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9년은 3선 개헌 반대, 청와대 무장공비 침투사건, 예비군 창설 등 어수선한 60년대 말 마지막 해이다. 서울 시내를 관통하는 3.1고가도로가 완성되었고 서울에서는 중학교 무시험 추첨으로 바뀌는데 일명 뺑뺑이라고 불리는 새 입시제도였다. 월간 '소년중앙'이 창간된 해이다.
1960년대는 세계대전 이후 시작된 경제 회복을 넘어 성장의 결과가 드러나기 시작했는데 분배 저항도 만만치 않아 성장의 빛과 그림자가 어우러진 시기였다.
아폴로11호의 닐 암스트롱과 마이클 콜린즈는 인류 최초로 달에 첫발을 내디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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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해의 관객수는 1961년 5800만여 명보다 세 배 가량 늘어난 1억 7300만 명이었다. 그렇지만 한국영화계는 흥행 최악의 해로 기록된다.
이 해에 신상옥 감독의 <내시>, <천년호>, 박종호 감독의 <벽 속의 여자>, 그리고 <속 미워도 다시 한번>, <이조여인잔혹사>, <팔도 사나이>, <나도 인간이 되련다>, 유현목 감독의 <수학여행>, 임권택 감독의 <상해 탈출>, 조긍하 감독, 정민, 신성일, 김지미 주연의 <상해임시정부> 등이 개봉됐다. 여배우로는 윤정희, 문희 배우의 전성기이다.
<내시>는 32만 명이 관람하며 이 해 흥행 1위를 차지하였고 감독과 여배우는 검찰에 불려가 음란물 제작혐의로 수사를 받았다. 영화는 인기세 를 보여주는 사례인데 신상옥 감독은 여세를 몰아이 해에 속편까지 제작한다.
이 해 신상옥 감독은 <이조여인잔혹사>로 제15회 아시아영화제에서 감독상을 수상했다. 이 시기가 신상옥 감독의 전성기였다.
인기 여배우 김혜정은 돌연 영화계 은퇴선언을 한다. 이유는 나중에 밝혀지지만 결혼 때문이었다. 실험영화인 이익태 감독의 기사가 실리며 한국에서의 단편영화 활동이 시작된다.
외화로는 <닥터 지바고>, <사운드 오브 뮤직>, <007 선더볼 작전>, <독수리 요새>, 홍콩영화는 <여걸 흑나비>, <금도괴객> 등이 개봉됐다.
미국에서는 아메리칸 뉴시네마의 결정판인 <내일을 향해 쏴라>, <이지 라이더>가 제작되었다.
홍콩에서는 <비도수>가 제작되었다.
이 해에 봉준호 감독이 대구시 남구 봉덕동에서 태어났다. 당시 10대 가수로 최희준, 배호, 조영남, 이상열, 나훈아, 이미자, 패티김, 이상희, 펄시스터즈, 김세레나가 선정됐다. 트로트 시대라지만 다양한 장르의 가수들이 포진되었다. 남진은 군 복무 중이었다.
이 해에 김승우, 신애라, 엄정화, 유호정, 윤유선, 하희라, 그리고 이소룡의 딸 이향응이 출생했다.
추첨하여 중학교를 배정받았다.
소년중앙 창간호
당시 농촌 풍경
관악산 중계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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