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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치한 오후 김미애
(2012년 경남문학 소설부문 신인상 수상작)
깔끔하게 차려 입은 종업원 둘이서 어서오세요, 하고 넙죽 인사를 하는데 호흡이 딱딱 맞아 떨어진다. 나는 생후 10개월 된 아기를 가슴앞 쪽으로 아기띠를 한 채 주문 도와드리겠습니다, 하는 이쁘장한 젊은 언니에게로 다가갔다. 말이 언니지 한참이나 나보다 어리다. 강산이 변해도 한번은 변했을 법할 차이다. 그런데도 언니라는 이름을 갖다 붙이는 것은 나의 고질적인 말버릇이다. 식당에서 마치 이모, 하고 부르는 것처럼. 젊은 언니 등 뒤에 보드마카로 쓴 손글씨체가 예쁘고 정갈하게 여럿 커피메뉴와 그 외 사이드메뉴가 줄줄이 나열되어있는데 보고도 도통 뭐가 뭔지, 일순간 나는 눈뜬 까막눈 신세가 되어 버렸다. 커피점을 마지막으로 갔던 게 언제였던가 하고 속으로 되짚어보기까지 한다. 요즘 강산은 10년이 아니라 5년만에도 바뀌는 초스피드시대인가보다. 어쨌든 좀처럼 입은 떨어지지 않고 손글씨체를 따라 눈동자만 왔다갔다 바쁜데 젊은 언니는 내 입술만 뚫어지게 말똥말똥 쳐다보고 있다. 그 눈빛에 어서 뭐라도 주문을 해야 할 것 같은 다급함을 느끼면서도 내가 눈뜬 까막눈이라는 사실이 들킬까 그것이 더 조마조마 했다. 무언가를 열심히 생각하는 듯이, 무엇을 먹을까하고 즐거운 고뇌에 젖은 듯이 나는 연기를 해야 했다. 조마조마한 맘을 억누르며 최대한 느긋한 표정으로 한다는 게 그만 어줍잖하기가 그지없다. 프라페인지 치노인지 뭔지, 알 수 없는 것을 제외하고 그나마 귀동냥으로 익히 들은 “카라멜마키아또” 글자가 눈에 확 들어왔다. 처녀시절에 마셨던 카페라떼, 카페모카 따위의 글자 앞에 잔뜩 다른 글자들이 수식되어있었는데 그조차 알 수가 없었고 내 머릿속에선 일찌감치 아메리카노와 카라멜마키아또의 가격비교가 번개같이 치러줬다. 생각할 것도 없이 가격이 저렴한 아메리카노 한 잔을 주문하려다 나는 무슨 큰 결심을 한 듯 메뉴판을 둘레둘레 다시 쳐다보았다. 상큼한 딸기와 고소한 크림치즈가 바로구운 와플에 녹아내려 부드럽고 치즈의 리치한 맛을 느낄 수 있다고 다른 색상의 보드마카로 잔뜩 힘을 준 추천메뉴가 보였다. 그 리치한 맛이 도대체 어떤 맛인지는 알 길이 없었으나 오늘의 추천메뉴가 나 같이 맹추 같은 손님을 위한 조용한 배려 같았다. 숱한 와플과 토핑 이름만 들어도 대충 때려 맞출 것 같은 브레드를 제쳐놓고 아이스아메리카노와 크림치즈와플로 결정을 보고나니 쥐구멍에 숨었던 마음이 한결 여유를 되찾았는지 카드를 내미는 손길이 손님티를 한껏 내고 있다. 젊은 언니는 두 손으로 다소곳이 카드를 받아들었고 나는 잠자는 아기의 머리를 아주 사랑스러운 손길로 머릿결을 쓰다듬으며 모성이 강하고 자상한 엄마의 상을 고상을 떨며 연출한다. 커피와 와플은 기껏 만원도 못 미치는 가격이었지만, 혼자서 누릴 수 있는 오늘의 사치를 흐뭇해하는 와중에 불현듯 만원 한 장으로는 만원 어치 삼겹살을 사서 신랑과 함께 딱 기분 좋을 만큼 먹을 수 있는 한 끼 양이고, 만원 한 장으로 아기의 내 복을 한 장 살 수 있는 가격이며, 만원 한 장으로는 시내버스 좌석으로 왔다갔다 왕복 세 번은 너끈히 할 수 있는 가격이라고 재빨리 머리에서 셈이 되자 다시금 내심 혼자 온 것이 아까워진다. 신랑과 함께 왔다면 이 가격이 무색할 정도로 앉아서 간만의 수다로 흔히 말하는 뽕을 뽑을 수 있을 듯싶었다. 이것이 나의 한계인가보다 싶어 씁쓸한 미소를 떨치고 최대한 느긋하고 우아하게 오늘은 커피 한잔을 마시는 걸로 작정한다. 시럽을 듬뿍 넣은 커피 한잔을 들고 자리에 앉으니 그야말로 천상이 따로 없다. 기쁨과 설렘과 환희 따위가 밀려온다. 고작 이 커피 한잔에 말이다.
몇 달 전 아파트와 주택이 즐비한 우리 동네에 유명브랜드 커피전문점이 생겼다. 이름만 대면 누구나 다 알 수 있는 브랜드 커피전문점이다 보니 나는 한 번도 가보지 못한 그 가게의 커피 한잔 가격을 어림짐작하고는 여태 가보지를 못했다. 번화가도 아닌 주택가에 생긴 커피전문점이라니! 출처를 알 수 없는 생뚱맞은 기분에 분명 어수룩하고 셈이 밝지 않고 인정만 철철 넘칠 것 같은 이름 모를 점장이 일을 쳐도 단단히 잘못쳤나보다 했다. 그런데 나중에 알고 보니 요즘 새로운 마케팅 전략이 주택가에 커피점이 비집고 들어오는 것이란다. 어느 날 갑자기 커피점이 생긴다고 때리고 부수고 망치질하고 시멘트를 바르고 난리를 치길래 시덥지않는 커피숍 하나 들어오나 했더니 허름했던 공터에 뚝딱 아름다운 유리성 하나가 나타났다. 간판이 오르는 그날에도 나는 그 자리에 있었다. 나는 커피점 입구에 간판이 떡하니 서는 날 아카시아 향에 취한 듯 아찔하고 몽롱했다. 간판에서 내뿜는 그 고급스러움과 도도함에 압도되어 나는 그만 꼬리를 살랑살랑 흔드는 한 마리의 개가 되고 말았다. 잊고 있었던 친구를 길거리에서 만난 것처럼 나에게 밀려오는 반가움과 옛 음악을 다시 들은 것 같은 진한 향수가 온 몸을 칭칭 감았다. 혹은 신선하고 그 탱탱하고도 촉촉한 탄력감! 그도 저도 때려치우고 직접적으로 이야기를 한다면 저 성에 속하기만 하면 동네를 어슬렁거리던 한 마리 잡종 개에서 나의 신분이 있어 보이는 뭐 그런 아우라를 내뿜는 여자로 등극 될 것만 같은 뭐 그런 낭만적인 공간! 카페에 앉아 넘쳐나는 시간을 어떻게 주체하지 못하고 마냥 쓰디쓴 에스프레소를 마치 달고도 단 꿀물마냥 홀짝이며 맛을 달관한 숙녀처럼 능숙하게 커피 잔을 올리고 내리던 손동작에 내 청춘은 그게 멋이라고 자부했다. 그러나 나는 에스프레소 커피 한잔을 다 마셔 본 기억이 없다. 너무도 썼기 때문이다. 물론 소태처럼 쓴 에스프레소를 좋아하지도 않았다. 그런데도 에스프레소를 고집한 까닭은 니들은 모르는 커피 맛을 나는 안다는 양 주위 사람들과의 차별을 의식적으로 두고 싶었다. 내가 에스프레소를 주문을 한다 치면 커피숍 주인이나, 아르바이트생들은 에스프레소가 맞냐고 재차 확인을 한다. 나는 느리고 또박또박하게 단호하게 네, 라고 짧게 대답을 하고 그들은 그런 나를 한번 더 유심히 바라보며 주문을 확인하고 돌아선다. 이런 상황들이 마치 에스프레소는 아무나 범접할 수 없는 세계처럼 극소수들만이 즐기는 커피로 내게 각인시켜 주었던 것이다. 그 차별은 참으로 달콤한 차별이었다.
아무튼! 그 커피전문점 간판을 본 날부터 나는 지독한 열병을 앓고 끙끙대었다. 나는 어떻게든 저 안의 사람들과 함께 어우러져 50평이 넘는 거실 벽에 걸어두어도 좋을 만한 한 폭의 그림이 되어야 했다. 10개월짜리 아기가 울음을 터뜨리고 일어나기 전에 스피드하게 밥을 미역국에 말아 뚝딱 비워내고, 푸석해진 긴 머리를 돌돌 말아 올려 질끈 묶은 내게서 낭만이라고는 찾으래야 찾을 수 없는 내가 커피점 안으로 한 발짝 들여놓는 순간, 갓 내려진 구수한 커피 향이 봄바람처럼 안겨올 때 달달한 시럽처럼 달달한 미소를 지으며 고품격이 될 것 같았다. 다시금 타이머신을 타고 나는 긴 생머리의 대학생이 되는 것이다. 장을 보고 오다가도 눈길이 그곳에 머물고, 나의 신경은 커피 향을 따라 노고노곤해지다가 똥마려운 강아지마냥 잠시 낑낑대며 집으로 돌아오길 벌써 몇 차례였다. 베란다 창을 열기만하면 그곳으로 출입하는 이들의 모습이 고층임에도 불구하고 출입하는 아가씨가 든 핸드백이 분홍인지 가죽인지, 남자가 구두를 신었는지 운동화를 신었는지 그조차도 다 보이다니 실로 놀라운 일이었다. 그 순간만큼은 나는 6백 만 달러 사나이가 되는 것이다. 그들은 미소를 지으며 출입을 하고, 나는 20층에서 그들을 부러워하다 고개를 돌려야하는 김치냄새 폴폴 풍기는 아줌마가 되었다. 전세대출금 이자와 다달이 들어가는 보험금과 아기 밑으로 들어가는 분유 값이며 기저귀 값 그 외 등등, 그리고 차량유지비, 거기다가 시부모님과 친정 부모님께 드리는 약소한 용돈이며 점점 오름세를 타고 있는 세금고지서들이 머릿속에 포화상태로 머물러 터지기 일보직전이라 나는 천 원짜리 지폐 한 장에도 고뇌하지 않으면 안 되는 아줌마였다. 2년에 한 번씩 돌아오는 전세계약 만료일에 전세금을 올려주느냐, 아니면 이삿짐을 싸고 또다시 거리를 헤매며 가진 전세금에 알맞은 보금자리 찾기에 혈안이 되든지 선택의 폭은 좁았다. 그러니 커피 한잔 가격이 혼자만의 사치로 끝내기에는 아까운 돈이 되고 만 셈이다. 커피전문점의 문턱은 한없이 높아 있었다. 그렇게 베란다에서 하염없는 커피점바라기가 되어 탈수 된 빨래를 탈탈 털어 내 기분과 함께 건조대에 널기를 또한 몇 달째였다. 나는 베란다 유리창문과 커피점 쇼윈도로 이중 차단된 공간에서 멀어져 간 세월을 끈끈하게 핥고 있었다.
-여름휴가는 잘 다녀오셨나요? 애기 어릴 땐 친정휴가가 최고죠. ^^ 생일축하해요, 좋은 하루되시고요~!
얼마 전에 아기보험을 가입한 보험설계사로부터 문자가 와서야 오늘이 내 생일이었음을 뒤늦게 자각했다. 순간 어찌나 고맙든지 나는 내 생일날을 되뇌다 고추냉이를 씹은 듯 코끝이 시큰거려 콧물을 흘릴 뻔했다. 뒤이어 신랑에게서 축하메시지가, 친정엄마에게서 축하전화가, 그리고 그 뒤에 몇몇 인터넷 쇼핑몰에서 생일을 축하한다는 짧고 사무적인 내용을 담은 메시지와 할인쿠폰이 날아들었다. 생일이 대수인가. 이제 생일이라는 단어에도 심장이 요동치지 않는 나이가 되었단 사실에 가슴이 시큰거렸다. 그 때, 머리에서 희망의 빛 섬광이 번쩍였다. 커피전문점! 나는 베란다를 향해 냅다 질주를 하고서는 창 너머로 내려다보이는 커피전문점을 바라보았다. 유리창 너머 푸르디푸른 창공에 내가 떠다니고 있었다. 두 발은 무게를 측정할 수 없이 가볍고 까치발을 한 나는 둥글게, 둥글게 원을 그리며 웃음이 멈추질 않는다. 그렇게 찾은 커피점이었다. 나는 오늘만은 김치라는 둥, 멸치볶음이라는 둥 그런 단어와는 상관없어 보이는 크림치즈와플과 아이스아메리카노 한 잔으로 육아와 가사에 찌든 아줌마가 아니라 자상하고 사랑스러운 엄마와 아내의 표상이 되기로 작정한다. 차별된 위치에서가 아니라 적어도 여기 커피전문점을 찾은 손님들과 동등한 위치에서 나를 바라봐주기를 원하며 나는 몸짓하나, 표정하나에도 여간 신경을 쓰는 게 아니다. 그러면서 또 다른 차별을 상상한다. 커피점에 있는 모든 사람들이 나를 보고서 소위 아줌마라는 의미에서 차별된 나를 바라보는 짜릿한 상상을 한다. 나는 그 생각만으로도 가슴이 마구마구 요동치며 자꾸만 웃음이 나고 몸에 힘이 들어가는 것이 묘하게도 기분을 상쾌하게 만들어 잠잠히 참고 있기가 힘들었다. 이 순간을 나 혼자만 알고 넘기기가 아까워 새근새근 잠든 아기를 품에 안고 온화한 표정으로 미소를 머금으며 주위 배경이 커피점이라는 것을 누가 봐도 알 수 있도록 구도를 잡은 뒤 핸드폰으로 사진을 찍어 신랑에게 전송까지 했더랬다. 그것만으로도 모자라 나는 카카오스토리에 지금의 나의 일과를 유포하기로 한다. 몇 분 뒤 나의 핸드폰은 오랜만에 신나게 울어댔다. 유빈맘은 참으로 내가 부럽단다. 유빈이가 너무도 나부대는 통에 요즘은 도무지 외출하기가 겁이 난다는 것이었다. 지윤맘은 커피점에 앉아 여유를 부리고 있는 내가 멋지다고 했다. 태민맘은 다음에 자기를 꼭 데리고 같이 여기를 오자고 했다. 나의 차별된 위치를 확인하는 순간이었다. 나는 여러 맘들의 댓글을 읽으면서 오늘의 사치를 아주 천천히, 아주 우아하게, 아주 낭만적으로 즐긴다. 역시 벼르다 찾아온 보람이 곱절로 있었다. 아기는 웬일인지 이런 나의 기분을 잘도 알고 오늘따라 더욱 천사 같은 표정으로 콜콜 잠들어있다. 달콤 쌉싸래하고 구수한 아이스아메리카노의 맛은 일품이다. 또한 부드러운 치즈가 단연 돋보이는 와플의 맛은 더욱 일품이다. 탁월한 선택이었다. 아기는 콜콜 잘 자고 커피와 와플의 맛은 이다지도 좋으니 이보다 더 행복한 요즘이 있었을까. 리치한 맛은 이런 맛이리라. 나는 리치한 커피와 리치한 치즈가 녹아있는 리치한 와플을 리치하게 즐기며 리치하게 앉아 리치하게 사색에 잠긴 듯 리치한 표정으로 리치하게 주위를 둘러본다. 리치함이 풍만해 감당이 되지 않아 행복해 죽겠다는 표정을, 행복함이 옆 테이블마다 철철 흘러넘치도록. 주택가에 생긴 커피점이라 그런지 여느 커피점과 분위기가 조금 달랐다. 점심시간을 넘긴 오후 시간에 아기 엄마들이 더러 있어 동행한 엄마들끼리 재미난 수다를 나누고 있는 듯 했다. 모두들 어깨와 등에 한명씩 아기를 들쳐 메고서도 수다의 즐거움은 여간 재밌는 것이 아닌가보다. 그들의 웃음이 내가 앉은 자리까지 날아드는 걸 보니. 그리고 군데군데 나뭇가지 사이에서 탐스럽게 영근 감을 찾는 것처럼 풋풋하고 상큼한 연인들이 있었다. 나는 한참이나 이들에게서 눈을 뗄 수가 없었다. 그렇다고 해서 마냥 넋 놓고 볼 순 없다. 그건 자존심에 살짝 멍드는 일이다. 슬쩍슬쩍 보는 듯 보지 않는 듯 무심한 표정으로 책을 주르르 훑어보듯 훑어봐야 한다. 그러기를 여러 번 하는 것이다. 그 외에도 사뭇 진지하고도 열정적으로 무언가를 작성하는지 노트북과 씨름하는 모습에 살짝 작은 시샘과 부러움이 뒤섞인 감정을 불러일으키는 젊은 청년 몇몇을 발견했고, 허리를 비스듬히 소파에 기대에 신문과 책을 천천히 넘기며 간간히 하얀 이가 드러나도록 웃어 보이는 이도 보았다. 나도 책을 가져왔더라면 좋았겠다 싶다. 커피 한잔을 책을 보면서 즐긴다는 것. 이보다 더 여유로움을 극적으로 표현할 순 없을 것 같다. 아! 얼마나 여유로운 표징인가. 나는 못내 아쉽고 아쉬웠다. 나의 옆 좌석에 앉은 부인은 50대 쯤 되어 보이고, 여름인데도 시폰 스카프를 아주 멋지게 소화해 낸 것이 멋쟁이임을 단박에 알 수 있었다. 부인과 마주앉은 여자 분은 나의 친정 엄마와 시어미니와 비슷한 동년배로 보였는데 머리부터 발끝까지 단정하게 차려 입은 모습이 내가 아는 중년의 엄마의 모습과 달라 낯선 충격을 받으면서도 나는 나의 중년의 모습이 저러하기를 소망도 해보았다. 아무리 둘러봐도 슬리퍼를 질질 끌고 들어오거나, 머리를 대충 묶고 왔다거나, 천원에도 절절 맬 것 같은 이는 없어 보인다. 역시 이곳은 고품격으로 승화시켜 주는 곳이 틀림이 없다. 이런 무리 속에 내가 속해 있는 것이다. 아, 나는 저들과 한 무리가 되어 한 폭의 수채화가 되는 것이다. 쇼윈도에 진열된 마론 인형처럼 갖고 싶은 수채화, 리치한 수채화. 아쉽게도 우아한 손가락을 연출할 손잡이가 없는 빨대가 꽂힌 투명 휴대용 컵이었지만 그래도 좋았다. 그 컵은 그 자체만으로도 자유분방과 여유를 의미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아기는 나의 가슴팍에 얼굴을 묻고 반쯤 벌어진 입으로 중간 중간 거칠게 숨을 몰아쉬면서도 30분 째 잠들어 있었다. 아기띠를 한 채 커피를 마시고 있는 내 모습을 상상하니 휴대용 컵과 달리 여유롭지 않아 보인다. 그래, 가방에서 손수건 두 장을 꺼내 소파에 깔고 그 위에 조용히 아기를 내려 등받이 쪽으로 몸을 바짝 돌려 눕혔다. 아기는 움찔 놀란 듯 팔을 허공에 크게 허우적거렸다. 나는 재빨리 잡으면 부서질 것 같은 아기의 그 작은 손을 잡고 가슴언저리를 가볍게 토닥토닥 거렸다. 모성애가 철철 넘치는 이 제스처가 나는 기가 막히게 사랑스럽다. 지금 이런 제스처를 누군가 봤다면 그도 분명 기가 막히게 사랑스러운 풍경으로 여겼을 테다. 이런 추측과 상상은 나에게 무한한 기쁨으로 되돌아왔다. 그리고 다짐한다. 오늘은 이 커피점 안에서 끝까지 사랑스럽고 우아한 엄마의 모습으로 남으리라고. 아기는 사랑스럽게 다시금 천사가 되어 새근거린다. 아기의 손을 놓고 가벼운 숨을 토해내며 고개를 들다 저 멀리 창가에 앉은 청년들과 눈이 마주쳤다. 그들의 눈빛은 참으로 따뜻하다. 역시 나의 추측이 들어맞은 게 틀림이 없다. 나는 어깨가 더욱 으쓱해지고, 눈은 잠시 갈피를 잃어 방황을 했지만 싫지 않는 저 눈빛에 더욱 자연스러운 여유를 연출해야 했다. 나의 행동은 포장이 잘된 상자마냥 자연스러움에 가까워져 갔다. 하지만, 그와 달리 가슴은 또 왜 이리도 두방망이질을 해대는지 심장이 터질 것 같았지만 이 또한 싫지 않는 현상이었다. 아니, 오히려 반가운 느낌이 드는 이 요상한 감정을 오래도록 묶어 두고 싶을 정도였다.
까르륵! 45도 각도로 꺾어진 자리엔 커플이 앉아 있었다. 흘러내리는 펌이 아주 자연스럽게 잘 빠진 굵은 웨이브가 잘 어울리는 여자는 여자인 내가 봐도 참으로 사랑스러울 정도다. 여자는 여성미가 풀풀 풍기는 길이가 긴 민소매 블라우스에 파스텔 색이 무척이나 상큼해 보이는 스키니를 입었다. 나 소싯적에는 왜 저런 게 없었나 싶어 약이 오를 만큼 옷이 무척이나 잘 어울리는 여자였다. 그녀처럼 내가 똑같이 따라 입는다 해도 이미 내 몸뚱이는 예전의 그 몸이 아니라는 게 그녀에 대한 내 처지가 한 수 낮아지는 것 같아 더욱 속상해지려고 했다. 그런 그녀를 바라보는 남자는 핸섬하기가 이를 데가 없고, 탄탄하게 균형 잡힌 근육질의 팔뚝이 움실거릴 때마다 나는 괜시리 온몸의 털들이 주뼛주뼛 긴장을 하며 주책을 떤다. 아, 지나버린 10년의 세월을 돌려달라는 말이 절로 내뱉어진다. 이 커플에게 신이 허락할 수 있는 은혜란 은혜는 모두 허락한 것 같아 훼방을 놓고 싶어지는 맘이 나조차 생각하기에도 참으로 얄궂다. 나는 까닭도 없이 처음 보는 커플을 향해 무턱대고 고개를 내밀며 비집고 나오는, 근원지를 알 수 없는 이 질투가 얄궂다 싶으면서도 마치 항상 나와 함께 하고 있었다는 듯이 흥미롭고 익숙하다. 나는 질투의 여신 헤라가 되어 사모스 섬에 있는 헤라의 신전에서 인간을 내려다보듯 그렇게 그들의 사랑을 지켜보기로 한다. 신은 공평한 존재이니 절대로 모든 것을 다 채워주지 않았을 빈틈을 나는 승냥이가 되어 찾는다. 물론 나의 품격을 최대한 포장을 하고 나는 여전히 사랑스럽고도 사랑스러운 한 아기의 진한 모성을 가진 현모로 오늘의 사치 또한 놓치지 않는다. 아메리카노의 구수하고 쌉싸름한 맛과 향이 입안을 가득 채운다. 여자와 남자의 얼굴에서 웃음이 떠나지 않았다. 그녀는 도도하게 오똑 솟은 콧날처럼 도도한 표정으로 벚꽃 같은 웃음을 지으며 소파에 기댄 채 남자의 말을 듣고 있었고, 남자는 온 몸을 그녀에게 집중한 채 달빛 같은 눈빛으로 그녀의 행동 하나하나 놓치지 않겠다는 굳은 결의 같은 도도함으로 그녀에게서 눈을 떼지 못하고 있었다. 간간히 그런 눈빛이 부담스러운 건지, 살짝 튕기는 건지 여자는 새침하게 남자의 시선을 피하고서는 커피점 안을 빙 둘러본다. 그러다가 나와 눈도 몇 번 부딪히는 바람에 나는 도둑질하다 걸린 사람처럼 깜짝깜짝 놀라곤 했지만 나 역시 그녀처럼 우연히 눈빛이 마주친 것으로 가장하고 고개를 숙이며 시선을 거두곤 했다. 남자는 시시각각으로 여자를 즐겁게 하기 위해 여러 모션을 간간히 곁들이며 심심치 않게 이야기를 주도했다. 그러더니 갑자기 여자가 앉은 소파로 자리로 옮겨 그녀와 핸드폰을 쳐다보며 무척이나 즐거워했다. 나는 여자와 남자 중에서 특히나 여자의 모습을 민감하게 바라보고 있는 나를 발견했다. 그녀를 자꾸 바라보고 있노라니 나는 질투심의 근원을 알아버리고 말았다. 저 탱탱하고도 뽀얀 피부가 나와 달리 잠자고 있는 우리 아기와 닮았고, 웃을 때마다 양 볼에 폭 파이는 보조개가 너무도 사랑스럽다. 그러니 어찌 사랑하지 않고 견딜 수 있을까 싶다. 나는 싱싱한 그녀가 부럽다. 그녀를 바라보는 따뜻한 남자의 시선도 부럽다. 커피와 무척이나 잘 어울리는 그들의 그림이 나는 샘나도록 부러워 속이 쓰릴 지경이다. 내가 속하지 않는 풍경에서도 그들만으로도 아름다운 그림이 된다는 것이 약이 오른다. 마치 커피점의 소파도 테이블도 그들을 위한 소품에 불과한 것 같고, 커피점 인테리어도 애당초 그들을 위해서 맞춤공사를 한 듯이 어쩌면 그렇게도 똑떨어지는 셈처럼 군더더기 없는 깔끔한 그림처럼 보이는지. 나는 그것이 더 속이 쓰리게 부럽다. 나도 분명 연애를 했을 터인데 뚜렷이 기억나는 것들이 몇 없다는 것이 기가 막힌다. 결혼 후에도 신랑과 커피점을 갔던 기억이 신혼을 제외하고는 그동안 산다는 핑계로 전무했다다는 것도 기가 막히게 서운했다. 훈훈한 봄바람 불던 시절도 가버렸고, 뜨겁도록 열망하던 시절도 가버리고 이제 추운 시절만 남았다는 사실에 서리를 맞은 듯 가슴이 차가워 눈이 시리도록 울고 싶어진다. 나는 무결점으로 똘똘 뭉친 따뜻하고 뜨거운 커플에게서 심한 패배감 따위를 느낀다. 신은 불공평한 존재인건가, 아니면 신이 실수를 했던 것일까? 그도 아니면 저 커플만을 지독히 사랑해서 그들에게는 모든 은혜를 후히 주셨던 것일까. 나는 너무도 화가 치밀어 오른다. 나를 사랑하사 내게도 후히 은혜를 베풀어주시지, 왜 내게는 이렇게도 인색하셨을까싶어 눈물이 찔끔이라도 흘려야 신이 나를 한번쯤 돌아봐 줄 것 같다. 부모덕을 보는 친구들과 달리 그저 성실한 신랑만 보고 결혼했던 탓에 여지껏 전세살이를 전전하는데, 지난달에 면사포를 쓴 친구는 32평에서 신접을 차렸다했었나? 결혼하자마자 식은 죽 먹기보다 더 쉽게 임신도 재깍 잘하는 친구들 틈에서 나는 6년을 꼬박 기다리며 가슴에 상처란 상처로 도배를 하다시피 하지 않았던가. 한번 서운한 감정을 열고 보니 그 안에는 작은 도랑이 아니라 큰 강이 흐르고 있었다. 나는 엉뚱하게 커플에게 뺨맞고 친구들에게 화를 내는 격이 되고 말았다. 그래본들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싶어 깊은 한숨으로 가슴에 내린 서리들을 잊기로 한다. 그래, 오늘의 목적을 잊지 말자. 나는 지금 최고로 우아하고, 사랑스럽고도 사랑스러운 아기의 엄마로, 김치 냄새가 아닌 크림치즈가 리치한 와플을 즐기기로 하지 않았던가! 나는 본연의 자리로 되돌아와 리치한 표정을 짓기로 한다. 입가가 본의 아니게 조금 실룩거렸지만 아무도 보지 못했을 것이다. 와플을 입으로 베어먹을까, 아니면 손으로 쪼개 먹을까를 두고 나는 잠시 고민한다. 입으로 베어먹는 것은 그다지 낭만적이지 않다는 생각이 든다. 나는 두 손으로 와플을 가볍게 쪼갠다, 그때! “으아앙응앙응앙, 아아아앙, 으아아아앙!” 아기는 마치 천 년 전에 억울하게 마법에 걸려 잠들었다 깨어난 것처럼 울음보를 터뜨리며 잠에서 거칠게 깨어나고 있었다. 집에서는 한 번도 울음을 터뜨리며 깬 적이 없던 터라 나는 놀라서 하마터면 컵을 놓칠 뻔했다. 아기는 목청이 다 보이도록 크게 울어대며 손과 발은 잠시도 가만히 있지 못했다. 얼마나 바동대며 소란을 떠는지 누워있던 소파에서 굴러 떨어질 뻔 했다. 너무 울어대서 눈물콧물로 얼굴이 범벅이 되어 아기천사에서 떼쟁이 악마로 점점 변해가고 있었다. 그때부터 낭만과 여유는 깡그리 짓밟혀져 나의 목적이 빗나가고 있음을 나는 안절부절했다. 아기의 울음소리는 거의 신경질적이었다. 나는 아기를 품에 안고서 최대한 빨리 울음을 진정시키기 위해 어르고 달래기를 수차례 하느라 이마에 땀이 송골송골했다. 온몸은 삽시간에 땀으로 젖고 있었다. 커피점 안에 있는 수많은 시선이 아기와 내게로 꽂혔다. 그 시선은 계산된 시선이 아니었던지라 나는 당혹스럽고 부끄럽기까지 해서 아기의 입을 틀어막고 싶은 심정이었다. 그러나 아기의 입을 틀어막는다는 것은 우아하지 못한 엄마의 모습이려니와 시선들이 잠시도 내게서 벗어나지 않으니 나는 더욱 부드러운 목소리로 아기를 어르고 달랜다. 그러나 아기는 속수무책으로 빽빽 울기만 해 울음은 소음공해로 변질되어 아기와 나를 두고 싫은 소리를 청춘남녀 테이블에서 불거져 나왔다. 그러나 어떻게 내가 찾아온 커피점이었던가. 나는 오랜만에 찾아온 나의 자유와 여유를 쉽사리 포기할 수가 없어 그들의 군소리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소파에서 일어나 아기를 품에 안고 몸을 흔들며 아기를 어화둥둥 달랬지만 아기는 안긴 채로 팔다리를 사정없이 뻗대기 시작했다. 팔은 점점 아파오고 이마와 등에서는 땀이 비 오듯 하고 이제는 낭만이니 여유이니 하는 소리조차 목구멍에서 삼켜졌다. 급기야 나는 소파에서 멀찍이 떨어져 좌우로 왔다갔다 걸으며 아기를 달랜다. 아기는 여전히 무엇이 그리도 서러운지 닭똥 같은 눈물을 뚝뚝 흘리며 악을 쓰고 우는데 하필 그 찰나에 그 커플과 눈이 마주쳤다. 여자는 정말이지 나에 대한 동정의 눈빛이라든가, 안타까워한다든가 하는 눈빛이 아니라 거의 경멸에 가까운 냉혹한 눈빛이었다. 그 서늘한 감정에 나는 아기를 던져버리고 도망이라도 치고 싶어지는 심정이다. 그렇게 아찔한 난리를 10여분을 치르고 나서야 아기가 배가 고픈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나는 기저귀가방에서 젖병과 보온병, 찬물이 든 물병을 꺼내고, 휴대용 스틱분유를 두 개 집어 들었다. 바동대며 우는 아기를 한 손으로 받쳐 안고 나는 어렵사리 보온병의 따뜻한 물을 젖병에 붓고 스틱분유를 입으로 찢어 젖병에 탄 후 찬물을 부어 젖병 눈금 200에 물높이가 가도록 맞추고 있을 때, 아이의 거센 발길질에 젖병은 통통통 튀며 땅으로 굴렀고 사방으로 분유가 튀었다. 나는 악 소리도 내지 못하고 망연자실하여 젖병을 주워들지도 못하고 가방을 싸들고 그 자리를 박차고 나가지도 못하고 악다구니를 쓰며 우는 아기를 내려놓지도 못하고 안고만 있었다. 눈가에 눈물이 핑 돌아 하마터면 눈물을 쏟을 뻔했는데 아랫입술을 꾹 다물고 나는 용케도 버텼다. 커피점의 젊은 언니가 뛰어와 대걸레로 바닥을 닦고 젖병까지 친절하게 씻어 테이블 위에 올려 주었다. 그 사이 나는 우는 아기를 데리고 테라스로 나가 아기를 달래느라 또 한 번의 전쟁을 치르고 있었는데, 갓 걸음을 시작한 아기의 손을 잡고 테라스를 뒤따라 나온 아기엄마가 내게 유아치즈를 건넨다. “아기가 지독한 꿈을 꾸었나 봐요. 가끔 저희 애도 심하게 우는데 정말 감당이 안 되죠. 치즈라도 먹여서 달래보실래요?” 나는 어찌나 그 말이 고맙던지 손이라도 잡아주고 싶었는데, 손을 잡았다간 눈물을 쏟아버릴 것 같아 애써 외면했다. 나는 아기엄마가 건네준 치즈를 잘게 찢어 아기의 입에 살짝 밀어 넣어줬다. 그랬더니 먹지 않겠다고 머리를 이리 돌리고 저리 돌리며 바둥바둥 용을 쓰고 앙칼진 소리로 짜증을 내더니 아기 울음이 일순간 멈췄다. 등골이 오싹했다. 나는 아기가 너무 울다가 치즈를 잘못 삼켜서 애가 잘못이라도 된 거라고 판단했다. 겁에 질린 나는 숨조차 제대로 쉴 수 없었다. 나는 얼른 아기를 품에서 떼어내어 아기얼굴을 확인해야 했다. 그 짧은 촌음에도 치즈를 주고 간 아기엄마가 그렇게도 원망이 될 수가 없다. 그런데 허겁지겁 아기를 내려 보았더니 나의 예상과 달리 아기는 너무도 평온한 표정으로 열심히 입술을 오물거리며 혀를 놀리고 있지 않는가. 그 뿐만이 아니라 손가락까지 아주 달게 쪽쪽 빨고 있었다. 기가 막히고 코가 막힌다는 상황이 이것을 두고 하는 말이었나 보다. 치즈가 먹고 싶었던 까닭으로 자다 일어나 이처럼 떼를 쓰고 울었다고 생각하기에는 너무 억측스러운 이 사태가 나는 그저 울음을 그친 것만으로도 신통방통했다. 아기는 오물거리며 놀리던 입을 멈추고 손가락을 입에 물고서는 나를 빤히 쳐다보고 있었다. 무척이나 간절한 눈빛으로 어서 치즈요, 하고 말하는 것 같은 눈빛에 나는 그만 실없는 웃음이 빵 터져버렸다. “그래그래, 옜다 치즈!” 치즈를 잘게 찢어 아기 입으로 가져가기도 전에 아기는 손가락을 빼고 입을 제비처럼 벌리고 생글생글 웃고 있었다. 어찌나 그 표정이 귀여운지 나는 양볼을 살짝 깨물어주고 싶은 충동을 느낀다. 아기는 치즈를 받아먹고는 오물조물 요 작은 입술을 요리조리 삐죽인다. 기분이 좋은지 흥얼흥얼 가락이 담긴 옹알이를 해대며 고개와 몸을 앞뒤로 흔들면서 손뼉까지 쳐댄다. 아기를 품에 안고 실내로 들어오다 치즈를 건네준 아기엄마와 눈이 마주쳤다. 아기엄마가 눈빛으로 인사를 하는 통에 나도 덩달아 얼떨결에 인사를 하는데 어찌나 미안하던지 차마 환하게 웃지를 못했다. 어설프게 엉거주춤 고개를 까딱거리며 미소를 지어보였더니 아기엄마는 고개를 또 한 번 끄덕끄덕하더니 자신이 더 환하게 웃는 게 아닌가. 나의 겉모습이 실오라기 하나 없이 발가벗겨지는 기분이었다. 내가 그렇게도 꾸미고 꾸미던 겉포장을 아기엄마는 진즉부터 본디 갖고 태어난 사람처럼 여유를 부리는 것 같았다. 고수 앞에서 나의 겉포장은 쉽게 가짜라는 게 들킬까봐, 아니 들켰을까봐 살짝 불안하고 부끄럽다. 나는 자리에 돌아와 주섬주섬 테이블 위에 널린 수유용품들을 챙긴다. 그리고 가방을 들고 자리를 뜨려다가 끝끝내 뜨지 못하고 다시금 무거운 엉덩이를 소파에 붙이고 말았다. 갑자기 차갑고 싸늘하게 바라보던 그 여자, 신의 축복을 제 몸에 다 달고 태어난 것 같았던 그 굵은 웨이브의 여자가 생각나 나는 이처럼 얄미울 수가 없다. 그 커플은 여전히 깨가 쏟아지듯 즐거워 보이는데 찬물이라도 한바가지 퍼부어 버리고 싶은 심정이 든다. 특히나 저 굵은 웨이브가 다 풀어지도록 여자의 머리에 거침없이 퍼부어 버리고 싶다. 나는 소파에 앉아 차갑고 냉정한 눈빛으로 그녀를 쏘아 보았지만 그녀는 나의 이런 눈빛을 알 리가 없다. 그저 시시덕거리기만 할 뿐이다. 나는 아수라가 저 커플 사이에 개입하면 참으로 고소할 것 같단 생각을 했다. 그러나 아수라 따위는 없을지도 모른다. 그래, 또 이래본들 또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싶다. 나는 절반 쯤 남은 커피와 쪼개다 만 와플을 입에 물었다. 아기는 소파에 앉아 흥얼흥얼대며 내내 방글거리는데 조금 전의 그 아기가 이 아기가 맞나 싶다. 나는 아기의 머리를 쓰다듬는다. 이 손길은 커피점에 들어와 주문을 하던 그 손길과는 다른 손길이다. 이 손길은 치즈를 준 아기엄마와 닮은 구석이 있는 손길이다. 그 생각이 스치자 순간 안도감이 밀려든다. 아기는 나의 손길에 더 신이 나서 흥얼흥얼 옹알이를 더 해대며 테이블을 가락을 실어 두드려댄다. 그래, 이 즐거운 옹알이를 듣고 있노라니 나는 불같이 끓어오르던 질투가 사라졌음을 알아챈다. 내게는 비록 봄도 여름도 지나가고 없지만 가을이 왔음을 깨닫는다. 지금은 가고 다시 오지 않을 시절이겠지만 분명, 내게도 있었던 시절이었고, 나는 그것을 또 즐겼을 것이고, 그것을 통해 나는 아름다웠을 테다. 그 커플의 여자처럼. 그래, 신은 공평한 존재다. 누구에게만 오는 봄이 아니고 누구에게나 봄을 신이 준 것이 분명하다. 봄이 오고 여름이 가면 가을이 오는 것이 순리가 아니던가. 이번에는 이 생각이 드니 그 사랑스럽고도 싱그럽던 커플이 애처롭다. 얼마나 많은 만남을 반복을 할지, 또 아파할지 그들은 지금은 알 리가 없다. 물론 이 커플이 끝까지 시시덕거리며 행복하게 해피엔딩이 될 지도 모르겠지만 그 끝이 바로 또다른 시작으로 통하는 문이라는 걸 이제 나는 안다. 그리고 내가 겪고 있는 이 지독하고 행복한 전쟁을 그녀도 피해 갈 방도가 없음을 안다. 그녀가 탁란조 뻐꾸기 탈을 쓴 인간이 아니라면 말이다. 그녀라고해서 별 볼 일이 생기지는 않을 것이다. 매미도 끝을 향해 내달릴 때 더 뜨겁게 울어 여름을 장식하고, 장미도 지기 전이 더 아름답지 않던가. 나는 이제 그 애처로운 여자가 남 같지가 않다. 그녀에게서 지난 나의 계절을 본다. 오늘 저녁에는 돼지고기를 숭숭 썰어 넣고 김치찌개를 보글보글 끓여 신랑과 맛나게 먹어야겠다. 그리고 식후에는 아기를 품에 안고 신랑과 함께 산책을 나와 길거리 커피자판기에서 커피 한 잔 뽑아 들고 별도 빛나지 않는 텅 빈 밤하늘을 지키는 달이라도 구경을 해야겠다. 언젠가 내게도 ‘비 오는 세월엔 돌도 자란다’는 시절이 올 거라 믿는다. 알토란하게 지금처럼 천 원짜리 지폐 한 장이라도 쪼개 쓰다보면 작은 물꼬가 거대한 기세를 몰고 와 정말 쨍하고 햇볕 드는 날이 오겠지. 그 때가 되면 32평에 신접을 차렸던 그 친구는 아마도 죽을 때까지 이 기분을 모를 테다. 신랑과 내가 망망대해를 함께 지나온 그 기분을. 쇼윈도 밖으로 소낙비가 갑자기 쏟아진다. 그리고 커피점 안은 소낙비에 어울리는 감미로운 음악소리로 귀를 즐겁게 한다. 아, 나는 가슴속이 뜨겁게 채워오는 이 감정을 뜨겁도록 반겨준다. 얼음이 녹아 커피 맛을 잃어가는 거의 바닥을 드러낸 커피를 마시고 있으면서도 나는 리치한 맛을 느낀다. 식어버린 와플 조각에서도 나는 리치한 맛을 느낀다. 오늘은 정말 리치한 오후를 나는 보내고 있다.
-끝-
작가소개
김미애
* 1979년 부산에서 출생 * 창녕 남지에서 성장(아직 친정집은 남지에....) * 독학사 학위 취득 * 한국방송통신대학교 국어국문학과 재학 중 * 경남소설가협회 회원 * 현재 창원에 거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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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최근에야 2012년 경남문학 소설부문 신인상 수상자 김미애 씨가 남지사람인 걸 알았습니다.
부산에서 출생해서 남지로 이사와서 성장해서 학교도 남지서 다녔다고 합니다. 친정도 남지 대신동이랍니다.
소설가 한 분이 탄생되어 너무 반갑고 고마왔습니다.
창녕 출신 문인이 또 한 명 탄생하니 그저 축하의 박수를 보냅니다. 회원 여러분 격려해 주십시요.
얼마전에, 이 글 "리치한 오후"를 다 읽었습니다.
근데, 리치한 오후가 분명히 무슨 뜻인지 모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