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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글은 처음 들으면 생소한 내용들이 많을 것이므로 찬찬히 읽어보시고, 그 진위를 판별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부족한 사람이라 조회수 100회 넘기기가 힘겨운 글이지만, 조회수 100억 회를 넘길 수 있기를 기원하며, 글을 올립니다.
** 앞의 글(천년왕국과 관련된 본문의 이해)과 연속되는 내용이므로 앞의 글을 먼저 읽으시기 바랍니다.
앞글 : 이스라엘 땅 16, 천년왕국에 관한 요한계시록의 본문 이해 - Daum 카페
천년왕국은 희년법과 예수 그리스도의 포도원 천국 경제법으로 통치하는 나라다.
천년왕국은 희년법이 필수 통치 수단이다.
천년왕국이 지상에서 펼쳐질 현실적 나라이면, 희년법은 그 나라의 통치법이 된다고 하였다. 만약에 천년왕국은 죽어서 가는 사후천국이나 하늘에 있는 천상천국과 같다면, 희년법을 지킬 필요가 없다. 그리고 천년왕국은 흔히들 생각하는 영혼과 정신계만 필요하고, 땅은 필요가 없는 세상이면 희년법을 둘 이유도, 지킬 필요도 없다.
희년법은 현재물, 미래물, 영구물로 물질의 성질별로, 곧 실물의 존재 유무를 따라 거래의 방식을 기록해 놓았다. 현재물은 자유 거래(자유 소유), 미래물은 희년까지 제한 거래(제한 소유), 그리고 영구물은 영원히 거래를 금지(소유 금지)한 제도를 말한다.
그래서 이 희년법은 우리의 생활에서 밤과 낮을 식별하여 그에 맞추어 사는 것과 같다고 하였다. 다른 예로써 희년법은 도로교통법을 지켜야 하는 것과 같다. 그래서 천년왕국이 밤과 낮을 구분해야 하는 지상의 현실 세계이면, 희년법도 밤과 낮을 구분하여 살아가듯이 물질의 성질을 구별하여 팔고 사야 한다는 말이다. 천년왕국은 계시록이 말하는 24 장로가 운전을 해야 하는 세계라면, 성경 희년법은 그 도로교통법처럼 지켜야 하는 생활 수단이 된다. 그래서 희년법은 천년왕국에서도 지켜져야 하는 법이다.
희년법은 쉬운 내용이지만, 모두가 어렵게 느낀다.
사람들이 희년법을 어렵게 생각하는 이유는 딱 두 가지다. 하나는 우리가 경험하고 있는 세상 토지법과 성경이 말하는 희년 토지법은 그 패러다임(전제, 이론, 세계관 등) 자체가 전혀 다르다. 다른 하나는 여기에 사람의 고정관념이 나를 강하게 지배하고 있기 때문이다. 쉽게 말하면 성경은 땅을 상품으로 보고 있지 않지만, 사람들은 땅을 소유물과 상품으로 보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희년법이 물질의 물리적 성질에 따라서 제정된 생활의 필수 수단인 것을 잘 모른다. 알려주어도 모르겠다고 하거나 인정하지를 않는다. 이 말은 희년까지 팔고 살 거래물, 곧 토지 경작권에 실물이 들어있는지 없는지를 식별하지 못하는 것과 같다는 뜻이다. 그런데 사람들은 팔고 사는 물질이 가진 물리적 성질을 반드시 알아야 한다. 천년왕국에서도 통치 수단은 희년법이 될 것이므로, 지금이라도 세상이 변하여 그런 때가 온다면, 바로 지켜야 할 제도이고 생활 실무이기 때문이다.
내가 지금 쌀농사를 지을 농지의 경작권을 구입하였다면, 그 경작권 가격은 앞으로 토지를 경작하여 얻을 쌀(실물)에 대한 가격이지, 지금 생산한 쌀(실물)의 가격은 아니다, 현재 쌀은 하나도 없다. 그래서 토지 경작권 거래는 쌀이 없고, 가격만 팔고 산다는 뜻이다. 희년법에서 이런 거래물은 영구 가격물로 거래하지 말고(레 25:23), 반드시 만기를 두어서 시한부 거래를 하라는 말이다(레 25:15,16). 이렇게 토지는 시한부 거래나 임대로만 해야 하므로 만기가 필요한 안식년과 희년 제도가 필요하다고 볼 수 있다.
이 거래는 현재 거래는 있으나 그 실물은 없으므로 빚이 발생한 거래다. 이 거래는 빚이 생기는 거래이므로 빚을 없애는 만기를 정해 두어야 한다. 만기 전이라도 빚을 갚으면 토지 경작권 가격은 쌀이 없으므로 그대로 소멸해 버린다(쌀을 빌린 빚은 쌀로 갚아버면 채권가격은 소멸하고 쌀만 남아있다). 그러면 빚은 사라지고, 토지 경작권은 본래의 주인에게로 돌아온다. 이것이 만기에 빚이 사라지고, 토지가 회복되는 희년이다. 그리고 희년이 오기 전이라도 빚을 갚으면, 빚은 소멸하고, 땅은 회복된다. 이것은 희년은 아니지만, 희년과 같은 상태가 된 것이다.
성경은 이것을 토지 무르기라고 한다. 예수 그리스도는 이 무르기 방식을 따라서 십자가 희생 사건을 일으켜서 우리를 죄에서 구원하셨다.
토지를 잡힌 것과 카메라를 잡힌 것은 다르다.
그리고 토지 경작권 거래는 기업주가 경제생활에서 필요한 자금 융통을 위하여, 땅을 잡히고 돈을 빌린 것과 같다. 그런데 이 땅을 잡히고 빌린 돈은 내가 갚지 않아도 갚아주는 실체가 있다. 그래서 땅을 잡히고 빌린 돈은 카메라를 전당포에 잡히고 빌린 돈과는 성질이 다르다. 빚의 담보물에서 토지와 카메라의 차이도 우리가 반드시 알아야 한다. 그래야 팔지 말아야 하는 땅과 팔고 사야하는 상품을 식별할 수 있다.
카메라를 전당포에 잡히고 돈은 빌리면, 그 빌린 돈은 내가 원금과 이자를 전당포로 가져가서 갚아야만 잡혀있던 카메라를 되찾을 수가 있다. 그러나 땅은 내가 집히고 빌린 돈은 땅이 갚아준다. 땅은 카메라처럼 그냥 몸통만 잡혀있는 것이 아니고, 잡혀있으면서도 생산활동을 하여서 사람이 진 빚을 갚아주고 있다.
그런데 토지 경작권 거래를 만기가 없는 영구 거래로 하게 되면, 토지의 영구 경작권 가격이 된다. 이것이 바로 우리가 팔고 사는 가격인 지금의 땅값이 된다. 그러면 땅값은 만기가 없으므로 쌀이 없고, 가격만 있는 거래가 영구로 존속하게 된다. 쌀이 없고 가격만 있으므로 이 거래는 영원히 실물이 없으므로 빚이 계속되는 세상이 된다. 영구 사용권을 판 것은 땅의 몸통을 아예 타인에게 넘게 준 것이므로 값을 치러서 회복하는 토지 무르기도 할 수가 없다. 이런 상태로는 희년이 올 수 없다. 그래서 성경 희년법은 이런 영구 거래를 영원히 금지하고 있다(레 25:23).
그러나 사람들은 이러한 특수 성질을 가진 땅값과 쌀값의 물리적 성질을 (전혀) 이해하지 못한다. 쌀이 실물이고, 재화이면 땅도 쌀과 같은 실물이고, 재화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성경 희년법을 이해하지 못한다(가격을 실물로 착각하여 버린다). 그러므로 천년왕국은 영원히 존재하는 빚과 그 빚 담보로 잡혀있는 땅을 속량하여 회복시켜야 희년법 통치를 하는 나라가 임하게 된다.
천년왕국을 향한 매매 행위의 오해와 이해
시장경제에서 사람의 생활은 매매 행위가 필수적이다. 그런데 계시록에서는 짐승의 표(標)를 받아야만 매매를 할 수 있게 미혹하는 실체가 있다(계 13:17,18). 그러나 하나님은 짐승의 표를 받으면, 심판을 예고하고 있다(계 16:2, 19:20). 무서운 말씀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 무서운 일을 앞두고, 경제활동에서 매매 행위의 참과 거짓이 무엇인지, 그 실상을 알고 판단할 수 있어야 한다.
천년왕국은 희년법으로 통치할 나라이므로 희년법이 말하는 현재물, 미래물, 영구물을 구분할 줄 알아야 하고, 그 성질에 맞추어서 거래를 해야 한다.
고기와 쌀, 돈과 쌀의 교환
쌀과 고기가 시장에서 교환되면, 이것은 실물 거래다. 고기를 잡아서 팔은 돈으로 쌀을 사면, 돈과 쌀이 시장에서 교환되어 이것도 실물 거래다. 그러므로 돈은 실물이 아니지만, 다른 실물을 대표하는 증서다.돈과 쌀로 서비스인 영화 관람권을 구입하여도 원리는 같다. 그래서 이런 거래들은 자유롭게 소유하고, 팔고 사야 한다. 이것이 자유사회이고, 시장원리다. 이것이 희년법이 말하는 현재물 거래다(레 25:3)
돈과 토지 경작권의 교환
고기를 팔은 돈으로 토지 경작권(쌀을 생산할 농지 경작권)을 구입하면 어떻게 되는가? 고기를 팔은 돈은 실물을 대변한다. 그런데 토지 경작권은 현재 생산된 실물(쌀)이 아니다. 토지 경작권은 미래에 생산될 실물(쌀)이다. (아직 이 말을 이해하지 못하면, 이스라엘 땅 14번 글로 들어가서 성경 희년법이 알려주는 현재물, 미래물, 영구물부터 공부를 해야 한다.)
토지 경작권은 실물이 없다. 그냥 미래에 생산될 쌀을 취득할 권리를 보증한 문서다. 문서는 종이에 기록한 권리 증서다. 그리고 권리 증서는 식권처럼 생긴 표라고도 할 수 있다. 그러면 현재 실물을 대표하는 돈과 미래 실물을 대표하는 경작권의 거래는 돈과 표를 바꾼 매매 행위다. 성경은 이런 거래는 시한부로 거래를 허용하고 있다. 이것이 희년법이 말하는 미래물 거래다(레 25:15,16).
돈과 땅값(토지의 영구 경작권)의 교환
고기를 팔아서 벌은 돈으로 토지의 영구 경작권, 곧 땅을 구입한다면 어떻게 될까? 만기가 있는 시한부 경작권 구입은 만기까지 생산할 쌀을 받을 권리를 가진(구입한) 채권이다. 이 권리를 판 자는 만기까지 갚아야 할 의무를 판 채무자다. 그러면 토지의 영구 경작권은 영구 미래로 생산될 물질에 대한 채권이고 청구권이다. 만기가 없고 무르기도 없는 영구 실물 청구권이다. 그러므로 땅을 산 자가 가진 증서는 영원히 수취할 권리를 가진 채권증서이고, 이 땅을 팔아먹은 자는 영원히 갚아야 할 부채를 팔아먹은 것이다.
그 이유는 땅이 실물이 아니고 미래에 생산될 실물이기 때문에 그러하다. 땅을 산 자는 영구 채권자, 판 자는 영구 채무자다. 이런 권리를 표시한 증서가 토지문서(등기권리증)다. 이 토지문서도 쪽지처럼 작게 표시하면, 표라고 할 수 있다. 이것은 돈과 토지의 영구 소유권을 표시한 표다. 이것이 희년법이 거래를 영원히 금지한 거래다(레 25:23).
우리는 지금 시장에서 이 토지 소유권을 명시한 토지문서, 곧 증표가 없으면 누구라도 토지 거래를 하지 못한다. 성경은 이런 영구적 권리를 보증하는 토지 증표(경작권 아닌 소유권)의 거래를 하지 못하게 한다. 세상은 이 토지 증표가 없으면 거래를 못하게 하고, 성경 희년법은 이런 거래 자체를 못하게 한다. 그러므로 지금 우리는 이 두 가지의 증서 중에서, 천년왕국을 앞두고 과연 어느 제도를 택하여 살아야 할지를 선택해야 하는 기로에 서 있다고 할 수 있다.
돈과 표의 거래, 다시 한번
(일하는 소에 대한 가격 청구권 거래)
1,000평의 농장이 있고, 여기서 농부와 농부가 부리는 소 한 마리가 있다. 소는 농부가 부리는 쟁기를 끌며 밭에서 일을 한다. 일하는 소의 소값은 현재 100원이라고 하자. 소를 시장에 내다 팔면 고기값이 100원이라는 뜻이다. 소가 일하는 몸통의 생산 능력도 100원이다. 그래서 이런 소값이 100원은 현재 돈으로 팔고 사야 한다. 그래서 시장에서 소는 자기 가치를 인정받고, 그 100원의 가치를 인정하는 사람에게 팔려서 같은 가치의 일이나 생산활동을 하게 된다.
매우 특수한 소와 소(값)의 소유권
이제 이 소는 성질이 다르다. 이 소는 시간이 흐를수록 능력이 나아지고 있다. 이 소의 몸통 값은 초기에 100원이었다. 그런데 이 소는 수명이 없고, 매년 일하는 능력도 커진다. 그리고 이 소의 고기는 먹을 수가 없고, 일만 하는 소라고 하자. 그러므로 이 소는 아주 특수한 성질을 가진 소라고 할 수밖에 없다. 그러면 이 소는 팔고 사면 어떻게 될까? 앞의 예에서 우리가 알고 있는 보통 소는 수명이 있고, 일하는 능력도 일정하고 커지지는 않는다. 그런데 이 소는 수명도 없고, 죽지도 않으며, 특수한 성질을 가진 소다. 그러면 이런 특수한 소를 시장에서 팔고 사면, 그 값은 어떻게 매겨지고, 경제는 어떤 현상이 생기게 될까?
다시 말하지만, 경제생활에서 이런 특수한 수명과 기능을 가진 소는 없다. 세상에 모든 물질과 자본재는 예를 든 보통 소와 성질이 같다. 그런데 특수한 소는 정말 이상하다. 이 특수한 소는 사람이 팔고 살 수가 없다(팔고 사면 발생한 소값을 쓸 수가 없다는 뜻). 이런 소를 팔아버리면, 그리고 이런 소를 구입한 자가 잡아먹어 버리면 특수한 기능을 가진 자원을 없애버리는 큰 실수를 하게 된다. 황금 알을 낳는 닭을 잡아 먹어버린 것과 같은 실수다.
그런데 경제에서 이러한 특수한 기능을 가진 소가 실제로 있다. 바로 토지다. 아마도 세상에서 이런 특수한 기능을 가진 물질은 토지 하나뿐일 것이다. 사람은 죽었다가 태어날 수 있을지는 몰라도 이런 특수 기능을 가진 소(토지)를 만들 수가 없다. 성경 희년법은 이런 특수 성질을 가진 물질(소)은 값을 매겨서 팔고 사지 못하게 했다(레 25:23). 하나님이 땅은 그 몸통을 잡아먹지도(직접 쓰지도) 못하게 만드셨다.
매우 특수한 거래 방식
그래서 이렇게 특수한 소를 시장에 내다 파는 방법을 고안해 내었는데 이것이 권리를 표시한 증서다. 소에 대한 소유권을 명시한 표다. 그러면 이소는 특수한 수명과 기능을 가진 소이기 때문에 몸통 가격이 보통 소의 초기 가격 100원보다 엄청나게 커진다. 아마도 초기 값이 300원은 될 것이다. 지금 팔면 몸통인 고기값은 100원 뿐인데 권리를 표시한 표값은 300원이 되어 버린다. 또 이렇게 특별하게 커진 값 300원은 앞으로도 계속하여 커진다. 왜냐하면 이 소는 미래에도 일하는 능력이 지속적으로 커지기 때문이다.
그래서 소 주인은 소를 농장에서 계속 일하게 하면서, 소를 시장에 파는 것과 같은 방법이 없을까를 생각했다. 그래서 마침내 생각해 낸 것이 소의 가격을 표로 표시하고, 그 표를 쪼개서 파는 방식을 고안했다. 소 한 마리의 몸통을 고기처럼 100등분 해서 그 표를 팔고 사는 것이다. 시장에서는 일하는 소를 팔고 사는 것이 아니고, 그 소의 가치를 증명하는 표를 팔고 사는 것이다.
그러면 소는 밭에서 농부와 쟁기질을 하고 있고, 소표는 시장에서 팔고 살 수가 있다. 그리고 표를 구입한 사람은 그 소를 가지고 다른 농부에게 임대한다. 그러면 소를 빌린 사람은 남의 소를 부린 대가(사용료)로, 소가 생산한 생산물로 소표 주인에게 주게 된다. 이것이 소표 주인이 먹고 쓸 수 있는 배당수익물이다.
이렇게 특수한 능력을 가진 소를 일터에 두고, 소의 몸통을 자르지도 않고, 소의 몸통을 토막낸 것처럼 팔고 살 수 있는 방식이 있다. 이것이 오늘날의 주식이다. 시장경제에서 생산활동을 하는 공장의 몸통을 자르지 않고, 토막을 낸 것과 같은 표를 팔고 살 수 있는 것이다. 주식은 이와 같이 아주 기발하고 편리한 거래 방식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주식을 “자본주의의 꽃”이라고 하는 수식어를 붙여주었다. 오늘날의 경제는 이런 주식의 순기능이 경제 발전에 기여한 측면도 크다.
그런데 우리가 아직 모르는 것이 있다. 이런 주식이 시장에서 가지는 역기능을 잘 모르고 있다. 주식이 가지는 가격의 물리적 성질과 이 가격에 들어있는 자본가격의 기본 속성을 모르고 있다. 사람은 만기가 없고, 지속적으로 커지는 값을 팔고 사면, 이 커지는 값을 감당하지 못한다는 것을 모르고 살고 있다. 성장하는 기업의 주식은 ㄱ. 매년 사람이 사용할 수 있는 가격과 ㄴ. 사람이 사용할 수 없는 가격이 동시에 발생하고 있다. 주식은 하나의 물질에 ㄱ과 ㄴ이라는 두 개의 복수가격이 발생한 것이다. 그런데 사람들은 이 복수가격에 들어있는 ㄱ과 ㄴ의 성질에 대한 근본 차이를 식별하지 못한다.
이 소는 특수한 소가 분명하다. 그리고 이 소가 일하여 생산한 가치는 사람이 쓸 수가 있다(ㄱ). 이 쓸 수 있는 가치는 매년 3%씩 커진다고 보자. 그러면 이 소가 생산한 가치와 동반하여, 소값(땅값, 주식가격)도 커진다는 점이다. 그런데 이렇게 커지는 소값은 사람이 1원도 먹을 수가 없고, 사용할 수가 없다(ㄴ). 이것이 문제다.
이 주식은 희년법이 거래를 허용한 한시자본처럼 시한부 가격이 아니다. 이 주식은 희년법이 영원히 팔지 못하게 한 영구자본, 영구가격이 되어버렸다. 즉 사람이 만든 시한부 공장이 하나님이 만드신 영구재, 곧 땅과 같이 되어버린 것이다. 이제 사람은 하나님처럼 영구재(땅)도 만들어내는 초능력을 가지게 되었다. 그런데 사람은 하나님처럼 이런 초능력을 가질 수가 없다. 그래서 사람에게는 문제가 생기기 시작한다.
매년 커지는 소값은 사람이 영원히 먹을 수가 없다. 그러므로 매년 커지는 소값은 소득물이 아니고, 가치물도 아니다. 이것은 영구 허수다. 이런 가격물의 거래는 사람의 잘못된 믿음(신용)이 만들어 낸 허구 거래다. 그래서 사람이 만든 가짜 영구재는 가격이 사람에게 벌금이 되어서 되돌아오게 된다. 사회가 불필요한 가격과 거래를 해야하고, 그 값이 계속 문제를 일으키는 현상을 말한다.
그런데 사람들은 소가 일한 생산물(배당수익, 이자, 임료)이 가치물이므로, 이를 동반하여 커지는 가격도 생산물과 같은 가치물로 착각을 한다. 특수 기능을 가진 소이므로 가격도 특수한 것이 아무런 이상이 없다는 생각이다. 아니다. 아주 잘못된 생각이다.
그리고 이런 착각 현상이 오래 되니 착각이 실제적 현상처럼 굳어 버렸다. 그래서 이런 오류를 성경과 과학, 심증과 물증을 가지고, 누구도 부정할 수 없는 근거를 제시하며, 알려주었다. 그러나, 사람의 기존 정서는 이것을 수용하지 않는다(못한다). 이것이 토지와 주식에서 우리가 가진 천년 묵은 오해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레위기 희년법으로 그 성질을 알려주신 이래 지금까지 계속되는 일반적 반응이다. 그래서 이런 반응은 아마도 천년왕국에서 세상을 미혹하는 마귀가 결박되는 그날까지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계 20:2).
성장성 영구재에서 발생하는 복수가격과 성질
복수가격 | 가격의 성질 | 거래 방식 |
ㄱ.매년 3%씩 커지는 생산물 | ㄱ은 실물, 가치물, 수익물이다. 매년 사람이 사용할 수가 있다. | ㄱ은 시한부 가격 또는 사용가격(임대료)으로 해야 한다 |
ㄴ.매년 3%씩 커지는 소값(땅값, 주식가격) | ㄴ은 생산물이 아니며, 실물, 가치물, 수익물이 아니다. 그래서 매년 또는 영원히 사용할 수가 없다. 시장경제에서 인플레이션만 일으키는 영구 허수다. | ㄴ은 영구 허수이므로 가격은 0 또는 0에 근접하는 가격이어야 한다 |
특수 성질을 가진 소값(땅값)의 시장 해결책
이렇게 특수한 성질을 가진 소는 시장도 특수하게 운영을 해야 문제를 예방하거나 해결을 할 수가 있다. 이것은 예를 든 소의 경우처럼 몸통은 그대로 두고, 거래 방식은 그 특수한 성질에 맞추어 주어야 한다는 뜻이다. 그 실천 방법이 소유와 사용에서 주체 분리, 시간 분리, 가격 분리를 해야 한다는 말이다. 이러한 거래 방식을 알려준 것이 성경 희년법이며, 예수 그리스도가 복음적 해법으로 제시한 포도원 천국 경제법이다. 그런데 이렇게 특수한 성질을 가진 물질은 다른 방식으로 해법이 없다(물질이 가진 기본 성질은 바꿀 수가 없다는 뜻). 그래서 천년왕국의 통치는 물질이 가진 기본 속성을 따라서 경제를 운영하는 희년법으로 하게 된다는 말을 하고 있다.
(1) 소유와 사용의 분리(소유 주체와 사용 주체의 분리)
영구재이면서 커지는 자본가격은 인간이 감당하기에 너무 큰 값이다. 그래서 이런 자본가격은 소유와 사용을 분리하여 다루어야 한다. 소유는 하나님의 소유 또는 추상적 소유로 두고, 토지의 실체(몸통)는 사용자가 가지는 방식을 말한다. 여기서 토지의 소유는 국공유화도 아니고, 사적인 개인 소유도 아니다. 여기서 사용자 소유는 사용자가 누구의 간섭도 받지 않고, 내 땅처럼 사용하는 배타적 사용권을 가지게 되는 것을 말한다.
다만, 이미 토지제도가 잘못되어 개인 소유가 되어있는 땅은 어떻게 하는가? 개인 소유의 땅은 그 몸통 소유권을 필지별 가격 소유권으로 바꾸어 주어야 한다. 이것은 토지 소유제도가 사실상 주식제도와 같은 것이 된다. 토지의 소유자는 필지별 주식으로 소유하고, 실물 토지 사용권은 필지별 사용자에게로 이동하는 것이다. 그러면 주식 소유자는 토지주식의 매각권과 토지임료 수익 배당권을 가진다. 토지 사용자는 토지주식 소유자에게 임대료를 납부할 의무가 있다. 그 외에 토지 실체에 대한 점유와 사용은 모두 사용자가 가진다.
이 토지주식의 거래와 임대료 징수, 그리고 임대료 배당은 모두 독립된 조직인 “토지거래소”를 설립하여 필요한 업무를 전담하게 한다.
이렇게 하면 지금의 농지소작제도 금지, 1주택 우대와 다주택 홀대, 소득 아닌 가짜 소득세, 곧 양도소득세, 소득아닌 가짜 자본가격에 매기는 종합부동산세, 재산세, 취득세 등을 모두 폐지해도 된다. 아니 이것을 모두 폐지해도 시장이 돌아가야 그것이 시장경제다. 토지주식 하나만으로도 지금 말하고 있는 여러 제도가 가진 입법의 취지를 모두 살려낼 수가 있다. 오히려 더 좋은 효과를 가져온다. 토지주식 하나만으로 지금 공산주의 경제처럼 강제성을 가진 소유 규졔, 가격 규제, 거래 규제, 고율의 거래세제도(자본과세)가 거의 모두 필요 없다.
그리고 발행한 토지주식은 거래소에서 자금 여력이 있으면, 시장가격으로 매입하여 소각할 수도 있다. 그러면 토지시장은 자동으로 (3)의 방식인 지대시장제로 바뀌게 된다. 그러면 시장을 흔들고 있는 허구의 복수가격은 단일가격으로 복귀한다.
(2) 시간의 분리(영구가격과 한시가격의 분리)
영구재의 가격은 시간이 너무 길어서 사람이 감당하지 못하는 가격이다. 그리고 이 값은 시간이 지나가도 소멸하지 않고, 계속 생성되는 미실현 가격으로 허구가격이 된다. 그래서 이 문제를 해결하려면 가격을 시간에서 영구와 한시로 분리하여, 한시적 가격만 거래를 허용해야 한다. 이것이 바로 성경 희년법이 알려준 미래물은 한시가격, 영구물은 소유나 거래를 금지하는 방법이다.
지금의 주식도 영구재의 성질이기 때문에 시장이 늘 불안한데 희년법이 말하는 미래물 거래 방식처럼 한시가격제로 해야 한다. 그러면 주식시장은 “자본주의 꽃”이라고 하는 자본 투자의 자유가 보장되면서, 시장은 채권처럼 안정적으로 움직이게 된다. 지금의 주식은 "자본주의의 꽃"이라도 벗꽃처럼 피고 지기를 반복한다. 주식이 가격 등락을 반복하며, 호들갑을 뜨는 시장이라는 말이다.
그래서 이런 영구주식은 레위기 15,16 말씀을 진리로 믿고, 이 말씀대로 주식시장을 운영해야 한다. 그러면 한시주식은 한번 피면(발행하면), 자기 수명이 다할 때까지 30년, 50년, 70년 동안 피어있다. 꽃이 질 때는 서서히 지게 된다. 영구주식처럼 가격의 급등과 급락 현상이 없다. 희년법대로 거래하는 한시주식은 시장이 안정적이며, 오래도록 예쁜 꽃을 피우는 시장이 된다.
이 한시주식은 주식을 발행한 회사의 실제 능력과 수명까지 함께 동반하는 증표가 된다. 지금의 영구주식은 기업 실적과는 별개로 이자율만 변하여도 값이 변한다. 그것도 급등 또는 급락하는 변덕으로 호들갑을 뜨는 시장 성질을 가진다.
(3) 가격의 분리(소유가격과 사용가격의 분리)
땅값은 사용가격에 대하여 가격 독점의 성질을 가진다. 이 말은 토지는 미래가격이 현재에 미친 자본가격이므로, 성장하는 토지는 미래가격의 자본가격인 땅값이 항상 현재가격보다 높게 매겨진다. 그런데 토지를 사용해야 하는 실수요자는 현재가치이어야 경쟁력이 생기므로(수지 타산이 맞으므로), 그 땅을 미래에 발생할 높은 가격까지 지금 일시불로 지급하면 적자가 나서 사용할 수가 없다. 그래서 땅은 항상 미래가격을 높게 보고, 제값보다 높은 미래 값을 미리 지불할 능력이 있는 자가 소유하게 된다. 그래서 지금의 땅은 소유가격이 시장을 지배하여, 사용을 배제하는 가격구조로 운영되고 있다.
한편, 땅은 사람이 숨을 쉬는 데 필요하고, 사람이 먹을 양식을 생산하는 데에도 필요하다. 집과 공장을 짓는 데도 필수재다. 그러므로 땅은 인간의 생존과 생업에 필수재다. 그런데 땅값은 선불이고, 거래가격이 제값(현재 사용가격)보다 높아서 적자가 나기 때문에 그 필수재인 땅을 구입할 수가 없다. 빚을 내어 토지를 구입하려고 해도, 그 빚은 토지수익으로 갚아내기가 매우 어렵다(이론상 불가능하다).
그러나 사용가격은 땅을 사용하고, 땅이 내는 가치로 임대료를 내는 제도다. 임대료는 선불이 아니고 후불이다. 목돈이 아니고 분할불이다. 그러므로 토지 사용이 내가 가진 재산이 무일푼이라도 토지 사용이 가능하다. 그래서 토지의 사용가격은 토지 사용의 자유가 시장의 가격제도로 보장을 받게 된다. 그러나 소유가격은 거액의 목돈(미래 생산에 대한 현재 자본가격)을, 그것도 선불과 일시불로 주어야만 토지 사용이 가능하다. 이것은 시장의 소유가격이 토지 사용의 자유를 원천적으로 방해하는 현상이다.
그래서 땅은 미래가격을 높게 매기는 소유자에게 돌아가고, 사용자는 사용이 불가하거나 어렵게 된다. 필자는 이런 현상을 '시장의 가격 독점'보다 더 나쁜 “시장의 가격 폭꾼”이라고 말하고 있다. 이것은 토지 소유자가 폭꾼이란 말이 아니고, 시장에서 매겨지는 가격 자체가 사용(사용가격)을 방해하고, 가격이 시장 불균형을 일으켜서 온갖 문제를 연달아 발생키므로 폭꾼의 형세를 하고 있다는 뜻이다.
토지임대제의 시행 방식
위의 세 가지 방식 중 소유가격과 사용가격을 분리하여 전자는 거래를 금지하고, 후자인 사용 가격만 거래하는 방식이 최선이다. 이것이 토지시장의 효율적 운영방식이다. 그러나 이에 대한 상세한 시행 방식을 설명하려면 분량이 많아야 하므로 여기서는 꼭 필요한 내용만 간략하게 언급 한다. (토지시장과 희년법에 대한 상세한 내용은 필자의 저서를 참고하기 바란다.)
토지시장에서 발생하는 문제의 근본 해법은 땅값 대신 시장임대료로 토지를 배분하는 것이다. 이것이 토지를 시장가격으로 임대하는 지대시장제다. 그러므로 지대시장은 토지 임대료를 반드시 시장가격(또는 시장가격에 최접근)으로 거래(거래 징수)를 해야 성공할 수 있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중국, 싱가폴, 홍콩, 이스라엘에서 보는 것처럼 사유제와 똑같은 부동산 문제가 발생한다.
그 이유는 두 가지다. ㄱ. 성장경제는 토지임대료가 지속적으로 성장하는 성질과 ㄴ. 임대료를 징수하는 공공기관의 관료적 평가의 약점, 이 두 가지다. 성장경제에서 토지의 단위당 임료는 반드시 커지는 데 이때 초기 임료가 미래에 커지는 임대료보다 항상 낮아야 하기 때문에 문제가 발생하기 시작한다. 그리고 공공임대에서 적용하는 임료는 관료적 평가로 인하여 늘 초기 임료에 매여 있거나 저가격 임대가 된다. 그래서 토지는 국공유제라도 사유제 토지처럼 자본가격, 곧 땅값이 발생하여 문제가 발생한다.
이런 폐단을 막기 위하여 토지임대는 반드시 공개적 경쟁을 통하여 시장임대를 하여야 한다. 그래서 시장임대는 앞에서 토지주식 거래 방식 그대로 독립적 기구인 “토지거래소”를 설립하여, 이 기구를 통하여 공개 입찰 방식으로 토지를 분배해야 한다.
그리고 이런 입찰에 있어서는 임대에 필요한 모든 조건을 사전에 제시하고 입찰에 붙여야 한다. 그리고 미래의 임대료가 임금처럼 커지는 이유도 충분하게 설명하고, 계약서에 명시해야 한다. 이와 같이 토지 임대와 입찰 경쟁에서 명시해야 할 실무적 조건들은, 그 골자만 추리면 대강 다음과 같다.
① 임대기간 : 기간을 정하여 둔다. 단, 저가 임대료가 아닌 시장임대료를 내는 한 임대기간은 큰 의미가 없고 토지의 영구 사용이 가능하다.
② 초기 임료 최저가 책정 : 시장 임료를 원칙으로 매월 징수하되 거래 보증금 10%는 선납하는 조건이며, 나머지를 매월 징수한다. 입찰에서 초기 임료와 낙찰 가격의 최저가를 명시한다.
③가격 조정 방식(임대료 증액 방식) : 초기 임료에서 경제 성장률을 따라 커지는 토지임료는 토지거래소가 객관적 입장에서 각종 평가지수(경제성장률 지수, 임대가격 지수, 물가상승률 지수 등)를 감안하여 평가한다는 조건을 붙여 두어야 한다.
④건물 소유와 토지의 분리 방식 : 주택 소유자나 토지 사용자가 임대기간 이내에 바뀔 경우 토지 임차권 승계에 대한 필요한 사항들을 명시한다.
⑤기타 조건 : 이 외에도 부수적으로 필요한 사항들을 명시한다. 실무적 조건은 아파트 분양조건과 비슷하며, 토지시장의 특수성만 추가하여 명시하면 된다.
성경 희년법을 천국 복음으로 시행하는 방식
성경 희년법을 복음적으로 시행하는 방식은 예수 그리스도가 알려준 포도원 품꾼의 비유와 포도원 경작자의 비유다. 전자는 구약시대의 노동시장을 신약시대의 임금시장으로 바꾸는 방식이고, 후자는 구약시대의 토지시장을 신약시대의 지대시장(시장임대)으로 바꾸는 방식이다. 이렇게 하면 구약의 희년법에서 발생한 몸값과 땅값이 모두 소멸한다. 그러면 토지시장은 제 기능을 회복하고, 균형이 성립한다.
그런데 예수 그리스도의 비유는 실제가 아니다. 비유는 실제 상황이 아니고 천국이나 영적인 의미를 알려주기 위하여 사람의 경험이 가능한 예를 들어서 설명하는 것이다. 그래서 비유는 문자적으로 받아들이기보다 비유가 말하고자 하는 의미를 찾아내는 것이 중요하다. 그런 면에서 비유는 계시록이 상징성을 가진 표현이지만, 그 의미를 찾아야 하는 것과 유사하다.
포도원 품꾼 비유와 천국경제법(희년법 노동시장의 복음적 적용)
천국은 마치 품꾼을 얻어 포도원에 들여보내려고 이른 아침에 나간 집 주인과 같으니(마 20:1) 네 것이나 가지고 가라 나중 온 이 사람에게 너와 같이 주는 것이 내 뜻이니라(마 20:15) 이와 같이 나중 된 자가 먼저 되고 먼저 된 자가가 나중 되리라(마 20:16).
포도원 품꾼의 비유는 일터가 없어서 놀고 있는 실업자를 구제하는 경제 방식을 비유로 들고 있다. 희년법이 적용되는 이스라엘 사회는 모두 기업이 있으므로 실업자가 없는 것이 원칙이다. 그러나 특별한 사정이 있거나 기업이 팔려있다면, 일터가 없다. 이런 경우 구약시대는 노동력의 자본가격인 몸값을 잡히고, 타인에게 고용되어야 했다.
그런데 예수님의 비유는 주인의 탁월한 지혜로 사유재산 운영원리와 실업 문제라는 두 가지를 동시에 해결하는 방식을 제시하고 있다. 그러면서 천국은 마치 주인이 일꾼들을 일터로 불러들여 경제 문제를 해결하는 것과 같다는 것이다. 주인이 포도원 품꾼의 비유에서 천국을 말하고 있으므로, 필자는 이 비유의 실제적 현상을 “천국 경제법”이라고 부르고 있다. 그러므로 "천국(천국 경제법)"은 마태복음 20:1에서 예수 그리스도가 친히 하신 말씀이라고 할 수 있다.
포도원 품꾼의 비유에서 정시에 고용된 노동자는 하루 한 데나리온의 품삯을 지급하기로 약속하고 고용하였다. 1일에 한 데나리온의 품삯은 그 당시 정상 노동자의 하루 임금(일당)이다. 이 당시 1일 노동시간은 12시간었다. 그런데 주인은 일터가 없는 실업자를 조건 없이 포도원으로 불러들인다. 주인은 정시인 아침 6시부터 9시, 12시, 오후 3시, 오후 5시에도 노는 자는 불러들여 일을 시킨다.
그리고 저녁에 품삯을 지급하는 데 일찍 온 사람과 늦게 온 사람의 하루 품삯이 같다. 그리고 주인은 늦게 온 사람부터 품삯을 먼저 주고 있다. 그런데 정시에 온 노동자들이 주인의 행위에 대하여 불평(원망)을 나타낸다. 이런 불평에 대하여 주인도 할 말이 있다. 포도원 품꾼의 비유에서 주인과 불평자(정상 노동자)의 생각은 각자 이러하다.
불평자 : 정시에 온 사람과 늦게 온 사람의 품삯이 같다는 것은 불공평하다며 주인을 원망하고 있다.
포도원 주인 : 정상(정시) 노동자와 약속(계약)한 것을 다 주었으며, 내 것으로 내 뜻대로 한 것이므로 잘못이 없다.
품꾼의 비유에 대한 해석과 오해
품꾼의 비유는 우리가 상식적으로 보아도 납득하기 어렵다. 일찍 와서 일을 많이 한 자와 늦게 와서 일을 적게 한 자의 품삯이 같은 것은 일견하여 불합리하게 보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 비유에 대하여 몇 가지 설이 있다. 그리고 현실 경제에서 이 비유에 대한 인식은 오해가 많다.
먼저 영적인 측면에서 본 품꾼의 비유는 천국에서 구원받은(받을) 자를 말한다고 본다. 죄인이 구원을 받는 것은 은혜로 받는 것이지, 공로로 받는 것이 아니다. 구원은 교회에 먼저 나오든, 뒤에 나오든 그 시간이 문제가 아니며, 사람의 공로에 따라 구원의 질이 달라지는 것도 아니다. 그래서 품꾼의 비유는 기독교가 말하는 구원에 대한 영적인 가르침이라고 본다.
구원은 개인의 공로보다 은혜로 받는 선물이다. 이 말은 맞다. 그러나 비유의 전체 내용을 보면, 이런 견해는 맞지 않는 측면이 있다. 그 이유는 먼저 일터로 온 자가 불평을 하고, 주인에게 꾸중까지 듣고 있기 때문이다. 포도원 일터에 먼저 와서 구원을 받은 자는 늦게 온 자가 받는 구원(품삯)을 보며, 함께하며 기뻐해야 할 것이다. 그런데 먼저 온 자는 그런 구원을 베푼 주인을 원망하고 있다. 그러므로 이런 해석은 잘못이라고 보기 보다는 무엇인가 부족한 면이 있을 수밖에 없다.
그래서 혹자는 이 비유가 시대마다 하나님께 부름을 받은 사역자의 순서로 보아서 그 대상자의 이름까지 특정하기도 한다. 첫째부름은 아담에서 노아, 둘째는 노아에서 아브라함 등을 들고, 신약시대에 복음이 세계로 전파되는 과정을 말한다는 것이다. 예루살렘에서 시작한 복음이 안디옥과 소아시아를 거쳐서 유럽으로 복음이 전해졌다. 그다음은 미국을 거쳐서 한국까지 복음이 전해졌다. 그런데 복음을 먼저 받은 지역은 불평하는 품꾼들처럼 교회가 사라지거나 믿음이 식어지고 있어서, 미래는 한국이 복음 전파의 주역이 될 것이라는 희망을 말하기도 한다.
한편, 이 비유를 노동자에 대한 권익 보호와 최저 생계비 지원 정책을 위한 것으로 보기도 한다. 그리고 허조그(W. R. Herzog)나 비아(D. O. Via)는 포도원 품꾼의 비유에서 주인(악덕 지주)이 노동자를 홀대하여 우롱하고 있다고 보았다. 정상 노동자가 저임금 항의에 대하여 주인은 해고를 예상하는 발언을 했다고 하였다. 주인이 정시에 온 품꾼에게 1데나리온을 주면서 “네 것이나 받아서 가라”라고 한 말을 근거로 그렇게 이해한다.
포도원 품꾼의 비유에서 주인은 정상 노동자에게는 합당한 임금 지급으로 정의롭게, 그리고 구제가 필요한 실업자에게는 자비를 베풀어 문제를 해결하였다. 두 가지의 상반된 주제를 동시에 만족시키는 합리적 해결책을 낸 것이다. 그런데 주인이 노동자를 우롱하거나 해고 통지를 하고 있다는 해석은, 주인의 실제 행위와는 너무 상반된 이해라서 놀라지 않을 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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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꾼의 비유를 실패한 공산주의 또는 사회주의로 보기도 한다.
품꾼이 비유를 현실 경제에 적용하려고 하면, 이런 품삯의 지금 방식은 공산주의와 같다는 생각을 한다. 그래서 평등한 것 같아도 이런 방식은 품꾼들을 게으르게 만들어서 실패한다는 것이다. 얼핏 보면 맞는 말이다. 지난 20세기에 70년간의 공산주의 경제는 이런 이념을 추구하다가 실패를 경험한 역사가 있다.
그런데 포도원 품꾼의 비유를 공산주의 경제관으로 보면 큰 오해다. 이런 인식은 초대교회 성도들이 개인 사유재산을 모두 내어놓고 서로가 나누어 사용한 경제행위(행 4:32)도 공산주의 경제라고 생각한다. 실제로 이를 실현하기 위한 자발적 공동체를 운영하는 단체도 있었다. 확인해 보지 못했지만, 마르크스도 초대교회의 유무상통 경제를 강제적으로 실현하기 위해 공산주의 이론을 창시했다고 한다.
그러므로 성경을 이런 사고로 보게 되면, 희년법도 공산주의 경제처럼 보이게 된다. 토지는 팔지도 못하게 한 것이 그렇게 보이게 된다. 여기에 팔린 토지인데도 희년이 되면, 판 자에게 되돌려 주어야 한다(희년이면 구입한 토지를 무상으로 반환하는 것으로 곡해한다). 구입한 토지는 판 자가 무르기를 요청하면, 구입자가 그 요청을 받아들여야 한다(이것은 시장경제가 아니라고 오해한다). 안식년은 생산활동도 하지 못하고 땅을 놀려야 하며, 부채는 탕감해야 한다. 그래서 이것은 공산주의 또는 사회주의나 다름이 없다고 생각한다.
사실 기독교는 품꾼의 비유, 초대교회 유무상통, 그리고 성경 희년법을 공산주의 또는 사회주의 경제로 오해하는 경우가 의외로 많다. 어쩌면 대부분이 그렇게 생각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다. 그래서 기독교는 성경이 말하는 희년법과 경제생활 문제는 아예 다루지 않으려고 한다. 그러면서 “기독교는 물질과 경제가 문제의 본질이 아니다”라고 변명하고 있다.
이와 같이 전통 기독교가 성경의 경제법을 제대로 다루지를 않으므로 인하여, 희년에 대한 관심과 주도권은 사회주의 또는 진보적 성향을 가진 자나 단체에게 넘어가버린 상태라고 할 수 있다. 그래서 성경이 가르쳐준 희년법의 시장원리가 오히려 반시장원리라고 할 수 있는 정부원리(사회주의적 성격)로 바꾸기를 좋아한다. 토지의 소유는 강도 높은 소유 규제, 거래 규제, 가격 규제, 그리고 부유층의 세금은 높은 비율의 중과세 징수 등을 처방책으로 들고 있다.
기독교의 경전인 성경 희년법과 포도원 품꾼의 비유는 100% 사유재산제이고, 자유시장 경제체제다. 그런데도 이를 공산주의 경제로 보거나 아니면 성경이 말하는 물질 문제는 본질이 아니라면서 피해 버린다. 경제는 성경에 있는 것도 눈여겨보지 않고, 외면하고 있다. 이것은 성경 이해에 대한 우리의 매우 잘못된 생각이다.
그리고 공산주의처럼 보이는 초대교회의 유무상통과 소비 생활도 희년법이 파기된 사회에서 일시적으로 필요한 방편이었지, 그게 모두가 아니다. 오순절 유무상통의 경제생활은 토지 무르기로 사유재산 체제가 회복되는 초막절 경제로 재편성되어야 했다. 그런데 교회가 오순절 유무상통의 경제생활에 대하여 아예 입을 닫아버리니 ‘속하는 날(속죄일)’ 해야 하는 토지 무르기와 초막절 사유재산 경제체제는 생각도 하지를 못하고 있다.
품꾼의 비유는 "나중 된 자가 먼저 되고, 먼저 된 자가 나중 될 수가 있으리라"라고 한다. 그러므로 교회는 경제 천국이 실현될 천년왕국을 맞기 전에 성경 희년법과 포도원 품꾼의 비유가 무엇을 알려주려는 것인지를 관심을 가지고 살펴보아야 한다.
포도원 품꾼의 비유는 사유재산제와 시장경제 원리다.
포도원 품꾼의 비유를 정시에 온 품꾼과 늦게 온 품꾼의 삯이 같은 것은 사회주의 경제로 본다. 아니다. 필자는 포도원 품꾼의 비유를 오히려 100% 사유재산제이고, 온전한 시장경제라고 말하고 있다. 구약의 희년법도 그러하다. 그 근거는 다음과 같다.
첫째, 주인과 정상 노동자는 하루 1데나리온의 임금을 계약하고, 일을 마친 후, 임금은 계약대로 지급하였다. 이것이 시장경제의 원리다. 지금의 노동시장은 이런 방식으로 운영하고 있다.
둘째, 포도원은 주인의 것이다. 노동자는 일하여 받은 임금을 쓰고 남은 것을 저축한다면, 그것은 자기의 소유가 된다. 너무 단순한 표현 같겠지만, 이것은 사유재산제의 기본이다. 그러므로 포도원 품꾼의 비유에서 주인은 사유재산제와 시장경제의 기본이 되는 “네 것과 내 것"을 분명하게 구분하여 알려주고 있다(마 20:14,15).
셋째, 포도원 주인이 늦게 온 실업자에게 정상(정시) 노동자와 같은 금액(1데나리온)을 지급한 것은 임금이라기보다 실업자를 위한 생계비 보조금이었다. 그런데 이런 생계비 보조의 구제 행위는 포도원 주인이 자발적 의지로 행한 것이다. 그래서 주인은 “내 것을 가지고 내 뜻대로 했다”라고 하는 것이다.
넷째, 주인의 실업자 급여에도 불구하고 포도원 노동자의 임금에는 세금 부담이 일절 없다. 오늘날 사유재산제를 기본 이념으로 표방하는 나라에서도 세금은 있다. 그러나 포도원 품꾼의 비유에서 주인은 세금 한 푼 거두지 않고, 발생한 민생 문제를 모두 해결하였다. 그러므로 포도원 품꾼의 비유에는 주인이 그 사회나 국가 공동체에서 사유재산제를 침해한 행위가 아무것도 없다. 그런데 이 정상 노동자는 자기 임금에는 세금 한 푼 내지 않았으면서, 주인이 하는 실직자 구제에 대하여 불평하고 있다. 어처구니가 없다는 말은 이럴 때 쓰는 말이 아닐까 싶다.
다섯째, 구약의 희년법은 원래 처음부터 토지를 분배하여 공평한 조건에서 시작했다. 그리고 그런 공평한 조건에서 사유재산제와 시장원리로 경제를 운영하였다. 예수님 당시 이스라엘 백성들이 희년법을 지켰다면, 일자리가 없어서 생계의 위협을 받는 실업자가 없는 것이 원칙이다. 그 당시 이스라엘 사회에서 실업자가 있다는 것은, 하나님이 제정한 희년법을 이스라엘이 지키지 않았다는 하나의 반증이다.
여섯째, 포도원 주인이 지급한 실업 급여는 그 재원이 어디서 나왔으며, 총생산액에서 실업 급여의 비중이 어느 정도인지를 알아야 한다. 한 사회가 정상적 경제 상태이면, 실업자의 비율이 얼마 정도이며, 재정에서 실업 급여가 차지하는 비중이 어느 정도인지에 대한 상식적 이해라도 있어야 한다.
일곱째, 특히 포도원 주인이 가진 포도원 토지가치의 실체를 알아야 한다. 이것을 바로 알면, 이 비유가 완전한 사유재산제임을 부정할 수가 없다. 이것은 먼저 레위기 희년법이 가르쳐주는 포도원 노동가치와 토지가치를 기초에서 식별할 수 있어야 이해가 가능하다.
포도원 생산에서 노동가치와 토지 가치의 인식
포도원 생산 조직은 포도원 토지와 노동자인 품꾼으로 구성된다(편의상 자본은 제외). 모든 생산활동은 사람이 필요하고, 토지가 필요하다. 그래서 포도원 총생산은 사람의 노동과 자연의 토지가 생산한 가치의 합이다. 이제 이 포도원의 총생산액은 1,200데나리온이고, 이 중 900데나리온은 품꾼이 기여한 노동가치라고 하자. 그러면 포도원 토지가치는 300데나리온이 된다. 그러면 포도원 품꾼의 비유에서 900데나리온은 노동가치이고, 300데나리온은 토지가치가 된다. 포도원 주인이 “내 것”이라고 하는 것은, 바로 포도원 토지가치 300데나리온을 말하고 있다.
포도원 토지가치 300 = 총생산 1,200 – 노농자의 임금 900
포도원 토지가치 = 주인의 몫 = 내 것(마 20:15) = 300데나리온
그런데 사람은 생산 현장에서 노동가치는 잘 알고 있지만, 토지가치는 인식이 둔하거나 알아도 인정을 하지 않으려고 한다. 토지가치는 사람의 노동이나 자본 투자가 기여한 것이 아니고, 토지의 자연력이 생산에 기여한 몫이다. 우리가 포도원 품꾼의 비유를 경제적으로 잘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사람 중심으로 경제 현상을 생각하기 때문이다.
다시 말하면, 모든 경제활동을 사람만 주체로 생각하고, 땅과 자연의 실체나 생산력은 인정하지 않아서 그러하다. 우리는 거의 모두 토지가치 300데나리온을 노동가치로 생각하기 때문에 품꾼의 비유에서 자연스럽게 오해가 생기는 것이다.
포도원 실업 급여의 비중 이해
한 사회에서 포도원 일터가 필요한 고용자는 총수는 1,000명으로 보자. 이 중 정시에 온 정상 노동자의 수는 900명, 실업자 총수는 100명으로 가정한다. 포도원 총생산은 1,200데나리온이라고 하자. 정상적인 국가에서 평균 실업률은10%를 넘지 않는다.
포도원 총 생산물 중에 정상 노동자 900명의 임금은 1인당 1데나리온이므로 총 900데나리온이다. 주인은 정상 노동자와 계약한 대로 900데나리온의 임금을 모두 지급하였다. 그다음 일터에 늦게 고용된 실업자는 100명이다. 그러면 정상 노동자에게 주고 남은 300데나리온이 포도원 토지가치로 주인의 몫에서 실업 급여로 100데나리온을 지급한다. 그러면 포도원 주인은 실업 급여를 지급하고도 200데나리온이 남아 있다.
그런데 실업자도 늦게 고용이 되었지만, 일한 몫이 따로 있다. 앞의 총생산은 실업자가 생산한 몫은 집어넣으면 이해가 복잡하여 편의상 제외하였다. 실업자는 9시 40명, 12시 30명, 오후 3시 20명, 오후 5시 10명이 고용되었다고 하자. 이들이 총생산은 늦게 고용되어서 생산한 몫이 적을 것이므로 100명의 총생산 합계는 50데나리온이다. 그러면 실업 급여 후에도 주인의 몫은 50데나리온이 불어나서 250데나리온이 남아 있다. 이것을 포도원 천국 주인은 그 나라가 필요로 하는 다른 용도의 공경비로 집행하면 된다.
그러면 포도원 주인이 실업 급여액 100데나리온의 전체 비중은 얼마나 되는가? 실업자의 생산량을 제외해도 총생산 1,200에 실업 급여 100은 8.3%(100/1,200)다. 실업자의 생산량을 추가하면 8%(100/1,250)다. 실업 급여를 하고도 남은 재원은 250데나리온은 사회가 필요한 다른 공경비 용도가 된다. 그러므로 주인의 이런 실업 급여와 재정의 운영은 무리가 없으며, 오히려 지극히 합리적이다.
시장경제에서도 실업 구제와 공경비는 필요하다.
사유재산제 사회에서도 이런 정도의 실업 급여나 공경비 운영은 어느 나라나 하고 있다. 그리고 내 것이 분명한 사유재산제와 시장경제 사회에서도 예외는 있다. 그것은 구제의 필요성이다. 시장경제는 합리성을 따라 운영되지만, 구제는 시장경제나 합리성을 초월하여 자비가 필요한 세상의 운영 원리다. 시장경제에서도 주린 자는 먹여야 하고, 병든 자는 치료를 받아야 한다. 농사 짓는 사람과 동네 사람이 쉽게 다닐 수 있도록 길도 내어야 한다.
품꾼의 비유가 만에 하나라도 시장경제가 아니라고 본다면, 그것은 실업자에 대한 구제의 필요성을 이해하지 못하거나 부정하는 것과 같은 것이다. 흔히 말하는 실업 구제에 낭비성이 있거나 ‘도적적 해이’를 초래하는 방만한 집행은 우려를 해야 한다. 그러나 포도원 품꾼의 비유는 그런 낭비성이나 방만한 재정 집행이 있을 수가 없다. 오후 5시에도 일터로 불러들여 일을 하게 하고, 필요한 생계비를 주었다. 주인은 실업자 구제를 위하여 정상 노동자에게 세금 한 푼 징수하지 않고, 해결하였다.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가 보여준 포도원 품꾼의 비유를 가지고 불합리한 내용이 많다는 기존의 해석들은 잘못된 이해다. 더구나 이 비유의 내용을 공산주의나 사회주의 경제 방식처럼 이해한 것도, 오류를 인정하고, 바로잡아야 한다.
그러면 이제 남은 것은 이런 실업자의 구제나 사회가 필요한 공경비를 무엇으로 조달하는가의 문제다. 이것도 예수 그리스도의 비유는 자동으로 해결한다. 이것이 바로 토지 임대제를 가르쳐준 “포도원 경작자의 비유”에 들어있다.
포도원 경작자의 비유에 들어있는 토지문제와 시장경제의 근본 해법
다른 한 비유를 들으라 한 집 주인이 포도원을 만들어 ... 농부들에게 세로 주고 타국에 갔더니(마 21:33) 그들이 말하되 그 악한 자들을 진멸하고 포도원은 제 때에 열매를 바칠 만한 다른 농부들에게 세로 줄지니이다(마 21:41)
포도원 경작자의 비유는 주인이 포도원을 만들어서 농부들에게 세를 주고 멀리 떠나 있었다. 그리고 오래 있다가(눅 20:9) 열매의 때가 되어 농부들에게 세(貰)를 받으려고 종들을 보냈다. 그런데 농부들은 세를 내기는커녕 종들을 해치고 죽인다. 주인은 또 종를 보낸다. 그래도 그들의 무례한 행동은 그치지 않는다. 포도원 농부는 이런 무례를 몇 차례 반복한다.
마침내 주인은 상속자인 아들을 농부에게 보냈다. 그런데 농부는 그 아들마저 성 밖으로 끌어내어 죽여 버린다. 주인에게 토지임료를 내기가 싫고, 포도원을 자기 소유로 하고 싶은 탐욕 때문이다. 토지의 소유욕이 이처럼 심각한 결과를 초래한다.
이 비유에 대한 전통적인 해석은 예수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못을 박는 이스라엘의 반역을 말하는 비유라고 한다. 중간에 보낸 종들은 율법의 준수를 촉구한 선지자들로 본다. 여기에 주인이 오래 있다가 농부를 보낸 것은 예수 재림이 늦어질 수 있다는 암시로 보기도 한다.
예레미야스(J. Jeremias)나 다드(C. H. Dodd)는 이 비유를 주후 30년경 갈릴리 지방에서 농지를 많이 가진 예루살렘 부재지주를 소재로 하고 있다고 했다. 이들은 이 비유가 원래 순수한 생활경제에 관한 것이었지만, 뒷날 기독론이나 구속사적 의미로 해석이 바뀌었다고 보았다. 필자는 포도원 경작자의 비유는 구속사적인 내용으로 볼 수도 있고, 예레미야스처럼 원래의 소재이었던 경제생활에 관한 내용으로도 볼 수 있다고 본다. 성경의 구속사는 원래 경제적 내용을 포함하고 있으므로 비 비유가 가진 의미는 두 가지 요소를 다 갖고 있다는 뜻이다. 경제문제를 해결하는 토지 무르기와 죄 문제를 해결하는 십자가의 값 치르기 희생은 구원의 원리가 같다.
희년법과 포도원 경작자의 비유
포도원은 주인이 만들었다. 그리고 농부에게 세를 놓고 오랜 기간을 기다렸다. 이것은 구약시대에서 신약시대, 예수님의 초림까지의 긴 기간을 뜻한다고 볼 수 있다. 주인은 농부에게 세를 주고, 오랜 기간 기다린다. 이것은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토지를 분배하고, 그 토지는 희년법을 준행하며 살아가길 오래도록 기다렸다는 뜻으로 이해할 수가 있다.
그래도 이스라엘 지도자와 백성들이 바알 신과 바알 제도를 받아들이고, 희년법은 지키지 않는다. 하나님은 기다리다 못해 선지자들을 보내어 우상숭배를 경고하고, 희년법의 준수를 강하게 촉구하였다. 그러나 이들은 선지자들의 경고를 듣지 않고(대하 36:15,16), 오히려 해치고, 죽였다(대하 24:21, 히 11:36,37). 그래서 하나님은 때가 되어서 독생자요, 포도원 상속자인 예수 그리스도를 직접 보내신 것이다.
그러나 이스라엘 백성들은 그 희년법을 지키지 않는다(눅 4:29). 예수 그리스도를 포도원 밖으로 내어쫓고, 온갖 모함으로 십자가형을 받게 하였다( 마 21:39, 눅 20:15). 그래서 주인이 다시오면 그들은 포도원을 빼앗기게 된다. 그리고 포도원을 제 때에 실과를 바칠만한 다른 농부에게 세로 주게 된다(마 21:41,43).
희년법과 포도원 임대제도
오늘날의 경제에서 발생하는 구조적 문제는 예수 그리스도가 포도원 경작자의 비유로 알려준 방식을 경제 실무에 그대로 적용하면 된다. 비유를 마친 예수님이 청중들에게 그러면 포도원 주인이 어떻게 하겠느냐고 물었다. 이에 대한 청중들은 “포도원은 제 때에 실과를 바칠만한 다른 농부에게 세로 줄지니이다(마 21:31)”라고 답변하였다. 경제에서 그 답변 그대로 그 방식을 시행하면 된다. 예수 그리스도가 비유로 제시한 포도원 토지임대 방식을 비유가 아닌 경제 실무에 그대로 적용하는 것이다.
이에 대하여 예수님은 건축자의 버린 돌이 모퉁이 머릿돌이 된다는 성경을 인용하여(시 118:22,23, 행 4:11, 엡 2:20), 이렇게 말씀을 하신다.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하나님의 나라를 너희는 빼앗기고 그 나라의 열매 맺는 백성이 받으리라(마 21ㅣ43)”
땅과 구원은 원래 선물로 준 것이다.
이 비유대로 포도원 토지의 임대제도가 전 국토에 시행하면, 백성들은 토지를 소유하지 않고, 세(貰, 임대료)만 내면서 내 땅을 가질 수가 있다. 이것은 나의 몸이 팔리지 않더라도 나의 임금 하나로 노동시장이 운영되는 것과 같은 시장원리다. 예수 그리스도가 포도원 품꾼의 비유로 제시한 실업자 구제를 비롯하여 공동체에서 필요한 각종의 공경비가 저절로 조달되게 된다. 예수 그리스도는 이것을 "천국(천국 경제)"이라고 한다(마 20:1).
그러면 누구든지 토지 사용에는 고액의 금액을 선불로 낼 필요가 없다. 땅은 하나님이 주인이시고, 아무도 그 땅을 주인라고 하는 자가 없다. 사실상 영구 내 땅이며, 그 땅은 포도를 심든지, 쌀 농사를 짓든지, 집을 지어 살아도 된다. 사실상 내 땅이며, 나의 자유로 토지를 경작한다.
그리고 나는 필요한 만큼 땅을 사용하고, 땅이 내어주는 가치로 임대료를 내면 된다. 나의 노동이나 투자의 대가가 아닌 토지가치로 임대료를 내는 것이다. 그러므로 사용료로 내는 토지임료는 내가 내는 것이 아니다. 내가 내어야 할 임대료를 땅이 대신하여 내어주는 것이다. 과한 표현 같지만, 지대시장제는 토지 사용이 '땅 짚고, 헤엄치기"만큼이나 쉽고, 자유롭다.
그리고 이런 경제제도에서 시장경제는 예수 그리스도가 알려준 토지임료 하나로 약 일곱 개 이상의 가격과 문제가 저절로 소멸한다. 먼저 하나님의 것을 내 것으로 여겨서 지은 ①죗값이 소멸한다. 안식년·면제년이 와야 소멸하는 ②빚값과 ③몸값이 사라진다. 그리고 토지 무르기나 희년이 와야 소멸하던 ④땅값까지 사라져 버린다. 그래서 포도원 품꾼의 비유처럼 ⑤실업자가 없으며, 경작자의 비유처럼 ⑥세금이 없이 공경비가 자동 해결된다. 이에 더하여 실물 없는 땅값이 일으킨 ⑦인플레이션과 ⑧시장의 가격 불균형이 일으키는 각종 시장문제가 저절로 사라진다.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가 알려준 포도원 천국 경제법은 이론상, 제도상, 이념상으로 가히 지상천국이고, 천년왕국이 맞다.
성경 희년법대로 토지를 소유하지 않고, 팔고 사지 않고, 토지가 생산한 것은 토지가치로 알고, 이를 인정하여 세를 내면, 땅은 나에게 모든 것을 공짜로 되돌려 준다. 내가 낼 임대료를 토지가 대신하여 내어주기 때문이다. 한 나라에서 필요한 세금도 대신하여 준다. 예수님도 우리 죄를 이런 방식으로 사하여 주셨다. 지은 죄는 반드시 값을 치러야 사해지는 데 그 값을 예수님이 십자가의 보혈로 대신 치러주신 것이다.
세상에 이렇게 좋은 토지제도, 무르기 제도, 속량 제도가 어디에 있다는 말인가? 이런 방식을 비유로 가르쳐 주신 분이 천년왕국의 주인이요, 왕이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이시며, 그 분이 알려주신 복음이다.
천년왕국의 통치 조직
천년왕국은 하늘에서 지상으로 천사가 내려와서 사단을 결박하면서 시작된다. 여기서 지상 천년왕국의 주인은 당연히 포도원 주인의 아들이신 예수 그리스도이시다.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나라를 다스릴 자들은 순교자의 영혼들과 짐승의 표를 받지 않고 살아서 왕 노릇을 하게 되는 일꾼들이다(계 7:4, 20:4,6). 이 왕 노릇을 하는 자 외에 함께할 백성들은 능히 셀 수도 없을 만큼 많은 무리가 있다(계 7:9). 그리고 이런 일꾼들을 지도할 위치에는 네 생물과 24 장로가 있다(계 4:4,6).
그리고 천년왕국에서도 겉으로 왕의 통치를 따르지만, 인간의 본성은 변하지 않은 배교자가 숨어(잠재하고) 있을 것이다. 이들은 천년 통치가 끝이나서 사단이 풀리면, 사단과 함께 왕국 통치에 반기를 들고 일어날 자들을 가정하여 조직에 포함시켰다. 성전에는 두 증인(계11:3) 또는 두 선지자(계11:10)도 있지만, 아직 이해가 부족하여 제외였다. 그러므로 이 조직도는 천년왕국의 실제적인 조직을 말하는 것은 아니고, 필자가 지상 천국의 희년법 통치를 가정한 하나의 가상적인 조직이다. 이런 시각으로 천년왕국을 내다보며, 예상되는 통치 조직을 정리하면 다음 표와 같다.
천년왕국의 도래 시기
여기서 말하는 천연왕국의 도래 시기란 어느 특정 연도나 일시를 말하려는 것이 아니고, 구속사에서 필요한 시간상의 절차적 단계를 말하려는 것이다. 그런데 시간상의 절차적 단계로 보더라도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 시기(절차)는 우리가 알 수 없다. 예수님이 그때는 아무도 모른다고 하셨다(마 24:36). 천년왕국과 재림의 시기 문제는 전천년설, 후천년설, 무천년설로 사람마다 생각과 주장이 다르다.
그런데 천년왕국의 절차적 시기는 예수 재림의 시기와는 달리 어느 정도 그 단계적 절차를 예상할 수가 있다. 그래서 천년왕국은 지금의 초림 상태인 복음시대에 속한 교회 공동체 시대 다음(또는 연속) 단계로 오는 세상이다. 그리고 세상의 종말은 천년왕국이 지난 다음에 오는 것이다. 그리고 계시록에서 일곱 단계의 절차로 반복하게 될 일곱 인, 일곱 나팔, 일곱 대접의 재앙은 사단이 결박되어 천년왕국이 도래하기 직전 시기(계 20:1)와 천년왕국이 끝이 난 종결기, 곧 천년왕국 다음 단계로 넘어가는 과정에서 있게 될 사건들이다(계 20:7,8).
그러므로 계시록이 보여주는 전쟁, 지진 등의 각종 재난과 환란은 천년왕국 이전 또는 이후, 절차적으로 한 시대의 과도기 단계에 있을 사건들이다. 그리고 천년왕국은 그 전쟁과 환란 사이에 있을 평화시대를 뜻한다. 이때는 사단이 결박되어 있고, 개개인의 행위를 판별하는 죄인의 심판도 없다(보이지 않는다). 그리고 필자는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의 시기에 대해서는 아는 바가 없다.
사람들은 예수 재림의 때는 예단할 수가 없으며, 사람이 다룰 수 있는 시간의 범주를 넘어선다.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은 반드시 있지만, 그 시기나 단계는 하나님의 주권적 판단에 달려있다. 천사가 사단을 결박하여 주는 상태에서 사람이 희년법을 수용할 수 있는지의 여부에 달려있을 수도 있다.
우리가 흔히 듣고 있는 이른바 '7년 대환란'에서 7년 기간 예측은 다니엘 70 이레에 근거한다. 그런데 70 이레는 10회 희년 주기 490년과 7년 주기로 연동(연계, 이연)되어 있다. 다니엘 70 이레 중 마지막 1 이레는 예수 그리스도의 희년 선포와 공생애 기간 3.5년(전삼년 반)이 성취되었으므로, 3.5년이 잔여 기간(후삼년 반)으로 남았다. 그래서 희년 주기로 본 천년왕국이 임하기 전에 겪게 될 환란 기간은 7년이 아니고, 3.5년으로 봐야 할 것이다(계 11:2,13:5). 희년 주기와 다니엘 70 이레의 기간은 필자의 12번 글을 참고하기 바란다. 봉암골(욱수골) 사람들 | 희년 주기와 다니엘의 70 이레에 대한 종합 정리 - Daum 카페
이러한 관점으로 천년왕국의 도래 시기를 예상하면 다음과 같다.
천년왕국의 시기와 관련 사건의 예상도
구약시대 ⇨ | ⇨ 신약시대 ⇨ | ⇨ 천년왕국 이후 시대 | ||||
율법 공동체 | X1 | 교회 공동체 | X2 | 천년왕국 | Y | 부활 및 심판 |
X와 Y | X1 : 공생애 3.5년, X2 : 환란기 3.5년(또는 재림?) | 평화시대 | Y : 환란기 또는 재림(?) |
계시록에서 소유권과 매매 행위 대한 세 가지 증서나 표식
계시록에는 마지막 때에 보여줄 생명책과 책들이 있다(계 20:12). 이 외에도 계시록에서 중요시 해야 할 증서들이 는데 이것이 법적, 경제적으로 신분과 재산을 증명하는 증서와 표식이다. 이 증서에는 하나님의 정당한 소유권을 보증하는 인(印)이 있다. 그리고 하나님의 정당한 소유권과는 정반대의 성격, 곧 부당한 소유권과 관련된 짐승의 표(標, 표식)가 있다.
① 6장의 인 : 계시록 6장이 말하는 인은 재산에 대한 소유권이다. 필자는 이를 『희년과 복음』의 저자, 장진광 목사의 견해처럼 토지문서로 보고 있다. 6장이 말하는 인은 희년법이 말하는 토지의 안식과 거래, 토지의 소유권과 사용권에 대한 내용을 담아놓은 희년법과 직접 관련되는 문서이고, 증서다. 그리고 땅과 관련된 문서로 보는 것은 일곱 인봉을 떼는 담당자가 네 생물이라는 점(계 6:1)에서 그런 추정을 할 수 있다. 네 생물은 천사로 보이지만, 땅과 만물을 상징하거나 대표하기 때문에 인봉을 떼는 작업을 하는 것으로 보고 있다(사 6:2, 겔 1:5, 10:5).
② 7장의 인 : 계시록 7장에서 12지파가 받게 될 인침은 사람에 대한 소유권 증서다. 하나님이 자기 백성으로 삼은 증거이며, 하나님과 거룩한 사역을 함께할 사명을 부여받은 사역자들을 보증하는 증표로 볼 수 있다. 7장에서 인침을 받는 자는 상징적 또는 대표적인 수로 144,000명의 수를 밝혀놓고 있다. 더 작은 수로는 네 생물과 24 장로가 있다. 순교자의 영혼들은 구약시대의 선지자들과 신약시대의 12제자들이 있다.
③ 13장의 표(標) : 원래 로마의 통치 하에 백성들의 경제활동을 관장하던 제후나 관원(행 19:31)을 상징하는 이름과 수다. 그러므로 이 표를 경제적으로만 보면, 하나님의 정당한 소유권을 부정하거나 반역하는 가증한 소유권의 낙인이나 표식(標識, mark)이라고 할 수 있다. 하나님을 대적하는 짐승과 우상이 인정하는 표식이다. 계시록에서 직시한 짐승은 옛 뱀이나 용을 말한다(계 20:2, 12:9). 그러므로 오늘날 ③의 표는 ①과 ②와 같은 정당한 소유와 시장거래를 거부, 방해, 반역하는 실체일 것으로 보인다.
이 표를 받은 자는 천년왕국에서 사역자가 될 수 없으며, 심판의 대상이다. 이 표를 상징하는 숫자는 666이다(계 13:18). 우상에게 경배하고 짐승의 표를 받게 하거나 표를 묵인하는 주체들(지도층과 상류층)은, 땅의 음녀들(계 17:5), 땅의 왕들과 상인들(계, 18:3)로 추정하고 있다.
주) 1. 요한계시록이 기록될 당시 로마는 11대 도미티안 황제(주후 81~96년)가 통치했다. 그 당시 "길드(guild)"라는 상인조합(또는 노동조합)이 있었고, 상인들은 황제를 숭배하는 상인조합에 가입을 해야 경제활동을 쉽게 할 수가 있었다. 짐승의 표는 "길드"라는 상인조합의 가입을 증명하는 표식으로 추정된다. 곧 짐승의 표는 우상 숭배와 관련되어 있지만, 현실적으로 경제활동과 관련되어 있을 가능성이 크다.
주) 2. 소유권이나 권리를 나타내는 표(標)와 유사한 용어로, 권리를 사물(종이, 표면, 물체)에 나타내는 것이 표(表, 表示)이며, 이를 투표용지처럼 작은 쪽지로 나타내면 표(票, 投票), 문자나 형상과 같이 상징으로 나타내면 표(標, 商標)라고 할 수 있다. 이와 비슷한 용어는 문서, 증서, 증표(證票), 증권(證券) 등이 있다.
우상과 짐승의 표를 닮은 각종의 금융상품들이 있다.
그런데 토지문서, 주식, 선물, 실물결제용 아닌 외환, 가상화폐 안에는 영원히 실물은 없고 가격만 있다. 실물(재화나 서비스)이 영원히 없는 거래이므로 허수 거래이며, 가짜 가격물이다. 이런 허수 거래, 가짜 가격물을 무분별하게 팔고 사는 행위는 그 자체가 가증스러운 매매 행위다. 그 대표적 허구물이 최근에 나온 가상화폐다.
주) 실물 없는 가격(허수 거래) : 토지는 100%, 주식과 가상화폐는 실물투자와 순이익의 재투자(적립) 없이 커진 가격, 선물은 현물 수수 없는 거래, 외환은 무역, 해외 실물투자, 해외 생활(해외 거주, 여행, 유학 등)과 같이 실제 경제활동과 관련 없이 매매차익만을 추구하는 상품성 화폐(외환) 거래 전액을 말한다.
이것은(허구 가격물)은 경제활동에서 가격과 거래만 있고, 그 안(거래차익)에는 사람이 쓸 수 있는 실물이 아무것도 들어있지 않다. 그래서 이런 거래는 생산 없는 부가 영원히 수평으로 이전될 뿐이다. 그래서 사회는 빈부격차와 물가상승, 금융위기와 불황, 심하면 경제 공황을 일으키며, 연속적으로 경제를 흔들거나 혼돈에 빠트리고 있다.
하나님은 창조질서에서 생산 없이 부(富, 실물, 가치)가 발생하는 세상을 만드시지 않으셨다. 그리고 재화나 서비스을 소비하지 못하는 가치의 사용이 가능한 세상도 만드시지 않으셨다. 곧 ㄱ. 생산 없이 값이 커지는 것과 ㄴ. 소비되지 않는 물질의 원금이나 가격물을 사용할 수 있다고 말하는 것은, 샛빨간 거짓말이다. 경제활동에서 생산 없이 커진 수나 가격은 창조질서에 존재하지 않는허수다. 땅값 매매차익 전액과 실물 재투자(적립금, 이익의 배당 유보액) 없이 커진 주식 매매차익이 이에 해당한다.
에덴동산의 뱀은 보이는 실과로 사람을 미혹하여 죄를 짓게 했지만, 가짜 가격물들은 영원히 보이지도 않고 실과가 아닌 것을 먹을 것이 있는 것처럼 사람을 속이고 있다. 그래서 사람의 건전한 영성과 이성이 이를 식별하지 못하게 한다. 그래서 청년들까지 여기에 뛰어들게 하여 빚끌이, 영끌이 가짜 투자로 혼을 빼앗기고, 하루아침에 투자금을 날리고 빈털터리가 되게 한다.
거룩한 생활법을 말하고 있는 레위기는 금지한 고기를 먹어도 가증한 짓이라고 한다(레 11:10,41,43). 레위기가 금지한 고기를 먹는 것이 가증하다면, 이런 무분별한 금융상품들의 거래는 머리가 일곱 개에 열 뿔 달린 짐승(계 13:1,17:3)보다 더 간교하고, 가증스러운 것들이라고 할 수 있다. 이 말은 짐승의 표가 곧 허구 가격물이라는 말은 아니고, 이 가격물이 그 우상과 짐승의 속성인 가증한 물건과 더러운 것들(계 13:4)의 속성을 빼닮았다는 뜻이다.
예수님은 재물에 인격을 부여하여 섬기는 맘몬을 경고한 바가 있다(마 6:24). 야고보는 말세에 쌓은 재물을 경고한다(약 5:3). 신약시대에 말세는 초림에서 재림까지 전 기간을 뜻하지만(히 1:2, 요일 2:18), 야고보는 세상의 마지막 때를 염두에 두고 한 말이다.
계시록 18장에서 말세에는 사람의 영혼까지 팔고 사다가(계 18:13), 그 부가 하루 만에 몰락하는 것들이 있다(계 18:8,10,17,19). 필자는 계시록 18장이 말하는 경제적 종말 상태가 이 실물 없는 허수 거래와 가증스러운 경제 행위들이 직접 관련되어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경제로만 보면, 더럽고 더러워서 가증한 것(가짜 금융상품)이 거룩한 것(실물 상품) 위에 서있는 모양세다. 이것이 시장에 들어서기 시작한 지 벌써 300년이 넘어가고 있다. 예수 그리스도가 "강도의 소굴"을 청소한 이후는 2,000년이 거의 다 되었다. 희년법을 위반한 때를 치면 3,500년의 세월이 흘러가고 있다.
지금의 세상은 이것을 파생금융상품이라고 한다. 사람을 완벽하게 속이는 요물이다. 그래서 이것은 시간이 갈수록 그 이름과 가격과 수가 점점 더 교활하여지면서, 커지고 있다. 계시록 18장은 이런 상거래를 하는 상인들이 순식간에 몰락하는 현상을 보여주고 있다.
** <참고> 필자도 땅과 주식을 팔고 산 경험이 있으며, 앞으로도 형편에 따라 팔고 살 수도 있습니다(제도가 이렇게 하지 않으면, 토지 사용과 기업 투자가 제도상 불가능하므로). 성전에서 세겔화를 구입한 사람이 나쁜 것이 아니고, 웃돈을 붙여서 팔고 사도록 만든 제도가 사악하고 가증한 제도라는 뜻이므로 오해가 없으시길 바랍니다.
천년왕국과 희년법은 복음의 마지막 전파 수단이다.
거짓 선지자가 많이 일어나 많은 사람을 미혹하겠으며 불법이 성하므로 많은 사람의 사랑이 식어지리라 그러나 끝까지 견디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 이 천국 복음이 모든 민족에게 증언되기 위하여 온 세상에 전파되리니 그제야 끝이 오리라(마 24:11~14)
예수님은 천국 복음이 온 세상에 전파되어 모든 민족에게 증언되어야 세상 끝이 온다고 하신다. 그러나 아직 복음이 전파되지 않은 곳이 많다. 이슬람권에서는 아직 복음을 들어본 적이 없는 자가 80%다. 그리고 생활 복음인 희년법도 아직 세상이 모르고 있다.
그래서 필자는 미래에 대하여 이렇게 생각하고 있다. 지금까지 다루어온 희년법과 미래에 있을 천년왕국은 세상을 구원하기 위한 복음 전파의 마지막 수단이 될 것으로 보고 있다. 그 이유는 수차례 반복하며 강조하여 왔지만, 다시 정리하여 보면 다음과 같다.
① 성경 구속사에서 제사와 예배는 앞부분에서, 생활경제와 희년 부분은 시대마다 뒷부분 또는 종결 부분에서 다루고 있다.
② 희년법과 예수 그리스도의 포도원 비유가 가르쳐준 천국 경제법은 현실 경제에서 적용하기에 흠이 없고, 완벽하다.
③ 우리를 죄에서 구원하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사역도 복음이고, 구약시대와 신약시대를 구분함이 없이 생활경제를 구원하기에 부족함이 없는 희년법과 천국 경제법도 틀림이 없는 복음이다.
④ 생활 실무로 필요했던 희년법은 역사 이래 그 시대마다 극히 소수자만 지켜왔다.
⑤ 율법과 언약은 일점일획도 빠짐없이 모두 이루어진다고 한다(마 5:18).
⑥ 천국 복음이 세상에 전해져야 끝이 온다(마 24:14). 희년법과 천국 경제법도 천국 복음이다(마 20:1).
⑦ 하나님은 마귀의 유혹을 스스로 이기지 못하는 사람을 돕기 위하여, 천사를 보내어 사단을 결박하여 준다(계 20:1,2).
이와 같은 ①~⑦은 세상을 구원하는데 필수적인 요소나 조건이므로, 구속사에서 언제인가 성취가 되거나 실현되어야 할 내용이다. 그러므로 ①~⑦의 요건을 충족하기 위하여서도 희년법 통치의 천년왕국은 필요하다. 곧 희년법과 천년왕국은 예수 재림의 시기와는 별개로 필요한 것이다. 천년왕국은 예수 재림의 목적인 사람과 세상을 온전하게 구원하기 위하여 필요한 것이다.
성경 말씀은 언제인가 반드시 성취된다.
성경의 모든 예언과 말씀은 반드시 성취된다고 하였다. 성경에서 하나님의 구속사를 추적하여 보면, 때가 찬 구약의 예언은 거의 모두 실제로 성취가 되어온 것을 확인할 수가 있다.
그중 큰 것, 몇 건만 되돌아보아도, 오신다고 하던 메시아는 실제로 오셨다. 안식일은 주의 날로, 부활절은 유월절로, 칠칠절은 성령강림절로, 날짜까지 맞추어서 정확하게 성취가 되었다. 이스라엘이 회복될 것이라고 했는데, 그 예언은 1948년 나라의 독립으로 회복되는 과정에 있다. 우리는 지금 이스라엘에게 하신 하나님의 약속과 성경 말씀은 2,000년이 지나서 이루어지는 실제 현상을 보고 있다.
지금은 세상이 혼탁하여 지고 있어서 기독교에 대한 부정적 견해가 많다. 그러나 유대교가 기독교로, 노예제 사회가 신분의 자유가 보장되는 사회로, 소수 독재의 군주제가 다수 국민의 민주제로 바뀐 사회제도의 큰 변혁은 분명히 있었다. 이 큰 변혁은 구약시대의 율법 제도가 신약시대에 교회를 통하여 복음 제도로 성취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여기에는 기독교의 역할을 누구도 부정하지는 못할 것이다.
그러므로 이제 하나님은 긴긴 구속사에서 마지막 때를 앞두고, 인류를 구원하기 위하여 마지막 사역을 준비하고 계신다. 그 준비 사역은 아직 우리의 불순종으로 성취되지 못한 희년법을 성취하고, 완성시키는 사역이다. 그래서 희년법의 진정성, 곧 하나님이 지으신 창조 세계의 온전함과 정확무오한 성경 말씀을 세상 속에 드러내어 보여주실 것이다.
그래서 하나님은 사람의 영성과 이성으로는 마귀의 유혹을 스스로 이기지 못하므로, 마귀를 결박하여서라도 성경 말씀을 성취시키려고 하신다. 그래서 사람이 무시하고, 지키지 않은 희년법으로 통치하는 세상의 참 모습을 보여주려고 하신다. 하나님은 이렇게 하여 세상의 모든 인류를 한 사람이라도 더 구원하며, 이미 구원을 받은 자들은 실족함이 없이 온전하게 보존하려는 것이다. 참으로 미쁘시고, 사랑이 많으신 하나님, 거룩하시고, 위대하신 하나님만이 계획하고, 실행을 하실 수 있는 사역이다.
그러므로 다가올 천년왕국은 하나님이 인류를 구원하기 위해서 한시적으로 두게 되는 복음 전파의 마지막 수단이다. 이런 의미에서 우리는 오직 한 분이신 구원자 예수 그리스도를 세상에 전파해야 한다.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가 선포한 희년이 완성될 천년왕국을 기다리며, 예비하는 삶을 살아야 한다. 이것이 구원 받은 사람들, 지구촌 모든 인류가 감당해야 할 마지막 사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