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단지성, 집단이성 그리고 집단본능
“생태계에서 다수의 개체들이 협동하여 하나의 집합적인 지능을 만드는 것”을 “Collective Intelligence”라고 부른다. 곤충학자 ‘윌리엄 휠러’가 만든 말이다. 이를 한국어에서는 자주 “집단지성”이라 번역하여 사용하고 있다. 개미들이 협동하여 ‘높은 지능’을 형성하는 것을 보고 착안한 개념이다. 이에 물고기, 벌, 개미, 새, 원숭이 등 떼를 지어 군집생활을 하는 곤충이나 동물들이 형성하는 것을 “떼 지성(Swarm Intelligence)”라고 부르기도 한다. 피에르 레비(Pierre Levy)는 컴퓨터와 네트워크 상에서 다수의 협동자들이 힘을 합하여 어떤 유의미한 결과물을 창출하는 것을 역시 콜렉티브 인텔리젠스(Collective Intelligence)라고 부르고 있다. 이 역시 한국말로 “집단지성”이라고 번역하여 사용하고 있다.
하지만 이러한 언어의 사용은 언어가 변형되어 원래의 의미를 상실한 결과이다. 라틴어에서 지성은 “Intellectus”이며 이성은 “Ratio”이다. 여기서 지성과 이성은 모두 인간 정신(Ment)을 구성하는 일종의 기능들이며, 지성은 영혼 혹은 사유주체에 상응하는 실체적인 것 혹은 본질적인 것이며, 이성은 추론하고 분석하며 계산을 하는 정신의 한 능력을 말하고 있다. 범주적으로는 정신(Ment) ⊃ 지성(Intelligentia) ⊃ 이성(Ratio)이다. 따라서 지성의 역할은 명상하고 직관하고 개별자의 선택을 하게 하는 최종적인 능력이며, 이성은 이 같은 지성의 역할에 도움을 주는 분석과 추론을 하는 능력이다. 그래서 통상 지성은 ‘이해하는 능력’이라면 이성은 ‘계산하는 능력’이라고 할 수 있다. 예를 들면 물건을 구매할 때 가격과 물건의 질 등을 고려하여 가성비 등의 객관적인 수학적 데이터를 산출하는 것은 이성이 하는 것이며, 이 같은 이성의 결론을 근거로 하여 나의 개인적인 기호나 경제상황 당시의 기분 등을 고려하여 최종적으로 물건을 살 것인지 말 것인지를 결정하는 것은 ‘지성’이다. 그래서 이성적인 사람은 합리적이고 냉철한 사람일 수 있고, 지성적인 사람은 휴머니티한 사람일 수 있는 것이다.
이성은 모든 인간정신에 있어서 보편적인 것이다. 수학적 연산은 모든 이들에게 있어서 보편적이어야 한다. 반면 지성은 개별적인 것이다. 모든 인간이 동일한 수학적 계산을 한다고 해도 그 선택하는 것은 개별자의 상황이나 가치관 등에 따라 다를 수밖에 없는 것은 그의 지성 때문이다. 그래서 중세철학자 토마스 아퀴나스는 인간의 영혼을 “보편적인 이성을 타고난 개별적인 지성”처럼 고려하였다. 즉 인간에게 있어서 보편적인 능력은 개별자의 내부에 존재하는 것이다. 모든 인간은 지성을 가지고 있다는 차원에서 자기세계를 가진다. 이 자기 세계는 ‘자아’라고 표현되기도 하면서 세상에 하나 뿐인 유일한 것이다. 그리고 이 자기 세계 안에서 모든 이에게 보편적인 이성의 능력이 작동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곤충들이나 조류들에게는 ‘개별자의 능력’ ‘유일한 자기세계’ 혹은 ‘자아’가 없다. 자아는 ‘보편적인 것을 포함하고 있지만 최종적으로는 유일한 자기세계를 지닌’ 일종의 절대적인 것이다. 바로 이 같은 자기 세계는 세상에서 유일한 것이기에 한 인간은 결코 타인을 완전히 알거나 절대적으로 알 수는 없다. 만일 타인을 완전히 안다는 것, 혹은 타인을 이해한다는 것이 가능하다고 한다면 그것은 지성의 차원에서 그의 지성과 나의 지성이 완전히 일치를 이루어야 할 것인데, 일상의 세계에서 이 같은 일은 거의 발생하지 않는다. 그래서 성경에서도 “타인을 판단하지 말라!”라고 한 것이며, 현상학에서도 “판단중지”라는 말이 있는 것이다. 우리는 한 개인의 구체적인 행위나 구체적인 행동에 대해서는 판단을 할 수 있어도 한 개인의 지성을 판단할 수는 없다. 즉 그가 처한 상황이나 그의 행위의 의도나 그가 행한 것의 가치 등에 대해서 총체적으로 판단할 수는 없는 것이다.
이러한 사실로 미루어 보자면, 어떤 사람들이 힘을 합쳐서 공동 작업을 하여 산출하는 행위를 “집단 지성”이라고 부르기 보다는 “집단 이성”이라고 불러야 할 것이다. 사실상 “집단적인 자아”라는 것이 존재하지 않듯이 “집단 지성”이라는 말 자체가 성립하지 않으며, 굳이 표현자하자면 ‘집단 이성’이 적절한 용어일 것이다. 하물며 곤충들에게 이성이 있다는 말 자체가 성립하지 않는 것이니, 곤충들이 힘을 합쳐 놀라운 집을 짓더라도 그것은 이성적인 작업의 결과물이라기보다 거의 ‘본능의 결과물’이다. 그러니 정확한 표현은 ‘집단 본능’이라고 하는 것이 맞을 것이다.
인터넷의 네트워크 등을 통해 여러 사람이 함께 협업을 하여 어떤 결과물을 창출하는 행위에 있어서도 여기서 작동하는 것은 ‘동일한 이성’이지 ‘동일한 지성’이 아니다. 그러니 이 역시 굳이 언어로 표현하자면 ‘집단 이성’이 적절한 용어인 것이다. 현대로 오면서 기계 기술문명이 발전하다 보니, 인간의 행위와 기계(AI)의 행위를 자꾸 교차시키면서 인간의 행위를 축소하거나 왜곡시키고 있다. 이렇게 왜곡되는 이유는 언어의 타락에 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어떤 의미에서 애초에 “인공 지능”이라는 말은 말 그대로 ‘만들어진 지능’을 지칭하였는데, 어느 순간 ‘이성’을 지나 ‘지성’처럼 사용하고 있다. 언어의 남용이다. 기계에 있는 것은 이성 비슷한 지능일 수 있어도 ‘지성’이 아니다. 지성은 깨달음을 통해 가치관 인생관 세계관 그리고 신념 등을 가지게 하는 것으로 결코 기계가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곤충이나 동물에게서 보이는 일사 분란한 “집단 지성”은 사실 “Collective Intelligence”가 아니라, “Collective Reason(집단 이성)”과 유사한 “집단 본능(Collective instinct)”에 불과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