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의 퇴적활동이 남겨주는 최고의 선물인 비옥함, 그 풍요로운 땅 두물머리 유기농업생산지. 약한 황사 탓에 강물과 산이 뿌옇게 보였지만 봄이 가까이 왔다는 것을 실감할 수 있을 만큼 땅이 깨어나고 있었다. 3월 19일 두물머리 미사에 참석한 일본 S 생활협동조합 前 이사장 야마구치 세츠꼬 씨를 만났다.
그녀는 11년 전 처음 한국에 왔을 때 방문했던 팔당 주변 유기농단지에 감명받았고 꼭 다시 오고 싶었다고 말문을 열었다. 그러나 이번에 다시 온 팔당에서 4대강 개발 때문에 유기농업이 위협받고 있다는 사실을 전해 들었으며, 무척 놀랍고 안타깝다고 말했다. 그녀는 오래된 강변의 퇴적된 농지가 파괴되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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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0년 넘게 생협 활동을 통한 한일 교류와 나눔을 하고 있는 일본 S생협 전 이사장 야마구찌 세츠꼬 씨. (사진/ 정현진 기자) |
"한일 간 생협 교류의 물꼬를 트려고 2000년에 처음으로 방한했는데 한살림 공동체 분들과 팔당 주변에서 유기농을 하는 분들을 만났습니다. 당시 만난 농민 분들은 팔당 상수원 주변에서 유기농을 한다고 무척 자랑스러워 했습니다. 저 역시 그분들을 보면서 일본 농업의 미래를 생각했습니다. 어떤 이유로든 좋은 먹을거리를 생산하는 생산현장이 훼손되는 것은 안타까운 일입니다."
지난 15일 입국한 야마구치 세츠꼬 씨는 S 생협과 교류하는 진주와 음성, 그리고 원주의 생협을 방문했고 남은 일정 중엔 서울에서 우리농촌살리기운동본부와 한살림 등을 방문할 예정이다.
"농산물과 사람을 함께 교류하자"
"2002년 한국과 일본의 생협 교류를 하자는 제안을 받고 어떻게 하는 것이 가장 좋을까 고민을 많이 했다"는 야마구치 세츠꼬 씨는 "농산물과 사람을 함께 교류하자고 생각해 '사람과 함께', 음성에서 고춧가루를 수입한 것이 우리 교류의 시작'이라고 했다. 그녀는 또 "한일 간에 역사적으로 불행한 시기도 있었고 현대에 와서도 미묘한 갈등이 있지만, '사람'과 그 사람들이 생산한 '농산물'을 서로 나눔으로써 서로 이해하고 받아들이기 쉬워질 것으로 생각했다"면서 "우리가 선택한 '고추'가 단단한 가교가 되어 한일 생협 교류가 더 활발해지고 있다"고 기쁨을 드러냈다.
고춧가루와 함께 고추 농사를 짓는 사람들이 일본을 방문했고, 일본 소비자들에게 한국 고추 농사를 설명했다. 일본과 한국의 생산자와 소비자들이 양국을 오가며 이해의 폭도 깊어지고 생협 나눔의 규모도 커졌다. 일본이나 한국이나 농촌에는 젊은이들이 없고 노령화가 가속화되는 상황에서 이런 교류는 활력을 불어넣을 만했다.
"우리는 서로 '왔다갔다'하면서 처음의 불안함이 점차 없어졌어요. 10년간 교류를 하면서 신뢰를 만든 것은 참 중요합니다. 저는 이제 이사장을 물러나 조합원으로 돌아왔습니다만 지금까지의 경험을 나누며 더 활발한 한일 교류의 장을 만들고자 함께 할 것입니다."
정부의 힘이나 남자의 힘을 빌지 않고 여성 스스로
야마구치 세츠꼬 씨는 생협 운동에 대해 여성 스스로 의미 있는 활동을 찾은 것에 대해 높이 평가하면서 "정부의 힘이나 남자의 힘을 빌지 않고 여성 스스로 찾은 것을 일구는데 참 많은 시간이 걸렸지만, 이제는 많은 여성이 그룹을 만들어 생협을 확산시키고 있어 보람도 있고 기쁘다"면서 한국도 비슷하게 생협이 확산하고 있을 것인데, 서로 가진 경험을 함께 나누면서 발전해 나가길 희망했다.
흔히 생산자와 소비자를 가르지만, 먹을거리를 생산하는 농촌에서도 소비는 이루어지는 만큼 앞으로는 '도농 생산공동체' 개념이 확산하리라 전망한 세츠꼬씨는 일본의 사례 몇 가지를 소개했다.
오사카 남쪽 사카이시에는 규모가 작지만, 농지들이 있다고 밝힌 세츠꼬씨는 그곳 생산자들이 학교의 학부모 모임에 제안해서 학생들과 함께 씨 뿌리기부터 수확까지 함께하는데, 학부모들을 도시의 소비자로 볼 때 소비자도 생산자로 참여하는 생산공동체에 가까워질 수 있다고 말했다.
그녀는 또 일본 농민들이 농지 주변에 작은 가게를 만드는 경우가 늘어나고 있다면서 '기리에 가게'로 이름 붙여진 이 가게들은 일종의 소비자 운동이면서 생산공동체의 확산이라고 말했다. 기리에 가게에서는 그 지역에서 생산되는 먹을거리를 제때, 제철에 먹자고 제안하며 어떻게 먹는 것이 가장 좋은지를 알려준다. 또 인근의 농지를 빌려주어 농사를 지을 수 있게 안내해 주는 '시민 농원'도 함께 운영하며 도시 소비자들과 농촌 생산자들이 함께 일구어내는 먹을거리 문화를 확산시킨다고 전했다.
야마구치 세츠꼬 씨는 오사카 인근에 '비와코'라는 큰 호수가 있는데, 그 부근에서도 유기농법으로 농사짓는 이들이 있다고 말하면서 "지금 두물머리 농민들이 겪는 농지를 잃을지도 모를 아픔을 비와코 농민들에게 전하고 싶다. 아직은 어떤 방법으로 함께 해야 할지 모르겠지만 같은 농민으로서 마음을 모을 수 있을 것"이라고 두물머리 농민들을 위로했다. 그녀는 또 오는 5월 우리농에서 일본을 방문하는데, 그 자리에서 팔당 두물머리 상황을 나눌 수 있는 자리를 마련할 것이라면서 연대의 가능성을 시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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