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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조요경 업보 차별경 18장 “또한 중생이 아귀보(餓鬼報)를 받는 것은 열 가지 죄업이 있어서 그리 되나니, 첫째는 몸으로 경한 악업을 지음이요, 둘째는 입으로 경한 악업을 지음이요, 셋째는 뜻으로 경한 악업을 지음이요, 넷째는 탐심을 많이 일어냄이요, 다섯째는 악한 탐심을 일어냄이요, 여섯째는 질투심을 냄이요, 일곱째는 삿된 소견을 가짐이요, 여덟째는 죽을 때에 재물에 착심을 가짐이요, 아홉째는 음식에 탐착이 많으나 병으로 인하여 오래 먹지 못하고 굶어 죽음이요, 열째는 괴로움과 핍박에 쪼들려 한을 품고 죽음이니라.” |
경(輕)한 악업, 입으로, 몸으로, 뜻으로 경(輕)한 악업을 짓게 되어 있어요. 신앙생활을 한다는 것은 큰 경계가 올 때, 중심을 잡아주는 거 에요. 수행 이라는 것은 특히 힘든 경계, 전생의 업력, 억울할 때, 분할 때, 이럴 때 “과연 우리가 마음공부를 통해서 해낼 수 있겠느냐?”. “또 억울할 때 받아들일 수 있겠느냐?”. 인과에 대한 신앙이 없는 사람이 아무리 착하게 산다고 해도, 자기 뜻대로 안되면 인과를 수용할 수 있겠느냐는 것입니다. 이해가 되세요? 자기가 모르는 가운데 하게 되어 있어요, 육신을 가지고 생각을 하고 있잖아요. 육신을 유지해야하는데 남들보다 편하게 좋게, 윗자리에 서야 하잖아요. 그러니깐 착한거로 만으로는 안 되는 것이지요. 차별의 세계에서 눈이 차별의 세계를 보는 사람이 진공묘유(眞空妙有)를 모르는 사람이 어떻게 제대로 살겠어요? 진공의 세계를 모르는 사람은 100% 중생(衆生)이라고 보면 됩니다. 열심히 하는 것은 그냥 양심상 칭찬받으려고, 욕 안 먹으려고 쪽팔리자 않으려고 하는 것이지요. 진짜 평등심을 하는 것이냐는 것이지요. 신앙이라는 것은 필수 불가결, 삶의 원천, 수행이 없으면 사람이 사람답게 살 수 없어요. 순간순간 마음을 쓰는데 수행이 없으면 수행을 한다고 해도 경계가 오면 옛 습관, 업력이 몰려오는데, 이렇게 그냥 TV 보고 싶어도 참고 법회 왔는데, 그래도 경계(境界)가 오면 깨지는데. 책만 본다고 되는 줄 알아요? 견성한 사람들? 강급(降級)합니다. 사람 몸도 받기 어렵습니다. 자기가 죄를 지은 줄 모르기 때문에 참회를 하지 않지요. “남들도 하는데 내가 무슨 죄인가?” 하는 거죠. 참회를 하겠어요?
Q 김화중 교우님
대종사님이 정혜계(定慧戒)를 정신수양, 사리연구, 작업취사, 정혜계가 공원정이다. 공원정이 어떻게 연관이 되는지, 잘 연관되어 생각되지 않습니다.
A.
정(定) | 혜(慧) | 계(戒) |
정신수양(精神修養) | 사리연구(事理硏究) | 작업취사(作業取捨) |
공(空) | 원(圓) | 정(正) |
양성(養性) | 견성(見成) | 솔성(率性) |
순서가 사실은 공(空)이 먼저입니다. 공에 머무르는 것이 정(定)입니다. 그 머무르는 행위가 수양(修養)입니다. 원(圓)자리를 밝히는 것이 지혜입니다. 그 지혜롭게 하는 것이 연구(硏究)입니다. 그리고 정(正)자리를 지키는 것이 계(戒)입니다. 이 정(正)을 취하고 사(邪)를 버리는 것이 취사(取捨)입니다.
그래서 우리의 마음은 본래 텅 비어있습니다. 텅 비기만 한 것이 아니라 여러분들 훤히 아시잖아요. 여기서 원(圓)에서 헷갈리는 것이 이(理)와 사(事)입니다. 이치는 대소유무(大小有無)에 대해서 단계가 있습니다. 먼저 대(大)에 대해 가늠을 잡고, 그다음 소(小) 그다음 유무(有無)에 대해 가늠을 잡으면 더 이상 할 것이 없습니다.
일이라는 것은 사비돈제(事非頓除)라고 해요. 단박에 제거 되는 것이 아닙니다. 이게 무슨 말이냐. 일이라는 것은 다양하고 계속 하게 되고, 더 중요한 것은 사(事)에는 전생의 업력(業力)이 있습니다. 설사 내가 이치를 깨달았다 해도 전생의 업력이 되는 게 아니에요. 돈제(頓除)라. 뭘로 제거되지 않습니다. 일(事) 이라는 비돈제(非頓除)라. 일은 갑자기 제거되지가 않습니다. 업력(業力)이 그리 쉽게 없어집니까? 진짜 수행이라는 것은 무엇이냐? 수행이라는 것은 대소유무(大小有無)를 가지고 업력을 녹이는 과정입니다. 기본적으로 수양을 해야지 공(空)자리를 알아요. 그 다음에 진짜 수양은 다시 가는 겁니다. 아무리 공(空)자리를 봤어도 업력이 밀려오면 다시 매(昧)해지게 되어있습니다. 수행이라는 것은 취사(取捨). 계(戒)를 하는 것이지만 이것을 체화(體化)하는 과정이 있어야 됩니다. 업력을 녹이는 기회, 공을 확실히 내 것으로 만드는 것이 경계(境界)속에서 나와야 합니다. 오늘도 계속 상대심(相對心)이 든다는 문자가 왔습니다. 그게 진짜 수행의 시작이라 답했습니다. 설사 이 공(空)자리를 아는 것이 이치를 아는 것이지만 절대로 상대심이 알았다고 해서 바로 사라지지 않습니다. 세상에는 수행자들이 많은데 진짜 수행을 깨달음이 아니라 깨닫고 업(業)을 녹이는 그래서 양성(養性)이라고 하잖아요. 성품을 기르는 것이지요. 성품을 기르는 솔성(率性)이라고 하잖아요. 경계(境界) 속에서 실제로 해봐야 됩니다. 아무리 한 자리 봤던, 글을 잘 쓰던 간에 경계오면 확 넘어가버리고, 또 젊을 때는 남녀 경계, 돈 경계 오면 넘어가버리고. 그건 인과의 이치를 아는 것도, 믿는 것도, 깨친 것도 아닙니다.
깨친 것 아무것도 아닙니다. 진짜 수행은 깨치고 나서 시작입니다. 내가 여러분 만할 때 이런 이야기를 들었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왜? 많은 분들이 깨치면 끝났다고 생각하고, 더 뭘 깨치려고 헛고생하는 사람들이 대부분입니다. 또 막상 경계에서 왜 이렇게 “나 한자리 봤는데도 불구하고 해결이 안 되냐.” 하는 고민하는 사람이 너무 많습니다. 저는 출가한지 30년이 넘었습니다. 30년 넘게 수행하며 이렇게 알게 되었습니다. 예전에는 이런 것을 몰랐습니다. 이게 설명을 나눠서 했지만, 일원상(一圓相) 자체가 공원정(空圓正) 면이 다 있습니다. 정(正)자리가 인과(因果)입니다.
Q 윤성권 교우님
저는 교법이랑 관련된 이야기는 아니고, 평상시에 궁금했던 이야기입니다. 사후세계에 대해 많이 궁금합니다. 영화나 책을 보면, 최근에 인기 있던 “신과 함께”처럼 사람이 죽으면 재판을 받는다는 이야기도 있고, 저희는 잘 모르지만 교무님께서는 30년간 수양을 하셨을 때에 혹 은 알고 있던 “사후세계는 이렇지 않을까?”하는 생각이 궁금합니다. 사람이 죽으면 어떻게 되고, 사후세계는 어떻게 생겼을 것 같은지 궁금합니다.
A.
파드마 삼바바 란 사람이 지은 “티벳–사자(死者)의 서”란 책이 있습니다. 이 분이 책머리에다가 “이 책을 600년 후에 어떤 사람이 볼 것이다” 했습니다. 원래 인도사람입니다. 그런데. 티벳으로 넘어가서 교화하셨습니다. 다 죽음의 세계에 대해서 몰라서 썼는데. 영국 사람이 그 것을 발견해서 번역을 했습니다. 그게 사자의 서란 책입니다. 이 사람이 다른 책도 썼습니다. 인도 북부 라다크의 사원에 가면, 서가모니 부처님보다 파드마 삼바바를 더 크게 모셨습니다. 이 분을 더 큰 부처님으로 모시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여러분들이 저 책을 한번 봤으면 좋겠습니다. 그 영화는 저 책을 따다 쓴 것입니다. 기본적으로 맛보기로 설명 드리겠습니다.
안 죽어봐서 사후세계를 모르겠지요? 대종경 천도품, 변의품, 정산종사법어 생사편, 대산종사법어, 생사에 대한 편이 각각 다 있습니다. 그런 것을 종합해서 읽어보면, 기본적인 것을 이해할 수 있을 것입니다.
여러분들이 죽으면 어떻게 되는가. 한명을 죽여 볼까요? 죽는 경우가 대개 스스로 죽는 것, 타인에 의해서 타살 되는 경우, 자연에 의해서, 어떤 힘에 의해서, 이치에 의해 죽는 경우가 나뉘어집니다. 뱃속에 태아가 어머니가 유산해서 죽으면, 그 사람 몸에 있습니다. 그런 여자들은 대개 우울합니다. 그래서 우리가 7월에 그런 분들을 위해 천도재(遷度齋)를 하는 것입니다. 지금 60대인 여성분들은 국가 정책에 의해 5~6명정도 유산을 하셨습니다. 대개 영가(靈駕)가 천도(遷度)가 되지 않고 있습니다. 그 다음에 나이가 먹고 편하게 죽은 사람들은 3일전에 본인이 대강 압니다. 그런 분들은 편하게 돌아갑니다. 나를 데려갈 분들도 보입니다. 교통사고나, 타살의 경우는 첫째 죽은 줄 모릅니다. ‘억’ 하고 끝납니다. 죽는 줄 몰라요. 그 영가가 대개 거기에 있습니다. 여기서 경종을 막치잖아요. 세계 어느 곳이나 죽은 자들을 다루는 곳은 쇳소리를 냅니다. 첫째 영가(靈駕)가 쇳소리를 좋아하고, 쇳소리를 듣고 놀랍니다. 쇳소리를 통해 너 죽었다는 것을 알리는 것입니다. 초상집에 너무 슬퍼하면 그 영이 여러분들에게 들어옵니다. 그래서 너무 슬퍼해도 안 됩니다. 그래서 임신한 사람은 가지마라 하는 것이 그런 이유입니다.
뱃속에 들어가는 입태(入胎)가 되면서 들어갑니다. 수도를 많이 한 영혼은 늦게 들어가서 태중에 있는 기간이 짧습니다. 태중(胎中)에 있는 기간이 길수록 매(昧)해지는 기간이 길어지는 것입니다. 5,6,7식은 몸을 받으면 사라지지만 8,9식은 영혼이 없어지지 않는 영식(永識)입니다. 8식은 업력(業力) 지고 갑니다. 전생에 닦은바 했던바를 가져오기 때문에 빠릅니다. 예술가 어릴 때부터 다르지요? 키신이라는 사람은 2살 때부터 바로 듣고 악보로 옮겼습니다. 중국에 정명도,정이천 형제는 4살 때 시를 썼는데, 시를 잘 썼습니다. 이런 분들은 생이지지(生而知之)입니다. 생이지지(生而知之) 라는 것은 불교로 말하면 상근기(上根器)입니다. 육조대사는 금강경에 응무소주(應無所住) 이생기심(以生其心)이란 말을 듣고, 바로 깨쳐요, 정산종사님은 바로 깨쳐서 왔잖아요. 대종사님도 스승 없었잖아요. 그런 분들은 상근기에요. 전생의 지혜를 가지고 온 것이지요. 똑같은 부모 밑에서도 지혜가 다른 것은 그 전까지 얼마나 지혜를 얼마나 닦았느냐, 보시를, 심법(心法)관리를 어떻게 했느냐. 쌍둥이도 얼굴만 비슷하지 성격은 다릅니다. 그 이유가 뭐냐 전생에 업력을 가져온 것입니다. 그런데 보통 49일 천도재(遷度齎)를 지내는데 보통 그 정도 기간, 그런데 몸을 바로 받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런데 몸을 못 받는 경우가 더 많습니다. 몸을 못 받는 경우는 어느 정도로 못 받냐. 영혼의 세계에서 100년은 살아있는 세계의 1년차이도 안 돼요. 그래서 1000년 넘게 몸을 못 받을 수도 있는 것입니다
천상(天上) | 선(善) |
인도(人道) | |
수라(修羅) | 악(惡) |
아귀(餓鬼) | |
축생(畜生) | |
지옥(地獄) |
천상, 수라, 아귀는 몸이 없는 영가(靈駕)입니다. 그리고 인도 축생 지옥은 몸을 받은 영가(靈駕)입니다. 육도사생(六度四生)이라는 것이지요. 사생(四生)은 태란습화(胎卵濕火). 모든 유정물은 사생(四生)으로 태어납니다. 태어나서 6가지 길로 가는 것입니다. 어떤 것은 몸을 못 받고 그런 길로 간다는 것입니다. 사실은 육도는 하나입니다. 사람령이 따로 축생령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닙니다. 똑 같아요.
제일 골치 아픈 것은 지옥입니다. 지옥보(地獄報)는 몸을 받는 것입니다. 지옥보에 떨어지면 1000년이 지나도 사람 몸 받기 어렵습니다. 지옥보는 여러분 뱃속에 다 있습니다. 여러분 뱃속에 벌레들이 다 지옥보, 땅 속에 지렁이 같은 게 다 지옥보입니다. 가장 강급한 육도에서 가장 강급(降及)한 것이 지옥보를 받는 것입니다.
그 다음이 축생보(畜生報)입니다. 제가 생각할 때에 여러분들 다 축생이었을 때가 있을 것입니다. 어떤 스님이 조선시대에 법문을 했는데 어떤 키 큰 사람이 문을 열더니, “하이고 뭔 벌레가 스님 됐네.” 하고 문을 닫고 나갔습니다. 부처님 당대에 부처님 법상에 앉아있던 벌레였는데 그 공덕으로 축생이 사람 몸을 받았는데 큰 스님이 되어 법문을 한 것입니다. 여러분들이 “고기 먹자.” 하는데, 너무 그러지 마셔요. 옛날 여러분들의 몸입니다. 여러분들이 살아가며 육신을 유지하기 위해 먹지요. 동포 중에서 먹지요. 금수(禽獸), 초목(草木)을 먹잖아요. 그런데 정말 어떻게 무엇을 먹어야 하는지는 생각해보셔야 합니다. 축생 중에서도 이생에서 공부하라면 안하고 “저는 몸으로 할래요” 하면 전생에 소였던 거 에요. 현자오복덕경(賢者五福德經)에 아주 구체적으로 나와요. 인물은 좋은데 가난한 사람, 가난한데 지혜 있는 사람, 왜 가난한가?, 왜 지혜가 없는가? 다 나와요. 이것이 철저한 인과의 세계입니다. 아귀,수라, 아귀보(餓鬼報)는 몸을 못 받았어요.
수라보(修羅報) 수라(修羅)는 틈만 나면 해외여행 다니는 사람은 수라보를 받아요. 무슨 이야기냐면 정처 없이 돌아다니는 사람. 축생으로 새의 몸을 받던가 수라의 몸을 받습니다. 자살한 사람들은 주로 수라보나 아귀보를 받습니다. 즉 몸을 잘 못 받습니다. 천도재(遷度齎) 한번으로 몸 받기 어렵습니다.
사람 몸 인도(人道) 중에도 천차만별이지요? 몸이 안 좋고 하고, 머리가 진짜로 좋기도 하고, 태어나자마자 돈이 많기도 하고, 버림받기도 하는데, 그게 다 이유가 있는 거에요. “태어났을 때. 누가 선택하느냐?” 서로 상호작용인데, 자기가 선택해요. 업은 자기가 주체지 자기가 선택하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이 여러분의 부모님들을 선택했습니다.
천상(天上)은 몸은 없지만 욕계(欲界),색계(色界),무색계(無色界) 하는 세계에 있습니다. 저희 아버지의 경우는 2년 전에 돌아가셨는데, 아직 천상계에 있으세요. 몸을 천상계에 있어도 가만히 있으면 복을 지을 기회가 없기 때문에 복이 옅어집니다. 복이 다하면 타락합니다. 복진타락(福盡墮落)이라고 합니다. 그러다 인연이 없는 경우는 곤란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교화를 잘하셔야 됩니다. 그 인연이 끌어주게 됩니다. 저희 아버지는 전생에 저의 제자였어요. 그래서 전생이 출가까지 시키고 다 대주시고 가셨지요. 제가 교화한지 꽤 됐는데, 어떤 사람은 출가하려면 아버지가 “나를 죽이고 가라, 출가하는 꼴 못 본다.” 해서 출가 못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나 죽기 전에 제발 출가해라” 해서 온 경우도 있습니다. 출가하고 싶어도 인연이 잡아서 못한 사람. 출가하기 싫어도 인연이 밀어서 출가한 사람. 그 주위 인연이 얼마나 큰가? 어릴 때 아플 때 죽기 전에 자기 자력이 중요하지 않습니다. 여러분들은 엄마 뱃속에서 나왔어요? 죽기 전에 관 뚜껑 스스로 덮나요? 나올 때도 타력(他力) 속에, 죽을 때도 타력 속에 사는 겁니다. 저희들은 자타력(自他力) 병진(竝進)하며 사는 겁니다. 그래서 타력을 잘 입는 사람이 되셔야합니다. 복 있는 사람은 타력을 잘 입어야 합니다. 너는 이래서 싫고, 저래서 싫고, 법정에 서는 것이 뭐에요. 예전에는 사람 써서 없애니 이제는 법으로 죽이려하는 겁니다. 법정에서고 “앞으로 잘해봅시다” 하나요? 법으로 이겨도 상극(相剋)의 인연으로 끝나는 것입니다. 법정에서 이겨서 돈을 받아도 상극의 인연이 되면 더 손해일 수도 있습니다. 인과(因果)의 모르면 지가 잘난 맛으로 살고, 선지식(善知識)을 가까이 하지 않아요. 어중간히 잘난 사람은. 그래서 업이 많은 것입니다. 그런 사람들은 업이 많은 것입니다. 그래서 본인이 생을 마감하면 잘 모르다가, 죽은 줄 알게 되면 죽은 자리 근처에 있습니다. 천도품에 명부사자가 자기 권속(眷屬)이다. 집에 문이 열려져서 그냥 들어가면 경찰서에 불려갑니다. 우리가 인연이 된다는 것은 인연이 없이 되지 않습니다. 인연이 되지 않은 곳은 들어갈 수도 없고 들어가도 쫓겨납니다. 누구의 형제, 부모, 스승의 인연을 만나는 것입니다. 내가 지은바가 없으면 내가 그 인연을 어떻게 만나요. 철저하게 외롭게 사는 것입니다. 복중에 최고 복은 인연복인 것입니다. 그 인연 중에서도 부처님과의 인연, 법연(法緣)이 최고의 복입니다. 그래서 육해공에 보면 엄청난 생명이 있습니다. 여기에 보면 육도(六度)중에 바다 속, 땅 속, 허공, 땅위에 엄청난 생명이 몸을 받은, 못 받은 영혼이 많이 있는 것입니다. 사람 70억인데, 그 중에서 마음의 원리를, 인과의 이치를 배우는 사람이 얼마나 있겠어요? 여러분들은 인연복이 엄청난 사람들입니다. 여러분들은 처음부터 법을 알고 왔나요? 다 인연으로 온 것입니다. 인연복이 그렇게 큰 것입니다. 가까운 인연을 항상 불공하는 것이 마음공부 잘하는 것이고, 많은 세상 인연들에게 공중에 복을 짓고 학사도 그런 경우지요. 어려운데 도와주고 헌공(獻供)하는 것이 그런 것입니다. 여러분들의 헌공금이 세계교화. 인색한 맘, 각박한 마음으로 하면 안 돼요. 관등(觀燈)도 키면 원불교에서 관등비의 일부는 총부로 가고 총부에서 많은 사람을 관장하는데 쓰지요. 그러면 엄청난 복이 되는데 그런 걸 모르지요. 여러분들은 강자, 스승, 선지자(先知者)라고 그럴까 선지식(善知識)에 권장을 못 받은 사람은 참 불쌍한 사람입니다. 복을 지으라는 권장을 많이 받으셔야합니다. “여기다 복을 지어라”, “100주년 기념관을 지으니 불사해라”. 그렇게 해서 복을 지으면 엄청난 공덕이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이 이만한 집에서 산다고 치면, 얼마나 큰 복을 짓겠어요? 이 쓰이는 에너지, 내용이 그렇습니다. 복을 지어도, 공덕을 쌓아도, 희사를 해도 공가(公家)에 공적으로 희사하는 것이 몇 배의 복이 되는 것입니다. 하는 일도 마찬가지. 개인의 사업보다 공적인 사업, 공인(公人)이 되어 공도사업, 하면 나에게 가장 은혜가 되는 것입니다. 사람 몸을 받아도 다르잖아요.
코끼리 몸을 받아도 사막에 태어나면 쫄쫄 굶는데, 어떤 코끼리는 왕가에 태어나니 날마다 맛있는 걸 먹지요. 복을 지은 코끼리는 그렇게 먹을 것이 풍부하지요. 그런데 복을 안 지은 코끼리는 물이 없이 그렇게 살지요. 복은 있는데 지혜가 없어 인간의 몸을 받지않고, 축생 몸을 받은 거에요. 그런 것처럼 복이 있는데 지혜가 없으니 전도몽상(顚倒夢想)이라고 하지요. 중생들은 죽고 나면 물구나무 선 것처럼 거꾸로 보인다고 해요. 거꾸로 전, 뒤집힐 도, 꿈 몽, 생각 상. 자이지요. 꿈꾸듯이 거꾸로 보여요. 밤에 보면 달이 있는데 캄캄한데 물이 있는 데와 없는 데가 있는데, 있는 데는 달이 거꾸로 보이는 경우도 있습니다. 지혜가 없는 영가(靈駕)들은 거꾸로 보입니다. “축생들을 뱀이 되어서 교미를 한다.”던가 하면 엄청난 음악이 들리고 궁궐처럼 보여 거기로 쏙 들어가는 것이지요. 축생 몸을 받아서 사람 몸을 다시 받는다. 금강산에서 대종사님이 돌을 던졌는데 다람쥐가 죽은 경우가 있는데 그 다람쥐는 대종사님을 만나 사람 몸 받았지요. 사육(四肉)을 먹지 말라는 것은 네 다리를 받은 개하고 우리하고 유전자가 큰 차이가 없습니다. 그런데 부처님 법을 가까이하는 축생은 빨리 진급합니다. 그 중에도 네 다리가 달린 동물들. 육도를 금방 왔다, 갔다 합니다. 내려가기는 쉽지만 올라가기는 없습니다. 올라가는 것을 역류(逆流), 내려가는 것을 순류(順流)라고 합니다. 배가 물이 흐르고 바람이 부는 데로 가잖아요. 그래서 쉽게 내려가요. 그런데 거꾸로 물 거슬러 올라가기는 어렵잖아요. 그렇게 어려운 것입니다.
천도재(遷度齋)를 지낼 때 보면 크게 3가지. 법사의 도력이 얼마나 있느냐, 참여자, 가족들이 얼마나 정성을 들이느냐에 달려 있어요. 천도재도 정신, 물질, 육신으로 하는 거에요. 어떤 천도재는 교무님들이 알아서하겠지 하고 입도 뻥긋하지 않는 경우도 복록이 얼마나 많은지 돈이 있는 사람은 사람들이 모여오는 많은 사람들이 천도를 하니 천도가 안 될 수 있겠어요? 아버지께서 돌아가셨을 때 종재(從齋)뿐만 아니라 항상 대각전이 가득 찼습니다. 저희 아버지께서 수행하셨고 그리고 제 덕이지요. 여러분들이 언제 죽을지는 모르지만 여러분들이 죽으면 천도재에 얼마나 오겠어요. 여러분들 다 100년 안에 죽습니다. 곧 죽으면서 천년만년 사는 것처럼 그러지요. 재수하는 사람은 시간 많은지 않은데, 실지 공부하는 시간은 실제로 적습니다. 인생도 똑같습니다. 여러분들은 그 것을 계산하기 쉽지 않습니다. 1년이 길다고 착각하듯이 인생이 길다고 착각하지요. 대타적으로 복을 짓고 쌓는 일이 많지 않습니다.
이 시기에 법회 보고 공부하고 봉사하는 것이 엄청난 좋은 기회의 시간이고 순간인 것을 얼마나 아실지 모르겠네요. 나중에 낙원이 있겠지 하고 착각하며 살거든요. 그래서 죽고 나면 천차만별입니다. 오늘도 우리기도명단 중에 2/3는 안 왔습니다. 죽고 나서도 똑같습니다. 천도재 지내도 인연이 없는 사람은 안 옵니다. 헛생각합니다. 여러분들이 죽으면 다를 것 같지만 똑같습니다. 오늘도 천도재를 지냈는데 교도님 아드님. 체대 나오셨습니다. 얼마나 건강하고 일본에서 석사까지 땄는데 40살에 죽었습니다. 4년 전에도 간 때문에 죽을 뻔 했습니다. 내 생각에 이 중에 마흔 안에 죽을 사람이 있을 것입니다. 저주처럼 들릴지는 몰라도. 본인이라고 생각하지 않을 뿐이지요. 살아 있을 때 공부 잘하세요. 뒤로 미루지 마시고 더 나아가서 결혼하기 전부터, 애들 낳고 하면 훈련도 쉽게 가기 힘들고, 출가여행도 가기 쉽지 않습니다. 지금 여러분들이 교전, 수행, 출가여행, 봉사할 수 있지 결혼하면 공부하려고 해도 주위 때문에 힘듭니다. 외분에서 안암교당 김제원 교무는 독종이래요. 그런 말한 사람들이 이상한 것입니다. 결혼하면 경계가 4배정도 늘어납니다. 삶의 질도 늘어나지만 일도 늘어나는 것입니다. 지금 이 기회에 공부하지 않으면 언제 공부하겠어요. 이건 당연한 것입니다. 내가 수공에 말했는데 어떻게 원불교 가장 큰 장점인 교전을 한 번도 다 읽지 않고 어떻게 다닐까. 대단한 사람들입니다. 교전을 한 번도 다 읽지 않고 어떻게 계속 신앙할 수 있지? 존경스럽니다. 천도품 등 읽어보시고 사자의 서도 읽어보셔요. 유투브에도 요약한 영상이 있습니다.
Q. 김형준 교우님
식(識)에서 행함이 공정하고 원만하게 사(私)가 없이 행해진다고 하는데? 무슨 말인지 설명 좀 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A.
식이라는 것은 識(알 식)입니다. 영지(靈地)라고도 하고 묘유(妙有)라고도 합니다. 다 같은 이야기입니다. 이 識(알 식)이 있는데 사람만 이렇게 아느냐. 바닷가에서 말미잘 같은 거에 손 넣으면 고기를 잡으려하면, 고기가 도망가지요. 다 식(識)이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중에 무정물 같은 천지가 식이 있다는 것입니다. 사람은 식이 있지요. 지금 제 이야기 알아듣지요? 그런데 천지도 식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 것을 어떻게 증명할 수 있냐. 농사꾼들은 그냥 압니다. 운동선수가 프로리그 쉴 때 뻘짓거리 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여행 다니고, 놀고 그러면 바로 다음 시즌에 결과가 나옵니다. 슬럼프가 오거나 하는 것입니다. 마찬가지입니다. 농부가 정성을 들이지 않으면 기가 막히게 곡출이 차이가 납니다. 땅이 뭘 알아요? 그런데 땅에도 공을 들이면 땅이 알아서 다 대가를 지불해 줍니다. 인과(因果)의 이치로 지불해줍니다. 내가 죽었어요. 다 올 것이지요? 안 오면 위에서 혼낼 것입니다. 그런데 천지도 다 안다는 것이지요. 그런데 아는데 어떻게 아느냐 사람은 천지 같이 걸림 없이 식을 쓰는 사람이 있고. 걸려서 쓰는 사람이 있어요. 그래서 예를 들어 원근친소(遠近親疎)에 끌리면 걸려서 쓰는 것이지요. 자기 자식이다, 좋아하는 사람이다. 그러면 원근친소에 끌려서 그 식을 제대로 안하지요. 그런데 천지는 걸림이 없습니다. 툭 터져서 한 기운, 한 식(識)인 것입니다. 철수네 논이 있고, 옆에 영자네 논이 있어요. 하늘이 비를 내리는데, 영자는 못된 사람이고 철수는 착한 사람이면 비가 철수네만 오고, 영자네는 안 내려줍니까? 천만의 말씀. 천지는 걸림 없이 똑같이 합니다. 우리 사람만 “밉다”, “안 밉다” 해서 차등을 주는 것입니다.
그래서 천지는 여덟 가지 특성을 가지고 있다고 합니다. 첫째가 지극히 밝은 도, 두 번째가 천지는 봄여름가을겨울 오지 말라고 해도 알아서 오게 합니다. 천지는 정성스럽게 합니다. 그리고 천지는 공명정대합니다. 천지는 순리(順理)에 자연(自然)합니다. 천지는 광대(廣大)하고, 무량(無量)합니다. 그리고 영원(永遠)하며 불멸(不滅)합니다. 그리고 길흉(吉凶)이 없습니다. 응용(應用)이 무념(無念)합니다. 응용무념(應用無念)이 가장 큽니다. 우리는 응용할 때 무념하지 않지요. 예쁜 사람, 미운 사람에 대해 취사가 다르지요. 내 마음에 든 사람이 사달라고 하면 사주는데, 미운 사람이 사달라면 안 사주지요? 천지는 무념(無念)입니다. 예쁜 사람, 미운 사람 똑같게 공정하게 나툽니다. 농부가 잘생겼든, 못생겼든 농부가 공을 들인 만큼 내줍니다.
공무원이 두 사람 중에 빵 사오고, 예쁜 사람한테 더 주지요. 사람은 그러지요. 천지는 그러지 않습니다. 무념(無念)입니다. 가리지 않습니다. 천지영기(天地靈氣)가 아심정(我心定)이 되는 것입니다. 온전한 생각으로 취사하기를 주의하자. 원근친소에 끌리지 않는 것이 온전한 겁니다. 자타(自他)에 걸리지 않는 것입니다. 자타무유(自他無有)에 걸리잖아요. 그러니 온전한 생각에 걸리는 것이지요.
Q. 양도인 교우님
요즘 기사에 보면 경악할 만한 범죄, 빈부격차 등 사회문제, 저는 IT 회사 경영지원, 이런 사회적 문제에 어떻게 기여해야할지 궁금한데 기도를 하거나, 교화사업에 기여를 하는 것, 투표권을 행사하는 것 정도인데, 구체적인 사회적 문제에 영향을 끼치기 위해서 어떻게 해야 할지 궁금합니다.
-. 신시중 교우님
제가 생각하기에는 직접적으로 사회에 영향을 미치기보다는 자기 자신을 제대로 행동을 하는 것이 주변에 선한 영향을 미치고 그게 퍼지고 기운이 퍼져나가서 저절로 바른 기운이 퍼져나갈 것 같습니다. 주변 사람들에게 좋은 영향을 끼치면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 윤성권 교우님
저도 기사를 봤는데, 투표권을 행사함에 있어서 한사람을 돕는 것보다 좋은 정치인에게 투표를 해서 좋은 정치, 제도를 마련하도록 하는 것이 사회적으로 큰 효과를 볼 수 있다고 봤습니다. 저도 이 생각에 공감합니다.
-. 김혜성 교우님.
시중교우님이 말씀하신 것에 공감 가는데, 직접적으로 주변 사람들에게 영향을 끼칠 수 있다고 말씀하셨는데. “자기가 이렇게 사회가 바뀌었으면 좋겠다.” 라고 알리는 것만으로도 충분하고. 좋은 자신의 의견을 피력하지 않으면 자신의 의견을 알리는 것으로도 충분하다고 생각합니다.
-. 이도심 교우님
관등특별축원기도 후기, 세상이 이런데 “나는 그 것을 위해서 기도를 하겠다.” 하셨는데 저는 축원기도 하면서 느낀 것은 석존성탄절을 맞이하면서 사회적인 부분에 개인 기도만 했을 때에는 제 안으로만 국한이 좁혀졌는데, 이번 기도에서는 크게 기도를 하다보니 마음이 넓어지는 것 같더라구요. 공적인 곳에서 하는 기도도 참여하고, 또 도인 교우님이 처해진 상황에서 최선을 다하는 것이 최선이 아닐까? 라는 생각이 듭니다.
-. 김종도 교우님
도심 교우님 말처럼 저도 관심을 가지는 분야가 사회 문제인데. 제가 어떻게 해결하나 탐구만 하다보니깐, 그 부분을 알면 알수록 작은 것부터 큰 것 까지 테두리가 잡히더라구요. 저도 표현 자체에도 의의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해결 방법을 바로 알면 좋지만 힘들기 때문에 그런 것을 알리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힘을 발휘 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 김형준 교우님
저는 답이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제가 평화를 이야기 할 때. 1960년 때는 평화라는 말만 써도 끌려갔습니다. 지금도 상황별로 다르겠지만 제가 표현하는 게 있다면 행위로 하는 게 적절할 수도, 말로 하는 게, 글로 쓰는 게 적절할 수 있기 때문에, 어떤 게 가장 좋다 말하기는 어려울 것 같습니다. 저는 예전에는 행동하는 지성인이라 생각했는데, 정치 활동, 집회도 참여하지는 않지,만 지금은 그렇다고 후회하지 않습니다. “내가 답을 넣고 이 행동을 하겠다.” 보다는 행동도, 여러 가지도 해보고 적당한 타협안을 찾아가는 것도 좋을 것 같습니다.
A.
일단 질문이 상당히 좋은 질문입니다. 이 걸 보면 원불교에서 하고 있는 것은 원불교의 일이고 원불교에 국한된 것이지 않냐. 는 생각을 하는 사람은 여기엔 없나요? 원불교가 원불교만을 위해서 관심을 가진다면 저는 원불교 출가 안했습니다. 저부터 원불교 안다녀요. 원불교는 세계사업하는 데입니다. 대세계주의(大世界主義)이고 공도주의(公道主義),일원주의(一圓主義)입니다. 그래서 저는 여기 있습니다. 원불교만을 위해서 존재하면 저 안다닙니다. 그리고 원불교가 왜 세계주의의 이상이랄까 그 꿈을 할 수 있는 것은 진리에, 대종사님의 깨달음에 있습니다. 불교에선 이것을 성불 제중이라 하는 것입니다. 성불이라는 것은 이것이 나다는 것을 아는 것입니다. 이 전체가 나다는 것을 아는 것이 성불입니다.
회상>세계>국가>사회>가정>개인
이 전체가 나다를 아는 것이 성불(成佛)입니다. 이 근간을 들여다보니 공(空)입니다. 그러면 제중(濟衆)은 뭐냐 공을 향해서 관심만 가지는 것이 아니라 이것을 위해서 직접 뛰는 것입니다. 여러 가지 방식이 있고 함께 뛰는 것이지요. 어떤 사람이 그림을 그렸는데 사회를 풍자해요. 악덕 기업을 풍자하면 세계일 하는 거지요. 음악을 만들었는데 “그 음악을 듣고 희망이 생긴다.” 대단한 세계사업하는 거지요. 건축을 하는데 삶의 희망을 갖게 하고 그 속에서 청정심(淸淨心)이 솟아나게 하면 세계사업 하는 거지요. 직접 할 수도 있고 간접적으로 할 수도 있고. 그 것을 전체를 모아 봤더니 성불제중(成佛濟衆)이라는 거지요.
현실적으로 봅시다. 보통 범부들은 자기 하나 잘 퍼먹고 쾌락으로 개인주의로 살려 합니다. 결혼을 했더니 “가족이 있네.” 가족주의로 살아요. 오직 관심이 이거지요. 투표하려고 했더니 정치인을 잘 뽑아야지요. 내 가족 건사하기 위해서. 아니 강남 사람들이 더 똑똑한 것 같은데 보수를 찍지요? 국가를 위해서? 개인과 가정을 위해서 찍는 것이지요. 내놓는 명분은 국가, 사회를 위한다고 하지만 개인과 가정을 위해서 투표하잖아요. 우리 동네에 납골당, 쓰레기 소각장 생긴다 하면 반대하지요. “우리 집값 떨어진다.”는 것이지요. 국가에 어딘가는 필요한 일인데 나는 손해 보지 않으려는 것이지요. 그건 투표를 해도 국가를 위한 게 아니지요.
생각 있는 사람은 사회 국가에 살지요. 도산 안창호. 나는 국가를 위해서 사는데 당신은 세계를 위해서 사는 군요. 국가를 위해 생각하면 3.1운동 나가지요. 대종사님은 국가를 넘어섰지요. 더 멀리 더 큰 세계를 위한 준비를 하려니 지금 그게 급한 것이 아니라는 것이지요. 대종사님이 생각한 것은 이 사람들이 공(空)을 먼전 깨달아서 공(公)을 위해 사는 것이 중요하지요. 그래서 영육쌍전법(靈肉雙全法)에도 보면 개인, 가정, 사회, 국가에 도움이 되자는 것이니라. 개교의 동기에는 광대무량(廣大無量)한 낙원이라는 것이지요. 광대무량한 것은 전체잖아요. 그래서 이것이 개인주의, 가정주의가 아니라 공도주의(公道主義)다.
그래서 제일 급한 게 뭐냐. 본인이 자신을 아는 것이지요. 나라는 것이 이것이다. 무아(無我)가 나다. 진아(眞我),참나는 무아(無我)고 그 무아(無我)는 바로 공(空)이더라. 확실히 깨치고 내 것으로 아는 것이 세계일 하는 것입니다. 공(空)을 알면 공(公)은 필연이 됩니다. 어떤 사람들은 UN,NGO에서 세계 사업한다고 한다는 데, 약간의 봉사심으로 하자는 것이지. 세계 구경하자고 하는 것이지. UN에서 하는 게 진짜 세계사업 하는 게 아니에요. 공이라는 것은 전체지요. 공(公)은 전체입니다. 빠짐없는 것이 전체입니다. 공무원은 전체를 관리하는 것이지요. 저 같은 사람은 공인(公人)이지요. 전체를 위해서 사는 사람을 공인(公人)이라고 하지요. 공무원을 하거나 유엔에서 일하다던가, 정치한다고 할 때 나를 제대로 알아서 국가, 세계를 위해서 해요? 아니지요. 잘난 맛에, 권한을 누리기 위해, 세계 돌아다니고 싶으니 하는 거 아니냐는 거지요. 아이티에 지진 났을 때, 봉사 간 사람들이 가서 성매매하고 그랬어요. 그래놓고 “세계 봉사자래”. 참 자기를 모르면, 인과의 이치를 모르면, 진리의 세계를 모르면 세계일 한다고 유엔 들어가도 그거 아니에요. 공(空)을 알면 세계사업을 하게 되어 있어요. 저한테 학사 하라는 사람 없어요. 세계에 똑똑한 사람은 많은데 진짜 공인(公人)은 없구나. 진짜 공인을 내가 키워봐야겠다. 진짜 공인이 되도록 내가 키워봐야겠다. 제가 대종사님 법을 안 만나면 무슨 그런 생각을 해요. 나도 편하게 살지. 이 법을 공부하면 아까 도인 교우가 이야기한 사회를 위한 것들이 생각이 나고, 하게 되어있어요.
뉴스를 봤는데 우리나라 법에 폐를 이식할 때 같은 사이즈만 이식하게 되어 있었어요. 어른 폐는 아이에게 이식이 안되었는데 그게 통과가 되었어요. 크기와 상관없이 이식이 가능해졌습니다. 어떤 아이가 폐질환으로 2년 밖에 못산다고 했는데 뇌사자의 폐를 기증받아 살았습니다. 그 법을 하나 정한 것으로써 그렇게 할 수 있게 한 사람 얼마나 고맙습니까. 법률 하나 제대로, 예산 하나 제대로 집행하는 것이 세계 일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원불교만을 위해서 사는 게 아닙니다. 세상을 위해서 사는 것을 원불교에서 배우는 것이지요. 여러분이 살아가면서 작은 나에 속지 않고, 개인 가정주의로 투표할 때에도 “나에게 도움이 될 것인가?”가 아니고, “어떤 사람이 진짜 공인일까? 생각하고”. 사업으로 돈을 많이 버는 것도 좋지만 어떻게 세상을 이롭게 할 것인가. 그것이 좋지 않겠느냐는 것입니다. 눈에 보이는 것을 잘 하는 것도 좋지만, 세상을 위해서 기도하는 것도 정말 큰 것입니다.
교당에서 기도문을 읽을 때 보면, 개인에 대한 축원은 별로 없었다는 것 알았어요? 겨우 “신심(信心) 나게 해달라”,“건강하게 해달라.” 심고 때는 개인, 가정에 대한 것을 해라는 것이지요. 세상은 보이는 일만이 큰 일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데에도 큰 일이 있다는 것입니다. 수명을 10년 연장하는 것도 큰일이지만, 영생(永生)의 길을 알게 해주는 것이 얼마나 큰일인지 생각해보시길 바랍니다. 제가 이렇게 이야기해도 안목만큼, 진리에 눈을 뜬 만큼 결정하고 사람을 만나고 에너지를 쓰고 그러실 것입니다. “어떤 것이 참 나인가?” “어떤 것이 진정한 행복이고, 진정으로 가치 있는 일인가?” “어떤 것이 세상을 위한 일인가?”, “나는 왜 이럴까?” 이런 것을 깨치고 살아가면 알아서 판단하고 충분히 사실 것입니다.
첫댓글 초벌에 신경써주신 심현승교우님께 감사합니다.
그리고 파일에는 밑줄이 표시 안된 점 양해 부탁드립니다.
와우!! 멋져요~! 빠른 업로드 감사합니다. 정리도 잘 해주셔서 읽기 좋았습니다. 현승, 밀운 교우님 감사합니다!
밀운교우님 정성이 정말...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