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요약》 『대한민국 징비록』
“과거의 잘못을 경계해 미래를 삼가다”는 『대한민국 징비록』의 일부를 소개하겠습니다.
- 1543년 코페르니쿠스는 “그들이 아무리 제 연구에 대해 비난하고 트집을 잡더라도 저는 개의치 않을 것이며, 오히려 그들의 무모한 비판을 경멸할 것입니다.” 비난을 예상하고도 ‘지구는 돈다’고 주장하였습니다. 중세 로마 카톨릭의 영향 때문에 1000년 동안 감히 입 밖으로 꺼내지 못한, 지구를 중심으로 태양이 돈다는 생각을 태양을 중심으로 지구가 돈다고 주장한 것입니다. 이 주장을 기초해서 유럽은 바다를 건너서 세계를 지배하게 되었습니다.
- 1543년 일본에서는 15세의 도주가 거금을 주고 철포 두 자루를 사서 대장장이에게 주어 역설계 한 결과, 1년 만에 국산화에 성공한 뒤 삽시간에 일본 전역에 퍼졌습니다. 서양에서는 잘못된 신앙으로 억압하는 틀을 박살내고, 일본은 세상과 접촉하고 있을 때 조선에서는 성리학에 몰두하여 성현을 제사하는 사당과 선비를 가르치는 서원을 세워 당파싸움의 근거지가 되게 하였습니다.
- 공자와 맹자가 주장한 유학은 실천 윤리였다. 요순시대 이후 춘추전국시대때 망가진 천하 윤리를 회복하기 위해 해야 할 일들을 논어와 맹자에서 나열했다.
1543 조선에서는 첫 서원을 설립했고, 이후 성리학이 발전하여 조선 정신문화는 찬란하게 꽃을 피우는 대신 주자와 성리학에 반하는 학문은 어둠에 잠기고, 백성의 경제활동을 탐욕이라고 규정하며 상업과 공업을 억압하고 조선 팔도에 널린 금 은광을 폐쇄하고, 대신 중국을 하늘로 섬겼다. 성리학은 송나라 주희가 내놓은 ‘성리학’은 군사학, 재정학, 세무학, 외교와 경제도 없으면서도, 성리학을 공부한 사람이 관리가 되었고, 조선의 모든 학문을 억압하는 지식 독재와 학문 탄압으로 이어졌다.
- 세종은 10년 동안 연구하여 농업에 도움을 줄 수 있는 칠정산 역문을 만들었다. 칠정산에 따르면 한 해 길이는 365일 5시간 48분 45초로 현대 역법에 겨우 1초 틀릴 정도로 발전된 것이었다, 그러나 역법 연구 목적가운데 하나가 농사를 제대로 지어 백성을 편하게 하려는 의도도 있었지만 더 큰 목적은 사대였다.
- 1433년 장열실이 프로토타입 물시계 자격궁루를 만들자 세종은 “ 이 사람이 아니라면 만들어 내지 못했다”고 칭찬했지만, 9년 뒤 장영실은 곤장 80대를 맞고 파직 당하고, 기록에서 사라졌다, 이유는 세종이 타는 가마를 불량으로 만든 죄였다. 노비 출신 공학자는 용도 폐기된 것이다.
- 1589년 7월 1일, 대마도 사람들이 조선 경복궁을 방문해 선조에게 조총과 공작새 한 마리도 선물했다. 조선 정부는 공작새는 남쪽 바다 섬에 풀어주고 조총은 무기고에 집어넣었다. 3년 뒤인 1592년 임진년, 도요토미의 조총 부대가 조선을 짓밟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