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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 4:1-42
▣ 다섯 남편과 함께 한 여인-요한복음 4장-
이 장은 사마리아 여인에 대한 그리스도의 사역 부분(4:1-42)과, 귀족을 위해 그리스도께서 기적을 베푸신 부분(1:43-54)으로 구분된다. 어떤 면에서, 두 부분 모두 기적을 내포하고 있는데, 사마리아 여인의 변화는 왕의 신하의 아들을 위한 “먼 거리에서의“ 치료만큼이나 놀라운 것이다.
1. 사마리아 여인에 대한 그리스도의 사역(4:1-42)
사마리아인들은 유대인과 이방인들의 혼혈인이었으므로 유대인들에게서 배척되고 증오받는 대상이었다. 그들은 유대인과 경쟁하느라 그들 자신의 종교 체계를 가지고 있었으며(4:20-24) 메시야가 오실 것을 믿고 있었다(4:25).
예수께서는 “사마리아로 통행하셔야 했는데“(4절), 이는 하나님께서 죄 많은 한 여인을 위하여 그녀가 그리스도를 만나 그에게서 생수를 발견하게 되는 일을 계획하셨기 때문이다. 이 만남에 대한 기록에서 우리는 이 여인이 그리스도를 믿게 되는 각기 다른 단계들을 보게 된다.
“당신은 유대인으로서“(1-9절)-유대의 랍비가 사마리아 여인에게 호의를 요청했다는 것은 그녀를 놀라게 하였다. 그녀는 그리스도에게서 유대인이라는 사실 이상의 것을 전혀 발견하지 못했다. 그처럼, 죄인은 그리스도에 대해 장님이며, 영원한 것보다는 단지 물을 얻으려는 것과 같은 생활에 관한 일에 더 관심을 갖는다.
“당신이 야곱보다 더 크니이까?“(10-15절)-예수께서는 10절에서 그녀의 무지함을 두 가지로 말씀하신다. 즉, 하나님의 선물인 구원과, 그녀의 면전에 있는 구세주에 대한 것이었다. 예수께서는 생수(생명수)를 말씀하셨으나, 그 여인은 문자 그대로의 물로 받아들였다. 죄인은 육적인 것과 영적인 것을 얼마나 잘 혼동하는가 ! 니고데모는 예수님의 말씀을 육적인 탄생으로 생각했었으며(3:4), 제자들조차 후에 예수님의 말씀을 문자적인 떡으로 생각하였다(4:31-34).
예수께서는 그녀에게 세상 것들은 만족을 주지 못함과, 그리스도가 없이는 사람들이 항상 “다시 목마를 것“을 지적하셨다. 누가복음 16장 19-31절은 이 사실을 매우 명확하게 규명한다. 이 생에서 쾌락의 갈증을 느꼈던 부자는 지옥에서조차도 다시 목말라하는 자신을 발견하고 있다 !예수께서는 그 생수가 신자의 속에서 솟아나서 그를 계속적으로 소생시키며 만족시킬 것을 약속하셨는데, 여전히 이 여인은 혼동하면서 그 물을 요청하였다.
“당신은 선지자로소이다 !“(16-24절)-비록 혼동하고는 있었으나 생수에 대해 관심을 나타내었던 그녀는 스스로 자신의 죄에 직면하였다. “가서 네 남편을 데려오라 !“는 그리스도의 명령은 그녀의 양심을 자극시키기 위한 것이었으며, 그녀는 자신의 죄를 직시하였다. 어느 누구도 자신의 죄를 숨기고는 구원받을 수 없다(잠 28:13).
이 여인의 화젯거리가 어떻게 변하는지를 눈여겨 보라. 오늘날의 회심한 죄인처럼, 그들은 종교에 있어서의 차이점에 대해 논하기 시작했다 ! “우리가 어디서 예배하리이까 ?“ “어느 종교가 옳은지요?“ 예수께서는 하나님 아버지를 아는 것이 중요하다는 점과, 이 일은 다만 구원을 통해서만 가능하며, 구원은 유대인으로 말미암는다는 것을 지적하셨다. 이제 그리스도께서는 그녀가 자신의 죄와, 만족을 추구하는 욕망과, 그녀의 종교적 신앙의 공허함(헛됨)을 직면하게 하셨다.
“내가 그(그리스도)로라!“(25-42절)-이제 그리스도의 인격과 그 말씀의 권위에 눈이 뜨인 그녀는 그리스도를 믿고 구원받았다. 그녀는 그 동네의 사람들에게 공적으로 간증을 함으로써 자신의 믿음을 입증하였다. 그들은 그녀의 성격을 알고 있었음이 분명한데, 그들 역시 그리스도를 믿게 되었다. 이 신자들의 마지막 간증을 보자. “이는 그가 참으로 세상의 구주신 줄 앎이니라 !“
이 장에서 제자들에 대해 주목해 보는 것도 흥미있는 일이다. 그들은 영적인 음식보다도 육적인 음식에 더 관심이 있었다. 그리스도는 피곤하셨고(6절) 목말랐으며, 분명히 배고프셨다. 그러나, 육적인 것 이상의 영적인 것들을 두셨다. 제자들은 식품(유익한 것)을 사 온 반면, 그리스도는 영혼(보다 나은 것)을 구하셨다.
사마리아로 올 때에 제자들은 아마도 “여기서는 아무도 구원할 수 없을 겁니다. 이 곳 사람들은 마음이 굳은 사람들이고 유대인들의 적이니까요“라고 말했을 것이다. 그러나 그리스도께서는 그들에게 추수하도록 무르익은 들을 보라고 말씀하셨다. 그리고 그들에게 뿌린 이들과 거둔 이들 모두가 추수할 밭에서 함께 일해야 함을 상기시키셨다. 자라게 하시는 이는 하나님이시다(고전 3:5-9). 모든 사람이 그리스도의 심판대 앞에서 자신의 적절한 상급을 받게 될 것이다.
영혼 구원자로서의 그리스도의 모범을 주목해 보자. 그리스도께서는 그를 가리우는 개인적인 편견이나 육적인 필요들을 허용하지 않으셨다. 그리스도는 그여인과 우호적인 방법으로 만나셨고, 결정하도록 그녀를 강압하지 않으셨다. 현명하게도, 그리스도는 대화를 이끌어 그녀의 마음에 효과적인 말씀을 하셨다. 또한 그녀에게 구원의 방법에 대해서 개인적이고 애정있게 제시하셨다. 그리스도는 물과 같은 일상적이고 직접적인 것에 대해 말씀하심으로써 그녀의 주의를 사로잡아, 이것으로 영원한 생명에 대한 실례로 사용하셨다(추운 밤중에 그리스도는 니고데모에게 바람에 대해서 말씀하셨다). 그는 죄에 대해 말씀하시기를 피하지 않았고, 그녀의 필요에 직면하게 하셨다.
2. 왕의 신하를 위해 베푸신 그리스도의 기적
이것은 요한복음에 나오는 일곱 가지의 기적 가운데 두번째의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기적들은 사람이 구원받는 방도와 그에 따르는 결과를 묘사하고 있음을 상기하게 될 것이다(요한복음 서론 참조). 첫번째의 두 가지 기적은 갈보리의 가나에서 일어났다. 물이 포도주로 바뀐 것은 구원이 하나님의 말씀으로 말미암는다는 것을 예증하며, 이 장에서 아들을 고치심은 구원이 믿음에 의한 것임을 보여 준다.
그 아들은 가나에서 27km떨어진 가버나움에서 죽어가고 있었다. 그 사람은 그리스도께서 자기와 함께 가시기를 원하였는데, 이는 그가 그리스도께서 거리상 멀리 떨어져 있어도 소년을 치료하실 수 있다는 것을 믿지 못했기 때문이다(11:21 참조). 예수께서는 고와 함께 가지 않으셨으나 그 대신 “가라 네 아들이 살았다“고 말씀하셨다. 그는 그 말씀을 믿었다 !
그가 집으로 돌아가는 데에 서너 시간밖에 걸리지 않았을 터인데 52절의 “어제“라는 말은 그가 가나에서 하루 내내 머물러 있었다는 것을 시사한다. 그 소년은 1시에 치료를 받았는데, 그 다음날에야 아버지는 집에 당도하였다 ! 이것은 그가 그리스도의 말씀을 실제로 믿었음을 나타내는데, 그는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를 보려고 집으로 내달리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받는 길을 보여 준다. “그리스도께서 말씀하셨으니 그대로 이룰 것을 나는 믿는다.“ 그 귀족은 분명히 가나에 머무르면서 어떤 업무를 처리한 후, 그 다음날 집으로 돌아갔다. 그는 “믿음 안에서 기쁨과 평강“을 소유하였다(롬 15:13). 그의 신뢰가 오직 그리스도의 말씀 안에 있었기 때문이다.
그는 종들에게서 “당신의 아들이 살았나이다“라는 말을 들었을 때에 놀라지 않았다. 그는 단지 언제 치료되었는가를 그들에게 물었고, 그 시각이 그리스도께서 말씀하셨던 바로 그 때임을 확인하였다. 그 결과, 그의 온 집안이 그리스도를 신뢰하였다.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았느니라“(롬 10:17).예수께서는 42절에서 사람들이 믿지 않는 이유가, 그들이 무엇인가를 보며 표적과 기사들을 경험하기를 원하는 데에 있다고 말씀하신다. 사단도 속이기 위해 표적과 기사를 이룰 수 있음을 기억하자(살후 2:9-10). 만약 당신의 구원이 느낌, 꿈, 환상, 음성 또는 어떤 다른 육적인 증거들에 근거하고 있다면 매우 위험한 바탕 위에 서 있는 것이다. 오직 하나님의 말씀 안에서의 믿음만이 우리에게 영생의 확신을 줄 뿐이다(요일 5:9-13)."
요 5:1-16
▣ 무력한 자의 고백-요한복음 5장-
요한복음의 다른 장들처럼 이 장에는 한 기적과, 기적에 근거한 멧세지가 있다(5:17-47).
1. 기적-구원은 은혜에 의한다(5:1-16)
이 표적은 사람이 구원받는 방도를 보이는 세 가지의 기적을 완성한다. 첫번째(물이 포도주가 됨)는 구원이 말씀으로 말미암음을, 두번째(귀족의 아들을 고치심)는 구원이 믿음에 의한 것임을 보인다. 그리고 이 세번째 기적은 구원이 은혜에 의한 것임을 보여 준다.
이 사람은 가련한 처지에 놓여 있었다. 그는 과거의 죄 때문에 38년간이나 고통을 당해 왔다. 그는 심신이 괴로운 사람들로 둘러싸여 있었는데, 이들 모두는 구원받지 못한 자들의 슬픈 상태를 주는 실례로서, 병자(연약한 자/ 롬 5:6)와, 소경과 절름발이(올바로 걸을 수 없는 자/ 엡 2:1-3), 혈기 마른 자(중풍병), 그리고 기다리는 자(소망 없는 자/ 엡 2:12) 등이다. 만약 그들이 천사가 왔을 때에 물에 들어갈 수만 있다면 고침을 받았을 것이나, 그들에게는 거기까지 갈 힘이 없었다. 오늘날의 죄인들과 얼마나 흡사한 모습인가 ! 만약 하나님의 완전한 법을 지킬 수 있다면 구원받을 수 있을 것이지만, 그렇게 행할 수가 없는 것이다.
하나님의 은혜가 일하는 것을 보라. “베데스다“란 “은혜의 집“이란 뜻이다. 그리고 이것은 한 사람을 위해서 온 것이다. “은혜“란 받을 자격이 없는 사람들에게 주어지는 친절을 의미한다. 예수께서는 병든 많은 무리를 보셨으나, 오직 한 사람을 택하셔서 그를 고쳐 주셨다 ! 그는 결코 다른 사람들보다 더 받을 만하지 못했으나, 하나님은 그를 택하셨다. 이것은 구원의 놀라운 상징이며, 우리가 우리의 장점 때문이 아니라 “그 안에서“ 택함을 받았음을 아는 것은 우리를 겸손케 한다(엡 1:4).
그리스도께서 5장 21절에서 하신 말씀은 여기서 적용되는데, 그는 원하시는 자를 살리신다(생명을 주신다).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를 설명할 수는 없으나(롬 9:14-16), 만약 하나님의 은혜가 없었더라면 어느 누구도 구원받지 못했을 것이다(롬 11:32-36).몇 가지 다른 점들을 살펴보자.
-다섯 행각-성경에서 “다섯“은 은혜를 나타내는 숫자이다.
-양문 곁의 물웅덩이-희생을 나타낸다. 하나님의 어린 양은 하나님의 은혜가 죄인들에게 부어지기 전에 죽어야 했다.
-안식일에 병고치심-이는 율법이 치료와는 무관함을 입증한다. 우리는 율법을 지킴으로 구원받은 것이 아니다. 예수께서는 혼자서 그를 치료하셨는데, 구원은 오직 그리스도만으로 말미암기 때문이다. 그 사람도 “나를 도울 사람이 없다“고 불평했는데, 그를 도울 사람이 열 둘이나 있었다고 해도 그들은 그리스도께서 하신 일을 할 수가 없다. 잃어버린 죄인에게는 도움이 필요한 것이 아니라 고침이 필요하다.
그리스도는 그의 구주일 뿐만 아니라 또한 그의 주님이셨다. 그는 반대에도 불구하고 그리스도의 말씀에 순종했기 때문이다. 그리스도는 우리를 구원하고자 하실 뿐아니라 우리의 삶을 인도하기를 원하신다. 그는 성전으로 갔다. 이는 하나님의 집에서 예배드리는 것이 구원의 확실한 한 증거이기 때문이다(행 3:1-8). 그는 공공연히 그리스도가 그를 고치셨음을 증거하였는데(15절), 입술의 증거는 매우 중요한 것이다(롬 10:9-10).
이 사건은 그리스도를 미워하고 반대하는 것의 시작이었다. 이 갈등은 7-12장에서 더욱 악화되어 결국은 그리스도의 십자가로 이끌어간다."
요 5:17-47
2. 멧세지-그리스도는 아버지와 동등하시다(5:17-47)
그리스도는 세 가지 면에서 아버지와 동등하시다(5:17-23)-안식일에 병자를 고치신 일은 유대 바리새인들의 율법에 저촉되는 것이었으므로 유대인들은 그리스도를 율법 파기자로 핍박하였다. 그리스도는 멧세지의 첫부분에서, 세 가지 면에서 성부 하나님과 동등하심을 나타낸다.
-사역에 있어서의 동등함(17-21절)-하나님의 안식일의 안식은 창세기 3장에서의 아담과 하와의 범죄함으로 깨뜨려 졌다. 그 때 이후로 하나님은 잃어버린 자들을 찾고 구하시는 작업을 해오셨다. 그리스도는 자신의 일에 대해, 하나님께서 하도록 하신 것이며 하나님을 개인적으로 계시해 보이는 일이라고 말씀하셨다. 그의 사역(기적들)은 죽은 자를 살리는(소생시키는) 기적을 포함하여 하나님으로부터 온 것이다.
-심판에 있어서의 동등함(22절)-하나님은 모든 심판을 아들에게 위임하셨다. 오직 하나님만이 사람을 죄에 따라 심판하실 수 있으므로, 이것은 성자를 성부와 동등하게 하는 것이다(27절 참조).
-영광에 있어서의 동등함(23절)-죽을 운명에 있는 인간으로서 어느 누구도 감히 하나님만이 받으실 영광을 자기에게로 돌리라고 말할 수는 없다. 그리스도를 멸시하면서도 하나님께 예배 드리기를 주장하는 사람은 거짓말장이이며 속고 있는 것이다.
삼중의 부활(5:24-29)
-오늘날의 죄인들의 부활(24-27절)-이것은 영적인 부활로서(엡 2:1-3), 죄인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믿을 때에 일어난다. 그리스도께서 고치신 그 사람은 실제로 “살아 있는 죽은 자“였다. 그가 말씀을 듣고 믿었을 때에 그에게 새 생명이 주어졌다. 아무도 생명을 다른 사람에게 줄 수가 없다. 그리스도는 그 안에 생명을 가진 분이시며, 그리스도는 “생명“이시므로 다른 사람들에게 생명을 주실 수 있다.
-생명의 부활(28-29상반절)-이것은 장차의 신자들의 부활로서, 데살로니가전서 4장 13-18절과 고린도전서 15장 51-58절에 설명되어 있다. 성경은 “전체적인 심판“을 가르치지 않는 것과 마찬가지로 “전체적인 부활“도 가르치지 않는다. “생명의 부활“은 “첫번째 부활“과 같다(계 20:4-6).
-심판의 부활(29하반절)-이것은 요한계시록 20장 11-15절에 설명되어 있는 것으로서, 하나님께서 새 하늘과 새 땅을 만드시기 이전에 일어난다. 그리스도를 거절한 모든 사람이 심판받을 것인데, 이 심판은 그들이 천국에 들어갈지의 여부를 보이는 것이 아니라(이미 정해져 있으므로) 지옥에서 어떤 형벌을 받게 될지를 보여 주는 것이다.
지옥은 “두번째 사망“으로 불리워지는 것으로서 하나님과의 완전한 분리이다. 그리스도인은 아무도 이 심판을 받게 되지 않는다.
그리스도의 신성에 대한 삼중의 증거(5:30-47)
-세례(침례)요한(30-35절)-그들은 요한의 말에 귀를 기울이고 그의 사역을 즐거워하기조차 했으나, 그와 그의 멧세지를 거절하였다. 1장 15-34절을 다시 읽고 그가 그리스도에 대하여 사람들에게 어떻게 지시하였는지를 보라(3:27-36 참조).
-그리스도의 사역(36절)-니고데모조차도 그리스도의 기적이 그가 하나님께로부터 온 분임을 입증한다는 데에 동의하였다(3:2).
-하나님의 말씀(37-47절)-구약 성경은 아들에 대한 아버지의 증언이다. 유대인들은 성경을 읽었으나, 그들의 눈이 멀어 진리를 보는 데에는 실패하였다. 모세는 그리스도에 대해 기록하였으며 심판대에서 모세는 그들을 기소할 것인데도, 왜 그들은 믿지 않았는가? 그들은 말씀을 거절했고(38절) 오지 않았으며(40절) 하나님을 사랑하지 않았고(42절), 그를 영접하지 않았다(43절). 그들은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영광이 아니라 서로 사람들에게서 영광을 받고(44절) 말씀을 청종하려 하지 않았다(47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