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치 담기 / 조미숙
특기랄 것이 딱히 없다. 뭐든지 잘 먹는다든가 술 안 마시고도 잘 논다든가 그런 거 말고는 내세울 게 없다. 그러다보니 남들 잘 하는 것 보면 참 부럽다. 그중에는 노래가 있다. 타고난 음치는 아무리 닭 목을 먹어도 나아지지 않았다. 중학교에 다닐 때 음악 실기 시험에서 기본 점수 65점을 맞은 게 잊혀지지 않는다. 흥에 겨워 나도 모르게 노래를 따라부르면 아이들이 웃는 바람에 식구들과도 노래방을 가지 않았다. 나름 한 곡이라도 열심히 연습해서 불러봐야지 하고 다짐을 해도 마이크를 잡으면 도무지 음을 잡지 못하고 목소리는 제멋대로 오선지를 벗어난다. 그러다보니 노래방에서는 절대로 노래를 부르지 않는 철칙이 생겼다.
손끝도 야무지지 못해 뭔가를 만드는 데도 소질이 없다. 무엇을 하든 어설프기 그지 없다. 최근에 시작한 자수도 엉망이다. 나는 최선을 다해 수를 놓는데 다 하고 나면 엉터리다. 분명 제대로 했는데도 이상하게 삐뚤빼뚤하고 삐죽삐죽 튀어나와 있고 그렇다. 덜렁거리고 꼼꼼하지 못한 탓에 살림살이도 칠칠하지 못하다. 그래도 유일하게 칭찬을 받는 것이 하나 있다. 바로 김치다. 사람들은 제일 어려운 게 김치라고 하는데 난 아닌 것 같다. 일단 김치 담는 일을 두려워 하지 않는다. 물론 모든 김치를 다 잘 담는 것은 아니다.
결혼 전부터 김치를 담은 건 아니다. 딱히 엄마에게 배운 것도 아니다. 결혼 하고도 마찬가지로 모든 김치는 물론 김장 김치도 시어머니가 담아 보냈기에 내가 하고 싶어도 기회가 주어지지 않았다. 그러다가 김치 냉장고를 사면서 김장부터 시작했다. 처음 해 보는 거라 실패할 수 도 있어 일단 절임 배추를 샀다. 배추 절이는 일이 제일 중요하기 때문이다. 양념은 뭐가 들어가면 맛있다더라 하는 식으로 주워들은 대로 이것저것 넣었다. 하지만 건강을 위해서 설탕과 조미료를 절대로 넣지 않았다. 설팅 대신 과일을 많이 넣고 비법으로 홍시를 넣는다. 멸치, 다시마 등으로 육수를 내서 넣으면 조미료는 필요하지 않다.
처음 담은 김치 맛은 성공이었다. 김치에 자신이 붙은 뒤로는 절임 배추는 비용이 많이 드니까 직접 배추를 사다 절이기부터 했는데 너무 힘이 들었다. 배추를 뒷배란다로 옮기는 일부터 배추를 쪼개고 소금을 뿌리고 고무통에 절여 놓은 뒤 중간에 뒤집어 줘야 하는 것이 일이다. 다시 몇 번이나 씻고 헹궈 물기를 빼야 하는 것도 쉽지 않았다. 몇 해를 그렇게 하다 도저히 감당하기 힘들어 다시 절임 배추를 이용했다. 양념을 준비하는 일도 산더미이다. 1년 쓸 고춧가루까지 약 2~30근까지 손목이 시큰거리고 허리가 뻣뻣해지는 건고추 닦는 일도, 손끝이 아려 한 번에 많이 깔 수도 없는 마늘도 그렇고 손이 물에 퉁퉁 붓는 부재료 씻고 써는 손질도 만만치 않다.
김치 맛이 소문이 나면서 점점 여기저기 인사차 보내는 양이 많아졌다. 손이 큰 것도 있지만 내 김치를 먹고 맛있다는 칭찬을 듣는 일이 좋아 점점 양이 늘어 120키로그램까지 혼자서 담았다. 남들이 도와주겠다는 것도 내손으로 끝까지 해내고 싶기도 하고 행여 김치 맛이 달라질까봐 거절했다. 해마다 줄여야지 하면서도 나눠 먹을 거 생각하면 아무래도 작다 싶어 조금만 더 하다 보면 어느새 100키로그램 정도가 된다. 욕심 같아선 김치 냉장고 서너 개 준비해 두고 갖가지 김치에 몇 년 씩 삭힌 묵은 김치까지 제대로 갖춰 놓고 내가 좋아하는 사람들에게 나눠 주고 ,집으로 불러서 밥도 해 주고 그렇게 살고 싶다.올해 스무 살이 된 아들은 예전부터 장가 가면 다른 건 몰라도 김치 만큼은 담아 주라고 한다. 김치는 다른 건 맛이 없다나 어쨌다나. 엄마 힘든 건 생각 안 하고 벌써부터 자기 집 식구만 생각한다고 핀잔을 주면서도 내 김치를 인정해 줘서 내심 뿌듯하다.
간혹 아이들이나 주변 사람들은 김치 장사를 권한다. 건강한 김치를 추구하기에 여러 가지를 생각한다면 수지타산이 맞지 않을 수도 있고 김치 맛이 항상 좋다는 보장도 없다. 아직까지 김장 김치는 실패햐지 않았지만 일반 김치는 종류별로 간혹 맛이 차이가 났다. 요리법을 적어 두고 정량대로 하라고 하지만 난 그렇게 안 된다. 그냥 눈대중으로 맞춘다. 꼼꼼하지 못한 성격이 고스란히 드러나지만 왠지 옛어른들이 고수해 오던 손맛이랄까 그런 정겨움이 사라지는 것 같다. 듬뿍듬뿍 집어 넣고 손가락으로 푹 찍어 보고 부족하다 싶으면 더 넣는 그런 방법이 좋다. 돈벌이로 하기엔 아직 미흡하다.
이젠 아이들도 모두 집을 떠나고 살림을 하는 것도 아니여서 김치 양이 예전보다 많이 줄었다. 예전에는 아이들이 어려 김치찌개나 김치전 등 여러 요리에 활용해 먹는 게 많았는데 이제는둘이서 주로 김치 자체로 먹는다. 그래도 여전히 김치 욕심이 많다. 추석에 배추김치와 파김치를 담을 생각이었는데 그만 허리병이 나서 하지 못했다. 사실 아이들은 많이 먹지도 않는데 말이다. 돈 몇푼 들이면 맛있는 김치를 사 먹을 수 있는데 굳이 힘들게 담을 필요가 없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다른 건 몰라도 우리 식탁에서 무엇으로도 대체될 수 없는 소중한 김치를 내 손으로 담을 수 있다는 것은 유일한 자부심이자 특기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