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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엽기조선왕조실록] 26. 금(金)씨를 김(金)씨라 읽어야 하는 설움(?) |
4천5백만 대한민국 인구 중에서 가장 많은 성씨를 차지하는 성은 무엇일까? 그렇다 바로 김(金)씨이다. 그런데 뭔가 좀 이상하지 않는가? 분명 김씨의 한자어는 쇠 금(金)자인데, 어째서 읽는 건 ‘김’씨라 읽는 것일까?
김씨의 연원을 더듬어 올라가면, 신라 제4대 탈해왕 9년까지 거슬러 올라가는데, 경주 계림에서 기이한 닭 울음소리가 들려 이 지역을 수색해 보니 소나무 숲의 높은 나뭇가지에 금빛 찬란한 작은 궤(櫃)가 걸려있었다고 한다. 이 궤를 열어보니 잘생긴 사내아이가 들어있었으니, 이 사람이 바로 훗날 수로왕이 된다는 것이다. 이때 사람들은 금궤(金櫃)에서 나왔다 하여 이 아이의 성을 김(金)씨라 하였고, 나중에 김수로왕이라 칭하게 되었다는 것인데…뭔가 이상하지 않은가? 그렇다 좀 이상하다. 금궤에서 나왔다면 금(金)수로왕이 되어야 하는 게 정상이지 않은가? 이 성씨 발음의 비밀…. 그 역사속 비밀을 찾아가 보기로 하자.
“전하, 어제로 삼천리 강토를 좀 먹던 고려의 역사는 끝이 나고 새 시대, 새로운 기틀을 다져넣은 조선의 시대가 시작되었습니다. 이 기쁜 마음을 어찌 다 풀어낼수 있을런지…. 전하! 천세, 천세, 천천세~”(만세는 황제국에서나 쓰는 것이고 명목상의 제후국인 조선은 천세라고만 외칠수 있었다)
“하 자식들, 오바 하기는, 그래그래, 오늘 같은 날 오바해야지, 언제 오바하겠냐? 좋아, 기분이다. 내가 오늘 쏠테니까 오늘 다 죽는거야, 오케바리?”
조선을 개국한 태조 이성계, 아니 태조 이단(李旦 : 전회에 설명 드렸으니 아실 것이다)은 나라를 개국했다는 사실에 기분이 째지긴 째졌는데, 원래 칼로 흥한자 칼로 망한다고, 쿠데타로 집권한 태조, 좀 걱정이 되긴 됐었다.
“하…젠장, 또 나같이 행복한 군인이 나오면 안 되는데. 이거이거 영 신경 쓰이는데?”
결국 이성계는 정도전을 시켜 사병을 혁파하게 만들고, 최무선이 만들었던 화약무기를 봉인하기에 이르른다.
“아니, 뭐…. 화약무기 같은 신무기를 반란군 애들이 들고 우리를 공격하면 그거 문제잖아?”
자, 이런 상황에서도 태조의 불안감은 쉽사리 가라앉지 않았는데, 역시 사람이란 게 죄(?) 짓고는 못사는 법인가 보다. 이제 외부적으로 어느정도 자신감을 얻을때쯤 돼서 난데없이 터져나온 것이 바로 금(金)씨에 대한 이야기이다.
“전하, 전하가 고려를 쓰러뜨리고 조선을 개국한 가장 큰 힘이 무엇이라 보십니까?”
“군대 아니겠어? 위화도 회군을 하고 최영장군 자빠뜨리고 한 게 다 군대 동원해서 그런거 아냐? 권력은 총구에서 나오는 거야”
“아니, 뭐. 꼭 그렇게 단정 지으실 필요는 없을 거 같은데…. 음 저기, 전하 어떤 권력이든 민심을 얻지 못하면 그 권력은 오래 버티지 못합니다.”
“하하, 뭐 그 정도야 상식 아니겠어? 그런데 그게 왜?”
“예전에 전하가 잠저(潛邸)에 계실 때 저희들이 의도적으로 민심을 뒤흔들려고 퍼뜨린 프로파간다 기억하십니까?”
“아 목자득국(木子得國 : 나무목과 아들자를 붙이면 오얏 李가 된다. 고로 이씨가 나라를 얻는다라는 뜻) 그거? 야, 그거 어떤 놈이 기획했냐? 그놈자식 참 똘똘해 안 그래? 내가 그걸 깜박했네, 이참에 그 녀석한테 보너스나 좀 쥐어져야 겠구만.”
“전하, 지금 그게 문제가 아니라 이 목자득국을 깰 수 있는 것들이 돌아다니고 있다니까요!”
“그게 뭔 소리여? 너 또 정감록 보고 왔구나? 야, 왕씨들 씨말린지가 얼마나 됐다고 또 정씨들 죽이자고? 야야, 너 너무 오바 하는 거 아냐? 그렇게 따지면 이씨 아닌 성 가진 애들은 다 죽여야 겠다”
“전하, 그게 아니구요…. 일단 들어보세요. 전하는 이씨죠? 이 이(李)씨는 음양오행으로 따지면 나무(木)입니다. 오행설에 따르면, 금목수화토(金木水火土) 순서로 나오는데, 나무는 흙을 이기고, 흙은 물을 이기고, 물은 불을 이기고, 불은 쇠를, 쇠는 나무를 이기는 걸로 나와있습니다. 한마디로 물고 물리고, 또 물린 형국이죠.”
“그게 어쨌다구? 너 내가 가방끈이 짧다고, 일부러 어렵게 말하는 거지?”
“아니, 그게 아니라요, 음양오행을 따지면, 나무의 성질을 가진 이(李)씨가 쇠의 성질을 가진 금(金)씨들에게 진다는 거죠.”
“진짜야? 사실이야?”
“음양오행설로 따지면 그렇다는 거죠.”
“야…이거 골 때리네, 그럼 언젠가는 이(李)씨들도 쫓겨난다는 소리네?”
“뭐 그렇다고 봐야겠죠?”
“이런 된장. 일단 전국에 있는 금(金)씨 성 가진 것들을 다 잡아들여라!”
“전하, 그럼 전체 인구의 1/5을 잡아들이란 소린데요?”
“…이런 된장, 그럼 어쩌라고?”
“금씨성 가진 애들을 다 잡아 들일수도 없는 일이고, 차선책으로 금씨의 기운을 죽이는 방법을 생각해 봤습니다. 당장 쇠금자를 안 쓰게 할 수도 없고, 또 이것들이 신라시대부터 잔뼈가 굵은 것들이라고 쓰지 말라고 안쓸놈들도 아니니까, 정부차원에서 맞춤법 개정안을 내놓는 겁니다. 그래서 앞으론 쇠 금(金)자를 성으로 쓸 때는 쓰기는 쇠금 자로 쓰되 발음은 김씨로 한다라고 말이죠 어떻습니까?”
“You Win! "
이렇게 해서 금(金)씨 성을 가진 자들은 조선시대부터 금씨가 아닌 김씨로 불리게 되었던 것이다. 얼핏 들으면 황당하기 그지없는 이야기지만, 당시로선 정권 안보 차원의 중차대한 문제였다. 지금 김씨성을 가진 이 땅의 수많은 사람들, 알고 보면 조선의 정권안보를 위해 강제로(?) 발음을 바꿔야했던 슬픈 사연(?)이 깃든 성씨였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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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사기(신라본기)
○九年春三月, 王夜聞<金城>西<始林>樹間, 有鷄鳴聲. 黎明遣<瓠公>視之, 有金色小 , 掛樹枝, 白鷄鳴於其下. <瓠公>還告. 王使人取 開之, 有小男兒在其中, 姿容奇偉. 上喜謂左右曰: "此豈非天遺我以 胤{令胤} 乎!" 乃收養之. 及長, 聰明多智略, 乃名<閼智>. 以其出於金 , 姓<金>氏. 改<始林>名< 林>, 因以爲國號.
9년 봄 3월 왕이 밤에, 금성 서쪽 시림의 나무 사이에서 닭이 우는 소리가 나는 것을 들었다. 날이 샐 무렵에 호공을 보내 어찌된 일인지를 알아보도록 하였다.
호공이 가보니 그 곳에는 나무 가지에 금빛나는 작은 상자가 걸려 있었고, 흰 닭이 그 아래에서 울고 있었다. 호공이 돌아와 이를 보고하였다. 왕은 사람을 보내 그 상자를 가져와 열게 하였다. 그 속에는 어린 사내 아이가 들어 있었고, 그 아이는 자태와 용모가 뛰어났다.
왕이 기뻐하며 측근들에게 "이 아이는 어찌 하늘이 나에게 아들로 준 것이 아니겠는가!"라고 말하고, 그 아이를 거두어 길렀다. 아이는 자라면서 총명하고 지략이 뛰어났다. 그의 이름을 알지라고 하였다. 그는 금빛이 나는 상자에서 나왔기 때문에 성을 김씨라고 하였다. 시림을 고쳐 계림이라 부르고, 이를 국호로 하였다.
************************************************삼국사기(신라본기) 발췌
====> 원문 해석에 차이가 있어 같이 올립니다.
김씨 (金氏) 시조와 계림 (鷄林)
계림은 경주시 교동에 있는데, 옛날부터 신성림으로 존숭하여 원래는 시림이라고 불려 왔으며, 월성의 서북 황남동의 동남에 있다. 이숲이 탈해왕 9년부터 계림이라고 불리어지게 됨에는 이러한 유래가 있기 떄문이다.
신라 4대 탈해왕 9년 가을 호공이란 장관이 홀로 서리를 거닐며 시원한 바람과 맑은벌레의 노래를 들으며 산책하는데 이상한 빛이 시림 속에서 나오면서 자운이 하늘에서 땅에 닿아 있었다. 가까이 가 보니 영롱한 황금빛 궤가 나뭇가지에 걸려 있고, 나무 밑에는 백설 같은 닭이 울고 있었다. 호공은 즉시로 이기묘한 사실을 왕께 아뢰었더니 왕은 시림에 나오셔서 궤를 내리어 열어 보았더니 뜻밖에도 그 안에서 옥동자< 알지 >라는 소리를 치고 나왔다.
왕은 대단히 기뻐하여 이는 하늘이 주신 후사라고 하고, 곧 궁성으로 안고 가는데 수많은 새와 짐승이 앞뒤로 따르며 희희 낙낙 하는 것이 좋은 경사를 표시한 듯 하였다. 왕은 길일 을 받아서 태자로 삼고 호공에게 양육을 맡기었다.
그리하여 금 궤에서 나왔다고 해서 성은 김이라 하고, 처음 말이 < 알지 >라 하였다고 하여 이름을 알지라고 정하였다.
알지는 자손 미추에 와서 왕위에 올랐으며, 그 뒤로 30여 인이나 임금이 되시었다. 그러므로, 알지는 경주 김씨의 시조이며, 김씨가 난 후이숲을 닭이 울었다 해서 계림이라 고치고 13대 미추왕이 되신후 계림이란 국호까지 부르게 되었다.
*************************************토박이 신라 전설 발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