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주일 동안 한국을 떠나 있었습니다.
미국 가서 인터넷을 할 수 있을 줄 알았지만 거의 불가능 하더군요.
바쁜 일정 속에 치이다 보니, 연락을 못전해 한편으론 답답하기도 했습니다.
승표와 난 미국으로 떠나기 4일전에,
갑작스런 연락을 받았습니다.
동대문 교회 아동부 미국 동부 탐방 프로그램의 인솔자가 될 수 없겠냐고요..
예정된 인솔자가 급작스런 사정이 생겨 다른 '비자' 있는 사람을 구하는데,
승표와 저 밖에 없었나 봅니다.
승표는 예정되어 있던 목사님 대신 가는거라 경비가 필요 없었고,
나는 비디오 촬영을 도와 비행기 값만 내면 된다고 하더군요.
2주일간의 갑작스런 여행 제의는 당황스럽기도 했지만
매력적이었습니다. 급전을 구해 결국 태평양 상공으로 몸을 내던지고 말았습니다.
처음으로 미국으로 가는 놈이 국제 운전면허증 발급에다,
처리해야 할 일들이 산더미 같아, 여기저기 인사도 못하고 떠나버렸습니다.
그리곤 지금 돌아와 이렇게 감격적인 인터넷 접속을 통해 글을 남깁니다.
이번 프로그램은 교회 학생들이 가는 것이라
미국의 유명한 명소들 뿐 아니라,
대학(신학대학 포함)과 교회도 많이 포함되었습니다.
첫 날(7.28)은 뉴욕 JFK공항에 내려
다음 날(29), 뉴욕 맨하탄을 둘러봤습니다.
첫 방문지로는, 미국의 장로교 근본주의-자유주의 신학 간의 논쟁이 시작된
Rverside Church를 방문했습니다.
바로 옆의 Union Theological Seminary와 Columbia Univ.를 둘러본 뒤
베터리 파크에서 한국전쟁 기념비를 둘러 보고
베터리 파크에서 출발하는 배를 타고 자유의 여신상을 둘러 보았습니다.
그리고 나서 한인 타운에서 설렁탕을 먹었죠.
맨하튼 한인타운 바로 옆에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이 있더군요.
꼭대기에 올라가는데만 2시간 가까이 들었습니다.
9.11 테러 이후,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이 요즘 맨하튼에서
가장 높은 빌딩이 되어 버려 졸지에 모든 인기가 쏠렸습니다.
30일엔 전기와 자동차도 없이 마차를 끌며 사는 소종파 마을인 Amish Town과
제세례파의 후예들이 모여사는 메노나이트 촌을 방문했고,
오후엔 <Princeton Univ.>와 같은 캠퍼스 안에 위치한
<Princeton Theological Seminary>를 둘러보았습니다.
영화 <아이큐>에서 맥라이언과 팀로빈스가 프린스턴 캠퍼스를 배경으로
사랑을 나누던 장면들과 아인슈타인의 발자취를 잘 느낄 수 있었습니다.
정말 아름다운 캠퍼스더군요. 세미너리에서 외곽으로 나오는 길의
넓은 잔디밭은 영화 아이큐에서의 라스트 신이 촬영되었던 곳이라 무척 반가웠습니다..^^
특히 신학대학 정문 길 건너의 '스피어 도서관' (Speer library)을 보는 순간,
그의 이름과 함께 메이첸과 어드만 등의 장로교 신학자들이
프린스턴 안에서 뜨겁게 논쟁했던 자유-근본주의 간의
격렬했던 미국 장로교의 신학논쟁의 역사가 역동적으로 느껴지더군요.
그들의 논쟁은 한국에서도 김재준, 박형룡과 같은 신학자들의 논쟁으로
그대로 재현되기도 했죠...
아무튼 저와 승표에게 프린스톤의 정경은 잊을 수 없는 감동이었습니다.
31일(목)엔 워싱턴으로 이동해, 워싱턴 중앙의 워싱턴 기념탑(Monument)과
바로 옆의 백악관, 링컨 기념관, 그리고 한국전쟁 참전 기념조형물,
스미소니언 자연사 박물관을 보았습니다.
이들 인근의 국립 공문서 보관소와 상공회의소 등의 건물들은 그 위용이 대단했습니다.
링컨기념관과 워싱턴 기념탑 사이의 연못을 바라보자, 영화 <포레스트 검프>에서
포레스트가 그의 애인과 물길을 헤쳐가며 포옹하는 장면이 떠올랐습니다.
워싱턴은 역시 수도다운 면모를 지닌 웅장한 모습들이었습니다.
링컨 기념관 계단 중앙엔 마틴루터 킹 목사님이 " I have a dream~!"이라고
외쳤던 장소라 글씨가 파여져 있더군요.
그리고 바로 앞엔 한국전쟁 기념 조형물들이 넓은 잔디밭에 펼쳐져 있는데,
미국이 한국전쟁으로 참으로 각별하게 생각한다는 사실을 새삼 느꼈습니다.
한편으론 그들이 세계 지도국가로서의 정체성을 찾기 위해
지난 2차 세계대전과 한국전쟁을 과도한 자긍심으로 포장하고 있지는 않나
하는 생각도 들더군요.
볼게 많은 워싱턴의 탐방은 다음날(8.1)에도 이어졌는데요.
우선 초대 대통령인 조지 워싱턴의 생가, 마운틴 버논에 갔습니다.
집은 초라했지만, 주변의 경관은 웅장하고 스케일이 크더군요.
땅이 넓다는 사실.., 그것은 여행 내내 미국에 대한 부러움으로 다가왔습니다.
오후엔 알링턴 국립묘지에 갔는데, 뜻밖의 장소를 알게 되었습니다.
묘역 끝부분에 무명의 용사 무덤에 미군들과 함께
한국전쟁에서 숨진 수많은 무명 한국군들의 영령이 함께 모셔져 있더란
사실입니다.
그들이 한국전쟁을 애틋하게 생각하는 것 만큼 한국군에 대한
존경과 예후를 지닌 것은 참 감동으로 다가왔습니다.
또한 중턱의 J.F.Kenedy 대통령의 무덤 한가운데엔
'영원히 꺼지지 않는 불'이 타오르고 있었답니다.
"사람은 반드시 죽습니다.
국가는 흥할수도 혹은 망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정신'은 영원히 살아 있습니다."
- 케네디 대통령 -
정말 인상적이었습니다.
8월 2일 토요일은 볼티모어의 수족관이 너무 붐벼 결국 보지 못하고 지나쳤고
3일(주일)엔 뉴욕 아래 쪽에 위치한 St. Luck 연합감리교회에서 예배를 드린 뒤
대서양에서 아이들을 인솔해 해수욕을 즐겼습니다.
아직도 어깨와 등에 깊은 화상자국이 고통스럽게 남아 있군요.
햇살과 모래바람이 정말 강했습니다.
바다는 내 고향, 동해바다가 백배 낫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물도 훨씬 깨끗하고 모래도 훨씬 곱고...
다음날(4일)은 필라델피아로 이동해 독립선언 장소(인디펜던스 홀)와 자유의 종, 그리고
GM의 창시자인 두퐁이 만들어 시민에게 공개한 오랜 전통의
Longwood Garden을 관람했습니다.
특히 롱우드 가든은 그 눈부신 아름다움이 입을 다물 수 없게 만들었습니다.
우리 나라 재벌들이 이런거라도 배웠다면 우리도 기가막힌 명소를
시민들과 나눌 수 있겠다는 생각을 해보았습니다.
특히 GM에게 대우 차를 팔아넘긴 김우중 같은 사람이 떠오르더군요...
펜실베니아 대학도 지나갔는데, 물론 그 대학을 설립한 벤자민 플랭클린 같은
사람들이 계속 부럽게 느껴지더군요...
미국이 다 좋은 것은 아니었지만, 뉴욕의 리버사이드 교회 등의 수많은 교회와
학교를 지은 록펠러..., 그리고 카네기 같은 자신의 부를 사회에 환원하는
재벌들의 존재는 정말 큰 부러움으로 다가왔습니다.
하버드 대학을 만든 대부호, John, Harvard도 그렇구요...
5일(화)엔 전날부터 도착해 있던 New Haven에서 아침일찍 Yale Univ.를
방문했답니다.
Law School과 인근의 Old campus zone을 둘러봤는데,
프린스턴과 함께 참으로 아름다운 모습을 지녔더군요.
특히 로스쿨 도서관에 들어갔을 때의 웅장함과 전통과 권위는
쉬이 따라갈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란 생각이 들었습니다.
새로지은 연대 법대의 모습조차도 얼마나 초라해 지는지 몰랐습니다.
링컨도 예일 로스쿨 출신이더군요. 최근의 클린턴, 힐러리, 부시에 이르기까지요...
예일 신학부는 본 캠퍼스에서 약 20마일 떨어져 있다고 해서 방문해보진
못했습니다.
오후엔 보스턴으로 이동해 메사츄세츠 주립대 내의 J.F.K 대통령기념관을
들렀습니다. 그를 집중해서 느낄 수 있게 잘 꾸며놓았더군요.
그리곤 지하철을 타고 Harvard Yard와 M.I.T를 다녔습니다.
하버드는 도심 한가운데에서 약간은 북적거리는 분위기였고,
캠퍼스도 아담했습니다. 프린스턴, 예일과는 사뭇 다른 분위기더군요.
Under가 주로 쓰는 Old campus Zone은 매우 협소하였고,
그 인근으로 산만하게 각 대학원들이 흩어져 있었습니다.
조금 걸어 중국학과 한국학이 연구되는 엔칭 연구소를 지났는데, 생각보다
초라하더군요. 게다가 그 안엔 갈 수록 중국학 일본학만이 연구되고,
한국학은 소외되고 있다는 이야길 듣고 참 안타까웠답니다.
그 옆에 붙어있는 Harvard Divinity school은 더욱 초라하더군요.
주변 환경도 좀 산만하고..., 공간도 협소하고...,
종합대학 내에서 신학공동체로 존재한다는 것이
연세대학교나, 미국의 하버드, 예일, 프린스턴 등 모두가
조금은 힘겨운 모습을 이어가는 것 같아 신학도로서는 약간
아쉬움이 남는 모습들이었습니다.
8월 6일엔 아침일찍 대서양의 고래 서식지로 배를 타고 나가 둘러보았습니다.
아이들은 역시 제일 좋아하더군요.
그리곤 메이플라워 호와 플리머스 플랜태이션(민속촌)을 방문한 뒤
다시 뉴욕으로 이동했습니다.
마지막 날(7일)은 좀 의미 있게 보내기 위해
한국에 최초로 파송된 감리교 선교사인 아펜젤러 선교사의 모교인
Drew 대학교 신학부를 방문했습니다.
우연히도, 박사과정에 있는 이찬석 목사님(감신82학번)이
동대문 아이들을 보시곤 한예운 후배인 승표를 찾으셔서,
인근의 아펜젤러가 한국오기 직전 목회하던 교회를 안내 받을 수
있었던 것은 참 행운이었습니다.
드루대학교는 뉴저지의 짙은 숲 속에 폭 파뭍여 있는
아름답고도 고요한 캠퍼스였습니다.
그리고 학부가 2000명 정도에 대학원도 문학과 신학 정도 뿐이라
규모가 아담하고 고요했습니다.
특히 프린스턴, 예일에서도 느낄 수 없는 캠퍼스 내의 깊은 숲은
자연의 아름다움을 가장 잘 느낄 수 있게 해주는 것 같았습니다.
한국교회사를 공부하게 된 저로선
Drew Methodist 아키브에 미국 초기 감리교의 선교 역사자료들이 소장되어 있어
한국교회사 및 근현대사의 사료 발굴의 보고로서 큰 관심을 가지게 하더군요.
마지막 탐방지는 뉴욕시내로 돌아와 무역센터 참사현장으로 둘러보는 것이었습니다.
가까이 가서 지켜보니 정말 넓은 공간이 폐허로 변해 있더군요.
그 안에서 6000여명(?)이 유명을 달리했다는 사실이 큰 안타까움으로 다가왔습니다.
게다가 옆의 빌딩도 무려 8개나 손상을 입어 추가적으로 무너져 내렸다는 사실은
처음으로 알았습니다.
9개째가 또 무너질 예정이라더군요.
미국이 나쁘든 어찌됐든 간에 테러는 결코 용납될 수 없다는 사실을
절감했답니다.
그래도 그곳을 갔을 때, 미국은 세계사적으로 반성해야 할 때가 되었다는 사실을
다시금 확인하게 되었습니다.
빌리그래이엄 목사가 사태 직후,
"지금 이 사건은 미국이 회개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라고 설교했던 것 처럼,
미국은 여전히 정신 못차리고, 자신의 몸집을 살찌우는데만 급급해 있다는
것을 더욱 많이 보고 느꼈습니다.
수많은 미국민들은 가히 걸어다니는 돼지떼들이었습니다.
하루에 한번은 꼭 먹게되는 맥도날드 햄버거에 나도 곧
저들처럼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들의 주체할 수 없는 물질적 욕망의 충족을 위해선
이라크 뿐 아니라 또다른 희생국이 반드시 필요해 지겠다는 생각이
소름끼치도록 머리를 스쳤습니다.
한국에선 매일 하는 분리수거였지만,
미국에서 아무런 죄의식 없이 한꺼번에 버려지는 패스트 푸트 음식과
일회용품들을 보면서 우리의 노력이 무색해지는 것에 경악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현실을 인정하면서도, 대중교통은 도태되고 자가용만이
판치는 미국사회는 석유에 굶주릴 수 밖에 없는 구조적 한계를
지니고 있었습니다.
거대한 매머드처럼 오만과 그 큰 덩치만을 유지하기에 급급한 모습...
그게 바로 직접 보면서 느낀 미국의 실상이었습니다.
노인들로만 채워지는 교회의 모습에서 초기 미국의 청교도 정신과
금욕과 절제의 삶은 과거의 역사로만 존재하는 듯 했습니다.
최하층민들 소수만이 이용하는 보스턴 지하철의 냄새나는 구정물 진창과
소음, 산재한 위험요소들을 보면서 미국의 어두운 면들 또한 잘
기억하고 돌아올 수 있었습니다.
아무튼 첫 미국여행을 직접 지도를 보며 차를 몰아 이동할 수 있었던
것은 큰 행운이었습니다.
덕분에 짧은 시간에 미국의 많은 것들을 볼 수 있었던 것 같아요.
2주일간의 여정이었지만 감리교사학회 식구들의 모습도 가끔
그리워하곤 했습니다.
서울 독립문에 도착한 이표가..
카페 게시글
사랑방
미국 동부여행을 마치고 돌아와서..(홍이표)
doot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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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08.11 08: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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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재미있는 여행이었군요, 여행에서 얻은 것들을 차분하게 정리하시고 공부와 삶의 방향을 정하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