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십니까
이 홍사
수백의 계절을 걸어서 이 먼 곳까지 온
당신은 누구십니까
제 이름을 호명하다가 잘못 찾아온 행성입니까
여기는 먼 행성 거친 바람과 돌만 가득한 이름 모를 별 지친 걸음으로 도착한 당신은 그대의 등 뒤에 돌아눕는다 거친 바람이 돌을 굴리는 소리가 아득히 들렸다 나무는 보이지 않았다 불모지 피어있는 것이라곤 당신의 밋밋한 얼굴에 검버섯뿐 당신은 별 아래 매달린 꽃을 꺾으러 왔다가 길을 잘못 들었다 꽃은 보이지 않고 당신 속에 열꽃이 핀 모양 세상에 이런 별을 누가 만들었을까
거미가 먼 나라의 저녁을 물고 내려왔다
행성의 저녁 호빵처럼 말랑말랑하며 따뜻했다 이 작은 행성은 거미의 천국 거미 언어로 소통했다 거미가 곰과 물고기를 지배하고 거미가 인간을 사육하는 나라 당신은 고집스레 돌아앉아 불판에 거미를 굽는다 살아있는 거미의 갑골문자가 불판 위에서 돌아눕는데 왜 당신의 사지가 오그라질까 먹는다는 건 지구나 행성이나 동물들에게 선택 사양 품목이 아니었지 인간도 거미도 예외는 아니야 당신은 구운 거미를 먹고 입에서 거미줄을 뽑아낸다 그 줄에 매달려 지구로 돌아갈 수 있을까 차라리 되새가 되어 날개를 펴지 돌아보니 거미의 행성에는 새가 없다 새는 다 어디로 갔을까
낯선 미로를 기웃거리는
행성의 집시가 된 당신은
누구인가
여기는 거친 바람만 가득한 행성
꿀이나 젖이 없는데
젖을 달라고 징징대는 그대는
누구십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