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시집 [둥근 세모꼴]의 앞표지(좌)와 뒤표지(우)
둥근 세모꼴 유안진
비트겐슈타인만큼 펄펄 끓는 정오 캔터키 프라이드 인간이 되는 중이다 메밀베개 베고 엎어졌다 일어났다 시원해질까 하고 메밀꽃 메밀꽃 하는데 이효석의 메밀밭이 제 발로 달려온다 까만 세모꼴 속에 시침떼고 들어앉은 동그랗고 하얀 알갱이까지 메밀국수 메밀묵 메밀나물까지 군침 돌더니 이마머리 자욱 핀 메밀꽃밭으로 비트겐슈타인의 ‘오리-토끼’가 뛰어온다 삼복 여름-메밀밭.
운명, 조롱당하다 유안진
콩 심은 콩 밭에서 팥을 더 추수한다
뱁새가 황새를 앞질러서 날고 있다
인삼 밭에는 민들레가 더 무성하다
통쾌한 21세기 팥으로 매주 쑤고, 황새보다 뱁새, 인삼보다 민들레래.
시간 유안진
현재現在는 가지 않고 항상 여기 있는데 나만 변해서 과거過去가 되어가네.
옛날 애인 유안진
봤을까? 남 알아봤을까?
한국남편 유안진
에덴 동산이 한국 땅에 있었다라면
안타깝다
아담이 한국 남자였더라면 절대로 아내 말을 듣지 않았을 텐데.
계란을 생각하며 유안진
밤중에 일어나 멍하니 앉아 있다
남이 나를 헤아리면 비판이 되지만 내가 나를 헤아리면 성찰이 되지
남이 터뜨려 주면 프라이감이 되지만 나 스스로 터뜨리면 병아리가 되지
환골탈퇴換骨奪胎는 그런 거겠지.
오만과 편견 유안진
불빛 한 점이 마주 오고 있다 충돌위험에 경고신호를 보내도 막무가내이다 무전을 쳤다 “10도 우향하라” 응담이 왔다 “10도 좌향하라” 함장이 다시쳤다 “나는 대령이다 명령에 따르라” 응답이 또 왔다 “나는 일병이다 지시에 따르라” 기가 찬 함장은 최후통첩을 보냈다 “여기 군함이다. 명령 무시하면 박살난다” 응답이 다시 왔다 “여긴 고장난 등대다. 지시 무시하면 박살난다”
어머니의 아버지 손 유안진
늘 두 손에 나눠 쥐고 주셨지 “이건 아버지가 보낸 거, 이건 내가……” 정말로 그런 줄 알았다
램브란트의 ‘돌아온 탕자’에서 탕자를 껴안은 아버지의 두 손이 남자 손과 여자 손인 걸 알고서야 엄마의 한 손도 늘 아버지 손이었음을 엄마이자 아버지였던 내 어머니 하느님아버지도 어머니신 줄 비로소 알았다.
말 되게 말 안 되게 유안진
먹기 싫으면 밥이 코자고 싶어한다 하고 찾아도 없는 양말은 그네 타러 놀이터에 갔다는 세 살 손자의, 물활론적 생각과 전문식電文式 화법은 초문법적 탈문법적 거꾸로 어순에 과감한 생력이다 세 살 때가 시인 나이, 말도사다.
벌초, 하지 말 걸 유안진
떼풀 사이사이 패랭이 개밥풀 도깨비바늘들 방아깨비 풀여치 귀뚜라미 찌르레기 소리도 그치지 않았는데 살과 뼈를 녹여 키우셨을 텐데
다 쫓아버렸구나 어머니 혼자 적적하시겠구나
안경알만 바꿨는데 유안진
물속에는 물고기들이 날아다니고 허공 속에는 새들이 헤엄쳐 다닌다 나 또한 물과 허공 사이를 물구나무서서 다닌다
질겁하고 달려가 따졌더니 안경점 주인은 고래고래 삿대질이다 제대로 똑바로 잘 보이게 주문했지 않았느냐고.
미완에게 바치는 완성의 제물 유안진
까마귀 울음 두 점 떨구고 간 된서리 하늘아래 꽃필 가망 전혀 없는 구절초 봉오리 위에, 떡갈나무 잎 떨어졌다, 빗나갔다 또 한 잎 떨어졌다, 또 빗나갔다 다른 잎이 떨어져 반만 덮였다 또 다른 잎이 떨어져도 덜 덮였다 어디선가 한 잎 날아와 다 덮였다 도토리 빈 깍지, 저도 뛰어 내렸다 바람불어도 날아가지 않겠다.
서울살이 유안진
서울 천리를 와서 가랑잎 하나 줍다
* 이 외줄 시는 고 박목월 시인의 일행시집에 들어있다. 선생님께 시공부하던 대학 3-4학년 때였을 듯, 한 줄짜리 내 시가 무척 당돌하다고 여기실까 봐 오마조마 가슴 조이던 내게, 오히려 선생님의 일행시집에 넣고 싶다고 하셔서, 나는 어쩔 줄 모르게 황송했는데, 출간된 시집을 주시면서, 내 시 끝에 내 이름자를 넣었더니, 출판사에서 어색하다며 지웠다고, “나중에 유군이 외줄시집을 낼 때 가그라”라고 하셨다. 원효로 4가 5번지 선생님댁과 대님도 안 맨 한복바지 차림에 흰 고무신을 끌고 나오시던 원효로 로터리의 심정다방에서, 내 습작시를 보아주시던 선생님이 그립고, 선생님 기대에 못 미치는 오늘 내가 너무 죄송스러워져, 이 짧은 시 모음집에 넣는다.
업적 유안진
산으로 갔는데 강이었고 바다로 떠났는데 사막에 와 있었다 내가 가장 나다워질 수 있는 훗날 거기 찾아 거꾸로 로꾸거로 잘팡질팡 반세기 매미의, 귀뚜라미의, 알프래드 드 뮈세의 평생업적이 울음이었다 해서 헤매임도 업적이 되나요?
아직도 꿈꾼다 유안진
바다로 떠나는 새끼연어들을 새끼붕어들도 뒤따라간다
기러기 떼와 함께 까치 몇 마리도 시베리아로 떠난다 피서를 즐기려고
제비 한 마리가 참새들과 나란히 전깃줄에 앉아 가을볕을 쬔다 텃새가 되려고
서리 허연 가지 사이 개나리 철쭉꽃이 드문드문 피었다 겨울꽃이 되려고
가마우지 새는 물 속을 헤엄치고 싶어했고 날개를 꿈꾸던 다람쥐는 하늘다람쥐가 되었으니까.
■ 시인의 말
나는 야생시인이다. 문학을 전공하지 않았음에도 그 무엇도 되기 전에 제일 먼저 시인이 되어 시인으로 산다. 그래서 질길 것이다. 그래서일까? 늘 거짓말로 참말 하려 하고, 부정함으로 긍정하려 하고, 패배함으로 승리하고 싶고, 넘어짐으로써 일어서려 하고, 나약하기 때문에 강인해지고 싶고, 어리석음이 지혜라고 믿고 싶고, 게으름이 중요한 일 하는 거라고 믿고 싶고, 꿈꾸는 것이 행동하는 것이라고 믿고 싶은 자가 아닐까 한다.
그래서인지 시 쓰기에서도 언어예술의 장치로서, 거짓말로 참말하고 싶고, 부정함으로써 긍정하고 싶어져, 말 되게도 말 안되게도, 未文으로도 非文으로도 주절거리면서, 시 쓰기를 혼자 노는 방법이라고 생각한다면, 공부가 모자란다는 것을 스스로 폭로하는 것일 수도 있겠지만, 본래 약점이란 남이 아닌 스스로 들춰 보는 게 아닌가.
시작기법상 직전시집『거짓말로 참말하기』의 심화 또는 진일보이기를 바라며 모아온 난쟁이 시편들을, 서정시학 ‘극서정시’ 시리즈로 묶어주시는 서정시학사에 감사한다.
2011년 새꽃 봄에 지은이
유안진 시집 [둥근 세모꼴] ▣ 해설 ▣ 말 안 되는 것에 대해 침묵하지 않기 박찬일(시인 • 추계예술대 교수)
1. 가상의 가상
‘세계가 미적으로 정당화된다’면 미는 가상의 가상이라는 말이 된다. 가상으로서의 세계를 가상의 가상의 세계로서 초극하려는 것이다. 가상을 가상의 가상으로서 초극하려는 것은 잘 알려지지 않은 자세다. 혹은, 위버멘쉬의 자세다. 소멸을 거칠게 다루는 자세다. 죽음을 의지意志하는 자세다. 스피노자의 ‘삶에의 의지’가 1차적 의지라면 쇼펜하우어의 맹목적 의지는 2차적 의지다. 니체의 권력의지는 3차적 의지다. 스피노자의 삶에의 의지가 매력적인 것은 선택의 가능성(때문)이다. 삶에의 의지를 팽창시키는 타자를 선택할 수 있고, 삶에의 의지를 팽창시키는 타자를 선택한다. 삶에의 의지를 위축시키는 타자에게 염증에, 염증을 느꼈을 것이기 때문이다. 아니 삶에의 의지가 팽창되는 순간을 기분 좋게, 기분 좋게 느꼈을 것이기 때문이다. 쇼펜하우어의 맹목적 의지에 대한 인식이 그럴듯해 보였던 것은 ‘물 자체’만을 인식할 수 있다는, 즉 현상적으로만 인식할 수 있다는 칸트의 보증 때문이었다. 쇼펜하우어는 ‘현상으로서의 세계에 대한 욕망’을 맹목적 의지라고 하였다. 근대 자연과학은 불확정성의 법칙 또한 얘기하지만, 중력의 법칙, 양성자/중성자의 법칙, 무질서도 증가의 법칙 등으로써 현상〔표상〕너머의 세계 또한 얘기하지만, 문제는 니체의 3차적 의지다. 가상으로의 의지다. 가상으로서 가상을 넘어서는 의지다. 선악을 넘어서는 의지다. 권력의지다. 죽음으로의 의지다.「운명, 조롱당하다」와「아직도 꿈꾼다」를 주목한다.
콩 심은 콩 밭에서 팥을 더 추수한다
뱁새가 황새를 앞질러서 날고 있다
인삼 밭에는 민들레가 더 무성하다
통쾌한 21세기 팥으로 메주 쑤고, 황새보다 뱁새, 인삼보다 민들레래. -「운명, 졸롱당하다」전문①
바다로 떠나는 새끼연어들은 새끼붕어들도 뒤따라간다
기러기 떼와 함께 까치 몇 마리도 시베리아로 떠난다 피서를 즐기려고
제비 한 마리가 참새들과 나란히 전깃줄에 앉아 가을볕을 쬔다 텃새가 되려고
서리 허연 가지 사이 개나리 철쭉꽃이 드문드문 피었다 겨울꽃이 되려고
가마우지 새는 물 속을 헤엄치고 싶어했고 날개를 꿈꾸던 다람쥐는 하늘다람쥐가 되었으니까. -「아직도 꿈꾼다」전문②
부정의 부정, 혹은 가상의 가상이라는 점에서 니힐리즘의 꼭대기에 올라가 있다. ①에서 “콩 심은 콩 밭에서 팥을 더 추수한다”라고 한 것은 콩 심은 콩밭을 가상이라고 한 것이고, 팥을 더 추수한다는 것 또한 가상이라고 한 것이다. “뱁새가 황새를 앞질러서 날고 있다”고 한 것도 마찬가지고, “인삼 밭에는 민들레가 더 무성하다”고 한 것도 마찬가지다. “뱁새”가 가상이고 ‘황새’가 가상의 가상이다. ‘인삼 밭’이 가상이고 ‘민들레’가 가상의 가상이다. ②“바다로 떠나는 새끼연어들을 새끼붕어들도 뒤따라간다”고 한 것도 마찬가지. 바다로 떠나는 새끼연어를 뒤따라가는 새끼붕어들이 없으니까 바다로 떠나는 새끼연어들이 가상이고, 그들을 뒤따라가는 새끼붕어들이 가상의 가상이다. “시베리아로 떠”나는 “기러기”를 뒤따라가 “피서를 즐기려”는 “까치”가 없으니까, ‘기러기 떼’ 가 가상이고, 까치가 가상의 가상이다. 마찬가지로 ‘제비’가 가상이고, ‘참새’가 가상의 가상이다. ‘가마우지’가 가상이고, ‘다람쥐’가 가상이다. 도대체 가상 아닌 것이 있기나 한 것인가. 단서를 달아야 할 것이 있다. 모든 것이 가상이라고, 혹은 가상의 가상이라고, 평등적으로 대립하지 않는다. 루소의 일반의지․전체의지․공동의지(요약해서 자연의지)들이 여기에 끼어들 수 없다. 루소의 천민민주주의․천민사회주의가 여기에 R끼어들 수 없다. 루소의 천민민주주의․천민사회주의가 여기에 끼어들지 못한다. 「시도 다수결이 아니다」가 이 점을 특별히 짚어낸다.
예술은 민주주의가 아니다 오히려 천상천하유아독존주의天上天下唯我獨尊主義다 다수결多數決은 독창(獨創性의 적敵이라서. -「시도 다수결이 아니다」전문
필자는 시인이 예술은 가상, 혹은 가상의 가상이지만, “예술은 민주주의가 아니”라고 천명한 것으로 이해한다. 예술은 “천상천하유아독존주의(天上天下唯我獨尊主義)”라고 한 것으로 이해한다. 니체가 『권력 의지』에서 “예술은 진리보다 가치 있다”라고 말한 것도 이 때문이다. 『비극의 탄생』에서 ‘세계는 미적으로 정당화된다’라고 말한 것도 힘을 의식한 말이다. 예술이 발명(“독창성”)의 영역이고 진리가 발견의 영역이라면 발명이 힘을 주겠는가. 발견이 힘을 주겠는가. 니체가 철학 예술에 관점주의를 반영한 것도 힘을 주기 위해서다. 관점을 갖는 자는 힘을 가진 자다. 나날이 새로운 관점을 갖는자는 나날이 새로운 힘을 갖는 자다. 가상은 가상을 알아보는 법이다. 사로 ‘그냥’지나치는 법이다. 가상은 말 그대로 “그림의 떡”이기 때문이다.
있는 현실 여기 아닌 없는 현실이 더욱 현실인 나, 이대에게는 무덤덤한 너희, 거기의 그대들도 시큰둥한 그들, 저기의 저대들도 마찬가지 그림의 떡 그림의 떡으로도 배불러서 살찌는 내 허무虛無 -「그대들도 저대들도 이대에게는」전문
그림의 떡을 먹고 “배불러서/살”찔 수는 없다. 가상으로 배부를 수는 없다. 문학이 ‘세계’에 기여하는 것 중에 이른바 ‘허무주의의 부인否認’이 있다. 허무주의의 부인(혹은 부정否定)으로서 보든 정립을 불안정하게 만든다. 심한 경우 해체시켜 버린다. 미적 가상이 세상를 정당화하지만 속내는 세계에 대한 이중적 부정의 토로이다. 부정의 부정이다. 다시 말하자면 세계는 가상이고, 문학예술은 미적 가상이기 때문이다. 허무주의의 전면적 긍정이 구원이기 때문이다.「나는 너무 오래 안전한가?」에서는 ‘안전의 허구’를 보인다. 허구와 가상은 인접의 관계에 있다?
단기 4343 올해까지 931번이나 침략 받아 평균 4년꼴로 전쟁을 겪은 셈인데 1951.7.27 휴전협정 이래 처음으로 57년 동안이나 안전하다는데 내게는 위험이 필요한가? 안전하게 밥 먹고 안전하게 잠자고 안전한 꿈만 꾼다 두통마저 안전해 딱따구리도 두통약 먹을까? 나의 미래는 어디서 오는가? -「나는 너무 오래 안전한가?」전문
“평균 4년꼴로 전쟁을 겪”었다는 것이 “57년”의 ‘전쟁 없음’이 허구라는 것을 일깨워준다. 한반도에 전쟁이 몰아쳐올 수 있다는 것을 일깨워준다. 전쟁과 ‘세계, 혹은 인류의 가상’역시 인접의 관계에 있다. “안전하게 밥 먹고 안전하게 잠자고, 안전한 꿈만 꾼다”는 핍진성 아이러니, 화자의 “미래”는 전쟁에의 의지에 의해 대미大尾를 맞을 수 있다. 인류의 역사가 전쟁의 역사라면(“단기 4343년 올해까지 931번이나 침략 받아/ 평균 4년꼴로 전쟁을 겪은 셈인데”참조)전쟁에의 의지 또한 인류의 중요한 의지가 아닐까. 인류의 ‘죽음에의 의지’의 가장 중요한 발현이 아닐까.
2. 세계내적 사태에 관여하는 신
가상, 혹은 가상의 가상의 다음 수순은 신의 영역이다. 인류가 가상이라면 신은 가상의 가상이다. 물론 유안진이 신과 인류를 순전히 가상으로 치부하고 있다고 단정내릴 수 없다. 단정내릴 수 없다. 구원은 오는가. 내지에서 오는가. 외지에서 오는가. 내부의 의지에서 오는가. 외부의 의지에서 오는가.
만인에게 나눠줄 떡이 될 몸이라서 지명地名이 떡집인 곳은 베들레헴뿐이라서. -「그 아기씨는 왜 거기까지 가서 태어났을까?」전문
외부의 의지에서 온 것이라고 천명한 것으로 보인다. “그 아기씨”는 내부의 소산이 아니기 때문이다. 외부의 소산으로서 인류를 구원할 우주사적 사명을 띠고 태어났기 때문이다. 이를 분명히 하는 것이 시「축 성탄」이다. 외부에서 “마구간”으로 떨어졌다는 것을 분명히 하였다. “가축 냄새”,“말죽통”,“양치기들”, “사막길”을 처음 만난다는 것을 분명히 하였다.
처음 만난 세상은 마구간이었다 처음 맡은 냄새는 가축 냄새였다 처음 누운 침대는 말죽통이었다 처음 만난 사람은 양치기들이었다 처음 떠난 여행은 죽기살기 도망치는 사막길이었다
막장에서 시작된 삶이라야 막장 인생들에게 희망이라고 그렇게 출발해야 참인생이라고, -「축, 성탄」전문
메사야는 세계내적 사태에 관여하는가. “막장 인생들”에게 관여하는가. “희망”으로서 관여한다는 것을 분명히 하고 있다.
막장 인생들에게 희망이라고 그렇게 출발해야 참인생이라고.
메시야는 ‘희망’을 설교했을 뿐이다? “참인생”은 세계밖에 있다고 설교했을 뿐이다? 다음은 「손부터 보여 드려라」다. 전문이다.
병상의 어머니와 동생들을 부양하던 소녀가 먼저 죽게 되었다
성사聖事오신 신부에게 소녀가 고백했다
주일 미사는 늘 빠졌고, 기도도 눈감자마자 잠들어버리곤 했습니다
신부는 소녀의 손을 잡았다. 나무껍질 같고 막돌맹이 같았다
괜찮다 얘야, 하느님께는 네 손부터 보여 드리거라.
감동적인 시다. 유감은 세계내운행에 간섭하지 않는 “하느님”에 대한 확인이다. “병상의 어머니와 동생들을 부양하던 소녀”의 죽음에 하느님은 무엇을 해줄 수 있을 것인가. 뜨거운 눈물만 흘리시는 하느님. 문제는 세계외적 존재로서의 일자다. 세계내운행에 간섭하지 못하시는 하느님이다. 스피노자가 “신 즉 자연”이라고 한 것은, 쉘링이 “자연에 신이 숨겨있다” 한 것은, 이들이 세계 자연에 신성이 깃들어 있다고 한 것은, ‘세계의 운행에 간섭하시는 하느님’에 대한 우회적 요구가 아니었을까, 라고 생각해본다. 이들이 ‘공중’으로부터 인류를 구원하러 오신 예수를 부정한 것은 ‘세계내적 존재로서의 하느님’의 세계내운행에 대한 간섭의 간절한 요구가 아니었을까, 생각해본다.
검정 비닐봉지가 매달린 막대기를 높이 흔들며 모퉁이에서 덜덜 떠는 거지아이 맨발에 구멍난 운동화 어깨에는 홑옷 한 장 걸려 있다
떡볶기에 어묵 한 접시와 싸구려 잠바에 함빡 웃다가 하느님 사모님이죠? 바빠서 대신 보내셨군요 기도하고 기다렸죠 못 알아볼까봐 이걸 마구 흔들면서
아니다, 그 분 딸이란다. -「하느님 사모님」전문
‘일종’의 범신론적 사유가 돋보이는 시, 세계의 운행에 관여하시는 “하느님”, “사모님”도 있고 “딸”도 있는 하느님. “거지아이”에게 “떡볶기에 어묵 한 접시와 싸구려 잠바”를 안겨 주시는 신. ‘하느님, 세계의 운행에 관여 해주소서’라고 요청하고 있다. 물론 하느님 사모님, 하느님 딸들은 기독교인들에 대한 알레고리일 수 있다. ‘하느님, 그들을 통해서라도 세계의 운행에 관여해 주소서’라고 요청한 것일 수 있다. 그들에게 “검정 비닐봉지가 매달린 막대기를 높이 흔들며/ 모퉁이에서 덜덜 떠는 거지아이”를 외면하지 말라고 요청한 것일 수 있다.
3. 말 안 되는 것에 침묵하지 않는 자
신문이 빈 벤치에 앉아 자꾸 손짓한다
가 앉아 펼쳐드니 은행잎들 자꾸 떨어져 가린다
읽을 건 계절과 자연이지 시대나 세상이 아니라면서. -「노랑말로 말한다」전문
“시대”가 없는 곳, 인류가 없는 곳에도 하느님은 존재하실까. “은행잎들”이 떨어지는 것을 보는 인류가 없어도 하느님은 존재하실까. “빈 벤치”를 인류가 없는 곳에 대한 알레고리로 보고 하는 말이다. “신문”을 “펼쳐” 든 것은 하느님? 하느님이 시대와 “세상”을 읽고 계신다고? 이쯤에서 이전 시집 『거짓말로 참말하기』를 떠올리는 시「말 되게 말 안 되게」를 언급하지 않을 수 없다. 시인은 거짓말로 참말하는 자? 비트겐슈타인의『논리철학논고』는 “말할 수 없는 것에 대해서는 침묵하라”고 끝나고 있지만,『논리철학논고』에서 비트겐슈타인은 세계는 사실(사태, 사건)들의 총체이고, 사실들은 상호 논리적 관계이고, 사고가 논리적 그림을 그리고, 여기에서 (요소) 명제가 도출되고, 언어가 이러한 요소 명제들의 복잡한 연관을 표시하고 (이를테면 “이 집이 저 집보다 크다”), 복잡한 명제들의 진리는 명제의 구성요소인 요소명제의 참/거짓에 좌우된다고 했지만, 시인은 말 되는 것과 말 안 되는 것을 분별하지 않는 자가 아닐까. 말 안 되는 것에 대해 특히 침묵하지 않는 자가 아닐까. 비트겐슈타인에 의해 침묵해야 할 것으로 주로 거론되는 것은 신, 세계, 자아들이었다. 유안진은 그러나 신에 대해서, 신이 관여해야 할 세계, 자아들에 대해 얘기한 것이 아닐까.
먹기 싫으면 밥이 코자고 싶어한다 하고 찾아도 없는 양말은 그네 타러 놀이터에 갔다는 세 살 손자의, 물활론적 생각과 전문식電文式화법은 초문법적 탈문법적 거꾸로 어순에 과감한 생략이다 세 살 때가 시인, 나이, 말도사다. -「말 되게 말 안 되게」전문
움직씨들 이름씨들 꾸밈씨들 어찌씨들만을 줄 세워도 선문답처럼 오오래 머얼리 바닥에까지 메아리친다면
말 가지고 혼자 놀다가 깜짝 놀라는 말 낭비 말본에서도 도망칠 재주 없이 탄식하며. -「未文으로 非文으로」전문②
① “초문법적 탈문법적”인 것들이 침묵해야 할 것들이다. 신, 세계, 자아 같은, 말하면 안 되는 것들이다. 신을 얘기하는 유안진이 신비스럽다. 세계, 자아를 얘기하는 유안진이 신비스럽다. ② “말 가지고 혼자 놀다가/ 깜짝 놀라는 말 낭비”도 비트겐슈타인을 거역한 것. 유안진의 시는 “말 되게 말 안 되게”,‘미문未文으로 비문非文으로’, “오오래 머얼리 바닥에까지 메아리”칠 것이다.
까마귀 울음 두 점 떨구고 간 된서리 하늘아래 꽃필 가망 전혀 없는 구절초 봉오리 귀에, 떡갈나무 잎 떨어졌다, 빗나갔다 또 한 잎 떨어졌다, 또 빗나갔다 다른 잎이 떨어져 반만 덮였다 또 다른 잎이 떨어져도 덜 덮였다 어디선가 한 잎 날아와 다 덮였다 도토리 빈 깍지, 저도 뛰어내렸다 바람 불어도 날아가지 않겠다. -「미완에게 바치는 완성의 제물」전문
순간문체란 말이 있었다. 시간확대경기술이라는 말이 있었다. 서술시간과 서술된 시간의 일치라는 말이 있었다. 시인은 미微하고 세細한 것을 포착할 줄 안다. 정말 변함이 없는 생각이다. 유안진은 시인이다.
4. 나가며
시「안경알만 바꿨는데」에 말 안 되는 것에 대해 침묵하지 않는 ‘유안진’이 담겨 있고, 무엇보다도 ‘가상의 가상’에 천착하는 ‘유안진’이 담겨 있다. 전문이다.
물속에는 물고기들이 날아다니고 허공 속에는 새들이 헤엄쳐 다닌다 나 또한 물과 허공 사이를 물구나무서서 다닌다
질겁하고 달려가 따졌더니 안경점 주인은 고래고래 삿대질이다 제대로 똑바로 잘 보이게 주문했지 않았느냐고.
현실이 가상일 수 있고, 그 반대 또한 가능하다는 것을 보여준다. 안경을 끼는 것은 미적 행위에 대한 알레고리. 가상의 가상행위! 감각할 수 있는 것들이 모두 경험이 되는 게 아니다. 꿈속 사태를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감각할 수 있지만 실제 사태와 거리가 있지 않은가. 비현실의 경험? 세상을 꿈꾸듯, 꿈처럼, 가상으로 대접하면 편해지지 않을까. 현실을 가상으로 대접하게 하여 편하게 해주는 “안경점 주인”이 정말 있을지 모른다.▩
================= ◆ 표사의 글 ◆
필자는 시인이 예술은 가상, 혹은 가상의 가상이지만, “예술은 민주주의가 아니”라고 천명한 것으로 이해한다. 예술은 “천상천하유아독존주의(天上天下唯我獨尊主義)”라고 한 것으로 이해한다. 니체가 『권력 의지』에서 “예술은 진리보다 가치 있다”라고 말한 것도 이 때문이다. 『비극의 탄생』에서 ‘세계는 미적으로 정당화된다’라고 말한 것도 힘을 의식한 말이다. 예술이 발명(“독창성”)의 영역이고 진리가 발견의 영역이라면 발명이 힘을 주겠는가. 발견이 힘을 주겠는가. 니체가 철학 예술에 관점주의를 반영한 것도 힘을 주기 위해서다. 관점을 갖는 자는 힘을 가진 자다. 나날이 새로운 관점을 갖는자는 나날이 새로운 힘을 갖는 자다. - 박찬일(시인)
나는 야생시인이다. 문학을 전공하지 않았음에도 그 무엇도 되기 전에 제일 먼저 시인이 되어 시인으로 산다. 그래서 질길 것이다. 그래서일까? 늘 거짓말로 참말 하려 하고, 부정함으로 긍정하려 하고, 패배함으로 승리하고 싶고, 넘어짐으로써 일어서려 하고, 나약하기 때문에 강인해지고 싶고, 어리석음이 지혜라고 믿고 싶고, 게으름이 중요한 일 하는 거라고 믿고 싶고, 꿈꾸는 것이 행동하는 것이라고 믿고 싶은 자가 아닐까 한다. - 시인의 말 중에서
▶유안진 시인 안동출생 임동초등학교, 대전여중, 대전호수돈 여고, 서울대학교 사범대학졸, 1965년 현대문학에 초회추천, ’66년 2회, ’67년에 3회 추천 완료. 서울대 교육대학원 교육심리학 전공. 미국 Florida State University에서 Ph. D취득. 첫시집『달하』에서『물로 바람으로』『날개옷』『월령가 쑥대머리』『구름의 딸이요 바람의 연인이어라』『다보탑을 줍다』『거짓말로 참말하기』『알考(고)』등 14권의 신작시집과 『세한도 가는 길』『빈 가슴을 채울 한마디 말』등 시선집 13권, 『지란지교를 꿈꾸며』등 다수의 수필집, 『바람꽃은 시들지 않는다』『다시 우는 새』『땡삐 4권』등 민속장편서사소설집. 정지용문학상, 한국펜문학상, 소월문학상특별상, 월탄문학상, 이형기문학상, 유심문학상, 구상문학상 등 수상. 마산제일여중고, 대전호수돈여중고, 서울대유급조교, 한국교육개발원 책임연구원, 단국대교수, 서울대교수로 퇴직, 현재 서울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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