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남진원 문학 全史. 제2권. 1983년
1. 계해년(1983년)의 새 아침,
- 73인선에 동시 [조약돌] 게재
강원일보 신춘문예 시, 당선이라니!
1982년의 어느 날 정선의 한 식당에 문학회 모임이 있었다. 계절은 가을인 모양이다. 왜냐하면 그때 신춘문예 작품을 모두 써 놓았기 때문이다.
전태규 이갑창 등 많은 문인들이 있었다. 신춘문예 응모 이야기가 자연스레 흘러나왔다. 나는 전국의 중앙지 신문에 낼 시 작품을 모두 써 놓았다고 큰소리를 뻥뻥 쳤다. 회원들 얼굴을 보니 전태규 선생님과 모인 사람들은 놀라움보다는 오히려 안 될 것 같은 예감에 측은히 생각들을 하고 있었다.
나는 중앙지의 몇 군데는 당선될 기쁨에 들 떠 있었다. 나름대로 심혈을 기울인 작품들이라고 믿었던 것이다. 전태규 형은 내 이야기를 듣더니 마구 웃었다. 그리고 술이나 먹자고 하였다.
그 후, 나는 응모 기간에 낼 작품을 선별하였다. 중앙지에는 제 일 잘 썼다는 작품을 보내고 제일 못 썼다고 여기는 작품을 강원일보사에 보냈다. 그런데 결과는 예상 밖이었다. 모두 떨어지고 강원일보에 보낸 작품이 당선된 것이었다. ‘아니 제일 못 쓴 작품이 당선되다니 … ’ 의외였다. 그러나 다시 떨어진 작품을 나름대로 분석해 보면서 알았다. 내 혼자 최고 작품이라고 들떠 있었다는 걸 알았다. 대부분의 작품은 이미지 보다는 관념적인 서술 형태의 글들이었다. 그리고 감동도 객관적으로 들여다 보니 별로였다. 어찌 되었든 강원일보에 당선된 일이 기뻤다. 전혀 예상 밖이었기 때문이다. 십사평을 보니 심사위원은 이성교 선생님과 민영 선생님이셨다.
나는 당시 저녁보다는 ‘아침’, 겨울 보다는 ‘봄’, 어둠보다는 ‘빛’ 등에 대한 이미지를 즐겨 사용하였다. 모든 게 활동적이고 일어서는 게 좋았다. 그래서 작품의 성격도 매우 역동적이었다.
뭔가를 해야 한다는 일념이 마음 깊은 곳에 자리 잡았다. 그래서 배움에 대한 욕구도 컸다. 나는 정선군 벽탄국민학교에 근무하며 한국방송통신대학 행정학과에 편입학 하였다. 당시에는 국어과나 국문학과가 방송대학에는 없는 게 너무 너무 아쉬웠다.
* 1983년 1월 1일자, 강원일보 신춘문예에 시가 당선되었다.
1983년 12월 23일 경 서울에 올라갔다. 동시집 싸리울이 발간되었기 때문이다. 많은 책은 소포로 부치고 몇 권은 가지고 왔다. 내려오는 김에 강원일보사 문화부에 들러 동시집을 드리고 내려오려고 하였다.
강원일보 문화부에 갔다. 동시집 『싸리울』을 드리니 김기중 문화부장께서 반가워하셨다.
얼마 후 김기중 문화부장께서 내게 물었다.
“혹시 그 학교에 ‘청파’라는 분이 있는가?”
나는 왜 물으시녀고 하였더니 서울에서 심사위원 연락이 왔는데 신춘문예 당선작은 청파라는 사람이 지은 거라고 하였다. 나는 뛸 듯이 기뻤다.
“네, 그 사람이 접니다. 제가 필명으로 응모했습니다. ”
그러자 김기중 부장님은 잘되었다고 하시며 아예 이곳에서 당선 소감을 써 놓고 가라고 하셨다. 축하한다는 말도 잊지 않으셨다.
나는 이렇게 되자, 강원일보에서 당선 소감을 쓰고 내려왔다. 그날 창밖으로는 눈이 펄펄 내렸다. 당선 소식을 알기 전에는 함박눈도 별 의미가 없었는데 당선 소식을 듣곤 ksl, 눈이 엄청 반가웠다. 마치 나를 위해 축하의 뜻을 전하기 위해 내리는 것 같았다.
**** 강원일보 신춘문예 당선 축하식 및 [싸리울]동시집 출판기념회를 학교장 이름으로 하시는 게 어떻겠느냐고 교장선생님에게 말씀드렸다. 그래서 학교장 이름으로 초청장이 나가게 되었다. 장소는 정선읍의 제일예식장이었다.
⁑당선 작품 - 봄빛
남진원
새벽으로 가는 안개들의
푸른 길 옆에
산의 손 시린 물소리
마을로 마을로 오고 있다.
들판은
번쩍이는 햇살과
귀가 아픈 새떼 속에
일어서고
우리들의 삶 한가운데
희디 흰 소금으로 남아
짭짤하게 등허리를 절이고 있는
풀 뿌리 밑에서
아침은 깨끗한 피부를 드러낸다.
벌써 몇 광주리 씩 푸른 바람을
이고
대문을 나서는
아주머니들
땀과 거름으로
기름진 잎들이
그림자를 드리운 채
빛 속에서 누군가와 만나고 있다.
‣뽑고 나서
예선을 거쳐 선자들에게 넘어온 응모작은 총 44편이었다. 이중에서 엄선을 거듭 정진경의 ‘촛불’, 한성희의 ‘산가에서’, 남진원의 ‘봄빛’, 전향규의 ‘휴전선의 꿈’ 등이 물망에 올랐다.
‘촛불’은 언어를 다듬는 깔끔한 솜씨가 돋보였으나 주제가 평범하다. ‘산가에서’는 서경을 노래한 작품으로 가끔식 보이는 빛나는 구절이 작품을 살리고 있지만 신인다운 패기가 부족하다. 나머지 두 사람의 것에서 우열을 가리기에는 꽤 시간이 걸렸다. ‘휴전선의 꿈’은 선명한 주제의식과 도입부의 순탄한 전개에 호감이 갔다. 그러나 뒤로 갈수록 시의 내용이 지리멸렬해진 아쉬움이 있었다. ‘봄빛’은 시가 비교적 깨끗하게 잘 짜여져 있고 주제도 알맞고 시어의 선택도 잘 되어 경쾌한 느낌을 준다. 특히 제2편 이후의 시적 전개가 뛰어나 무리가 없다. 금년도의 당선작으로 뽑는 이유이다.
이성교(시인)
민 영(시인)
‣뽑히고 나서
너무 기쁘고 즐거워서 당선소감을 무엇이라 써야될지 모르겠다. 시가 아직 무엇인지 모르면서 지난 5년 동안 쓰고 지우고 또 쓰고 지우고 하면서 무엇인가를 열심히 찾아다니던 일이 이제 조그만 열매로 맺혀지고 있나보다.
전 兄 !
며칠 전 정선 달구지 식당에서 10개 중에 다섯 개가 된다고 객기를 부린 일이 생각납니다. 이름이 틀렸다고 안 된다고 하시며 우린 내기를 걸었지요.
전 형에게 얻어먹을 술을 생각하니 벌써부터 취해오는 군요.
전 형!
당선 통보를 받던 날 창밖에는 주먹 같은 함박눈이 내렸읍니다. 큰 눈송이도 나를 위해서 내리고 있는 듯한 착각이 들더군요. 당선 소감을 빨리 써내고 우연히 만난 안효선 형과 막걸리 집에 가서 술을 한잔 했지요. 그동안 앞에서 지켜봐 주신 모든 분들과 이 기쁨을 함께 하겠읍니다.
(한국아동문학회 여울, 정선아라리 문학회 동인)
어머니와 아내와 함께 춘천 강원일보사 시상식에 참석하였다.
1983년 2월 정선 읍내에서 박화목 선생님을 모시고 당선 출판기념회를 가졌다. 앞줄 왼쪽부터 최도규 산생님, 본인, 박화목 선생님 뒷줄 최도규 선생님 뒷부분은 이갑창 마석규 전태규 산생님 그리고 맨 왼쪽이 김진광 시인이다. 아들 녀석이 내 앞에 귀여운 모습으로 앉았다.
1982년 12월의 겨울은 따뜻하였다. 그리고 1983년 초, 또 큰 기쁨이 있었다. 계몽아동문학상 동요 동시 부문 당선 소식이었다.
제2회 계몽아동문학상 수상
* 1983년 5월엔 ‘봄빛 3장’ ‘바다’, ‘오월’, ‘어머니’ ‘빨래터’ 등의 작품이 계몽아동문학상을 수상하였다.
봄빛 3장
손 시린 산 물소리
마을로 오고 있다.
들판은 귀가 아픈
새떼 속에 일어서고
희디흰 아지랑이에
뿌리 젖는 나무들
미루나무 잎새들이
부풀어 오른 한낮
따뜻한 것에 닿아
살 섞이는 풀과 흙
어머닌 몇 광주리
바람이고 나섰다.
보릿대궁 입에 물고
하늘 동동 나는 새떼
꽃잎 파란 숨결도
햇빛 속에 날려가고
아이들 눈썹까지 말간
풀피리도 뜨고 있다.
빨래터
산 싣고 졸졸졸
흥겨운 시냇가에
어머닌 소매 가득
한 다발 햇살 감아
실 고운 아지랑이를
방망이로 떠올린다.
바다
졸음 겨운 고동소리
넘나드는 수평 너머
흰 물결 갈아엎으며
봄을 푸는 돛단배
갈매기 두서너 마리
그림처럼 나부껴요.
오월
초록 물든 봄바람
보리밭에 뒹굴고
산마다 꽃붕대
감아놓은 오월은
목청도 파란 하늘 속
종다리로 떠 간다.
어머니
1. 설거지
어둠 속 새벽을 깨워
물소리로 틀어놓고
그릇마다 고인 땟국
푸름으로 헹구는 손
지난 밤 굼도 수정빛
소매 깃에 묻어나고
2. 조반
늘 젖은 손자국에
매운 맛만 살아나도
아침은 보글보글
토장국에 익어가고
짭짤한 웃음을 얹어
간 맞추는 나날들.
[ 1983년 작품 평 또는 해설]
- 1983년 조약돌 11집에 수록된 작품과 감회
(2020년 8월 25일 – 8월 27일)
글. 남진원
40년 전, 문학에 대한 푸른 기상이 하늘을 찌를듯하던 그 젊은 날의 20대. 문학도 영원하고 문인들도 영원할 줄만 알았지.
1983년 조약돌 11집에 수록된 글을 읽으며, ‘유명을 달리한 사람들이 이렇게도 많구나!’ 하며 탄식을 하였다. 그러니 1983년은 37년 전의 일이다.
조약돌 11집에 수록된 작가 중에 김원기, 박영규, 엄성기, 장영철, 조영주, 최도규 등은 모두 세상을 하직하였다. 심복수나 심윤명, 이원수 등은 교류가 없었기에 지금은 살아 계신지 아니면 세상을 뜨셨는지 전혀 알 수 없는 분들이다.
현재 까지 활발한 작품 활동을 하는 분은 서울의 권영상, 강릉의 김종영, 남진원, 서울의 엄기원, 삼척의 김진광 등이다.
37년 전의 작품집을 들춰 보니 감회가 새롭다. 오백년 도읍지를 필마로 돌아드니 산천은 의구하되 인걸은 간 데 없다는 고려 말 길재의 시조가 마음에 깊이 와 닿는다.
한 편 한 편 읽다보니 전에는 느끼지 못했던 새로운 느낌이 뇌리를 스친다.
늘 지나는
그 길,
그 샘터인데도
샘인 줄 알고서는
그냥 못 간다.
도토리도
굴러 와
모여 앉은 샘 가
흘낏
눈짓이라도 주고서야
그 길.
그 샘터.
권영상의 작품 ‘샘터’이다. 동시이면서 시인 이 작품을 읽으면서 ‘권영상의 샘터’ 같은 무수한 인연들이 내게도 있었음을 돌아보게 된다.
‘샘인 줄 알고서는 그냥 못 간다’ 이 글귀가 마음에 들어와 내 삶의 은유적인 것들을 일깨우는지 모르겠다. 읽을수록 ‘참 좋은 시’이구나 하는 생각을 하였다.
여름이면 제일 먼저 생각나는 것이 ‘매미 소리’이다. 나는 해마다 여름이 오기를 무척이나 기다렸다. 싱싱한 매미 울음소리를 듣는 것이 큰 기쁨이었기 때문이다. 그래서인가. 매미 울음소리에 관한 시들을 꽤 많이 쓴 것 같다. 새벽에 뒷산 숲에서 일제히 고함을 질러대는 매미소리! 그 고함소리는 가장 아름답고 시원한 고함소리였다. 또 한낮에 들리는 매미 소리는 무더위를 씻어주는 계곡의 얼음 같은 물소리였다.
매미가
찬물을
한 바가지 씩
퍼 올려서는
쏟아 부었다.
옷은 한 방울도 젖지 않고
마음만 씻어주는
맑은
소나기.
나무 밑에서
꽉 찬 들판을 바라보시는
할아버지들 머리 위에
사정없이
쏟아 부었다.
김원기의 동시 ‘매미’라는 작품이다. 매미소리에 옷은 젖지 않지만 마음을 시원하게 씻어주는 맑은 소나기다. 매미 소리는 한 바가지씩 퍼 붓는 찬물이었다. 아니, 찬물 보다 더 시원하다. 들판에 익어가는 곡식을 바라보는 할아버지 머리 위에도 매미소리는 찬물이 되어 사정없이 쏟아 붓는다. 그러니, 여름 날 매미 소리를 들을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시원하고 신나며 행복한 일인가!
산은 예부터 민족의 숨결이 깃든 우리 한민족의 어머니요, 우주의 사랑이 깃든 만물을 품는 신의 靈氣(영기)가 깃든 곳이다.
문화와 문명을 일구어가는 도시는 생존을 위한 경쟁이 언제나 치열하기에 그 곳에는 상처 입은 사람들과 질병을 얻어 고통 하는 사람들이 생긴다. 이를 치유해주는 곳도 산이다.
산이 아름다운 이유를 굳이 말하지 않아도 모두 다 좋고 아름다운 줄을 안다. 조금 부연한다면 산에는 산새들이 살고 계곡을 흐르는 맑은 물이 있다. 또 나무와 바위, 구름과 파란 하늘을 닮은 꽃들이 피고 진다. 淸淨無垢(청정무구)함이 있는 곳이 산속이다. 그들은 서로 이웃하며 또 보이지 않는 교감을 나누며 산을 지키며 산에 어울려 산다.
쪼롱 쪼로롱
산새 소리 듣고
하얀 초롱꽃 피고
졸졸 졸조르
산골물 소리 듣고
애기 풀꽃 핀다
초롱꽃 빛깔 닮아
산새 소리
날이 갈수록 맑아지고
애기 풀꽃 빛깔 닮아
산골물 소리
날이 갈수록 어려진다.
김원기의 동시 ‘산 속’이란 작품이다. 산새 소리 듣고 초롱꽃이 피는 모습을 상상해 보면 얼마나 귀여운가. 산속 식구들의 정겨움이 포옥 배어나온다. 어디 그뿐인가, 산골물 소리 듣고 애기 풀꽃도 피어난다. 맑은 물소리 듣고 피어나는 풀꽃은 그 순수함을 어찌 말로 다 할 수 있으랴. 산새 소리 듣고 초롱꽃이 피고 초롱꽃 빛깔을 닮아 산새소리는 갈수록 맑아진다. 이런 지경이 바로 선경의 모습이다. 산골물 소리는 애기 풀꽃의 빛깔을 닮아 날이 길수록 어려지니 그 순박함은 끝을 알 수 없다. ‘서로가 서로에 의해 고귀함이 빚어지는 세상, 그런 사람살이가 어찌 없을 수 있겠는가?’ 이런 깊은 말을 ‘선 속’에 빗대어 김원기는 하고 싶었던 것인지 모를 일이다.
김원기는 현대문학사에서 훌륭한 인품에 더하여, 강릉이 낳은 시의 大家(대가)로 우뚝 자리한 시인이다. 국정교과서에 실렸던 동시 ‘산위에서’ 또한 깊은 감동과 희망, 즐거움을 주는 명작이다.
산속의 아름다운 모습과 산속 식구들이 서로 교감하는 모습을 형상화 한 작품이 ‘산 속’이라면 이번에는 산위에서 바라본 바다와 들판의 모습을 내면화 한 작품이 ‘산위에서’이다. 강릉은 바다와 산과 들이 바다와 연해 있다. 백사장은 흰 모래가 펼쳐진 명사십리이다. 나는 입암동 이안아파트에 살 때에는 자주 월대산에 오른 적이 많았다. 월대산은 소나무와 왕대들이 빽빽이 들어찬 산림지역이다.
산 정상에서 바다를 보면 안목 항과 강문 항, 경포 바다가 한눈에 펼쳐진다. 봄이 되어 월대산을 오르면 푸른 솔바람 소리가 어찌나 청정하게 들려오는지…. 그때마다 교과서에서 읽었던 박두진의 동시 ‘솔바람’을 읊조리기도 했다. 박두진은 강릉의 월대산에 올라 이 동시를 쓴 듯 착각이 들 정도였다. 나는 지금도 봄이 되어 솔바람 소리만 들으면 박두진의 동시 ‘솔바람’을 암송하면서 큰 즐거움과 행복을 느끼곤 한다.
솔바람
박두진
솔바람 소리는 바닷소리
먼 잔잔한
푸른 바다
바다에서 불어오는
초록빛 바닷소리
지절대던 한 마리
산새도 날아가고
하늘까지 닿을 듯 빽빽한 솔숲사이
이끼 푸른 바위에 앉아 있으면
머언 어디메쯤
햇살의 나라
바다로만 둘러있는 섬기슭에서
소년들이 들고 부는 은피리소리
산의 동무 들으라고
산으로 향해 부는
바다에서 오는 소리, 은피리 소리.
바다에서 오는 소리, 금피리 소리.
솔바람 소리를 동심의 나라 속에서 환상적으로 그린, 아름답고 싱싱한 꿈을 주는 작품이다. 섬기슭에서 소년들이 부는 은피리 소리가 솔바람 소리, 그것도 산으로 행해 부는 은피리소리, 금피리소리 라는 대목에 오면 새로운 상상력으로 얻을 수 있는 거대하고 참신한 수확물이다. 솔바람 소리를 듣고 있으면 마냥 싱그럽고 무엇인가 마음속에서 희망으로 꿈틀거리는 것들을 확인할 수 있다.
다시 김원기의 동시 ‘산위에서‘로 돌아가 보자.
시속의 화자는 산위에서 바다를 보고 산위에서 들판을 바라본다. 바다를 보는 마음엔 잔잔한 들판의 모습을 떠올린다. 들판에서는 새싹들이 대지를 뚫고 솟아오르고 싶은 설렘이 있다. 바다를 보고 있으면 새싹처럼 솟아오르고 싶은 고기들의 설렘을 보고 있는 것이다. 산위에서 들판을 보고 있으면 잔잔한 바다의 모습을 떠올린다. 그러면서 고기비늘처럼 번득이고 싶은 새싹들의 설렘을 보고 있는 것이다.
바다를 보는 마음 들판에서 새싹처럼 솟아오르고 싶은 고기들의 설렘
들판을 보는 마음 바다에서 고기비늘처럼 번득이고 싶은 새싹들의 설렘
산위에서 보면 바다와 들판에서 희망의 꿈틀거림으로 일어서는 새싹들과 고기들의 모습을 상상력으로 그린다. 또한 산위에 서 있으면 자신은 산에 사는 순한 산짐승이 된다고 하였다. 순한 짐승이지만 새처럼 날고 싶은 마음의 설렘을 느낀다고 하였다.
이 동시의 핵심어는 ‘설렘’이다. 우리가 살아가면서 과연 몇 번의 설렘을 느낄 수 있을까? 산위에서 본 작자는 새싹들의 설렘을 보고 고기들의 설렘을 본다. 그리고 새처럼 날고 싶은 자신의 설렘을 확인하는 것이다.
그렇다. ‘설렘’ 어린이들에게, 아니 어른들에게까지 ‘설렘’의 생활을 하며 지낸다는 것은 얼마나 멋지고 행복한 삶일까. 김원기는 사람들에게 마음속으로 속삭이고 있는 것이다. ‘여러분, 모두 마음속에 설렘을 가지고 살아가세요!’ 라고 ….
산위에서
김원기(金元起)
산 위에서 보면
바다는 들판처럼 잔잔하다
그러나 나는 안다.
새싹처럼 솟아오르고 싶은
고기들의 설렘을,
산 위에서 보면
들판은 바다처럼 잔잔하다.
그러나 나는 안다.
고기비늘처럼 번득이고 싶은
새싹들의 설렘을,
산 위에 서 있으면
나는 어쩔 수 없이 순한 짐승
그러나 너는 알거야,
한 마리 새처럼 날고 싶은
내 마음의 설렘을.
*김원기(1937-1988)
시인이며 강릉 구정에서 출생하여 구정국민학교를 졸업하였다. 강릉문인협회 회장을 역임하였으며 한국일보 신춘문예로 등단하였다. 시집 '풍선을 한 다발씩' 등이 있다.
남진원은 조약돌 11집에 7편의 작품을 발표하였다. 이 중에서 ‘기차를 타고’, ‘가을꽃’, ‘기차를 타고 가다 보면’에 대한 자작시 해설을 곁들인다.
기차를 타고
남진원
산 산 산
산을 지나고
들 들 들
들을 지나고
빨간 고추잠자리들이
맴을 도는 마을을 지날 때면
가슴이 막 뛰어요.
동시 ‘기차를 타고’에서 맨 마지막 행을 보면 가슴이 막 뛴다고 했다. 왜일까? 김원기의 ‘산위에서’란 동시에서는 ‘설렘’이란 말이 많이 나온다. 그렇다. 이 동시에서도 그 설렘을 나타내고 있는 것이다. 많은 돈을 버는 일이나 명예, 권력이 높아지는 것도 설레는 일일 것이다. 그러나 본질적으로 설렘의 귀속처는 아름다움에 대했을 때이다. 빨간 고추잠자리들이 맴을 도는 마을의 모습은 얼마나 평화스러운 모습인가.
동시 ‘가을꽃’에서는 질서보다는 자연스러운 무질서의 미적 질서를 그려내었다. 산에 핀 조그만 꽃잎들이 아무렇게나 서서 손 흔드는 모습이 얼마나 정겨운가. 웃는 모습도 삐뚤빼뚤하다고 하였다. 도가의 무위에 이르는 자연스러움의 절정을 형상화 한 작품이다.
나는 그래서 동시 ‘가을꽃’을 매우 아낀다. 이 동시를 읽고 있으면 갓 학교에 입학한 천진한 1학년 아이들의 발자국 소리와 해맑은 얼굴이 생각난다.
기차를 타고 가다 보면
남진원
강 건너에서
소 먹이던 아이가
검둥소를 몰고 가요
그 뒤를 졸랑졸랑
송아지 따라가고
수염이 더부룩한 아저씨 한 분이
나무를 지게 가득히 지고 가요.
저녁 달이 떠 오르고 있어요.
누구의 어머니일까
솥에서 방금 꺼낸 듯한 옥수수를
상 위에 수북히 담아
막 방으로 들어가고 있어요.
한 폭의 그림 같은 시골 마을의 저녁 모습이다. 날이 저물자 목동과 검둥소가 집으로 돌아가고 나무를 하나 가득 지게에 지고 집을 향해가는 아저씨, 누구의 어머니인지는 몰라도 삶은 옥수수를 상위에 들고 방으로 들어가서 식구들과 저녁을 나누려는 따뜻한 풍경이 그림처럼 그려져 있다. 지금은 찾아볼래야 찾아 볼 수 없는 그 옛날의 아름다운 시골 저녁 풍경의 모습이다. 이런 시골집이 있었기에 힘든 오늘을 살아가는 에너지가 되는 것 같다.
박영규는 11집에 다섯 편의 동시를 발표하였다. 박영규의 동시 ‘산촌의 밤’, ‘떠나오던 날’ 등에서 아름다운 산촌의 모습과 한국적인 정서를 동시로 형상화한 것을 알 수 있었다.
최도규는 11집에 교통사고가 나서 병원에 입원한 일을 시로 나타내었다. 원주에 아파트를 사서 그곳에서 기거를 하였다. 원주가 교통의 요지라서 생활하기에 편리하다고 하여 원주를 삶의 근거지로 정했다고 하였다. 그러나 지금 돌이켜 보면 원주의 생활이 그를 빨리 죽음으로 몰아간 건 아닌지 모르겠다. 부부교사로 생활은 그리 쪼들리지는 않았다. 나는 교사로 혼자 살아갔고 집안 형편이 어려웠기에 자주 도규 형으로부터 돈을 빌렸다가 갚는 일이 자주 있었다. 원래 강릉의 성산에서 태어나 재주 있고 총명하였다. 교직에 나와서는 문학과 음악에도 깊은 조예가 있었다. 문학을 하면서는 매년 상을 받다시피 하여 내게 부러움을 사기도 하였다. 내가 본격적인 문학을 할 수 있었던 것은 유일하게 최도규 형이었다. 내가 쓴 모든 작품에 대해 항상 긍정적으로 희망을 주었다. 또한 감동적인 좋은 시가 있으면 그걸 가지고 와서 자신이 평을 해가면서 실감나게 읽고 설명을 하면 정말 좋은 시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 중에 한 편이 이상현 선생의 동시 ‘겨울연’이었다. 이 작품은 가톨릭 소년 잡지에 머리시로 실렸다. 그 작품을 내게 가지고 와서 읽고 설명할 땐 정말 이석현 선생이 얼마나 위대하고 훌륭한지 감탄에 감탄을 거듭하였다. 지금도 그 한 구절은 못내 잊지 못한다. ‘월훨 겨울 하늘에 불이 붙는다.’ 겨울 연이 하늘을 박차고 꼬리를 흔들며 날아오르는 모습이다.
조약돌에 발표한 작품은 시들로서 읽으면 그냥 마음에 스며드는 작품들이다. 그의 사상이나 생각이 무르녹아 있는 작품들이다. 1943년에 태어나서 1992년에 교툥사고로 돌아가셨으니 불과 60을 채 넘기지 못하였으니 얼마나 안타까운 목숨인가. 오래 오래 살았으면 더 좋은 많은 작품과 노래들이 세상을 깜짝 놀라게 했을 텐데 말이다.
도규 형의 모습을 그리면서, 조약돌에 실린 그의 작품들을 다시 읽어본다.
교통사고를 당했을 때는 얼굴을 아마 알아보기 힘들정도로 망가져 있었던 모양이다.
사람 모양
최도규
응급실에서
자신은‘ 사람이 아니였어.
눈과 코
입술의
주소를 찾지 못해
대충 배달을 했지.
온통 일그러진 얼굴에서
피가 꿀꺽꿀꺽 나서도
많이 좋아졌단다
사람 모양 되었으니까
의사들 끼리도
의아해 웃는다.
다음의 작품은 다친 얼굴을 거울에 보다가 놀라는 모습이다. 그러나 죽지 않은 것만으로 다행이라는 안위를 하며 스스로 평온을 찾는다.
일그러진 웃음
최도규
거울을 보고
내가 왜
내가 왜
말문이 닫기다가도
아니지
정말 다행이야
죽지 않은 것 만으로도
조금은
마음이 후련해진다
조그마한 기쁨이
출렁거린다
일그러진 얼굴은
잠시 잊은 채
일그러진 웃음이
터져 나온다.
작품 ‘두 길’은 체면상 문병 온 사람과 진실한 문병을 한 사람에 대한 내용이다. 문병 온 사람들을 통해 자신도 그렇게 살아온 것을 회고하는 내용이다.
두 길
최도규
체면상
찾아온 문병 손님
나는
눈빛에서 읽는다.
빈손으로
뻐끔뻐끔 들여다봐도
정말 고마운 것을
눈빛에서 읽는다
내가
지나온 길도
위의 두 길이였나.
다음 작품은 병실 호수의 번호와 아파트 집의 호수 번호인데 잊고 싶은 숫자라는 것을 시로 표현하였다. 아마 자유롭게 지내지 못함에 대한 의식을 표출한 것이라고 보인다.
잊고 싶은 숫자
최도규
527
복권 추첨
당첨 번호도 아니다
527
내
입원실 호수
나를 찾아준
많은 사람의 기억 속에도
몇 번 씩은 오고 간 번호
아,
잊고 싶은 숫자.
아파트
최도규
522
우리 집 이름이다.
5층 2동 2호
그래도 처음엔
몇 번 씩 더듬었다.
충충이 어지러워도
방문만 꼭 닫으면
아늑한 보금자리
내가 보고 있는
천정 그 위에도
나처럼 누군가 누워 있겠지.
내가 누워있는
방바닥 그 밑에도
나처럼 누군가 누워 있겠지.
이 밤
하늘로 하늘로 포개진 마을이
내 머릿속에서
엘리베이터를 탄다.
병원에 있으면 문병을 오는 사람이 좋기도 하지만 또한 불편하기도 하다. 그러나 또 찾아오지 않으면 외로워지기도 하는 모양이다.
나는 며칠 전 강릉아산병원에 일주일 동안 입원을 하였다. 어들과 동생들만 한 두 번 오고 다른 사람들은 코로나 때문에 면회를 할 수도 없었다. 나는 병실에 혼자 있는 게 오히려 좋았다. 1인실에 있을 때에는 조용히 생각할 수 있는 기회도 있었고 6인실에 있을 때에는 여러 사람들의 사는 모습과 이야기도 나눌 수 있어 좋았다.
다음의 글은 문병과 관련하여 고통스러운 마음을 표현하였다.
문 병
최도규
병문안 손님
고통스럽다
누워 있으라고 하지만
일어나고 싶고
떠들고 싶고
그래서
육체가 고통스럽다.
손님 안 오면
더욱 고통스럽다
외롭고 적적하고 허전하여
자주 안 오는 얼굴이
원망스럽고
그래서
정신이 더욱 고통스럽다.
조약돌아동문학회는 강원도에서 가장 먼저 기치를 내걸고 시작한 단체이다. 그 뒤에 강원아동문학회가 탄생하였다. 그러나 조약돌은 회장이 없고 일하는 한 사람만이 있었기에 결국 오래 갈 수 없는 운명을 가지고 태어났다고 해야 할까. 김원기에 이어 엄성기가 조약돌 일을 해오다가 일찍 운명함으로써 조약돌은 문학회의 문을 닫게 되었다. 그러나 1960년대 영동지역에 불어넣은 아동문학의 기운은 널리 번져 영동지역 아동문학의 토대를 마련하는 계기가 되었다고 할 수 있다.
1983년 11집에 주소를 가진 회원들은 모두 24명이었다.
(권석순, 권영상, 김완성, 김원기, 김종영, 김진광, 남진원, 마석규, 박영규, 심복수, 심윤명, 엄기원, 엄성기, 이원수, 장영철, 전세준, 조무근, 조영주, 최도규, 최상헌, 최승학, 함영상, 홍광균, 김철기 등이다)
이름을 올린 회원 중에 11집에 수록한 회원은 21명이나 되었다.
(권영상, 김원기, 김종영, 남진원, 박영규, 심복수, 심윤명, 엄기원, 엄성기, 이원수, 장영철, 조무근, 조영주, 최도규, 최상헌, 최승학, 권석순, 김진광, 전세준, 홍광균, 김철기)
---------------------------------------------------------------------
*** 서울 성궁다방에서, 민족시 낭독회 개최
1983년엔 지성찬 시인께서 민족시 낭독회 안내 팜플렛을 보내주셨다. 거기에서 한국 시조의 희망을 볼 수 있었다. 한국 시조 중진 원로들이 자신의 작품을 직접 서울의 한 다방에서 낭독회를 하였다.
한국현대시조시인협회와 계간 [현대시조]에서 개최하였는데 사무국장을 맡았던 지성찬 시인의 주도로 이루어졌다. 문학의 발전은 한 사람의 희생과 노력이 뒤따르지 않으면 안 된다. 민족시 낭독회는 지성찬 시인의 열정으로 이루어지는 시조 낭독회였다.
지성찬 시인은 1942년 충북 중원군에서 출생하셨다. 1965년 연세대학교 상경대학 졸업. 1980년 [시조문학]에 ‘흙’이 추천되어 문단에 데뷔. 창작활동과 기업인으로 활동을 하였다.
( * 힌국시조큰사전 참고)
여기에 제4회, 5회, 6회, 7회, 8회, 9회, 17회를 소개한다.
제4회 민족시 낭독회
일시: 1983년 6월 25일 (토) 오후 6시 30분
장소: 성궁다방 ( 체육회관 앞. 코오롱빌딩 앞 )
참여한 시인: 김준. 선정주. 이기라. 이도현. 이청화. 전인순. 지성찬
제5회 민족시 낭독회
일시: 1983년 7월 30일 오후 6시 30분
장소: 성궁다방 ( 체육회관 앞. 코오롱빌딩 앞 )
참여한 시인: 김어수. 신순애. 이승은. 홍준오. 황순구
제6회 민족시 낭독회
일시: 1983년 8월 27일 오후 6시 30분
장소: 성궁다방 ( 체육회관 앞. 코오롱빌딩 앞 )
참여한 시인: 공석하. 김월한. 유성규. 임영창. 지성찬
제7회 민족시 낭독회
일시: 1983년 9월 24일 (토) 오후 6시 30분
장소: 성궁다방 ( 체육회관 앞. 코오롱빌딩 앞 )
참여한 시인: 김준. 민경헌. 원수연. 이기반. 이승은. 이우종. 지성찬
제8회 민족시 낭독회
일시: 1983년 10월 29일 (토) 오후 6시 30분
장소: 성궁다방 ( 체육회관 앞. 코오롱빌딩 앞 )
참여한 시인: 윤현조. 이건선. 이기라. 최성연. 홍준오
제9회 민족시 낭독회
일시: 1983년 11월 26일 (토) 오후 6시 30분
장소: 성궁다방 ( 체육회관 앞. 코오롱빌딩 앞 )
참여한 시인: 김어수. 김준. 나병순. 신순애. 이우재. 지성찬
흙(Ⅴ)
지성찬
차라리 흙처럼 흙으로 살거나
꾸밀 것도 없으니 가릴 것도 없어라
無冠의 풀이면 어떠랴, 푸르기만 하여라.
제17회 민족시 낭독회
일시: 1984년 7월 28일 (토) 오후 6시 30분
장소: 성궁다방 ( 체육회관 앞. 코오롱빌딩 앞 )
참여한 시인: 김어수. 이도현. 지성찬. 황순구. 이광우 등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