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현두 의학박사의 요양병원 이야기(73)
사랑한다는 말 한마디
요양병원은 많은 사람에게 일종의 종착역 역할을 한다. 이분들을 만나고 대화를 해보면 한평생을 살아오며 왜 그렇게 못했던가 하고 후회하는 말을 종종 듣게 된다.
정 할머니는 90세로 열아홉에 시집을 와 2남 5녀를 낳았다고 한다.
“할머니, 지금까지 살면서 가장 후회되는 것이 있다면 무엇입니까?”
“사랑한다는 말을 못 한 것이 제일 후회스럽다오.”
사랑한다는 말 한마디 못한 것을 아직도 후회하고 있는 것이다.
어떤 이는 자녀들에 대해 끝없이 희생하며 자신을 돌보지 않았던 지난날을 후회하기도 한다. 자녀들에게 무한한 애정을 가지고 있는 것 없는 것 다 퍼주었는데도 자녀들이 냉담하다며 울분을 토하는 경우도 있다. 자녀들에게 무한히 퍼준다고 좋은 것은 아니다. 사랑이 과하면 자식을 망치는 경우도 있다. 자식과 의절한 사람도 있다.
우산공장을 하여 크게 성공한 분이 화장실에서 넘어져 다리 골절로 우리 병원에 오신 분이 계셨다. 자녀가 아들 하나뿐이라 금지옥엽처럼 키워 중학생 때 캠핑 가겠다는 것도 못 가게 했고, 대학생 때 유럽 배낭여행 가겠다는 것도 위험하다며 못 가게 했다. 군대에 보내놓고도 안심을 못해 매주 면회를 가곤 했다. 그러고도 아들이 못 미더워 번창한 사업을 물려주지 않겠다고 했다.
“저를 심약한 바보로 만든 것은 바로 아버지예요. 집에서 한 발짝도 못 나가게 막아놓고 이제 와서 멍청하다고 하니 저는 이제 아버지를 절대 보지 않을 것입니다.”
자식과도 절제된 사랑이 필요하다는 것을 느끼게 한다.
부부관계도 사랑이 과하면 집착이 되어 의처증, 의부증으로 고생하는 사람이 적지 않다. 가족이 없으니 기댈 곳이 없어 후회스럽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다.
의사가 되어 60세가 넘으니 이제야 병을 가진 환자가 아닌, 인격을 가진 한 인간의 전체가 보인다.
한 분은 아들이 60이 넘었는데 결혼을 못 시켜 한이라고 했다. 저승에 가서 조상님들 뵐 면목이 없어 눈을 감을 수가 없다며 울먹이기도 한다.
한 분은 70대 후반에 암 진단을 받고 서울의 유명 병원으로 바로 달려가 치료를 받고 오신 분도 있다. 70세를 살았다는 말은 차를 70년 썼다는 것과 비슷하여 고장이 없는 것이 이상할 정도이다. 암이 생겨 전문의를 만나보면 10% 가능성이 있다는 말을 듣는데 이것은 치료해도 고생만 하고 가망성이 없다는 말을 부드럽게 표현한 것이다.
그때는 몰랐는데 나이가 드니 이제야 아는 일도 있다. 그때도 알았지만 형편이 안되어 못한 일도 있다.
천명의 죽음을 지켜본 호스피스 전문의가 쓴 <죽을 때 후회하는 스물다섯 가지>라는 책에서 저자 오츠 슈이치는 환자들이 가장 후회하는 말을 다음과 같이 전한다.
1. 사랑하는 사람에게 고맙다는 말을 했더라면
2. 진짜 하고 싶은 일을 했더라면
3. 조금만 더 겸손했더라면
4. 친절을 베풀었더라면
5. 나쁜 짓을 하지 않았더라면
6. 꿈을 꾸고 그 꿈을 이루려고 노력했더라면
7. 감정에 휘둘리지 않았더라면
8. 만나고 싶은 사람을 만났더라면
9. 기억에 남는 연애를 했더라면
10. 죽도록 일만 하지 않았더라면
11. 가고 싶은 곳으로 여행을 떠났더라면
12. 내가 살아온 증거를 남겨두었더라면
13. 삶과 죽음의 의미를 진지하게 생각했더라면
14. 고향을 찾아가 보았더라면
15. 맛있는 음식을 맛보았더라면
16. 결혼을 했더라면
17. 자식이 있었더라면
18. 자식을 혼인시켰더라면
19. 유산을 미리 염두에 두었더라면
20. 내 장례식을 생각했더라면
21. 건강을 소중히 여겼더라면
22. 좀 더 일찍 담배를 끊었더라면
23. 건강할 때 마지막 의사를 밝혔더라면
24. 치료의 의미를 진지하게 생각했더라면
25. 신의 가르침을 알았더라면
지금도 늦지 않다. 후회되는 것을 적어보자. 그리고 이제라도 사랑한다는 말을 해보자.
나 자신의 삶을 진지하게 되돌아보자. 자녀가 품 밖으로 벗어나면 지켜보고 기다려주고 절제된 사랑을 해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