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4월 11일 하늘언어교회
본문: 마태복음 9장 13절
너희는 가서 내가 긍휼을 원하고 제사를 원하지 아니하노라 하신 뜻이 무엇인지 배우라 나는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요 죄인을 부르러 왔노라 하시니라
강론: ’거룩한 편애‘ 조영찬 전도사
편애란 치우친 사랑을 말합니다. 편이 치우칠 편자여서 이 글자가 들어간 단어는 좋지않은 의미로 사용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편견, 편식, 편애 등에서처럼 이것은 한쪽으로 치우쳐서 균형이 깨진 의미로 많이 사용합니다.
그런데 균형이 심각하게 깨졌을 때에는 그것을 바로잡기 위해 기울어진 쪽, 결핍된 쪽에 힘을 실어줘야 합니다. 예를 들어 영양에 균형이 깨졌다면 부족한 쪽 영양소를 편식할 필요가 있습니다. 이것을 치료적 편식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사회도 마찬가지입니다. 부와 권력 등이 지나치게 한쪽으로 치우쳐 있으면 가진 자들의 부를 덜어서 약자들에게 분배하는 분배적 적의가 실현되어야 합니다. 그러나 가진 자들은 그것을 내놓지 않으려 하고 오히려 더 많이 축적하려 하기 때문에 세상은 갈수록 양극화가 가속화되고 있습니다.
이러한 현실에서 사회적 약자들은 갈수록 고립과 박탈감을 면할 수 없습니다. 특히 약함의 정도가 심할수록 소외와 고립의 정도가 커지게 됩니다.
사회적 약자 중에서 육체가 건강하고 장애가 없는 노동자들은 그들의 인권을 옹호하기 위해 투쟁할 수 있고 억압에 저항할 수 있습니다. 그처럼 처지가 비슷한 이들이 모이면 권리를 쟁취하기 위해 뭉치고 단결해서 큰 힘을 발휘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세상에는 그렇게 저항할 힘조차 없는 최약자들이 많습니다. 불치병자, 중증장애인, 시청각장애인 등 세상의 밑바닥에서 생존하는 이들은 노동자들처럼 집단행동이나 투쟁을 하는 일조차 여의치 않습니다. 언어와 육체의 부자유 때문에 세상과 말 한마디 소통하는 일, 세상을 향해 한 걸음을 내딛는 일 자체가 커다란 모험인 사람들입니다.
이런 사람들에게는 이해관계를 떠나서 무조건적인 이해와 지지와 손을 잡아주는 일이 절실합니다. 세상적인 안목으로는 이런 이들에게 다가가는 일조차 쉽지 않습니다. 아니 이런 사람들이 존재하고 있다는 사실조차 모르는 이들이 많습니다.
이러한 최약자들을 사랑할 수 있다면 그것은 초월적인 사랑입니다. 인간적인 사랑은 대상이 뭔가 매력적이거나 장점을 가졌기 때문에 사랑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최약자들에게는 그러한 매력이나 사랑받을 만한 이해관계가 없습니다.
이렇게 이해관계나 사랑할만한 이유 없이 사랑하는 것이야말로 사랑의 본질에 가장 부합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진정한 사랑의 낭만이고 어둠 속에서 허덕이는 세상에 참빛을 던져 줄 새 희망의 밧줄입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가르쳐주시고 몸소 모범을 보여주신 것은 단순한 약자들에 대한 한시적 사랑이나 관심 정도가 아닙니다. 가장 낮은 자리에 처한 이들에 대한 편애라고 밖에 할 수 없는 각별한 애정을 나타내셨습니다. 세상에 수많은 문제를 가진 사람들이 있는데 예수님은 가장 소외되고 절망적이고 세상과 단절된 이들을 찾아다니면서 고통을 치료하시고 손을 잡아주시고 함께 먹고 마시며 동고동락하셨습니다.
예수님은 건강한 이들이 아니라 병든 이들에게 다가오셨고 의인이 아니라 죄인들을 부르러 오셨습니다. 상류층이나 가진 자들이 아니라 돈없고 빽없고 병들고 장애를 가진 이들에게 오셔서 친구가 되어 주셨습니다.
세상의 불균형은 너무나 뿌리깊고 거대해서 단순한 약간의 관심이나 복지서비스로는 그것을 해소할 길이 없습니다. 예수님이 보여주신 거룩한 편애만이 사회의 밑바닥 인생들과 최약자들과 시청각장애인들을 살리고 구원할 수 있는 진정한 하늘나라의 복음입니다.
성경은 처음부터 끝까지 하나님의 거룩한 편애에 관한 이야기들로 가득 차 있습니다. 하나님은 자식이 많은 사람이 아니라 자식이 없이 늙어버린 아브라함을 불러서 셀 수 없이 많은 자손을 약속하셨습니다. 강대국을 선택하시지 않고 이집트에서 종살이하던 이스라엘민족을 이끌어내셔서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땅으로 인도하셨습니다. 이새의 많은 아들 중에 가장 소외되었던 막내인 다윗을 선택하셔서 왕으로 삼으셨습니다.
더 나아가 예수님은 중풍병자, 나환자, 시청각장애인 등 세상에서 가장 외롭고 고통당하는 이들에게 찾아오셔서 그들의 존엄성을 회복하시고 하늘나라 백성으로 삼으셨습니다. 예수님을 만난 약자들은 어둠에서 빛으로, 사망에서 생명으로, 절망에서 소망으로 다시 태어났습니다.
거룩한 편애는 단순한 미덕이 아니라 하나님의 준엄한 명령입니다. 성경은 우리도 예수님을 본받아서 거룩한 편애를 몸소 실천하라고 말씀하십니다. 부정과 부패와 폭력과 부조리가 판치는 세상을 치유하고 회복할 수 있는 진정한 대안과 해결책이 바로 거룩한 편애입니다.
하나님의 시선으로 보면 온 인류가 깊은 병이 들고 어둠에 빠져 있습니다. 인간의 문제는 단순히 돈이 많고 적음에 달려있는 것이 아닙니다. 아무리 돈이 많고 힘과 권력을 장악하더라도 존재의 무한한 문제들은 조금도 해소할 수 없습니다. 영혼의 깊은 공허, 시시각각 다가오는 죽음, 돈이 많아도 해소되지 않는 외로움과 허무감 등 모든 사람이 하나님 앞에서 치료받고 구원받아야 할 최약자들입니다.
결국은 거룩한 편애는 모든 인류를 위한 하나님의 구원사역입니다. 다만 하나님의 도우심을 받기 위해서는 자기들이 죄와 영적인 어둠으로 헐벗고 굶주려 있다는 것을 인정하고 돌아와야 합니다. 그런데 많은 것을 가졌다고 착각하는 사람들은 마음을 비우기가 극히 어렵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거룩한 편애는 결국 가장 힘없고 고통받는 이들에게 흘러가게 되는 것입니다.
세상은 거룩한 편애를 기다리는 이들로 가득 차 있습니다. 너도나도 살기 힘들고 외롭고 성장 과정에서 너무 많은 상처를 받았다고 탄식하고 있습니다. 저와 같은 시청각장애인들은 세상과 소통하고 교류하고 꿈을 실현할 수 있는 길이 열리기를 갈망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사랑에 주리고 목마른 상황에서 우리가 해야 하고 할 수 있는 유일한 선택은 서로 사랑하는 것입니다. 서로 사랑하고 서로 손잡아주고 서로 위로하고 서로 지지할 때 하나님의 거룩한 편애가 우리 가운데 임재하게 됩니다. 서로 사랑하는 가운데 우리 삶 속에 하늘나라가 확장되어 갈 것입니다.
건강하고 가진 이들도 사랑해야 하지만 연약하고 가난한 이들을 사랑하는 데에 더 많은 힘과 열정을 기울여야 합니다. 이처럼 서로 사랑하되 약자들을 더 많이 사랑하고 손잡아주고 그들과 동고동락할 때 비로소 각 사람의 삶 속에도 하나님의 거룩한 사랑이 해처럼 빛나게 됩니다. 사회에도 서광이 비치고 세상의 수많은 불균형의 문제들이 시나브로 풀려가게 될 것입니다.
공동체소식
1. 손벗모임 또는 손벗활동 기획
손벗이라는 이름으로 자조모임 또는 공동체의 복지적 활동을 기획하고 구상하고 있습니다.
현재 도움을 갈망하는 시청각장애인들과 여러가지 문제로 고통받고 있는 약자들이 넘쳐나고 있습니다. 그 많은 문제들을 인간의 힘으로 다 감당할 수는 없습니다.
다만 우리에게 주어진 자원과 달란트를 활용해서 우리가 할 수 있는 만큼 세상에 기여하는 것이 우리가 실천할 수 있는 거룩한 편애의 일환입니다.
제가 기획하고 있는 손벗활동은 하나님이 인도해 주시는 만큼 한걸음씩 나아갈 것입니다.
하나님은 모든 사람들에게 거룩한 편애에 동참하기를 강권하고 계십니다.
결국 사람들이 하나님의 거룩한 편애에 가담하고 동참하는 만큼 우리가 앞으로 나아갈 수 있습니다.
거룩한 편애에 구체적으로 동참하는 방법은 계속해서 안내해드리겠습니다. 100가지 방법을 말씀드릴 수 있는데 그 중에서 각자의 믿음의 분량에 따라 한걸음씩 동참하시면 됩니다.
2. 손벗활동에 동참하는 방법
우리 공동체는 많은 손벗님들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단순히 손만 잡아주시는 것도 힘이 되고 이름을 손바닥에 써주면 그 이름을 기억하면서 서로를 위해 중보기도를 할 수도 있습니다.
카톡친구로 등록하는 것도 좋고 카톡으로 이따금 좋은 소식을 주고받는 것도 훌륭한 손벗 활동입니다.
더 나아가 믿음이 성장하면 몸소 예배와 친교에 동참해보시고 체험할 수 있는 다양한 손벗문화를 경험해보는 거룩한 편애에 동참하는 좋은 방법입니다.
오늘 예배후 읽을 말씀은 요한계시록 1-5장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