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십여년에 걸쳐 글자를 모아
당태종(이세민)은 삼장법사가 17년 동안 인도를 주유하면서 만든 불경에 서문을 짓고 이를 당대 최고의 명필이라는 저수량으로 하여금 쓰도록 합니다(☞하단 참조). 그러나 당태종이 가장 흠모하는 이는 이미 3백년 전에 유명을 달리한 書聖 왕희지. 당태종의 의중을 파악한 승려 회인(懷仁)은 2십여년에 걸쳐서 가장 멋들어지고 문장에 잘 어울리는 왕희지의 서체를 가려 뽑아 集字聖敎序를 만들지요. 이 집자첩은 비석으로도 새겨 놓았기에 천년이 넘는 세월의 풍상을 견뎌 지금까지도 상당히 완벽한 상태로 전하고 있는 게지요.
쓰고
大唐三藏聖敎序. 太宗文皇帝製,
弘福寺沙門懷仁 集晉右將軍王羲之.
대 당나라 삼장법사의 성스런 가르침 서문. 당태종 문황제(이세민)가 이 서문을 짓고,
홍복사의 승려(沙門) 회인(懷仁)이 진나라 右장군 왕희지의 글씨를 집자하였다.
蓋聞二儀有像
듣건대 하늘과 땅(二儀)에는 현상이 있어,
顯覆載以含生 四時無形 潛寒暑以化物.
是以窺天鑑地 庸愚皆識其端,
明陰洞陽賢哲罕窮其數.
然而天地苞乎陰陽 而易識者以其有像也.
하늘이 덮고 땅이 받침에 생명체를 품고, 4계절은 무형이나 춥고 더움이 있어 만물을 化育한다.
이렇게 천지를 살펴보면 보통 사람이나 어리석은 이도 모두 알지만,
음양을 통달한 현철도 그 이치를 규명하는 이가 드믈다.
따라서 천지가 음양으로 싸여있으나, 쉽게 알 수 있는 것은 이런 현상이 있기 때문이다.
陰陽處乎天地而難窮者 以其無形也.
故知像現可徵 雖愚不惑,
形潛莫睹在智猶迷.
況乎佛道崇虛 乘幽控寂,
弘濟萬品 典御十方,
擧威靈而無上 抑神力以無下.
음양이 천지에 처해 있지만 알기 어려운 건 그 형상이 없음이라.
고로 형상이 나타나 증험할 수 있으면 비록 어리석더라도 미혹되지 아니하고,
형상이 보이지 않으면 지혜로운 이도 오히려 미혹됨을 알수 있다.
하물며 佛道는 虛를 숭상하고 깊고 적멸함을 찾으며,
널리 만물을 제도하고 시방세계를 다스림서랴
威靈을 일으키면 위가 없고, 神力으로 눌러도 아래가 없음이라.
大之卽彌於宇宙 細之卽攝於豪釐.
無滅無生 歷千劫而不古.
若隱若顯 運百福而長今.
妙道凝玄 遵之莫知其際,
法流湛寂 挹之莫測其源.
크게는 우주에 두루 미치며, 작게는 머리털 같이 작은 것(豪釐)도 다스린다.
멸함이 없고 생도 없이 천겁을 지나도 그대로이다.
숨어 있거나 나타나 보이거나 백복을 운용하여 지금까지 계속되었다.
묘한 도리는 현묘하여 따르면 끝을 알 수 없고,
법도의 흐름은 담적하여 헤아려 봐도 근원을 알수 없다.
故知蠢蠢凡愚 區區庸鄙,
投其旨趣 能無疑惑者哉.
然卽大敎之興 基乎西土,
騰漢庭而皎夢 照東域而流慈.
昔者分形分跡之時 言未馳而成化,
고로 굼실거리는 어리석은 이들은 용렬하고 비루함에,
그 뜻을 알려줘도 의심하는 자가 없을 수 있으리.
그런즉 불교의 흥성은 서쪽 땅(인도)에 터했고,
한나라 궁정에 올라와 현몽했고, 동쪽을 비추며 자비가 흘러갔다.
옛적 分形分跡의 시절에는 말이 없어도 교화가 이루어 졌고,
當常現常之世 民仰德而知遵.
及乎晦影歸眞 遷儀越世,
金容掩色 不鏡三千之光
麗象開圖 空端四八之相.
於是微言廣被 拯*含類於三途, *拯 : 건질 증
(석가가 살아계실) 당대에는 백성들이 그 덕을 우러르고 가르침을 따를 줄 알았다.
(석가여래가) 그림자를 감춰 진여로 돌아가시고 儀形을 옮겨 세상을 떠나심에,
(부처의) 금빛 얼굴이 빛이 가리워져 三千世界에 빛을 비추지 못하고
아름다운 모습만 그림으로 그려져 공연히 48相만 비롯되었다.
이에 隱微한 말씀을 널리 입게 하여 三途(지옥, 아귀 축생)에서 중생(含類)를 건지시고,
遺訓遐宣 導群生於十地.
然而眞敎難仰 莫能一其旨歸,
曲學易遵 邪正於焉紛糾.
所以空有之論 或習俗而是非
乍沿時而隆替.
유훈을 멀리까지 선양하고 十地(보살이 닦아야 하는 지혜)로 중생을 인도하셨다.
그러나 참된 가르침은 알기가 어렵고 그 뜻이 귀착하는 데를 알 수 없어,
曲學을 쉽게 따름에 바른 것과 바르지 않은 것이 어지러히 싸웠다.
이로써 비어 있음(空)과 차 있음(有)의 논쟁이 속세의 논리로 시비를 따지자니
잠시 시대를 따라 흥성과 쇠태를 거듭하였다.
有玄奘法師者 法門之領袖也,
幼懷貞敏 早悟三空之心,
長契神情 先苞四忍之行,
松風水月 未足比其淸華.
仙露明珠 詎能方其朗潤.
현장법사(三藏의 다른 이름)란 분이 있음에, 불가 법문의 영수요,
어려서 부터 바르고 영민하여 일찌기 해탈(三空)의 도리를 깨달았고,
장성해서는 마음을 정하여 먼저 四忍의 보살행을 근본으로 하였으니,
소나무에 스치는 바람이나 물에 비친 달도 그의 맑고 아름다움에 비할 바가 아니다.
신선의 이슬이나 빛나는 구슬도 어찌 그의 밝음과 윤기에 견줄(方) 수 있으랴.
故以智通無累 神測未形,
超六塵而逈出 隻千古而無對.
凝心內境 悲正法之陵遲,
栖慮玄門 慨深文之訛謬.
思欲分條柝理 廣彼前門,
截僞續眞 開玆後學.
고로 그의 지혜는 얽매임이 없는 경지와 통하였고 정신은 형태가 없는 것도 헤아리니
六塵*를 초월하여 멀리 나감에 천고에 하나뿐 상대할 이가 없다. *六塵 : 色,聲,香,味,觸,法
그는 마음을 불교(內境)에 두고 正法이 점점 쇠퇴함(陵遲)을 슬퍼하였고,
불문(玄門)에 머물면서 경전의 오류에 심히 개탄하였고,
교리를 깊이 탐구하고자 하는 생각으로 전에 들은 견문을 넓히고,
허위를 끊고 진리를 계승하여 後學에 길을 열어 주었다.
是以翹心淨土 往遊西域,
乘危遠邁 杖策孤征.
積雪晨飛 途中失地,
驚砂夕起 空外迷天.
萬里山川 撥煙霞而進影,
百重寒暑躡 霜雨而前踪,
誠重勞輕 求心願達,
周遊西宇十有七年.
그리하여 마음을 淨土에 두고 서역을 왕래하게 되었고,
위험을 무릅쓰고 멀리 나감에 지팡이를 집고 홀로 길을 떠났다.
쌓인 눈 새벽에 날려 도중에 길을 잃기도 하고,
깜짝놀랄 모래바람 저녁에 일어나면 세상 밖처럼 천지를 분간키 어려웠다
만리 산천과 안개 속을 헤치고 그림자를 찾아 나아갔으며,
수없이 거듭되는 추위와 더위, 서리와 비를 맞으며 나아갔다.
정성을 중히 여기고 수고로움을 가벼이 여기며 마음으로 구하여 뜻을 이루었다.
17년 동안 서역을 주유하면서
☞ 저수량(禇遂良, 唐)이 쓴 雁塔聖敎序