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작시|양민주
고문 외
보급 장교는 킁킁하는 버릇이 있다 전투복을 전투화를 전투모를 인식표를 속옷을 양말을, 세면주머니를 나누어 줄 때 코를 실룩이며 킁킁했다 전투복이 킁킁 크면 킁킁 손들고 킁킁 바꾸기 킁킁 바란다 킁킁 말하는 중간중간에도 킁킁했다 생활관은 고요가 깊다 빛바랜 비닐 장판이 깔린 침상과 그 끝엔 M16 소총이 세워져 있다 고문관 병사는 침상에 모포를 쓰고 누워 아픈체하고 나는 웃음을 참느라 이를 악물고 부동자세로 서 있다 보급 장교는 가깝게 있는데 차마 쳐다보지 못하고 유리창에 토막 난 파란 하늘만 바라보았다 자신도 모르게 킁킁 소리 내며 찰리 채플린처럼 웃음도 준다 웃음을 참아야 하는 까닭을 어디에 물어야 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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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전시장 바닥에 누워 잠자고 싶다
그림 전시장 바닥에 누워 잠자는 그림은 본 적 없다 잠자는 사람은 꿈을 꾸지, 그림을 그리지 못한다 전시장 그림으로 들어가 드러누워 잠을 자야 그림이 완성된다 나는 그런 그림이 되어 전시되고 싶다 그림이 걸린 전시장 그림은 문이 없다 불구하고 그림을 그리는 그 남자가 그려진 그림은 본 적 있다 르네 마그리트는 어떻게 들어갔을까 그림 전시장 바닥에 누워 잠자는 그림은 본 적 없다 다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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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민주|경남 창녕 출생으로 2015년 《문학청춘》으로 등단했다. 시집으로 『아버지의 늪』, 『산감나무』가 있으며 수필집 『아버지의 구두』, 『나뭇잎 칼』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