잊을 만 하면 발생하는 졸음운전 사고들.
버스나 화물차 같은 대형차 졸음운전 사고 치사율은 20%에 육박해 전체 졸음운전 사고 치사율에 비해 1.9%P 높고 승용차 졸음사고에 비해 5.5%P 높습니다. '사고가 났다 하면 대형'이라는 뜻인데…. 때문에 졸음운전을 할 수밖에 없는 운전자들의 근무여건에 대한 문제점이 꾸준히 지적돼 왔습니다. 정부는 졸음운전을 줄이기 위해 지난해 이런저런 대책을 내놓았습니다. 그렇다면 운전자들의 근무여건, 바뀌었을까요?
졸음운전 시리즈 첫 번째 순서로 전세버스 운전기사의 근무환경을 점검해보기 위해 한 운전기사의 집에서부터 하루 일정을 함께 시작해봤습니다. 취재 전날 기사분과의 전화통화에서 새벽 4시 반쯤 집에서 나와 밤 10시, 11시나 돼야 일정이 끝난다는 얘기를 전해 들은 터라 마음의 준비를 단단히 했습니다. 일단 마음 만은요. 일찍 잠자리에 들려고 노력했지만…. "정말 힘들텐데..하루 종일 같이 할 수 있겠어요?"라고 하셨던 기사분의 말이 귓전에 맴돌면서 잠을 쉽게 이룰 수 없었습니다. 양을 세어보기도 하고 토끼를 세어보기도 하고…. 그렇게 제 머릿속엔 온갖 동물들이 뛰어다니게 되면서 오히려 꿈자리는 더 뒤숭숭해졌습니다.
섭외한 기사분의 집에서 새벽 4시 정도에 뵙기로 했기 때문에 자는 둥 마는 둥 새벽 2시 반 벌건 토끼 눈으로 일어났습니다. 말 그대로 비몽사몽. 어떻게 씻었는지, 준비하고 나갔는지 기억도 안 나지만…. 새벽 4시, 운전기사의 집에 도착했고, 기사분은 이미 나갈 채비를 다 마친 상태였습니다. 기사분은 간단하게 물 한 잔 마시고 4시 반쯤 차고지로 이동했습니다. (간혹 야쿠르트나 계란을 드시지만 졸릴까봐 물만 드시고 나갈 때가 많다고 하셨습니다.) 차고지에서 출발한 시간은 새벽 5시 20분. 먼저 전세버스는 잠실에 있는 한 대기업 통근버스로 운행됐습니다.
취재를 했던 시기가 아침저녁으로는 쌀쌀했던 때라 기사분은 승객들 춥지 말라고 히터를 정말 '빵빵'하게 틀어주셨습니다. 맨 앞자리에 앉아있던 저는 간밤에 잠을 설쳤던 탓 인지 정말 말 그대로 '기절'하고 말았습니다. 간간히 눈이 떠졌는데…. 온몸이 의자에 구겨진 채 그대로 붙어있고, 이상하게 손가락 하나도 까딱하기가 힘들었습니다. 그러다 7시 반, 잠실 회사에서 승객들이 내릴 때 놀랍게도 눈이 번쩍 떠졌습니다. 승객들이 내리는 영상을 꼭 찍었어야만 했던거죠. 부리나케 영상취재 기자 쪽을 쳐다보니 다행히 영상취재 기자는 촬영하고 있었습니다.'아, 이렇게 믿음직스러울 때가…' 그렇게 확인을 하고 나니 눈은 그대로 스르르 감겼습니다.
기사분은 두 시간 동안 달리고도 쉬지 못하고 강릉으로 향하는 단체손님을 받으러 신대방동으로 이동했습니다. 이동하는 동안 손님으로부터 재촉 전화가 계속 걸려왔기 때문이죠. 결국 또 승객들을 싣고 기사는 화장실을 참아가며 고속도로를 달린 끝에 양양휴게소에 도착했습니다. 운행시작 5시간 만에 처음 맞는 휴식이었습니다. 근데 이마저도 잠시. 시간을 재 봤더니 딱 7분 쉬었습니다.
점심식사는 강릉의 한 순두부집에서 했습니다. 기사분은 승객들이 식사를 마치고 기다릴까 봐 점심도 허겁지겁 드셨습니다. 저도 같은 식당에서 밥을 먹었는데 당시 영상취재기자와 나눴던 얘기가 생각납니다. '정말 열심히 따라다니며 취재했는데, 아직 12시네..앞으로 11시간 더 일해야 되는 구나' 그러면서 우리는 영혼이 나간 듯 '허허허허' 웃었습니다.
드디어!! 기사분이 꽤 장시간 쉴 수 있는 기회가 생겼습니다. 관광지에 도착해 승객들이 관광하는 사이 차 안 의자에서 눈을 붙였습니다. 다소 불편해 보일 수 있는 자세로요. 이렇게 온전한 휴식시간은 2시간 반 정도 됐습니다.
저희 취재팀도 그 시간에 쉬어야 했기에…저는 강릉 CGV에서 영화를 보자고 제안했습니다. 실은 영화가 목적은 아니었고, 어두운 곳을 찾아 눈을 붙일 생각이었죠. 시간대가 맞는 영화가 딱 하나 있었습니다. <블랙팬서>. 예상대로 저는 그 재미있다는 <블랙팬서>가 상영되는 동안 '푹잠'을 잤습니다.
일시적인 효과인지 모르겠지만 그렇게 '상큼한' 기분으로 다시 기사와 만난 시간이 오후 4시 정도였습니다.
(나중에 깨닫게 됐지만, 확실히 일시적 효과였습니다.) 다시 서울로 이동하는 길, 저희가 설치해놓은 관찰카메라에는 기사분이 잠을 깨기 위해 쫀드기나, 사탕을 필사적으로 먹는 모습, 눈꺼풀이 무거워지면서 순간 조는 모습도 포착됐습니다.
그렇게 손님을 내려다 주고 차고지에 도착한 시간은 밤 9시 40분이 넘었습니다. 이날 기사분이 한 식사는 점심 한 끼밖에 없었습니다. 버스 청소 및 정리를 하고 집에 들어가면 밤 11시 정도가 되는데, 대개는 그 시간에 저녁 식사를 한다고 했습니다. 다음날 또 새벽에 일어나기 위해서는 그 시간에라도 밥을 먹어야 잠이 온다고 하시더라고요.
저는 하루 동안 기사분을 쫓아다니면서 흔히 장시간 비행을 하면 나타난다는 '이코노미 증후군'을 겪었고, 말 그대로 녹초가 됐습니다. 운행 중간중간 "안 피곤하시냐?"는 질문에 웃으시며 "괜찮다, 생생하다"고 대답하셨던 기사분을 보며 '강철 체력이신가, 역시 전문 운전기사님은 다르네..'라고 생각했지만, 기사분은 운행이 끝나자 "힘들긴 힘들다"고 토로하셨습니다. 하루 일정만 따라다녔는데도 저는 이렇게 힘들었는데, 기사는 이날만이 아니라는 게 문제였습니다. 6일 치의 운행일지를 받아서 살펴봤더니 대부분 새벽에 일찍 출발해서 밤늦게 운행이 끝났고, 심지어는 새벽 2시 20분에 일이 끝나는 날도 있었습니다.
기사분은 말했습니다.
"안 졸고 다니는 기사는 없어요. 안 졸고 간다는 건 다 거짓말이에요. 고속도로 막 2~3시간씩 달리면 졸음이 오더라고요. 어쩔 수 없어요"
졸음운전은 순간 정신을 잃는 것과 마찬가지기 때문에 오히려 음주운전보다 2, 3배 더 위험합니다. 치사율도 음주운전보다 2배 정도 높습니다. 정부는 지난해 발생한 크고 작은 버스 졸음운전 사고에 대한 예방책으로 이번 달 25일부터 운전자들의 8시간 연속 휴식을 보장하게 했습니다. 사실상 무제한 근로가 가능하도록 허용했던 기존의 근로기준법에 대한 보완책이었습니다. 더 나아가 올 2월에 개정된 근로기준법(9월 시행)에서는 전세버스의 경우, (여전히 특례업종으로 남겨져 있긴 하지만 )11시간 연속 휴식을 보장하게 했습니다.
이 법들은 현실성이 있을까요? 과연 운전자들의 근무여건은 더 나아질 수 있을까요?
전세버스 업체들은 지키기 어렵다고 하소연합니다. 사업자는 물론 근로자도 망하게 하는 길이라고 항변했습니다. 업체들의 주장은 이렇습니다. 제가 취재한 전세버스처럼 관광 등의 목적으로 운행되는 차량은 34%에 불과하고 나머지 66%는 정기적으로 운행하는 통근·통학 차량이 차지한다는 겁니다. 또 한국교통연구원의 자료를 근거로 들면서 성수기 운행시간은 평일과 주말·공휴일이 각각 4.3시간, 5.4시간이고 휴식시간은 각각 6.8시간, 5.1시간으로 사실상 운행시간은 얼마 되지 않는다고 설명했습니다. (하지만, '졸음운전 사고' 측면에서 이 자료의 맹점은 '평균' 수치라는데 있습니다. 졸음운전 사고는 '평균'을 적용해 발생하지 않기 때문이죠.)
때문에 11시간 연속 휴식 의무화는 전세버스 업계의 현실을 고려하지 않은 탁상행정이라고 말합니다. 중간 중간에 쉬는 시간을 합치면 운전한 시간만큼이 되는데 거기에 11시간 연속 휴식까지 보장하면, 운전 기사 수를 늘리는 등 업체들이 자체적으로 추가 대책을 마련해야 하고, 돈도 들어가게 되죠. 정부가 비용분담은 해주지 않고 법만 정해 놓으면 업체들은 다 도산하게 될 것이고, 운임이 줄게 되는 운전기사들도 대리운전 같은 '투잡'·'쓰리잡'을 뛸 수밖에 없다는 게 업체 측의 설명입니다. 졸음운전 사고를 막기 위해서라도 구체적인 추가 대책과 개선방안이 필요하다고 업체들은 입을 모았습니다.
출처: 18.04.02 SBS NEW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