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칼럼>
벌초하기
김 용 길 (시인)
절기상 더위가 물러난다는 '처서'이자 추석연휴를 2주여 앞두고 벌초를 다녀왔다.
TV에서도 전국 주요 공원묘지에는 벌초객들의 발길이 이어졌다는 소식과 더불어 '벌초 대행업체'가 대목을 맞았다는 뉴스가 눈에 띄었다.
벌초 대행은 10여 년 전부터 있었지만 최근 3년 사이 부쩍 예약 전화가 늘었다고 한다. 비용은 묘지 10평 기준으로 6만~8만 원 선. 벌초 대행업체에 전화로 예약하고 선금을 입금하면 예초기 등 전문 장비를 갖춘 인부 2명이 바로 투입된단다. 시대가 변하긴 많이 변한 모양이다.
과거에는 특정 성씨 집단이 집성촌을 이루고 있어서 보통 3대 이상이 함께 사는 대가족인 경우가 많았으므로 벌초를 하는 것 자체는 크게 문제될 것이 아니었다. 하지만 현대 한국사회에서는 가까운 친척이라 해도 멀리 떨어져 살고 있고, 핵가족화가 진행된 상태라 벌초 자체를 안 할 수는 없는데 또 그렇다고 적은 머릿수로 하기에는 부담스러운 상황이 됐다.
보통은 해당 지역에 남아있던 문중의 사람들이 벌초를 책임지고, 일가친척들은 이에 대한 감사를 뜻하는 의미에서 벌초비를 주는 형태가 많았다. 하지만 이것도 1980년대 ~ 90년대 중반까지 이야기이고, 이후로는 시골에 있던 분들도 대부분 늙으신 까닭에 직접 벌초를 못하게 되자 돈으로 사람을 고용해서 벌초를 맡기는 쪽으로 넘어갔다. 그리하여 벌초 대행업이라는 신종 사업도 등장한 거다.
벌초(伐草)는 묘소를 정리하는 과정의 하나로, 조상의 묘를 가능한 한 단정하고 깨끗이 유지하기 위한 후손들의 정성의 표현이라 할 수 있다. 일부 지역에선 금초(禁草)라 부르기도 한다. 금초는 금화벌초(禁火伐草)의 준말로 잡풀이 나지 못하도록 방제 하는 일을 뜻하며, 무덤에 불조심하고 때맞추어 풀을 베어 잔디를 잘 가꾼다는 뜻을 나타내는 말이다. 참고로 봉분을 다시 높이거나 무너진 부분을 보수하여, 잔디를 새로 입히는 일을 사초(莎草)라 한다.
백중이 지나 처서가 되면 풀의 성장을 멈추기 때문에 이때 벌초를 하면 비교적 오랫동안 산소가 깨끗이 보전되며 추석에 성묘를 하기 위해 추석 전에 반드시 벌초를 끝내야 한다.
벌초의 기원은 뚜렷하게 밝혀지지 않으나 유교의 관혼상제에서 시제와 묘제를 언급하고 있고, 특히 성리학에서 묘제를 중시하는 부분 등이 있는 점을 고려하면 아마도 한국사회에 유교가 보급되면서 벌초를 하는 관습도 같이 들어온 것이 아닐까 추측하고 있다.
실제 성리학이 보급된 조선시절에는 조상님들 묘에 잡풀이 무성한 것 자체도 불효로 인식했다. 그리하여 전통적으로 묘소의 상태가 좋지 않으면 조상에 대한 예의가 아니라 하여 벌초에 많은 신경들을 써왔다. 장기간 자손들이 돌보지 않아 폐허가 되다시피 한 무덤을 골총 혹은 폐총(廢塚) 이라 한다.
제주도에서는 음력 팔월이 되면 일가(一家)가 모여 벌초를 하는데 이를 “소분(掃墳)한다”, “모듬벌초한다”라고 부른다. “추석 전이 소분 안허민 자왈 썽 멩질 먹으레 온다.”라는 속담이 있는데 “추석 전에 소분을 안 하면 조상이 덤불을 쓰고 명절 먹으러 온다.”라는 말이다. 이 말들은 조상의 음덕을 기리는 가장 중요한 명절인 추석 전에 벌초를 해야 한다는 당위론에서 나온 말들이다.
모듬벌초는 음력 8월 초하루부터 왕래가 잦은 친족끼리 하나의 패를 형성하여 가제벌초를 하는데 보통 8촌 이내이다. 이는 혈족의 분파를 가지로 보고 동성(同姓)마을에서도 패가 다르면 따로 벌초를 한다. 이 벌초가 실질적으로 집안의 모든 사람들이 참석을 하는 친족 공동체의 소분(掃墳)이라 할 수 있다. 이후 웃대벌초라 하여 문중(門衆) 모듬벌초를 하는데 분파된 친족에서 몇 명의 어른들이 참석을 한다. 날짜가 일찍 정해져 있기에 정일벌초(定日伐草)라 부르기도 한다. 모둠벌초 날에는 친척들이 모여 벌초만이 아니라 집안의 일을 의논하는 것과 같은 제주 고유의 공동체 의식이 강하게 남아 있다.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이어져온 이런 제주 고유의 전통은 자긍심을 가지고 지켜 나가야 할 소중한 유산적 가치이다.
시대가 변하여 사람을 빌려 풀을 치더라도 조상이 있어주었기에 내가 있는 것이라는 의식을 갖고 1년에 1번 하는 벌초를 통해 조상을 직접 찾아뵙는 데 의미가 있는 것이다.
봉분을 이쁘게 정리하는 것만이 전부가 아닌, 진정 조상의 고마움을 기리고 가족의 뿌리를 인지하는 것이 보다 건강한 벌초 문화가 아닐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