뻥이요
5일마다 열리는 시골 장(場)은 볼거리가 풍성하다. 생활에 필요한 물건들이 가가(假家)마다 빼곡하게 쌓여져 손님을 기다리고 있다. 어디선가 ‘뻥이요’하는 소리와 함께 포탄 터지는 굉음이 장터에 울려 퍼진다. 뻥튀기는 소리다. 어릴 적 뻥튀기 아저씨가 동네에 오면 집집마다 쌀, 보리, 옥수수 등 곡물들을 가지고 뛰어 나갔던 기억이 떠오른다. ‘뻥이요’하는 소리와 함께 한 됫박 쌀은 한 자루로 부풀어져 풍성하게 되돌아온다. 뻥튀기에는 가난하게 살던 시대에 부요를 맛보게 했던 추억이 담겨 있다.
뻥튀기는 곡물 재료를 기계에 넣고 밀봉한 후 열을 가하여 만든다. 이때 생성된 수증기는 단단하게 밀봉된 틀 안에서 밖으로 빠져나오지 못하고 계속 쌓인다. 재료는 계속해서 열을 받게 되며 더 많은 수분들이 기화하려고 하지만 기계 내부의 공간이 부족하고 기존에 꽉 들어찬 수증기와 공기가 재료 안에 있는 수분이 추가로 기화하지 못하게 억누른다. 이른바 압력을 가하게 되는 것이다. 이때 틀을 개방하면 이 수분을 억누르던 수증기가 보다 압력이 낮은 바깥을 향해 급속하게 방출된다. 압력이 순식간에 빠져나갈 때 이미 열을 받을 대로 받은 재료 내 수분이 순식간에 기화한다. 뻥튀기 기계에서 발산되는 하얀 연기가 바로 기화한 수증기다. 특유의 폭발음은 갇혀있던 수증기가 급속도로 방출되면서 주변의 공기들을 때림으로서 발생하는 소음이다. 이 과정에서 곡물 자체도 영향을 받아 구성 성분이 다공질(多孔質)의 스펀지 형태로 변하면서 주성분인 전분이 덱스트린(dextrin)으로 바뀐다. 이것이 바로 뻥튀기다.
뻥튀기의 유래에 대해서 다음과 같은 설이 있다. 1901년 알렉산더 앤더슨(Alexander Anderson) 박사가 미국 미네소타에서 곡물을 팽창시키는 시리얼(cereal) 기계를 발명했다. 몇 년 후 그 기계가 만국박람회에 출품되었고 이것이 일본으로 들어가 ‘뻥과자’(ポン菓子)라는 이름으로 불리다가 일제 강점기 때 조선에 들어와서 유행했다는 설이다. 또한 1950년 한국전쟁 이후 버려진 포탄 탄피에 곡식을 넣어 익혀먹다 우연히 발견했다는 이야기인데 모두 확실하지는 않다.
뻥은 작은 것을 크게 부풀린 상태를 의미하기에 허풍이나 거짓말 따위를 속되게 이르는 비속어로 자리매김했다. 뻥과 관련된 단어들은 뻥치다, 뻥까다, 뻥놓다, 뻥튀기 등이 있는데 모두 허풍을 떨거나 거짓말 하는 것, 사실이 아닌 것을 사실처럼 꾸미는 것 등의 의미다. 한자성어로는 허장성세(虛張聲勢), 호왈백만(號曰百萬)이 여기에 해당된다. 한 마디로 구라요 거짓말이다. 오늘 우리는 거짓이 난무하는 시대를 살고 있다. 인터넷은 정보의 바다다. 태평양보다 더 넓은 이 바다에는 수많은 정보들이 일엽편주(一葉片舟)처럼 떠다닌다. 장르도 다양하다. 유익한 정보가 대부분이지만 게 중에는 유해한 정보 또한 만만찮다. 이런 정보들 가운데는 상당수가 가짜다. 게다가 유튜브가 대중 속에 깊숙하게 자리 잡으면서 이런 가짜 정보들은 더욱 난무하고 있다. 유튜브의 생명은 구독자 수와 조회 수에 있다. 이것에 따라서 유튜버(You Tuber)에게 돌아오는 광고 수익률이 천차만별이다. 이들은 조회 수를 늘리기 위해서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다. 좀 더 쇼킹한 정보를 흘려야 목적을 달성할 수 있어서 너나 할 것 없이 자극적인 정보 양산에 목을 맨다. 그러다 보니 이 정보는 사실과 다른 것들이 많을 수밖에 없다. 이름 하여 가짜 뉴스다. 유튜버들은 그 정보의 사실 여부에는 관심이 없다. 오직 조회 수가 늘어나기만 하면 그만이다. 그래서 더 자극적이고 충격적인 가짜 뉴스가 버젓이 난무하고 있으니 대중들은 이렇게 뻥치는 소리를 들어야 한다.
연전에 가게를 운영하는 한 교인에게 지금 손님을 많이 모시고 갈 테니 자리 좀 마련해 달라고 했더니 그는 대뜸 이렇게 반응했다.
'목사님, 뻥치시네.'
순간 뻥치는 목사가 된 상황이 당황스러워 잠시 머뭇거리자 그는 곧바로 현타(현실자각타임)가 왔다. 본인은 자기 친구의 전화인 줄 착각했다면서 사태 수습하느라 진땀을 빼는 모습이 역력했다. 그래도 설교 중에 뻥치는 목사가 이닌 게 다행이었다. 어느 교회에서는 예배 시간에 목사가 뻥치는 사건이 발생했다. 한 아이가 목사의 설교에 ‘아멘’ 대신 ‘뻥이요’라고 화답했던 것이다. 그 엄마는 예기치 못한 아이의 대답에 너무 당황스러워서 쥐구멍이라도 들어갈 심정이었다. 그 아이는 뻥튀기 아저씨에게 ‘뻥이요’ 소리를 들은 후 그것을 먹고 있어서 그 말이 생각났던 모양이다. 회중들은 그 소리에 킥킥 거렸고 설교 목사는 매우 당황했지만 이내 그의 심령에 이런 소리가 들렸다.
‘너는 지금 뻥치는 것은 아니냐?’
확신도 없는 복음을 전한다면 그게 뻥이 아니던가? 아이의 소리보다 하늘의 소리에 식은땀이 흘렀다. 그러고 보니 정말 뻥치는 목사가 된 느낌이었다. 정치꾼들이 자당의 이익만을 위해서 만든 가짜 뉴스들, 수없는 스팸 문자, 보이스 피싱 전화가 가득한 세상이다. 믿을만한 소리가 없다. 뜨거운 목욕탕에 들어가면서 '어이구 시원하다'는 아버지의 말을 듣고 따라 들어간 아들 녀석이 '믿을 놈이 하나도 없네’라고 했다는데 정말 현대는 부자간에도 믿지 못할 시대가 된 느낌이다. 그리스도인은 마지막 시대 거짓 선지자, 거짓 교사들이 난무할 것이라는 주님의 경고 말씀에 귀를 기울어야 한다. 아무리 세상이 이렇게 변질되었어도 교회는 진리를 전해야 한다는 뜻이다. 성도는 진리의 복음으로 뻥치는 전도자가 아니라 그 복음을 퍼치는 일꾼이 되어야 한다. “이 집은 살아계신 하나님의 교회요 진리의 기둥과 터니라”(디모데전서 3:15).
봉평 장날 뻥튀기 아저씨가 와서 뻥튀긴다.
봉평 장날 풍경
진리의 기둥과 터 봉평교회 전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