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九 | 州 | 禹 | 跡 |
아홉 구 | 고을 주 | 임금 우 | 자취 적 |
百 | 郡 | 秦 | 幷 |
일백 백 | 고을 군 | 나라 진 | 아우를 병 |
우임금은 중국을 9주로 나누었고, 진나라의 시황은 이를 6국으로 병합해 전국을 100군으로 나누었다.
[풀이] 중국 전체의 넓은 땅을 행정 구역상으로 나눈 것을 말함으로써 옛군주의 치적을 말하고 있다.
변방에 설치한 4군과 6진
조선시대 우리나라의 주위를 살펴보면 서쪽에는 명나라가 있었고, 북쪽에는 여진족이라는 야인들이 압록강과 두만강을 사이에 두고 자주 침범해 오곤 했습니다.
또한 남쪽으로는 일본의 왜구들이 자꾸 쳐들어와 우리나라의 양민들을 괴롭혔습니다.
세종대왕은 회유정책을 씀으로써 왜구를 달래어 잘 다스렸으나, 북쪽의 여진족은 그대로 남아 있었습니다.
원래 여진족이란 만주 지방을 중심으로 일어났던 부족으로서 차츰 그 세력을 넓혀 중국의 북쪽을 침입하여 ‘금'이라는 나라까지 세웠습니다.
그러나 몽고족이 일어나 원나라를 세우자, 금나라를 세웠던 여진족은 그 세력이 점차 약해지면서 사방으로 흩어지고 말았던 것입니다.
그들 중 일부가 우리나라 북쪽 두만강과 압록강의 두 강가에 흩어져 살았는데, 우리나라는 그들을 야인이라고 불렀습니다.
이들이 수시로 우리나라로 쳐들어왔기 때문에 동북쪽의 변방은 항상 편안한 날이 없었습니다.
그리하여 이 지방은 조선 초기부터 특별히 주의를 기울여, 태조는 경홍에 경원부를 설치하여 이 지방을 지키게 하였습니다.
그러나 이 경원부는 여진족을 막아 내지 못하여 경성으로 옮겨 왔습니다.
그 후 경성은 이 방면의 야인들을 막아 내는 중심지가 되었고, 그 이북 지방은 자연히 여진족에게 짓밝히는 대로 맡겨 둘 수밖에 없는 형편에 이르렀던 것입니다.
그래서 조정의 여러 대신들 사이에는 경원부를 다시 더 남쪽으로 옮기는 것이 좋겠다는 의견까지 나오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세종대왕은 우리조상으로부터 물려받은 영토를 더 넓히지는 못할망정 절대로 줄일 수는 없다고 생각하였습니다.
그리하여 경원부를 전보다 더 북쪽으로 옮겨 전진시키기로 했습니다.
또한 엄연한 우리의 땅인 두만강과 압록강까지는 반드시 되찾아야 했습니다.
이런 결심을 굳힌 세종대왕은 우선 고려 말엽에 최무선이 발명한 화약과 병기 제조 기술을 익힌 그의 아들 최 해산에게, 새로운 화약의 제조와 병기의 개량을 명령하였습니다.
최 해산은 곧 화차· 완구· 발화· 신포· 화통 등 새로운 무기들을 많이 만들어 냈습니다. 또 화포를 쏘는 군사를 길러 내기도 했습니다.
세종대왕은 이 화포군을 북쪽 변경에 배치함으로써 여진족의 침입을 막고 또 공격하는 데에도 사용토록 하였습니다.
그러던 중, 세종대왕이 즉위한지 15년째 되는 1433년, 여진족은 저희들 부족끼리 대대적인 싸움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니 자연히 그들의 세력은 약화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러자 평소부터 세종대왕의 북진 정책을 적극적으로 지지해오던, 우부대언 김종서 장군은 마침내 좋은 기회가 왔다고 생각하였습니다.
그래서 곧 세종대왕에게, "그 동안 북쪽 변방에 침략하여 우리 양민을 괴롭히던 야인들이 지금 저희끼리 큰 싸움을 벌이고 있습니다. 이 기회에 야인을 무찔러야 할 줄로 아옵니다."하고 말하였습니다.
"옳은 말이오. 그래 경에게 좋은 생각이라도 있소?"
세종대왕은 매우 기뻐하며 이렇게 물었습니다.
"변방의 요소요소에 성을 쌓고 군사를 두어 지키게 하면 야인들이 감히 침입하지 못할 것이옵니다."
"참으로 좋은 생각이오."
그리하여 세종대왕은 김종서 장군을 함길도 (지금의 함경남북도) 도관찰사로 임명하여 변방 개척과 국방력 강화의 총책임을 맡겼습니다.
'호랑이 장군'으로 불리는 김종서 장군이 여진족을 무찌르기 시작하자, 여진족은 얼마 안 가 두만강 건너 만주 땅으로 모두 도망쳐 버렸습니다.
두만강 변방의 여진족을 모조리 평정한 김종서 장군은 곳곳에 성을 쌓기 시작하였습니다. 즉, 경원· 종성· 회령· 경홍 . 온성· 부령에 성을 쌓아 진을 설치하였습니다.
이것이 이른바 6진으로, 이로써 두만강 이남의 땅은 모두 조선의 영토가 되었고, 그 후로 여진족은 국경을 침범할 엄두도 내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이번에는 압록강 부근의 여진족이 여전히 우리나라를 괴롭히고 있었습니다.
이에 세종대왕은 최윤덕 장군과 이천 장군에게 명하여 그곳을 평정하도록 하였습니다.
그리하여 최윤덕 장군은 여연군과 자성군을, 이천 장군은 북창군과 우예군을 설치하였습니다.
이로써 압록강 상류에는 4군이 이룩된 것이었습니다.
이 때부터 우리나라는 백두산에서 동쪽으로 흘러내리는 두만강과 서쪽으로 홀러내리는 압록강을 경계로, 한반도를 완전히 차지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이 국경은 지금도 변함이 없으나 우리는 가 볼 수가 없습니다.
출처 : 이야기 천자문(김성원 감수, 김문권 편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