입을 안대. 그렇게 쌀이 산덩이 같이 밀렸지만 한 백석 백오십 석 그래도 나물을 뜯어다가 놔 잡수시지. 그렇게 밥을 한번 안 해 잡수셨습니다. 그것을 보고 연합군이 그걸 보고 신용하고 자꾸 애기들을 데려 온 것이지요. 그런 시절이 있었답니다. 그런데 그 이야기는 동광원 이야기이고 동광원이라는 공동체가 있기 전에 일본시대부터 훈련한 형제자매들 영적 동지들이 있었지요. 영적 공동체지요.
그러니까 지리산에 계셨고 화학산에 계셨고 그때 이 선생님의 동기들은 거의 백 살이 넘지요. 거의 하늘나라 가셨지요. 지금 몇 분이 계신지 알 수 없어요. 또 그럼 우리들도 해방 후에 만났으니까 동광원 있기 전에 4-5년 전에 다 만난 사람들입니다. 그때는 공동체 형성이 안 되었습니다. 저는 해남 사람이고 이 선생님은 화순 사람이고 또 목포 사람이고 대개 그렇지요. 강원도 사람이고 서울 사람이고 한 분 한 분 소문 듣고 이렇게 모여든 다음에 공동체지. 처음에는 한 반 년 만에 일 년 만에 잠깐 잠깐 얼굴 본 일이 있습니다. 그럼 이제 제 몫에 제게 일어났던 일만 보고 늘 합니다. 그 이야기를 그런데 그래 이 선생님을 다시 한 번 말씀 드립니다만 해남 교회에서 해방 후에 뵈었는데 9월 말 이니까 10월이 가깝고 국화가 필 때고 처음 보는 해방 후에 그 이 준 목사님이 초청해서 오시게 되가지고 새벽 기도회를 인도 하셨습니다. 그 분은 강대상에 안 올라가니까 도저히 올라가시라 해도 안 올라가세요. 그러니 바닥에 꼭 이렇게 의자 없이 바닥에 밥 먹는 책상을 갖다 드렸어요. 그 여자 집사님들이 너무 황송하니까 국화를 꺾어다가 새벽에 딱 놓아 드렸거든요. 소박하시니까 그러니까 딱 찬송이 그치고 말씀 시간인데 마음이 우시는 겁니다. 아 어쩌면 이 꽃을 꺾으셨습니까? 아 어쩌면 그대로 두고 보셔야지.
아니 어떻게 사람이 꽃을 꺾을 수 있냐? 그건 도저히 못할 일 한 것같이 그냥 소위 말하면 안쓰러워서 아주 마음이 슬퍼하셔. 그때 제 나이가 한 스물 두 살인데 그 음성과 마음에 그냥 확 마음이 끌려버렸다. 저렇게 꽃을 사랑하시는 분이라면 나 같은 사람은 얼마나 사랑해 주실까? 확 믿음이 가버렸어요. 그때는 제가 건강하니까 제가 앞으로 어려운 때가 있다면 10년 후라도 아무 때라도 이 분을 꼭 찾아가서 생명을 맡겨드리면 좋겠다. 그렇게만 생각했습니다. 그러니까 그때 첫 순간에 마음을 소위 말하면 드렸지요. 그 다음에 한 일 년 후에 또 뵈었지요. 뵈었을 때는 소위 말하면 광주 그 동광원이 되기 전이니까 그 YMCA 그 건물 이런 큰 방이 있고 옆에는 일본 사람이 쓰던 관사가 있어요. 일본군인들 장교가 쓰던 관사 쪼끄만 다다미방이에요. 그때도 정 원장님이 YMCA 총무로 계시니까 친구 집에 와서 계셨던지 그 윗방에 계셨어요. 그때도 한 2월 달 아주 추운 땐데 다다미방에 불을 못 때기 때문에 그 분이 늘 굶으신다는 말은 들었지요. 그때도 원체 30대 인데 손톱이 파래요. 얼마나 몸이 영양부족인가 피가 모자라요. 바짝 말라가지고 그러니까 원장님이 그때는 원장님이 아니지요. 그때는 총무지요. 총무님이 너무 안쓰러우니까 그때는 장작을 때는 때 아니겠습니까? 화로에다 숯불을 담아다 드렸어요. 쬐시라고 벌벌 떨고 계시니까.
근데 제가 들어가 뵐 때는 한 10시 경 되니까 숯이 다 타고 흰 재만 남아있을 때에요. 저는 일 년 전부터 흠모하고 있던 선생님을 뵈었으니 눈물이 앞서고 말이 안 나와요. 그래 아무 말 없이 한 시간 옆에 앉아있어. 도저히 말이 안 나오데요. 왜 선생님을 만나기 위해서 한 반년동안 밥을 사먹고 광주에 와 있었거든요. 너무 고생 많이 했어요. 그렇게 기다리던 분이 오셨는데 말문이 막혀서 말 못했어요. 한 시간 동안 아무 말씀 안하세요. 날이 추우니까 자꾸 불 수저로 불이 꺼지지 않도록 여미시고 앉아계시거든요. 분명히 아십니다. 찾아온 사람의 심정 아시지만 아무말씀 안하세요. 그래 한 시간 이나 된 후에 이것만 알면 다 알 텐데 그분 음성이 배고프니까 이 목 속에서 나와요. 아주 가늘어요. 이것만 알면 다 알 텐데 그 적은 음성이 가슴이 꽉 찼어요. 아 이것이 뭔 소리일까? 지금까지 귀에 쟁쟁한데요. ‘이것만 알면 다 알 텐데’ 그리고 저는 배가 고프니까 12신가 되어서 그 YMCA 에는 고학생들이 많이 있어요. 그 기숙사에서 밥 얻어먹으려고 갔다 왔더니 밥 얻어먹고 오니까 안계세요. 행방불명이야. 왜 찾아 올 때도 주소가 없지만 떠날 때도 주소가 없으니까 물어볼 곳이 없어요. 그래 잠깐 뵙고 또 못 뵙고 반년이 넘어갔지요. 그때는 지금 오 장로님 살아계시니까 깊은 산속에서 고등 목수 아니십니까? 아주 조각을 잘하시고 고급 장롱을 짜시기 때문에 어느 부자가 장롱을 짜 달라고 해서 짜시고 계신데 제가 거기 붙어 있었어요. 오 장로님 밑에가 있었지요.
그런데 어느 날 이 선생님이 찾아오셨어요. 그래 일꾼 밥이기 때문에 부잣집이고 밥이 두 그릇이에요. 이렇게 많이 담아 주지요. 그래 인제 목수일 끝나고 저는 조수니까 밥상을 딱 받았어요. 막 비가 쏟아져요. 장대비가, 여름이니까 그런데 이 선생님이 그날 오셨어요. 밥상이 들어오는데 옆에 앉아서 보셨거든요. 배가 고프니까 일했기 때문에 수저를 들었습니다. 그때는 제가 왜 찾아오셨는지 아시거든요. 준호 아마 준호씨 그랬을 거예요. 준호씨 앞집에 가서 밥을 얻어 오세요. 그렇게 이야기 하셨어요. 아주 식욕이 왕성해서 먹고 싶은 밥인데 수저를 들었는데 앞집에 가서 밥을 얻어오세요. 그래, 지금 생각해 보면 도저히 상황이 밥 얻으러 가는 상황이 아니야. 막 장대비가 쏟아지고 그래 저는 너무나 존경하는 선생님의 말씀이기 때문에 너무 그 힘이 강해요. 도저히 밥을 먹을 수 없어요. 벌떡 일어서 가지고 그 비를 맞고 맨발을 벗고 막 뛰어 나갔어요. 구장 집에 갔던가? 구장 집이던가? 확실히 그런 것 같아요. 그래 비가 막 쏟아지고 부잣집 이니까 안집이 멀어요. 그래 아주 부끄럽기 때문에 밥 한술 주십쇼. 안 들리니까 아무도 안 나와요. 몇 번 소리 지르니까 마침 곧 시집오신 아씨인가 참 새색시 옷을 입으신 분이 누런 이렇게 그릇에다 밥을 갖고 나오시는데 딱 뚜껑이 덮여 있어요. 비는 많이 오니까, 너무 감격하고 감사해서 고개를 푹 숙였습니다. 너무 감사해서 ‘감사합니다.’ 그렇게 인사를 했어요.
아주 20대나 젊은 부인이신데 쟁쟁해요. ‘왜 하나님께 감사 안하시고 사람에게 감사하시오?’ 쟁쟁해. 그 음성이, 그냥 빨리 와버렸지요. 그런데 그 그냥 그릇조차 그 선생님이 물위에 나와 서계세요. 방에 안계시고 밥을 얻어갖고 들어가니까 얼마나 반가와 하는지요. 덥석 받아가지고 ‘처음 얻어온 밥은 내가 먹으렵니다.’ 척 앉으셨어요. 딱 베껴 보니까 흰 죽이에요. 왜 흰죽인지 아십니까? 규모 있는 어른들 일본시대부터 부자라면 비가 오면 일 안하고 꼭 죽 쒀 먹습니다. 부자라면 부자 아닌 사람이 밥해먹지. 규모가 짱짱하지요. 일꾼도 많으니까 비가 오니까 죽 쒔어요. 그날 그러니까 자기 시아버지 밥이던가 봐요. 점심 시아버지 몫인데 주셨어요. 그럼 이제 이건 처음 얻어온 거는 내가 먹으렵니다. 딱 제끼니까 밥이 아니고 죽인데 준호 밥 얻어온 소감을 이야기 하세요. 배는 고픈데 그래 모든 상황이 아주 비상한 시간이지요. 그래 들은 대로 이야기 했어요. 너무 부끄러워서 소리를 질렀는데 밥은 안주고 몇 번 소리 지르니까 밥을 갖고 나오시는데 아주 젊은 부인이신데 너무 감사해서 절을 했습니다. 그랬더니 왜 하나님께 감사 안하시고 사람에게 감사하시오? 그렇게 말씀 했습니다.
그러니까 ‘아 그 말, 그 말은 우리에게 쌀 천석 만 석보다 귀한 말입니다.’ 그 말도 쟁쟁해요. 귀에 그리고 그 부인은 보니까 육이오가 끝날 때 모든 전라남도 군수는 다 모였어. 그 마을에 그 깊은 산중이니까 도지사까지 그래 저쪽 세상이지요. 거기가 쏘가 되어버린 겁니다. 국군하고 싸워가지고 그 마을이 그 자매의 남편이 구장이기 때문에 그 부역했다고 총살당했어요. 국군한테 과부가 되었지요. 그래 다음에 소식 들어보니까 이리로 출가해 가지고 부인이 아주 믿음이 승한 사람입니다. 보통 믿음이 아니에요. 백령굴에서 걸인이 되어가지고 살았어요. 혼자 산 것이 아니고 그 단양 할머니라고 아주 믿음이 좋은 할머니를 어머니로 모시고 두 분이 은둔 하셨습니다. 빈민굴에 매일 다닌 곳은 그 유곽 사창굴 거기 다니며 전도하셨어요. 40대에 일찍 돌아가셨습니다. 전염병으로 가셨는지 알 수 없어요. 그 분 이름이 김 연임씨라고 그래. 참 소위 말하면 소설책 이지요. 그럼 그분들이 예배당에를 다닙니까? 어디 뭐 절을 다닙니까? 순수 민간인 이었거든요. 어찌되었든지 참 사연은 더 있지요. 이제 육이오 때 저와 이 선생님이 최후에 다 식구들이 광주로 나가고 산 속에서 숨어있을 때 자기가 구장 부인의 권리가 있기 때문에 11월 초순이지요. 양력 눈이 오고 소문에 이 선생님이 산 속에 숨어 있다는 말을 들었는데 거의 다 알고 있었어요.
그때 숨어있다. 뭐 못 잡은 것뿐이지 숨어있다. 그럼 자기는 구장의 부인이기 때문에 마을 사람들이 믿어주고 쌀 닷 되를 광주리에 숨겨 가지고 그 산속에 들어오셨어요. 내가 이 쌀을 갖다 주다가 죽으면 죽고 그렇게 선한 사람을 내가 이 쌀을 갖다 드려야겠다. 그 선심이지요. 그리고 그 쌀을 놓고 가고 그 쌀을 그때 순교 당하신 여기 무덤이 있지요. 서울 어머니한테 전달 하셨어요. 서울 어머니, 유명한 서울 어머니, 서울 어머니가 깊은 밤중에 쌀 닷 되를 우리 둘이 숨어있는 산 굴속에 찾아 오셨어요. 오늘 밤이 마지막입니다. 모든 상황이 막 조여 오니까 이어도 다 잡혀. 그래 선생님과 제가 앞으로 연락이 안 되니까 이 쌀을 김 연임 씨가 갖다 놓고 갔습니다. 사연은 자기가 죽을 각오하고 쌀을 갖다 놓고 가면서 가다가 의심 받으면 죽을지 모르겠다고 그리고 갖다놓고 갔습니다. 나도 이제 내려가면 상황이 우리는 다시 서로 왕래가 안 됩니다. 그리고 내려가시고 곧 체포당하시고 순교를 당한 분이신데요. 그러니까 그래 우리는 일체 몰랐지요. 깊은 산속에 있었으니까 그 쌀 닷 되를 한 달을 더 먹었으니까 둘이 상당히 내려 먹었지요. 그리고 12월이 가까울 무렵에 이제 하산했다는 이야기는 다 했어요. 책에 훗날 들어보니까 그 서울 어머니와 차남씨 어머니 두 분이 모든 죄목이 많아요. 그 사람들이 공산주의 하던 사람들이 숨어있는 마을이기 때문에 첫째는 스파이로 의심하고 왜? 예수 믿는 사람이 스파이다. 또 외국 선교사가 그 산에 숨어있기 때문에 모두 한 식구다.
그래 예수 믿고 스파이고 그러니까 모든 것을 사실대로 말하면 지금 산 속에 미국 스파이가 숨어있냐? 또 이 현필씨가 숨어있냐? 사실대로 말하면 살려 주마 그랬겠지요. 그럼 이건 추리하는 거예요. 이 분들은 생명을 벌써 생사를 초월한 분들입니다. 두 분 다 아주 두 분 이야기가 너무 많아요. 일체의 생명의 죽고 사는 것을 넘어선 사람들입니다. 그래 뭔 말을 한자리 그 사람들한테 주지 않았지요. 아무리 때리고 해도 아무리 졸라 봐도 말이 안 나오니까 이 칼로 가슴을 찍어가지고 살해를 했지요. 그런데 그때 이 선생님을 최후까지 도와주던 그 분도 출가한 분이에요. 이 남편 분이신데 문공이라고 하시는 아저씨인데 거기 처자 아들 둘 딸 부인 식구 데리고 전 식구가 거기와 사셨는데 최후까지 우리를 도와준 분인데요. 그런데 그 분이 마을로 소개 당했어요. 그 마을로 그런데 이제 가만히 들으니까 문공이 자기도 숨어있지요. 이불을 쓰고 방에 서울 어머니와 차남씨 어머니가 사형을 받기 위해서 화지기를 틀고 산속으로 올라간다는 말을 하니까 이불을 탁 박찼어요. 문공님이 그러니까 부인이 이불을 콱 잡고, 죽는다. 나가면 죽는다. 아니 자매들이 끌려가는데 내가 어떻게 방에 있느냐? 여보 그 여자들이 뭔 죄가 있소? 예수 믿는 여자라고, 나도 예수 믿소. 너도 예수 믿느냐? 가자. 그래 두 부인이 끌려가고 문공도 끌려가고 문공은 남자니까 이 골짜기 부인은 저 꼴짜기,
그렇게 해서 총살하고 싶지만 국군이 쫒아 오니까 두렵다고 해서 대 칼로 대칼로 이렇게 살해 했어요. 그 이야기는 마을 사람들이 뒷날 했지요. 그렇게 우리는 봤다. 그런데 도구박 골이라는 곳으로 두 여자가 어머니들이 끌려가는데 바위가 있어요. 그러니까 한 어머니가 언니 우리 고무신 아직 새것인데 산 사람 신으라고 나 벗고 갈래요. 그러니까 나도. 이 두 분이 딱 벗어놨어요. 바위 위에다, 딱 고무신 두 켤레 그 이야기를 마을 사람이 고증 했어요. 그래서 그 고무신을 마을사람이 너무나 없던 때니까 그 두 고무신을 우리가 주어다 신었다. 그 마을 사람들 이야기지요. 그렇게 해서 세분이 거기서 순교를 당했지요. 요 뒤에 무덤이 다 있어요. 어떠한 뜻으로 뼈는 못 찾았습니다. 기념으로 그 흙만 퍼왔지요. 그런 사연이지요. 그런데 그러면 인제 서울 어머니 한번 이야기 한 것 같아요. 한 2백 명이 왔다가 다 광주로 가고 백 명이 남고 오십 명이 남고 십 명이 남고 최후에 인제 서울 어머니와 차남씨 어머니가 이 선생님 주변에 계신 거예요. 그러니까 여기 있으면 죽는다. 이 선생님 다 알지 않아요? 내다보는 선견지명이 있고 광주로 가야 산다. 그러니까 서울 어머니 말이 나는 그 분도 소위 말하면 참 독립운동 하던 분이에요. 만주로 중경으로 장개석 씨 밑에서 그렇게 청년들하고 독립 운동하던 분인데 그 공산주의 하는 사람들의 생리를 나는 잘 안다.
또 그리고 저 사람들이 길이 막힐 텐데 내가 사는 방 밑에는 지하실이 있다. 그러니까 한 두 사람이라도 영혼이 아까우니까 내가 포섭해야겠다. 내가 살고 싶은 것은 저 사람들이 곧 국군이 진격할 때 한 두 사람이라도 내가 살리고 싶은 것이 내 소원이고 나만 살자고 내가 무엇 때문에 광주로 가냐? 나는 벌써 죽었다. 옛날에 일체 이 선생님 말은 내가 순종하지 못하겠다. 선생님 말씀을 순종 못하는 것이 오히려 나는 하나님의 뜻으로 안다. 그리고 안 나가셨어요. 차남씨 어머니는 중학교 교장 한분하고 여순경 세분을 굴에 감춰 두시고 몰래 숨어서 밥을 한 육 개월 동안 봉사하신 어머니에요. 그리고 다 살아갔으니까 어머니도 가라고해도 안가세요. 선생님이 산 속에 계신데 어떻게 내가 가냐는 거예요. 죽어도 같이 죽지. 그러고 계시던 어머니기 때문에 결국은 두 분이 마을로 가셔서 살해를 당하신 거지요. 그런 이야기는 어느 정도 제 이야기 아니어도 혹시 문헌에 있을 런지 알 수 없습니다. 그러면 아까 저를 기르던 이야기를 했어요. 동광원에서 4-5년 전에 저를 길러낼 때 여기 다른 형제는 건강했어요. 그러니까 농사를 하도록 지도를 했습니다. 저는 몸이 약했던지 기회만 있으면 밥 얻으러 보냅니다.
또 한 6개월 후에 기회가 있어서 하늘나라 가신 수레기 어머니와 차남씨 어머니와 이 선생님이 심방하지요. 이렇게 쭉 봄이고 가을이고 쭉 걸어서, 걸어서 서울까지 목포까지 돌아다니는 그때니까 그러니 광주에서 뵈어가지고 따라나섰는데 곡성 삼산에 서 집사님이 살고 계셨던가 봐요. 삼일을 걸었습니다. 광주서부터 굶고, 굶고 냉수마시고 굶고, 굶고 그렇게 해서 중도에 어느 집에 들어갔어요. 나중에 알고 보니까 동록 장로님 살아계시지요. 그 분의 어머니가 살던 마을이에요. 그 댁에 가셨던가 봐요. 그러니까 거기에서 얼마 멀지 않은 곳에 부자 신자가 있었어요. 그 밤중에 선생님은 안 잡수시니까 이 길로 가실 성 싶으니 그렇게 사랑이 많은 분들이지요. 먼 수 십리 밖에서 어느 부인이 부자인데 자기가 떡을 드리면 안 잡수신다는 거예요. 그러니까 이 길목에 가실 때 드리라고 찰떡 검정 떡 아마 한말은 해다 놓았을 거예요. 그 집에다가 그래 어머니 두 분 선생님 저 네 사람이 들렸지요. 들리니까 곧 상에 떡이 나와요. 떡이 이렇게 나오는데 선생님 어디 가는데 꼭 그거 봤어요. 밥상이 그 넷이 다 먹어도 못 먹을 밥상이 나오거든, 누구 집에 가든 그러면 일체 그냥 나오시거든. 퍽퍽 울어요. 그 식사 준비 하신 어머니 어디를 가든지 아주 그냥 너무 그 오시기를 바라고 오시기를 바라고 딱 심방하시거든.
그럼 음식이 일 년 열두 달 모아 놨던 거 다 잡수시라고 안녕히 계십시오. 딱 돌아서 열 집을 가도 그냥 떠나지. 입을 안 댔어요. 음식을, 그러기 때문에 그 어머니들이 전부 자녀를 바쳤습니다. 음식을 드려도 입을 안 대셔. 그러니까 사랑하는 딸 사랑하는 아들을 바쳤어요. 그 자매 그 사람들이 동광원에 현재 직원들이야. 그 부모들이 마음을 드리고 싶고 재산을 드리고 싶고 음식을 드리고 싶어도 일체 사양해. 그래 내 자식을 맡아 주십시오. 그렇게 된 것이지요. 제가 볼 때 그렇게 보여 졌고, 그래 그 집에서 떡이 나왔어요. 그러니까 어머니들은 다 연상이니까 두 어머니 모시고 어머니 기도합시다. 유명한 기도 ‘하나님 아버지 감사합니다. 이놈이 이집 저집 과부 집 돌아다니면서 떡이나 얻어먹고 재물을 탐한다면 이 창자가 녹아내리게 하시고 이빨이 썩어 내려앉게 해 주십시오.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 올리옵나이다. 아멘.’ ‘어머니, 떡 잡수시지요.’ 뛰 뛰 하고 손을, 저는 얼마나 배가 고픕니까? 며칠 굶었는데 손이 왔다 갔다 해도 도저히 먹을 수 없어요. 그 정신력이야. 또 따라 나가지요. 그 처음 듣는 사람 때문에 또 이야기 해. 또 가다 옛날 공민학교 때 교장 선생님 집에 갔어요. ‘선생님 계시오?’ 그러니까 그 국민 학교 때 제자니까 ‘아, 현필이 오는가?’ 그러시데요. 도곡면 국민 학교 교장 이었어.
그 분이 ‘현필이 오는가? 어서 오게.’ 아주 사모님 ‘아이고 어서 오시오’ 곧 밥 사모님이 밥을 그뜩그뜩 밥을 네 그릇, ‘우리 먹었습니다.’ 그러니 누가 손을 못 대. ‘우리 밥 먹었습니다.’ 그래 어머님들도 굶고 저도 굶고 그냥 자지요. 선생님도 굶고 해가 막 질라는 무렵에 무 하나를 이만한 것 뽑아다 놨어요. ‘사모님 이 무 저 먹도 좋아요?’ ‘아 잡수세요.’ 갖고 들어가셨어요. 이보다 훨씬 크지요. 밤중 열두시 한시가 되었는데 제가 배가 고프니까 잠이 안 오지요. 그런데 무를 한 시간 더 잡수셔. 사그락, 사그락 뭘 잡수시기는 하시는데 자시는 거야. 그냥 무슨 구상하시겠지요? 장래의 구상 무아의 경지에 들어가서 무를 사그락, 사그락 춤이 이만큼 고여 가지고 먹고 싶으니까 그뜩 고여 가지고 선생님 눈치 챌까봐 침을 못 삼키고 꿀떡 그러니까 ‘준호 잠 안 자는가?’ ‘예’ ‘무 먹고 싶지?’ ‘예’ 쪼끔 남았어. 끄트머리, 쪼끔 멸치만큼 남았어. 캄캄한 밤에 딱 손에 쥐어줘. 이렇게 와 그걸 보니까 얼마나 배가 부른지요? 그게 마음이지요. 아 무 끄트머리 얻어먹으니까 소원성취여. 얼마나 배가 부르고 어찌되었든지 그렇게 따라가고, 따라가고 그랬어요.
서 집사님 댁에 이번에 가면 삼사 절벽 코재에요. 코재, 캄캄한 밤중에 일본시대 다니던 그분들의 길이라 다 알아요. 밤중에도 우리는 따라가니까 무슨 코재예요. 코재, 코가 닿으려고 그래요. 그런데 거기 집이 한 채 있는데 서 집사님 댁 그 분도 신사참배 피하기 위해서 깊은 산에 숨어 계시거든. 그때 아주 깊은 산속 그분도 오직 이나 일 년 내 모아놓았던 쌀 싹 털어가지고 밥 네 그릇 만들어 딱 차려놨어요. 아침에 저는 쭉 굶었으니까 으레 잡수실 줄 알았지요. 수저를 딱 들고 이렇게 입을 벌리니까 준호 밥 먹고 싶으면 한 1키로 내려가면 마을이 있다. 마을에 가서 밥을 얻어먹으시오. 그래 인사 같아요. 가만히 말씀해서 그냥 눈감고 막 먹었어. 어찌 배가고픈지 어머니들은 음식에 입도 못 대지요. 어머니들은 눈으로 보고 딱 놔버려요. 밥이 세 그릇 남아있지요. 저만 혼자 먹고 저도 따라나섰어요. 뒤돌아보면서 준호 밥 먹었으니까 집사님 삽 없소? 여기 있소. 삽 가지고 나오셔. 준호는 밥 먹었으니까 밭파시오. 밭이 한 삼백 평 있어요. 삽을 딱 주면서 밭 파기 싫으면 광주로 가시오. 그라고 가셔버리더라고요. 깊은 산속에 혼자 울었다고 밭을 파자니 허리가 아프고 광주 가자니 참 부끄럽고, 한 3일 팠어요. 그때 고사리가 필 때에요. 그때는 배가 고프면 고사리 꺾어 먹고 쌀이 조금 있었어요. 쌀로 죽 쒀먹고 한 며칠 후에는 지금 사무엘 장로님이에요. 이 사무엘 그때 소년 12살 인데 깊은 산 속에 왔어요. 형님 데리고 오라고 합디다. 얼마나 감사한지요.
그래서 걸어 걸어서 기차타고 인제 이 서리내 산으로 갔어요. 여기 보입니다. 서리내 산, 거기 계십디다. 거기 계시거든요. 걸어, 걸어 거기를 찾아가서 예배를 봤어요. 어머니들 하고 7-8명이, 석양이 딱 되었는데 저는 해남서 공부하다 왔거든요. 요새 같으면 고시 준비지요. 학원, 그러니까 일본서 모두 일본서 대학교 졸업하고 온 사람들이 전부 선생님들이야. 막 노래를 가르쳐 주지요. 애국심으로, 전 병환 선생님한테 제가 몇 마디 썼어요. 제자가 선생님한테 갚으려고 그 선생님한테 빚 얻어 쓰고 그냥 안 갚는 다는 것은 너무나 마음 아파서 예배를 보고는 마음이 아파서 ‘선생님, 나 해남 다녀오렵니다.’ 그렇게 이야기 했어요. 설명 않고 ‘해남 놈은 간사하다. 갈라면 지금 가.’ 음성이 크지 않아요? 속에서 하는 소리, ‘해남 놈은 간사와 갈라면 지금 가.’ 가만히 그러더라고요. 해는 다 져가는데 꼭 갔다 올 사람인데 안 갈수 없어서 밤중에 나섰어요. 참 걸어걸어 걸어서 근데 사무엘 지금 장로님 장로 될 라고 그랬던지 길가에 딱 섰다가 형님 차비 없지? 똑 차비를 딱 내놓더라고요. 그래서 인제 가서 그 사연 있어요. 어머니한테 찾아가서 돈 만들어서 갚고, 다시올라왔지요. 그러니까 저를 훈련시킬 때는 만나면 밥 얻어오라. 그뿐이에요. 그냥 곧 준비도 없어요. 밥 얻어오시오. 밥 얻어다 먹으시오. 저는 그렇게 지도 했어요. 그러니까 그 뜻은 제가 알아들었지요.
왜 알아들었냐 하면 제가 해방 후에 이 선생님을 만날 무렵에 프란치스코의 전기 완덕의 거울을 만나게 되었어요. 길가에서 그걸 가슴에 품었기 때문에 이 선생님의 마음을 다 알아요. 프란치스코 정신 이니까 프란치스코가 첫날부터 거지 행각을 하지 않습니까? 그러니까 생소하지 않아요? 아 예수 따라 갈라면 그 행각이 좋다. 그러니까 저도 지지를 했고 선생님도 그 방향으로 지도하시고, 그래서 그때 육이오가 일어나기 전에 해방 후에 수십 명 청년들이 있었어요. 다른 사람들은 다 작업하지요. 일하고 저만 그쪽으로 지도하신 겁니다. 저만, 그래서 동광원이 창설된 뒤에도 저는 공동체에 예속시키지 않으셨어요. 다리 밑으로 가 있거라. 다리 밑으로 가라. 그렇게 명시는 안 하세요. 밤중에 이렇게 깊은 밤길에 불 안 썼으니까 ‘고기를 잡으려면 그 제일 아랫도리에 가서 발을 막아야 될 텐데.’ 그러니까 고아원에 있는 애기들은 다 행복해요. 고아원에 있다가 나간 아이들 부랑아들 부랑아를 붙잡으려면 제일로 하수구 제일 밑에 제일로 낮은 자리, 다리 밑에가 아이들이 살고 있거든요. 거기 가서 같이 살아야 하겠다. 그래 요령을 얻은 거지요. 제가 구체적으로 어디가 살아라. 그건 아니에요. 암시 했지요. 다시 말하면 부랑아들 때문에 걱정 하시니까. 동광원에 살지 못하고 내뺀 애기들이지요. 전부 다리 밑에 있어요.
그러니까 가장 낮은데다가 발을 쳐야 잡힐 텐데 그 말씀을 듣고 그냥 다리 밑으로 들어갔지요. 그러면 구체적으로 이래라 저래라 한 번도 안 하셨어요. 그러면 몇 개월 만에 한 번씩 와 보십니다. 그 다리 밑에 그러면 아이들이 얻어먹는 애기들이 오직 합니까? 세수도 안하고 코를 찔 할타먹고 싸우고 깡통을 들고 막 장난하고 막이 따로 있어요? 애기들 막이, 그럼 선생님 오셨는데 막 싸워요. 권투를 하고 그럼 하도 부끄러워서 선생님 오셨다고 싸우지 말라고, 준호, 준호 불러서 가보면 아이들 싸우라고 그냥 두라고 가만 두라고 아주 좋게 생각하세요. 싸우고 막 그렇게 사는 거를 그렇게 하셨고, 제가 고독할까봐 밤중에 갑자기 오세요. 눈이 많이 올 때도 방이 아니에요. 그 험상궂은 그런 막이 없지요. 막에 벽도 없고 벽이 이렇게 흔들흔들 하는데 거적 속인데 잠깐 주무세요. 새벽 기도회가 있지요. 그때 네 시에 사이렌이 울어요. 네 시 되면 곧 가세요. 왜? 기도회 인도하시기 때문에 그 지산동에 거주하는 공동체가 있기 때문에 다리 밑에서 지산동이 일 키로 더 되지요? 빨리 가신다고 한번 이런 일이 있어요. 안심이 안 되면 눈 올 때 오시는데 맨발 벗고 눈이 왔는데 그러니까 인제 짚신이지요. 짚신 신고 오시는데 너무 수상하니까 파출소에서 잡혀갔어요. 사상을 염려해서 그래 안 놓아줘요. 감옥에 파출소에 갇혔는데 도저히 의심을 하고 안 놔주니까 그러셨다고 그래요. 찾아 오셔서 ‘준호, 우리 형님이 도암면 면장이오. 그러니까 보내 줍디다.’ 그래요. 그때 형님이 도암면 면장이에요. 그때 육이오 후인가? 전인가? 그렇지요.
어찌되었든지 한 번씩 와서 같이 주무시고 가시는 것뿐이고 어떻게 사냐? 그건 안 물어봐요. 왜 비가 오나 눈이오나 항상 먹을 것이 없거든요. 먹을 것이 없으면 배웠어요. 쓰레기통에 가서 먹는 것 주워요. 배 껍질 고구마 껍질 또 파 껍질 또 내전 밥 그걸 주스면 얼마나 행복합니까? 그것이 없을 때 못 줍지. 그것을 그 형님한테 배워가지고 아주 먹는 건 걱정 없어요. 이제 밥을 얻어먹는 것은 부끄러우니까 못 했지요. 그래 배가 고프면 쭉 내려가요. 대인동으로 이리 길음동으로 돌아오면 내려가면 길가에 내친 밥, 그때는 아침에 많지요. 그렇게 다 아세요. 일체 먹는 것에 대해서는 아주 그것만 좋게 생각하시지. 가사 협력할 마음 안 하세요. 비가 오나 눈이오나 굶고 있는 것 아시지만 협력할 맘 갖고 있지 않아. 수천 명 수백 명 구호는 하시지요. 옷도 주고 밥도 주고 쌀도 주고 그러나 제자에 대해서는 아주 냉하세요. 그런데 그걸 기쁘게 생각하셨어요. 청빈낙도 가난하게 살면서 기쁘게 사는 것은 장려하시고 힘을 밀어주시지 절대 도와주지 않으셨거든요. 그렇게 기르셨거든요. 지금 생각해 보면 얼마나 감사한지. 그러니까 그럼 다른 형제는 곧 농장으로 보내거든. 일하라고 쟁기질 배우라고 씨를 뿌리라고 그럼 제게 대해서는 그쪽으로 지도하신 거예요. 그 오늘도 김 목사님이 그러십디다. 유 선생님은 볼수록 높아서 아득하다. 지금 생각해 보면 이 선생님을 이야기 하라면 모르겠어요. 너무 높고, 높고 높아가지고 저는 인제 거지가 되도록 힌트만 주셨지요. 그쪽에서만 본 것뿐이고 전혀 모르는 겁니다. 전혀 누군지 몰라요.
바깥어른들이 이 선생님을 잘 믿는다고 해 싸니까 그런가 보다. 느낌만 오지. 전혀 모르겠어요. 그 분이 무얼 것인지 전혀 모릅니다. 그러나 선생님이 후회하시는 말은 몇 번 들었어요. 아 나는 참 바보야. 나는 그때 기회를 놓쳤어. 한번 이러십디다. 이 세종 선생님이 기도하던 곳이 지금 천태산이지요. 거기 서 예배를 딱 보고 잔등 넘으면 이 선생님 집입니다. 일 키로 밖에 안 되어요. 이 공님 나 집에 가서 밥 먹을랍니다. 그러니까 지금 보리 밥 좀 남았소. 여기서 먹으시오. 그랬다는 거예요. 해가 질 때 보리 밥 좀 있소. 여기서 저녁 잡수시오. 아니 집에가 밥 먹을랍니다. 그리고 산을 넘어가서 집에서 밥을 먹었답니다. 그래 지금 한 오십이 가까웠을 때 말년에 ‘아 내가 왜 그때 이 공님의 말을 순종 안했을까?’ 나는 그 말씀을 순종 못해 이 모양이 되어 버렸다. 아 이 모양이 되어버렸다. 천만 한탄 하세요. 자기 일생이 달라진 거예요. 여기 보리밥이 남아 있소. 이것 잡수고 집에 가지 마시오. 그때 그 보리밥 먹고 집에 가지 안 갔으면 자기 길은 완전히 달라지는 거예요. 아 집에 가면 밥 있습니다. 그리고 그 선생님 말씀을 무시하고 가서 밥을 먹었더니 영원히 길이 달라졌다고 말 했어요.
그 짐작 다 하실 겁니다. 얼마나 달라졌는지 지척 지간이야. 마음하나 잘못 먹은 거 그 사랑하는 선생님 스승이 보리밥 한술 있습니다. 이거 잡수세요. 그 말을 동의 못했다는 거예요. 그 동의 못한 것이 천리만리 길이 달라졌다는 거예요. 길이 그래서 결혼 했지요. 그리고 다시 돌아온 거지요. 그래 그때 보리밥 먹고 순종했으면 결혼하지 않고 성공할 분이지요. 잠깐 사이 뭐 많은 논리나 학문이 아니고 잠깐사이 마음 거리라는 것은 또 한 번은 아 나는 그 길을 놓쳤어. 진실로 나는 그 좋은 길을 놓쳤다. 이따가 엄 목사가 쓰신 글을 좀 읽어 드리겠습니다. 삼바시라는 곳에서 생명이 왔다갔다할 때 요양하던 글인데요. 그러니까 24시간 선생님의 생명이 위독하니까 자매들이지요. 여자들이 그래 당번이 열 번이고 바꿔서 지키지요. 생명이 위독하니까 24시간 지킨단 말이에요. 옆에 자꾸 이 간호를 해드리니까 너무나 황송했던 거 같애. 젊은 사람들 한 테 이건 결핵병인데 이 건강한 사람들한테 전염이 되지 않냐? 그러니까 일체 비밀로 하고 계획이 있어요. 옛날에 기도하시던 서리내 산이지요. 거기에 소리 없이 가서 홀로 죽어야겠다. 그 결심 하신 것입니다. 그러니까 저녁당번 낮 당번 모두 몸들이 피곤해요. 간호하는 사람들이 (끊김)
가을 소나기가 쏟아 졌어요. 그때 마음에 이 청년이 뭔 죄가 있는가? 이 죄인 때문에 이 죄 없는 청년을 이렇게 고생 시키는 것은 참 잘못이다. 그 생각이 들어가지고 아이 비가 오니까 올라갑시다. 올라갔단 말이야. 그때 조금만 결심을 강하게 했더라면 그때 이 약속을 지킬 청년이니까 버스에만 태워 줬더라면 홀로 들어가서 참 주님을 만나봤을 텐데 참 인의 장막 이지요. 생명을 바쳐 간호하는 그 제자들의 사랑에 녹아가지고 그 길을 탈출을 못했다는 겁니다. 자기 정신상태지요. 참 정신 독립을 못 했어. 환자니까 간호해 주거든요. 그래 완전 마음은 탈출을 하려고 그랬어요. 그런데 비 때문에 동정심이 일어나서 청년을 아낀다는 것이 내 갈 길이 막혔다. 내가 그때 탈출 했으면 얼마나 내 길이 평탄했을까? 그때 주저앉았다. 이 호강 속에 이 간호 받고 사랑받고 내 본의가 아니다. 항상 현재는 자기는 죄인이다. 내가 잘 못 산 것이고 때가되면 가리. 고요한 은둔 속 참 주님 홀로 계신 곳 둘이만 계시고 싶었어. 항상 예수님과 둘이 이 사업을 좋아하지 않았습니다. 또 한 번 꼭 기회를 놓쳤다는 겁니다. 기회 어느 기회냐? 하면 동광원이 창설한 다음해 제 1회 총회가 있어요. 그 때도 이 분 생명이 왔다 갔다 할 때인데 모든 대표가 모였습니다.
도암면 너무 육이오 후여서 방이 한 두 칸뿐이에요. 그래 여자들 사는 처소기 때문에 여자들 방뿐이지요. 선생님 갔을 때는 방이 없으니까 마당에다 굴을 파고 땅속에다 움을 묻었어요. 그래 인데 짚으로 이렇게 엮었기 때문에 눈이 오면 다 들어갔습니다. 막 속으로 혼자 이렇게 계시지요. 그런데 크리스마스 때가 돌아왔어요. 그러니까 정초에 총회로 모여라. 모두 왔어요. 그러니까 땅속을 파고 거기를 매여가지고 총회가 모였지요. 잠 잘 방이 없어요. 집회소가 하나 있어요. 조그마한 예배당 그러면 그 선생님이 주무시는 땅속 움막에서 집회소까지 10보 밖에 안 되어요. 열 걸음 밖에 안 됩니다. 그런데 거기를 못 걸어오세요. 그러니 힘이 완전히 없는 겁니다. 완전히 힘이 풀어졌어요. 앉을 수가 없어요. 업고 오지요. 여기까지 자매들이 집회소까지 업고 와서 말씀 하시지요. 성경말씀 말씀이 끝나면 업고가요. 그런 총회입니다. 그렇게 해서 말씀하시고 끝났습니다. 며칠간, 그런데 그 소문을 듣고 지금 살아계시는 김 준 원장님이 지금 총장님, 그 일행 재가 신자여. 요새 같으면 삼온회(三溫會) 회원들이 우 하고 왔어요. 그래 인제 본원 총회에는 참석 안하지요. 이 분들은 재가 신자들 이니까 본 소위 말하면 정회원 총회가 끝난 다음에 그 이튼 날 우리에게도 말씀해 주십시오. 그랬던가 봐요.
그런데 이 김 원장님 오시기 전날 밤에 곡성 김 장로님이 두 분이 약속 했어요. 내가 삼바실에서 기회를 놓쳤다고 그때, 생명이 왔다 갔다 하는데 그때 동정심 때문에 기회를 놓쳤는데 이제 마지막 기회다. 나를 업어서 버스에 태워 주십시오. 이 두 분은 알아요. 지리산에 두 분이 살았던 과거가 있으니까 내 소원은 이것뿐이다. 그 분은 장로라는 그분이 없지요. 그때 김 공, 김 공만이 내 동지가 아니요? 내 깊은 속을 알 것입니다. 그러니까 김 공도 나를 묻지 마시오. 나를 업어다가 버스에만 태워주시고 그 다음은 묻지 마라. 약속 했어요. 두 분이 그럼 내일 밤 모두 잠이 들었을 때 이제 간호하는 자매들이 다 잠이 들어야 하거든요. 가만히 와서 나를 업고 가라. 시간 약속도 했던가? 두 분이, 그런데 아침에 오셔버렸어요. 요 일행이 재가 신자들이 그 총회 시간이 끝났으니 우리들에게 말씀해 주십시오. 그랬던가 봐요. 그러니까 김 공님 오라고 해서 나 같은 게 뭐라고 저렇게 불원천리하고 형제들이 찾아왔는데 내가 뭐나 된 것 같이 어제 약속한대로 같이 둘이 떠날 수 없소. 용서 하시오. 내 맘이 이렇게 약해요. 그러고 한 삼일 또 말씀 했다는 거예요. 저는 그때 감기가 만연해서 병원에 있었고, 그때 그 이야기에요. 그러면 제가 형제들이 와서 말씀해 달라고 해도 계획대로 추진해 버렸으면 됐는데 그 마음이 약해가지고 모진 마음을 못 먹고 마음이 약해져 가지고 다시 이렇게 어물어물 하고 있는 것이 이렇게 여자들의 간호를 받고 살게 되었다. 그러니 내 운명이 얼마나 박절하냐? 예수님 만 이렇게 사랑하고 가면 될 텐데 죽어버렸으면 될 텐데 이핑계저핑계 하고 사업이나 한답시고 이렇게 호강을 받고 간호를 받고 산다니 내 영혼이 얼마나 비참하냐?
아 이건 내 소원이 아니다. 내 본 소원은 그때 두 때 그때 내가 바로 했어야 한다. 그때 뿌리치고 갔어야 한다. 나는 신과일치 참 신이 일치지요. 나는 그때 예수님을 만나서 같이 살다 하늘나라 갔어야 하는데 이게 내가 무슨 모습이냐? 그래서 책이 있지요. 순결의 길이라는 책에 이 사업은 정신적인 간음이다. 본인 말씀이지요. 탁 떨치고 가서 하늘나라 갔으면 될 텐데, 이핑계저핑계 이렇게 수 백 명 모여가지고 사업이나 하고 이렇게 욕심이나 부리고 허영이나 부리고 이렇게 허송세월 한다는 것이 이건 정신적 간음이다. 그렇게 생각 하셨지요. 본 소원은 은둔 생활입니다. 본 소원은, 본래 일본 시대에도 은둔하던 구도자였고, 그러니까 인제 동란 해방 후에 고아 과부가 있기 때문에 잠깐 이 사람들을 수습해 주면 한 십년이면 해결될 줄 아셨어요. 그냥 이 국가가 이렇게 평정이 될 줄 알았는데 너무 이 사업이 오래가고, 이건 본의가 아니다. 우리가 갈 길은 따로 있다. 그래 인제 아까 동광원 요절이 그거지요. 유사시에는 고아와 과부를 돌보지만 나 할 일은 자기를 지켜 세속에 물들지 않아 물들지 않게 하는 것이다. 먼저 자기 영혼의 완성이라는 말이야. 자기 영적 완성이고 그 다음에 여력 있으면 선한 사업도하고 교육도 하고 그럴 수 있지 않냐? 그렇게 하신 말씀으로 추리가 되요. 그러면 엄 목사님이 이 선생님의 전기를 썼지요. 그러나 그 분도 80이 되셨는데 이제는 기억이 다 잊어버리고 생각나는 걸 조금 들었어요. 요새 며칠 전에 쓰신 글인데 이것은 영원히 변치 않을 복음이겠지요. 정신적인 교훈이고 이걸 조금 제가 읽고 시간 마치겠는데요. 여기 나오는 장면의 성가 있어요. ‘갈보리 산에서’ 그 목사님이 장려하고 계시는데 부르십시다. 1절만 부르십시다. ‘갈보리 산에서’ 갈보리 산에서 십자가를 지시고 예수는 보배피를 흘리사 구원하는 참 길을 열어놓으셨노라. 갈보리 십자가를 저를 위함이라 아 십자가 아 십자가 갈보리 십자가를 저를 위함이요.
2절은 다음에 부르십시다. 말씀 읽어 드리고 제자가 추운 겨울 지리산 오감산에 들어가 특별 기도를 계속하고 있었는데 아까 말씀하는 김 장로 여기 김 공님 김 장로님 여기서 보이는 오감산 이라고 저기 보여요. 잘 안보이지요. 산 넘어 거기 계실 때 이 현필 스승은 어느 날 거기 지금 다 아십니다. 갈보리 산에 계셨어요. 갈보리 산에서 오감산이 몇 리 인지 아십니까? 삼십 리 입니까? 사십 리 입니까? 아시는 분아시지요? 길은 없고 능선으로, 능선으로 지리산 능선 이지요? 이렇게 그러니까 그 이야기지요. 어느 날 누가 쑥떡 두 개를 잡수시라고 내놓기 때문에 김 공님 생각이 문득 들어서 밤길에 눈이 이렇게 무릎 팍 닿도록 왔더라고 그래요. 눈이 이렇게 온 산 길을 수십 리지요. 삼 십리 더되니까 걸어 이 공님을 김 공님을 찾아갔다. 김 공님이 사람이 온 것은 생각 할 수 없고 왜 그렇게 깊은 첩첩 산속에 사람이 올리는 만무하고 본인 말이 그럽디다. 그 찬송을 부르시거든 능선에서 그러니까 꼭 천사가 온줄 알고 그냥 퍽퍽 울었다 그래요. 그 분도 새벽 세시가 되면 꼭 찬물로 목욕을 하는데 찬물로 목욕을 하고 있는데 찬송 소리가 들리니까 아 천하에 이 몹쓸 죄인 저 같은 것을 천사가 와서 노래하신다. 그렇게 알았는데 천사가 아니고 이 선생님 이었던가 보지요. 그러니까 도저히 상식으로는 못 올 판이었어요. 눈 속이니까 그렇게 해서 떡을 갖다 줬다. 그 이야기에요. 그렇게 해서 그 이야기를 썼군요.
이 선생님은 이렇게 산 사람이다. 떡 쑥떡 두 개를 그때도 밥은 안 잡수시던 때고 본인은 누님들이 다 이 선생님 제자들이 되어 버리니까 남동생이 참 멀쩡히 사기꾼이다. 몰래 잠을 안자고 한 일주일 지켰대요. 언제 밥 먹는가 하고 안 먹으니까 항복했어요. 내가 큰 죄를 지었다고 우리 누님이 미친것 같아서 당신 죄를 지었는데 내가 이제는 의심 없어졌다. 그런 일이 있었지요. 그래 쑥떡 두 개를 가지고 거기까지 간다는 건 지금 생각하면 참 신비해요. 도저히 그냥 열 발을 가면 발이 얼어버리지요. 그런데 어떻게 갔냐? 아마 그때 자매들 몇 분이 살아 계세요. 따라갔다고 뒤에 몰래 너무 남녀 분별이 엄하니까 선생님 따라 갈수는 없고 너무 생명이 위태하니까 멀리 가면서 지켰다. 그래요. 죽으시면 어떻게 합니까? 그랬다는 이야기가 있는데 어찌되었든 그 기록을 썼어요. 지금 그러니까 그럼 이렇게 산분이 이 선생님의 발걸음이다. 상식으로는 알 수 없어요. 사랑은 만능이라 하지만 참 사랑이 그런 것인가? 또 그 다음 이야기입니다. 추운 겨울 경기도 수색에서 남녀 형제들이 탁발하고 있었다. 그 이건 제가 증언 합니다. 저까지 합해서 남자가 한 5-6명 이었어요. 남자 반장님은 이 공님의 제자였다고 하시던 박 집사님 박 봉만 집사님이 남자 반 반장이시고 여자부가 있어요. 여자부도 7-8명 5-6명 되는데 하늘나라 가신 갈보리 어머니가 반장이시고 짱짱한 분들이야.
아주 그래 두 어른이 지도자가 되시고 이 선생님 광주 계시고 순수 빈손 들고 얻어먹고 살도록 한 겁니다. 그 집은 현 동완 선생님이 오 장로님 이름으로 사줬어요. 오원(吳園) 이라고 오나라 오(吳)자, 오 장로님이 목수일 할 때 말을 하지 않아. 그러니까 소 우(牛)자, 아 참 성우다. 거룩한 소다 어쩌면 말을 안 하냐 그거에요. 한 달 두 달 봐도 말을 안 해. 목공소에서 저 신 장로님 오셨는데 같이 하셨던, 너무 감격해 가지고 별장 하나를 사줬어요. 오원(吳園) 이라고 지금 능곡 이지요. 거기서 남자 5-6명 여자 5-6명 순수 탁발 행을 하도록 그분 말도 분명히 안 해요. 뜻만 보인 겁니다. 이렇게 하면 어쩝니까? 그래서 그 어른들이 말씀을 받들어서 산거지요. 그럼 생각해 보세요. 객지에서 빈손 들고 십오 명이지요? 십여 명, 일 년 이년 산다는 거 보통일이 아니야. 참 지금 생각하면 고생이라면 매일 눈물겨운 고생이지요? 배가 고프니까 밥 얻어먹어야지요? 그래 여자들은 나물 캐다가 국을 끓이고 시레기를 주어다가 국을 끓이고 남자형제들은 밥을 얻으러 갑니다. 대개 십리밖에 마을이 있어요. 가까운데 없어요. 그러니까 그쪽 인심이 얼마나 좋은가 하면 청년 두 사람이 가면 십오 명이 먹을 수 있어요. 왜 거기가 나락 재배하는 큰 들이지요. 그쪽 들이 그러니까 누구 집을 가든지 절대 그냥 보내지 않아요. 때만 되면 밥을 주는데 반듯이 밥을 많이 줍니다. 그릇에다 그뜩 담아가지고 다섯 집만 얻어버리면 한말이 탁 차버려요. 부대가요. 그래 두 사람만 가면 한 여섯 집만 얻으면 밥이 한말이에요. 그러니까 십여 명이 먹고 하루 종일 먹어도 남는 거예요. 죽을 쒀 먹으니까 자매들은 국 끓이고 남자들은 밥 얻어오고 그러면 죽 쑤면 능히 먹고 남지요. 그래 이 선생님 올라 오셨어요. 아침 기도회를 딱 인도 하시고 오늘은 제가 밥 얻으러 가고 싶은데 허락들 하시렵니까?
갈보리 어머니가 절대 반대. 어떻게 우리가 선생님이 밥 얻으러가냐? 허락할 수 없다. 그것은 허락 못하겠다. 그러니까 다 한 번씩 이야기 했어요. 의견이 어쩌냐고 안됩니다. 다 안 된다고 제일 후에 저예요. 준호 어쩌냐고 가시면 좋겠소. 그랬어요. 반대는 열네 표 나오고 지지표 한 표 나왔어요. 나는 간다. 그러고 나서셨어요. 그 차도를 딱 들고 나섰는데 소위 말하면 일으키면 키가 여섯 자는 되요. 앉혀놓으면 딱 달라붙어. 소위 말하면 그런 몸을 가진 사람이에요. 소위 말하면 백치지요. 방긋이 웃고 앉혀 놓으면 딱 앉고 쭉 늘어나고 아 나하고 같이 밥 얻으러 ‘아 좋다.’ 얼마나 좋아하는지 밥 얻으러 가자니까 쭉 늘어나니까 끌고 가셨지요. 그럼 우리는 밥 얻으러 가면 두 시간이면 돌아오는데 해가 져도 안 오셔요. 그럼 엄동설한에 추운 때 그분이 속옷 안입지요. 바지저고리에 맨발인데 얼마나 집안 식구들이 걱정하는지 얼어 죽으셨는지 어째 안 오실까? 캄캄한 밤중에 두 분이 오시는데 우리는 두 시간이면 밥을 한말 얻어 오는데 한 말짜리가 밥이 꼭 한수저 달랑이야. 그래 보고를 이렇게 하셨어요. 밥을 좀 얻고 싶은데 이 아이가 대개 중들이 한사람 서있지 않아요? 한 사람 보내고 밥을 얻어 오시오. 그럼 들어간다는 거야. 들어가면 말도 않고 가만히 서있단 말이야. 그러니 주인이 왜왔는지 모르니까 그대로 내버려 둔다고 종일 서울 집은 이상해요. 마당도 없이 네모반듯하지 않습니까? 그래 주인이 보면 보여도 밖에 서 있는 거야. 방만 네 개있고 마당뿐이야. 마당은 울타리가 없어요. 대개 그렇게 되어있어요.
그러니까 이 소년이 밥을 얻으러 왔다면 밥 주시오. 그랬을 거예요. 안주니까 해가 지도록 서있는 거예요. 앉아있다 서있다 소위 말하면 우리말로 하면 백치지요. 선생님은 애기가 나오도록 서있어. 밖에서 그래 나오니까 데리고 온 거예요. 그런 관계를 뭐라고 문장이 있습니까? 그런 상태를 무념삼매 라고 할까요? 아무 그냥 천에 맡겨버리고 아무 의견이 없는 겁니다. 그러니까 순수 참 하나님과 일치지요. 무엇을 먹을까 밥을 얻어먹을까 그건 없어요. 형제자매들이 밥을 얻어먹고 있으니까 참 마음으로 도와준 거지요. 그날 밥을 얻으러 안 가셔버리면 서울에 있는 밥을 얻어먹고 사는 사람들이 얼마나 마음이 허전합니까? 암탉이 병아리를 품듯이 품어주는 거지요. 밥을 얻느냐 안 얻느냐 그건 관계없어요. 마음이니까 동참 하는 거 모두 얻어먹고 사는데 동참하신 건데 그러니까 참 얼마나 유능합니까? 종일 떨고 서서 꼭 밥 한술 얻어오셨어. 어찌되었든지 그렇게 하신 그 이야기야. 지금 그 이야기를 쓰셨어요. 이거 전기에 대개 있을 거예요. 그러니까 소위 말하면 이 선생님의 발걸음은 이렇게 사신 분이다. 그래 잊지 못해요. 80노후에 아까 그 이야기지요. 무등산에서 요양하다가 각혈이 심해서 깡통에 절반이나 피를 토했는데도 일어나 앉아 합장하고 하늘을 쳐다보며 미소 짓고 있었다. 시중드는 수녀들이 피곤하니 선생님 누우세요. 하면 눕다니, 눕다니, 내 더러운 피는 다 빠져야 합니다. 그리고 예수의 피가 내게 들어오시도록 내 피가 빠져나오는 이 순간이 나는 얼마나 행복합니까? 주님의 순수 깨끗한 피로 바꿔주는 이 시간인데 내가 어떻게 눕습니까? 했다. 그렇게 쓰셨군요. 어찌되었든지 그렇게 살다 가신분이다.
송죽절개가 무엇입니까? 눈이 와야 송죽절개지요? 그러니까 믿음이 어디 있겠어요? 비상시에 임종이 생명이 왔다갔다 할 때 그분이 어떻게 믿었는가? 그거지요. 아까도 생명이 왔다갔다 할 때 그것을 보충했지요. 이때 삼바실 여기서 이때, 내가 할 일은 이것이 아니다. 뭐 간호 받고 치료받고 그것이 아니다. 나는 예수님 사랑하고 그러니까 인적이 없는 자기 옛날에 살던 서리내 들어가서 나는 예수님과 단 둘이 있고 싶다. 그렇게 해서 여기 한 집사님한테 업어다 달라고 했다고 요 순간 이지요. 요 순간, 피를 토하고 매일 생명이 왔다갔다하니까 뭐 지키고 있는 때 탈출 할라고 하셨어요. 그 이 선생의 믿음이지요. 비상시에 제2의 출가지요. 비상시의 탈출, 하나님만 사랑하고 싶어서 사람의 사랑을 사양하는 것이지요. 사람의 도움을 사양하는 것이지요. 그렇게 살다 가신 분을 우리가 모셨다니 옆에서 그러니 그러지 우리가 이 선생 알 수 없지요. 이 말까지 쓰셨습니다. 그는 마지막 임종할 때 경기도 벽제 계명산 산장에서 제자들이 수의 삼아 빨아 입혀주신 옷을 벗으면서 나는 죽을 사람이오. 이 깨끗한 옷을 산 사람 입히십시오. 라고 했다. 그건 제가 그때 목격했어요. 문장으로 하면 이렇게 아름다운데 그때는 한나 어머님이 계명산 수녀원을 창설 하셨지요. 그러니까 그 어머니 믿음을 이렇게 그것도 일종의 울타리가 되기 위해서 가신 겁니다. 자기 생명이 며칠 안남은걸 아시고 한나 어머님의 정신이 좋아 하나님이 얼마나 기뻐하시는지 거기가면 내가 울타리가 되어야겠다. 계획을 하시고 가신 거예요.
그 임종하시기 위해서 그러니까 거기 가서 한 일주일 못 계시고 하늘나라 떠나셨는데 그때 어머니가 생명이 위독하시니까 옆에 와계셨어요. 한나 어머니가 그러니까 어머니 이 이야기 해야겠네. 조금 더 자세하게 옷을 못 입어요. 원체 막 난 애기 같아요. 풀어져 가지고 솜 같아요. 그러니까 두 사람이 잡아도 안 됩니다. 몸이 세 사람이 잡아야 앉아있어요. 앉아계시려면 뒤에 잡고 옆에 잡고 서이 잡아드려야 해. 곧 임종이 가까운 분인데 옷을 싸놨어요. 다 벗어서 옷을 내리십시오. 옷을 입히십시오. 그러니까 바지저고리 양말대님 모자 천리만리 갈 것같이 전부 옷을 입으셨습니다. 생명이 왔다갔다하는데 저는 그때도 몸이 약하니까 저는 업지 못해요. 저는 옆에 따라다니고 건강한 자매가 업고 밖에 나갔어요. 모두 들어가시오. 여자들이니까 남자니까 내가 대소변 볼 수 있도록 준비하라. 그건 의식이에요. 나오는 거 없어요. 그러니까 뭐를 대소변 눌라는 거 아니세요. 최후의 의식이에요. 사람으로 태어났으니까 마지막 의식 하는 거지요. 다시 옷을 올리라고 자매님 부르라고 불러 다시 업고 방에 들어오셨어요. 내 옷을 벗기십시오. 몸이 약한 사람은 여간 옷 벗기기 어렵디다요. 몸이 약하니까 겨우 옷을 어머니가 바지저고리 전부 개지요. 옆에 앉아서 어머니가 딱 개놨어. 그러니까 어머니 저 옷은 깨끗합니다. 대소변 안 묻었다 그 말이지요. 저 옷 깨끗합니다. 누구 다른 사람 입히십시오. 그러니까 막 어머니가 울었어요. 뭔 소리 그런 소리 하냐고 .
그런데 그 선생님이 입은 파자마 인데 아마 30번은 더 빨았는지 누덕누덕 기웠습디다요. 무릎 팍 같은데 짝짝 찢어지는 아주 헌 파자마야. 그 하나 아랫도리 입으셨더만요. 이대로 좋다. 이대로 묻어다오. 우리는 순진해요. 그대로 묻어드렸어요. 그대로 떨어진 파자마 그대로 그 이야기인데 그럼 이제 임종 저도 그때 몸이 약하니까 옆에 제가 있으니까 임종이 안 되지 않습니까? 준호는 몸도 약한데 아랫방에 가 쉬고 오라고, 한 시간 가서 쉬었어요. 아랫집에 가서 있는데 곧 기별이 옵디다요. 아주 시간이 없다고 빨리 오라고, 그때 아직 숨이 있어요. 아주 숨을 모다 쉬어요. 그때 이 말이 책에 있어요. 그 찬미지요. 거룩한 찬미 하 아 기쁘다. 힘이 조금만 나오면 힘을 모아가지고 하 기쁘다. 하 기쁘다. 그 이야기지요. 임종이 가까워 기쁨이 물결처럼 밀려오자 아 기쁘다. 아 기쁘다. 요건 전라도 사투리 오매 기뻐서 못 참겠네. 오매 기뻐서 못 견디겠네. 이 기쁨을 종로 네거리에 나가 선포하고 싶다면서 제가 먼저 갑니다. 다음에 오시오. 라고 하면서 고요히 눈을 감았다. 이렇게 쓰셨군요. 목사님의 기록인데 꼭 그 말 같지 않아도 상관없어요. 뜻을 살리기 위해서 문장을 그렇게 쓰셨어요. 그 숨은 꽃 있지요? 노래 성가집에 불러주십시오. 30번인데 노란성가 30번.
인제 제가 그럼 이 선생님께 어떻게 지도를 받았냐하면 꼭 이렇게 고백하고 싶어요. 마가복음 8장 34절을 제게 주신 것뿐이다. 그 밖에는 제가 이 학문적이나 교육적으로 지도 받은 일 없어요. 그저 밥 얻어오라 그것뿐이고 각기 살았고 다리 밑에 살았고 참 복음적으로 제게 주신 말씀은 마가복음 8장 43절 이 말씀 한자리뿐 입니다. 이 선생님한테 기적이 없지요. 아무 기적이 없어요. 기도를 해 주십니까? 기도를 해 준일도 없어요. 뭐 성경을 따박따박 가르쳐 주신일도 없어요. 그러나 이 말씀은 예배시간에 제게 주셨습니다. 해방 막 되던 해에, 제가 한번 읽겠습니다. 예수께서 군중과 제자들을 한자리에 불러놓고 이렇게 말씀하셨다. 나를 따르려는 사람은 누구든지 자기를 버리고 제 십자가를 지고 따라야 한다. 오늘 김 목사님께서 누가복음 9장을 딱 읽어주셨어요. 똑같은 말씀 이지요. 그런데 이 말씀 한자리를 스승이 제자한테 예수님의 말씀 이니까 이렇게 따라오라. 그리고 아주 든든하게 주셨지요. 아주 제가 평생 이 말씀으로 삽니다. 지금까지도, 한번 같이 기념으로 따라 읽어 주십시오. ‘예수께서 군중과 제자들을 한 자리에 불러놓고 이렇게 말씀하셨다. 나를 따르려는 사람은 누구든지 자기를 버리고 제 십자가를 지고 따라야 한다. 마가복음 8장 34절 말씀.’ 그런데 이 말씀이 무엇이 부족한가? 이 말씀 한자리면 천국도 갈 수 있고 성인도 될 수 있고 제자도 될 수 있고 아무 부족함이 없어. 그 오늘말씀 김 목사님 말씀이 얼마나 힘이 되는지 제 소리 가온소리 제소리 가온소리는 예수님이 십자가 지고 따라오라는 말씀이야.
그러니 제일로 이 선생님이 유 영모 선생님의 시 가운데 진달래 노래를 제일 좋아했어요. 년 년이 오시지요. 오면 진달래 해석해 주세요. 그러면 열 번 해석 합니다. 열 번 그러면 한 시간 해설 들으시고 나는 그만 할까요? 다시 해석해 주십시오. 진달래 노래가 몇 절 안 되어요. 십년을 말해도 끝이 없어요. 해설이 똑같은 말이 안 나와요. 또 하고 그 십자가지요. 십자가 진달래 노래는 문학적으로 노래한 것이지만 십자가를 노래한 것이니까 그러니까 오늘 김 목사님 얼마나 확실한지 예수님 만났다는 것은 십자가 지고 따라와 했으니까 따라가는 거다. 그것뿐이지 무엇 있겠는가? 그 밖에 뭔 심지가 있어? 요행이 있어? 예수 믿고 덕이 있어 아무것도 없잖아요? 말씀에 순종하면 되는 것인데 이 사람은 이제 나이가 먹었으니까 제 나름대로 정리하고 있지요? 신앙을 요한복음 6장 63절입니다. 그래 인제 해설을 61부터 나오시는데요. 사람의 아들이 전에 있던 곳으로 올라가는 것을 보게 되면 어떻게 하겠느냐? 63절 육적인 것은 아무 쓸모가 없지만 영적인 것은 생명을 준다. 내가 너희에게 한 말은 영적인 것이며 생명을 준다.
예수님이 3년 3개월 동안 하신 말씀은 영적인 말씀이지요. 생명에 관한 말씀이고 그 밖에 이야기는 방법이니까 말 알아듣도록 하는 말씀은 방법에 불과하지요. 이 63절을 누구를 사람을 만들었냐? 톨스토이라는 사람을 만든 말씀입니다. 이 요절이, 톨스토이가 되도록 하신 요절이에요. 무슨 성경 말씀을 많이 아는 것이 필요 없어요. 성 아우구스트스를 사람 만든 것도 로마서 13장 이었지요. 한 말씀이면 족하지 않습니까? 다시 읽겠습니다. 육적인 것은 아무 쓸모가 없지만 영적인 것은 생명을 준다. 내가 너희에게 한 말은 영적인 것이며 생명이다. 그러니 깨달은 사람이 다 완전히 무소유가 되어버리지 않아요? 우주가 내 것인데 사적인 것이 소위 말하면 버린 것 아니겠습니까? 그래서 저는 항상 몸이 약하고 생명이 왔다갔다하는 사람이기 때문에 제일로 예수님 말씀에서 위로를 받고 좋아하는 말씀은 요한복음 16장 28절입니다. 제가 읽어드리겠습니다. 나는 아버지께로부터 나와서 세상에 왔다가 이제 세상을 떠나 다시 아버지께로 돌아간다. 이 말씀이 얼마나 가슴에 부푼 평화와 안식을 주시는지요. 그러니까 예수님이 나는 아버지께로부터 와서 이 세상에 왔다가 세상을 떠나 다시 아버지께로 돌아간다. 이 말씀이 예수 말이 아니고 내 말이니까 내 말이 될 때 몸이 약한 사람으로서 곧 떨어질 시간이 되면 예수님이 항상 나를 두고 한 말씀이니까 예수님은 우리뿐이고 본인 없지요.
인류가 자기고 천국이 자기인데 나는 우리지요. 나 예수 아버지가 내 아버지니까. 나는 아버지께로부터 나와서 세상에 왔다. 이제 세상을 떠나 다시 아버지께로 돌아간다. 내가 아버지께 돌아간다는 확신 절대계에서 상대계에 왔다가 상대계를 떠나 다시 절대계로 돌아간다. 그러니까 비 물질로 살다가 물길계의 몸을 입고 살다가 비 물질에게로 돌아간다. 확실한 그 자기의 주소 말씀입니다. 그럼 이 말씀을 뒷받침 할 말씀이 있지요? 그럼 그 예수님이 가장 사랑하던 여자제자한테 주고 싶은 것 전 재산을 주고 가셨는데요. 하늘나라 가시기 전에 이렇게 말씀 하시지요. 막달라 여자 마리아에게 나타나실 때 이렇게 말씀 하십니다. 나는 내 아버지이며 너의 아버지 예수님의 아버지는 이 여자의 아버지입니다. 여자가 따로 없어 나지 피조물 모든 것은 교훈이고 뜻을 밝히는 것이 그 여자 이야기에 안 있습니까? 내 아버지는 너희들 아버지이다. 나는 내 아버지이며 너희의 아버지 곧 내 하나님이며 너희의 하나님이다 먼저 나는 간다. 그러면 예수님이 나는 아버지께로부터 세상에 왔다는 말이 예수 아버지가 우리 아버지니까 똑같지 않아요. 예수님 온 고향이 우리 고향이고 예수님 아버지가 우리 아버지고 예수님의 하나님이 우리 하나님이고 그런데 그 분이 가신 곳이 내 집이고 그걸 믿을 때 그럼 생사를 초월하지 않습니까? 몸이 아무리 병들어 죽어가도요. 아무 염려가 없어 참 안심 인명이야. 그래 이 말씀이, 말씀이 영혼에 얼마나 힘이 되고 얼마나 큰 재산인지요. 그러니까 이런 구절은 생명이 왔다갔다 할 때 구절이지요. 병이 들어서 생명이 왔다갔다 할 때 건강할 때야. 준비하면 좋겠지만 실감이 안 나지요. 참말로 숨이 왔다갔다 할 때 아주 기쁜 거예요. 예수 아버지가 내 아버지다. 예수 고향이 내 고향이다.
그런데 교리로 히브리서 2장 11절 에는 해설 하시지요. 이치로 말씀입니다. 사람을 거룩하게 해 주시는 분과 거룩하게 된 사람들은 모두 같은 근원에서 나왔습니다. 그래서 예수께서는 거리낌 없이 그들을 형제라고 불러주셨다. 형제다. 우리는 예수 형제다. 그럼 불교교리에 익숙하신 분들도 계신데 똑같지 않아요? 만물이 해불성이라. 부처는 자기는 내가 성불 했으니까 너도 성불한다. 그러니까 모든 불교 신앙은 나는 부처가 된다. 그거 아닙니까? 나도 예수 형제가 된다. 나도 예수 고향이 내 고향이다. 불교에서 하는 교리와 같지 않아요? 석가가 누구냐? 성불한 사람이다. 나도 성불 할 수 있다. 그러니까 불교 신앙 목적은 성불이에요. 성불 우리 신앙 목적은 예수지요. 예수집이 내 집이고 예수 고향이 내 고향이고 예수 아버지가 내 아버지고 예수 하나님이 내 하나님이고 그 일치에 이르는 것 그것이 곧 내 구원이지. 예수만 가고 우리는 못 간다면 그게 무슨 예수 덕을 보겠습니까? 그렇게 생각 하면서 이 선은 한번 따라 해주십시오. 사람을 거룩하게 해 주시는 분과 거룩하게 된 사람들은 모두 같은 근원에서 나왔습니다. 그래서 예수께서는 거리낌 없이 그들을 형제라고 부르셨습니다. 히브리서 2장 11절 말씀. 그러면 성경 말씀은 참말인데 참말을 믿는다면 참 어떠한 의미에서 그런 귀족이 무슨 좋아요. 천국 시민인데 예수의 한 형제지간인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