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여행기 25
류인혜
* 로마공항 면세점
2003년 10월 23일(목) 미국으로 가는 김영중 선생이 가이드와 함께 먼저 출발을 한다고 해서 로비에서 작별인사를 했다. 그동안 정이 들어 헤어짐이 아쉽다. 호텔에서의 식사도 마지막이니 다른 날보다 아침을 많이 먹었다. 쳐다보기 싫던 햄 조각도 하나 토스트에 넣어서 먹고, 다른 빵은 부드러워 보였지만 망설이다 그만두었다. 집에 가서도 한동안은 빵을 먹어볼 생각을 하지 않을 듯하다. 커피를 마시고 오렌지주스는 두 잔을 마셨다.
우리도 비가 내리니 어제처럼 대책도 없이 길이 막히면 비행기 타기에 곤란하다고 예정보다 이른 시간인 7시 40분에 출발했다. 떠나기 전에 호텔 앞에서 단체 사진을 찍었다. 모두 출발할 때보다 짐이 많아졌다. 나도 할 수 있는 한 간단하게 정리했지만 작은 가방이 하나 더 늘었다. 밑 칸에 짐을 실을 수 있는 큰 버스가 왔다.
로마공항에서는 줄을 서 있다가 이리저리 옮겨 다니기도 하며 무사히 짐을 부쳤다. 단체 관광객들을 따로 접수한다. 영수증이 많이 모여서 세금을 돌려받을 사람은 현지 가이드와 함께 다른 곳으로 갔다. 그들을 마냥 기다리기가 지루하니 면세구역으로 들어가 있자고 의논해서 경험이 많은 서 교수를 따라서 안으로 들어왔다.
우리가 있는 위치는 중앙이고 양편으로 상점이 있다며 헤어져 볼일 후에 12시까지 왼편의 게이트로 각자 찾아오라는 말이 나온다. 그러나 작은 손가방이지만 짐을 든 채 쇼핑은 불편하기도 하고 비행기를 탈 곳이 어딘지 먼저 알아두고 헤어지는 것이 안심이라고 우리가 이용할 게이트 앞에서 짐을 부려놓고 헤어졌다.
짐을 봐준다고 혼자 앉아 있으니 심심하다. 잠시 후 반갑게도 임 선생이 왔다. 이어서 이상목 선생이 초콜릿을 사서 왔다. 그분들에게 짐을 부탁하고 슈퍼에 가서 맛이 있어 보이는 과자 몇 가지를 사고, 이제 이탈리아에서 마시는 마지막 에스프레소라고 다른 사람들이 하는 대로 슈퍼에서 계산하고 건너편의 커피집으로 영수증을 들고 가서 주문했다.
카페 종업원 남자가 “샌드위치?”라고 물어보는 것을 아니라고 고개를 흔들었다. 한 모금 되는 커피를 마신 후 옆의 사람들이 영수증 위에 작은 동전을 놓아두어 나도 동전 지갑을 뒤져서 같은 모양의 동전을 팁이라고 놓고 왔다.
그런데 뭔가 이상했다. 휴게소보다 에스프레소의 값이 너무 비싸다. 고속도로 휴게소와 공항 카페의 차이인가 생각해 보았더니 샌드위치가 포함되었던 모양이다. “예스!”라고 할 것을… 생각날 때마다 그곳의 샌드위치를 먹어보지 못한 게 후회가 된다. 아마 점심때라서 샌드위치값까지 계산했나 보았다. 그런데 종업원은 왜 물었을까. 영수증에 적힌 대로 주었으면 좋았을 것인데, 아쉽다. 말을 알아듣지 못한 덕분에 비싼 커피를 마셨다.
비행기가 예정 시간보다 10분 늦게 출발한다. 망설이던 주 선생님께서 손자의 선물로 스웨터 봐 둔 것을 사야겠다 해서 부리나케 함께 갔다. 남대문 시장에서 파는 것처럼 투박해 보여서 다른 것으로 사자고 조언을 했다.
건너편 가게가 눈에 뜨여 서둘러 들어가니 남성 옷이 많다. 스웨터는 캐시미어 털이 부드럽고 고급스러워 보였다. 괜찮은 브랜드라는 생각이 들어 마음 편히 골라드렸다. 서울에서 만났을 때, 손자가 좋아했다며 식구들이 여러 벌 사 올 것을 아쉬워하더라고 말씀하셨다. 사실 서울 백화점의 물건보다 질이 좋고 가격도 훨씬 저렴했다.
나도 브이넥 두 개를 샀다. 집에 남자가 세 사람인데 왜 두 개만 샀을까, 시간이 촉박하여 대충 골랐을까? 미련한 마누라를 돕기 위해 이 선생이 큰아들에게 양보한다. 이 선생의 양복 안에 입는 카디건이 낡아서 사 주려고 했던 것인데 몹시 미안했다. 아이들 옷도 크기가 어중간해서 그것도 마음에 걸렸다. 보통 몸집의 큰아들은 옷이 컸고, 덩치가 큰 작은아들은 조금 작았다. 다행한 일은 큰아들은 평상복처럼 입었고, 작은아들은 양복 안에 입어 제대로 격이 맞았다.
시간이 되니 사람들이 모여드는데 모두 포도주와 양주를 사서 들고 온다. 외국 여행에 술은 필수인가 보다. 한국에서보다 많이 싸니 선호할 수밖에 없다. 가까운 곳에 어린아이들 옷이 보여서 살펴보니 너무 허술해서 사는 것을 포기했다. AF 9825기는 12시 45분에 로마공항에서 파리로 향해 출발했다.
파리 공항에서 비행기를 갈아타기 전에 시간이 있으면 쇼핑을 한다는 기대가 사라졌다. 인천행 에어프랑스는 16시 25분에 파리출발 예정이다. 갈아타는 시간이 너무 촉박해서 빠른 걸음으로 한국에서 함께 출발한 가이드의 뒤를 따라갔다. 현지 사정에 어두운 그 사람이 제대로 길을 찾아가는지 의심이 되어 긴장했다. 그런데 이숙 선생님이 검색대에서 잡혔다. 가방을 열어 짐을 꼼꼼히 뒤진다. 잘 넣어둔 가위를 찾기까지 시간이 걸렸다.
비행기 안에 들어가니 다시 자리 바꾸기가 된다. 주 선생님의 중간 자리를 누군가 창 옆으로 바꾸어 주었다. 승객 중에 한국 학생들이 많다. 로마공항에서 짐을 지키느라 수고했다며 이숙 선생님이 요구르트를 주셨다. 양순태 씨와 서 교수와 셋이서 나란히 앉아서 기내에서 재미있는 공동생활을 했다. 함께 화장실에 가고 함께 음료수 마시고 운동도 하면서… 나중에는 이야기하느라 앞사람 수면을 방해했다. 덕분에 긴 시간을 지루하지 않게 보냈다.
기내식이 두 번 나왔는데 입맛이 없어 가벼운 것만 먹었다. 빵과 다른 것은 냅킨에 싸서 작은 가방에 넣었다. 기내에서 에어프랑스, 항공사의 이름이 적힌 순면의 티셔츠를 두 장을 샀다. 한 장은 다른 이가 가지고 싶어 해서 양보했다. 기내에서 판매하는 물건이 많지 않다. 뒷줄에 앉은 이들은 원하는 물건이 없어서 남은 것이 몫이 되었다.
잠을 자고 일어났더니 날이 밝아버렸다. 어두운 곳에서 갑자기 밝은 곳으로 순간 이동한 기분이 들었다. 2003년 10월 24일(금) 오전 10시 20분에 인천공항에 도착했다. 이제 일상의 시간으로 되돌아왔지만, 다시 시차에 적응해야 한다. 8박 9일간의 여정을 마치고 조금은 쓸쓸해진 기분과 고단한 몸으로 의정부행 버스에 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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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1월 3일 여행에 동행했던 일행이 수필가협회 사무실에 모였다. 각자 찍은 사진을 사람 수대로 현상해와서 서로 교환했다. 사진으로 남은 여행의 추억은 더 신선하다. 어느 분이 대접하는 맛있는 점심을 먹으며, 좋은 추억을 나눈 동지들인 양 친근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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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인혜柳仁惠
1984년 《한국수필》 봄호 수필 <우물> 추천완료
한국수필작가회 제9대 회장, 한국문인협회 이사, 수필의날 실무간사(2011~2014) 역임
현)국제PEN한국본부 자문위원, 한국여성문학인회 이사, 《계간문예》 기획위원, 한국식물연구회 이사
수필집 《나무를 읽는다》, 수필선집 《불러보고 싶은 이름》 외 9권
제18회 한국수필문학상, 제23회 펜문학상, 제11회 한국문협작가상,
제9회 송헌수필문학상, 제8회 한국문학인상 수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