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ㆍ인천 앞바다 소무의도 옛 무도국교...섬주민 혼연일체 애국
ㆍ작은 섬에 강습소 운영하며 미래 교육...해방되자 마자 학교 건립
ㆍ백범 김구, 소무의도 주민 군자금 감사해 1946년 방문 시국연설
한국 근·현대사는 학교 교육에 ‘진심’이었다. 끼니조차 잇기 어렵고 부존자원이 없는 민족에게 오직 교육만이 가난을 이기고 부유한 국가가 될 수 있다는 확신이 있었다. ‘국가교육백년대계’가 그렇게 시작됐다. 그런데 1980~1990년대 무렵 교육백년대계가 급격히 무너지기 시작했다.
폐교 도미노였다. 저출생 현상 등이 초등학교 폐교에 이어 중·고등학교, 대학으로 이어질 전망이다. 이는 곧 지역 사회의 몰락과 국가의 위기를 뜻한다.
학교 폐교는 한국 사회의 모순을 상징적으로 보여 준다. 청년층의 비혼과 그 여파에 따른 저출산, 급속한 고령화와 세대 간 갈등, 지역 불균형과 수도권 집중화 등의 모순을 안고 있다.
폐교는 ‘오래된 미래’이다. 인구감소, 지방소멸 등의 관점에서 폐교를 앞으로 살릴 방안을 모색할 때이다. 이 시리즈는 인문지리학 관점으로 폐교를 통해 지역 및 한국 사회를 분석하는 르포 연재이다. <편집자 주>
인천국제공항 남쪽 소무의도의 옛 무도국교. 1946년 백범 김구의 시국 연설이 행해졌던 학교다. 운동장 한쪽에 22억여 원을 들인 소라형 건물(스토리움)은 자연 환경에 스며들지 못했다. 폐교는 버려진 채 허물어져 가고 있고, 운동장은 방목 염소가 차지했다. 사진=전정희 기자
서해 펄을 매립해 조성한 인천 송도국제도시에서 서쪽 직선거리로 15㎞ 지점에 작은 섬 소무의도가 있다. 인천국제공항 제1여객터미널에서는 남쪽으로 직선 9㎞ 지점이다. 여의도의 4분의 1 면적이다.
지난 17일 소무의도 몽여해변의 ‘소무의도 스토리움’ 건물 3층 갤러리에는 인천 관내 학생들의 섬 관련 미술 작품들이 걸려 있었다. 섬 일대에 복사꽃 등 봄꽃이 만발했던 탓인지 관람객이 없었다. 건물 1~2층은 섬 역사를 벽면에 담은 카페였다.
섬 주민들, 밥 지을 때 쌀 한 줌 모은 성미(誠米)
임시정부에 보내 독립 지원
스토리움은 2015년 개관했다. 우리말 새싹이 돋아나는 뜻을 지닌 ‘움’ 붙였다. 스토리움 건물은 작은 해변 마을에 걸맞지 않게 지나치게 요란했다. 소라 모양 건축이 주변 환경에 스며들지 않는다.
스토리움은 인천 중구청이 관광 활성화를 목적으로 22억여 원의 예산을 들여 개관, 현재는 인천 중구문화재단과 무의도 마을협의회가 공동 운영한다.
항공 뷰로 본 소무의도. 마을 뒷쪽 해변 위치가 옛 무도국교이다. 다리는 사람만 다닐 수 있는 인도교이다. 항공 사진을 AI제미나이로 스케치했다. 제작=전정희 기자
이 스토리움 땅은 옛 무도국교 부지 일부였다.
1946년 11월 23일. 이 외딴섬에 해방 대한민국의 지도자 백범 김구가 방문했다. 중국 임시정부에서 귀국한 지 1년째 되던 날이었다. 그가 찾은 곳은 바로 어린이들이 공부하던 무도국교이다. 백범은 섬 주민과 어린이들이 참석한 가운데 민족의 미래에 대한 시국 강연을 했다.
백범은 당시 인천 지역 순시 중 소무의도 주민들이 가난한 형편 속에서도 정성을 모아 대한민국 임시정부에 독립자금을 전달했던 것에 감사의 뜻을 표하러 왔었다. 소무의도 지역 유지이자 마을지도자 최의섭(1912~1994) 등 깨어 있는 섬 주민들이 밥 지을 때마다 성미(誠米) 한 줌씩을 모아 임시정부 군자금을 만들어 전달했기 때문이다.
소무의도 옛 무도국교 교정의 책읽는 어린이상. 사진=전정희 기자
골목 저 편으로 바다가 보이는 옛 무도국교 교문. 사진=전정희 기자
일제강점기 소무의도는 특산 사쿠라에비(홍새우) 최대 생산지로 그 수확물의 전량을 오사카, 고베 등으로 수출하던 부유한 어촌이었다. 이 새우 판매 대금이 임시정부로 향했다.
소무의도는 바로 옆 무의도 면적의 8분의 1에 지나지 않는다. 그럼에도 1960~70년대까지 파시 등이 열리며 대·소무의도의 중심지로 번성했다. 이에 힘입어 최의섭 등과 같은 마을지도자들이 교육의 중요성을 알고 해방 직후 무도국교를 설립했다. 이 정식 학교 이전에는 강습소, 간이학교 등으로 운영됐다.
무도국교는 잦은 행정구역 개편과 인천국제공항 대역사 등으로 분교, 분교실로 격하 운영되다 1995년 3월 폐교됐다. 이날 폐교 건물에 이웃해 살고 있는 김상혁(가명·60대)씨는 “한창때는 80여 명이 재학하던 학교로 그 졸업생만 500여 명 넘는다”라고 말했다.
멀리서 본 소무의도의 옛 무도국교(원형 건물 자리). 일제강점기 새우 파시로 흥청 대던 곳이다. 사진=전정희 기자
그러나 이러한 섬 주민의 배움터의 학교 건물은 방치되어 있고, 운동장은 염소 방목으로 버려져 있다. 역사성을 안고 있는 교사와 운동장을 살려 되레 ‘스토리움’과 같은 공간으로 만들었어야 맞지 않았나 싶다.
그 무방비로 버려진 일자형 교사 뒤로 섬 주민의 생활상을 느낄 수 있는 우물이 있고, 우물 언덕으로 난 골목은 섬마을 옛 정취가 느끼게 한다.
천지개벽한 인천국제공항 인접 연도(連島) 섬마을 소무의도. 일제의 눈치를 봐가며 임시정부 군자금을 모으고, 미래의 아이들을 가르치기 위해 학교를 설립했던 공간이 ‘아직’ 남아 있었다.
인천=전정희 문화전문 기자 oklaka@oknews.news
이병호
남북교육연구소장. 교육학 박사. 북한연구학회 부회장. 한국통일교육학회 부회장. 통일부 '평화통일교육개혁 TF' 위원. 교육대개혁 국민운동본부 공동대표. 교육대개혁국민운동본부 평화공영교육센터장. 전 고려대 교육대학원 등 초빙교수. 논문 - 교과교육과정기준 개선에 관한 연구(2008) 외. 저서『북한교육과 평화통일교육』(2025) xinchon@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