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생으로 향하는 길♡
25.03.23(일)
성경: 마가복음 10장 17~22절
찬송: 311, 254, 255, 258
설교: 이 경준 목사님
예수께서 길에 나가실새 한 사람이 달려와서 꿇어앉아 묻자오되 선한 선생님이여 내가 무엇을 하여야 영생을 얻으리이까?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가 어찌하여 나를 선하다 일컫느냐? 하나님 한 분 외에는 선한 이가 없느니라. 네가 계명을 아나니 살인하지 말라, 간음하지 말라, 도둑질하지 말라, 거짓증언 하지 말라, 속여 빼앗지 말라, 네 부모를 공경하라 하였느니라. 그가 여짜오되 선생님이여 이것은 내가 어려서부터 다 지켰나이다. 예수께서 그를 보시고 사랑하사 이르시되 네게 아직도 한 가지 부족한 것이 있으니 가서 네게 있는 것을 다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주라 그리하면 하늘에서 보화가 네게 있으리라 그리고 와서 나를 따르라 하시니 그 사람은 재물이 많은 고로 이 말씀으로 인하여 슬픈 기색을 띠고 근심하며 가니라.(마가복음10:17~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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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과 같은 수렁에서 기적같이 빠져나와 여러분께 다시 말씀을 전하게 되었습니다. 갑자기 닥쳐온 사고로 3개월 동안이나 혼수상태에 빠져있었습니다. 여러 번의 뇌수술을 받은 후에 이전의 기억력을 되찾았고 후유증 없이 회복되었습니다. 모두가 지극하신 하나님의 은혜였습니다. 그리고 여러분의 많은 기도의 힘이 나타난 것이기도 합니다. 특히 곁에서 몸과 마음을 상해가며 고난을 이겨내 주신 사모의 희생과 기도와 물질로 도움을 주신 여러 성도님의 힘이 컸습니다. 자비량 사역을 하는지라 경제적 어려움도 컸지만, 그것도 이겨내게 힘을 주신 하나님과 성도님께 감사를 드립니다. 다시 죽는 순간까지 힘을 다하여 사역에 힘을 쏟을 것을 약속드리며 말씀 나누겠습니다.
이 땅에서 행복을 누리고 영생의 길도 가려면 어떻게 해야 하겠습니까?
사람들은 이생의 행복을 위해서는 건강한 몸과 넉넉한 재물이 필요하고 생각합니다. 그렇습니다. 이생의 행복을 위해서는 그런 조건이 필요합니다. 그러나 이생의 행복을 누리면서 영생의 길을 가려면 주님께서 원하시는 조건을 갖출 수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 한 청년이 그 문제를 안고 예수님을 찾아와 물었습니다. “선한 선생님이여 내가 무엇을 하여야 영생을 얻으리이까?”라고 했던 것입니다.. 이 청년의 이야기는 마태복음과 누가복음에도 기록이 되어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을 찾아온 청년은 조금 전 우리가 꼽아 보았던 행복의 조건들을 고루 갖추고 있었습니다. 누가복음 18장 18절의 기록에는 관직에도 올라 있었으며, 오늘 본문에는 부자였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랬음에도 그 청년은 만족한 삶을 살지 못하고 방황하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성경은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이생의 것을 아무리 많이 소유한들 진정한 행복은 누릴 수 없다고 합니다. 다시 말해서 세상의 부귀와 명예와 건강만으로는 우리의 영혼까지 만족시키지는 못한다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재물과 명예를 아무리 끌어모아 쌓아 놓아 보아도 진정한 행복을 느낄 수는 없는 것입니다, 사람이 삶에서 진정한 행복을 누리려면 먼저 영혼의 문제가 해결해야 하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죽음의 문제가 해결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 문제가 해결되지 않고는 진정한 행복을 누릴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영생의 길을 모르고 이생에서 떠도는 사람을 불행한 사람이라고 합니다. 그러나 영생의 길을 걸으며 이 세상의 부귀도 누리는 사람은 진정으로 행복한 사람이라 할 것입니다.
청년도 이와 같은 문제 때문에 근심하였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 영생에 대한 답을 얻으려 하였던 것이지요. 그는 독실한 바리새인이면서도 영생에 대해서는 확신이 없었던 것 같았습니다.
유대교에서는 율법(모세오경)을 지키면, 이생에서 복을 받고, 장수하며, 자손 대대로 번창하게 된다는 보상계율은 있어도 영생에 대해서는 말하고 있지 않습니다.
유대인들은 우리가 잘 알듯이 사두개파와 바리새파로 나뉘어 있습니다. 사두개파는 제사장들로 이루어진 종교파벌입니다. 유대는 정치와 종교를 분리하지 않고 종교 지도자가 나라를 이끌었었는데, 그 구심점이 대제사장들이었습니다.
그들은 바리새파와는 다른 종교적 신념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부활이나 천사나 영생과 영혼의 존재도 믿지 않았습니다.
반대로 바리새파는 B.C 2세기경부터 평신도들로부터 시작된 파벌로 이 파에는 율법 학자라고 하는 서기관이 지도적인 위치에 서서 모세의 율법을 실생활에 적용하여 지키도록 하였습니다. 율법해석은 모세오경과 장로들의 구전을 같은 위치에 두고 해석했었고, 그 해석된 것들을 일상생활에 접목하였던 계파입니다. 그들은 다윗의 후손으로 나타나게 될 메시아 대망론과 부활의 신앙, 그리고 최후의 심판 등을 믿었습니다.
바리새파는 율법을 지킴으로 영생을 얻을 수 있다고 가르쳤습니다. 청년은 바리새파의 가르침과 같이 내가 무엇을 행해야만, 구원을 얻게 될 것이라는 생각을 하였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선한 선생님이여 내가 무엇을 하여야 영생을 얻으리이까?”라고 물었던 것이지요.
현대에 이르기까지 종교는 신본주의(神本主義) 사상(思想)과 인본주의(人本主義) 사상으로 나뉘어 발전되고 있습니다. 이 두 사상은 구원의 문제에서도 각기 다른 주장을 펼치고 있는데, 인본주의 사상은 사람이 노력으로 선한 행실을 하여야 구원을 얻는다고 하고, 신본주의 사상은 구원은 전적으로 하나님께서 베풀어주시는 은혜라고 믿는 것입니다. 유대인, 특히 바리새인들은 바리새파가 주장하는 모든 계율을 지켜야 구원에 이른다는 믿음을 가졌던 것입니다. 바리새인이었던 그 청년도 그래서 예수님께 그와 같은 질문을 하였던 것입니다.
예수님은 그 청년에게 물으셨습니다. “네가 계명을 아나니 살인하지 말라, 간음하지 말라, 도적질하지 말라, 거짓 증거하지 말라, 속여 취하지 말라, 네 부모를 공경하라 하였느니라.” 그러시면서 그것을 다 지켰느냐? 고 물으셨습니다. 부자 청년의 대답은 “내가 어려서부터 다 지켰나이다.”라고 했습니다. 과연 바리새인 청년이 지킨 율법은 구원받기에 합당할 만큼 완벽한 것이었을까요?
예수님께서 청년에게 다음으로 하신 말씀에 해답이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그 청년에게 “네게 있는 것을 다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주라.”라는 말씀입니다.
누가복음 10장 25~27절에는 어떤 율법 학자가 예수님을 시험하려고 “선생님 내가 무엇을 하여야 영생을 얻겠습니까?”라고 묻자, 예수님께서는 율법에 무엇이라 기록되었으며 네가 어떻게 읽었느냐? 고 묻습니다. 율법학자가 대답하기를 “네 마음을 다하며 목숨을 다하며 힘을 다하며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고 또한 네 이웃을 네 자신 같이 사랑하라”라고 되어있습니다. 라고 대답하자 예수께서 말씀하시기를 “네 대답이 옳도다. 이를 행하라. 그러면 살리라.”라고 하셨습니다. 이 말씀을 지키는 것이 율법의 완성이라는 말씀이셨습니다.
예수님께서 하신 이 말씀으로 비추어 볼 때, 청년은 율법을 온전하게 지키지 못한 자였습니다. 율법은 많은 계명 중에, 한 가지만 어겨도 율법 전체를 어긴 것과 같이 치부합니다. 청년은 “네 이웃을 내 몸과 같이 사랑하라”라고 하신 계명을 어겼습니다. 재물이 많다는 것은 가난한 자들을 내 몸과 같이 사랑하지 않았다는 증거이기 때문입니다. 나누어주기를 싫어하였기 때문에 부자가 될 수 있었던 것입니다.
또 “네 이웃을 내 몸과 같이 사랑하라” 하신 말씀을 지키지 못한 죄는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라고 하신 계명을 지키지 못한 죄도 되는 것입니다.
계명을 다 지키지 못하고 어겼다는 것은 하나님을 사랑하지 못한 증거가 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율법으로는 구원받을 사람이 없다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청년에게 “가진 것을 모두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나누어 주라”라고 하셨는데, 청년은 가진 재물이 많았기 때문에 고민하고 걱정하며 예수님 앞을 떠났다고 합니다.
구원은 사람이 무엇을 이루어 받는 것이 아닙니다. 그렇습니다. 예수님께서 청년에게 마지막으로 하신 말씀에 구원의 비밀이 있습니다. “그리고 와서 나를 따르라”라는 말씀입니다. 구원은 우리 죄를 대신 지시고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신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에게 주어지는 하나님의 선물입니다.
그렇다면 율법은 지킬 필요가 없는 것일까요? 결코, 그렇지 않습니다. 구원을 얻기 위해서는 완벽하지는 않지만, 최선을 다하여 하나님을 사랑하고 그 말씀을 지켜야만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네 마음을 다하며 목숨을 다하며 힘을 다하며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고 또한 네 이웃을 네 자신 같이 사랑하라”라고 하셨던 것입니다.
정말 영생을 믿고, 얻고자 한다면 예수님의 제자들과 같이 모든 것을 다 버리고 주를 따를 각오가 되어있어야 합니다. 구원받기 위해서는 세상 재물보다 십자가에 못 박히심으로 우리에게 구원의 길을 열어주신 예수님을 따르는 것이 더 귀한 것입니다.
영생은 이 세상의 모든 부귀와 영화보다 더 소중한 것입니다. 생명보다 더 소중한 것이 무엇이 있겠습니까? 시간과 재물을 다 바쳐서라도 꼭 얻어야 는 것이 영생입니다. 우리의 인생이란 단 한 번밖에 없는 기회입니다. 이 기회의 시간에 선택이 영원을 좌우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그런 것을 알면서도 세상 것에 더 정신이 팔려있습니다. 영원한 생명보다 눈앞에 보이는 재물에 더 큰 관심을 두고 있습니다.
어떻게 할 것입니까? 사순절 기간을 보내고 있는 지금 우리 모두 “나를 따르라”고 하신 예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성도들이 되어서 영생을 얻게 되시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사랑과 은혜가 많으신 하나님 아버지!
오늘 본문 말씀에서는
예수님께서 영생을 얻고자 주님을 찾아온 부자 청년을 보시고 사랑하사 이르시되 네게 아직도 한 가지 부족한 것이 있으니 가서 네게 있는 것을 다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주라 그리하면 하늘에서 보화가 네게 있으리라 그리고 와서 나를 따르라 하시니 그 사람은 재물이 많은 고로 이 말씀으로 인하여 슬픈 기색을 띠고 근심하며 돌아 갔다고 합니다.
주님의 십자가 고난과 부활을 묵상하며 그 발자취를 따라 가고자 하는 이 아름다운 사순절 기간에 온 천하보다 세상의 모든 재물보다 우리 영혼의 소중함을 깨닫게 하시고 혼돈된 세상 속에서도 우리를 위하여 십자가에 달려 죽으심으로 우리 죄를 대속하시고 사흘 만에 부활하시어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믿는 자마다 죄에서 구원하시고 의인 되게 하신 예수님을 구주로 믿고 찬양하오니 아름다운 천국 본향에서 주님 만나볼 때까지 영원토록 우리와 함께 하사 도우시고 인도하시며 축복하옵소서!
특별히 혼돈 가운데 있는 이 나라를 불쌍히여겨주시옵소서!
이 민족이 주의 말씀으로 다시 새로워지며, 모든 어둠의 권세는 물러가고 하나님의 권능의 역사가 밝게 비추는 아름다운 나라 되어 세계 속에 우뚝 서는 이 민족 되게 하옵소서!
세우신 대통령에게 하나님 주신 지혜와 명철, 포용력을 주시어 이전에 잘못되었던 모든 것에서 벗어나 오직 천지의 주인 되시는 하나님을 믿고 말씀에 의지하므로 나라가 새로워지고 하나되며 회복되는 은혜가 임하게 하옵시며, 위정자들이 먼저 살아계신 하나님을 경외하며 나라와 국민들을 위하는 정직하고 성실한 마음으로 철지난 이념과 편 가르기로 국론이 분열되고 나라의 위기를 초래하는 모습에서 벗어나게 하시고 합리적 대화와 성숙된 모습으로 국민들의 신뢰를 회복하게 하옵소서!
이 혼란 가운데 가난하고 아프고 힘없는 국민들의 눈에서 눈물을 닦아 주시고 속히 국정이 안정되고 기업이 안정되며 노사가 집단 이기주의를 떠나 합력하여 이 위기를 극복하고 다시 일어설 수 있도록 새 힘을 주시고 다시 살아갈 용기를 주시며 서로 위로하고 격려하므로 떨쳐 일어나 승리하는 삶이 되어 모두가 행복한 이 나라 되게 하옵소서!
곳곳에 산불로 희생된 분들의 영혼과 가족들을 위로하시며 그 분들의 희생이 헛되지 않도록 속히 산불이 진화되어 사회적 불안이 해소되고 사회가 안정되게 하옵소서!
감사드리며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기도 올렸습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