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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5월 1일)
해설: 전쟁이 시작됐다.
도널드 트럼프/미국 前대통령: 우리는 중국이 미국을 계속 강탈하는 것을 허용할 수 없습니다. 중국이 하는 일이 바로 그거예요.
해설: 중국도 맞섰다.
(미국 워싱턴, 2018년 2월 28일)
해설: 2018년 워싱턴의 한 호텔에 월가의 거물들이 모였다. 데이비드 솔로몬(골드만삭스CEO), 제이미 다이맨 (JP모건 체이스 회장), 래리 핑크 (블랙록 CEO), 그들을 초대한 사람은 시진핑 주석의 경제책사 류허 (중국 중앙재경영도소조 주임)였다----우리는 당신들의 도움이 필요하다(월스트리트저널 2020.12.2)-----치열한 무역전쟁의 이면에서 미국의 금융자본의 도움을 요청한 공산당~
마이클 페티스/베이징대 금융학과 교수: 월스트리트가 자기 편에 서서 지지하게 되면 미국과 협상하기 훨씬 쉬워지는 거죠.
전병서/경희대 China MBA 객원교수: 돈에는 애국심이 없어요. 이념도 없고 사상도 없습니다. 돈 되면 다 하는 건데~
해설: 미국 자본주의의 심장 월가와 중국 공산당, 어떤 관계인가
(영국 콘월, G7 정상회담, 2021년 6월 13일)
해설: 세계 경제를 주도하고 있는 주요 7개국의 모임 G7, 올해 정상회의에서 바이든 대통령은 노골적으로 反중국노선을 강조했다.
조 바이든/미국 대통령: 저는 우리가 중국 자체가 아니라 전 세계의 독재자, 독재정부와 경쟁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해설: 중국은 즉각 반박했다.
자오리젠/중국외교부 대변인: 미국은 병이 있습니다. 병이 가볍지 않습니다. G7은 미국의 맥을 짚고 약을 처방해야 합니다. 북대서양 조약기구 (NATO) 정상회의 (2021년 6월 14일, 벨기에 브뤼셀).
해설: 바이든 대통령은 강경 발언을 이어 갔다.
조 바이든: 나토 정상들은 중국의 행동이 오늘날 우리의 집단안보에 제기하는 장기적이고, 구조적인 도전에 대해 논의했습니다.
(미국 대선토론, 2020년 10월 22일)
해설: 미국과 중국의 갈등은 지난 대선 당시에도 뜨거운 이슈였다.
조 바이든: 중국도 국제법에 따라 행동해야 할 것입니다. 트럼프가 뭘하고 있는지 보세요. 그는 북한과 중국 국가주석, (러시아의) 푸틴 같은 불량배들을 껴안고 있습니다.
도널드 트럼프: 중국은 280억 달러를 지급했습니다. 당신은 중국에 아무 것도 부과하지 않았어요. 저는 중국 덤핑철강에 25%의 관세도 부과했습니다.
해설: 트럼프는 미중 갈등을 올리는데 이용해왔다. 그는 임기 말까지 자신의 트위터에 중국관련영상을 올렸다.
터커 칼슨: 오늘 영상에는 베이징의 더둥셩 교수가 등장합니다. 이 영상은 월스트리트와 국제무역 관련 중국의 한 TV 강연에 그가 출연한 것입니다. 중국금융이 개방되면 월가의 늑대들이 몰려올 것인가? (연말 답안쇼, 2020년 11월 29일).
해설: 디둥셩은 시진핑의 측근으로 중국 공산당과의 정책 고문을 맡고 있다.
디둥셩/중국인민대학 국제관계대학원 교수: 1970년대부터 월가가 미국의 정책에 강력한 영향력을 발휘하기 시작했고 이에 우리는 월가에 많은 것들을 의뢰해 왔죠. 1992년부터 2016년 까지 중국과 미국이 어떻게 여러 이슈에 관해 쉽게 합의할 수 있었을까요? 우리가 미국 상층에 사람들을 두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들은 미국의 권력 핵심부에 있는 사람들이며 우리의 오랜 친구들(老朋友)입니다.
박승찬/용인대 중국학과 교수/중국경영 연구소장: 오랫동안 지켜봐 왔고 관계를 유지해 왔던 사이 그렇게 보면 될 것 같고 그 말을 쉽게 하진 않겠죠. 저 같은 경우도 누구를 만나서 라오펑여우(老朋友) 라고 했을 때 제가 1,2년 만난 친구를 라오펑여우(老朋友) 라고 하진 않거든요. 말 그대로 오래된 친구이기 때문에~
(중국 베이징, 新경제포럼, 2019년 11월 21일)
해설: 미중 무역전쟁이 한창이던 2019년 베이징에서 60여 개국 경제계 전문가들이 함께 하는 경제포럼이 열렸다.
빌 게이츠/마이크로 소프트 창업자: 중국에는 연구하는 미국 기업들이 있습니다. 애플을 중국에서 실제로 많은 기술 제품들을 판매하는 유일한 외국 회사입니다. 미국과 중국의 상호의존은 더 많은 대화와 상호간의 이해를 끌어낼 수 있습니다.
게리콘/前백악관 국가경제위원장/前골드만삭스 CEO: 만일 우리가 무역 전쟁에 들어간다면 전 지금 우리가 무역전쟁 중이라고 확신하진 않습니다. 작은 충돌이라고 할 수 있죠. 전쟁은 아닙니다. 거기에 승자는 없을 겁니다. 오직 패자들만 있을 뿐이죠.
헨리 폴슨/미국 前재무장관/前골드만삭스 CEO: 우리가 금융위기를 피할 수 있었던 이유 중 하나는 우리의 재정 정책이나 통화정책들을 중국을 비롯한 다른 나라들과 협력할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해설: 중국정부 대표로 나온 이는 왕치산 국가부주석~
박승찬: 국영기업의 CEO를 했기 때문에 경제통인데다가 사정의 칼을 움직였던 감찰위원회의 주임도 했던 사람이고 모든 힘든 것을 다 맡아서 했던 사람~ 그걸 다 성공적으로 해왔고~ 지도부 입장에서는 특히 시진핑 주석 입장에서는 정말 충복에 해당하는 사람이겠죠.
해설: 이 자리에서 왕치산은 라오펑여우 오랜 친구를 만났다. 그는 헨리 폴슨 미국 前재무장관이다. 헨리 폴슨은 그의 저서 중국과 협상하기 위해서 왕치산을 자신이 골드만삭스에 재직하던 시절 만났다고 회고했다.
(미국 뉴욕, 월스트리트)
해설: 미국 뉴욕에 위치한 월스트리트, 거대 금융회사 투자은행 등이 몰려있는 세계 금융의 중심지이다. 골드만삭스는 그 중에서도 매출 1,2위를 다투는 글로벌 투자은행, 월가의 큰 손이라 불리운다. 1996년 당시 중국건설은행 대표였던 왕치산이 아시아 투자담당 폴슨을 찾아왔다.
왕치산: 우리는 이 일에 선도적인 은행이 필요합니다. 골드만삭스가 그런 은행이 되어 주었으면 합니다.
폴슨: 우리도 정말 중국과 함께 일하고 싶습니다. 하지만 이미 모건스탠리 라는 파트너가 존재하는데 이 사업을 우리와 진행해도 될지 모르겠습니다.
왕치산: 당신이 걱정하는 바는 잘 알겠습니다. 그렇지만 우리는 골드만삭스와 일하기로 결정했습니다.
해설: 그는 국영기업 상장을 준비하고 있었다.
마이클 페티스: 중국은 몇몇 대형기관들의 신규상장을 외국 금융기관에 맡겨 국제자본을 끌어들이기로 결정했습니다. 이를 위해 중국은 월스트리트의 도움이 필요했습니다. 골드만삭스를 포함해 월스트리트를 주도하는 금융사들과 좋은 관계를 맺는데 관심이 많았던 거죠.
박승찬: 제가 아는 중국 학자분이 있는데 예전에 이런 얘기를 한번 나눈 적이 있습니다. 중국의 공산당 자본과 미국의 월가가 많이 연결되어 있다. 그 규모가 엄청나다. 단순히 전화 몇번하고 미국이나 중국에서 만나는게 아니라 매번 매년 장소를 옮겨가면서 회의를 진행하고 그들만의 리그로서의 스토리가 만들어지고 그 판을 짜고 있다 라는 식의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었습니다.
해설: 사회주의 국가인 중국의 공산당과 자본주의의 심장인 월가의 기묘한 결탁~ 공산당과 월가의 은밀한 관계는 언제부터 시작되었을까.
(미국 워싱턴)
해설: 워싱턴에 거주하는 로버트 서비스씨~ 그의 아버지는 젊은 날 중국에서 특별한 한 때를 보냈다.
로버트 서비스: (5명이 찍힌 사진에서) 가운데가 저의 아버지시고 이 사람이 마오쩌둥입니다. 다른 사람은 누군지 확실치 않습니다. 외교관 존 S. 서비스(1909~1999)는 미국 정부가 중국 공산당을 알아보기 위해 파견한 관찰조의 한 사람이었다.
로버트 서비스/존 서비스의 아들: 미국이 2차 대전에 참전했을 때 아버지를 비롯해 중국에서 태어났거나 중국이나 중국문화에 능통한 미국 외교관들이 이런 말을 했어요. 일본과 전쟁을 벌이고 있는 또 다른 중국 파벌이 옌안에 주둔해 있다. 그들과도 접촉해야 한다. 그들이 무슨 일을 하고 있는지 일본이라는 공공의 적을 타도하기 위해 그들과 미국이 함께 협력할 일이 있는지 알아내야 한다.
(중국 산시성 옌안)
해설: 그들이 파견된 곳은 중국 산시성에 위치한 옌안, 남석산에 동굴을 파서 만든 중국공산당의 근거지였다. 국공내전 당시 국민당의 포위를 뚫고 탈출한 공산당은 1935년부터 이곳을 근거지로 활동했다(공산당 간부 5명 모택동, 주은래 동상 앞에서 일단의 관광객들이 전진! 전진! 구호를 외치며 사진촬영). 마오쩌둥 옛집 (1943.10~1945.12), 마오쩌둥은 13년간 이곳에 머물며 공산당 세력확대와 자신의 권력기반 구축에 힘썼다. 1944년 7월, 미국의 군인과 외교관 9명이 그를 찾아왔다.
로버트 서비스: 나의 아버지는 마오와 만나 6시간 동안 대화했어요. 두나라, 미국과 중국 공산당이 어떻게 협력할지 등을 논의 했어요.
해설: 그들은 3년간 이곳에서 공산당과 함께 생활했다. 정권의 성향을 조사하고 향후 미국과 협력할 수 있는 파트너인지를 파악하는 것이 그들의 임무였다.
박홍서/한국외대 국제지역연구센터 연구교수: 미국은 일종의 보험을 드는 것이죠. 마오쩌둥 세력에 대해서 글자 그대로 관찰을 하는 겁니다. 이들이 과연 어떤 사상을 갖고 있고 향후 이들이 중국을 장악했을 때 어떤 노선을 걸을 것이고 이런 것들에 대해서 미국은 관찰했던 겁니다.
로버트 서비스: (일단의 중국인들이 악기를 연주함) 이건 아마 음악인 것 같애요. 댄스음악이오. 토요일 밤 댄스를 위한 반주를 했죠.
해설: 그들은 마치 친구처럼 함께 어울렸다.
리처드 번스타인/前뉴욕타임스 기자: 토요일 밤에는 댄스파티를 했어요. 공산당의 지휘자들과 미국인들이 함께 사냥도 다녔죠. 참 격의 없고 긴장감이 없는 편한 관계였어요. 공산주의자들은 미국에 좋은 인상을 주고 우호관계를 맺고 싶어했어요.
해설: 마오쩌둥 또한 그들을 자주 만났다. 공산당도 이 때의 경험을 외교사업의 시작이었다고 평가 했다.
(죠지 마셜 방문, 1945년 12월 22일)
해설: 1945년 12월 미국과 특사 죠지 마샬이 중국에 도착했다. 중공의 2인자 저우언라이는 중국이 미국에 우호적임을 분명히 했다----중국공산당이 요구한 민주와 미국식 민주주의는 꽤 유사하다-----미국의 많은 부분은 우리가 배울 수 있을 것 같다 (저우언라이, 1945년 12월).
리처드 번스타인: 미국은 기술도 있고 부유했어요. 2차 대전 후 미국은 전세계에서 가장 강하고 부유한 나라였습니다. 미국과 경제적으로 협력하는 것이 중국의 국익에 굉장히 부합했거든요.
(한국전쟁, 1950년 6월 25일)
해설: 그러나 중국이 한국전쟁에 참전함으로써 상황은 달라진다.
(한국소식, 유엔총회 1951년 5월 18일)
해설: 1951년 유엔은 북한과 함께 중국을 침략자로 규정하고 경제 봉쇄를 결의했다.
방송: 공산진영의 오렌 대표는 투표를 거절했습니다. 47표 대 O의 절대 다수로 통과한 본 결의안은 모든 정부에 대하여 중공과 북한에 전쟁물자의 수송을 금지하도록 요청하고 있습니다 (유엔결의안 500호).
박홍서: 미국의 자본을 받아 들여서 중국경제를 건설하려고 하는 그런 애초의 계획은 다 물 건너간 겁니다.
(중국 항저우)
해설: 공산당이 돌파구를 찾은 것은 한국전쟁 이후 20년만이었다. 1972년 2월, 항저우 시호에서 역사적인 만남이 성사됐다.
(1972년 2월 26일)
해설: 중국을 방문한 미국의 닉슨 대통령, 총리가 된 저우언라이가 그를 맞았다. 닉슨은 마오쩌둥과 회담하고 양국 평화를 위한 역사적 조치에 합의한다.
리처드 닉슨/미국 前대통령: 오늘 우리가 합의한 공동성명은 내일 전세계의 헤드라인 뉴스가 될 겁니다.
(공동성명, 1972년 2월 28일, 중화인민공화국 상하이)
해설: 상하이 공동성명은 미중 경제교류의 출발점이 됐다.
웬톄쥔/중국인민대학 명예교수: 민생을 개선하기 위해서는 서방의 설비와 기술을 도입시켜야 했습니다. 그래서 1973년도에 43억 달러규모의 서방설비를 도입시키기로 한 것이고 화학섬유로 목화솜의 생산을 대체하고 화학비료로 식량의 생산을 늘려나갔죠.
(1979년)
해설: 마오쩌둥의 뒤를 이어 집권한 덩샤오핑은 개혁 개방을 천명한지 한 달만에 미국을 방문했다. 미국과 국교를 정상화한 중국은 문호개방을 넘어 스스로 미국의 달러 패권 안으로 걸어들어갔다.
공상철/숭실대 중문학과 교수: 그때부터 실제적으로 자본주의 세계와의 커플링(coupling,결합)이 만들어 지는데 친자본적인 경로의존성이 만들어지고 월스트리트 라는 강력한 외부성과의 관계 속에서 향후 80년대 이후의 역사는 지속하였습니다.
(자금성, 중국 베이징)
해설: 공산당과 월가의 관계는 깊고 두터웠다.
(중난하이)
해설: 자금성 옆에 위치한 중난하이, 공산당 주요기구와 최고위직 인사들이 있는 보안구역이다. 중난하이 북서쪽에 위치한 자광각(紫光閣), 청나라 때부터 중국 지도자들이 외빈을 만날 때 사용하던 이 회담장에서 골드만삭스의 아시아 담당 헨리 폴슨은 중국의 부총리 주룽지를 만났다 (1975년 2월 25일). 주룽지는 덩샤오핑 때부터 개혁 개방을 지휘한 핵심인물로 월가로 왕치산을 보낸 것도 바로 그였다.
훙호펑/존스홉킨스대 정치경제학과 교수: 주룽지가 당시 중국 공산당 관료들에게 이런 말을 한 적이 있어요. 중국의 미래에 대해 걱정할 필요가 없다. 내가 방금 월가의 큰 손들과 이야기를 나눴고 중국의 경제 개혁에 대해 그들의 지지를 얻어냈기 때문이다.
해설: 그들은 왜 만났을까. 우리는 물론 당신의 의견을 고려할 것이며 당신과 함께 일하기를 원합니다.
월가의 큰손: 이것은 복잡한 프로그램이 될 것입니다. 하지만 우리의 기술과 전문지식을 제공하는데 노력을 아끼지 않겠습니다.
해설: 당시 중국은 국영기업인 차이나 텔레콤의 상장을 준비하고 있었다. 차이나 텔레콤은 당시 유무선 전화의 시장점유율이 90%를 넘는 중국의 대표 통신사였다.
헨리 폴슨/당시 골드만삭스 아시아 투자담당: 경제개혁을 위해 자본과 노하우를 들여오는 것, 중국 경제개혁을 써야만 하는 굉장히 어려운 수단들~예를 들어 경제에 혜택을 주기 위해 많은 사람을 정리 해고하는 것들을 논의했습니다.
(중국 홍콩)
해설: 골드만 삭스의 주도로 차이나 텔레콤은 차이나 모바일로 이름을 바꿔 홍콩 주식시장에 상장된다(홍콩증권거래소). 결과는 성공이었다. 차이나 텔레콤은 42억2천만 달러를 모으며 기업가치가 크게 상승했다.
지만수/한국금융연구원 선임연구원: 국영기업의 상장과정과 연결된 굉장히 많은 사업 기회가 만들어졌고 이 과정에서 투자은행들이 중국 사업에 대해서 많은 경험도 갖고 중국과의 네트워크도 강해지고 중국과 공존하는 구조가 만들어졌다고 볼 수 있습니다.
(중국 신장 웨이우얼 자치구)
해설: 공산당은 국영기업의 상장을 계속 추진했다. 다음 목표는 석유와 천연가스를 개발하고 관련 시설을 개발하고 운영하는 중국천연가스 공사였다. 이 회사의 최고관리자는 저우융캉~
(미드랜드 미국 텍사스)
해설: 1998년 골드만삭스는 그를 미국 석유산업의 중심인 텍사스로 초대했다. (부시 어린시절 박물관), 그곳에는 저우융캉이 만나고 싶어하는 사람이 있었다. 아버지 부시 대통령이라고도 불리우는 조지 허버트 워커 부시였다.
재클린 울프/부시어린시절 박물관: 이 방은 미드랜드와 미드랜드 석유산업의 역사를 전시한 방입니다. 여기에 조지 H.W. 부시의 사진이 있는데요. 직원과 함께 석유시추장비를 점검하는 모습입니다.
해설: 그는 젊은 시절 시추전문회사를 공동 창업한 석유사업가 출신이었다(조지 H.W.부시, 1924~2018). 저우융캉은 그를 신뢰했다.
저우융캉: 나는 평생을 석유 사업가로 살았습니다. 석유 사업가의 말은 언제나 믿어도 됩니다. 그는 부시를 중국의 친구(friend of China)라 불렀다. 부시는 양국이 수교를 맺기전 베이징에서 국무부의 연락사무소장으로 일했다.
재클린 울프: 그는 중국에 15개월간 머물렀어요. 그동안 베이징의 여러 사람을 사귀었어요. 그는 자전거 타는 대사로 불렸어요. 그와 부인 바바라는 자전거를 타고 시내를 돌아다니며 중국인들을 직접 접촉하고 알아갔거든요. 그것이 중국인들에게 아주 강한 인상을 남겼습니다. 그가 대통령에 당선되고 중국의 리펑 총리를 처음 만났을 때 리펑 총리가 그에게 자전거를 선물하기도 했습니다. 부시가 중국에서 연락책으로서 자전거를 타고 다니던 시절을 기념하는 의미군요.
해설; 부시는 저우융캉에게 부탁을 했다. 이 편지를 리펑 총리에게 전해 주시겠습니까. 저우융캉은 기꺼이 부탁을 들어줬다. 그리고 중국 석유 천연가스공사는 주식상장을 골드만삭스에 맡겼다. 회사는 Petro China 라는 이름으로 미국 증시에 상장됐다. 당시 공모금액이 29억 달러, 전세계 상장석유회사 중 가장 높은 공모가였다. 부시와 저우융캉의 만남을 주선한 이는 부시의 조카로 당시 골드만삭스의 직원이었다 (허버트 워커 4세).
훙호펑: 사적인 관계는 거래를 성사시키는 데 중요하죠. 이런 종류의 커넥션이 만들어지는 배경입니다.
해설: 중국과 골드만삭스의 공생은 계속 이어졌다. 2002년 골드만삭스의 아시아투자담당 헨리 폴슨은 중국의 최고 지도자까지 만나게 된다 (장쩌민). 장쩌민은 월가의 조언에 귀를 열고 있었다.
중국측: 2002년 2월 아이작 뉴턴은 말했지요. 물체와 자연재해의 움직임은 예측할 수 있지만 주식의 움직임은 도무지 알 수가 없다.
월가: 주석님, 주식시장은 빠르게 성장하는 중국 자본을 은행 금고에 묻어두는 대신 국가의 경제활동에 투자할 수 있는 수단을 제공합니다.
중국측: 더 자세하게 보고서를 작성해서 나에게 보내줄 수 있겠소?
월가: 요금을 청구하지는 마시오. 당연하지만 JP모건에 부탁해도 되는 일이라오.
지만수: 중국이 아무런 상업적 기회를 제공하지 않을 때에도 중국에 적극적으로 들어가서 마치 봉사하는 것처럼 중국 입장에서 보면 별 대가 없이 도와주는 것처럼 중국의 제도 설계에 굉장히 많은 도움을 줬고 어떤 충고를 했고 그 결과 굉장히 끈끈한 협력관계가 만들어졌고 그게 결국 투자은행들이 중국 비즈니스를 하는데 나중에 도움이 됐습니다.
해설: 중국은 왜 월가의 수많은 투자은행 중 유독 골드만삭스와 자주 거래를 했던 것일까? 골드만삭스는 최고 경영자 13명 중 5명이 워싱턴에 진출한 파워 엘리트들의 산실이다 (로버트 루빈/클리턴정부 재무장관, 스티브 므누신/트럼프정부 재무장관, 스티브 배넌/트럼프정부 백악관 수석전략가, 조슈아 볼톤/부시정부 백악관 비서실장, 로버트 졸릭/부시정부 국무부 부장관 세계은행 총재), 국무부와 재무부, 백악관 등으로 진출한 골드만삭스 출신의 인사들 (게리 콘/트럼프정부 국가경제위원회 위원장, 윌리엄 더들리/뉴욕 연방준비은행 총재, 랜덜 포트/부시정부 국무장관 정책고문), 그들은 소위 워싱턴 컨넥션을 형성하며 미국의 정계에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훙호펑: 중국 공산당이 특히 골드만삭스와의 관계를 구축하는 데 관심이 많았던 것은 월가와의 연줄, 금융이득, 조언을 구하기 위해서만은 아닙니다. 중국 공산당은 골드만삭스가 강력한 회사 중 하나란 걸 알고 있고 CEO나 최고 경영진이 미국 정부에 연줄이 닿아 있는 것도 알고 있어서 중국 공산당도 그 영향력을 가지고 싶어 했습니다.
(1996년 여름)
중국측: 우리는 이 일에 선도적인 은행이 필요합니다. 골드만삭스가 그런 은행이 되어 주었으면 합니다.
골드만삭스: 우리도 정말 중국과 함께 일하고 싶습니다. 하지만 이미 모건스탠리 라는 파트너가 존재하는데 이 사업을 우리와 진행해도 될지 모르겠습니다.
중국측: 당신이 걱정하는 바는 잘 알겠습니다. 그렇지만 우리는 골드만삭스와 일하기로 결정했습니다.
해설: 하지만 이미 모건스탠리 라는 파트너가 존재하는데 이 사업을 우리와 진행해도 될지 모르겠습니다.
해설: 중국의 계산은 적중했다. 1996년 월가를 찾아간 왕치산을 만났던 헨리 폴슨은 10년뒤 골드만삭스의 최고경영자가 된 그는 백악관의 부름을 받는다 (미국 백악관 2006년 5월 30일).
조지 W. 부시/미국 前대통령: 안녕하십니까? 백악관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헨리 폴슨을 재무장관으로 지명했다는 것을 알리게 되어 기쁩니다.
헨리 폴슨: 그때 나는 부시 대통령에게 말했습니다. 나는 중국과 많은 일을 했으며 중요한 일들을 하기 위해 중국을 전략적으로 다루는 더 나은 방법이 필요하다.
(중국 항저우)
해설: 재무장관이 된 폴슨이 처음 방문한 외국은 중국, 34년전 닉슨 前대통령의 방문에 중국과의 무역 재개를 약속했던 항저우 시호였다. 헨리 폴슨은 닉슨 대통령이 지냈던 국빈관에 머무르며 당시 중국에서 가장 유망한 정치인을 만났다. 그는 저장성 당서기였던 시진핑이었다. 그는 내게 저우언라이와 닉슨이 함께 걸었던 길을 산책하고 싶다고 했다. 그럼으로써 내가 미중관계를 위해 하고자 하는 일의 중요성이 더욱 부각될 거라고 말했다---헨리 폴슨----
마이클 페티스: 재무장관으로서 폴슨은 수많은 중국 최고의 지도자를 만났습니다. 그때 이미 시진핑이 중국의 중요한 지도자가 될 거라는 게 아주 분명했습니다.
해설: 이듬해 공산당과 월가의 밀월의 그림자가 드리워졌다.
(영국 런던, 2007년 9월 14일)
미국의 초대형 주택담보대출 회사들이 파산하면서 그 증권을 샀던 유럽 은행들이 집단 도산 위기에 처했다.
BBC 뉴스: 영국에서 가장 큰 주택담보대출기관 가운데 하나인 노던록(northern rock)이 영국은행으로부터 긴급지원자금을 받아야 합니다. 노던록은 금융시장의 위기로 자금을 모으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습니다.
고객: 정말 엄청난 충격입니다. 이 나라 은행시스템을 다시는 못 믿을 것 같습니다.
해설: 불안한 고객들은 은행으로 몰려와 예금을 인출해 갔다. 이틀만에 20억 파운드가 빠져 나갔다.
(미국 뉴욕)
해설; 미국 증시는 폭락했다. 주택담보대출 부실이 부른 연쇄 파산~~미국은 위기에 빠졌다. (2008년 3월 31일) 재무장관 폴슨이 나섰다.
헨리 폴슨/미국 재무장관: 첫번째, 가장 긴급한 우선 순위는 자본시장의 혼란과 주택경기 하강을 헤쳐 나가는 것입니다. 상황이 해결될 때까지 이것이 우리의 우선순위가 될 것입니다.
(중국 베이징)
해설: 그는 다시 중국으로 갔다. (2008년 4월 2l일) 부총리가 된 왕치산은 오랜 친구 폴슨이게 덕담을 건넸다.
왕치산/국무원 부총리: 예전에 뵀을 때는 조금 초췌하고 피곤해 보이셔서 오랜 친구로서 마음이 아팠습니다. 그런데 오늘 뵈니 혈색이 아주 좋아 보이십니다. (중국 광시성 둥관) 금융위기의 여파는 중국에도 이어졌다. 세계 경기가 침체되면서 수출이 하락했고 파산이 이어졌다. 많은 노동자들이 임금도 못받은채 실업자가 됐다.
노동자1: 지금 다 월급을 기다라고 있는 상황이에요. 집세도 계속 밀려 있어요.
노동자2: 며칠째 밥도 못먹고 있는데 지금 밥 사 먹을 돈도 없어요.
해설: 글로벌 금융위기는 중공 노동자들의 삶에 직격탄이 되었다.
오건영/신한은행 부부장: 실업자가 그때 2천만명, 3천만명이 되거든요. 대부분의 중국 수출을 받아주는 미국부터 시작해서 선진국들이 다 흔들려버리는 것이지 않습니까. 그럼 중국 입장에서는 자기들이 예상하지 못했던 자기들이 원인제공을 하지 않았었던 글로벌 금융위기로 인해서, 자국의 경제가 송두리째 흔들려버리는~
(미국 메릴랜드 아나폴리스)
해설: 미국 메릴랜드에 위치한 해군사관학교~ 2008년 6월 17일, 경제위기 극복을 위해 미-중 양국의 경제관료들이 모였다. 금융위기 이후 미국을 바라보는 공산당의 시선은 변화가 있었다. (미-중 전략경제대화). 왕치산은 이날 뼈있는 농담을 했다.
왕치산: 이전에는 장관님이 나의 선생님 이었다면 이제는 내가 선생님의 위치에 있는 것 같습니다. 헨리, 미국의 시스템을 보십시오. 우리가 미국으로부터 계속해서 무언가를 배워야 하는 건지 잘 모르겠습니다. (치욕적인 순간들).
해설: 헨리 폴슨은 치욕을 느꼈다.
헨리 폴슨/미국 前재무장관/前골드만삭스 CEO: 그는, “헨리, 당신은 나의 선생님이었지만, 금융시스템의 문제들을 보니 선생님이 더 이상 똑똑하지 않은 것 같네요.” 라고 말했어요.
해설: 비우량 주택담보 대출로 금융위기가 심화되자 2008년 9월, 미국 재무부는 수습에 나섰다. (연방주택금융저당회사). 시장에 양대 산맥으로 부르던 두 대출 업체를 7천억 달러의 공적자금을 투입해 국유화했다. (연방저당권협회).
헨리 폴슨: 두 기관의 실패는 금융시장에 큰 혼란을 가져올 것입니다. 미국과 전세계에 말입니다. 이 조치를 취하는 이유입니다.
해설: 미국의 재무장관 헨리 폴슨은 왕치산과 수시로 통화를 했다.
헨리: 나는 우리가 불을 모두 껐다고 생각합니다. 이로써 공황 상태도 끝날 거라고 믿습니다.
왕치산: 장관께서 미국의 모든 문제가 종결될 것이라고 믿고 싶은 마음은 잘 알겠지만 아직은 완전히 끝난 것 같지 않습니다.
해설: 왕치산이 맞았다. (리먼 브라더스 파산 2008년 9월 15일). 158년 전통의 투자은행 리먼 브라더스가 서브 프라임 모기지의 충격을 감당하지 못하고 무너졌다.
기자: 파산하게 될까요?
직원: 네,
기자: 기분은 어떠세요?
직원: 분노와 슬픔을 느껴요.
해설: 리먼 브라더스의 파산은 월가를 통째로 뒤흔들었다. 투자은행과 중소은행들이 줄줄이 도산했다.
김일구/한화증권 수석이코노미스트: 미국이 그토록 자신 만만해하던 미국이 제일 잘 하는게 군사력과 금융이라고 할 정도인데 이게 무너지는 걸 본 거죠. 그러니까, 아, 자본주의라는 게 뭔가 취약성을 갖고 있다.
해설: 중국도 금융위기를 피할 수 없었다. 주식시장은 급격히 침체됐고 개혁 개방 이후 꾸준히 상승하던 경제성장율은 5년만에 처음 한자리수로 추락했다.
(중난하이, 중국 베이징)
해설: 위기를 돌파하기 위해 중국 공산당은 특단의 대책을 세운다.
TV방송(2008.11.10): 중국정부가 우리 돈으로 755조 원을 투입하는 초대형 경기부양책을 내놓았습니다. 중국이 앞으로 2년간 내수 부분에 투입하기로 한 금액은 중국돈 4조 위안, 우리돈 755조 원이나 되는 금액으로 지난해 중국 국내 총생산의 5분의 1이나 되는 초대형 경기부양책입니다.
해설; 철도, 공항 등 사회기반시설 건설을 중심으로 투자를 확대하고 소비를 촉진하겠다는 계획이었다.
헨리 폴슨/미국 재무장관: 중국은 국내 수요를 강화하기 위해 주요한 재정 부흥정책들을 발표했습니다. 세계의 성장을 유지하기 위한 이 정책을 환영합니다.
훙호펑: 중국은 전세계 경제를 살린 구원자로 칭송 받았습니다. 미국에서 시작한 금융위기의 낙진을 피할 수 있게 한 겁니다.
(미국 워싱턴, 미국 국립건축박물관)
해설: 국제 사회에서 중국의 위신은 달라졌다. 워싱턴의 국립건축박물관, 2008년 11월 이곳에 G20 정상들이 모였다. 글로벌 금융위기의 대응방안을 모색하는 이 자리에서 후진타오 주석은 시종일관 미국의 부시 대통령과 어깨를 나란히 했다. 가장 낙후되고 가난한 나라에서 세계의 구원자로 중국은 국제 무대에 화려하게 진출했다.
김일구: 아, 우리가 세계에서 이렇게 중요한 존재야 우리 지금 미국 다음이야 조금 있으면 미국하고 같은 위치일 거야. 이런 식의 생각이 강화되어 간 것이죠. 사람들의 자긍심이 올라갔던 것이고요.
중국측: 우리는 이제 안정되었고 경기를 부양할 능력도 생겼습니다. 그 덕분에 우리는 물론이고 세계가 도움을 받고 있습니다.
해설: 폴슨은 후진타오 주석에게 감사를 표했다. 금융위기는 중국이 미국을 평가하는 시선에도 변화를 가져왔다.
훙호펑: 중국식 경제모델이 미국보다 낫고 더 이상 월가의 낡은 조언을 따를 필요가 없다는 생각이 이미 중국 지도자의 뇌리 깊이 뿌리 내렸어요. 2008년은 분수령이 되었어요. 중국 지도자들의 사고방식, 세상에 대한 인식, 미국에 대한 인식, 세계에서의 중국의 지위에 대한 인식측면에서요.
지만수: 그리고 2013년에 시진핑이 들어설 때는 아예 그 얘기가 요즘 많이 유행하는 중국 특색 사회주의 중국의 길이라는 주장으로 이어지는 겁니다. 그러면서 이제 중국은 서구를 따라가는 나라가 아니라 우리 스스로 우리가 디자인한 길을 계속 추구하는 중국 특색의 길을 추구하는 우리의 모델을 만드는 나라다 라고 주장하기 시작한 거고 이게 중국의 세계에 대한 태도를 바꿔 버립니다.
중공 TV: 중국 특색의 브랜드를 반영한 제품을 부르는 말입니다. 궈차오(국조, 國潮)-중국 고유의 국산 제품을 쓰자는 애국 마케팅 트렌드,
해설: 중국의 자신감은 애국 마케팅 운동 궈차오로 이어졌다. 중국의 고속성장을 체감하고 자란 젊은 세대들은 자국에서 만든 상품을 소비하며 중국이 세상의 중심이라는 중화사상을 받아들였다.
(영스타운, 미국 오하이오주)
해설: 하지만 미국은 뿌리부터 흔들리고 있었다. 한때 미국 제조업의 중심이었던 영스타운, 값싼 중국제품이 들어오면서 도시는 몰락했다.
데이비드 애덤스/주민: 4만5천개에서 5만개의 일자리가 있었지만 지금은 다 사라졌습니다.
마크 앤돌/주민: 저는 철로 만든 부품을 생산했는데 알고 보니 중국에서 제조하더군요. 중국에서 만들어 이곳에 보내는 거였습니다. 그리고 하룻밤 사이에 제 사업을 빼앗아 버렸습니다.
해설: 대선에 출마한 트럼프는 反中 정서를 지지층을 결집하는데 이용했다.
트럼프: 우리는 중국이 미국을 계속 강탈하는 것을 허용할 수 없습니다. 중국이 하는 일이 바로 그거예요. 그들은 역사상 가장 큰 도둑입니다.
해설: 그는 중국에 대한 무역전쟁을 예고했다.
트럼프: 중국의 불공정한 보조금과 행동은 금지될 것입니다. 저는 우리의 규칙을 중국에 강요할 것입니다.
(세계 경제포럼, 2017년 1월 17일)
해설: 중국도 공격에 나섰다.
시진핑/중국 국가주석: 무역전쟁은 쌍방에게 피해를 초래합니다.
(미국 워싱턴 2018년 2월 28일)
해설: 공산당은 나름 작전을 준비했다. 2018년 2월, 백악관의 요청으로 미국을 방문한 중국 대표단은 워싱턴의 한 호텔에서 은밀한 만남을 갖는다. 모임의 주최자는 시진핑의 경제책사 류허 (중국 중앙재경영도소조 주임), 참석자들은 월가의 거물들이었다. 데이비드 솔로몬 (골드만삭스 CEO), 제이미 다이먼 (JP모건체이스 회장), 래리 핑크 (블랙록 CEO), 그들은 공산당의 라오펑여우(老朋友), 오랜 친구들이었다. 류허는 그들에게 도움을 호소했다. 그리고 중국에서 사업을 확대할 새로운 기회를 제안했다.
마이클 페티스: 미국과의 무역문제에서 이익을 얻으려면 월스트리트를 자기편에 세워 지지하도록 해야 미국과 협상하기 훨씬 쉬워진다는 것을 중국정부는 알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기본적으로 중국정부가 월스트리트에 제공한 것은 중국내 사업을 확장할 수 있는 기회였습니다. 미국과의 무역협상에서 월스트리트가 중국의 입장을 지원하는 대가였던 거죠.
(미국 백악관 2018년 3월 8일)
해설: 트럼프는 압박을 높여 갔다. 중국산 철강과 알류미늄에 관세를 부과하기로 한다.
도널드 트럼프/미국 대통령: 중국이 약 한달 동안 생산하는 강철의 양은 미국이 일년 동안 생산하는 양입니다. 정말 영광입니다. 우리는 외국산 강철에 25%의 관세를 부과할 것입니다. 그리고 10%의 관세를 외국산 알류미늄에 부과할 것입니다.
해설: 강수를 던진 트럼프, 그런데 핵심 참모 (게리콘/백악관 국가경제 위원장)가 그에게 맞섰다.
미국 CBS뉴스(2018.3.6): 골드만삭스의 前최고경영자였던 그는 관세인상에 반대하는 조언을 했었습니다. 관세인상이 무역전쟁을 촉발할 것이라고 경고했지만 트럼프 대통령의 마음을 바꿀 수 없었습니다.
해설: 결국 백악관을 나온 게리콘은 이듬해 베이징에서 열린 新경제포럼에 참석해 무역전쟁에 대한 우려를 쏟아냈다.
게리콘/前백악관 국가경제 위원장/前골드만삭스 CEO: 만일 우리가 무역전쟁에 들어간다면 전 지금 우리가 무역전쟁 중이라고 확신하진 않습니다. 작은 충돌이라고 할 수 있죠. 전쟁은 아닙니다. 거기에 승자는 없을 겁니다. 오직 패자들만 있을 뿐이죠. 우리는 서로 무역을 해야 합니다. 우리는 물자와 서비스를 나눠야 합니다.
훙호펑: 월가에 인센티브를 주는 대가로 월가가 중국의 메신저가 되거나 일종의 대리 로비스트 정책을 펼치도록 워싱턴에서 영향력을 발휘하여 달라는 거죠.
(중국 상하이)
해설: 중국은 월가의 오랜 친구들에게 한 약속을 지켰다. 2018년 부터 2년에 걸쳐 은행과 증권, 보험사에 외국인 지분 제한을 폐지했다. 그 결과 펜데믹으로 세계 경제가 침체했던 작년, 중국은 가장 많은 투자를 유치했다.
오건영: 중국의 채권 시장은 세계 2위 수준입니다. 그리고 지금 미국의 10년 국채금리가 상당히 많이 올라도 1.6% 수준이에요. 그런데 중국은 3.2%입니다. 거의 2배에 달하는 금리잖아요. 그래서 기회라는 건 결국은 위기 속에서 싹트는 것이지 않습니까? 무역분쟁 속에서 역설적으로 싹트고 있는 금융시장 개방에 대한 기회를 월가에 있는 투자자들도 당연히 느끼지 않을까 생각합니다(샤오펑 모터스).
해설: 중국 기업들도 미국의 자본시장으로 진출했다. 중국의 테슬라라 불리우는 전기자동차 스타트업 샤오펑 모터스, 지난해(2020년) 8월 28일, 샤오펑 모터스는 뉴욕증권 거래소에 상장됐다 (샤오펑 모터스 미국상장).
질문: 미국과 중국의 긴장이 계속되는 상황에서 미국 시장에 오겠다는 확신을 준 것은 무엇이었습니까?
샤오펑 모터스 대표: 지정학적 긴장은 있으나 존재할 거로 생각합니다. 하지만 우리는 이 산업의 최첨단 투자자들과 파트너가 되는 기회를 찾고 싶습니다.
(중국 샤오펑 모터스 주식이 뉴욕에서 40% 튀어 오르다 China’s Xpeng Motors shares pop 40% bumper New York).
해설: 결과는 폭발적이었다. 첫날 9970만주를 팔아 15억달러를 모았다. 올해(2021년) 6월 기준 미국에 상장된 중국기업은 239개, 작년 월가의 은행들은 총수수료의 43%를 중국회사를 상장해 벌었다. (중국 주식상장에 따른 월가 은행들의 수수료 2020년 총4억1400만 달러/총수수료의 43%).
전병서: 국가적인 차원하고 기업의 이익 차원하고 다른데요. 그래서 미국 같은 경우는 거래소나 증권회사 입장에서는 많은 회사를 상장시키는 것이 수익에 도움이 되죠. 그래서 돈에는 애국심이 없어요. 이념도 없고 사상도 없습니다. 돈 되면 다 하는 건데~
(미국 의회, 2020년 2월 2일)
해설: 미국의 정치권은 좌시하지 않았다.
윌리엄 클레이/공화당 의원: 중국 한 나라만 미국 주식시장에 202개의 기업을 상장했고 그 가치가 1.8조달러나 됩니다. 우리는 외국기업들이 미국의 시스템을 유린하는 것을 더 이상 허용할 수 없습니다.
해설: 의회는 외국 기업에 대한 회계 조사를 강화하는 외국기업 책임법을 발의했다.
앤서니 곤잘레스/공화당 의원: 외국기업 책임법은 중국이나 다른 관할 지역에 본사를 둔 기업들이 정밀한 회계감사를 회피함으로써 풍부한 유동성을 가진 우리 자본시장을 악용하는 것을 막기 위한 것입니다.
의장: 법안은 이의없이 통과됐습니다.
(중국회사들이 집으로 가는 길을 찾고 있다/개인 투자자들이 중국기업에 대한 투자를 끊을 수도 있다/의회가 미국에서 중국주식을 추방하려는 무대를 만들었다/미국 증권시장에서 중국회사들을 쫓아내면 거대한 자본이 이동할 것이다)
해설: 월가에선 우려를 표시했다 (헨리 페르난데스 MSCI 회장)
헨리 페르난데스/MSCI 회장: 바이든 정부에서 파괴적일 수 있는 자본전쟁을 피할 수 있길 희망한다.
지만수: 공산당이나 중국정부와의 원할한 협력을 통해서 남들이 얻지 못하는 사업 기회를 더 얻을 수도 있다. 이런 경험을 오랫동안 해왔기 때문에 개혁개방 이후부터 기본적으로 금융권은 또는 월스트리트는 중국에 대한 제재에 적극적으로 동참하거나 찬성할 위인이 없었고요. 그런 의미에서 월가나 중국의 관계는 어떤 이념적인 차이를 강조하는 관계라기 보다는 이익의 공유를 중심으로 서로 관계를 맺어가는 상황입니다.
(미국 알래스카 2021년 3월 19일)
해설: 지난 3월 바이든 대통령 취임 이후 처음으로 미국과 중국의 관료들이 모였다. 양국의 현안들을 논의하고 관계의 방향을 재설정하기 위한 첫 고위급 회담이었다.
앤서니 블링컨/미국 국무장관: 우리는 신장, 홍콩, 타이완, 미국에 대한 사이버 공격, 동맹국에 대한 경제적 강요 등 중국의 행동에 깊은 우려를 논의할 것입니다.
양제츠/중국공산당 외교담당 정치국원: 신장, 티베트, 타이완은 중국 영토에서 분리될 수 없는 지역입니다. 중국은 미국의 중국 내정 간섭에 단호히 반대합니다.
해설: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인, 제이크 설리번은 작심한 듯 발언을 이어갔다.
제이크 설리번/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 우리는 갈등을 추구하진 않지만 치열한 경쟁을 환영하며 우리는 항상 우리의 원칙과 국민 그리고 친구들을 위해 일어설 것입니다.
해설: 그는 월가와 공산당의 유착관계에 비판적인 입장을 보여 왔다. 골드만삭스를 위해 중국의 금융시장을 개방하는 것이 왜 미국의 협상우선순위가 되어야 하느냐? 바이든 대통령은 동맹국들과의 연대를 통해 중국에 대한 압박을 넓혀 가고 있다.
조 바이든/미국 대통령: 저는 우리가 중국 자체가 아니라 전 세계의 독재자, 독재정부와 경쟁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자오리젠/중국외교부 대변인: 미국은 병이 있습니다. 병이 가법지 않습니다. G7은 미국의 맥을 짚고 약을 처방해야 합니다.
해설: 그러나 양국관계가 최악으로 치닫는 상황에도 월가와 공산당의 관계는 여전합니다.
마이클 페티스: 양측은 서로를 이용할 겁니다. 가능하다고 생각하는 정도까지는요. 하지만 아주 친밀한 관계는 아니라고 봐요. 만약 중국 정부가 월스트리트 없는 게 낫다고 느끼면 월스트리트를 중국에서 배제할 거예요. 월스트리트도 중국내에서 수익을 낼 수 없다고 느끼면 중국에서의 사업을 접을 겁니다.
박홍서: 중국 외교부 대변인은 자오리젠, 미국이 만약 위쳇(중국 메신저)을 사용금지하면 우리도 애플 휴대폰을 쓸 필요가 없다 라는 얘기를 해요. 이걸 SNS에 올렸는데 그 기기가 아이폰입니다. 그러니까 미중관계가 단순히 국가 차원에서 강경한 발언들이 오가고 이런 것들은 수면 위의 문제고 자본이라는 접착제로 훨씬 더 우리가 상상하는 것 이상의 긴밀한 관계를 형성하고 있지 않은가
박승찬: 결국 필요할 때 같이하는 적과의 동침, 흔히 Frienemy (적같은 친구) 라는 적일 수도 있고 동지가 될 수도 있는 이 프레임이 예전보다 좀 더 강하게 유지될 뿐이지 이게 무너질 것이라고 전 생각하지 않습니다.
해설: 과연 월가나 중국 공산당의 공생은 지속될 것인가. 세계는 붉은 자본주의의 행보를 주목하고 있다. 끝. (KBS 다큐인사이트 74회 중국 공산당 100년 기획 붉은 자본주의 2부 월가로 간 공산당에서 정리).
① 2016년 5월 1일, 미국과 중국간에 무역전쟁이 시작됐다. 2018년 워싱턴의 한 호텔에 월가의 거물들이 모였다. 데이비드 솔로몬(골드만삭스CEO), 제이미 다이맨 (JP모건 체이스 회장), 래리 핑크 (블랙록 CEO), 그들을 초대한 사람은 시진핑 주석의 경제책사 류허였다. 우리는 당신들의 도움이 필요하다. 치열한 무역전쟁의 이면에서 미국의 금융자본의 도움을 요청한 공산당, 월스트리트가 자기 편에 서서 지지하게 되면 미국과 협상하기 훨씬 쉬워진다. 미국 자본주의의 심장 월가와 중국 공산당, 어떤 관계인가. 1970년대부터 월가가 미국의 정책에 강력한 영향력을 발휘하기 시작했고 중국 공산당은 월가에 많은 것들을 의뢰해 왔다. 1992년부터 2016년 까지 중국과 미국이 어떻게 여러 이슈에 관해 쉽게 합의할 수 있었을까 중국 공산당이 미국 상층(월가)에 사람들을 두고 있기 때문이다. 이들은 미국의 권력 핵심부에 있는 사람들이며 우리의 오랜 친구들(老朋友)이다. 중국정부 국가부주석 왕치산, 왕치산은 월가의 오랜 친구를 만났다. 그는 헨리 폴슨 미국 前재무장관이다. 미국 뉴욕에 위치한 월스트리트, 거대 금융회사 투자은행 등이 몰려있는 세계 금융의 중심지이다. 골드만삭스는 그 중에서도 매출 1,2위를 다투는 글로벌 투자은행, 월가의 큰 손이라 불리운다. 1996년 당시 중국건설은행 대표였던 왕치산이 아시아 투자담당 폴슨을 찾아왔다. 우리는 이 일에 선도적인 은행이 필요하다. 골드만삭스가 그런 은행이 되어 달라고,
② 중국의 공산당 자본과 미국의 월가가 많이 연결되어 있다. 그 규모가 엄청나다. 매번 매년 장소를 옮겨가면서 회의를 진행하고 그들만의 리그로서의 스토리가 만들어지고 그 판을 짜고 있다. 사회주의 국가인 중국의 공산당과 자본주의의 심장인 월가의 기묘한 결탁~ 공산당과 월가의 은밀한 관계는 언제부터 시작되었을까. 미국이 2차 대전에 참전했을 때 아버지를 비롯해 중국에서 태어났거나 중국이나 중국문화에 능통한 미국 외교관들이 이런 말을 했다. 일본과 전쟁을 벌이고 있는 또 다른 중국 파벌이 옌안에 주둔해 있다. 그들과도 접촉해야 한다. 그들이 무슨 일을 하고 있는지 일본이라는 공공의 적을 타도하기 위해 그들과 미국이 함께 협력할 일이 있는지 알아내야 한다. 그들이 파견된 곳은 중국 산시성에 위치한 옌안, 중국공산당의 근거지였다. 국공내전 당시 국민당의 포위를 뚫고 탈출한 공산당은 1935년부터 이곳을 근거지로 활동했다, 마오쩌둥은 13년간 이곳에 머물며 공산당 세력확대와 자신의 권력기반 구축에 힘썼다. 1944년 7월, 미국의 군인과 외교관 9명이 그를 찾아왔다. 두나라, 미국과 중국 공산당이 어떻게 협력할지 등을 논의 했다.
③ 미국 관찰조는 3년간 이곳에서 공산당과 함께 생활했다. 정권의 성향을 조사하고 향후 미국과 협력할 수 있는 파트너인지를 파악하는 것이 임무였다. 미국은 마오쩌둥 세력에 대해서 글자 그대로 파악하는 거다. 이들이 과연 어떤 사상을 갖고 있고 향후 이들이 중국을 장악했을 때 어떤 노선을 걸을 것이고 이런 것들에 대해서 미국은 관찰했다. 그들은 참 격의 없고 긴장감이 없는 편한 관계였다. 공산주의자들은 미국에 좋은 인상을 주고 우호관계를 맺고 싶어했다. 마오쩌둥 또한 그들을 자주 만났다. 공산당도 이 때의 경험을 외교사업의 시작이었다고 평가 했다. 1945년 12월 미국의 특사 죠지 마샬이 중국에 도착했다. 중공의 2인자 저우언라이는 중국이 미국에 우호적임을 분명히 했다. 중국공산당이 요구한 민주와 미국식 민주주의는 꽤 유사하다. 미국의 많은 부분은 우리가 배울 수 있을 것 같다. 미국은 기술도 있고 부유했다. 2차 대전 후 미국은 전세계에서 가장 강하고 부유한 나라였다. 미국과 경제적으로 협력하는 것이 중국의 국익에 굉장히 부합했다. 그러나 중국이 1950년 6.25 한국전쟁에 참전함으로써 상황은 달라진다. 1951년 5월 18일 유엔은 북한과 함께 중국을 침략자로 규정하고 경제 봉쇄를 결의했다.
④ 중국이 미국자본을 받아 들여서 중국경제를 건설하려고 한 애초의 계획이 다 물 건너갔다. 공산당이 돌파구를 찾은 것은 한국전쟁 이후 20년만이었다. 1972년 2월 26일 미국의 닉슨 대통령이 중공을 방문하고 마오쩌둥과 회담하고 양국 평화를 위한 역사적 조치에 합의했다. 1972년 2월 28일, 상하이 공동성명이 미중 경제교류의 출발점이 됐다. 중국은 민생을 개선하기 위해서는 서방의 설비와 기술을 도입시켜야 했다. 1973년도에 43억 달러의 서방설비 도입과 화학섬유 생산과 화학비료로 식량의 생산을 늘려나갔다. 1979년 마오쩌둥의 뒤를 이어 집권한 덩샤오핑은 개혁 개방을 천명한지 한 달만에 미국을 방문했다. 미국과 국교를 정상화한 중국은 문호개방을 넘어 스스로 미국의 달러 패권 안으로 걸어들어갔다. 그때부터 실제적으로 자본주의 세계와의 결합이 만들어지고 월스트리트와 강력한 관계 속에서 80년대 이후 역사는 지속하였다. 공산당과 월가의 관계는 깊고 두터웠다.
⑤ 1975년 2월 25일, 자금성에서 골드만삭스의 아시아 담당 헨리 폴슨은 중국의 부총리 주룽지를 만났다. 주룽지는 덩샤오핑 때부터 개혁 개방을 지휘한 핵심인물로 왕치산을 월가로 보낸 것도 그였다. 주룽지가 당시 중국 공산당 관료들에게 이런 말을 했다고, 중국의 미래에 대해 걱정할 필요 없다. 내가 월가의 큰 손들과 이야기를 나눴고 중국의 경제 개혁에 대해 그들의 지지를 얻어냈다. 그들은 왜 만났을까. 당시 중국은 국영기업인 차이나 텔레콤의 상장을 준비하고 있었다. 차이나 텔레콤은 당시 유무선 전화의 시장점유율이 90%를 넘는 중국의 대표 통신사였다. 골드만 삭스의 주도로 차이나 텔레콤은 차이나 모바일로 이름을 바꿔 홍콩 주식시장에 상장된다. 결과는 성공이었다. 차이나 텔레콤은 42억2천만 달러를 모으며 기업가치가 크게 상승했다. 국영기업의 상장과정과 연결된 굉장히 많은 사업 기회가 만들어졌고 이 과정에서 투자은행들이 중국 사업에 대해서 많은 경험도 갖고 중국과의 네트워크도 강해지고 중국과 공존하는 구조가 만들어졌다. 공산당은 국영기업의 상장을 계속 추진했다. 다음은 중국천연가스 공사였다. 이 회사의 최고관리자는 저우융캉,
⑥ 1998년 골드만삭스는 저우융캉을 미국 석유산업의 중심인 텍사스로 초대했다. 그곳에는 저우융캉이 만나고 싶어하는 아버지 부시 대통령이라고도 불리우는 조지 허버트 워커 부시가 있었다. 저우융캉은 부사를 신뢰했다. 그는 부시를 중국의 친구라 불렀다. 부시는 양국이 수교를 맺기전 베이징에서 15개월 연락사무소장으로 일했다. 그는 중국인들에게 아주 강한 인상을 남겼다. 그가 대통령에 당선되고 중국의 리펑 총리를 처음 만났다. 부시는 저우융캉에게 부탁을 했다. 이 편지를 리펑 총리에게 전해 주시겠습니까. 저우융캉은 기꺼이 부탁을 들어줬다. 그리고 중국 석유 천연가스공사는 주식상장을 골드만삭스에 맡겼다. 회사는 Petro China 라는 이름으로 미국 증시에 상장됐다. 당시 공모금액이 29억 달러, 전세계 상장석유회사 중 가장 높은 공모가였다. 부시와 저우융캉의 만남을 주선한 이는 부시의 조카로 당시 골드만삭스의 직원이었다. 중국과 골드만삭스의 공생은 계속 이어졌다. 2002년 골드만삭스의 아시아투자담당 헨리 폴슨은 중국의 최고 지도자까지 만나게 된다.
⑦ 골드만삭스는 중국이 아무런 상업적 기회를 제공하지 않을 때에도 중국에 적극적으로 들어가서 마치 봉사하는 것처럼 중국의 제도 설계에 굉장히 많은 도움을 줬고 어떤 충고를 했고 그 결과 굉장히 끈끈한 협력관계가 만들어졌고 그게 결국 투자은행들이 중국 비즈니스를 하는데 나중에 도움이 됐다. 중국은 왜 월가의 수많은 투자은행 중 유독 골드만삭스와 자주 거래를 했던 것일까. 골드만삭스는 최고 경영자 13명 중 5명이 워싱턴에 진출한 파워 엘리트들의 산실이다. 국무부와 재무부, 백악관 등으로 진출한 골드만삭스 출신의 인사들은 워싱턴 컨넥션을 형성하며 미국의 정계에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중국 공산당이 특히 골드만삭스와의 관계를 구축하는 데 관심이 많았던 것은 월가와의 연줄, 금융이득, 조언을 구하기 위해서만은 아니다. 중국 공산당은 골드만삭스가 강력한 회사 중 하나란 걸 알고 있고 CEO나 최고 경영진이 미국 정부에 연줄이 닿아 있는 것도 알고 있어서 중국 공산당도 그 영향력을 가지고 싶어 했다. 1996년 중국의 왕치산은 골드만삭스의 아시아 투자담당 헨리 폴슨을 찾아가서 우리의 은행이 되어 달라고 부탁하였다. 중국의 계산은 적중했다. 10년뒤 골드만삭스의 최고경영자가 된 그는 백악관의 부름을 받는다.
⑧ 2006년 5월 30일 조지 W. 부시 대통령은 헨리 폴슨을 재무장관으로 지명했다. 헨리 폴슨은 그때 부시 대통령에게 말했다. 나는 중국과 많은 일을 했으며 중요한 일들을 하기 위해 중국을 전략적으로 다루는 더 나은 방법이 필요하다. 재무장관이 된 폴슨이 처음 방문한 외국은 중국, 34년전 닉슨 前대통령의 방문에 중국과의 무역 재개를 약속했던 항저우였다. 헨리 폴슨은 닉슨 대통령이 지냈던 국빈관에 머무르며 당시 중국에서 가장 유망한 정치인을 만났다. 그는 저장성 당서기였던 시진핑이었다. 그는 내게 저우언라이와 닉슨이 함께 걸었던 길을 산책하고 싶다고 했다. 그럼으로써 내가 미중관계를 위해 하고자 하는 일의 중요성이 더욱 부각될 거라고 말했다. 재무장관으로서 폴슨은 수많은 중국 최고의 지도자를 만났다. 그때 이미 시진핑이 중국의 중요한 지도자가 될 거라는 게 아주 분명했다. 이듬해 공산당과 월가의 밀월의 그림자가 드리워졌다. 미국의 초대형 주택담보대출 회사들이 파산하면서 그 증권을 샀던 유럽 은행들이 집단 도산하였기 때문이다.
⑨ 미국 증시는 폭락했다. 주택담보대출 부실이 부른 연쇄 파산 미국은 위기에 빠졌다. 2008년 3월 31일 재무장관 폴슨이 나섰다. 그는 다시 중국으로 가서 부총리가 된 왕치산을 만났다. 금융위기의 여파는 중국에도 이어졌다. 세계 경기가 침체되면서 수출이 하락했고 파산이 이어졌다. 많은 노동자들이 임금도 못받은채 실업자가 됐다. 글로벌 금융위기는 중공 노동자들의 삶에 직격탄이 되었다. 2008년 6월 17일, 경제위기 극복을 위해 미-중 양국의 경제관료들이 메릴랜드주 미네아폴리스에서 모였다. 금융위기 이후 미국을 바라보는 공산당의 시선은 달랐다. 왕치산은 이날 뼈있는 농담을 했다. 이전에는 장관님이 나의 선생님 이었다면 이제는 내가 선생님의 위치에 있는 것 같습니다. 헨리, 미국의 시스템을 보십시오. 우리가 미국으로부터 계속해서 무언가를 배워야 하는 건지 잘 모르겠습니다. 헨리 폴슨은 치욕을 느꼈다.
⑩ 비우량 주택담보 대출로 금융위기가 심화되자 2008년 9월, 미국 재무부는 수습에 나섰다. 시장에 양대 산맥으로 부르던 두 대출 업체를 7천억 달러의 공적자금을 투입해 국유화했다. 미국의 재무장관 헨리 폴슨은 왕치산과 수시로 통화를 했다. 헨리는 불을 모두 껐다고 생각했다. 이로써 공황 상태도 끝날 거라고 믿었다. 그러나 왕치산은 아직은 완전히 끝난 것 같지 않았다고 믿었다. 왕치산이 맞았다. 158년 전통의 투자은행 리먼 브라더스가 서브 프라임 모기지의 충격을 감당하지 못하고 2008년 9월 15일 무너졌다. 리먼 브라더스의 파산은 월가를 통째로 뒤흔들었다. 투자은행과 중소은행들이 줄줄이 도산했다. 미국이 그토록 제일 잘 하는게 군사력과 금융인데 이게 무너진 것이다. 아, 자본주의라는 게 취약성을 갖고 있다. 중국도 금융위기를 피할 수 없었다. 주식시장은 급격히 침체됐고 개혁 개방 이후 꾸준히 상승하던 경제 성장율은 5년만에 처음 한자리수로 추락했다.
⑪ 2008.11.10. 위기를 돌파하기 위해 중국 공산당은 우리 돈으로 755조 원을 투입하는 초대형 경기부양책을 내놓았다. 중국이 앞으로 2년간 내수 부분에 투입하기로 한 금액은 중국돈 4조 위안, 우리돈 755조 원이나 되는 금액으로 지난해 중국 국내 총생산의 5분의 1이나 되는 초대형 경기부양책이다. 철도, 공항 등 사회기반시설 건설을 중심으로 투자를 확대하고 소비를 촉진하겠다는 계획이었다. 중국은 국내 수요를 강화하기 위해 주요한 재정 부흥정책들을 발표했다. 세계의 성장을 유지하기 위한 이 정책을 환영합니다. 중국은 전세계 경제를 살린 구원자로 칭송 받았다. 미국에서 시작한 금융위기의 낙진을 피할 수 있게 하였다. 국제 사회에서 중국의 위신은 달라졌다. 2008년 11월, 워싱턴의 국립건축박물관, 이곳에 G20 정상들이 모였다. 글로벌 금융위기의 대응방안을 모색하는 이 자리에서 후진타오 주석은 시종일관 미국의 부시 대통령과 어깨를 나란히 했다. 가장 낙후되고 가난한 나라에서 세계의 구원자로 중국은 국제 무대에 화려하게 진출했다. 중국은, 우리가 세계에서 이렇게 중요한 존재야. 우리 지금 미국 다음이야. 조금 있으면 미국하고 같은 위치일 거야. 이런 식의 생각이 강화되어갔다. 사람들의 자긍심이 올라갔던 것이다. 중국측은 우리는 이제 안정되었고 경기를 부양할 능력도 생겼습니다. 그 덕분에 우리는 물론이고 세계가 도움을 받고 있습니다. 폴슨은 후진타오 주석에게 감사를 표했다. 금융위기는 중국이 미국을 평가하는 시선에도 변화를 가져왔다. 중국식 경제모델이 미국보다 낫고 더 이상 월가의 낡은 조언을 따를 필요가 없다는 생각이 이미 중국 지도자의 뇌리 깊이 뿌리 내렸다. 2008년은 분수령이 되었다. 중국 지도자들의 사고방식, 세상에 대한 인식, 미국에 대한 인식, 세계에서의 중국의 지위에 대한 인식측면에서다.
⑫ 2013년에 시진핑이 들어서고는 요즘 많이 유행하는 중국 특색 사회주의 중국의 길이라는 주장으로 이어지고 있다. 이제 중국은 서구를 따라가는 나라가 아니라 우리 스스로 우리가 디자인한 길을 계속 추구하는 중국 특색의 길을 추구하는 우리의 모델을 만드는 나라다 라고 주장하기 시작한다. 중국 특색의 브랜드를 반영한 제품을 부르는 말이다. 중국의 자신감은 애국 마케팅 운동 궈차오(국조, 國潮)로 이어졌다. 중국의 고속성장을 체감하고 자란 젊은 세대들은 자국에서 만든 상품을 소비하며 중국이 세상의 중심이라는 중화사상을 받아들였다. 하지만 미국은 뿌리부터 흔들리고 있었다. 한때 미국 제조업의 중심이었던 영스타운, 값싼 중국제품이 들어오면서 도시는 몰락했다. 4만5천개에서 5만개의 일자리가 있었지만 지금은 다 사라졌다. 철로 만든 부품을 생산했는데 알고 보니 중국에서 제조하더라고, 중국에서 만들어 미국으로 보내는 거였다. 그리고 하룻밤 사이에 사업을 빼앗겨 버렸다. 대선에 출마한 트럼프는 反中 정서를 지지층을 결집하는데 이용했다. 그는 중국에 대한 무역전쟁을 예고했다. 중국도 공격에 나섰다. 무역전쟁은 쌍방에게 피해를 초래한다고,
⑬ 2018년 2월 28일, 중국 공산당은 나름 작전을 준비했다. 2018년 2월, 백악관의 요청으로 미국을 방문한 중국 대표단은 워싱턴의 한 호텔에서 은밀한 만남을 갖았다. 모임의 주최자는 시진핑의 경제책사 류허, 참석자들은 월가의 거물들이었다. 그들은 공산당의 라오펑여우(老朋友), 오랜 친구들이었다. 류허는 그들에게 도움을 호소했다. 그리고 중국에서 사업을 확대할 새로운 기회를 제안했다. 미국과의 무역문제에서 이익을 얻으려면 월스트리트를 자기편에 세워 지지하도록 해야 미국과 협상하기 훨씬 쉬워진다는 것을 중국정부는 알고 있었다. 기본적으로 중국정부가 월스트리트에 제공한 것은 중국내 사업을 확장할 수 있는 기회였다. 미국과의 무역협상에서 월스트리트가 중국의 입장을 지원하는 대가였던 거다. 2018년 3월 8일, 트럼프는 압박을 높여 갔다. 중국산 철강과 알류미늄에 관세를 부과하였다. 트럼프는 중국이 약 한달 동안 생산하는 강철의 양은 미국이 일년 동안 생산하는 양이다. 우리는 외국산 강철에 25%의 관세를 부과한다. 그리고 10%의 관세를 외국산 알류미늄에 부과한다. 강수를 던진 트럼프, 그런데 핵심 참모(게리콘/백악관 국가경제 위원장)가 그에게 맞섰다. 골드만삭스의 前최고경영자였던 그는 관세인상에 반대하는 조언을 했다. 관세인상이 무역전쟁을 촉발할 것이라고 경고했지만 트럼프 대통령의 마음을 바꿀 수 없었다. 결국 백악관을 나온 게리콘은 이듬해 베이징에서 열린 新경제포럼에 참석해 무역전쟁에 대한 우려를 쏟아냈다. 월가에 인센티브를 주는 대가로 월가가 중국의 메신저가 되거나 일종의 대리 로비스트 정책을 펼치도록 워싱턴에서 영향력을 발휘하여 달라는 거다.
⑭ 중국은 월가의 오랜 친구들에게 한 약속을 지켰다. 2018년 부터 2년에 걸쳐 은행과 증권, 보험사에 외국인 지분 제한을 폐지했다. 그 결과 펜데믹으로 세계 경제가 침체했던 작년, 중국은 가장 많은 투자를 유치했다. 중국의 채권 시장은 세계 2위 수준이다. 미국의 10년 국채금리가 상당히 많이 올라도 1.6% 수준이다. 그런데 중국은 3.2%다. 거의 2배에 달하는 금리다. 그래서 기회라는 건 결국은 위기 속에서 싹트는 것이다. 무역분쟁 속에서 역설적으로 싹트고 있는 금융시장 개방에 대한 기회를 월가에 있는 투자자들도 당연히 느끼고 있다. 중국 기업들도 미국의 자본시장으로 진출했다. 중국의 테슬라라 불리우는 전기자동차 스타트업 샤오펑 모터스, 지난해(2020년) 8월 28일, 샤오펑 모터스는 뉴욕증권 거래소에 상장됐다. 결과는 폭발적이었다. 첫날 9970만주를 팔아 15억달러를 모았다. 올해(2021년) 6월 기준 미국에 상장된 중국기업은 239개, 작년 월가의 은행들은 총수수료의 43%를 중국회사를 상장해 벌었다. 중국 주식상장에 따른 월가 은행들의 수수료 2020년 총4억1400만 달러/총수수료의 43%.
⑮ 미국 의회, 2020년 2월 2일, 미국의 정치권은 좌시하지 않았다. 중국 한 나라만 미국 주식시장에 202개의 기업을 상장했고 그 가치가 1.8조달러나 됩니다. 우리는 외국기업들이 미국의 시스템을 유린하는 것을 더 이상 허용할 수 없습니다. 의회는 외국 기업에 대한 회계 조사를 강화하는 외국기업 책임법을 발의했다. 외국기업 책임법은 중국이나 다른 관할 지역에 본사를 둔 기업들이 정밀한 회계감사를 회피함으로써 풍부한 유동성을 가진 미국 자본시장을 악용하는 것을 막기 위한 것입니다. 법안은 이의없이 통과됐다. 월가에선 우려를 표시했다. 공산당이나 중국정부와의 원할한 협력을 통해서 남들이 얻지 못하는 사업 기회를 더 얻을 수도 있다. 이런 경험을 오랫동안 해왔기 때문에 개혁개방 이후부터 기본적으로 금융권은 또는 월스트리트는 중국에 대한 제재에 적극적으로 동참하거나 찬성할 위인이 없었다. 그런 의미에서 월가나 중국의 관계는 어떤 이념적인 관계라기 보다는 이익의 공유를 중심으로 서로 관계를 맺어가는 상황이다.
ⓐ 미국 알래스카 2021년 3월 19일, 바이든 대통령 취임 이후 처음으로 미국과 중국의 관료들이 모였다. 양국의 현안들을 논의하고 관계 방향을 재설정하기 위한 첫 고위급 회담이었다. 앤서니 블링컨 미국 국무장관은 우리는 신장, 홍콩, 타이완, 미국에 대한 사이버 공격, 동맹국에 대한 경제적 강요 등 중국의 행동에 깊은 우려를 논의할 것입니다. 양제츠/중국공산당 외교담당 정치국원은 신장, 티베트, 타이완은 중국 영토에서 분리될 수 없는 지역입니다. 중국은 미국의 내정 간섭에 단호히 반대합니다.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인, 제이크 설리번은 작심한 듯 발언을 이어갔다. 우리는 갈등을 추구하진 않지만 치열한 경쟁을 환영하며 우리는 항상 우리의 원칙과 국민 그리고 친구들을 위해 일어설 것입니다. 그는 월가와 공산당의 유착관계에 비판적인 입장을 보여 왔다. 골드만삭스를 위해 중국의 금융시장을 개방하는 것이 왜 미국의 협상우선순위가 되어야 하느냐? 바이든 대통령은 동맹국들과의 연대를 통해 중국에 대한 압박을 넓혀 가고 있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우리가 중국 자체가 아니라 전 세계의 독재자, 독재정부와 경쟁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양국관계가 최악으로 치닫는 상황에도 월가와 공산당의 관계는 여전하다. 양측은 서로를 이용할 거다. 가능하다고 생각하는 정도까지는. 하지만 아주 친밀한 관계는 아니다. 만약 중국 정부가 월스트리트 없는 게 낫다고 느끼면 월스트리트를 중국에서 배제할 거다. 월스트리트도 중국내에서 수익을 낼 수 없다고 느끼면 중국에서의 사업을 접을 것이다. 과연 월가나 중국 공산당의 공생은 지속될 것인가. 세계는 붉은 자본주의의 행보를 주목하고 있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