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부분의 용맥은 마을을 형성하고 있는 국의 기운이 빠져나가는 부분을 막아주고 있는 셈입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도로를 내면서 A부분이 크게 잘려나갔습니다.
그 잘려져 나간 부분을 통해 국내의 기운이 요(凹)풍을 따라 빠져나갈 것입니다.
국내의 장풍 상태가 부정적으로 변한 것입니다.
도로가 나면서 내부 기운이 쉽게 설(洩, 빠져나감)하게 된 것은
분명 마을에 사는 사람들에게도 긍정적이라 할 수 없을 것입니다.
그런데도 마을의 우환은 전적으로 내부 기운이 예전보다 장풍이 잘 되지 않는 것에 기인한 것으로 보여지지 않습니다.
장풍 상태의 변화가 그렇게 충격적으로 마을 사람들에게까지 직접 미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왜냐하면 옛날과 달리 요즈음은 장풍이 갖는 의미가
단열 등을 고려한 건축기법의 진화로 건물내 머무는 사람에게 직접 영향을 주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런 점에서 오히려 생태적 관점에서 고려해보는 것이 어떨까 생각을 해보게 됩니다.
사람을 비롯한 생물은 자연과 더불어 끝없이 관계하며 생노병사합니다.
'생태학'은 생물과 무생물(?)의 관계를 통해 상생의 길을 모색하는 학문입니다.
한편 요즘시대를 '인류세'라 합니다.
인간위주로 세상이 돌아가는 시대라는 의미입니다.
인류세에 자연은 인간에 의해 이용의 대상으로 전락하고 말았습니다.
인간이 보다 빠른 이동을 위해 자동차를 만들고
도로를 직선화하면서 산을 자르게 된 것입니다.
인간은 도로를 내면서 생태를 충분히 고려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A지점과 같은 파괴를 아무 거리낌없이 하게 됩니다.
그렇게 인간 마음대로 자연을 파괴한 후
자연속에 살아가는 인간은 치명적인 고통을 당하게 됩니다.
A지점의 손상 후 이 마을 사람들의 죽음 이야기는 아마도
인간과 자연의 생태적 관계를 충분히 고려하지 못한
인간의 어리석음에서 비롯된 것이 아닐까 생각해보게 됩니다.
인간에게 생명이 있고 그 안에 정신이 깃들듯이
산에도 생명력에 정신이 깃들어 있을 수 있습니다.
생태는 형으로 드러난 물질과 물질과의 관계뿐만 아니라 보이지 않는 비물질적 관계도 포함할 것입니다.
산에는 산령이 있다고 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산일을 하면서 산신제를 지냅니다.
개인적 경험적 통계치로 보면 산신제가 갖는 의미는 매우 유의미합니다.
우리는 산을 용(龍)이라고 합니다.
풍수에서 산은 기가 있는 살아 있는 생물로 칭합니다.
이 마을은 용두(龍頭)리입니다.
형국론(물형론)의 이론을 빌리면
A가 자른 부분은 용두의 목부분일수도 있습니다.
산이 유기체이며 생명체라면
산의 주요부분 손상은 그 생명체를 죽음에 이르게 하여
그 안에 자리한 영(靈)을 떠나게 할 것입니다.
이 마을의 국을 형성하는 산의 영(山靈)이 떠나는 것은
곧 그 산의 정기를 받고 태어나 살아가는 마을 사람들에 깃든 영(靈)까지 함께 빼앗아 갈 수 있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생태학적으로 인간과 자연은 끝없이 서로 관계하며 존재하고 변화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A부분의 손상과 함께 마을 사람들이 죽어나간 것은 아닐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