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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맛있게 읽기] 포도가 신문을 읽다/ 박재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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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도가 신문을 읽다/ 박재희 초여름이면 포도가 서서히 익어간다 농부는 포도에 신문지로 만든 봉지를 씌운다 빼곡히 적힌 기사들 푸릇한 포도송이에게도 철지난 신문이 배달되었다 세상에 무슨 일들이 일어났을까? 시끄러운 사건들이 포도알에 박힌다 푸른 눈알을 반짝여 본다 기름 냄새에 절은 눈알들 무엇일까? 무엇일까? 까막눈으로 읽고 또 읽고 …… 달포가 지나 오늘 신문에 자신이 주인공이 된 <**포도축제> 기사가 크게 났다 머지않아 그에게도 사건이 일어날 것 같다 감싸고 있던 신문기사를 북북 찢고 시끄러운 세상으로 튀어나올 것만 같다 - 시집 <쟁기, 詩와 反詩> 중에서 .................................................................................................................................................
여름 과일의 여왕격인 포도가 이제 본격적으로 시장에 나올 시기다. 이 시에서는 의인화된 포도가 출하를 앞두고 세상 소식을 전하는 신문을 읽었다. 정확히 말하면 신문이 아니라 구문일 테지만 만약 정말 포도가 신문을 읽을 수 있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오늘날 세계적으로 가장 중요한 과일로 인식되고 있는 포도는 비교적 고급의 과수 작목이다. 포도 농사 자체의 수익성도 일반 과수에 비해 높은 편이긴 하지만 맨 땅에 토지 보상이라도 받을라치면 영락없이 심어대는 게 이 포도 묘목이다. 그런 값나가는 과수라 지능지수가 특별히 높은 걸까.
포도에게 봉지를 씌우는 이유는 병충해로부터의 보호 등 여러 가지 이유가 있다고 들었다. 요즘에는 규격 봉지가 따로 나와 편하긴 한데, 시에서처럼 포도가 신문을 해독한다면 읽을거리가 없어져 심심해할 지도 모르겠다. 포도농사를 전문으로 짓는 류기봉 시인은 포도밭에서 작은 예술제를 매년 여는데, 그때 바흐나 모차르트의 음악을 듣고 자란 포도나무들은 유난히 탱글탱글하여 풍성한 수확을 얻을 수 있었다고 말한다. 그리고 음악에 따라 와인 맛이 달라진다는 건 잘 알려진 사실이다. 하기야 어느 된장마을에선 된장을 숙성시킬 때 주인장이 직접 연주하는 첼로 음악으로 한층 더 깊은 맛이 든다고 하지 않는가. 어디 포도와 된장뿐이랴. 물조차 음악에 따라 입자가 변한다는 사실을 현대과학으로 증명한 걸 보면 모든 생물들은 미세한 변화에도 영향을 받고 반응이 달라지리란 것은 충분히 유추할 수 있겠다. 어쩌면 그 포도에게도 말끔한 봉지와 신문지의 차이, 같은 신문지라도 기사의 내용에 따라 포도 눈동자의 움직임이 달라지는 것은 아닐까. 세상 그 어떤 책 보다 많은 철학을 담고 있다는 와인의 모체인 포도의 눈으로 어지럽고 시끄러운 기사만 대한다면 과연 그 맛이 제대로 들겠나 싶다.
ACT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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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선생님! 관심과 격려 고맙습니다.()
참 의미있는 시 입니다... 포도가 익어가는 계절... 잘 감상하고 갑니다... ^^*...^^*...^^*...
감사합니다. 좋은 날 되세요.()
그러고 보니 의인화된 포도가 세상 돌아가는 신문을 읽고 어지러워 무슨 생각에 잠길지 .....세상시름 다 잊고 단맛 물씬 풍기며 탱글탱글하게 영글어 가야지요 감상 잘 하고 갑니다
감사합니다.()
이런! 오늘 톡! 하고 깨물어 씹는 포도 맛이 당연히 달콤할 줄 알았는데 눈이 시고 입이 시어 다시 마음이 시고 그러고 보니 ....포도가 신문을 읽었군요.
감사합니다.() 좋은 날 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