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비화와의 만남>
2023.04.25.(화). 우산을 준비하고 나서는 길. (대전) 도마시장 입구에서 상세동 가는 버스를 탄다.
오늘은 무슨 만남이 있을까? 버스정류장에는 한 할머니가 흑석동 가는 버스를 기다리신다.
나이에 비해 정정하신 할머니. 저 연세에 혼자서 시내버스를 타고 나들이를 하신다니. 연세를 여쭤보니 90세란다.
100세 까지 건강하시길 빈다고 인사를 드리는데 흑석동행 버스에 올라 타시는 모습에 우리는 걱정을 하면서도 부러운 눈으로 바라본다.
그 사이 우리가 탈 버스도 이어서 도착한다. 10시 20분 세동행 버스 안에 손님이라야 우리 셋 뿐이다.
비는 오락가락 어정쩡한 비가 우산 만 귀찮게 한다 . 운전석 앞 차창의 와이퍼 조차 잠잠한 비
방동저수지를 지나서 위왕산을 바라보며 세동으로 들어가는 골짜기로 들어선다. 細洞(가늘 세, 고을 동) 순 우리말은 '가는골'이겠지 하면서 가는데, 만보 선생이 옛날 생각이 났는지 할아버지와 함께 이곳으로 모신 고조할아버지 묘소에 성묘 다니던 시절 이야기를 들려준다. 두계역(지금은 계룡역)에서 내려 걸어 갔었단다. 중세동을 거쳐 올라가면 상세동이다.
버스에서 내리니 11시가 좀 지난 7분. 세동1통 경로당 앞마당이 주차장이다. 그 앞에는 느티나무 한 그루가 보호수로 서있다.
작은 산지기 말로는 해방을 기념해서 심은 나무라 해서 글귀가 있나 찾아보아도 보이지 않는다. 옆에는 상시동 시비도 보이고,
해방이니 한국동란이니 하는 국가 대사가 일어날 적 마다 징조를 보이는 나무도 있고 (부여 외산 은행나무처럼,) 아니면 비석에서 땀을 흘린다는 등을 들어 보긴, 했는데 해방을 기념해서 나무를 심었다니 의미있는 일이 아닌가.
못 찾아 아쉬움 만을 간직하고는 서낭당터가 있는 고갯길로 들어선다. 계룡시 신도안으로 가는 길
나는 처음 가는 길이라 두리번 거리면서 고개를 올라간다.
옛날에는 없었을 1번 국도가 동학사 입구 박정자를 지나서 계룡터널(굴길)을 지나 이곳 계룡시로 이어져 옛길과 만나고 있었다. 그 길 아래로는 계룡시 삼군본부교회쪽으로 난 도로가 새로 개설 되어 있었다. 그 바람에 옛부터 있던 서낭터도 없어지고 옛길도 부분만 남아있었다. ' 동문다리'시비 속에 옛 서낭터 이야기 흔적만 볼 수 있을 뿐. 그 시비 마저도 접착 부분이 분리되어 쓰러져 있다.
옛길을 찾아 내려가는 그 중간에 아들바위가 우리를 맞이한다. 아들이 무엇이라고 그리도 빌었을까?
생명체는 무릇 자신의 생육과 번식을 위해서 혼신의 힘을 다하는 것이 자연의 이치인가?
구약성경 창세기며 신명기의 구절을 생각해본다.
도킨스가 말하는 <이기적인 유전자>의 본성인가도 생각해본다.
노적봉이라고도 하고, 보는 이에 따라서, 곳에 따라서 달리 부른 산 봉우리 이다.
신도안에서 보면 닭벼슬 같다 해서 '벼슬바위'라 하고, 상세동에서는 노적가리 같다하여 '노적봉'이라 하고, 또 신도안 다른 쪽에서 보면 싫어서 등지고 돌아 앉은 듯하게 보인다 해서 시루봉이라고도 부른다고한다.
시루봉이라는 말 속에 시루 증( 甑)만 생각하던 나에게 이런 또 다른 뜻이 있음을 새로 알게 된다.
우리말의 미묘함이 땅이름 속에 이렇듯 묻혀 있음을 배운다.
그 바위 옆으로 난 옛길 에는 맑은 도랑물이 흘러내리고 있다. 이 가뭄에도 이만 큼의 맑은 물이 흐르다니.
목마른 길손 나그네의 목을 축여주었을 개울이다. 사람과 물과의 관계를 생각해본다.
노적봉으로 올라가는 나무계단만 올려다보고는 새로난 길 밑으로 난 생태 통로를 지나니 오봇한 산길 숲속길이다. 이따금씩 봄비에 신록은 더없이 싱싱하고, 발에 밟히는 솔가리의 소리가 나직하게 들린다. 비록 우리가 예상했던 그 길이 아닌 것 같아서 한 가닥 불안감도 스쳤지만 그냥 야트막한 등성이로 난 길을 따라 걸어 올라가니 산등성이에 또 다른 서낭당터로 보이는 돌무더기가 나타나나고 다 스러져가는 봉분이 있다. 잠깐 망설이다. 그냥 큰길 따라 내려가니 부대 훈련장임을 표시하는 경고 게시판이 있다. 으름 향기 맡으며 내려서 아파트가 보이는 길로 들어선다. 군인 아파트.. 안도의 숨을 쉬고는 휴게소에 앉아서 간식을 나눈다.
오늘의 일정이 이만큼에서 대충 마무리 된다. 오후 3시가 다 되어 간다.
계룡시 시내버스를 타고 타고 대전역 종점까지 와서 늦은 점심으로 하루를 마친다.
좋은 하루 우산을 쓰고, 자연과 함께 한, 땅이름도 알고,
집에 와서 골담초의 딴 이름이 선비화라는 데 이것이 궁금해져서 인터넷을 검색해 본다.
선비화? 선비의 꽃인가? 아니다. 한자가 다르다. 골담초는 骨擔草, 禪扉花(선비화), 仙扉花,라고 검색된다.
더욱 놀라운 것은 영주 부석사의 조사당 처마 밑에 있는 선비화의 이야기가 흥미를 끈다. 이런 경우도 있단 말인가?
의상대사가 짚고 다니던 지팡이를 처마밑에 꽂았더니 그것이 자라서 선비화가 되었다는 것. 믿어도 되나.? 그래서 참 선禪의 집을 뜻하는 사립문 扉(비)로 쓴 꽃이름이 이해가 된다. 믿거나 말거나 엄연한 사실이다. 철망으로 보호막을 쳐 둘러친 사진이다. 다음에 부석사를 간다면 보고 싶다. 뜬 돌이라는 뜻의 부석(浮石)과 그에 얽힌 애틋한 사랑 이야기만 들었던 옛날.
그러나 엄연히 처마 밑에 살아있는 선비화요 골담초이다. 어려서 봄이면 저 꽃을 따서 범벅 떡을 해주어서 먹었던 추억이 떠오르는 골담초, 꼭 버선처럼 생겼다는 생각만이 들던 꽃. 저 아는 만큼 보인다더니....
골담초, 선비화의 만남이 유독 새로운 세동 답사길이다.
발로 읽는 역사의 한 페이지를 덮는다.
(2023.04.28 . 카페지기 : 자부리)
골담초의 딴 이름이 선비화라고 일러준다.
- 장태산 휴양림 길에서 만난 골담초 모습 -
-상세동 주차장을 지나 서낭당터로 가는 길에 만나는 골담초 -
-인터넷 검색으로 찾아본 부석사 조사당 골담초 보기 - (퍼온 자료들임)
(의상대사지팡이나무로 안내되어 있다.)
- 조사당 처마밑에 보호망을 둘러쳐져 있는 의상대사지팡이나무 즉 선비화 -
-조사당 선비화 안내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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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동 종점 모습. 앞에 보호수가 있고 오른쪽에 상시동 시비가 있다.
-세동 느티나무 보호수 -
-세동 농촌체험휴양마을 안내도-
- 내 고향 상시동 시비- 우리 옛이름들을 엿볼 수 있다. -
(노적봉, 상시동,하시동, 서낭당 동문다리, 아들바위. 등)
-세동1통 경로당과 시비 : 상세동 -
-신도안 가는 옛길. 동학사로도 가고, 그곳에 서낭당터가 있다 해서 찾아간다.-
( 위로 난 길은 1번 국도 동학사쪽에서 계룡시로 연결되는 도로 )
- 1번 국도 아래 교각 밑을 지나니 동문다리 시비가 넘어져 있다.-
-동문다리 시비-
( 새 서울이 들어섰다면, 동대문이 되었을 터라는 말에서 신도(新都)라는 땅이름과 신도안, 신도내라는 말, 위왕산이라는 지명 도 생각해본다.
서낭당을 성황당으로 썼지만, 의미는 일단 통하니... 현재의 삼군사령부 이야기도 나오고, 정감록과 계룡산,
대궐터에 남아있는 주춧돌을 떠오르게 하는 시 )
-포장 길을 버리고 옛길을 걸어내려간다.-
동문암자도 만나서 동문의 의미를 다시 확인해본다.
-아들바위 -
-아들바위 안내문-
-옛길에는 졸졸 시냇물이 흐르고, 목마르면 한 모금 마시고....
-계룡산 생태탐방 누리길 안내도 -
-아들바위 옛길 -
-숲속 오솔길 걷기 :옆에는 서낭당터로 보이는 돌무더기 -
( 오가면서 돌3개 놓으면서 , 3번 침뱉기. 소원 빌기.. 그랬을 서낭당터 고갯마루 )
비는 추적추적 내리는 건지 우산을 안 쓸 수도 없고,,
신록속에 묻혀서 젊어진다.
길을 찾느라 두리번 거리기도 하고.
이렇게 해서 길을 찾아 내려가고.....
(2023.04.28)