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자는 쓰고 신발은 신고 옷은 입습니다.
그런데 언제부터인지
모자도 착용하고 신발도 착용하고 옷도 착용합니다.
산나물은 종류에 따라서 꺾기도 하고 캐기도 하고 뜯기도 하고 따기도 합니다.
고사리는 꺾고 씀바귀와 냉이는 캐고 쑥은 뜯고 버섯은 따는데
한자로는 죄다 채취한다고 합니다.
괜히 손해 보는 느낌입니다.
더 마음에 들지 않는 것은
우리말보다 한자어를 더 격조 있는 말로 여기는 풍조입니다.
옛날 유식한 양반님들이 한자어를 쓴 후유증이겠지요..
한자를 모르는 무식쟁이들이나 고유어를 썼을 테니까요.
장님, 소경, 봉사는 시각장애인을 얕잡아 이르는 말이고,
맹인은 시각장애인을 이르는 말이라고 하는 것도 그런 예가 아닐까 싶습니다.
그러면 미망인(未亡人)과 과부(寡婦)의 차이는 어떻게 될까요?
둘 다 한자어인데, 과부보다 미망인을 더 듣기 좋은 말로 여기는 듯합니다.
미망인(未亡人)은 다분히 가부장적인 발상에서 나온 말입니다.
지아비가 죽었으니 지어미 된 도리로 당연히 따라 죽어야 하는데,
아직 죽지 않은 사람이라는 뜻이지요..
(영조의 딸 화순옹주가 남편이 죽자, 14일 동안 물 한 모금 마시지 않고 죽었습니다.)
중3 국어 교과서에 『조침문』이 있었습니다.
시작 부분이 “유세차 모년 모월 모일에 미망인 모씨는 두어 자 글로써 침자에게 고하노니…”입니다.
지은이가 스스로 미망인이라고 했으니
그때는 미망인이 높임말이 아니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글자 그대로 “아직 죽지 않은 사람”이었지요..
그러면 자기 스스로를 미망인이라고 할 수는 있어도
다른 사람이 쓰면 안 되는 말일 수도 있겠네요.
“남편이 죽었는데 얼른 따라 죽지 않고 뭐하고 있습니까?”라고 하면, 뭐라고 할까요?
조선시대에는 남편 따라 죽는 여자를 기리기 위해서 열녀비도 세웠습니다만,
지금도 그런 생각을 하는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그러면 사어(死語)가 되어야 할 것 같은데,
과부보다 높임말로 대접받는 이유를 모르겠습니다.
순전히 어감 때문일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