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자: 2025.1.12 주일 낮 예배 말씀: 고전10:31 “너희가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라” 제목: 신앙의 결단과 하나님의 축복 선포: 대한예수교장로회 만나교회담임 이덕휴목사 - 은혜성가 https://www.youtube.com/watch?v=sNs7pYjKfT4
[새찬송가] 350장 우리들이 싸울 것은 우리들의 싸울 것은 https://www.youtube.com/watch?v=yKX2qYQ6ASA
- 시작하는 말씀
인생은 결단을 잘해야 성공하며 행복하고 축복된 삶을 삽니다. 모든 일에는 순서가 있습니다. 큰일을 하는 사람은 먼저 결단하고 시작하는 사람이 성공적인 삶을 살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 만큼 인생에서 우리의 결단은 중요한 선택입니다. 실패하는 사람의 특징은 결정력 부족이었다고 합니다. 제 때에 결단하지 못했기 때문에 실패했다는 것입니다. 전쟁의 시기는 결단입니다. 삼국지에 보면 조조나 유비 또는 손권등은 모두 전쟁의 시기와 준비 그리고 결정이었습니다. 승리하는 사람은 실패하는 사람과 다른 점이 있는데 그것은 결단입니다. 사업하는 사람도 언제 어떻게 결단하느냐에 따라서 그 결과는 판이하게 나타납니다. 언제 투자하는냐 언제 론칭하느냐 우엇부터 어디에서부터 얼마만큼을 어떤 맛이나 색깔로 출하할 것인가 이 모든 것이 성공의 열쇠가 됩니다.
우리 만나성도님들 여러분은 금년 한 해를 결단을 잘해서 성공하고 축복된 삶을 사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행복도 결단하는 사람에게 찾아오지, 결단을 못하는 사람은 행복한 삶을 살지 못합니다. 실패한 사람보다 우유부단한 사람이 더 불행한 것입니다. 내가 지금껏 살아오면서 느낀 점은 제때 결단하는 것입니다. 시작과 끝이 분명한 경우에는 실패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오늘 주신 말씀에 따라 우리도 모두 인생과 신앙생활에 승리하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1. 결단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종교개혁자인 마틴 루터가 쓴 ‘그리스도인의 자유’라는 유명한 논문이 있습니다. 루터는 이 논문에서 그리스도인의 자유의 요점을 이렇게 정의합니다. “그리스도인은 지극히 자유로운 만물의 지배자이며 아무에게도 예속되지 않는다. 그리고 그리스도인은 지극히 충성스러운 만물의 종이며 모든 사람에게 예속된다.” 이 말은 서로 모순되는 것처럼 보입니다만 그리스도인의 진정한 자유가 무엇인지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리스도를 믿는 자들은 죄에서 자유함을 얻어 그리스도 안에서 자유자가 되었습니다. 이렇게 자유롭게 된 자는 그리스도와 함께 만물의 지배자로 아무에게도 예속되지 않습니다. 하지만 육신적으로 이 세상에 살고 있기 때문에 이웃과의 관계에서 종처럼 그들을 사랑하고 섬겨야 합니다. 그리스도인의 자유는 이러한 이중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 내용은 사도 바울이 그리스도인의 자유에 대해 교훈하는 것과 일치하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이 본문에 앞서 성도는 자기의 신앙양심에 따라 판단하고 행동할 자유가있다고 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영적인 자유를 주셨습니다. 우리는 많은 것을 자유롭게 선택하고 결정할 수 있는 자유가 있습니다. 먹고 마시는 문제에서부터 삶의 중요한 문제까지 결정하며 선택할 수 있는 자유가 우리에게 있습니다. 그런데 이 모든 일상의 문제들을 선택하고 결정하는데 중요한 원리가 있습니다.
오늘 본문 31절 말씀에 “그런즉 너희가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라”고 했습니다. 이 말씀은 그리스도인의 자유문제에 대한 사도 바울의 최종적인 결론입니다. 이것은 사도 바울이 성도들에게 그리스도인들의 참된 삶의 목적에 대해 가르쳐 주시는 말씀이기도 합니다.
이것은 참된 성도의 신앙과 생활을 정확하게 요약한 핵심입니다. 이것은 사람의 모든 행위의 기준, 전 인생의 기반 역시 오직 하나님에게만 있음을 가리킵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의 영광은 우리 그리스도인의 모든 삶을 지배하는 아주 기본적인 원리입니다. 우리 그리스도인의 모든 행동, 즉 그것이 먹는 것이든지 마시는 것이든지 생업의 일이든지 봉사의 일이든지 무슨 일이든지 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하나님이 영광을 받으시게 하려는 것이어야 합니다.
오늘의 본문 말씀을 다시 한 번 더 봅니다. 고린도전서 10장 31절 “너희가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라”고 하였습니다. 먹는 것도, 마시는 것도, 무엇을 하든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하고, 직장에 다니는 것도, 공부를 하는 것도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해야 합니다. 우리 삶의 목적과 가치관이 무엇입니까? 하나님의 영광입니다. 본문에 말씀은 먹는 것도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먹어야 합니다. 다니엘은 제사음식으로 사용한 나머지 고기를 먹는 것보다는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채식을 하였습니다. 그 결과 얼굴이 좋아졌다고 말합니다. 얼마전 "채식주의자"(베지터리안)라는 책을 쓴 분이 노벨 문학상을 탓습니다. 장한 일입니다. 채식주의는 고기를 삼가하고 채식을 위주로 식사하는 사람들을 말합니다. 나는 인도사람들이 종교적 신념으로 채식을 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영양학적으로 육식도 필요하다고 생각되는데 전적으로 모든 식단을 채식으로 꾸미는 사람들을 특별히 채식주의자라고 합니다. 어떤 음식을 먹든 또는 마시든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라면 가능한 것입니다. 주 안에서 함께 기뻐하는 음식이어야 하나님께 영광드리는 것입니다. 먹는 것 마시는 것을 일컫는 사도바울의 말씀은 우리가 일상적으로 건강을 위한 섭생물도 내 몸을 하나님께서 만들어 주신 감사의 마음으로 채우고 입힌다는 의미가 있습니다. 내 생각을 감찰하시는 하나님은 우리가 먹는 것도 마시는 것도 모두 아버지 하나님의 뜻에서 벗어나는 것은 안된다는 말씀입니다.
2. 충성하는 자의 축복
잠언 28장 20절 말씀에 “충성된 자는 복이 많아도, 속히 부하고자 하는 자는 형벌을 면치 못하리라”고 하였습니다. 내 자신이 원하는 것만을 강하게 주장하며 상대방을 배려하지 않고 무시하며 설득하려는 태도는 나보다 낮은 위치의 사람과의 관계에서는 통하겠습니다만, 통치자에게는 그와 같이 무례하게 행동했다가는 오히려 더 큰 화를 불러올 수 있습니다. 잠언은 우리가 통치자의 마음을 얻게 위해서는 오래 참으면서 부드럽게 대화해야 한다고 가르치고 있습니다. 즉 우리 자신의 감정을 절제하고 인내하면서 말 한 마디 한 마디를 신중하고 온유한 태도로 하는 것이 완고한 마음을 여는 비결이라고 가르칩니다.
요한계시록 2장 10절 말씀에 사도 요한은 “네가 죽도록 충성하라 그리하면 내가 생명의 면류관을 네게 주리라”고 하였습니다. 충성은 죽도록 하는 것입니다. 목숨을 바치는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 충성하면 하나님 앞에 목숨을 바쳐야 합니다. 나라에 충성하면 국가에 목숨을 바쳐야 합니다. 하나님 앞에 충성하는 사람은 형통하게 됩니다(대하 31:20~32:1). 생명의 면류관을 얻습니다(계 2:10). 충성하는 자에게 하나님께서 그에 합당한 축복을 허락하여 주시는 것입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충성이라는 단어에 더 깊은 관심을 가져야 합니다.
3. 온유한 자의 축복
하나님께 충성하는 사람은 온유한 성품을 갖습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의 첫 단추는 온유입니다. 따뜻한 마음과 부드러운 성품입니다. 대쪽같은 성격이라고 합니다. 옳은 것은 옳다. 그른 것은 그르다 하고 결단하는 믿음입니다. 그러나 대나무는 바람에 흔들려도 부러지지 않습니다. 온유는 대쪽같은 성품이지만 바람에도 잘 흔들립니다. 그러나 부러지지 않습니다. 부러진다는 것은 패배입니다. 모든 결정권은 우리를 구원하시는 하나님 아버지께 있음을 겸손하게 인정하는 태도로 기도해야 합니다. 다니엘의 세친구들의 입에서 나온 ‘그리 아니하실지라도’라는 고백은 오직 하나님 안에서 인내하고 참고 기다리는 성품입니다.
다니엘서 제3장16절말씀에는 다니엘의 세 친구 이야기가 나옵니다. (단 3:13-18) 여기에는자신의 생명보다 하나님을 의지하는 귀한 믿음을 가진 다니엘과 세 명의 친구 사드락, 메삭, 아벳느고라는 청년들이 등장합니다. 다니엘과 세 명의 친구는 하나님 외에 다른 신에게 절하거나 우상 앞에서 절하는 행위는 그 무엇보다도 무서운 죄임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그들은 하나님을 신뢰하는 마음으로 “우리를 극렬히 타는 풀 무불에 던진다 할지라도 하나님께는 능히 건져 내시겠고, 왕의 손에서도 건져 내시리이다. 그리 아니하실지라도 왕이여! 우리는 왕의 신에게 절하지 아니하겠고, 왕이 세우신 금신상에게 절하지 아니하겠습니다.”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가 기도하는 것을 들어주지 아니하실지라도, 하나님 앞에서 인내하며 온유하게 끝까지 견디며 기도하고 기다리며 온유한 마음으로 살아가는 것이 참 된 지혜입니다. 온유한 자는 복이 있나니(마 5:5). 온유하다는 것은 ‘따뜻하고 부드러운 마음’을 말합니다. 우리가 사회생활을 하면서 여러가지 성품을 지닌 사람들을 만남니다. 여러분은 어떤 사람을 만나면 기분이 좋습니까?
네 맞습니다. 맑고 밝고 편한 마음을 가지 분이 좋습니다. 그렇습니다. 이런분이 온유한 사람입니다. 그런 사람들은 많은 사람이 따릅니다. 많은 사람을 내 편으로 가질 수 있습니다. 이것이 복입니다. 인복이라고 하지요 할렐루야~~~ 우리 주님은 많은 군중들이 따랐습니다. 온유한 마음을 가지신 주님을 우리가 싫어할 이유가 없습니다.
혹시 우리 중에 최근에 하나님을 향하여 화가 난 분은 혹시 없으십니까? 하나님께서 다른 사람들의 기도는 다 들어 주시는 것 같고, 내 주변에 있는 사람들은 다 잘 도와 주시는 것 같은데 유독 나에게만 혹독하신 것처럼 느끼고 계시는 분들이 있습니다. 기도 응답이 더디어 하나님께 실망하고, 내가 소원하는 대로 인생이 펼쳐지지 않아 조급하고 마음 속에 화가 끓어오르는 분들도 계실지 모르겠습니다. 성경은 우리 안에 있는 이와 같은 부정적인 분노의 감정들을 제어하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잠언을 읽어보면 화를 다스리는 것에 대해서 자주 반복해서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온유란, 마음 속에서 보글보글 끓어오르는 화를 억제하고 다스릴 수 있는 성품을 가리킵니다. 항상 웃는 마음 그리고 용서하는 마음입니다.
주님은 베드로에게 말합니다. 몇번이나 용서할 수 있느냐? 베드로는 7번이라고 합니다. 마태복음 18장 21~35절에서 베드로는 예수님께 다가와 자신에게 죄를 지은 사람을 몇 번이나 용서해야 하는지 묻습니다. 베드로는 일곱 번이라고 말하지만 예수님은 일곱 번이 아니라 일곱 번을 일흔 번까지라도 용서해야 한다고 가르쳐 주셨습니다. 그런 다음 예수님은 용서하지 않는 종의 비유를 통해 용서의 소중함에 대해 말씀하셨습니다. 온유한 말과 행동은 상대방의 분노를 잠재우고, 화를 누그러뜨릴 수 있습니다. 따라서 지혜로운 사람은 조급하고 거칠게 대답하지 아니하고, 끝까지 상대방을 향한 예의를 지키고 바르게 말합니다. 성숙한 사람은 감정을 절제하기 힘들 정도로 화가 나는 상황 속에서도, 숙련된 기술자가 뜨거운 불을 제어하듯이 자신 안에 있는 분노의 감정을 제어합니다. 우리들도 이처럼 자신의 마음을 다스릴 수 있어야 합니다.
- 맺는 말씀- 죽도록 사랑하라
영국의 청교도 작가 존 번연(John Bunyan ; 1628.11.28~1688.8.31)은 “인간은 마지막 날에 모두 심판을 받아야 하고, 하나님 앞에서 심판을 받을 때 ‘너는 믿었느냐’가 아니라 ‘너는 내게 충성하였느냐’ 하고 질문을 받게 될 것이다.”라고 말했습니다. 대장장이의 아들로 태어났으며, 그 자신도 대장장이(떠돌아 다니면서 냄비 떼우는 일)로 일하며 겨우 초등학교를 졸업하였다. 청교도 혁명에 본인의 의지와는 관계없이 의회군으로 참여했고, 내전이 끝난후 고향에 돌아왔다. 이때 번연은 동료가 전사하는 모습을 보면서 죽음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했다고 한다. 영국의 특수침례교 목회자이자, 천로역정의 작가이다.- 천로역정에 대해서 나의 홈페이지에 많이 소개하였습니다-dhleepaul. 하나님 앞에 기도할 때는 새벽마다 기도하고(막 1:35), 하루 세 번씩 기도하며(단 6:10), 주야로 부르짖고 기도하고(시 88:1), 한밤중에 기도하고(눅 6:12), 쉬지 말고 기도하여야 합니다(살전 5:17). 간절히 기도함을 통해서 악한 마귀, 사탄 시험에, 모든 유혹을 물리치고 하나님 앞에 충성하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그래서 기도는 하나님과 같이 대화하고 하나님만 의지하고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살겠다는 결단입니다. 기도하면서도 하나님 앞에 충성하지 못하고, 세상의 욕심, 정욕을 따라 간다면 그 사람은 기도가 잘못되고, 아직 부족하기 때문입니다. 기도로 승리해야 세상에서 승리할 수가 있습니다. 승리하는 자는 서로 사랑하는 사람입니다. 서로 사랑하라는 이야기는 레 미제라블이라는 소설의 마지막에도 나오는 말입니다.
어느 율법학자가 예수님께 나아와 물었습니다. “선생님이여, 율법 중에 어느 계명이 크니이까?” 성경에서 나타난 모든 명령과 주께서 우리에게 가르쳐주신 것 중에서 가장 중요한 교훈을 물으신 것입니다. 예수님의 대답은 분명하고 확실하였습니다.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하셨으니 이것이 크고 첫째 되는 계명이요 둘째는 그와 같으니 네 이웃을 사랑하라”(마22:37-39) 이 예수님의 가장 큰 계명은 사랑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사랑의 명령을 가리켜서 가장 위대한 주님의 명령이라고 합니다. 우리에게 가장 큰 사명은 가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는 것이지만(마28:19-20) 우리에게 가장 위대한 명령은 “네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고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입니다.
이제 우리 만나인들은 금년 한 해를 시작하면서 두가지 말씀을 가슴에 새기도록 합니다. 하나님께 죽도록 충성하는 일입니다. 그리고 서로 사랑하는 일입니다. 이 사랑은 우리가 하나님 아버지를 사랑하듯이 이웃을 사랑하되 내 몸처럼 사랑하는 것입니다. 할렐루야
오늘도 우리 만나인을 위하여 하나님게서 주신 말씀은 살전5:16-18입니다. 함께 봉독하면서 이 시간을 마칩니다.
- 참고: 장 발장에 대한 개요
장 발장은 주인공 두 남녀에게 마지막으로 하는 말이 서로 사랑하라고 말하면서 눈을 감습니다.위고의 대 소설 본서, 레 미제라블은 참으로 위대한 소설이다. 소설은 참으로 웅대하고 피와 흙과 눈물에 잠긴 서사시라고 격찬을 받는다. 지금껏 많은 소설과 문학작품을 보았지만 이처럼 웅대무비한 소설은 더 이상 찾아보지 못하였다. 사실 러시아의 소설 특히 죄와 벌은 주인공 라스꼴리니코프에 대한 범죄심리학적 묘사를 한없이 이어가는 데, 참으로 인내심의 한계를 느끼게 하는 소설이다. 그리고 우리가 잘아는 나관중의 삼국지연의도 본 소설에 비하면 작은 이야기일 뿐이다. 비록 길천영치(요시가와 에이찌)가 삼국지 원본을 10권으로 풀어 썼다고 해도 본 소설의 양과 질을 따를 수 없다.
이 소설의 구성은, 전 5부 작이며 각 부는 여러 편의 책으로 그리고 다시 장으로 구성되었다. 그리하여 총 48권의 책과 365개의 장으로 구성되었으며 프랑스어로 656,478단어가 사용되었으며, 총 2,783페이지 중에 955페이지(1/4)는 "도덕과 유고의 백과전서"적 지식으로 작성되었다. 유고의 현학적 위인을 볼 수 있다. 또한 5부 작 중, 처음 4부가 지나고 마지막 5부에서야 장발쟝이 등장하는 것도 참으로 이색적이다.
이 소설에 주인공 급으로 등장하는 '팡틴느'라는 여자와 톨스토이의 부활에 등장하는 카츄사와 도스토옙스키의 죄와벌에 등장하는 쏘냐라는 여성들이 한결같이 가난이라는 부채를 안고 살아간다. 그리고 그들은 성의 노예로 창녀로 등장한다. 본서 장발쟝에서 제1부 팡틴느 이야기에서 유고는 이렇게 말한다.
"한 사회가 한 여자 노예를 사들이고 있다. 누구에게서? 가난에게서 이다. ,,,,, 빈곤은 팔려고 내놓고 그 사회는 그것을 사들인다." 가난한 사람들에서 유고는 말한다. "가난한 살림살이 다음에는 빈털털이살림살이도 있다. 그것은 마치 두 개의 방과도 같아서 전자는 어둑컴컴하고 후자는 캄캄하다는 것이다." 그리고 또 말한다. "가난에 익숙하여지면, 업신여김에도 익숙해질 필요가 있다." 그것이 살아가는 방법이다. - dhleepal
한 사회가 한 여자 노예를 사들이고 있다 -레 미제라블, 불쌍한 사람들, 장 발장
나는 떠나기 직전이다, 나의 자녀들아. 서로 잘 그리고 항상 사랑하십시오. 세상에는 그것 외에 다른 것이 없습니다. 서로에 대한 사랑입니다. 가끔 이곳에서 돌아가신 불쌍한 노인을 생각하게 될 것입니다. 오 마이 코제트, 그건 내 잘못이 아니야. 내가 지금까지 당신을 보지 못했다는 사실이 내 마음을 아프게 했습니다. ----- 코제트와 마리우스는 절망에 빠져 무릎을 꿇고 눈물을 흘리며 각각 장 발장의 손 아래에 쓰러졌습니다. 그 8월의 손은 더 이상 움직이지 않았다.
그는 뒤로 넘어졌고 촛불의 빛이 그를 비췄습니다. 그의 하얀 얼굴은 하늘을 올려다보았고, 그는 Cosette와 Marius가 키스로 그의 손을 가리도록 허락했습니다. 그는 죽었다. 밤은 별이 없었고 극도로 어두웠습니다. 의심할 여지 없이 어둠 속에서 어떤 거대한 천사가 날개를 펴고 똑바로 서서 그 영혼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 나의 홈페이지에 장발장에 대한 글이 많이 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