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근이양증과 동행하는 슬픈운명 -
미소천사는 41살 여성으로 근이 양증 이란 병을 앓고 있다 .내가 미소천사를 알게 된지 올해 10년째로 지금은 언니처럼 동생처럼 잘 지내며 매월 한 번씩 외출 동행을 해주는 정도이다. 처음 조정자와 함께 방문 했을 때 부모님과 오빠, 미소천사 이렇게 4명이 함께 살고 있었다. 미소천사도 미소천사 오빠도 같은 병을 앓고 있어 부모님의 얼굴은 늘 어두웠다. 미소천사 어머니께서는 자녀 셋을 가졌는데 셋 다 근이 양증을 가지고 태어나서 한 아이는 먼저 보냈다 한다. 그 삶이 얼마나 고달프고 힘들었는지 몇 년 전 미소천사 어머니께서는 삶의 끈을 스스로 내려놓고 말았다.
미소천사가 앓고 있는 근이 양증은?
[근이 양증 말초 신경계나 중추신경계의 병적인 변화를 동반하지 않으며, 골격근기능의 점차적인 퇴행을 특징으로 하는 유전병이다. 다양한 유전 양식이 알려져 있으며 가장 잘 알려진 예로는 성염색체(X-Linked)유전양식을 가진 Duchenne 근이 양증이 있다. 유사한 X-Linked 유전질환으로 알려진 근이 양증은 발병시기가 늦고 병의 경하며 초기성인까지 보행이 가능 하다는 특징이 있다. ]
미소천사와 미소천사 오빠는 위에 설명한 것처럼 병을 동반 하지 않고 서서히 진행되는 근이 양증이다. 10년 전 처음 미소천사를 봤을 때는 방바닥에 앉혀주면 엉덩이와 팔을 이용해서 실내에서는 이동을 할 수 있었는데 서서히 시간이 흐르면서 지금은 상체, 하체, 다 마비 진단이 나왔고 발목과 손목 손끝에 조금 힘이 있어 한쪽 손으로 반대 손을 받혀서 식사를 하는 정도이다. 낮엔 활동 보조인 선생님의 도움을 받고 밤엔 연세 드신 아버님께서 돌봐주신다. 스스로 몸을 움직이지 못 하니 일정한 시간마다 체위를 해줘야 하기 때문에 늘 남의 손의 도움으로 살아갈 수밖에 없는 슬픈 운명이다. 내가 클라이언트에게 미소천사란 별명을 붙인데 에는 이유가 있다.
태어날 때부터 병을 안고 태어난 자신의 인생이 얼마나 원망스럽고 힘겨웠을지는 본인 외에는 그 누구도 모를 것이다. 미소천사와 그 가족들은 웃음을 모르고 이웃과도 단절한 채 힘겨운 삶을 살아가고 있기에 포기 할 것은 포기하고 순응할 것은 순응 하며 웃으며 살자고 미소천사라고 별명을 붙여줬다. 미소천사의 어머니께서 살아 계셨을 때 나에게 하신 말씀이 생각난다.
선생님! 우리 집처럼 이렇게 다 장애아를 가진 집도 있습니까? 하시며 눈물 흘리시던 그 모습이 생각나 이 글을 적고 있는 이 순간 가슴이 저려온다.“미소천사“ 말처럼 미소천사가 쉽게 될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입에서 나오는 말 한 마디 한마디에 원망과 분노가 가득하고 미소천사의 눈엔 온 세상이 다 까맣게 보여서일까? 활동보조 선생님께도 자원봉사 오시는 분께도 상처 주는 말을 너무 함부로 많이 해서 한 달을 못하고 그만두기가 일쑤이고 목욕봉사 오시는 분들께도 감사하다고 인사 한번 하는 법 없고 ”팔 다리 멀쩡한 지들이 아픈 나 좀 도와주면서 무슨 유세냐? “ 라는 말을 쉽게 잘 해서 주의에 친한 사람이 아무도 없다. 부모님을 원망하며 함부로 하는 것도 마찬가지로 말 한마디 한마디에 가시가 있어 부모님께서도 상처를 받으면서도 부모로서 한마디도 안하신다.( 자녀에게 죄책감을 가지고 있는 것 같음) 이렇게 막 해대는 미소천사에게 난 어떻게 이리 오래갈 수 있었는지? 지난 시간을 거꾸로 돌려봤다. 처음 조정자와 함께 방문해서 상담을 할 때를 생각해보면
첫째 미소천사와 신앙이 같은 것. 둘째 미소천사가 말 할 때 끝까지 들어주고 공감해 주는 것. 셋째 미소천사가 화를 내거나 말을 함부로 할 때면 바로 대응하지 않고 언니 입장에서, 부모 입장에서, 딸의 입장에서, 여러 가지 비유를 들어 (내 자신의 얘기를 많이 해줌) 설득력 있게 대화를 시도해서 인 것 같다. 무엇 보다 가장 중요한 것은 미소천사의 아픈 마음을 헤아리고 감싸 안아 주는 진심이 보였기 때문일 것이다. 미소천사에게 왜 그렇게 상대에게 함부로 해서 상처를 주냐고? 말 할 수도 있겠지만 그렇게 말 하지 않았고 미소천사의 상한 마음. 꼼짝 못하고 누워 살아야만 한다는 삶 의 원망과 분노, 자존감 상실에 상대에게 무시 당할까봐 먼저 무시 해버리는 방어기제 이었다. 넷째 내가 미소천사와 오래 함께 할 수 있었던 또 한 가지가 있다면 미소천사에게 갈 땐 늘 기도로 준비했고 미소천사의 마음을 헤아릴 수 있는 마음을 가져서 서로가 소통 할 수 있도록 해 달라고 기도해서 인지 다른 봉사자처럼 미소천사의 험한 말에도 상처가 되거나 힘들진 않았다. 오히려 그렇게 밖에 할 수 없는 미소천사가 안쓰럽게만 보였다
가끔은 외출 약속을 잡아놓고도 때로는 피해가고 싶을 때도 솔직히 있었다. 내 아이하고도 놀아줘야하는데, 우리 집도 엉망인데, 뭔 오지랖이 넓어서 이럴까? 하는 생각이 들 때도 있어 그만두고 싶기도 했지만 외출후의 밝아진 미소 천사의 얼굴이 떠올라 차마 그만두지 못하고 지금까지 함께 하고 있다. 내 삶이 그리 넉넉하진 않지만 부족한 나의 손길에 누군가가 행복해 한다는 생각을 하며 감사할 뿐이다. 자원봉사라고는 하지만 난 자원봉사가 아닌 내가 배워가는 삶의 한 부분이라고 생각한다. 시부모님 모시고 딸 셋 키우며 돈도 벌어야하고 늘 바쁘게 살아가는 내 삶이 때로는 고달프게도 느껴져 사는 거 개코다 뭐가 이리 힘드노? 라고 혼자서 푸념할 때도 솔직히 있었지만 그때마다 나에게 두 손이 있고. 예쁜 바지와 스커트를 입을 수 있는 두 다리가 있고, 산 정상을 오르며 보고 듣고 느낄 수 있는 오감이 나에게 있음을 감사할 뿐이다. 만약에 내가 저 침상에서 꼼짝 하지 못 한다면 그 누가 나에게 손발을 닦아 줄 것이며 그 누가 나에게 밥 한 숫가락 떠 먹여줄까? 생각 하면 미소천사가 아무리 험한 소리를 해대고 짜증을 내도 함부로 할 수가 없다.
내 사랑하는 세 딸에게 빵점 엄마라서 미안하단 말을 잘 하는데 그때마다 딸들이 그런다. 엄마처럼 열심히 사는데 뭐가 미안하냐고, 엄마가 할머니께 하신 것처럼 나도 엄마 아프면 목욕시켜 드리고 밥 먹여드리고 다할게요. 이렇게 말 하면서 내 허리를 꼭 안고 엄마 사랑해! 라고 하는데 가슴이 뜨거워졌다. 사는 게 바빠서 아이들에게 잘 챙겨주지도 못했는데 이렇게 예쁘게 자라 준 것이 그저 감사할 뿐이다. 늦게서 공부를 시작 할 수 있었던 것도 딸들이 해주는 말에 용기를 내어 시작 할 수 있었고 자원봉사로 호스피스활동과 미소천사와 함께 할 수 있음은 남편과 세 딸들이 있기 때문이다. 그리 넉넉한 살림이 아니라 내일 일을 걱정 하기도 하지만 오늘의 작은 행복을 감사하며 하루하루를 열심히 살아갈 뿐이다.
--지난 노트에서 꺼집어 내봤습니다--
첫댓글 이른 아침 님의 글을 보고 참 많이 부끄럽다고 생각했습니다. 늘 부정적이었던 저의 마음을 일깨워 주십니다.오늘 하루부터 쭉 좋은 마음으로 열심히 일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나누는것은 나 자신을 위함이지요
이것을 깨친 선생님께 박수...짝짝짝
선생님 가정이 행복하고 평화롭기를 기도합니다
끝까지 견뎌 승리한 그날 선생님에게 반드시 더 큰일을 맡기실 것입니다. 승리하세요!!
이좋은 글을 이제서야 봤네요
좋은글 감사합니다 ㅠ
글솜씨가 예사롭지 않으시네용^^
대단하십니다
저도 좀더 힘내야겠네요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