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2019.09.14. 02:30.
수정: 2019.09.13. 09.15.
2024 독일 탐방 독일 최고봉 알프스 추크슈피체(2,962m)에 이은 여섯번째 탐방지는 바이에른(영어 바바리아)주 퓌센 옆에 있는 노이슈반슈타인(신백조석성)과 북쪽 뉘른베르크쪽 로맨틱 가도에 있는 딩켈스뷜, 그리고 로텐부르크이었다(2024.07.21).
이번 독일 여행에 대한 사전 공부가 적어서 그런지, 아니면 여행 중 일정에 대한 공부와 생각 시간이 적어서 그런지, 이것도 아니면 가이드 설명이 길어서 그런지, 정확한 이유는 모르겠지만 귀국 후 탐방기를 쓰는 데 기억이 잘 나지 않는 등 많이 힘들다. 특히 지리적, 시간적 공간 이동에 대한 느낌이 잘 오지 않는다. 그래도 이렇게 기록을 해야 복습이 되고, 또 훗날 기억할 수 있어 힘들어도 작업을 한다.
루트비히 2세(독일어: Ludwig II, 1845년 8월 25일 ~ 1886년 6월 13일, 향년 40세)에 대해 위키백과는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루트비히 2세는 바이에른 왕국의 국왕이다. 뮌헨의 님펜부르크 궁전에서 막시밀리안 2세 국왕과 마리 폰 프로이센(독일어판)의 첫째 아들로 태어났다. 호엔슈방가우성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으며, 1864년 3월 10일에는 부왕의 서거와 함께 19세의 나이로 왕위를 계승했다. 1867년 1월에는 바이에른 공작 막시밀리안 요제프의 다섯째 딸인 조피 인 바이에른과 약혼하였으나 파혼했다.
예술적인 감성이 뛰어났었으며, 평생 독신으로 살면서 화려한 성 짓기를 좋아해 3개의 성을 지었는데 노이슈반슈타인성을 건축했으나 완공(1892년)을 보지 못하고 1886년에 폐위당하고 만다. 루트비히 2세는 자신이 죽으면 성을 폭파시키라고 명령했지만 지켜지지 않았다. 그외에도 프랑스 부르봉 왕조의 트리아농 궁전을 본떠 만든 린더호프성과 프랑스의 베르사유 궁전을 모방하여 지은 헤렌킴제가 있다.
오페라에도 관심이 많았는데 특히 리하르트 바그너의 열렬한 팬이었다. 즉위하자 바그너를 바이에른으로 불러왔고, 왕국내의 부정적 여론에도 불구하고 그가 중요한 작품들을 쓸 수 있도록 계속해서 후원했다. 그가 지은 성들도 바그너의 오페라에서 영감을 얻은 것이다.
이전부터 정사에 무관심했던 루트비히 2세는1880년대부터 은둔생활을 하며 건축에 광적으로 몰입하다 1886년 6월 8일 궁정 의료진에 의해 정신 질환자로 분류되어 폐위당한다. 뮌헨 근처의 베르크성에 거처하던 중, 폐위 5일 뒤인 6월 13일 슈타른베르크호(당시의 호수명은 뷔름세(Würmsee))에서 익사체로 발견되었다. 191cm의 장신인 그가 무릎 정도 높이의 얕은 물에서 익사한 시체로 발견됐다는 점에서 암살 의혹도 있다. 바이에른의 왕위는 그의 동생 오토가 승계받았다.(참고: 위키백과)
호엔슈방가우성(독일어: Schloß/Schloss Hohenschwangau)은 바이에른 왕국의 왕이자 노이슈반슈타인 성을 건립한 루트비히 2세의 아버지인 막시밀리안 2세가 19세기 초엽, 개조 건축한 네오고딕 건축 양식의 성이다. 즉, 낡은 Sch- wanstein성을 1832∼1836년에 걸쳐 재건축한 성이다. (참고: 위키백과). 이같은 슈반슈타인 성이 이미 있었기 때문에, 이후 새로 지은 성 이름을 새로음을 뜻하는 '노이(neu)'라는 접두어를 붙인 것으로 추정한다.
성 게오르기우스(라틴어: Georgius, 영어: Saint George, 생년 미상 ~ 303년 4월 23일)는 초기 기독교의 순교자이자 14성인 가운데 한 사람이다. 성 게오르지오 혹은 세인트 조지라고도 한다. 기독교의 성인이며, 축일은 4월 23일이다. 게오르기우스는 농부를 뜻하는 그리스어에서 파생한 라틴어이다. 회화에서는 일반적으로 칼이나 창으로 드래곤을 찌르는 백마를 탄 기사의 모습으로 그려진다.
이 사진은 최근 <한겨레> 북센터 팀장을 맡은 페친 양선아 기자에게 전해주었다. 한국 종이신문의 한달 구독료는 대체로 2만원이다. 한 아파트에 종이 신문을 보는 집이 별로 없어 배달자들이 일일이 현관앞 까지 놓고 가기에는 많이 힘들다. 그렇다고 구독자가 신문을 가지러 1층 우편함에 까지 가는 것도 어렵다.
아파트가 별로 없던 우리나라 1970~80년대에는 중고등학생들이 수십부를 겨드랑이 사이에 끼고, 뛰거나 빠른 걸음 또는 자건거를 타며 "신문요~ "하며 1층 단독 주택으로 던져 넣으며 한달에 몇천원씩 받았었다. 이른바 신문배달부 또는 신문배달소년이었다. 그러나 요즘 한국은 주거 문화, 독서 문화가 많이 바뀌어 이런 모습을 찾기 어렵다.
심지어 교육부에서는 종이 교과서 대신 디지털 교과서로 대체하려 한다. 윤석열 정부가 들어서기 전에는 한국의 교육자 그리고 교육연구자들이 들어보지도 못했던 사안이다. 북유럽의 두 국가는 디지털 교과서를 사용하다 중지했다고 한다.
2024 독일 기행 7편은 '하이텔베르크' 로 이어집니다.
이병호ㅣ남북교육연구소장· 교육학 박사
한국통일교육학회 부회장, 겨레하나 파주지회 고문. 한반도의 평화와 공영· 민주주의와 노동의 가치를 위한 연구 · 집필 · 시민활동에 힘쓰고 있으며, 논문 "학교 통일교육과정 개선방안 탐색", "통일 교과 개설의 필요성 - 범교과학습주제로서 한계", 공저 "학교혁신의 지름길 교장제도 혁명" , "교육과정학 용어 대사전" 등이 있습니다. 한반도의 평화와 공영을 바라는 분이라면 본 연구소 Daum 카페 가입을 적극 환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