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태가 전하는 예수님
「예수께서 그 곳을 떠나 지나가시다가 마태라 하는 사람이 세관에 앉아 있는 것을 보시고 이르시되 나를 따르라 하시니 일어나 따르니라. 예수께서 마태의 집에서 앉아 음식을 잡수실 때에 많은 세리와 죄인들이 와서 예수와 그의 제자들과 함께 앉았더니 바리새인들이 보고 그의 제자들에게 이르되 어찌하여 너희 선생은 세리와 죄인들과 함께 잡수시느냐? 예수께서 들으시고 이르시되 건강한 자에게는 의사가 쓸 데 없고 병든 자에게라야 쓸 데 있느니라. 너희는 가서 내가 긍휼을 원하고 제사를 원하지 아니하노라 하신 뜻이 무엇인지 배우라. 나는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요, 죄인을 부르러 왔노라 하시니라.」(마9:9-13)
「아브라함과 다윗의 자손 예수 그리스도의 계보라.」(마1:1)
① 성경을 약속의 책이라고 소개를 하고 크게는 둘로 즉 구약과 신약으로 되어있고 좀 더 세부적으로는 일곱 개의 약속, 즉 아담과 노아와 아브라함, 모세와 다윗과 이스라엘 백성, 그리고 예수님을 통한 약속으로 이루어져 있다고 말씀드렸어요!
② 그렇게 해서 구약 성경의 골격을 알 수 있었고 신약 성경에 대한 도입 부분을 이해하게 되었어요! 다시 말씀드리면 아담과 노아와 아브라함, 그리고 모세와 다윗과 이스라엘 백성들의 이야기는 구약 성경의 골격에 해당하고요, 신약 성경으로 넘어가면서 예수님을 통한 약속이 있음을 알게 된다는 거예요!
③ 이제 오늘부터는 여섯 주일에 걸쳐서 신약 성경의 골격을 말씀드리려고 하는데 앞부분 네 개의 복음서와 그 다음 책 사도행전에 대해서 말씀드리려고 해요! 그래서 오늘은 그 첫 번째 순서로 마태복음의 말씀이에요! 9장 9절을 보면 “예수께서 그 곳을 떠나 지나가시다가 마태라 하는 사람이 세관에 앉아 있는 것을 보시고 이르시되 나를 따르라 하시니 일어나 따르니라.” 예수님이 열 두 제자를 부르시는 중에 지금은 마태를 부르시는 장면이에요! 그런데 마가복음에 보면 “또 지나가시다가 알패오의 아들 레위가 세관에 앉아 있는 것을 보시고 그에게 이르시되 나를 따르라 하시니 일어나 따르니라.”(막2:14) 종합을 해보면 마태의 본명은 레위이고 직업은 세리, 그리고 그의 아버지의 이름은 알패오라는 것을 알 수 있어요!
④ 이어서 “예수께서 마태의 집에서 앉아 음식을 잡수실 때에 많은 세리와 죄인들이 와서 예수와 그의 제자들과 함께 앉았더니”(마9:10) 역시 사람의 사귐은 함께 식사함으로써 깊어져요! 마태가 예수님을 자기 집으로 초청해서 함께 식사를 해요! 그런데 다른 손님들이 있어요! 많은 세리와 죄인들이라고 했는데 당시 죄인의 대명사가 창녀와 세무서 직원이니까 아니나 다를까? 바리새인들이 트집을 잡아요! “바리새인들이 보고 그의 제자들에게 이르되 어찌하여 너희 선생은 세리와 죄인들과 함께 잡수시느냐?”(마9:11) 바리새인들은 당시에 자칭 하나님의 사람들이었어요! 자기들만큼 하나님을 잘 믿는 사람들은 없다고 자랑했어요! 그래서 예수님으로부터 많은 질타를 받았어요! 아무튼 저들이 예수님께 바로 얘기하지는 못하고 제자들에게 시비를 걸어요! ‘어찌하여 너희 선생은 세리와 죄인들과 함께 잡수시느냐?’ 같은 부류, 곧 죄인이 아니냐고 몰아붙인 거예요!
⑤ 그러자 “예수께서 들으시고 이르시되 건강한 자에게는 의사가 쓸 데 없고 병든 자에게라야 쓸 데 있느니라.”(마9:12) 아멘! 삭개오의 집에서도 같은 충돌이 있었죠! 같은 세리인데 지역은 달랐어요! 아무튼 왜 메시야라고 불리우는 하나님의 사람이 죄인인 세리들과 함께 어울리느냐는 비난인 거예요! 이에 대해 예수님의 대답은 같은 거예요! ‘건강한 자에게는 의사가 쓸 데 없고 병든 자에게라야 쓸 데 있느니라!’ 이 또한 저들의 오만을 지적하는 역설적 표현이죠! ‘너희들은 건강하다고 하니 내가 필요치 않은 듯하구나!’ 그래서 결국은 자기 죄를 깨닫는 자는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살 것이고 그렇지 못하면 자기 죄로 말미암아 자멸한다는 거예요!
⑥ 이어서 말씀하시기를 “너희는 가서 내가 긍휼을 원하고 제사를 원하지 아니하노라 하신 뜻이 무엇인지 배우라. 나는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요, 죄인을 부르러 왔노라 하시니라.”(마9:13) 아멘! 그 옛날 호세아라는 예언자가 율법주의, 형식주의에 빠져 있는 당시의 종교 지도자들에게 하나님의 뜻을 설명한 것을 예수님이 인용하시면서 당신의 뜻을 다시 한번 명확하게 말씀하신 거예요! 하나님은 죄인들에 대해 불쌍히 여기는 마음을 원하시지 상 다리 부러지도록 거하게 차려 놓은 형식적인 제사를 원하시지 않는다는 거예요! 그래서 예수님도 스스로 죄인이라고 여기는 자들을 불쌍히 여기셔서 그들을 가까이하신다는 말씀이에요! 할렐루야!
⑦ 아무튼 이렇게 해서 예수님이 알패오의 아들 레위, 즉 직업이 세리인 마태를 부르셨어요! 그런데 여기에 출생의 비밀이 있어요! 재미있는 드라마에는 꼭 출생의 비밀이 있잖아요! 예수님의 열 두 제자 가운데에는 잘 알려진 두 형제가 있어요! 어부인 베드로와 안드레, 야고보와 요한. 그런데 여기에 감추어진 또 한 형제가 있어요! 형의 이름은 레위, 즉 마태! 동생의 이름은 야고보! 이스라엘 사람들의 이름 중에는 야고보가 많아요! 아주 먼 옛날 야곱이라는 조상의 이름을 딴 거예요! 그래서 예수님의 열 두 제자 가운데도 두 야고보가 있었는데 그 아버지의 이름을 따라 구분했어요! 세베대의 아들 야고보, 알패오의 아들 야고보!
⑧ 그런데 보세요! 앞서 마가복음 2장 14절, “또 지나가시다가 알패오의 아들 레위가 세관에 앉아 있는 것을 보시고 그에게 이르시되 나를 따르라 하시니 일어나 따르니라”를 소개해드렸는데 알패오의 두 아들이 함께 예수님의 열 두 제자 가운데 있었던 거예요! 여기서 참고로 예수님의 열 두 제자의 이름을 소개하자면 “열두 사도의 이름은 이러하니 베드로라 하는 시몬을 비롯하여 그의 형제 안드레와 세베대의 아들 야고보와 그의 형제 요한, 빌립과 바돌로매, 도마와 세리 마태, 알패오의 아들 야고보와 다대오, 가나나인 시몬 및 가룟 유다 곧 예수를 판 자라.”(마10:2-4) 자, 여기서 궁금해지는 것은 왜 마태와 야고보는 같은 아버지 알패오의 아들인데 따로 기록이 되었을까요? 그것은 두 사람이 상반된 인생을 살고 있었기 때문이에요! 서로 철천지 원수의 삶을 살고 있었기 때문이에요! 결론부터 말씀드리면 형 마태는 조국 이스라엘을 정복한 로마에 빌붙어 동족의 피를 빠는 세리로 살고 있었고 동생 야고보는 그 정복자 로마에 항거하는 단체의 일원으로 살고 있었던 거예요! 그러니 두 형제는 상반된 인생길을 가고 있었어요!
⑨ 앞서 예수님의 열 두 제자의 이름을 열거해드렸는데 베드로와 안드레가 형제이고 세베대의 아들 야고보와 요한이 역시 형제인 반면 빌립과 바돌로매는 절친, 참고로 바돌로매의 본명은 나다나엘이에요! 그리고 도마와 세리 마태가 역시 절친, 그리고 알패오의 아들 야고보와 다대오, 가나나인 시몬과 가룟 지방 사람 유다, 이상 네 사람은 정복자 로마에 항거하는 셀롯당이라는 단체에 가입한 동지들이었어요! 아무튼 알패오의 두 아들이 조국 이스라엘을 두고 상반된 인생을 살고 있었는데 같이 예수님의 열 두 제자 중에 있었어요!
⑩ 오늘 말씀의 제목이 ‘마태가 전하는 예수님’인데 마태는 자신의 복음서에서 예수님을 어떤 분으로 묘사할까요? 우선 복음서라는 책은 예수님의 삶의 흔적과 가르침을 직접적으로 쓴 거예요! 아무튼 마태는 예수님을 누구라고 설명하기 위해 글을 썼는지 마태복음 1장 1절을 보면 알 수 있어요! “아브라함과 다윗의 자손 예수 그리스도의 계보라.” 즉 예수님이 이스라엘의 왕이시라는 것이고 나아가 모든 믿는 이의 왕이시라는 거예요! 아멘! 글의 시작이 아브라함과 다윗의 이름으로부터 시작해요! 믿음의 조상과 이스라엘의 대표적인 왕의 이름인 거죠!
⑪ 마태복음과 누가복음에 이스라엘 사람들의 족보가 기록되어 있는데 그 차이는 마태복음(1장)이 아브라함부터 예수님까지의 내림 족보라면 누가복음(3장)은 예수님으로부터 아담과 그 위로 하나님까지의 오름 족보예요! 아무튼 마태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예수님이 이스라엘 백성들이 성군으로 여기는 다윗왕의 후손이라는 거예요! 그래서 예수님이 진정한 왕이시라는 것을 암시해요! 사실상 마태복음의 일차적 대상은 이스라엘 백성들이고 그 후손들이에요! 그래서 저들은 마태의 주장을 금방 알아차렸어요! 예수님이 왕이시라는 사실!
⑫ 한 가지 더 재미있는 사실을 말씀드리자면 네 개의 복음서가 각기 별명을 갖고 있어요! 마태복음은 사자 복음, 마가복음은 송아지 복음, 누가복음은 사람 복음, 요한복음은 독수리 복음이에요! 그것은 곧 네 사람이 각자 예수님을 그렇게 표현했다는 것인데 요한계시록에 같은 내용의 글이 있어요! “보좌 앞에 수정과 같은 유리 바다가 있고 보좌 가운데와 보좌 주위에 네 생물이 있는데 앞뒤에 눈들이 가득하더라. 그 첫째 생물은 사자 같고 그 둘째 생물은 송아지 같고 그 셋째 생물은 얼굴이 사람 같고 그 넷째 생물은 날아가는 독수리 같은데”(계4:6-7) 이는 곧 예수님이 지상의 왕이시요, 섬기는 종이요, 진정한 사람이요, 천상의 왕이시라는 증언들이에요!
⑬ 자, 이제 좀 더 구체적으로 마태의 예수 증언에 대해 생각해보도록 하죠! 예수님은 왕이신데 세상의 왕과는 엄청난 차이가 있어요! 세상의 왕은 백성들을 위한다고 하지만 자기 하나 지키기도 넉넉지 못한 사람이에요! 그리고 사명감이 없는 왕이라면 자기만을 위해 살다가 죽을 사람이고 그러다보면 백성도 나라도 피폐해질 수밖에 없어요! 하지만 예수님은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의 아들이시고 백성과 나라의 행복을 위한 사명을 완수하신 분이세요! 할렐루야!
⑭ 여러분, 위대한 왕을 만난다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아시죠? 우리가 세종대왕을 높이는 것은 그 분이 자기의 건강은 돌보지 않고 한글과 해시계, 물시계 등을 만들어서 백성들의 삶을 평안하고 풍요롭게 해주었기 때문이에요! 물론 그 주위에 훌륭한 참모들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죠마는! 집현전의 학자들과 장영실 같은 이들 말이에요! 그런데 저들을 발굴하고 키운 이가 바로 세종대왕 자신이에요! 아무튼 위대한 왕은 자기의 모든 것을 희생해가면서라도 백성과 나라를 위하는 왕인 거예요!
⑮ 이사야 40장 10절 이하에 이런 말씀이 있어요! “보라, 주 여호와께서 장차 강한 자로 임하실 것이요, 친히 그의 팔로 다스리실 것이라. 보라, 상급이 그에게 있고 보응이 그의 앞에 있으며 그는 목자 같이 양 떼를 먹이시며 어린 양을 그 팔로 모아 품에 안으시며 젖먹이는 암컷들을 온순히 인도하시리로다.”(사40:10-11) 아멘! ‘강한 자로 임하셔서 친히 그의 팔로 다스리실 것이라.’ ‘상급과 보응이 그의 손에 달렸도다!’ ‘목자 같이 양 떼를 먹이시며 어린 양을 그 팔로 모아 품에 안으시며 젖먹이는 암컷들을 온순히 인도하시리로다!’ 아멘!
⑯ 히브리서 4장 15절 이하에 “우리에게 있는 대제사장은 우리의 연약함을 동정하지 못하실 이가 아니요 모든 일에 우리와 똑같이 시험을 받으신 이로되 죄는 없으시니라. 그러므로 우리는 긍휼하심을 받고 때를 따라 돕는 은혜를 얻기 위하여 은혜의 보좌 앞에 담대히 나아갈 것이니라.”(히4:15-16) 아멘! ‘왕과 같은 대제사장이 우리의 연약함을 동정하신다. 그는 우리와 똑같이 고난을 받으셨도다. 그래서 그 앞에 나아가 도움을 청하면 된다.’아멘!
⑰ 히브리서 5장 7절 이하에 “그는 육체에 계실 때에 자기를 죽음에서 능히 구원하실 이에게 심한 통곡과 눈물로 간구와 소원을 올렸고 그의 경건하심으로 말미암아 들으심을 얻었느니라. 그가 아들이시면서도 받으신 고난으로 순종함을 배워서 온전하게 되셨은즉 자기에게 순종하는 모든 자에게 영원한 구원의 근원이 되시고”(히5:7-9) 아멘! ‘우리를 다스리시고 도우실 예수님이 친히 모범을 보이셨도다. 하나님의 아들이시면서도 순종함으로 고난을 받으셨고 그 가운데서 심한 통곡과 눈물로 간구와 소원을 올리심으로 구원을 얻으셨도다!’할렐루야!
⑱ 마태의 예수 증언은 예수님이 우리의 왕이시라는 거예요! 그것도 우리와 같은 처지가 되어 보시고 하나님께 대한 믿음으로 구원의 본을 보이셔서 우리를 도우시고 구원하실 친근하신 왕이시라는 거예요! 할렐루야! 여러분, 다스림이란 정상적인 삶을 잘 살도록 돕는 거예요! 이것을 잊지 말아야 해요! 예수님을 왕으로 고백하고 찬송하고 기도함으로써 복된 인생을 사시기 바라고 주위 사람들에게 이 사실을 알려 함께 행복한 인생 그리고 영원한 생명을 누리시기를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