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생과 초기 삶
《삼국사기》와 《삼국유사》에 의하면 무령왕은 동성왕의 둘째 아들이고, 《일본서기》와 《속일본기》에 의하면 비유왕 또는 개로왕의 동생인 곤지의 아들로, 그의 어머니는 본래 개로왕의 후궁이었다. 일본서기와 속일본기의 자료에 의하면 동성왕은 그의 이복형이 된다. 《일본서기》에 의하면, 개로왕이 임신한 후궁(실제로는 곤지의 애첩)을 그의 동생 곤지에게 주어 일본으로 가게 했다고 한다. 461년 규슈 쓰쿠시(筑紫)의 각라도(各羅島)에 도달할 즈음 갑자기 산기를 느껴 사내 아이를 출산하였는데 이가 무령왕이라고 한다. 무령왕릉 지석에 의하면, 그가 섬에서 태어났다 하여 곤지는 그의 이름을 사마라고 지었다고 한다.
일본서기의 백제신찬에서 무령왕이 개로왕의 아들로 되어 있고 송서에도 무령왕이 개로왕을 친부로 부르고 있다. 그러나 《삼국사기》와 《삼국유사》에는 사마왕이 동성왕(부여곤지의 둘째아들)의 아들로 기록되어 있는데 무령왕릉에서 발견된 지석에 따르면 동성왕과 무령왕의 나이가 거의 비슷하여 부자관계가 아니라, 무령왕이 동성왕(모대)의 이복 동생 또는 씨가 다른 남남(동성왕은 모씨, 무령왕은 여씨)일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다. [3] [4]
《일본서기》에 따르면 선대 개로왕의 동생인 곤지의 큰 아들이다.[6] 곤지가 일본에 가던중 어느 섬[7]에 정박하여 무령왕을 낳았는데, 섬에서 태어난 것 때문에 사마왕이라 하기도 한다. 《일본서기》는 무령왕의 이름을 島君(세마키시)라고 전하는데, 발음상 유사하여 사마왕이 된 것으로 보인다. 한문 표기가 여러 가지로 전하는 것 역시 음차를 이용하였기 때문으로 추정된다. 무령왕이 태어난 섬의 동굴에는 관련 설화가 전해지고 있기도 하다. 덧붙여서 서동요에 나오는 '서동'으로 추정되는 사람 중 한 명.
사실 무령왕이 곤지의 아들이며 동성왕의 이복형이라는 것은 《일본서기》의 기록이고[8] 《삼국사기》와 《삼국유사》에는 동성왕의 둘째 아들로 기록되어 있다(백제의 역대국왕에 있는 가계도는 《삼국사기》 기록에 따른 것이라 그쪽도 일단 이리 표기되어 있다). 하지만 무령왕릉 발굴 결과 무령왕이 동성왕이나 삼근왕보다 나이가 많은 것으로 밝혀져서 현재는 《일본서기》의 기록 쪽을 인정하고 있다. 다만 동성왕의 경우는 문주왕의 아들일 거란 가설이 있어서 무령왕과 동성왕의 혈연관계가 정확히 어떠한지는 아직 분명치 않다.
한국 역사인데 일본서기를 믿어야 한다는것도 좀 꺼림직한데 그것도 정립된것도 아니고
삼국사기 쪽이 금석문이랑은 더 안맞는데
어떻게 보면 수백향 설정도 무리수는 아닐지도.. 정설이 없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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